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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마가복음 9장 강해 삼부 기도와 금식 외에는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2-06-22 00:00:00
조회수 : 3,361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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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장 강해 삼부 기도와 금식 외에는
말씀 마가복음 9장14-마가복음 9장 29
요절 마가복음 9장 29절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본심입니다. 그러나 우리 신자들이 실제 생활에서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패와 좌절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세상의 왕은 마귀이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우리를 죽이기를 원합니다. 이 마귀라는 놈이 우리를 실패하고 좌절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눈에 보이지 않는 마귀라는 놈을 알고 싸워 이겨야 실패와 좌절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런 마귀와의 싸움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을 말씀해주십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믿어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기도하고 금식하는 가운데 사단을 이기고 승리의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무능한 제자들)

14-18절을 보십시오. "이에 그들이 제자들에게 와서 보니 큰 무리가 그들을 둘러싸고 서기관들이 그들과 더불어 변론하고 있더라 온 무리가 곧 예수를 보고 매우 놀라며 달려와 문안하거늘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가 무엇을 그들과 변론하느냐 무리 중의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말 못하게 귀신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나이다 귀신이 어디서든지 그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해지는지라 내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달라 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예수님이 변화산에서 영광스런 해와 같은 모습으로 변형되신 후였습니다. 예수님과 세 제자들은 9제자들이 있는 산 밑으로 내려왔습니다. 예수님의 얼굴에는 변화산의 광채가 아직도 남아 빛이 났습니다. 예수님이 와서 보니 9제자들과 서기관들이 변론하고 있었습니다. 변론은 다른 성경에 논쟁으로 변역되어 있습니다. 제자들은 서기관과 말다툼을 하고 있었습니다. 무리들이 그들을 둘러싸고 재미 있게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자 서로 논쟁하였습니다. 서기관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제자들을 공격합니다. "바리새학교도 안 나온 놈들이 귀신을 쫓아 낼 수 있느냐? 전에도 거짓말로 쫓아낸 것 아냐?" 제자들은 변명을 하느라고 진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습니다. "아닙니다. 전에는 분명히 쫓아냈습니다." "그럼 왜 지금은 쫓아내지 못하느냐?" "이 귀신은 변종 귀신입니다. 부모가 믿음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제자들은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핑계를 댔습니다. 귀신을 쫓아내면 논쟁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면 그 이유를 찾고 변명을 해야하니까 말이 많아집니다. 말을 많이 하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무리에게 오자 모든 무리가 얼굴에서 광채 나는 예수님을 보고 심히 놀랐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달려와서 문안 인사를 드렸습니다. "예수님 워디 갔다가 이제 오시는 거예유?" 예수님은 먼저 제자들에게 물어보셨습니다. "너희가 무엇을 저희와 변론하느냐?" 제자들이나 서기관은 꿀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대답도 못했습니다. 무리 중 아이의 아버지가 앞으로 나오며 변론하는 이유를 설명하였습니다. 그는 벙어리 귀신들린 아들을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제자들이 쫓아내지 못하여 논쟁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잠깐 이 아이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귀신이 어디서든지 아들을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몸이 뻣뻣하게 굳어 갔습니다. 마치 간질병과 같습니다. 귀신은 아이로 귀머거리를 만들어 듣지 못하게 하고, 벙어리를 만들어 말을 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22절을 볼 때 귀신은 아이를 때로 물에 뛰어 들게 하고 때로는 불에 뛰어 들게 하여 자살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귀신이 하는 일은 사람을 죽이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어린이가 자살하고자 하는 것만 봅니다. 아이가 병으로 고통하는 것만 봅니다. 벙어리되고 귀머거리 된 것만 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 기초하여 보면 이런 현상 뒤에는 귀신이 일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귀신은 자신이 하면서 자신이 없는 것처럼 속입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귀신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귀신을 싸워서 물리쳐야합니다. 우리는 때로 남편이 밉고 아내가 밉게 보일 때가 있습니다. 목자가 믿고 양이 미워보일 때가 있습니다. 직상이나 학과공부에 실패하여 절망할 때가 있습니다. 슬픈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두려움과 불안에 시달릴 때도 있습니다. 괜히 화가 날 때도 있습니다. 이럴 때 사람과 싸우는 사람은 귀신에게 속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과 싸우지 말고 귀신과의 싸워야 합니다. 우리의 주적은 사람이나 환경이 아니라 귀신입니다. 이렇게 말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며 물불을 못 가리고 천방지축 날뛰는 어린 아들을 볼 때 아버지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예수님은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변론하는 이유를 아시고 그들에게 대답하셨습니다.

(믿음이 없는 세대여)

19절을 보십시오.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예수님은 서기관들과 제자들을 믿음이 없다고 탄식하셨습니다 O unbelieving generation이라는 말입니다. 그 세대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많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로마의 식민지 아래 있었고 민중들은 헐벗고 굶주렸습니다. 사회적으로 빈부의 격차가 컸고 음란 문화가 퍼져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질병에 앓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시대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종교지도자들이 믿음이 없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그 시대 중에서도 정치지도자나 기업인들에게서 문제를 찾지 않았습니다. 영적 지도자인 서기관과 제자들이 믿음이 없는 데서 문제를 찾으셨습니다. 그들은 믿음이 없어서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습니다. 서기관들은 성경도 많이 공부했고 세미나도 많이 했습니다. 박사학위 논문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살아있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믿음은 무엇입니까? 믿음은 나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이런 귀신을 쫓아낼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합니다. 우리는 무능하지만 하나님은 전능하다는 것을 믿어야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어야합니다. 하나님을 믿을 때 산을 옮기는 불가능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산을 옮기도록 기도해야합니다. 받은 줄로 믿는 믿음이 생기기까지 기도해야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얼마나 내가 참겠느냐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이제 얼마 있으면 십자가에 돌아가셔야 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역사를 계승하여 양들을 도와야 합니다. 그런데도 아직도 믿음이 없으니 예수님은 마음이 아프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믿음이 없을 때 깊이 탄식하시며 책망합니다. 예수님은 실패하고 좌절한 우리에게 믿음이 없음을 탄식하십니다.

(하실 수 있거든 도와주소서)

20-22절을 보십시오. "이에 데리고 오니 귀신이 예수를 보고 곧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그가 땅에 엎드러져 구르며 거품을 흘리더라 예수께서 그 아버지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이르되 어릴 때부터니이다.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아버지가 아이를 데리고 예수님께로 나왔습니다. 귀신이 예수님을 알아보고 곧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였습니다. 아이가 땅에 엎드려져서 굴며 거품을 흘렸습니다. 귀신은 귀신같이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예수님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아보았습니다. 자신을 죽이러 온 것을 알아보았습니다. 귀신은 아이의 병을 더 악화시켜서 이버지에게 예수님께 대한 불신을 심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이 긴박한 순간에 바로 아이의 귀신을 쫓아내지 않았습니다. 먼저 아버지에게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와 인격적인 관계성을 맺고 아버지가 예수님에 대해서 믿음을 갖기를 원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어렸을 때부터라고 하였습니다. 역사가 오래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달라고 기도합니다. 무엇을 하실 수 없으면 그만 두라는 말입니다. 그는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는 제자들의 실패로 인하여 예수님에 대한 의심의 먹구름이 밀려 왔습니다. 반신반의하면 예수님이 일하실 수 없습니다. 야곱은 얍복 강에서 자신을 죽이고자 오는 에서를 만나 기도할 때 반신반의하였습니다. 주님이 도와 주시면 좋고 그렇지 않으면 도망가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환도뼈를 쳐서 위골시킴으로 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울며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다)

23절을 읽어보겠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예수님께는 할 수 있거든 이라는 가정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다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귀신을 쫓아낼 수 있습니다. 어떤 귀신도 쫓아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아브라함이 백세가 되고 사라가 구십 세가 되어 아이를 낳을 수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사라에게 아이를 주신다고 하자 생리도 끊어졌는데 아이를 주신다고 하자 사라는 웃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라에게 어찌하여 웃으며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책망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다고 하셨습니다.(창세기 18:14) 전능하신 하나님은 생리가 끊어진 사라에게 아이를 갖게 하셨습니다. 천사가 처녀 마리아를 찾아와서 아이를 낳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마리아는 내가 남자를 알지 못하는 처녀인데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하였습니다. 천사는 마리아에게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다고 하였습니다.(누가복음 1장 37) 하나님은 처녀도 아들을 낳게 하는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만 능치 못하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믿는 자도 능치 못하심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사도바울도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빌립보서 4장 13) “믿는 자에게는”이 킹제임스 성경에는 믿음을 가질 수 있다면으로 나옵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질 수 있다면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우리가 믿음을 가지면 항상 일등하고 모든 사람을 구원하고 직장에서 승승장구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으면 모든 귀신을 쫓아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를 괴롭히는 모든 귀신을 싸워 이기고 승리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두려워하지 않고 불안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고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만 가질 수 있다면 우리는 어떤 귀신도 물리치고 넉넉히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이 있으면 학과공부를 정복하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캠퍼스에서 귀신을 쫓아내고 하나님의 역사를 이룰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있는 곳에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할 수 있습니다. 가을학기 넉넉히 승리할 수 있습니다.

(눈물로 울부짖으며 기도하는 아버지)

24절을 보십시오.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예수님의 책망을 들은 곧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 질러 기도하였습니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표준어 새번역이나 킹제임스 번역에 보면 아이의 아버지가 눈물로 울부짖었다고 하였습니다. 아버지는 눈물로 울부짖으며 기도했습니다. 지금까지는 소리도 지르지 않고 눈물도 흘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의 책망을 통해서 자신이 불신의 죄악에 빠져 있음을 깨닫고 울며 회개했습니다. 불신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죄입니다. 하나님을 반역하는 죄입니다. 하나님은 불신하는 자에 대해서 진노하십니다. 하나님은 불신하고 가나안을 정탐한 열 두령에 대해서 분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연약한 것을 책망하지 않지만 불신은 책망하십니다. 우리는 불신을 회개해야합니다. 눈물로 회개해야합니다. 불신의 죄악을 용서받아야 합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하여 자신의 불신을 깊이 있게 회개했습니다. 이제는 한 마음으로 절박한 심령으로 기도했습니다. 예수님을 전폭적으로 의지했습니다. 그는 소리질러 기도했습니다. 전심으로 기도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의 말씀처럼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다음으로 아이의 아버지는 예수님의 책망을 듣고 "내가 믿나이다" 믿음을 고백했습니다. 믿음은 고백을 할 때 생깁니다. 우리도 믿음의 고백을 해야 합니다. 큰 소리로 고백해야합니다. 내가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나이다. 내가 나의 저주를 대신 받으신 예수님을 믿나이다. 내가 사망권세를 이기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나이다. 나와 영원토록 함께 하시는 성령님을 믿습니다. 내가 나의 결혼과 장래를 책임져 주실 하나님을 믿나이다. 내가 학과 공부를 도우실 하나님을 믿습니다. 양들을 변화시켜 주실 하나님을 믿나이다. 자녀들을 지켜 주실 하나님을 믿습니다. 우리는 믿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을 고백할 때 믿음이 성장합니다. 아버지가 이렇게 믿음을 고백했지만 실제적으로 마음에 찾아오는 불신을 어쩔 수 없었습니다. 마음에 불안과 두려움이 찾아왔습니다. 의기소침하여졌습니다. 힘이 빠졌습니다. 안 된다는 생각이 찾아왔습니다. 절망이 찾아왔고 슬펐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다시 소리질러 기도합니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그는 자신의 믿음 없음을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불신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믿음을 주시도록 기도했습니다. 이것이 불신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기도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불신을 극복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기도 모임에 나와서 기도함으로 믿음을 덧입어야 합니다. 기도모임에 와서 불신을 회개하고 믿음을 고백하는 기도를 드려야합니다. 20년 전에 저는 가정의 문제, 교회의 문제로 거의 바닥을 치고 있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나는 기도뿐이 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교회 계단 밑 기도실에서 기도하였습니다. 수양회에 참석하여 모든 수양회 프로그램이 끝난 후에 남아서 기도하였습니다. 그곳에는 나와 같이 남아서 기도하는 사람이 여서일곱 명 정도가 있었습니다. 기도하고 말씀의 은혜를 받으려고 나는 앞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말씀의 은헤를 받지 못했습니다. 말씀을 그렇게 잘 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소감을 쓰는데 성령이 임하였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다는 사실을 깨달아졌습니다. 눈물을 펑펑 흘리며 회개하였습니다. 사일 동안 매일 세 시간 정도뿐이 자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양평에서 천안까지 운전하며 오는데 하나도 졸리지 않았습니다. 그 후 하나님은 가정과 교회의 문제를 회복시키셨습니다. 그때부터 내가 새벽 기도를 배워서 지금까지 20년간 절대적인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문제가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부르짖어 기도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요즘에 학생들이 군으로 외국으로 가면서 다시 학생들이 없습니다. 나는 학생회를 보면서 다시 기도해야함을 깨닫습니다. 제가 하루에 한 시간씩 기도합니다. 그러나 전임사역자로서 이제는 하루에 두 시간씩 기도하고자 결단하였습니다. 주님이 은혜를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부르짖어 기도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기도하면 믿음이 생기고 믿음이 생기면 귀신을 이길 수 있습니다.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쫓아내신 예수님)

25-27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무리가 달려와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이르시되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귀신이 소리 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 것 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 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니라” 예수님이 책망하시고 아비가 소리지르자 무리들이 무슨 구경거리가 난 줄 생각하고 모여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더러운 귀신을 꾸짖었습니다. 벙어리와 귀먹은 것 뒤에 더러운 귀신이 있었습니다.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예수님은 말씀의 권세로 귀신을 책망했습니다. 귀신을 대적했습니다. 귀신은 예수님의 권세로 꾸짖고 책망해야합니다. 귀신은 나와도 다시 들어옵니다. 한 마리가 나가서 일곱 귀신을 데리고 들어옵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다시 들어오지 못하도록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예수님의 이름 권세로 귀신을 책망하자 귀신이 소리지르며 아이로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갔습니다. 귀신은 마지막 발악을 하였습니다. 아이는 죽은 것 같이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아이가 죽었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려고 하다가 생사람 잡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손을 잡아 일으키셨습니다. 그러자 그 아이가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은 죽이려 오신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생명을 주러오신 분이십니다. 제자들은 무능했지만 예수님은 능력이 있으셨습니다.

(기도와 금식 외에는)

28,29절을 보십시오.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조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집에 들어가자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님께 그들이 무능했던 이유를 물었습니다. 믿음이 없었던 이유를 물었습니다. 능력의 비법을 여쭈어 보았습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제자들은 자신들이 쫓아내지 못한 귀신을 예수님은 쫓아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자들은 귀신을 쫓는 예수님의 능력을 전수받고 싶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믿음을 가질 수 있는 무슨 큰 비빕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여 물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조용히 그 비밀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기도 외에는 이런 종류의 귀신을 쫓아낼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귀신 쫓는 능력의 근원이 기도에 있음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 능력을 얻고자합니다. 박사학위를 통해서, 큰 교회에 찾아가서 능력있는 목사를 통해서, 또는 돈을 통해서, 신학교를 나와서, 세미나를 통하여 능력을 얻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능력과는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능력은 기도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능력과 권세가 있으셨던 것은 기도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새벽에 일어나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때로 밤이 &#47583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일이 끝난 뒤에 기도하셨고 제자들을 세울 때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두고 기도하셨고 십자가에 죽으시는 바로 그 순간에도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귀신을 쫓아내기 전에도 산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을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믿음은 현재적인 것입니다. 현재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매일 규칙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밥을 규칙적으로 먹고 차에 기름을 규칙적으로 넣듯이 기도도 규칙적으로 믿음을 고백하고 회개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반면에 제자들은 어떠합니까? 제자들은 기도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변화산에 올라갔을 때도 잠을 잤습니다. 예수님께서 데리시고 겟세마네 동산에 갔을 때도 잠을 잤습니다. 제자들은 기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기도하지 못하고 깨지고 터지는 실패의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제자들도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 달라집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처음부터 기도합니다. 120명의 성도들이 마가 다락방에서 기도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때를 정하고 성전에서 기도했습니다. 기도했기 때문에 앉은뱅이를 일으켜세우고 중풍병자를 일으켜 세우고 죽은 자를 살렸습니다. 베드로는 기도하다가 동물을 잡아 먹으라는 환상을 보고 이방인 선교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베드로가 감옥에 갇혔을 때에 교회가 기도하자 옥문이 열리고 쇠사슬이 풀어졌습니다. 사도들은 핍박을 받을 때도 기도하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바울은 소아시아 전도가 막혔을 때 기도했습니다. 그때 마게도냐 전도의 환상을 보았습니다. 바울은 마게도냐의 첫성인 빌립보에 가서 먼저 기도처를 찾고자 하다가 루디아를 만나서 전도를 하였습니다. 바울은 각 서신에서 항상 기도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바울은 로마 선교를 위해서 쉬지 않고 기도했고 마침내 로마 선교를 이루었습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기도하면 우리는 누구나 능력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가 안 되는 데요? 기도하려면 졸리고 늦잠 자고 말을 하기가 싫은 데요?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비잔틴 사본 성경에는 이 말씀에 한 가지가 첨가되어 나옵니다. 표준 새번역 성경에는 이렇게 나옵니다.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기도와 금식에 의하지 않고서는 아무 것으로도 내 보낼 수 없느니라" 금식이란 말씀이 덧붙여 나옵니다. 기도가 막힐 때는 마음에 불신이 들어 온 것입니다. 이때는 금식해야 합니다. 금식은 생명을 걸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에는 생명을 걸만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음을 각오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금식 기도는 기도의 절대성을 가르쳐 줍니다. 절대성이 있을 때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신문을 돌리는 사람은 새벽 2시에 일어나 거의 절대성 있게 신문을 돌립니다. 돈 사십만원을 위해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시내를 돌아다닙니다. 그들이 신문을 돌리지 않을 때 사람들의 전화가 빗발치듯이 오기 때문에 그들은 신문을 돌립니다. 그런데 우리는 기도에 빠지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기도를 생활에 하나의 장식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으면 독자들이 아우성치는 것이 아니라 사단의 송사가 빗발치듯이 들어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이일 저일이 여기저기서 터집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시기하기까지 사모합니다. 우리는 가을학기 역사를 위해서 기도하고 금식해야합니다. 금식기도하면 하나님이 다 들어주신다는 말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내가 사십일 금식 기도했는데도 기도를 들어주지 않았다고 문제에 빠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는 진정한 금식을 해야합니다. 이사야서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은 죄와 싸우는 금식이라고 하셨습니다.(이사야 58장) 금식은 탐욕과 불신을 회개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식탐을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불신과 탐욕을 회개하며 기도해야합니다. 우리의 죄를 슬퍼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금식기도하며 죄에서 자유를 얻어야합니다. 탐욕에서 자유를 얻어야합니다. 금식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하며 기도해야합니다. 우리는 금식하며 남은 음식을 배고픈 사람들과 나누며 기도해야합니다. 금식을 통하여 죄에서 자유를 얻고 구해야합니다. 우리는 죽어도 좋다는 자유함으로 기도해야합니다. 사자굴에 들어가도 좋다는 자유함으로 기도해야합니다. 예수님은 신랑을 빼앗기는 날에는 금식하라고 하셨습니다. 신랑은 예수님이십니다. 마음에 예수님이 사라지고 세상 것이 들어올 때 금식해야 합니다. 기도해도 예수님에 대한 불신이 사라지지 않을 때 우리는 금식하며 불신과 싸워야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갖기까지 금식해야합니다. 예수님도 사십일 금식하고 모세도 사십일씩 두 번이나 금식기도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대속죄일이 금식하고 회개운동을 할 때 금식하였습니다. 에스더는 민족의 위기에서 금식 기도하였습니다. 사도행전에는 안디옥 교회가 금식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들이 금식 기도했을 때 하나님은 바울과 바나바를 세계선교에 파송하라고 하셨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이 명령을 받고 금식기도하고 바울과 바나바를 파송했습니다. 금식기도를 통해서 놀라운 세계선교의 역사가 이루어졌습니다.

(결론 기도와 금식의 생활화)

우리가 귀신과 싸워 승리하기를 원하십니까? 귀신을 이기는 능력 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가을학기에 성령의 역사가 충만하고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를 원하십니까? 세계 모든 사람들이 천안으로 몰려와 말씀을 듣기를 원하십니까? 우리가 규칙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부르짖어 기도해야합니다. 불신과 싸우는데 생명을 걸어야 합니다. 불신을 극복하기 위해서 기도해야합니다. 금식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절대적으로 기도해야합니다. 회개하며 기도해야합니다. 사랑하며 기도해야합니다. 합심하여 기도해야합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이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길이 막혔을 때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새로운 길을 내주시고 이제는 수도도 가스도 들어오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학생들의 성적을 위해서 기도하였을 때 교회에 사는 두 명이 두 배의 성적이 나오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번 가을학기를 준비하면서 절대적인 기도를 배워서 능력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마가복음 9장 강해 삼부 기도와 금식 외에는
말씀 마가복음 9장14-마가복음 9장 29
요절 마가복음 9장 29절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마가복음 9장 강해 삼부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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