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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마태복음 12장 강해 이부(9-21) 상한 갈대를 꺾지 않는 예수님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7-11-20 00:00:00
조회수 : 3,506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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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2장 강해 이부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는 예수님

마태복음 129-마태복음 1221

요절 마태복음 1220절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오늘 말씀은 안식일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안식일을 철저히 지켰습니다. 우리가 출애굽기를 공부해서 알지만 안식일에 일하는 자는 죽이라는 말이 두 번이나 반복되어 나옵니다. 실제 안식일에 나무하러 간 사람을 돌로 쳐서 죽인 예도 있습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잘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안식일을 철저히 지켰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2500년 나라를 잃었어도 나라를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너무 형식화 된 것입니다. 그들은 안식일에 613가지 법을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안식일 날 불을 피우지 말라는 말씀에 근거하여 전등을 켤 수도 없습니다. 엘레베이트 버튼을 누를 수도 없습니다. 목발을 집는 사람은 안식일날 목발을 내려놓아야합니다. 의치를 한 사람은 의치를 빼어놓아야 합니다. 피가 나도 안식일에는 치료할 수 없습니다.

이로 인하여 사람들은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안식일을 주셨습니다. 사람들이 탐욕과 불신을 회개하고 쉼을 얻도록 안식일을 주셨습니다. 개인적인 오락을 금하고 하나님과 교제하도록 안식일을 주셨습니다. 선을 행하고 진정한 쉼을 얻도록 주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안식일 법을 받아야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긍휼을 잃어버리고 안식일 법으로로 사람을 구속하고 사람을 죽이는 악을 행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에는 이런 안식일 법에 죽어가는 한 사람이 나옵니다. 한 손마른 손이 마비되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상한 갈대와 같은 자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상한 갈대와 같은 자들을 안식일 법을 이용하여 꺾어버리고자 하였습니다. 율법을 이용하여 약자를 억압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한 손마른 자를 고치심으로 상한 갈대와 같은 자들을 온전케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사랑 안에서 안식일 법을 지켰습니다.

우리 가운데도 상한 갈대와 같이 가난하고 병든 사람이 있습니다. 절망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자들을 예수님의 사랑하여 치료하시고 온전케 하시는 자유의 주님이십니다.

 

(안식일 법에 매인 사람들)

 

9,10절을 보십시오. “거기에서 떠나 그들의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물어 이르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예수님은 밀밭 사이의 길을 지나서 회당에 들어갔습니다. 그날은 안식일이었습니다. 그곳에는 한 손 마른 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안식일에 예배드리기 위해서 하나님께 나왔습니다. 한 손이 마비되어 손을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외경에 의하면 그는 오른 손이 말랐고 석공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장애로 먹고 살기도 힘든 사람이었습니다. 거지로 살았습니다. 싸움을 싸워도 꼭 한 대 때리고 두 대를 맞아야 했습니다. 야구도 할 수 없고 피아노도 사부로 칠 수 없었습니다.

그는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그는 안식일에 고침을 받아야 참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이 사람을 도와야 하는 목자들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이 사람을 이용하여 예수님을 고발하기 위해서 물었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생명을 살리는데 있지 않고 교권유지에 있었습니다. 안식일에 한손 마른 자를 고치는 것이 율법적으로 옳습니까? 예수님이 안식일에 한손마른자를 고치면 그들은 모세의 율법으로 예수님을 고발하겠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율법에 매여서 사랑을 잃어버리고 약자를 다른 사람을 죽이는 미끼로 이용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한 비유를 통해서 안식일에 한 손 마른 자를 고치는 것이 옳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기적인 바리새인)

 

11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끌어내지 않겠느냐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책망하고자 작정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질문하였습니다. 안식일에 양 한 마리가 구덩이에 빠져 있습니다. 그러면 끌어내는 것이 율법적으로 옳습니까? 그냥 두는 것이 율법적으로 옳습니까?

바리새인들은 끌어내는 것이 율법적으로 옳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양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고 생명을 구하는 일을 안식일에 허용하였습니다. 생명을 구하는 것은 안식일이라도 구해야하는 급박한 일입니다.

엘블런스를 울리며 교통법을 무시하며 달립니다. 우리가 안식일이라도 아프면 병원에 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들은 자기 양을 사랑하여 양을 구덩이에서 꺼내는 것을 허용하였습니다.

인간은 양보다 휠씬 귀한 존재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존재입니다. 그런데 안식일이라고 해서 자기 자녀가 손이 말랐다면 한손 마른 병자를 고치지 말아야합니까? 안식일이라고 손마른 자에게 지금까지 참아왔으니 하루 더 참으라고 할 수 있습니까?

안식일에 한 손 마른 자를 고치는 것은 율법적으로 옳은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이익이 되는 일은 양이라도 도왔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이익이 되지 않을 때는 사람이라도 돕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한 손 마른 자를 고치면 상대적으로 자신의 인기가 떨어집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안식일이리라도 고칠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 자기만 사랑하는 이기적인 자입니다.

그들은 옳은 것보다는 이익을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삯군 목자입니다. 예수님은 선한 목자이십니다. 세계 모든 사람을 양으로 보시고 그들을 고쳐주시고자 하십니다.

 

(안식일에 선을 행해야 함)

 

12절을 보십시오.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

 

예수님은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다고 하였습니다. 이사야는 안식일에 선을 행하지 않고 악을 행하는 자를 책망하였습니다.(이사야 56:2-4) 안식일은 악을 행하지 말고 선을 행해야합니다. 안식일은 일을 하지 않고 쉬는 날이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안식일은 자유를 주는 개념으로 발전합니다. 안식일 날은 노동과 염려와 탐욕에서 자유를 얻습니다. 안식일은 개인적인 오락을 금하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날입니다. 더 나아가 안식일은 무엇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선을 하는 날입니다. 십계명의 율법은 대부분 무엇을 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계명이 핵심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우리는 안식일에 무엇을 하지 말아야하는지 생각하기보다 어떻게 선을 행할 것인지를 생각해야합니다.

우리는 안식일에 적극적으로 생명을 살려야합니다. 생명 살리는 일, 병을 치료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건강하고 힘 있게 살도록 해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진정한 쉼을 주어야합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선을 행하도록 안식일의 개념을 재정립하셨습니다.

 

(믿음의 손을 내밀라)

 

13절을 보십시오. “이에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내밀매 다른 손과 같이 회복되어 성하더라

 

한 손마른 자는 회당 구석에 서 앉아 있었습니다. 한 손마른 자는 긴 옷을 입고 손을 호주머니에 넣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약점을 감추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한 손마른 자를 회당 한 가운데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리고 공개적으로 손을 내밀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고치셨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손을 내밀었습니다. 감추었던 손을 공개적으로 내밀었습니다. 자신의 부끄러움을 하나님과 모든 사람들 앞에서 내어밀었습니다. 그러자 손이 회복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순종을 통하여 치료하십니다.

그의 손만 마비된 것이 아니라 내면의 자의식 열등감의 병이 있었습니다. 숨은 죄가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우리의 감춘 손을 내밀어야합니다. 우리의 숨겨진 죄를 십자가의 피 앞에 내놓아야 합니다. 우리의 부끄러운 병들도 채찍 맞으신 예수님 앞에 내어놓고 기도해야합니다. 우리는 믿음의 손, 순종의 손을 내밀어야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우리의 손을 치료하여주실 것입니다. 우리를 회복시켜주실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의 마른 손을 내밀라)

 

예수님은 안식일이 지나고 병자를 고쳐도 되었습니다. 몰래 고쳐도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고치셨습니다. 굳이 안식일에 고치셨습니다.

예수님은 한 손 마른 자를 고치시므로 바리새인들의 악함에 정면적으로 도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문제를 드러내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내면에 하나님의 사랑이 말라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랑의 손이 마른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내면을 치료해주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사랑과 인애와 지비를 회복하기를 원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불의와 싸우는 정의로우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죄를 회개하고 안식일에 선을 행하기를 원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고난을 각오하고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새로운 예를 세우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손마른 자를 치료하시면 바리새인들이 자신을 죽이고자 할 것을 아셨습니다.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선한 목자이십니다.

 

(한 손마른 자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

 

14절을 보십시오.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거늘

 

바리새인들은 이 사건을 보고 예수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해야 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내면의 사랑 없는 마른 손을 내밀어야합니다. 사랑없는 내면을 드러내고 회개해야 했습니다. 시기심을 회개해야합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회개하기보다 예수님을 어떻게 죽일까 의논하였습니다. 그들은 율법에 노예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생각은 굳어졌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이 죽이고자 하는 것을 아시고 그들과 혈기로 싸우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한 손 마른 자를 치료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상한 자가 되셨습니다. 연약한 자가 되셨습니다. 친히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싸우지 않으신 예수님)

 

15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아시고 거기를 떠나가시니 많은 사람이 따르는지라 예수께서 그들의 병을 다 고치시고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하나님께 맡기고 조용히 그들을 떠나가셨습니다. 예수님은 혈기가 없으시고 온유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싸우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능력에 감동을 받은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왔습니다. 그날은 안식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안식일에 그 많은 사람들의 병을 다 고쳤습니다. 한손마른 사람뿐 아니라 모든 사람을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병을 고치므로 바리새인들의 죄악에 도전하였습니다. 그 시대의 기득권에 도전하셨습니다.

 

(선행을 행하신 자신을 감추신 예수님)

 

16절을 보십시오.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 경고하셨으니

 

예수님은 죄와 병은 드러내셨지만 자신의 선을 행한 것을 감추셨습니다. 예수님은 병자를 고치고 자신을 나타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나병환자를 고칠 때도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선을 행하면 광고하여 자신을 드러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을 광고하여 사람들에게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행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명예심을 버리셨습니다. 오직 예수님은 하나님의 상급만을 바라고 은밀히 행하셨습니다.

어떤 분이 교회를 짓는데 아무도 모르게 일억의 돈을 헌금하였습니다. 그는 교회 헌당식에 참석하였지만 조금도 내색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기쁨의 눈물이 흘렀습니다. 우리가 은밀히 선을 행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수님)

 

17,18절을 보십시오.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보라, 내가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 바 내가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영을 그에게 줄 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

 

저자 마태는 예수님이 안식일에도 모든 병자를 고치는 것을 보고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이 성취된 것이라고 보셨습니다. 이사야의 말씀에 보면 예수님을 보라!라고 외칩니다. 예수님을 주목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택하신 종이요.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사랑하는 자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종이 아니요. 바리새인의 종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사람에게서 기쁨을 구하지 않고 하나님에게서 기쁨을 구하였습니다.

갈라디아서 110절에 보면 그리스도의 종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하나님에게서 기쁨을 구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정의롭게 살자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버렸습니다. 기득권층은 예수님을 싫어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님을 택하셨습니다. 예수님을 기뻐하는 바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정의롭게 살면 우리는 사람들에게 버림 받을지라도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고 하나님의 인정을 받습니다.

 

(정의를 세우신 예수님)

 

하나님은 자신의 택한 종 예수님에게 성령을 부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침례받고 올라올 때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을 충만히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의 힘으로 이방에 심판을 알게 하십니다. 심판을 알게 하신다는 것은 정의를 알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공동번역, 표준새번역)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하여 정의를 세우십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의 불의에 굴복하지 않고 옳은 일에 목숨을 걸고 싸우셨습니다. 예수님은 온 세상에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정의를 세우고자 싸우셨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고자 하셨습니다.

이런 영적인 싸움은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습니다. 오직 성령의 힘으로만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힘으로 용기를 얻고 담력을 얻을 때 불의와 싸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정의를 세우기까지 싸워야합니다.

 

(겸손하신 예수님)

 

19절을 보십시오. “그는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예수님은 다투거나 들레지 않습니다. 비난하는 바리새인과 다투지도 않고 자기가 착한 일을 했을 때 들레지도 않고 길에서 아무도 그 소리를 듣지 못하게 하십니다.

들레다의 원어는 개가 짖는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개가 짖듯이 시끄럽게 일하지 않으셨습니다. 온유하고 겸손하게 일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겸손하여 조용히 말씀하시므로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불의와 힘있게 싸우졌지만 바리새인과 혈기를 부리며 큰 소리로 싸우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셨습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는 예수님)

 

20절을 보십시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예수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십니다. 성경에서는 사람을 갈대에 비유합니다. 인간은 갈대처럼 약합니다. 파스칼은 사람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하였습니다.

섹스피어는 여자, 그대 이름은 갈대라고 하였습니다. 갈대는 약합니다. 사람은 강한 것 같지만 약한 존재입니다. 추워도 못살고 더워도 못삽니다. 숨을 오분만 쉬지 않아도 죽고 물을 십일만 먹지 못해도 죽고 밥을 사십일만 먹지 못해도 죽습니다.

갈대 밭에는 바람에 꺾어지고 짐승에 짓밟힌 상한 갈대가 있습니다. 상처난 갈대는 더욱 약합니다. 참새 한 마리만 앉아도 꺾어집니다. 병든 인간은 상한 갈대와 같습니다. 인간은 질병에 의해서, 죄에 의해서, 사망권세에 의해서, 사단에 의에서 상해 있습니다.

사람은 육신의 병, 마음의 병, 영혼의 병을 앓고 있습니다. 물질문제로, 사람들의 말에 의해서 상해갑니다. 사람들은 이런 상한 사람을 보면 꺾어서 구차한 모습을 다시 보지 않고자 합니다. 그들을 볼 때 피곤해합니다. 부담을 느낍니다. 말은 안해도 빨리 사라져 없어지기를 바랍니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이들은 자연도태 됩니다. 사람들은 상한 갈대를 아무 쓸모없다고 꺾습니다. 보기 흉하다고 꺾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상한 갈대를 치료하십니다. 갈대를 참나무와 같이 강한 존재로 거듭나게 하십니다. 꺼져가는 심지는 기름이 없어서 꺼져갑니다. 이런 심지는 냄새와 연기가 나서 다른 사람들을 괴롭힙니다. 연기로 공동체에 악영향을 끼칩니다.

사람들은 꺼져가는 등불을 훅 불어서 꺼버립니다. 꺼져가는 등불은 소망이 없습니다. 바리새인들이 하는 일이 등을 끄고 갈대를 꺾는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상한 갈대를 꺽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상한 사람들을 치료하시기 위해서 친히 상한 자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살리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꺼져가는 심지가 되어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곳에 성령을 부어서 그 심지를 활활 타오르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소망의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은혜로운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한 손 마른 자를 꺾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한 손 마른 자를 강하고 새롭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호하시고 왕과 같이 제사장과 같이 귀히 여기십니다.

예수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저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십니다. 심판하여 이긴다는 것은 공의가 이긴다는 말입니다. 공의가 이길 때까지 상한 갈대가 강해지고 꺼져가는 심지가 활활 타게 하십니다.

 

(예수님이 치료한 상한 사람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상한 갈대와 같습니다. 가난과 질병에 시달립니다. 사람들의 마음에 의해서 마음에 상처를 받았습니다. 약자들은 상한 갈대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를 살리고 쓰십니다.

하나님은 남편과 시아버지 시아주버니를 잃은 룻을 보아스를 통해서 살리시고 메시야의 조상으로 쓰셨습니다.

다말은 두 남편을 잃고 결혼도 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믿음으로 자녀를 낳고 메시야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세리마태는 꺼져가는 등불과 같은 자입니다. 그러나 에수님을 통하여 살아났습니다. 중소기업, 작은 교회는 상한 갈대와 같습니다.

요즘은 자본주의 시대입니다. 무한 경쟁의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 빈부의 격차는 점점 벌어집니다. 가난한 자는 점점 가난해져서 망할 것 같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처럼 약자는 다 자살하든지 죽을 것 같습니다. 병든 자들은 건강한 사람들에 의해서 무시 받습니다.

교회도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사람들은 움직입니다. 작은 교회는 무시받고 멸시받습니다. 누구도 작은 교회에 있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이런 식으로 가다보면 작은 교회는 다 상한 갈대처럼 없어질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상한 갈대에 소망을 두십니다.

요한 웨슬리는 감리교 창시자입니다. 그의 어머니 수산나는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그의 어머니는 19명을 낳아서 키웠습니다. 그 남편이 보니 수산나는 한 자녀를 두고 알아듣지 못하는 것을 보고 20번을 깨우쳤습니다. 남편이 신기하여 어떻게 이십 번을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수산나는 말했습니다. 19번 하고 끝나면 지금까지 말한 것이 소용없잖아요. 수산나는 소망으로 자녀를 키웠습니다.

상한 갈대와 같이 작은 우리 교회에 소망을 두십니다. 우리 교회가 성경 66권 강해서를 발간하고 오천 선교사를 파송하는 교회로 사용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이 시대 말씀에 기초하여 하나의 샘플을 만드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힘있게 건설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가 부유해지고 병자가 건강하게 될 때까지 하십니다. 작은 교회가 큰 교회가 될 때까지 하십니다. 예수님은 낙심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고 이 일을 하십니다. 아멘!

 

(이방인의 소망이신 예수님)

 

21절을 보십시오. “또한 이방들이 그의 이름을 바라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이방 사람들은 마음이 상해 있습니다. 절망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예수님을 보고 이 예수님의 이름에 희망을 걸 것입니다. 그들은 사랑의 예수님에 희망을 둡니다. 소망의 예수님에 희망을 둡니다. 우리가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는 소망의 예수님을 바라보아야합니다.

시몬 베드로도 상한 갈대와 같은 연약한 자였습니다. 이방인 들이 베드로에게 소망을 두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은 양과 같은 자신이 이리 같은 세상에 갑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이 견고하게 서게 하셔서 예수님께 소망을 두게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교회를 꺾지 않으시고 강하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끄지 아니하시고 활활 타오르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소망의 예수님 앞에서 서야겠습니다. 우리가 소망의 예수님 눈으로 다른 사람들을 보아야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강한 자, 부한 자가 되어도 예수님을 본받아 상한 갈대를 살리는 자들이 되어야겠습니다. 아멘!

 

마태복음 12장 강해 이부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는 예수님

마태복음 129-마태복음 1221

요절 마태복음 1220절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마태복음 12장 강해 이부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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