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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마태복음 11장 강해 2부 쉼을 주시는 예수님(20-30)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6-12-24 00:00:00
조회수 : 3,204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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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1장 강해 2부 쉼을 주시는 예수님

말씀 마태복음 1120-마태복음 1130

요절 마태복음 1128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우리는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전에 할머니들은 40킬로 쌀 한 가마를 머리에 이고 다녔습니다. 할아버지들은 하늘 끝까지 올라가는 짐을 지개에 지고 날랐습니다.

우리는 이런 짐 말고도 인생의 짐이 있습니다. 마음의 짐을 이고 지고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학과 공부도, 직장 생활도, 가정생활도 다 마음에 짐입니다. 목자가 양들을 감당하는 것도 큰 짐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양육하는 것도 짐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을 다 초청하십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쉼을 주시고자 하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예수님 안에서 참쉼을 얻을 수 있을까요?

 

(은혜 받고 회개치 않은 자들)

 

20-22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문둥병자 중풍병자를 고치고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권능을 많이 행하고 많은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예수님이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한 고라신과 벳세다가 회개하지 않자 예수님은 책망하였습니다. 고라신과 벳세다와 가버나움은 갈릴리 근처에 있는 동네들입니다. 예수님 사역의 중심지입니다.

고라신과 벳세다는 예수님의 권능을 보고 예수님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그들은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서 죄를 발견하고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고라신과 벳세다는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고라신과 벳세다는 이방 땅 두로와 시돈보다도 완악하고 교만하다고 하셨습니다.

두로와 시돈은 지중해 연안에 자리잡은 도시국가들로서 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한 나라들입니다. 그들은 장사를 잘 해서 부가 쌓이자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대적하였습니다.

이사야 23장에는 이러한 두로에 대한 심판이 예언되어 있는데 그 예언대로 B.C 722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 의하여 주요 성읍들이 함락되었습니다. B.C 333년에는 알렉산더 대왕에 의하여 완전히 함락되었습니다. 그때 두로 거민 30,000명이 노예가 되었고 2,000명의 지도급 인사들이 교수형에 처해졌습니다. 두로와 시돈은 그 후에 겸손해졌습니다.

예수님은 고라신과 벳세다에서 행한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했으면 그들이 하나님을 알고 베옷을 입고 회개하였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두로와 시돈에서 예수님께 믿음이 크다고 칭찬 받은 수로보니게 여인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땅에 있는 고라와 벳세다는 예수님의 큰 권능을 보고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의 고라신과 벳세다는 이방 땅의 두로와 시돈보다 더 큰 화가 있습니다. 이방인들은 마음이 겸손하였지만 갈릴리 사람들은 교만하였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과거 무시 받고 멸시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자들을 불쌍히 여기고 권능과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그들은 이런 은혜를 받자 다시 교만해졌습니다. 자신이 잘나서 은혜를 받은 줄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몰랐습니다. 과거에 무시 받던 자신을 잊었습니다.

 

(은혜 받고 교만하게 된 자들)

 

23,24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라면 그 성이 오늘까지 있었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

 

가버나움도 고라신과 벳세다와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지 않는 이유는 이들이 하늘까지 높아지는 교만 때문입니다.

이들은 별볼일없는 갈릴리 동네입니다. 하나님이 이들에게 은혜를 주셔서 예수님이 이곳에 오셔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은혜 받은 갈릴리를 보고자 그리로 모여들고 있습니다. 그들은 은혜를 받자 교만하여졌습니다.

사람이 은혜를 받으면 내가 잘 나서 은혜 받은 것처럼 교만의 병이 생깁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때 가장 경계해야할 것이 교만입니다. 은혜는 내가 잘 나서 받은 것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긍휼로 받은 것입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조금 잘살게 되면 교만해지고 조금 공부 잘하면 교만해집니다. 얼굴이 조금 예뻐도 교만해지고 장학금 몇 번 타도 교만해집니다. 전교 일등하고 서울대 다니는 사람의 가장 무서운 병이 교만입니다. 이들은 하늘에까지 높아지고자 합니다. 하나님같이 되고자 합니다. 이 세상에 나뿐이 없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행한 권능을 소돔과 고모라에서 행했다면 그들이 회개하고 살아남았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음란하고 폭력적인 곳입니다. 그들은 불과 유황에 의해서 멸망하였습니다.

가버나움은 이들보다 더 큰 심판을 받고 영원히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들어갈 것입니다. 가버나움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많이 받고 타락하여서 더 큰 심판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많이 은혜 받은 자에게 더 많이 찾으십니다. 그 사람이 받은 은혜의 분량이 심판의 분량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은혜를 받을수록 더욱 겸손해야합니다. 사도바울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고도 내가 아니요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합니다.

 

(겸손은 회개하는 것임)

 

고라신과 벳세다 가버나움의 공통적인 문제는 무엇입니까? 그들은 회개치 않는 것입니다. 교만이란 권능을 보고도 회개치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지 않는 것입니다.

겸손이란 무엇입니까? 본문 말씀에 기초하여 볼 때 겸손은 회개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딱딱하지 않고 부드러운 것입니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것입니다.

고넬료와 같이 베드로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처럼 듣는 사람들이 겸손한 사람들입니다. 세우신 종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것이 겸손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하늘나라 천국까지 높여주십니다.

교만한 사람은 복음을 영접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하늘에까지 높아지자 음부까지 낮추십니다. 지옥에 들어가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본체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육신을 입고 땅까지 내려오셨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셔서 지옥까지 낮아지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하늘까지 높이셨습니다. 하나님은 겸손하 자를 높이십니다.

하지만 하늘까지 높아지는 교만한 자는 음부까지 낮아집니다. 지옥까지 낮아집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받은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악을 발견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나의 연약함을 인식해야 합니다. 내가 받은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기억해야합니다. 그러면 겸손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대학자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죄악된 존재인가 발견하였습니다. 자신이 죄인의 우두머리로 알았습니다. 과거에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한 죄를 잊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평생 겸손한 삶을 살았습니다. 예수님은 영접지 않는 자들로 인하여 마음이 상하셨지만 영접하는 자들을 보고 감사 기도하십니다.

 

(겸손한 어린아이들에게 복음을 나타내심)

 

25-26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예수님은 천지의 주재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은 복음을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에게 숨기셨습니다. 스스로 지혜롭고 슬기있다고 하는 교만한 자들에게 복음을 숨기셨습니다. 하늘까지 높아지는 자들에게 숨기셨습니다.

그러나 어린 아이같이 겸손한 자들에게 나타내셨습니다. 어린아이는 땅에까지 낮아지는 자입니다. 어린 아이는 대체로 어른을 신뢰하고 순종합니다.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어린아이는 작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존경의 대상으로 봅니다. 모든 사람이 크게 보입니다.

이렇게 겸손한 자에게 복음을 계시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이 복음은 겸손한 자에게 흘러갑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은 겸손한 자에게 복음을 계시하십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덕목은 첫째도 겸손이고 둘째도 겸손이고 셋째도 겸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권능을 보고, 말씀을 들을 때 부드러운 마음으로 회개해야합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영접해야합니다. 제자들은 어린아이같은 자들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자 그들은 즉시 순종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배우는 삶을 살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복음을 계시하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온전히 알 수 있음)

 

27절을 보십시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은 가장 겸손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에게 모든 것을 계시하셨으므로 예수님만이 아버지를 온전히 아십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계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은 자들만이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을 보아야합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꿈으로도, 이적으로도, 짐승을 통해서도, 사건을 통해서도 하나님을 계시하셨습니다. 그러다 마지막에는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모든 것을 계시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데 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합니다.

때로는 하나님이 지금도 환상과 계시와 이적을 보이지만 우리가 그것에 목말라 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은 예수님으로 충분하지만 덤으로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데 예수님 외에 다른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하는 사람은 이단입니다. 예수님으로 충분하지 않고 마호멧이나 문선명이나 이()회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 수 있다고 하면 이단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

 

28 절을 보십시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다 초청하십니다. 이들은 피곤하고 지친 자들입니다. 먹고 사는 짐, 죄의 짐, 율법의 짐을 지고 살아갑니다. 우리는 불신이 찾아오고 부정적인 생각이 찾아올 때 피곤합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인식일의 율법으로 사람들을 괴롭게 합니다.

어떤 어머니들은 세 명의 자녀를 키우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자녀들이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키면 부모는 힘이 듭니다. 학생들은 취업의 짐이 있습니다. 직장인은 직장의 수고가 있습니다. 병이 있을 때는 먹는 것이 짐입니다. 병이 걸렸을 때는 밥을 약이라고 생각하고 먹어야합니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는데 여러 가지 짐으로 피곤합니다. 가장 무거운 짐은 죄의 짐입니다. 나의 속에 있는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우상숭배하는 죄가 나를 고통스럽게 합니다. 나자신을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하는 것이 나를 고통스럽게 합니다. 불신의 죄를 지으면 염려와 근심으로 마음이 무겁습니다. 교만의 죄가 있으면 스스로 고독하고 마음이 무겁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지은 인간에게 수고하고 얼굴에 땀이 흘려야 땅의 소산을 먹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 나가야 함)

 

예수님은 무거운 짐진 자들을 초청하십니다. 짐을 지고 사는 60억의 인구를 초청하십니다. 이들에게 쉼을 약속합니다.

이들이 쉼을 얻기 위해서는 첫째 예수님께 나가야합니다. 예수님은 내게로 오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 관심을 가지고 예수님을 향하여 가야합니다. 세상적인 데, 인간적인 데로 가지말고 예수님께로 나가야 합니다. 술을 마시거나 겜을 하는데로 나가지 말아야합니다. 예수님께 나가서 예수님께 믿음으로 우리의 죄를 맡겨야합니다. 예수님을 신뢰하고 내가 맡은 책임을 주님께 맡겨야합니다.

하나님은 날마다 우리의 짐을 지시는 분이십니다. 모든 것을 책임져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짐을 지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책임지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의 짐과 생활의 여러 짐을 내려놓아야합니다. 예수님께 나의 건강 가족 장래를 맡겨드려야 합니다.

사람들은 두려움 불안의 짐 허무의 짐이 있습니다. 실패의식 사망권세의 짐이 있습니다.

세월호의 부모들은 자녀들의 죽음으로 마음에 짐이 큽니다. 단원고의 교감 선생님이 윤리 선생입니다. 그는 자신이 잘못된 판단으로 수학여행을 결정하여 학생들을 죽였다고 생각하고 도덕적인 짐을 지고 자살하였습니다.

우리가 이런 모든 짐을 예수님께 맡기면 예수님은 이런 짐을 다 져주십니다. 우리가 죄의 짐이 있을 때는 죄의 짐을 지고 가신 예수님을 믿고 죄를 회개해야합니다. 그러면 죄사함을 받고 우리의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죄에 대한 책임을 내가 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믿음으로 나온 사들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인도하여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 영광의 나라로 인도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멍에를 메어야함)

 

29절을 보십시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예수님께 나아가 예수님께 맡기고 예수님의 멍에를 메야 합니다. 예수님은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합니다. 이스라엘의 멍에는 한 멍에를 두 소가 끌고 갑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멍에를 메십니다.

예수님과 보조를 맞추어 예수님과 함께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야 합니다. 네 명이 레일바이크를 탈 때 한 사람이 열심히 돌리면 다른 사람은 가볍습니다. 우리는 구체적으로 성령을 따라서 성령이 주시는 힘으로 살아야합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십자가를 져야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십자가를 져야합니다. 기도의 십자가를 지고 말씀을 보는 십자가를 져야합니다. 성령에 순종하는 십자가를 져야합니다. 주인이 소를 멍에로 제어하듯이 우리를 제어하시고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내 멍에와 짐은 가볍다고 하셨습니다. 이 멍에는 날개와 같습니다. 날개는 무겁지만 날개가 있어야 날 수 있습니다.

연의 끈과 같습니다. 연의 끈은 구속하는 것 같지만 끈이 연을 자유롭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짐을 지지 않으면 우리에게는 세상적인 멍에가 찾아옵니다. 나 혼자서 멍에를 메어야 합니다. 세상적인 짐을 져야합니다. 이 짐은 더 무겁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예수님의 종이 되어 살아야합니다. 그러면 물고기가 물에서 자유를 얻고 연이 끈을 맬 때 자유를 얻는 것처럼 우리는 예수님의 멍에를 메야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쉼을 얻을 수 있습니다.

 

(겸손하신 예수님을 배워야함)

 

29절을 보십시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우리는 예수님을 배워야합니다. 예수님의 온유와 겸손을 배워야합니다. 예수님의 인격을 배워야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배워야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섬세하게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깊은 관심을 갖고 우리의 작은 일까지도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사람들이 피곤한 이유는 자신의 죄에서 오는 것입니다. 교만하고 혈기가 있으면 스스로 피곤합니다. 나의 교만한 내면이 나를 피곤하게 만듭니다. 나의 교만한 내면은 다른 사람들도 피곤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겸손해야합니다. 온유해야합니다. 우리의 내면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사실 우리가 변화되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하나님이 고난의 광풍을 통하여 우리를 변화시키십니다. 인생채찍과 사람막대기로 우리를 훈련하십니다. 우리는 에수님 안에서 변화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겸손하고 온유하신 예수님을 배울 때 우리는 마음에 진정한 안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

 

30절을 보십시오.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결론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쉼을 얻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의 멍에는 쉽고 가볍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멍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것이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를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사는 것입니다.

반면에 나의 멍에는 나의 욕심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물질적인 욕망과 명예와 정욕을 위해서 사는 삶입니다. 내가 주체가 되어 사는 삶입니다. 이런 삶은 아무리 채워도 피곤합니다. 스스로 멍에를 메므로 피곤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살면 우리는 쉽고 가벼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교만을 회개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믿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예수님을 배우는 생활을 해야합니다. 그러면 쉼을 얻을 것을 믿습니다. 아멘

 

마태복음 11장 강해 2부 쉼을 주시는 예수님

말씀 마태복음 1120-마태복음 1130

요절 마태복음 1128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복음 11장 강해 이부 끝입니다.

찬송가 40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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