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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야고보서 1장 강해 일부 시험을 참는자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5-03-12 00:00:00
조회수 : 4,347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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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1장 강해 일부 시련을 참는 자 너 시험을 당해
말씀 / 야고보서 1장1-야고보서 1장 18
요절 / 야고보서 1장 12

ad47-49년 경에 복음이 전파되고 이신칭의의 교리 가운데 교회가 세워지면서 믿음은 절대시하며 행위는 도외시하였습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았으니 행위는 구원과 상관없는 첨가물로 생각하였습니다. 이런 삶은 영지주의자의 삶입니다. 은혜와 믿음을 잘 모르는 이단들입니다. 야고보는 이들에게 실천적인 삶을 강조하여 올바른 그리스도의 삶을 가르쳤습니다. 외국의 어린이들의 동화 가운데 개미들의 사랑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개미 청년 하나가 길 건너에 사는 개미 아가씨를 사랑했습니다. 어느날 용감하게 큰 길을 건너서 애인을 만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길이 좀 험하고 오래된 아스팔트 길이었기 때문에 제대로 건너갈지 걱정이 된 아버지 개미가 아들 개미에게 아주 기다란 지푸라기 두 개를 등에 업혀 주었습니다. 왜 이것을 가지고 가야 하느냐고 투덜대면서도 아버지의 명이기에 무거운 지푸라기를 등에 업은 청년은 길을 건너갔습니다. 좀 가다보니 아스팔트가 갈라진 틈새가 있었습니다. 그 틈새가 상당히 넓었습니다. 개미에게는 보통 난관이 아닙니다. 깊은 벼랑이 앞에 가로 놓이게 된 것입니다. 절망하고 낙담해서 주저 앉아 버리는 순간 등에 업고 있던 두 개의 지푸라기 기둥이 팽개쳐졌습니다. 그러면서 그것이 틈새 사이에 걸리자 틈새를 건너갈 수 있는 다리가 되었습니다. 무거운 짐이라고만 생각했던 지푸라기 두 개가 만든 구원의 다리를 건너가면서 청년은 아버지 개미에게 감사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비슷한 이야기가 본문에 있습니다. 인생의 시련이 기쁨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본문의 가르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

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가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야고보는 예수님의 형제입니다. 그는 가족을 돌보지 않고 복음역사를 섬기는 예수님을 보고 미쳤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한 후에 예수 그리스도의 동생이라고 소개하지 않고 예수님의 종이라고 소개합니다. 그는 흩어져 있는 열 두 지파에게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스데반의 순교 후에 계속된 박해로 인하여 여러 곳에 흩어진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믿은 후에 많은 시련을 겪고 있었습니다. 야고보는 이들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기쁘게 여겨야할 시련)

2절을 보십시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야고보는 이들에게 시험을 기쁘게 여기라고 권면합니다. 여기서 시험은 NIV성경에 trial로서 시련, 고난의 의미가 있습니다. 이 편지를 쓴 것은 ad47-49년 경입니다. 유대인들로부터 그리스도인들은 종교적인 핍박을 받았습니다. 글라우디오 황제때 기근이 있어 경제적인 시험도 있었습니다. 시련의 때에 세상과 타협하고자 하는 유혹도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축복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시련과 고난도 있습니다. 야고보 선생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시련이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경제위기의 시련도 있고, 동티모르같이 내전의 시련이 있을 수도 있고, 대만과 같이 지진의 시련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실직의 시련, 시험에서 떨어지는 시련, 질병의 시련, 가정핍박의 시련, 교통사고, 화재의 시련. 가정파탄의 시련들이 있습니다. 물질적인 풍요 속에서 시험에 들어 영적 소원을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시련이 오면 절망적인 생각, 슬픈 생각, 두려운 생각, 원망, 불평하는 생각들이 생겨납니다. 시험을 만나면 어떤 사람은 술을 퍼 마시고 사람들과 싸웁니다. 어떤 사람은 전자오락실에 가서 마음에 스트레스를 풀고 옵니다. 아니면 이불을 뒤집어 쓰고 들어 눕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행으로 도피하거나 마약복용으로 현실을 잊어 보고자 합니다. 그러나 야고보는 이런 시련을 만나면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합니다. ‘더할 나위 없는 기쁨으로 여기십시오’(표준새번역)라고 나옵니다. 사도베드로는 시련을 만난 성도들을 인하여 크게 기뻐한다고 말합니다.(벧전 1장3-6) 우리가 어떻게 시련 중에 기뻐할 수 있을까요?

(시련은 인내를 만든다)

3절을 보십시오.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 시련은 인내를 만들어줍니다. 요즘 아이들은 고난이 없이 자라서 인내를 모르고 쉽게 짜증냅니다. 우리는 시련을 참고 견디면 인내력이 생깁니다. 우리는 시련을 참고 견뎌야 합니다. 야고보는 우리의 시련이 믿음의 시련이라고 말합니다. 시련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이 정금같이 순수하고 값지게 빚어진다는 말입니다. 풀무를 통해서 순수한 금이 만들어집니다. 비바람을 통해서 식물은 강해집니다. 루터는 훌륭한 목회자는 기도와 연구와 고난을 통해서 만들어진다고 말했습니다. 시련은 우리를 진실하게 합니다. 춘향이의 이도령에 대한 사랑이 변사또의 시험이 있기 전까지는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별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혹독한 시련 가운데서도 춘향이가 정조를 지키면 그 사랑이 진짜로 인정됩니다. 마찬가지로 시련 가운데서도 믿음을 지키면 그 믿음이 진짜로 판가름 나게 됩니다. 우리의 믿음이 순수해집니다.

(부족함이 없는 인격으로 만듬)

4절을 보십시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면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온전한 인격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이성희 변호사는 89가지 죄목을 쓰고 감옥에 들어갑니다. 그는 히브리서에서 사랑하는 자에게 고난을 주신다는 말씀을 믿고 사랑하기 때문에 주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옥에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의뢰인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의뢰인이 재판의 증인을 서서 마지막에 판결에 무죄가 되고 고소한 사람이 악인이 되었습니다. 보상금도 많이 받아서 나왔습니다. “인내력을 한껏 발휘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조금도 흠잡을 데 없이 완전하고도 원만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공동번역) 시련은 인내력을 주고 인내력은 원만한 인격을 만들어줍니다. 야고보가 여러 가지 시련이 우리를 온전하게 한다고 했을 때 여러 가지는 헬라어로 여러 가지 색깔이란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위대한 걸작품은 색상이 단조롭지 않습니다. 여러 가지 색깔을 조화있게 섞어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미켈란젤로의 천지 창조의 그림을 보면 단색으로 그려져 있지 않습니다. 다양한 색깔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처럼 수많은 시련과 역경과 고통이 엮어져서 우리의 생애가 더욱 영광스럽고 아름답고 풍성한 하나님의 위대한 작품으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위대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은 여러 가지 재료를 쓰시는데 그 재료가 시련입니다. 여러 가지 시련이란 재료를 사용하여 하나님은 우리의 생애에 하나님의 형상을 조각하십니다.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크신 뜻이 시련 속에 담겨져 있습니다. 우리는 시련 중에 포기하면 하나님의 원하시는 위대한 작품이 나올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시련의 때에 우리는 인내함으로 시련을 참고 견뎌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때에 우리는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빚어지게 됩니다. 욥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욥은 많은 시련을 당했습니다. 재산을 날리고 자녀들을 잃고 건강을 잃었습니다. 주위의 모든 친구들이 그를 조롱하고 비웃었습니다. 아내마저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욥기 23:10) 욥은 어떤 시련 속에서라도 자신을 아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치 않았습니다. 친구들까지도 자신의 진심을 몰라도 하나님은 아시고 계심을 믿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정금같이 단련하시는 하나님의 강도 높은 사랑을 믿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사랑을 믿음으로 시련을 참고 견뎠을 때 정금 같은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더 깊은 은혜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시련과 고통을 통하여 가장 값지고 귀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주셨습니다. 고난도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우리나라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며 문학이나 어학이 발전합니다. 임진왜란은 우리나라 말과 문학을 성장시킨 계기입니다. 시련의 때는 인격의 성숙을 이루어야합니다. 경건의 연습을 해야합니다.

(시련의 때 지혜를 구해야함)

5절을 보십시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우리는 시련을 만나면 시련을 물리쳐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야고보 사도는 시험을 극복할 만한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지혜는 지식과 다릅니다. 지식은 정보입니다. 지혜는 많은 정보를 현실의 구체적인 상황에서 적용하는 힘을 말합니다. 우리는 시련을 만날 때 어떻게 받아 들여야하는지? 어떻게 감당해야하는지? 무슨 말을 해야 하는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어떻게 결정해야 하는가? 시련을 받다 시험에 들기 쉽습니다. 많은 지혜가 필요합니다. 양들을 훈련을 주어야 하는지 사랑을 해야 하는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않는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시면 우리는 어떤 시련이라도 뚫고 나갈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우리에게 시련이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시련을 이길 지혜가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솔로몬은 왕이 되었습니다. 아버지 다윗은 성왕으로 훌륭하게 정치를 했습니다. 반면에 솔로몬은 어렸습니다. 솔로몬이 왕위에 오를 때 아직도 반란을 일으켰던 세력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때가 솔로몬은 시련의 때였습니다. 솔로몬은 이때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림으로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의 일천 번제를 받으시고 꿈에 솔로몬에게 나타나셔서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말씀하셨습니다. 솔로몬은 지혜를 주셔서 주의 백성을 재판하고 선악을 분별케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실 뿐만 아니라 부와 영광도 주셨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잠언 전도서를 쓰고 백성을 다스렸습니다. 나는 예전에 교통사고로 뇌진탕이 일어났습니다. 논술반은 다가오는데 건망증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머리는 안전모를 쓴 것처럼 항상 묵직했습니다. 단대병원에서 검사했는데 이상이 없다고 나왔지만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때 일용할 양식 말씀에 지혜를 구하는 솔로몬이 나왔습니다. 하나님께 지혜를 구했을 때 서울대 논술반 전원이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합격하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나에게 교통사고는 하나의 시련이었습니다. 그러나 기도했을 때 하나님은 시련을 극복하는 지혜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한 가지 명심할 점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지혜를 구하라)

6a절을 보십시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우리는 기도할 때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기도하는 것은 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한 맺힌 과부와 같이 하나님 한 분만이 우리의 시련을 해결해 주실 분이라고 생각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절대신뢰하고 기도해야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기도해야 합니다. 만약 하나님이 나의 기도를 안 들어 주시면 나도 하나님을 떠날 것입니다 이런 생각으로 기도하는 자는 두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만약 해주실 수 있으면 해주시고 그렇지 않으면 그만 두십시오. 하는 기도도 두 마음을 품는 기도입니다. 주님의 뜻 안에서 해주실 것을 믿고 울며 매달리는 것입니다. 안해주셔도 감사하고 해주시면 더욱 감사합니다. 라는 태도로 기도해야합니다. 우리는 환난의 때에 하나님께만 매달려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않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환난을 이길 지혜를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차를 탈 때는 운전기사를 신뢰하고 차를 탑니다. 매일 매일 시계를 신뢰하고 바라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지구가 해를 공전하게 하는데 한번도 실수가 없이 정확하게 움직이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카락까지 세신 분이시고 공중에 나는 참새의 생명까지도 보호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정확하신 섭리를 믿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믿고 기도해도 안주실 때가 있습니다. 이때는 하나님의 더욱 선하신 뜻이 있음을 알고 감사해야합니다. 그러면 다른 일에서 그 기도까지 들으사 합하여 선을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의심하지 말라)

6b-8절을 보십시오.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시험에 들면 두 마음을 품기 쉽습니다. 의심하는 자는 두 마음을 품은 자입니다. 이들은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같이 정함이 없는 자입니다. 의심을 품은 사람은 마음이 헷갈려 행동이 불안정합니다.(공동번역) 하나님은 두 마음을 품은 자에게 응답해 주지 않습니다. 변화산 밑에 귀신들린 아이를 둔 아버지는 할 수 있으면 아이를 고쳐달라고 하였습니다. 할 수 없으면 하지 말아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책망하심으로 한 마음을 품기를 원했습니다. 그가 믿음의 고백을 하였을 때 예수님은 아이의 귀신을 쫓아내주셨습니다. 야곱은 형 에서를 만났을 때 살려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두 마음을 품었습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들어주지 않으면 그는 가족을 버리고 스스로의 힘으로 도망가고자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환도뼈를 부러뜨림으로 도망가고자 하는 마음을 꺾으셨습니다. 그에게 한 마음을 품기를 원하였습니다. 그가 죽기 살기로 한 마음을 품고 긍휼을 구하였 때 하나님은 그의 내면에 영생을 주시고 평안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에서의 손에서 그를 건져주셨습니다. 우리는 만약 들어주시지 않는다면 내 힘으로 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한 마음으로 기도해야합니다.

(시련의 때에 자랑할 것)

9-11절에는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그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 야고보는 자랑하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시련을 받을 때는 마음으로 위축되고 자학하기 쉽습니다. 시련 자체만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시련을 당할 때 긍정적인 면을 보고 자랑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해야 합니다. 나를 시련을 받기에 합당한 자로 인정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대우하여 채찍을 주십니다. 우리는 채찍만 보지 말고 나를 하나님의 아들로 대우하시는 것을 보아야합니다. 가난과 질병 실패로 낮아진 사람이 시련을 만났을 경우에는 이를 통해서 영적으로 얼마나 높아졌는지를 자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시련을 통해서 세상에서 가장 귀하신 예수님을 알게 해 주십니다. 바울이 말했듯이 우리는 가난한 자 같으나 부유한 자요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 반면에 부한 형제가 시련을 만난 경우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해야 합니다. 시련을 통해서 바람에 꽃이 시들 듯이 자신의 부가 얼마나 일시적인 것인가?를 깨닫게 되었는가?를 자랑해야 합니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보잘것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며 겸손해야 합니다.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집니다. 이와 같이 부자도 자기 사업에 골몰하는 동안에 자신은 목숨을 잃을 수 있습니다.(공동번역) 시련을 통하여 이런 것을 깨달은 것을 자랑해야합니다. 어쨌든 우리는 시련의 때에 위축되지 말고 긍지와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시련을 참을 것)

12절 을 보십시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시련을 참는 자의 축복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고 믿음으로 극복하는 것입니다. 흔들리지 말고 고난을 견디어 내여 합니다. 견디어내는’이란 말은 ‘인정받은, 믿을 수 있는, 확실한’이라는 의미의 단어입니다. 그의 참됨이 입증되어서’(표준새번역)이라고 나옵니다. 우리는 시련을 참고 견딜 때 진실이 입증됩니다. 시련의 결과는 좋은 것입니다. 생명의 면류관이 있습니다. 생명이 풍성해집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가장 귀하고 값진 면류관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련을 만났을 때 하나님을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시련의 때에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시련을 참고 견뎌야 합니다. 그 후에 주실 하나님의 상급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시련의 때에 욕심을 버릴 것)

13a절을 보십시오.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시험을 받을 때에 우리는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고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시험’이라는 헬라어는‘시련, 유혹’의 의미가 다 있습니다. 13절에서 시험은 temptation으로서 유혹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공동번역에는 유혹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시련을 만나면 많은 사람들이 사단이 주는 유혹에 빠져서 넘어지기 쉽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유혹에 넘어지고 나서 하나님께 책임을 전가시키기 쉽습니다. 예를 들어서 비디오방에 가서 음란 비디오를 보면서 주님 나에게 정욕의 죄를 짓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라고 기도합니다. 아무도 없는 방에 그것도 밤중에 젊은 청춘 남녀가 함께 있으면서 하나님께서 순결을 지켜달라고 기도합니다. 죄에 빠지고는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으셨다고 하나님께 책임을 전가합니다. 시험 기간 중에 자신이 늦게 일어나고 나서 하나님께서 깨어주시지 않았다고 하나님께 원망합니다. 우리는 시험의 때에 이런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합니다.

(욕심이 유혹을 받게 함)

13b-15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하나님은 유혹을 받지도 않으시고 다른 사람을 유혹하지도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유혹을 받는 이유는 욕심에 끌렸기 때문입니다. 여기 욕심에 끌려라는 말은 낚시꾼이 고기를 낚으려고 미끼를 던져 거기에 고기가 걸리면 재빨리 그 고기를 끌어 올리는 것을 말합니다. 사단은 욕심이라는 미끼로 우리를 끌어올릴 기회를 찾는 것입니다. 다음에 미혹이라는 단어는 낚시꾼이 미끼를 던져 꼬이는 것입니다. 미끼는 아름다울수록 좋습니다. 사단은 우리에게 아주 아름다운 미끼로 유혹합니다. 독버섯 독초는 아름답습니다. 우리가 이런 유혹에 빠지는 이유는 욕심 때문입니다. 욕심은 어린 애기처럼 우리 마음 속에서 자라게 됩니다. 욕심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련의 때를 만나면 욕심이 꿈틀대고 밖으로 나옵니다. 욕심이 나오면 유혹에 빠져서 죄를 짓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련을 만날 때 지나친 욕심을 회개해야 합니다. 안일욕 정욕 명예욕 소유욕 식욕 수면욕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에 우리의 정과 욕심이 못박힌 것을 믿어야 합니다. 얼마 전에 파이낸스회사에 많은 사람들이 사기를 당했습니다. 이들은 은행보다 높은 20%의 이율을 주겠다고 유혹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미끼에 걸려 원금마져 날렸습니다. IMF 이후에 많은 사람들이 퇴직금을 날렸습니다. 이들은 단기간에 노력없이 많은 유익을 보고자 한 사람들입니다. 이단에 빠진 사람들도 대부분 이런 유혹에 사람들입니다. 십자가 없이 편하게 신앙생활하고 고난 없이 질병을 고치고 부자되고 복받고자 하는 자들입니다. 시험을 하는 사단도 문제이지만 시험에 빠지는 사람의 욕심도 문제입니다. 우리가 깨끗하고 순수하고 고난을 사랑하면 아무리 사단이 유혹해도 이런 유혹에 빠지지 않습니다.

(욕심은 죄와 사망을 낳는다)

15절을 보십시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시험이 사망을 줍니다. 탐심은 우리의 마음 속에 아기를 임신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기를 잉태하면 아기가 나오듯이 욕심이 시간이 지나면 죄를 짓습니다. 죄는 자라서 사망을 가져옵니다.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들어가는 둘째 사망을 당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련의 때에 지나친 탐욕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자족함을 배워야합니다. 절제함을 배워야합니다. 또한 우리는 이런 시련의 때에 하나님의 사랑을 절대적으로 신뢰해야 합니다.

(시련의 때에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할 것)

16-17절을 보십시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사단은 하나님이 우리를 미워해서 우리를 시련에 빠지게 하는 것처럼 우리를 속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빛들의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각양 좋은 은사와 선물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독생자를 선물로 주시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가장 좋은 선물인 성령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좋으신 분이십니다. 과거에 우리를 사랑하시고 지금은 바뀌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진리의 말씀으로 낳았다)

18절을 보십시오.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하나님은 피조물 중에 성도들로 한 첫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서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습니다. 첫열매는 순서가 아니라 가장 뛰어난 열매라는 뜻입니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도가 너는 내 아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련 속에서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을 확신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징계하시는 것은 우리를 아들로 인정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징계가 없다면 우리는 사생아입니다. 우리는 징계하시면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눈물을 흘리시는 하나님의 눈길을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시련의 때에 하나님의 사랑만 확신할 수 있다면 우리는 어떤 시련이라도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굶고 매맞고 헐벗고 감옥에 갇히고 돌로침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었기 때문에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고백했습니다.

(사랑으로 시련을 극복함)

결론적으로 우리는 여러 가지 시험을 받습니다. 우리는 이 시험을 받을 때 하나님의 사랑을 절대적으로 믿어야 합니다. 우리의 내면이 변화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구해야합니다. 우리는 시험을 참고 견뎌야합니다. 탐욕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시험을 통하여 더 성숙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아멘!
야고보서 1장 강해 일부 시련을 참는 자 너 시험을 당해
말씀 / 야고보서 1장1-야고보서 1장 18
요절 / 야고보서 1장 12
야고보서 1장 강해 일부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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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야고보서] 야고보서 1장 강해 일부 시험을 참는자 오요한 2005-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