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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에베소서 5장 강해 3부 (5:22-33) 그리스도인의 부부윤리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6-08-06 00:00:00
조회수 : 4,370

문제지풀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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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5장 강해 3부 그리스도인의 부부 윤리

말씀 : 에베소서 521-에베소서 533

요절 에베소서 533절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같이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

 

오늘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부부 윤리입니다.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은 안 들어도 되는 말씀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도 총각으로서 이 메시지를 쓰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부부 윤리는 결혼하지 않은 사람도 알아야 합니다. 장차 결혼생활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미리 배울 수 있습니다. 독신자는 결혼한 사람들을 어떻게 도와야하는지 배울 수 있습니다.

조은숙의 우리들의 거듭난 결혼이야기라는 책이 있습니다. 조은숙씨는 서울대에서 가족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교회도 어려서부터 다녔습니다. 가정생활은 서로 싸우며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에 순종하면서 그 가정이 거듭나 행복한 가정이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배우고 아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실제 삶에서 순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우리도 새로운 가정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성령 충만함을 받은 후에 부부 생활에 대해서 말합니다. 우리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부부관계가 바뀝니다. 가정이 천국처럼 바뀝니다.

사도 바울은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말하기 전에 먼저 부부간의 관계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천년 전에 이렇게 보았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견해입니다. 사도 바울은 부부간의 관계가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보다 우선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우리나라도 부모와 자식은 아무리 가까운 관계라도 일촌입니다. 그러나 부부간의 관계는 촌수가 없습니다. 부부는 아주 가까운 존재이므로 헤어지면 남이 됩니다. 부부가 먼저 있고 자식이 태어나는 것이지 자식이 있고 부부가 태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부부가 행복해야 자녀도 행복합니다.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부부가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부모님께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효도도 부부가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부 간의 관계는 부모님께 대한 효도나 자식에 대한 사랑보다 우선적인 것입니다.

직장보다 소중한 것도 부부 간의 관계입니다. 사도 바울은 부부간의 행해야 할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부간의 관계가 노력하지 않으면 하나 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부부간의 관계에 최우선적 순위를 두고 부부간에 하나가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해야합니다)

 

21절을 보십시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우리는 성경에서 아내에게 복종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부의 관계를 말하기 전에 먼저 피차 복종하라고 하십니다. 남편도 아내에게 복종해야하고 아내도 남편의 말에 복종해야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종한다면 남편도 아내에게 복종해야합니다. 남편은 아내의 말을 즉시 들어주어야합니다. 성령 충만함을 받은 사람은 서로 경청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밥먹으라고 하는데 느리적거리면 안 됩니다. 쓰레기 버려달라면 빨리 쓰레기를 버려야 합니다.

 

(먼저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해야합니다.)

 

22절을 보십시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사도 바울은 아내들이여! 하며 먼저 아내에게 명령합니다. 먼저 아내에게 말하는 것은 아내가 문제가 많아서가 아니라 아내가 가정에서 더욱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아버지가 이방인이라도 어머니가 유대인이면 유대인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이방인이면 아버지가 유대인이라도 이방인으로 여깁니다.

우리나라도 아내는 집사람, 안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안방은 남편이 사용한 것이 아니라 아내가 사용하였습니다. 대부분 훌륭한 사람들의 뒤에는 훌륭한 아버지가 있다는 말을 많이 못 들었습니다. 오히려 훌륭한 사람 뒤에는 훌륭한 어머니가 있습니다.

율곡 이이의 뒤에는 신사임당이 있고 어거스틴의 뒤에는 모니카가 있고 사무엘의 뒤에는 한나가 있습니다.

아내들아 이 말씀은 형제들이 은혜를 많이 받는 말씀입니다. 말씀 공부할 때도 형제들이 열을 내며 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도 과거 이 말씀에 은혜 받고 아내에게 많이 순종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형제들은 자매들이 어떻게 하든 신경쓰지 말고 자기의 할 일만 하면 됩니다. 아내에게 하는 말씀을 공부하는 동안에는 형제들은 은혜 안 받아도 됩니다. 잠을 자도 아무 말하지 않겠습니다. 이후에 내가 남편들아 하면 그때 깨어나기를 바랍니다. 자매들이 졸지 말고 깨어서 잘 들어야하는 말씀입니다.

 

(주께 하듯이 복종해야 합니다.)

 

바울은 아내와 남편의 관계를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을 머리로 하여 모인 공동체입니다.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는 명령이나 권위로 형성된 관계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사 희생하심으로 사랑으로 형성된 관계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허물과 연약함을 감당해 주심으로 형성된 관계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이유는 예수님이 매를 때리기 때문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소리를 치시기 때문도 아닙니다. 우리를 향하신 예수님의 사랑이 너무나 크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크신 사랑 때문에 마음으로 예수님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도 이런 관계입니다. 깊은 인격적인 신뢰가운데 맺어진 관계입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범사에 복종하는 것도 하나님 안에서 남편의 사랑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남편이 그렇지 못한 남편도 있습니다.

아내는 이렇게 질문할 수 있습니다. 남편이 그리스도처럼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순종할 필요가 없습니까? 아닙니다. 성경은 남편이 사랑하면 순종하라고 토를 달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만 하나님은 남편에게 아내의 권위를 위임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예수님 같은 남편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남편의 사랑을 신뢰하지 못하지만 남편을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합니다. 남편을 주신 하나님은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희생하신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남편 뒤에서 우리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신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아내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생각하며 순종해야합니다. 진정한 순종은 이렇게 하나님과 깊은 사랑의 관계에서 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순종은 자발적으로 기쁨으로 하는 순종입니다. 그러나 남편이 주님을 떠날 때가 있습니다. 이때는 이혼을 각오하고 남편이 믿음을 갖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몸이 머리에게 하듯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해야합니다)

 

23,24절을 보십시오.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다음으로 사도 바울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머리와 몸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몸은 머리의 방향과 지시에 순종합니다. 몸이 머리에 순종하는 이유는 몸이 머리보다 열등하고 머리가 몸보다 우월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몸 없이 머리가 있을 수 없고 머리 없이 몸만 있을 수 없습니다. 여자 없이 남자가 존재할 수 없고 남자 없이 여자가 존재할 수도 없습니다. 몸이나 머리는 둘 다 소중하고 평등하듯이 아내와 남편은 둘 다 소중하고 평등한 것입니다. 열등감이 있는 사람은 순종하지 못합니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 순종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서로 다른 역할을 하며 몸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순종과 복종을 차별의 관계로 생각하기 때문에 거부 반응을 갖습니다. 순종과 복종은 차별의 관계가 아닌 질서의 관계입니다.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영적 권위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께 순종하였어도 예수님이 하나님보다 열등한 것이 아닙니다. 순종과 복종을 차별의 관계로 생각하는 것은 지위 지향적인 유교적인 사고방식입니다.

목적지향적인 기독교 사고방식은 평등 가운데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예를 서양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목적 지향적인 사회에서는 땅콩 장수가 대통령이 되기도 하고 영화배우가 대통령이 되기도 합니다. 아니면 대학 총장이 정년퇴임한 후에 학교 수위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얼마나 멋있습니까? 그들이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명령과 복종의 관계를 평등의 개념에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남편과 아내는 평등합니다. 그러나 똑같지는 않습니다. 하는 역할이 다릅니다.

여자와 남자는 생리적으로 다를 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다르게 창조되었습니다. 요즘에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그러므로 여자는 하나님이 위임하신 본래적인 남편의 권위를 인정하고 순종해야합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해야 가정에 행복이 있습니다.)

 

요즘의 아내들은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에 대해서 거부 반응을 갖습니다. 그러나 순종이 없는 집안은 질서가 없어서 마치 교통신호등이 없는 거리처럼 여러 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서로 간에 싸움이 많습니다. 가정에 질서가 없습니다. 이런 집안이 이혼율이 많습니다.

어떤 집은 아내가 머리가 되고 남편이 몸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주로 여자의 벌이가 많은 집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하나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이러면 서로의 역할이 뒤바뀌어서 더욱 큰 혼란이 옵니다. 남편도 행복하지 않고 여자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하는 집안이 행복합니다.

눈은 눈의 역할을 하고 귀는 귀의 역할을 해야 몸이 제대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눈이 눈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귀가 눈의 역할을 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남편에게 권위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아내가 알아야 할 일이 있습니다. 자기는 남편이 아니라 아내라는 것입니다. 머리가 아니라 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남자를 먼저 만드시고 그 갈비뼈로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 사이에 질서를 세우셨습니다. 여자가 몸으로서 자신을 발견하고 순종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의 몸에는 불순종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우리의 몸에는 반발심과 반항심이 흐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를 극복하고 순종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순종은 작은 것부터 배우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며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물론 아내가 남편보다 믿음이 더 좋은 가정도 많습니다. 이런 때는 남편이 신앙이 성장하기까지 남편을 위해서 기도하고 기다려야합니다. 아내가 남편이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영적인 동역을 해야합니다.

 

(행복한 아내)

 

과거에 미국에서는 여권 신장에 관심을 갖었습니다. 남편들의 말을 무시하고 아내를 높이며 살았습니다. 그러자 파괴되는 가정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이 행복이라는 새로운 이론이 나오고 있습니다.

미국의 한 여성 작가는 아내가 행복한 가정생활을 위해서는 아내가 남편에게 져 줘야 한다는 내용의 책을 내어놓아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로러 도일의 화제작 항복한 아내(The Surrendered Wife)는 인터넷 서점 아마존 닷컴의 베스트셀러 목록 10위에 오르고 있습니다. 도일씨는 책에서 아내는 여자 전사로서 싸우는 모습을 직장에 두고 오라고 권고합니다. 그는 직장에서는 지휘하고 요구하는 여전사가 통할 수 있지만 가정에서는 남편을 친구이자 성인으로 대하고 남편의 생각과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또 남편과 논쟁하기보다는 기도하고 존중하라고 말합니다. 그 외에도 이 책에서 남편을 통제하거나 비난하지 말고, 남편에게 최종결정권을 위임하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항복해야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순종하는 아내를 높여주십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하면 아내는 인권도 없는 것처럼 생각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오히려 아내를 높여주십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의 본체로서 하나님과 동등하시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예수님을 만왕의 왕이요, 만유의 주로 높여 주셨습니다. 순종하는 것은 낮은 것이 아닙니다. 더욱 성숙한 내면성이 있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명령하고 지시하는 자가 아니라 섬기고 종이 된 자가 가장 높은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과거 우리나라에서 여자와 남자 누가 과연 높았습니까? 대부분은 남자가 명령하고 지시 했으니까 남자가 높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는 겉모습만 보고 속은 보지 못한 것입니다. 대부분 라이프 소감을 들어보면 어머니를 존경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를 존경하고 마음속에 높이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순종하는 자를 높여주시는 성경의 원리대로 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아내가 남편을 높이는 것은 자신이 낮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아내는 예수님이 집에 오신 것처럼 남편을 높여 주고 대해야 합니다. 이는 제가 하는 말이 아니라 성경에서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대전에 배제대ubf를 개척한 최사모님은 이런 순종의 좋은 예를 보였습니다. 초기에 남편인 최 목자님이 변화가 되지 않아서 술 먹고 들어오는 날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군에서 장교출신이요 전남 대학교 학생회장 출신이어서 집에서 명령하고 지시하는 것이 많았습니다. 사모님은 남편을 하나님 안에서 경외하고 순종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죄목자님을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최 목자님이 학생회 인턴 목자로 귀하게 쓰임 받았습니다. 나중에는 중국 선교사로 가정이 쓰임 받았습니다. 최 사모님을 통해서 배제대 개척의 역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세상을 정복하는 것은 남자지만 남자를 정복하는 자는 여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서양 속담에 한 여자가 20년 동안 길러 놓은 남자를 한 여자가 20분 동안에 망가뜨려 놓을 수 있다는 말도 있습니다. 물론 두 여자는 어머니와 아내입니다. 어머니보다 아내의 영향력이 더 크다는 말입니다. 아내는 남편을 훌륭한 사람으로 만들 수도 있고 바보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아내들이 남편에게 복종함으로 남편을 훌륭한 하나님의 종으로 키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남편들은 예수님처럼 아내를 사랑해야합니다)

 

25절을 보십시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이 말씀은 사모님들이 은혜를 받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남편들이 이제 깨어나 졸지 말고 잘 들어야 하는 말씀입니다. 사모님은 잠시 졸아도 됩니다. 모든 남자들은 귀를 종긋 세우고 들으시기 바랍니다.

사도바울은 남편들이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처럼 아내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보다 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교회를 사랑하셨습니까?

 

(남편은 모든 책임을 져야합니다.)

 

첫째, 예수님은 모든 책임을 스스로 지셨습니다. 예수님은 교회의 죄를 자신의 죄로 담당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멸시했습니다. 조롱했습니다. 채찍질하고 구둣발로 차고 침 뱉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모든 죄악을 자신의 죄로 생각하고 참으셨습니다. 인간들의 허물과 연약함과 죄악 됨을 다 담당하셨습니다.

남편은 이처럼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남편이 아내를 대할 때 중요한 것은 아내의 문제를 남의 문제로 생각지 않고 나의 문제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내의 책임으로 생각지 않고 남편의 책임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내가 게으르면 그 게으름을 나의 문제로 생각해야 합니다. 아내가 다른 사람을 연애하면 그것을 나의 문제로 생각해야 합니다. 아내가 순종하지 않으면 그것을 나의 문제로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아내를 위해서 기도하게 되고 아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남편은 아내의 발을 씻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아내의 죄를 용서해야 합니다.

 

(남편은 목숨을 버리는 사랑을 해야합니다)

 

둘째, 예수님은 목숨을 버리는 사랑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선한 목자로서 교회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위하여 최고의 사랑을 하셨습니다. 목숨을 버리셨다는 것은 목숨을 아낌없이 주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목숨뿐만 아니라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권세도 버리셨고 하나님으로서 권세도 버리셨고 명예도 버리셨고 부유함도 버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지만 연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온 천지를 소유하신 부유하신 분이시지만 가난한 말구유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시공의 제한을 받지 않으시는 영이시지만 육을 입고 답답한 몸으로 사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특권을 버리신 것은 교회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남편은 이와 같이 아내를 위해서 희생해야 합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자유를 아내를 위해서 양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남편은 월급을 타서 아내에게 다 주어야 합니다. 자기 주머니를 따로 가지고 있으면 안 됩니다. 아내를 위해서 시간을 투자해야 합니다. 아내에게 명예를 주어야 합니다. 무슨 일이 잘 되면 다 그것을 내조한 아내의 덕으로 돌릴 수 있어야 합니다.

남편은 하나님이 주신 권위로 아내를 종처럼 부려먹어서는 안 됩니다. 아내를 섬기고 책임지는 권위를 가져야합니다. 예수님처럼 헌신하고 희생하고 섬기는 권위입니다. 자신을 위해서 쓰는 권위가 아닌 아내를 위해서 쓰는 권위입니다. 이것이 참된 권위입니다. 사랑은 섬기고 희생할 뿐만 아니라 용서하고 오래 참는 것입니다. 이해심을 갖고 상대방의 말을 들어주는 것입니다.

호세아가 아내 고멜을 사랑했듯이 절대적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호세아는 창녀와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고멜은 결혼하고 얘기를 낳은 후에도 바람을 피웠습니다. 그래도 호세아는 고멜을 절대적으로 사랑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남편은 이처럼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교회를 사랑하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남편의 사랑은 아내를 영광스럽게 합니다)

 

26,27절을 보십시오.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서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시기까지 사랑하신 이유는 우리의 죄악을 씻어 깨끗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더러운 죄인들을 거룩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정욕의 더러운 죄, 우리의 미움의 더러운 죄를 씻어 주셨습니다. 세상에서 부끄러운 우리를 영광스럽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우리는 티나 주름 잡힌 것이 많이 있었습니다. 마음에 상처가 많았습니다. 죄로 인한 상처, 약자로 받는 상처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악을 감당하심으로 우리의 상처를 치료하여 주셨습니다. 이제는 거룩하고 흠이 없는 완전한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할 때 아내는 거룩하고 영광스럽고 완전한 자가 됩니다.

이 세상에 아내는 사랑 받지 못하는 아내와 사랑 받는 아내가 있습니다. 사랑 받지 못하는 아내는 얼굴에 주름살이 많습니다. 얼굴 뿐 아니라 마음에도 근심과 수심이 많고 부족함을 느낍니다. 그러나 사랑 받는 아내는 마음에 만족이 있습니다. 얼굴이 꽃처럼 활짝 피어납니다. 아내의 미용에 가장 좋은 것은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저는 저번에 모친상을 당했을 때 이상한 현상을 보았습니다. 어렸을 때 보았던 동네 아주머니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할머니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어떤 분은 지금 87살인데도 얼굴이 곱고 아름다우셨습니다. 반면에 어떤 분은 지금 76살인데도 얼굴이 쭈구렁 바가지가 되어 있으셨습니다. 저는 무엇이 그것을 그렇게 만들었나 생각해 보았습니다. 여러 요소가 있겠지만 그 할머니들이 남편의 사랑을 받았느냐 받지 못했느냐가 주된 이유임을 발견했습니다. 쭈구렁 바가지 할머니의 남편은 술을 좋아하셨습니다. 알콜 중독자이셨던 것 같습니다. 그분은 술만 드시면 집에 와서 칼을 들고 자신의 아내를 죽여 버리겠다고 쫓아다니고 그 할머니는 도망 다니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바로 밑에 집이었는데 욕설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얼굴이 고운 할머니의 남편은 아내를 끔찍이 위해 주는 분이셨습니다. 항상 온유하시고 인격적으로 대하셨습니다. 저는 그분이 아내에게 경어를 쓰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옛날에 아내에게 경어를 쓰는 것은 보기 힘든 일입니다. 그렇게 사랑을 받은 할머니는 지금도 얼굴이 너무나 예뻤습니다.

 

(남편은 아내를 제 몸처럼 사랑해야합니다)

 

28-33절을 보십시오.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가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라

 

남편은 아내를 제 몸처럼 사랑해야합니다. 배탈이 나면 머리는 몸에게 기도하도록 하고 병원에 가도록 지시합니다. 몸이 피곤하면 머리는 쉬라고 명령합니다. 배 고프면 먹으라고 합니다. 머리는 몸을 함부로 부리지 않습니다. 머리는 몸의 상태를 살펴서 명령을 합니다. 머리는 몸에 해가 되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정신적인 질환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자신이 자신을 미워하여 때리지 않습니다. 아내를 구타하는 남편은 정신병자입니다.

남편은 오히려 자신의 몸을 잘 가꿉니다. 보약도 먹으라 하고 하루 세끼 밥을 꼭 챙겨서 줍니다. 이처럼 남편은 아내를 챙겨 주어야 합니다. 남편은 아내를 자신의 몸의 일부로 생각해야 합니다. 아내를 위해 주는 것이 결국은 자신을 위해 주는 것입니다.

남편은 결혼하면 자신의 몸이 하나 더 늘어나는 것입니다. 남편은 항상 자신만 생각하지 말고 아내까지 생각을 해 주어야 합니다. 아내의 먹을 것 입을 것을 챙겨줄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아내를 공주처럼 대해야 합니다. 그러면 남편은 왕자 대접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저에게 사랑하는 모니카를 동역자로 주셨습니다. 저는 부족함이 많습니다. 그러나 아내가 저의 부족함을 감당해 주었습니다.

저는 이를 인해서 항상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95년에는 제가 이를 알지 못하고 교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를 아내의 탓으로 돌렸습니다. 그때 아주 가정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양평 여름 수양회에서 이것이 얼마나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죄인가 깨닫고 애통하며 회개 하게 도우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후로 가정을 회복시켜 주셨고 그리고 교회의 여러 문제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지금은 섬기는 생활을 배우고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십자가에 섬기는 생활을 배우고 있습니다. 가정의 행복의 샘터가 되고 있습니다. 오요한 주니어 목자가 이번 여름 수양회에서 회장단으로 자원한 것은 나에게는 큰 사건입니다. 반발심이 사라지고 자원하는 마음이 생긴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얼마나 더 살지 모르지만 하나님이 주신 아내를 저의 몸과 같이 사랑하며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가정은 자립적인 모임입니다.)

 

31절을 보십시오.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한 몸이 될지니

 

결혼이란 부모를 떠나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창세기 말씀에 기초하여 결혼의 진리를 가르칩니다.

첫째, 결혼은 자립적인 모임입니다. 결혼은 부모를 떠나는 것입니다. 결혼 전까지는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부모에게 의존하여 살았습니다. 그러나 결혼을 하면서 부모를 떠나서 자립하는 것입니다.

결혼해서까지 부모에게 의존해서는 안 됩니다. 자꾸 부모에게 돈을 달라고 손을 벌려서는 안 됩니다. 정신적으로 의존해서 살아서는 안 됩니다. 양가 부모를 합하여 여섯 사람이 살지 말고 두 사람이 살아야합니다. 가정 내의 문제를 시시콜콜 부모에게 얘기를 해서 시댁과 친정 부모님들이 서로 간섭을 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결혼을 했으면 남편을 중심으로 아내와 상의를 해서 처리할 줄 알아야 합니다. 물론 두 사람의 힘을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 합의 하에 겸손히 도움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의존해서는 안 됩니다.

부모도 자녀가 결혼하면 자신의 품에서 떠나보내야 합니다. 시시콜콜 간섭하지 말아야합니다. 내 자식보다 며느리의 남편이 되게 해야 합니다.

 

(결혼은 연합하는 것입니다.)

 

둘째, 결혼은 연합하는 것입니다. 연합이란 결합과 같이 자신을 상실하고 합하는 것이 아닙니다. 독립된 인격을 가지고 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이에 두고 합하는 것입니다.

미국 정부는 연합정부입니다. 각 주정부는 자치적으로 통치합니다. 그러면서 전체적으로 연합하여 행동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부부는 각자의 독립된 인격이 있습니다. 독립된 인격을 가지고 사명을 감당하는 일,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 일, 그리고 애기를 갖는 일에 연합하여 행동해야합니다.

이렇게 연합을 하려면 신앙이 같아야 하고, 사명이 같아야 합니다. 자녀를 유학시키기 위해서 기러기 아빠로 살지 말아야합니다. 적어도 한달 이상 출장할 때는 부부 동반해야 합나다. 서양에서는 이런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어색한 것이 많습니다. 부부는 각방하지 말고 합방해야합니다. 서로 함께 있다 보면 부부 싸움을 해도 칼로 물베기처럼 자연스럽게 하나가 됩니다. 그러나 몸이 떨어져 있으면 자연히 마음도 떨어지게 됩니다.

 

(부부는 하나가 되어야합니다)

 

셋째, 부부는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님이 하나가 되었듯이 남편과 아내는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는 나뉠 수 없습니다. 부부는 이혼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한 몸도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손이나 발이 병이 날 수도 있고 마비현상이 올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문제가 발생하면 어떻게든지 치료하고자 최선을 다합니다. 머리와 몸을 자르면 죽음입니다.

마찬가지로 이혼하면 영적인 생명을 잃게 됩니다. 하나님이 짝지워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눌 수 없습니다. 다만 그 지체를 그대로 두었을 때 생명이 위험할 경우에는 잘라냅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인 죽음을 전제로 하지 않고 이혼이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가정 교회를 이루어야합니다)

 

32,33절을 보십시오.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같이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

 

바울은 결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결혼의 진리에 대해서 깨달으면서 감탄하고 있습니다. 결혼은 신비스러운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로 깨달으면서 더욱 그렇습니다. 일 더하기 일이 이가 아니라 일이 된다는 것도 신비롭습니다. 무엇보다 가정에서 하나님 나라를 맛볼 수 있다는 것이 더욱 신비롭습니다.

가정은 그리스도가 함께 하시는 하나의 교회입니다. 가정을 통해서 천국의 모형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가 부부간의 관계를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와 같이 맺을 때 부족한 우리가 천국과 같은 가정을 맺을 수 있습니다. 남편은 아내를 자신처럼 사랑할 수 있고 아내는 남편을 존경함으로 순종할 수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아름다운 가정교회를 만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에베소서 5장 강해 3부 그리스도인의 부부 윤리

말씀 : 에베소서 521-에베소서 533

요절 에베소서 533절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같이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

에베소서 5장 강해 삼부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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