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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에베소서4장 강해 1부(4장 1-16)1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5-03-15 00:00:00
조회수 : 6,383

문제지풀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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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4장 강해 일부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에베소서 41-에베소서 413

요절 에베소서 43절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에베소서의 가장 큰 주제는 하나님 안에서 통일되고 하나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2장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막힌 담을 헐고 하나가 되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하나가 되었으면 하나가 된 것을 힘써 지켜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가 되게 하였지만 사단은 끊임없이 분열을 획책합니다. 우리는 이런 사단에 대적하여 하나된 것을 힘써 지켜야 합니다. 하나 되기 위해서 성숙해야합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 됨의 중요성 그리고 하나 되는 방법을 말씀하십니다.

 

(주안에서 갇힌 바울)

 

1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주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전하다가 죄인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잡혀서 로마 감옥에 앉아 있습니다. 그는 주를 위해서 죄수가 되기까지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는 예수님 때문에 핍박받는 것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는 죄수로서 에베소 성도들을 권합니다. 하나가 되라고 권합니다. 이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앞두고 제자들이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한 것과 같습니다. 십자가의 예수님이 유언적으로 하신 기도도 하나가 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통 가운데서 간절히 권하는 것도 하나가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하나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간절한 소망입니다.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라)

 

사도 바울은 에베소 서도들이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행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은 서로 싸우는 것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는 싸우는 것이 옳지 않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님은 하나이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우리 아버지처럼 하나 되어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해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거룩하고 사랑하며 이해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은혜는 절대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어미 복중에서부터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창세전에 부르셨다고 하셨습니다. 야곱을 태 속에서 부르셨습니다. 부르심은 우리의 의지나 행위가 전혀 개입되지 않은 절대적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부르심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부분 하나가 되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이러한 부르심을 영접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결혼한 후에도 하나가 되지 못하고 이혼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부르시고 짝지워 주셨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배우자를 선택했으니 자신이 싫으면 버리겠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나뉘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교회로 성도를 부르셨다고 생각하면 나뉘어지지 않습니다. 자신이 교회를 선택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교회의 분열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부름을 받아서 한 교회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하나가 되어 살다 보면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습니다. 고난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나뉘어져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고난을 참고 견디면 성숙해집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한 지체요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손과 발이 나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눈과 귀가 나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부부가 나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이것이 교회가 나뉠 수 없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이 한 교회로 부르신 것을 사람이 나눌 수 없습니다.

 

(모든 겸손으로 하나되라)

 

2절을 보십시오.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될 수 있습니까?

첫째, 모든 겸손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나누어지는 이유는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교만이란 내가 하나님이 되어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자기보다 남이 못하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무시하면 인격에 상처를 받습니다.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겸손해야 합니다. 겸손은 내가 죄인이 되어 다른 사람을 나보다 더 훌륭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훌륭하게 보이면 서로 간에 마음이 열립니다. 다른 사람의 주장 앞에서 자신의 주장을 포기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존중히 여기고 배려합니다. 그러면 자연히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성도가 하나가 되지 않을 때 겸손하신 예수님을 배우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본체가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지 않으시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사람의 모습으로 오셔서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죄인이 되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과 인간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겸손함을 배워야 합니다.

 

(온유함으로 하나 되라)

 

둘째는 온유함이 있어야 합니다. 온유라는 한자어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마음입니다. 온유는 깨어지고 부서진 마음입니다 힘이 없는 무력한 상태가 아닙니다. 헬라어에서 온유는 말과 같은 야생동물을 길들인 상태를 말합니다. 이와 같이 온유는 우리의 기질을 성령으로 길들인 상태입니다. 온유의 반대는 혈기입니다. 혈기가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줍니다. 혈기가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못합니다. 자신을 드러냅니다. 반면에 온유한 사람은 상처를 싸매 줍니다 온유한 사람은 많은 사람을 품을 수 있습니다. 온유한 사람이 있을 때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모세는 혈기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때 동족을 치는 애굽사람을 쳐서 죽이고 모래에 묻었습니다. 그런 혈기가 있을 때 동족들은 그를 지도자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동족들이 서로 싸울 때 모세가 말리자 그들은 모세를 배척했습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40년간 광야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가 광야에서 40년간의 훈련을 받은 후 그는 지상에서 가장 온유한 자가 되었습니다. 어떤 때는 양들이 모세를 돌로 치고자 하였고 어떤 때는 모세에게 욕설을 퍼붓기도 했습니다. 가장 가까운 형이나 누나가 모세를 비방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온유함으로 혈기를 부리지 않고 이 모든 것을 감당했습니다. 온유한 지도자 모세로 이스라엘은 하나가 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은 마음이 온유하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크리스찬은 모두가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가 되기 위해서 성령의 열매인 온유함을 가져야 합니다.

 

(오래참음으로 용납해야합니다)

 

셋째, 오래참음으로 서로 용납해야 합니다. 사랑은 오래 참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허물과 약점을 오래 참고 감당해 주어야 합니다. 마음에 안 드는 사람에 대해서 그가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믿고 인내심을 가져야 합니다. 내가 죽으며 남을 살게 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변화를 오래 참고 기다려 주어야 합니다. 조급하게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면 항상 문제가 발생합니다. 오래 참지 못하고 지금 변화되기를 요구하기 때문에 싸우고 분열합니다. 우리는 좀더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오래 참는 것은 고통이 따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허물과 죄를 죽기까지 참고 견뎌야합니다. 오래 참는 사랑을 하면 하나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허물을 오래 참고 기다려 주셨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사명의 땅을 떠나서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을 때 아브라함을 짤라 냈다면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갈을 첩으로 맞아들여서 이스마엘을 낳았을 때, 두 번씩이나 아내를 누이라고 속여서 빼앗겼을 때 짤라 냈다면 그는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없었습니다. 길이 참으시는 하나님은 그의 편이 되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믿어 주었습니다. 길이 참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변화시켰습니다. 오래 참음으로 하나님과 아브라함은 하나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허물을 오래 참고 기다려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을 때, 사명을 떠나서 어린양들을 데리고 고기 잡으러 갔을 때 그 곁에 서서 바라보시며 기다려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십자가에서 참아주심으로 베드로는 예수님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오래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공동생활 방에서, 가정에서, 교회에서 오래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목자는 양을 기다리고 양은 목자를 기다리고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속담에 선생님의 똥은 개도 먹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냐면 학생들의 부족한 점을 참고 참다 보면 똥이 영양분이 다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목자의 똥은 양들의 죄을 참느라고 써서 개들이 도망가 버립니다. 우리는 오래 참음으로 용납해야 합니다. 용납하는 것은 관용하는 것입니다. 관용은 넓은 마음으로 다른 사람의 약점까지 포용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겸손, 온유, 오래 참음을 가진 후에 힘써서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평안의 매는 줄로 연결하라)

 

3절을 보십시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먼저, 평안의 매는 줄로 연결해야 합니다. 평안의 매는 줄은 현대어 성경에 서로 평화롭게 사는 것이라고 나옵니다. 이는 하나님과 화해하고 마음의 평안을 누리는 것입니다. 서로 화해하며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능한 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과 화평해야 합니다. 같은 공동체 안에서 화평해야 합니다. 잠시 싸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곧바로 서로 화해하고 마음에 맺힌 것을 풀어야 합니다. 우리는 trouble maker가 되기보다 peace maker가 되고자 힘을 써야 합니다.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다음으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야 합니다. 우리는 돈을 버는 데 힘을 씁니다. 전도하는데 힘을 씁니다. 학과 공부를 갇당하는 데 힘을 씁니다. 그러나 하나 되는 데 힘을 쓰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모든 것보다 하나 되는 것을 더욱 힘써야 합니다. 하나 되어야 다른 모든 것이 온전해 질 수 있습니다. 힘을 써서 노력하지 않으면 하나 될 수 없습니다. 사단은 교회 구성원이 하나로 뭉쳐 있는 것을 가장 싫어합니다. 그래서 어떤 이유로든지 분열하도록 책동합니다. 현재 우리나라에도 많은 교단과 교파가 있습니다. 장로교에서도 다시 수 많은 교파로 나뉘어 집니다. 물론 이들은 약간의 색깔이 다릅니다. 그러나 그들이 서로의 다양성을 인정했다면 하나 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나누어진 것은 은혜롭지 못합니다. 이는 한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교회가 목사파와 장로파로 나누어서 싸운다면 은혜롭지 못합니다. 사단은 틈만 나면 서로의 관계를 이간질시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가 되기 위해 힘을 써야 합니다. 하나 될 때 성령께서 일하십니다. 우리나라 속담에도 가화만사성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가족이 화목해야 모든 일이 잘 됩니다. 교회가 하나 되어야 성령께서 역사 하시고 양들이 몰려옵니다. 천국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에 120명의 성도들이 하나가 되어서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그때 큰 성령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어느 모임이든 하나가 되고 화기애애하고 은혜가 넘치고 사랑이 있는 모임에는 성령의 역사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가 되기 위해서 힘을 써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가 되기 위해 인간적인 야심을 버려야 합니다. 인간을 중심으로 하기보다 성령을 중심으로 해야 합니다.

 

(하나 되어야 하는 이유)

 

4절에서 6절에는 하나가 되어야 할 필연적인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몸이 하나라는 말씀은 우리 교회가 한 몸 예수님의 지체라는 말입니다. 한 몸이 나누어질 수 없듯이 우리는 나누어 질 수 없습니다.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며 우리 속에 계시는 성령도 하나이십니다. 우리에게 다양한 은사를 주신 성령님도 한분이십니다. 부르심을 받은 우리의 소망도 하나입니다. 우리는 하늘나라의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죽은 후에 하늘나라에서 만나게 되어 한 곳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땅 위에서 왜 나뉘어져야합니까?

우리는 한 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님을 왕으로 믿습니다. 우리의 믿음도 하나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했을 때 그 믿음의 본질은 똑같습니다. 모두가 마음으로 예수님이 주되심을 믿고 입으로 그리스도를 시인하여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받은 세례도 하나입니다. 우리는 한 분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도 한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만유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만유 위에 계시는 창조자이십니다. 하나님은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를 통치하시는 왕이십니다. 우리는 만유를 창조하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 안에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요약하면 우리가 믿는 성부, 성자, 성령이 모두 한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가 될 이유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현실에서 나뉘어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다양성을 인정하라)

 

사람들이 본질적인 문제보다도 부차적인 문제에 매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다른 점이 많습니다. 하나님은 지혜가 많으시고 조화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을 다양하게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성이나 피부색 나라 민족 키 성격 기질 의식주 모든 것이 다릅니다. 자라 온 환경과 역사가 다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짠 음식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싱거운 음식을 좋아합니다. 우리는 이런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다름 속에서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 외에 이런 것까지 하나로 통일 시켜서는 안 됩니다. 옷 입는 것, 머리 스타일, 신발 신는 것을 하나로 만드는 것은 획일적인 것이지 하나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가 되고자 하는 것은 다양성 속에서 조화를 이루는 것이지 획일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가능한 한 이런 다른 것에서 관대해야 합니다.

성도의 공동체는 다양한 은사를 가진 사람이 존재합니다. 만일 교회가 한 직분으로만 이루어졌다면 어떠하겠습니까? 전부가 특송을 부르면 누가 노래를 듣겠습니까? 전부가 메시지를 전하면 특송은 누가 합니까? 어떤 사람은 기도의 은사가 있고 어떤 사람은 말씀의 은사가 있고 어떤 사람은 찬양의 은사가 있고 어떤 사람은 섬김의 은사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다양성을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심)

 

7절을 보십시오.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운혜를 주셨나니"

 

그리스도께서는 각 사람에게 선물을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풍성한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리스도는 분량대로 은사를 주셨습니다. 우리의 그릇의 크기만큼 축복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주신 은사를 남과 비교하여서는 안 됩니다. 남의 떡이 커 보인다고 다른 사람의 은사를 시기하거나 부러워하고 자신에게 주신 은사에 대해서 열등감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투수 박찬호가 바둑 기사 이창호를 부러워할 것도 없고 열등감을 갖을 것도 없는 것과 같습니다. 굼벵이는 구르는 재주가 있고 번데기는 주름 잡는 재주가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에게 주신 은사에 대해서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은사에 대해서도 감사하고 존경심을 가져야 합니다.

 

(승천하실 때 은사를 주시다)

 

8-10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아랫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케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께서는 하늘로 승천하실 때 우리에게 은사를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에 오르시기 위해서 이 땅에 내려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여 인간의 몸으로 내려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하늘에 오르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죄와 사단에 매인 자를 사로잡으시고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단으로부터 여러 가지 노획물을 획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에 오르시며 그 노획물을 인간들에게 은사로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십자가와 부활에 근거하여 우리에게 풍성한 은사를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에 오르셔서 인간에게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성령은 가장 큰 선물입니다. 하나님은 말세에 모든 육체에게 성령을 충만히 부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 성령님께서 인간들에게 다양한 은사를 주십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야한다)

 

11,12절을 보십시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은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와 교사를 선물을 주셨습니다. 사도는 예수님을 보고 체험하고 예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예수님의 전권대사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자요, 예수님이 표적으로 함께 하는 자입니다. 선지자는 말씀에 기초하여 미래의 방향을 잡는 사람입니다. 복음은 전하는 자는 이방 땅에 살며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를 말합니다. 목사는 목장을 통치하고 관리하는 사람입니다. 교사는 성경을 가르치는 성경선생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직분을 주신 목적은 직분을 통해서 권위를 높여 주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직분은 계급이 아닙니다. 어떤 교회는 교인 수에 비하여 장로나 집사의 수가 많다고 합니다. 이는 직분을 주지 않으면 목사에게 반발하고 나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직분을 계급으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목자나 목동의 직분도 계급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직분을 주신 이유가 성도들로 온전케 하여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성도들이 교회를 잘 세우도록 돕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직분은 양들을 제자로 세우라고 주신 것입니다. 제자들이 몸된 교회를 온전케 하는 일을 도우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힘써 나의 직분으로 양들을 제자로 세우는 일을 힘써 해야 합니다. 직분이 클수록 십자가도 더욱 큰 것입니다. 직분을 맡은 사람들이 권위를 부리고자 하지 아니하고 섬기고자 할 때 그 모임은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바울은 마지막으로 우리가 하나가 되기 위해서 인격의 성숙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사랑 안에서 성장해야 함)

 

13-15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사도 바울은 어린 아이와 장성한 사람으로 나누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교회도 어린아이와 같은 교회가 있고 장성한 사람과 같은 교회가 있습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교회는 궤술과 간사함이 있는 교회입니다. 궤술은 사람을 속이는 술책입니다. 간사함을 겉 다르고 속다른 모습입니다. 이런 모습은 정치판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정치판의 복사판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어린 신앙의 교회는 이런 거짓된 교훈의 풍조에 따라서 요동하는 교회입니다. 거짓말을 분별하지 못하고 거짓을 진실처럼 생각하고 흔들리는 교회가 어린 신앙의 교회입니다.

교회 초기에 어린 아이 같은 모습을 가질 수 있습니다. 어린이는 세월이 흘러 만 19세가 되면 성인이 됩니다. 성인이 되었는데도 어린 아이 같은 모습을 하면 미숙아입니다. 몸은 컸는데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 같으면 지진아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도 성숙해야 합니다.

성숙한 교회는 어떤 교회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교회입니다. 모두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신앙을 고백하는 교회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하나 된 교회입니다.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는 교회입니다. 성숙한 교회는 사랑이 있는 교회입니다. 성숙한 교회는 진실한 교회입니다. 신뢰가 있는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사랑하는 교회입니다. 성숙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이 충만한 교회입니다. 진리의 말씀이 있고 진실한 교회입니다. 서로 섬기고 순종하는 교회입니다.

우리는 성장하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성장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에까지 성장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진실에까지 성장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거룩함에까지 성장해야합니다. 성도들이 사랑과 진실함과 거룩함이 있는 모습으로 끊임없이 성숙할 때 교회는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라야합니다. 우리는 가정이나 교회나 직장이나 학교에서 예수님에게까지 자라야합니다 우리는 생각과 말과 행동에서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야합니다. 그리스도의 겸손과 섬김까지 성장해야합니다. 그래야 교회가 하나 되는 데 무리가 없습니다.

 

(하나된 교회의 모습)

 

16절에서 사도 바울은 교회의 하나된 아름다운 모습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우리 교인들은 몸의 지체입니다. 지체들은 서로 도와주고 서로 합하여 하나가 됩니다. 각 지체는 지체가 맡은 일을 합니다. 그래서 한 몸이 성장하고 일을 하게 합니다. 각 지체는 서로 깊이 사랑하는 관계입니다. 이는 하나된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밥을 먹을 경우 각 지체는 어떻게 합니까? 엉덩이와 척추는 몸을 지탱하여 줍니다. 코는 냄새를 맡아서 미각을 도와주고 눈은 어떤 음식이 맛있게 생겼는지를 보아주고 손은 날라주고 이는 씹어 주고 혀는 맛을 느끼며 넘기는 것을 도와줍니다. 그러면 식도의 도움을 얻어서 소화기관은 각자 맡은 일을 소화시키고 피는 이를 영양분으로 나누어서 각 기관에 공급해 줍니다. 이는 참으로 신비로운 합심 동역입니다. 몸의 어느 한 부분도 놀고먹는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어디 발에 가시라도 박혀 보십시오. 온 지체가 그 가시를 빼내기 위해서 총동원 됩니다. 눈은 가시를 찾고 발은 가시를 빼낼 때 쓰는 족집개를 찾기 위해 분주히 움직입니다. 손가락은 그 가시를 빼는 일을 실제로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머리의 지시를 받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이와 같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지시를 받아 서로 동역해야합니다. 우리가 감사제를 섬기려면 여러 사람의 동역이 필요합니다. 어떤 사람은 회장단, 말씀 섬기는 사람, 워십과 찬양을 섬기는 사람, 운전을 하는 사람, 양들을 돕고 심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각자가 자기 일을 하되 머리 되신 예수님의 방향을 따라서 일사분란하게 움직였습니다. 그때 아름다움 감사제가 준비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을 중심으로 지체 의식을 갖고 서로 사랑하고 합심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결론 하나 되기 위하여)

 

우리가 함께 교회 생활을 하다 보면 교회에는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또한 함께 살기 어려운 문제도 봉착합니다. 우리는 이때 하나 되지 못하는 원인을 모임이나 남에게서 찾습니다. 그러나 하나 되지 못하는 원인은 나의 내면에 죄에 있습니다. 나의 교만 혈기 조급함 이기심 그리고 자기중심성에 있습니다. 나의 미숙함에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내면의 죄를 회개할 때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교회의 주인을 예수님으로 모실 때 하나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라야 하나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야 합니다. 그때 우리 모임을 크게 축복하시고 쓰실 것을 믿습니다. 아멘!

에베소서 4장 강해 일부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에베소서 41-에베소서 413

요절 에베소서 43절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에베소서 4장 강해 일부 끝입니다.

 

2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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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에베소서] 에베소서 3장 강해 일부(1-13) 1그리스도의 비밀 오요한 2012-06-21
14 [에베소서] 에베소서 5장 강해 3부 (5:22-33) 그리스도인의 부부윤리 오요한 2006-08-06
13 [에베소서] 에베소서 6장 강해 1부(6:1-9) 가정과 직장 윤리 오요한 2006-07-22
12 [에베소서] 에베소서6장 강해 3부(6:18-24) 무시로 기도하라 오요한 2005-03-15
11 [에베소서] 에베소서6장 강해 2부(6장 10-17 ) 우리의 씨름 오요한 2005-03-15
10 [에베소서] 에베소서5장 강해 2부(5:15-21 ) 세월을 아끼라 오요한 2005-03-15
9 [에베소서] 에베소서5장 강해 1부(5장 1-14) 빛의 자녀들처럼 생활하라 오요한 2005-03-15
8 [에베소서] 에베소서4장 강해 2부(4:17-32) 그리스도 안에서 새생활 오요한 2005-03-15
7 [에베소서] 에베소서4장 강해 1부(4장 1-16)1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오요한 2005-03-15
6 [에베소서] 에베소서3장 강해 2부(3:14-21)1 그리스도의 사랑 오요한 2005-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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