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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에베소서5장 강해 1부(5장 1-14) 빛의 자녀들처럼 생활하라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5-03-15 00:00:00
조회수 : 8,039

문제지풀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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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5장 강해 일부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말씀 에베소서 51-에베소서 514

요절 에베소서 58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8)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에게 주는 것 없이 바라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그들이 소박하게 바라는 두 가지를 들자면 첫째, 서로 싸우고 비판하고 분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기 원합니다. 둘째, 깨끗하며 진실하며 거룩한 모습을 보여 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위선적인 모습을 보일 때 싫어지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그렇게 원해서가 아니라 성경이 그렇게 살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에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는 그리스도인의 두 가지 생활 원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첫째는 사랑으로 행하라는 것이고 둘째는 진실하게 행하라는 것입니다.

 

(사랑가운데 행하라)

 

1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사회 생활의 대전제가 되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 윤리의 첫째는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을 본받아야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아 사랑 가운데 행해야합니다.

사랑은 기독교 윤리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사랑이시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사랑이 없는 모임은 엄밀히 기독교의 모임이 아닙니다. 사랑이 없는 곳에는 하나님도 계시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부수적인 세칙에 충실하다 보니 가장 중요한 사랑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십일조도 잘 내고 안식일도 철저히 지키는데 사랑이 없습니다. 마음은 메말라 있습니다. 날카롭고 비판적입니다. 이런 자들을 바리새인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런 사랑 없는 신앙을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모임에는 사랑이 충만한 모임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사랑 가운데서 행할 수 있습니까?

 

(사랑을 받으라)

 

일반적으로 사랑을 받은 사람이 사랑을 할 줄 안다고 합니다. 가정에서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사람은 구김살이 없이 자라서 밝고 건강합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할 줄 압니다. 그러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사람은 어딘가 생각이 삐뚤어져 있고 병들어 있습니다. 지존파, 막가파 이들의 대부분은 결손 가정에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라난 사람들입니다. 이차세계대전을 일으켜 많은 사람을 죽게한 히틀러의 내면 문제는 여러 문제가 있지만 사랑을 받지 못한 것도 큰 문제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하기 위해서 사랑을 받아야합니다. 사랑을 하는 첫번째 비결은 사랑을 받을 줄 아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누구로부터 사랑을 받았습니까?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라)

 

2절을 보십시오.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사랑의 증거로 자신의 외아들까지 내어 놓으셨습니다. 또 한분이 계십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자신의 목숨까지 희생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에 대한 책임을 다 져주셨습니다. 우리의 죄에 대한 책임을 지시기 위해서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이 되었습니다.

구약에서는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양과 염소와 황소를 죽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제는 양과 염소와 황소가 되셨습니다. 제물을 죽여서 피를 흘리듯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피와 물을 다 쏟으셨습니다. 제사를 드릴 때는 제물을 태워서 향기로운 제물로 하나님께 올려드립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목숨을 십자가에서 향기로운 제물로 온전히 하나님께 태워드리셨습니다. 예수님은 목숨을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목숨을 희생하는 것보다 더욱 큰 사랑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서 사랑을 실천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랑을 영접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깊은 마음 속에서 사랑이 샘이 솟아납니다.

또한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이 보내주신 주위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습니다. 어머니는 나를 열 달 동안 뱃속에서 키워 주셨고 태어난 후에 똥오즘 받아가며 키워 주셨습니다. 나는 부모님의 사랑을 받지 않고 자랐다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리고 자라나면서도 사회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밥을 먹기 위해서는 땀 흘린 농부들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옷을 따뜻하게 입고 지내기 위해서는 공장에서 수고한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랑을 감사해야합니다.

또한 목자들의 사랑이 없이 내가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고 마음 아파하시고 사랑을 해주신 목자님들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제자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랑을 받은 자입니다. 이런 사랑을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사랑은 받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랑을 받을 줄 아는 사람은 똑같은 사랑을 받았는데도 그 큰 사랑을 마음으로 느끼는 사람입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으로부터 12제자와 똑같이 사랑을 받았지만 자신이 가장 사랑을 많이 받았다고 항상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가룟유다는 똑같은 사랑을 받으면서도 자신은 항상 찍혔다고 생각했습니다. 부모가 똑같이 자녀를 사랑하는 데도 어떤 자녀는 부모님이 나를 가장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자녀는 항상 섭섭한 마음을 품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을 받을 줄 알아야 합니다.

 

(내가 받은 사랑)

 

저는 이 메시지를 쓰며 제가 받은 사랑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저는 무엇보다 현재 캐나다에 있는 한안드레 선교사님의 사랑을 잊을 수 없습니다. 어느날 겨울 수양회가 있었는데 저는 등록금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안드레 선교사님은 자신이 차고 있는 시계를 전당포에 맡기고 저의 수양회 등록금을 대어 주셨습니다. 저는 그 후에 제가 그 시계를 찾은 기억이 없습니다. 그 수양회에서 저는 이사야서 49장 말씀을 통해서 나를 세계적이 말씀의 종으로 쓰실 소망이 가득했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일년 동안 양식을 메모하는데 매일 거의 2시간 이상을 투자했습니다.

저는 지금 한양센타에 있는 구모세 목자님의 섬김을 잊을 수 없습니다. 저는 그분이 가르쳐 주신 창세기 일장 일절 말씀으로 태어나서 처음으로 말씀의 은혜를 깊게 받고 신앙을 출발했습니다. 그렇게 저를 고통스럽게 하던 인생의 무의미 허무에서 구원을 받았고 분명한 인생의 목적을 찾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구모세 목자님은 세숫대야에 물을 떠와서 저의 발을 닦아 주셨습니다. 그때 목자님은 눈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셨지요. 그만큼 제가 목자님의 속을 썩여드렸습니다. 그러나 목자님은 그것을 다 감당해 주셨습니다.

저는 지금 시에틀에 있는 이여호수야 선교사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분은 제게 남을 비판하는 것이 얼마나 나쁜가를 가르쳐주셨습니다. 저는 당시에 침체된 역사를 보며 목자님들을 비판하기에 열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이여호수아 목자님은 매일 새벽 기도하시고 믿음으로 도전하여 성령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제가 목자님들을 판단하는 것이 죄라는 것을 이여호수아 목자님은 저에게 한번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목자님의 생활을 보면서 그것이 죄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중국에 계신 서베드로 선교사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목자님은 여름에 단 한 벌 가지고 있는 메시지 전할 때 입는 옷을 저를 주셨습니다. 저 때문에 목자 수양회에서도 우셨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서베드로 목자님은 제가 목자 직이 내 능력에 맞지 않는다고 사표낸다고 했을 때 저를 믿어주시고 다시 도전해 보도록 말씀하셨습니다. 당시에 저를 믿어준 사람은 서베드로 선교사님 한 분뿐이 없었습니다.

독일 부레멘에 계신 황마리아 선교사님 저를 위해 많이 기도해 주셨습니다. 저는 당시에 자살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목자님의 기도로 저는 죄사함을 받고 거듭나고 자살을 포기했습니다. 그 은혜를 어떻게 다 갚을 수 없습니다.

대전의 홍보나 목자님의 사랑을 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인본주의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자였습니다. 그런 저를 해산의 수고를 해주신 분은 바로 홍보나 목자님이셨습니다. 28살이요. 양도 없고 병들고 실직자였던 저는 보나 목자님을 통해서 복음적인 신앙을 배웠습니다. 보나 목자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학원 직장을 잡았습니다. 천안의 생명의 역사가 시작될 수 있었습니다. 목자님 없이 저와 천안의 현재 모습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인천의 우다윗 목자님의 사랑을 잊을 수 없습니다. 대학 2학년 때 저는 다른 동기들은 다 목자로 불러주는 데 저만 형제로 부른다고 화를 내고 누워 있었습니다. 그때 저를 이해하시고 돌봐주신 분은 우다윗 목자님이시었습니다. 천안의 개척 때 일 년 동안이나 오래 참고 기도와 물질로 지원해 주신 목자님의 사랑을 감사합니다. 항상 큰 형님처럼 저를 옆에서 사랑으로 섬겨 주신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대전의 김 아브라함 목자님은 제가 대전 갈 때마다 몇 년 동안이나 아이들을 한 방에 몰아서 자게 하시고 저를 위해 따로 방을 내어주시고 사랑해 주신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사라 사모님이 맛있는 음식으로 항상 섬겨 주신 사랑을 감사드립니다. 사라 사모님은 연세중앙교회의 윤석전 목사님의 절대적인 기도생활이란 책을 추천해 주셨습니다. 그 책을 읽은 때부터 저는 지금까지 새벽기도를 쉬지 않고 하고 있습니다.

저는 저의 동역자 모니카 사모님께 감사합니다. 저는 결혼 전에 모니카 목자에게 나는 애기를 못 날 수도 있는데 나와 결혼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모니카 목자님은 나에게 그래도 좋다고 했습니다.

무엇보다 나를 사랑해주신 아버지 어머니를 잊을 수 없습니다. 저를 그렇게 희생적이고 일방적으로 사랑해 주셨습니다. 또 돌봐주신 형님과 형수들의 사랑을 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정말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랑은 모두가 예수님 사랑의 그림자입니다. 예수님은 저를 위해 목숨을 버리기까지 주시며 사랑해 주셨습니다. 제가 이렇게 사랑을 많이 받은 자로서 더욱 힘써 주님의 양들을 사랑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인천 센터의 황제임스 목자를 통해서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는 철의 장막이었던 러시아에 최초로 개척의 깃발을 꽂았던 분입니다. 또 한국에서 최초로 모스코바 대학의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참으로 예수님을 사랑하고 캠퍼스 양들을 사랑합니다. 그는 캠퍼스 양들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박사 학위를 버렸습니다. 그는 양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삼성의 대기업의 과장 자리를 버렸습니다. 그는 양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5,000만원의 연봉 스카웃을 버리고 가난한 UBF Full-Time목자의 길을 택했습니다. 그는 좋은 아파트에서 살 수 있지만 이것을 버리고 교회 공동생활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사랑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버리고 희생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우리도 사랑 받은 것을 기억하고 사랑을 행하는 자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탐욕을 피하라)

 

3절에는 우리가 피해야 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음행과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

 

사랑하는 사람은 죄를 피합니다. 음행과 더러운 것과 탐욕은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아야합니다.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각하는 것을 말하고 말하는 것을 행동으로 옮깁니다. 음행은 성희롱, 성폭행, 원조교제 묻지마관광과 같은 음란한 행동입니다. 더러운 것은 음란 문화로 잡지나 소설이나 비디오나 컴퓨터나 만화와 같은 것을 음란한 것을 보고 즐기는 것입니다. 탐욕은 성적인 것을 지나치게 탐닉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의 수호신인 아데미는 풍요의 여신이었는데 이를 숭배한 후에는 보통 성적 향연이 수반되었습니다. 그래서 음행은 하나의 문화로서 만연되어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대화는 음담패설로 가득찼으며 성적 쾌락을 추구하는 것을 인간의 자연스런 본능으로 생각하고 조금도 죄악시하지 않았습니다. 당시는 성도덕이 문란하여 신뢰할 만한 처녀를 찾기가 힘들 정도였습니다.

우리도 음란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온갖 더러운 것에서 우리의 눈과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의 눈과 마음은 우리가 보고 듣고 체험하는 것에서 강한 영향력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날마다 음란한 사진과 글과 행위를 접하고 살면 우리의 머리 속엔 온갖 더러운 것들로 가득 차게 됩니다. 그러면 그런 생각들의 포로가 되어서 지나가는 사람을 보아도 그런 눈으로 보게 되고 꿈을 꿔도 그런 꿈만 꾸게 됩니다. 정욕의 포로가 되어서 귀중한 청춘을 허송세월 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런 것에서 우리 자신을 의도적으로 멀리해야 합니다. 인터넷을 하더라도 음란한 사이트에 절대로 들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음란 사이트들이 우리 영혼에 끼치는 해악은 너무나 큽니다. 한 번 머리 속에 입력된 장면들은 잘 지워지지 않으며, 중독성 때문에 하루라도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게 됩니다. 서점이나 은행에 가서 질 낮은 여성 잡지나 자극적인 책들을 뒤적거리는 것도 삼가 해야 합니다. 영화를 보거나 TV를 보더라도 가능하면 미성년자 관람불가라고 표시되어 있는 것은 보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우리는 그런 것을 볼 수 있는 자격이 있지만 그런 것들은 대부분 우리의 정욕을 자극시키기 때문에 일부러 절제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더러운 것을 자주 접해 봐야 그런 것을 이길 면역성이 생긴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 말은 틀린 말입니다. 더러운 것은 마약과 같아서 자주 접하면 더 자극적인 것을 찾는 중독성이 있습니다. 결국 자신이 폐인이 될 때까지 절제할 수 없게 됩니다. 이런 음란한 것을 즐기면 더러운 악령이 우리의 심령에 역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예 이런 것들로부터 자신을 격리시키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감사하는 말을 하라)

 

4절에는 우리가 피해야 할 말과 해야 할 말이 나옵니다. 4절을 보십시오.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

 

누추한 말은 더럽고 지저분한 음담패설을 의미합니다. 음담패설은 호기심을 자극하여 퍼져 나갑니다. 어리석은 말은 하나님을 부정하는 불신의 말을 의미합니다. 부정적인 말들입니다. 부정적인 사람은 항상 부정적인 면만 봅니다. 컵에 물이 반만 있으면 반밖에 없다고 말을 하고 98% 일을 하면 전부를 하지 못했다고 자탄합니다. 이런 부정적인 말은 다른 사람의 힘을 빼놓습니다. 무기력하게 합니다. 희롱의 말은 다른 사람을 인격적으로 무시하는 조롱의 말입니다. 남을 비판하는 말입니다. 이는 교만한 말입니다. 이런 말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말입니다. 이는 말로 살인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말 대신 감사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감사하는 말을 하면 듣는 상대방이나 제 삼자도 듣기가 좋습니다. TV 프로 칭찬합시다. 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도 감사하는 말을 하기 때문입니다. 뿐만아니라 감사하는 말을 하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얻지 못한다)

 

5절에서는 음행과 더러운 것과 탐욕을 가진 자와 교제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나옵니다. "너희도 이것을 정녕히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음행하고 더럽고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하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죄를 짓는 자는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죄악을 절대적으로 피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손이 범죄케 하면 찍어버리고 눈이 범죄치 않게 하면 뽑아버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죄와 타협하지 말고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합니다.

 

(인본주의자의 말에 속지 말아야 한다)

 

6,7절을 보십시오.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를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그러므로 저희와 함께 참예하는 자가 되지 말라

 

이들은 갖은 허황된 말로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합니다. 그들의 말은 근거없이 포장된 말들입니다. 성욕은 인간의 본능이다 야동을 보고 자위행위를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들의 말에 속지 말아야합니다. 그리고 이런 자들과 깊은 교제도 갖지 말아야합니다. 이런 자들과 교제하면 물들어 버립니다. 그들의 행동에 참여하는 자가 되지 말아야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됩니다.

 

(빛의 자녀처럼 행하라)

 

8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우리는 달라져야합니다. 우리는 과거 어둠 자체였습니다. 어둠은 사단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사단의 자식이었습니다. 어둠의 자식이었습니다. 어둠의 자식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창녀와 깡패들의 생활을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 우리도 이같이 어둠의 자식이었습니다. 우리는 마음이 어두웠습니다. 삶의 소망이 없고 방향 감각도 없고 분별력도 없고 힘도 없었습니다. 죄악 가운데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집의 커튼을 이중 삼중으로 칩니다. 빛이 들어오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사람 만나기를 싫어하고 자주 우울해 합니다. 폐쇄된 방에 웅크리고 앉아 있습니다. 왜 빛을 싫어합니까? 자기 안에 있는 어둡고 더럽고 냄새 나는 것이 노출될까 두려워서 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빛 되신 예수님을 영접하고 변화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빛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인생의 목적과 방향을 찾았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거룩한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얼굴이 밝아졌고 옷도 밝아졌고 생활이 밝아졌습니다. 빛이 된 우리는 이제 빛된 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제는 빛의 자녀들처럼 행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빛의 자녀처럼 사는 생활은 어떤 생활입니까?

 

(착한 생활을 하라)

 

9절을 보십시오.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사도바울은 빛된 생활을 세 가지 말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성령의 열매를 맺는 자들입니다. 첫째, 빛의 자녀는 착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착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근본적으로 착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문제지 사람 앞에서 문제가 아닙니다. 착하다는 것은 주위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것입니다.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은 희생적인 사람입니다. 이타적인 사람입니다.

요즘은 착하다는 것이 바보같다는 뜻으로 쓰입니다. 이는 시대가 그만큼 악하기 때문입니다. 이기적인 사람은 순간순간 자신이 승리하는 것 같습니다. 적당히 죄를 지으며 사는 사람이 지혜로운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이기적인 사람은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갑니다. 착한 사람이 궁극적으로 승리합니다. 우리는 좀 바보 같아도 희생적이고 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착한 사람은 바나바입니다. 그는 사도 바울과 마가를 데려다가 키운 착한 사람입니다.

 

(의로운 삶을 살아야한다)

 

둘째, 빛의 자녀는 의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의로운 삶은 율법과 신앙 양심을 따라서 사는 삶입니다. 성경 말씀 특히 십계명을 따라서 사는 삶입니다. 성경에는 의로운 삶에 대해서 많이 나옵니다. 특히 신명기를 읽어보면 강자는 약자를 보호는 사람입니다. 가난한 자, 과부, 고아, 나그네를 돌봐 주는 사람이 의로운 사람입니다. 날아오는 새 한 마리까지 귀히 여기는 사람이 의로운 사람입니다. 뇌물을 받지 않고 말이나 저울의 추를 속이지 않는 사람이 의로운 사람입니다. 원수의 짐승이 길을 잃었을 때 그 길을 찾아 주는 사람이 의로운 사람입니다. 살인하지 않고, 도적질하지 않고, 간음하지 않는 사람이 의로운 사람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사람이 의로운 사람입니다.

 

(진실한 삶을 살아야한다)

 

셋째, 진실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빛은 밝습니다. 모든 것을 사람들 앞에 공개합니다. 빛은 곧은 것은 곧다. 굽은 것은 굽다고 말합니다. 진실한 삶은 속의 생각과 겉으로 나타나는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입니다. 진실한 삶은 과거와 현재의 삶에 일관성이 있는 사람입니다. 진실한 삶은 진리 되신 하나님 편에 서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진실할 때 회개할 수 있습니다. 진실해야 순교도 할 수 있습니다. 사단은 거짓됩니다. 거짓된 사람은 사단의 자식입니다 우리는 진실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 나라의 진실 현황)

 

우리나라의 크리스챤 인구가 25%입니다. 국제사회의 부패현황을 감시하는 국제민간기구인 국제투명성기구(TI)의 한국본부로 활동하고 있는 반부패국민연대가 있습니다. 2000914TI가 올해 발표한 국가별 부패지수 순위에서 우리나라가 부패지수 전체 조사대상국 90개국 중 48위를 차지했습니다. 1위 핀란드, 2위 덴마크, 3위 뉴질랜드와 스웨덴입니다. 이는 우리나라가 투명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투명의 반대는 은폐입니다. 사람이 투명하지 못하게 되면 불신을 받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IMF의 원인이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대외신임도가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이중장부를 만들고 비자금을 조성하니 누가 믿을 수 있습니까? 누구를 믿고 돈을 빌려주겠습니까? 누가 이 땅에 사업하러 오겠습니까? 투명은 모든 윤리와 경제와 신학과 신앙의 원초적인 기초입니다. 이 기초가 무너지면 희망이 없습니다. 그래도 미국이 강대국으로 건재하는 것은 정직을 아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정직에 대해 불감증에 걸려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빛의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요?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을 시험하여 보라)

 

10절을 보십시오.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해 보라."

 

시험한다는 것은 보석이 진품인가 아닌가 확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보석을 확인하는 것은 색깔 모양 강도등 여러 가지를 측정하여 결정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어떤 생활인지를 우리는 여러모로 시험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이런 노력을 통해서 우리는 빛된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우리의 모임이 얼마나 크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제자양성을 많이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모임이 얼마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성경대로 사느냐는 것입니다. 얼마나 모범적이 생활을 하느냐는 것입니다. 우리 모임의 캠퍼스 개척의 모델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지금까지 개인적인 삶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부터 바울은 어둠 속에 사는 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자들과 교제하지 말아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이런 자들을 책망해야 합니다.

 

(어둠의 일을 책망하라)

 

11,12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열매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저희의 은밀히 행하는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들이라."

 

이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음란하고 더러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들은 열매 없는 일입니다. 허무한 일들입니다. 죽음과 함께 없어지는 일입니다. 우리는 이런 삶에 참예하지 말아야합니다. 이들은 어둠 속에 숨어서 죄를 짓습니다. 이들의 죄를 책망해야합니다. 그들이 은밀히 행하는 자는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책망한다는 것은 그들의 죄에 대해서 분명히 경고하고 그치도록 하는 것입니다. 죄에 대해서 분노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말하여 듣지 않으면 공개적으로 말하여 책망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들이 죄악을 그치지 않는다면 그들을 공동체에서 쫓아내는 것입니다. 죄에 대해서는 단호해야 합니다. 엘리는 아들들이 음행하는 죄악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책망하지 않고 타이르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면 죄를 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죄인은 사랑할지라도 죄에 대해서는 단호해야 합니다. 책망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죄를 빛에게 드러내라)

 

13,14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이 빛으로 나타나나니 나타타니는 것마다 빛이니라. 그러므로 이르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책망을 하면 숨은 죄가 공개됩니다. 하나님과 모든 사람들 앞에서 드러나게 됩니다. 죄에 대해서 제일 무서운 것은 죄를 은폐하는 것입니다. 숨기는 것입니다. 은폐하면 죄가 자라납니다. 일단 드러나면 아프고 힘들지라도 해결하려는 노력이 시작됩니다. 그러면 죄를 부끄럽게 여기고 회개하게 됩니다.

죄의 잠을 자는 자는 죽은 자입니다. 죄를 책망하면 죄의 잠을 자는 자들이 깨어서 일어나게 됩니다. 죽은 자들이 일어납니다. 이렇게 죄를 회개하면 빛되신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비치십니다. 성령이 임하십니다. 죽은 자들이 살아납니다. 하나님은 치료의 광선을 비추어 주십니다. 우리의 환부를 싸매 주십니다. 그들이 어둠의 자녀에서 빛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다윗은 죄를 숨겼습니다. 그러나 나단이 그 죄를 책망하였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죄를 회개하고 치료받게 되었습니다. 죽어가던 영혼들이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어거스틴은 방탕하게 사생아를 낳고 술과 이단종교에 빠져 지냈습니다. 어머니 모니카는 어그스틴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로마서 1311-14절 말씀으로 책망을 하셨습니다.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데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왔음이라. 밤이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쥐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그는 이 말씀에 기초하여 죄악된 삶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어둠의 자식에서 큰빛 되신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빛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빛의 자녀답게 사랑을 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선하고 의롭고 진실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어둠 속에 있는 자들을 책망하여 빛 가운데로 나오게 해야 합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둔 시대를 비추는 밝은 빛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에베소서 5장 강해 일부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말씀 에베소서 51-에베소서 514

요절 에베소서 58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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