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컨텐츠 바로가기

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에베소서6장 강해 2부(6장 10-17 ) 우리의 씨름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5-03-15 00:00:00
조회수 : 5,645

문제지풀이(3)

    icon1.hwp  (26.50KB)

    icon2.hwp  (29.50KB)

    icon1.hwp  (30.00KB)

에베소서 6장 강해 이부 우리의 씨름

말씀 에베소서 610-에베소서 617

요절 에베소서 612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12)”

 

저는 부여 처고모 댁에 갔다가 설날 천하 장사 씨름을 보았습니다. 올해(2001) 설날 천하장사 씨름 대회에서 염원준이 신봉민을 꺾고 우승했습니다. 원래 과거 전적을 보면 신봉민이 절대적으로 우세했습니다. 염원준은 전국 수준의 씨름대회에서는 한번도 우승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 날도 염원준은 대진 운이 좋아서 한번은 아마추어를 이기고 다른 한번은 상대 선수가 부상으로 기권을 해서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신봉민의 우승을 점쳤습니다. 첫째판을 신봉민이 이길 때만 해도 그 예측이 맞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둘째, 셋째, 넷째 판을 염원준이 내리 이기므로 우승은 염원준에게로 돌아갔습니다. 염원준이 우승한 이유는 자신 만만하게 달려드는 신봉민을 이용하여 공격했기 때문입니다. 염원준은 신봉민의 특기를 연구하여 알고 있었고 그것을 잘 이용하여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많은 싸움과 고통이 있는 것은 그 배후에 사단이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사단의 시험이 더욱 많습니다. 성경에 너희 대적 마귀는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육신을 가지고 이 세상에 살아 있는 한 사단의 시험은 끊일 날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런 적을 알아야 영적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대적은 누구이며 어떻게 이길 수 있는가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군사는 강해야 합니다)

 

10절을 보십시오.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당시에 에베소 성도들은 사도 바울의 투옥으로 의기소침해져 있었습니다. 엄청난 로마 제국의 힘 앞에서 무력해져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들에게 강건하라고 권면합니다. 물론 우리가 싸움을 싸우기 위해서는 육체적으로도 강건해야 합니다.

어떤 분이 그런 말을 하였습니다. 영력, 지력, 체력은 항상 있어야 할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체력이라고 하였습니다. 체력을 잃으면 영력이나 지력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나는 한라산 등반을 하며 나의 체력이 급속이 저하된 것을 보고 새롭게 운동을 해야겠다고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군인들은 끊임없이 체력훈련을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구보하고 정해진 시간에 식사를 합니다. 그리고 때를 따라서 훈련을 받고 신체검사를 받습니다. 병이 나면 육군 통합병원으로 싣고 가서 치료하고 그래도 낫지 않으면 의가사 제대를 시킵니다. 우리 영적 군사도 싸움에서 이기려면 운동을 하고 잘 먹고 질병을 이겨서 강건해야 합니다 병이 나면 민폐를 끼칩니다.

그러나 여기서 강건하다는 것은 육체적으로 강건한 것만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정신적, 영적으로도 강건해져야 합니다. 군사는 두려움을 모르는 담대함과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어떤 적을 보고도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기드온은 싸우기 전에 두려워하는 자는 다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가나안 정복전쟁을 앞두고 여호수아에게 너는 두려워말고 강하고 담대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학과 공부나 직장 일이나 혹은 양들 앞에서 두려워 떨어서는 안 됩니다. 사단은 영적인 싸움을 싸울 때 끊임없이 두려움을 심습니다. 망할 것같은 두려움을 심습니다.

이번 주 오스트리아아에서 기도 부탁이 왔습니다. 오스트리아 양사랑이가 학급이 바뀌면서 외국인으로 놀림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느 시이트에 들어갔다가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마음에 두려움이 생겼다고 합니다. 학교를 사일 동안이나 가지 못했답니다. 사랑이는 믿음으로 두려움을 잘 극복하였습니다. 우리도 말씀에 순종하여 영적인 싸움을 싸울 때 망할 것 같은 두려움이 생깁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담대함으로 이 두려움을 극복해야합니다. 우리는 이때 강하고 담대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강하고 담대할 수 있습니까?

 

(주 안에서 강건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주 안에서 강건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주안에서는 주님과 믿음으로 연합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죽으신 주님과 연합하여 옛사람이 죽었습니다. 과거에 무기력하고 정욕적인 옛사람은 죽었습니다.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과 연합하여 다시 살아났습니다. 사망권세를 이기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새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부활의 예수님을 믿고 강건해질 수 있습니다. 부활의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슬퍼하지 않습니다. 무기력해 하지 않습니다. 부활의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활화산 같이 타오르고 폭포수같이 힘있게 떨어져 내리고 파도같이 강렬합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예수님 안에서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힘의 능력은 성령의 능력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에수님을 믿는 자에게 성령을 주십니다. 성령은 권능을 주십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사랑할 힘을 주시고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능력을 주십니다. 우리는 성령의 힘의 능력으로 담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강해지기 위해서는 예수님과 깊은 사랑의 관계성을 맺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말씀과 기도로 성령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베드로는 초기에 계집종 앞에서도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할 정도로 연약한 자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강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았고 사단에게 힘없이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하신 후에 그가 기도의 사람이 되었을 때 그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공회 앞에서도 예수님을 담대히 증거하는 강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성령님 안에서 강하고 담대해야합니다.

 

(우리의 적은 사단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1절을 보십시오.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싸움은 마귀와의 싸움입니다. 우리가 사단을 대적하여 이기려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합니다. 여기서 대적한다는 것은 자기 진지를 확보하고 후퇴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이미 확보해 놓은 승리를 지키기 위해서 싸우는 것입니다.

마귀는 간계를 부립니다. 간사한 꾀를 냅니다. 간계는 새번역에는 술책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현대어 성경에는 속임수나 올무로 나옵니다. 마귀는 거짓말장이입니다. 위장의 명수입니다. 인간을 죽이는 살인자가 광명한 천사의 모습으로 위장합니다. 때로는 사랑하는 가족의 모습으로, 양들의 모습, 이성의 모습으로 접근합니다. 우리를 매우 위해주는 것처럼 찾아옵니다. 우리를 잘 되게 해주는 것처럼 찾아옵니다. 그러나 절대 우리를 잘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아주 그럴듯하게 말하는 사탄의 말에 속지 말아야합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합니다.)

 

사단은 강하고 지혜롭지만 우리는 연약합니다. 우리가 사단과 싸움을 싸우기 위해서는 완전 무장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물 속에 들어가려면 잠수복을 입어야 합니다. 달나라에 가려면 우주복을 입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간사한 사단과 싸우려면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전신 갑주는 하나님이 주신 무기입니다. 하나님은 사단보다 강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단을 이기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전신갑주를 입는다면 우리도 사단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혈육과 싸우지 않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우리는 마귀와 씨름을 합니다. 씨름은 싸움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의 싸움의 대상은 누구입니까? 손자병법에도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서 위태롭지 않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싸움의 대상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선 우리가 싸우는 대상은 혈과 육이 아닙니다. 혈과 육은 혈과 육을 가진 사람을 의미합니다. 많은 사람이 사람들과 갈등하고 사람과 싸웁니다. 남편과 싸우고 아내와 싸웁니다. 목자와 싸우고 양과 싸웁니다. 친구와 싸우고 이웃과 싸웁니다. 이렇게 사람과 싸우게 하는 것이 사단의 술책입니다. 사단은 눈에 보이지 않음으로 항상 자신은 없는 것처럼 위장합니다. 이는 간첩이 자신의 신분을 속이는 것과 같습니다. 사단은 자신과 싸우지 않고 사람과 싸우도록 유도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과 싸우지 말고 사람 뒤에 있는 사단과 싸워야 합니다.

 

(군대 귀신 들린 사람)

 

군대 귀신 들린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옷도 입지 않고 뛰어다녀서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사람이 잘못된 것인 줄 알고 그 사람을 고랑과 쇠사슬에 묶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사람 속에 있는 군대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귀신아 그 사람에게 나오라 명하시고 네 이름이 무엇이냐 물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과 싸우지 않고 군대 귀신과 싸웠습니다.

한나는 자녀를 낳지 못했습니다. 그 남편 엘가나는 첩으로 브닌나를 얻었습니다. 브닌나는 자녀를 낳지 못하는 한나를 몹시도 괴롭혔습니다. 이는 우리나라 사씨남정기와 유사합니다. 사씨남정기에도 이런 일 때문에 유연수의 두 아내 사씨와 교씨가 서로 싸웁니다. 그러나 한나는 이 일로 브닌나와 싸우지 않습니다. 그는 이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서 사정을 아뢰며 통곡하며 기도했습니다. 한나는 브닌나와 싸우지 않고 사단과 싸웠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한나에게 위대한 주의 종 사무엘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후에 삼남 이녀를 더 허락해 주셨습니다.

 

(야곱의 싸움)

 

야곱은 고향을 떠났다가 20년만에 고향에 돌아왔습니다. 에서는 야곱이 자신의 장자권을 빼앗아 갔다고 300명의 군사를 이끌고 마중 나왔습니다. 이때 야곱은 심히 두렵고 답답했습니다. 에서에게 선물을 보내고 아름다운 말을 해서 보냈어도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때 야곱은 하나님께 나아가서 씨름을 했습니다. 하나님과의 씨름을 통해서 야곱은 자신의 적이 에서가 아닌 죄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죄를 발견하고 회개하고 거듭나서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때 에서가 두렵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죄와 사단과 싸워야 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사람들과 싸우다가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지쳐갑니다. ubf의 개혁을 하던 사람들도 사람들과 싸우다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자신도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싸워야 할 사단은 어떤 존재입니까?

 

(정사와의 싸움)

 

12절을 다시 한번 보십시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첫째, 정사입니다. 정사는 현대어 성경에 눈에 보이지 않는 악한 지배자라고 나옵니다. 세상의 왕 사단을 말합니다. 인간은 사회를 이루어 살고 사회의 통합을 위해서 정치가 생겨났습니다. 정치 권력에는 입법 사법 행정부가 있고 행정부에는 대통령이 있고 각 장관들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은 사단이 왕입니다. 사단은 다른 말로 악마라고도 하고 사단이 부리는 졸자들에게는 귀신, 악령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는 사단이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그러나 이런 사단도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습니다.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사단도 움직일 수 없습니다.

 

(권세와의 싸움)

 

둘째, 권세와의 싸움입니다. 권세는 힘입니다. 사단이란 놈은 왕이므로 권세가 있습니다. 권세가 없는 왕은 왕이 아닙니다. 계시록 123절에 보면 사단은 일곱 개의 머리와 열 개의 뿔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단이 사로잡으면 힘이 생겨서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립니다. 사단은 잠시 병을 낫게 하는 권세도 있고 작두 위에 올라가서 춤을 춰도 발바닥이 상하지 않게 하는 권세도 있습니다. 또 사람들의 과거와 미래를 알아맞추는 권세도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마귀의 권세를 이기려면 사망권세를 파하시고 승리하신 부활의 권세자 예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어둠의 주관자와 싸움)

 

셋째,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입니다. 어둠은 죄를 의미합니다. 사단의 왕은 어둠의 세력을 주관합니다. 어둠의 일은 하나님이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사단이 주관합니다. 사단은 자신의 권세를 악한 데 사용합니다. 힘을 건설적인 데 사용하지 않고 파괴적인 데 사용합니다. 교만, 불신, 불순종, 원망, 불평, 미움, 분노, 세상의 정욕을 심습니다. 무기력, 절망. 시기, 질투 등을 주관하여 우리를 죄를 짓도록 유도합니다. 이 세상에 이렇게 전쟁이 나고 질병이 있고 가난이 있고 지진과 쓰나미가 나고 죽음이 있는 것은 바로 어둠의 주관자 사단이라는 놈이 장난하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악의 영들과의 싸움)

 

넷째,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과의 싸움입니다. 악한 영은 사단이 부리는 모든 악령과 귀신들의 세력을 의미합니다. 하늘에 있다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를 다스린다는 말입니다. 이 귀신은 여러 가지 이름이 있습니다. 정욕 귀신, 음란 귀신, 불신 귀신, 반항 귀신, 허무 귀신, 무기력 귀신, 미움 귀신, 증오 귀신 등을 다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우리는 이런 귀신을 성령의 힘으로 대적해야 합니다.

 

(세상의 왕 사단과의 싸움)

 

이상을 종합하면 우리는 세상 왕 사단과 싸우는 것입니다. 사단은 어둠의 일을 주관하고 힘이 세고 지헤가 있습니다. 사단은 눈에 보이지 않는 데서 눈에 보이는 세계를 주관합니다. 우리는 사람과 자연 뒤에서 일하는 사단이라는 놈을 보고 그 놈과 싸워야합니다. 저는 우리 모임의 사단의 실체를 보았습니다.

저는 2000년부터 권위주의와 싸웠습니다. 이제는 많이 섬기는 것이 일반화되었습니다. 그러나 2008년부터 무엇인가 우리를 얽어매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기도를 해도 기도가 응답되지 않습니다. 시간을 드려도 열매가 없습니다.

그것은 인본주의입니다. 잘해주는 것이 잘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고와 목자님 말은 인본주의 실체를 잘 보여줍니다. 죄를 지어도 책망하지 않고 싸우지 않는 것이 인본주의입니다. 하나님을 무시해도 잘한다고 박수치는 것입니다. 저는 이번 제주 여행을 하며 지금까지 보았던 인본주의 뿌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인본주의를 극복하고 복음신앙을 만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합니다.)

 

13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사도바울은 우리가 사단과 싸우기 위해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다시 한 번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하는 이유는 마귀를 대적하여 승리하고 능히 서기 위해서 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의 전신갑주만 입는다면 우리는 넉넉히 승리할 수 있음을 가르쳐주십니다. 사도 바울은 구체적으로 우리가 사용해야 할 무기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원자 폭탄도 아니고 미사일도 아닙니다.

 

(진리의 허리띠를 띠라)

 

14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바울은 현재 감옥에서 중무장한 로마 병사를 보고 있습니다. 그를 보면서 바울은 영적 무장에 대해서 여섯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진리로 허리띠를 띠어야 합니다.(14) 허리띠는 싸움의 준비를 하기 위한 것입니다. 허리띠를 띠면 옷이 흘러내리지 않게 옷을 고정시켜 줍니다. 허리띠를 단단히 동여매야 힘을 쓸 수 있습니다. 허리띠를 띠고 군인들은 그곳에 단도나 실탄 수통들을 달고 다닐 수 있습니다. 허리띠는 기본적인 싸움의 준비입니다. 우리는 진리로 허리띠를 띠어야 합니다. 진리는 진실을 의미합니다. 사단은 간교하고 거짓됩니다. 권모술수를 부립니다. 이단의 특징은 거짓말하는 것입니다.

()만회의 신()지에서는 거짓말 신학을 가르친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런 사단과 같이 권모술수를 부려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진실해야 합니다. 이 사람에게 말 다르고 저 사람에게 말이 달라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언제나 진실을 말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거짓말을 해야 이길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거짓이 싸움에서 잠시 승리할 뿐입니다. 최후 승리는 진실한 사람입니다. 특히 우리는 죄를 은폐하지 말아야합니다. 죄를 진실되게 하나님 앞에서 회개해야합니다. 우리는 진실하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해야합니다. 우리는 어린 아이같이 진실하고 순수해야합니다.

 

(의의 흉배를 붙여야합니다)

 

둘째, 의의 흉배를 붙여야 합니다. 흉배는 가슴의 심장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심장은 생명의 근원입니다. 심장에서 피를 공급해야 인간은 살 수 있습니다. 요즘은 심장을 보호하기 위해서 방탄 조끼를 입습니다. 심장이 상하면 다른 곳을 멀쩡해도 죽습니다. 심장이 멈추면 심장사락 합니다. 그만큼 심장은 중요합니다.

우리의 영적인 생명에서도 영적 생명을 유지하게 하는 영적인 심장이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은 영적인 생명입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이십니다. 우리는 과거 죄로 인해서 영적인 심장이 죽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피로 죄사함을 받고 거듭난 후에 우리는 영적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성령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를 시기한 사단은 우리의 영적인 생명을 죽이고자 합니다. 성령을 소멸시킵니다.

사탄은 죄를 짓기 전에는 심판이 없는 것처럼 거짓말합니다. 우리가 연약하여 죄를 지으면 사단은 말합니다. "너는 죄인이다. 너는 구제불능이다 너는 소망이 없다, 네가 무슨 목자요 선교사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살하라." 이런 사탄의 말을 들으면 그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단의 공격을 막기 위해서 의의 흉배를 붙여야 합니다. 의란 죄사함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그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시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영원히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우리를 의롭다고 하신 분을 예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니 아무도 우리를 대적할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외쳤습니다.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8:33,34)" 우리가 날마다 발을 내어놓고 회개하기만 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의롭게 하십니다. 우리를 사랑스러워하시고 자랑스러워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의의 흉배가 되시는 예수님 앞에서 끊임없이 회개해야합니다. 우리가 심판을 받는 것은 죄를 지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회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날마다 회개해야합니다.

 

(평안의 신발을 신어야 합니다.)

 

15절을 보십시오.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셋째,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어야 합니다. 신발은 구보나 도보를 가능하게 합니다. 신발이 있을 때 우리는 장거리를 이동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군인이 짚신이나 뾰족구두를 신을 수는 없습니다. 군화를 신어야 가시나 독사와 같은 위협으로부터 발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 신발은 적에 대한 공격무기도 됩니다. 워카를 신고 적의 목을 밟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평안의 신을 신어야 합니다. 평안의 신은 우선 내면에 평안을 얻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사함을 얻고 하나님과 화해하면 세상이 빼앗아 갈 수 없는 평화가 임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평강의 왕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내면에 평안을 주십니다. 더 나아가서 사람들과 평화하게 됩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대로 모든 사람들과 평화해야 합니다. 이렇게 평화할 때 우리는 마음껏 활동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에 두려움이 있다면 활동하기 어렵습니다. 두려움은 손발을 마비시킵니다. 또 사람들을 불화하며 그 사람이 있는 곳에 갈 수 없습니다. 불화하면 우리의 활동 반경이 줄어듭니다. 그러나 마음이 평화하고 사람들과도 평화하면 우리는 마음껏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화의 신발을 신어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죄에 대해서 내가 책임을 져야합니다. 잘못한 것이 있으면 용서를 구하고 피해를 주었으면 반드시 피해보상을 해야 합니다. 돈이 없으면 몸으로라도 때워야 합니다. 그러면 평화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방패를 가져야합니다.)

 

16절을 보십시오.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넷째, 믿음의 방패를 가져야 합니다. 옛날에는 총이나 대포 대신에 화살을 쏘았습니다. 화전은 불화살입니다. 이 화살을 막으려면 방패가 필요합니다. 방패는 화살과 창의 공격으로부터 막아줍니다. 다른 무기와 다르게 방패는 전신을 막아주는 중요한 무기입니다. 악한 마귀도 우리에게 화살을 날립니다. 불신의 화살, 의심의 화살, 절망의 화살, 정욕의 화살, 정죄의 화살, 비난의 화살, 불평의 화살을 날립니다. 저격수가 정조준하여 화살을 날리듯이 사단도 우리의 약점을 노리고 화살을 날립니다. 이런 화살에 한 번 맞으면 일어설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런 악한 마귀의 공격을 막기 위해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크신 하나님을 두려워해야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믿으니 나를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나의 죄악을 위해서 죽으신 사랑의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사망권세를 이기신 부활의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우리를 위해서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우리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신 예수님의 사랑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시련과 환난의 때에 하나님의 사랑을 믿어야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믿을 때 하나님은 친히 우리의 방패가 되셔서 우리를 막아주십니다.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우리의 삶을 인도하실 것을 믿고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찾아오셔서 나는 너의 방패요 지극히 큰 상급이라고 하셨습니다.(15:1) 다윗은 방패되신 하나님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시니 내 마음이 저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28:7) 우리도 믿음이 방패로 사단의 공격을 막을 수 있습니다.

요셉은 믿음의 방패로 정욕의 불화살을 이겼습니다. 보디발의 처는 요셉에게 처음에는 눈짓으로 유혹을 했습니다. 나중에는 옷을 잡아서 끌었습니다. 그러나 이때 요셉은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라고 말하며 하나님을 믿음으로 이 유혹을 물리쳤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였습니다. 요즘도 사단은 인터넷과 음란 서적과 영화 비디오를 통해서 많은 정욕의 불화살을 날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를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물리칠 수 있습니다. 죄를 지었을 때는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고 회개하여 죄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구원의 투구를 써야합니다)

 

17절을 보십시오.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다섯째, 구원의 투구를 써야 합니다. 투구는 머리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머리는 뇌가 있고 뇌는 모든 사고, 판단, 추리를 하고 운동신경을 관장합니다. 머리가 상하면 사람은 식물인간이 되어버립니다.

인제의 천모세 목자님은 식물인간이 되어 15년을 살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심장이 멈춘 것을 죽음으로 보았지만 요즘은 뇌파가 멈춘 뇌사를 죽음으로 보는 나라도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뇌사를 인정합니다. 이런 뇌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투구를 써야 합니다.

바울은 구원의 투구를 쓰라고 했습니다. 이는 구원의 확신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구원은 과거의 구원, 현재의 구원, 미래의 구원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과거에 죄사함을 받고 거듭나서 구원의 확신을 가졌습니다.

또한 지금 죽어도 천국 갈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성령을 소멸시키지 말아야합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야합니다. 다른 사람을 구원시킨 후에 자신은 버림받을까 봐 자신의 몸을 쳐서 복종시켜야 합니다. 현재 여러 문제에서 하나님이 구원해 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그 날을 소망하며 살아야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아야합니다.

여기서 구원은 죄사함 받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성경에는 병에서 낫는 것, 귀신이 쫓겨나가는 것, 파도치는 바다에서 구원 받는 것도 다 구원이라고 합니다. 직장의 시련이나 학과공부의 실패에서 벗어나는 것도 구원입니다. 구원은 우리를 자유하게 하고 치료하고 변화시키고 안식을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의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문제에서 해결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선교사님들은 하나님이 어학과 물질 문제 체류문제에서 구원해 주실 것을 믿어야합니다.

 

(성령의 검 하나님의 말씀을 가져야합니다)

 

여섯째,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져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주로 방어용 무기라면 하나님의 말씀은 공격용 무기입니다. 사단의 목을 자르려면 칼이 있어야 합니다. 아서왕의 전설에 나오는 나오는 전설적인 영국왕 아서는 엑스켈리버라는 칼을 갖고 있는 데 이 칼은 쇠를 자를 수 있을 정도의 강한 무기입니다. 삼국지에 나오는 관운장은 청룡언월도라는 칼을 휘둘러 적을 물리쳤습니다.

칼은 요즘으로 말하면 폭탄이나 미사일일 것입니다. 당시에 발달한 무기가 없어서 칼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사단을 이길 수 있는 무기는 말씀입니다. 말씀은 성령의 검입니다. 성령께서 일하실 때 말씀은 생명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지식적인 말씀을 경계해야합니다. 성령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합니다. 우리는 말씀공부하기 전에 기도해야합니다. 말씀을 공부하고 나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할 때 말씀을 가지고 기도해야합니다. 그래서 성령의 검인 말씀이 되게 해야 합니다.

말씀에 기초한 성령 운동을 해야 합니다. 말씀을 떠난 성령운동은 거짓된 사단의 운동이 되기 쉽습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입니다. 우리는 성령께서 진리의 말씀과 함께 한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그래서 성령의 검 하나님의 말씀이 되도록 기도해야합니다.

성령의 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질 때 우리는 사단을 이길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서 좌우에 날이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한다고 하였습니다. 또 마음의 모든 생각과 뜻을 감찰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사단을 이기기 위해서 예리한 말씀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사단을 물리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절대적인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사단의 시험을 받을 때 기록되었으되 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쳤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절대적인 확신이 없어서 사단에게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주는 말보다 기록된 성경 말씀으로 사단을 물리쳐야합니다.

저는 과거 창세기 11절 말씀에 사로잡혀서 인생의 무의미 허무 가운데서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316절 말씀이 남선영 목자님을 구원하사 가정의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이루고 계십니다. 임하진 목자님은 발가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 하니라는 창세기 225절 말씀으로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양들의 심령에 역사하는 사단의 정체를 알고 그를 이길 수 있는 날카로운 말씀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날카로운 말씀의 종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날카로운 칼을 만들기 위해서는 용광로에서 좋은 쇠를 얻고 불에 달궈서 단련을 시켜야 합니다. 끊임없이 자신에 대한 채찍질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연구해야 합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자신이 체험한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사랑해서 주야로 묵상해야 합니다. 그러면 말씀이 우리를 변화시켜 주시고 사단을 이기게 하십니다. 우리는 성령의 검 하나님의 말씀을 가져야합니다. 그를 위해서 무엇보다 기도해야 합니다. 말씀을 성령이 사용하도록 해야 사단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말씀을 성령이 사용하게 하시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수양회 때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하시는 것은 성령께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기도 없이 말씀을 전하는 것은 주인이 사용하지 않는 무기력한 칼과 같습니다. 말씀의 종은 기도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사단과의 영적 싸움을 싸우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싸움을 이기기 위해서는 우리가 싸우는 대상이 혈과 육이 아니라 사단과 귀신과의 싸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하되 특히 하나님의 말씀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핵심은 십자가입니다. 우리가 사단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십자가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고 십자가를 적극 감당해야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승리를 주실 것을 믿습니다. 아멘!

 

에베소서 6장 강해 이부 우리의 씨름

말씀 에베소서 610-에베소서 617

요절 에베소서 612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12)”

에베소서 6장 강해 이부 끝입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15 [에베소서] 에베소서 3장 강해 일부(1-13) 1그리스도의 비밀 오요한 2012-06-21
14 [에베소서] 에베소서 5장 강해 3부 (5:22-33) 그리스도인의 부부윤리 오요한 2006-08-06
13 [에베소서] 에베소서 6장 강해 1부(6:1-9) 가정과 직장 윤리 오요한 2006-07-22
12 [에베소서] 에베소서6장 강해 3부(6:18-24) 무시로 기도하라 오요한 2005-03-15
11 [에베소서] 에베소서6장 강해 2부(6장 10-17 ) 우리의 씨름 오요한 2005-03-15
10 [에베소서] 에베소서5장 강해 2부(5:15-21 ) 세월을 아끼라 오요한 2005-03-15
9 [에베소서] 에베소서5장 강해 1부(5장 1-14) 빛의 자녀들처럼 생활하라 오요한 2005-03-15
8 [에베소서] 에베소서4장 강해 2부(4:17-32) 그리스도 안에서 새생활 오요한 2005-03-15
7 [에베소서] 에베소서4장 강해 1부(4장 1-16)1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오요한 2005-03-15
6 [에베소서] 에베소서3장 강해 2부(3:14-21)1 그리스도의 사랑 오요한 2005-03-12
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