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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에베소서3장 강해 2부(3:14-21)1 그리스도의 사랑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5-03-12 00:00:00
조회수 : 6,422

문제지풀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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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3장 강해 이부 그리스도의 사랑

에베소서 314-에베소서 321(18)

요절 에베소서 316절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에베소서의 특징은 한참 이야기 하다가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에베소 교인들을 설득하다가 고조된 감정을 기도로 표현합니다.

오늘 말씀은 에베소서에 나오는 바울의 두 번째 기도입니다. 바울은 신령한 복을 이야기하다가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부르심의 소망과 기업의 풍성함을 알도록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이 지극히 크심을 알도록 기도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비밀을 이야기하다가 다시 기도합니다. 오늘 두 번째 기도는 딱 두 가지를 기도합니다. 첫째는 성령으로 속사람이 강건하게 해 달라는 것이고 둘째는 예수님이 그들의 마음 속에 계셔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하여 특별히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14, 15절을 보십시오.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예수님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기도했습니다. 바울은 첫 번째 기도에서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 기도했습니다. 오늘 바울은 하나님을 어떻게 부르고 있습니까? 바울은 이번에도 아버지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기도와 바울의 두 번의 기도에서 공통적으로 다 아버지께 기도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과거 사단의 자식이었습니다. 사단의 말에 순종하는 사단의 자식이었습니다. 사단은 거짓말쟁이고 살인자입니다. 우리는 사단을 닮아 거짓과 미움 속에 살았습니다. 사단은 어둠의 세력입니다. 우리는 어둠의 자식이었습니다. 어둔 것을 좋아하고 어둔 옷을 입고 어둔 생각을 하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한 다음부터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요한복음은 말씀하십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1:12) 여러분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했습니까?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 아버지는 탕자의 아버지처럼 사랑과 긍휼과 용서가 풍성하신 분이십니다. 먹을 것도 입을 것도 풍성하신 분이십니다. 모든 것을 충만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영존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영원히 살아 계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우리의 필요를 아시는 아버지이십니다.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는 전능하신 아버지십니다. 능치 못하심이 없으신 아버지이십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사랑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친밀하신 아버지이십니다. 특별히 사도 바울이 기도하는 아버지는 어떤 분이십니까?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이십니다. 이름을 주셨다는 것은 창조하시고 깊이 이해하시고 소망을 주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의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지어 주셨습니다. 그를 아브라함 열국의 아버지로 소망두시고 키우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이름대로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비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이스라엘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겨루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는 사람과 싸우는 인생에서 하나님 앞에서 투쟁하는 인생으로 바뀌었습니다. 그가 하나님께 울며 매달렸을 때 이기적인 야곱이 하나님 중심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자신을 의지하던 자가 하나님을 의지하던 자로 바뀌었습니다. 세상과 양다리 걸치던 자가 하나님만 의지하는 자로 바뀌었습니다.

하나님은 시몬을 베드로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베드로는 반석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바꾸어 주신 이름대로 베드로는 교회의 반석이 되었습니다. 그 위에 예수님은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사울을 찾아올 때 사울의 이름을 부르셨고 마리아를 찾아왔을 때 마리아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이름을 아시고 우리에게 이름을 주시고 우리를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하늘과 땅의 모든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세상 모든 족속을 아시고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아시고 인도하시는 아버지가 되십니다. 예수님은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의 이름을 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아버지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나를 아실 뿐 아니라 동역자와 양들의 이름을 아시고 이름을 주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무릎을 꿇고)

 

바울은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기도의 자세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대부분 서서 손을 들고 기도했습니다. 간절히 기도할 때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께 굴복하고 순종하고자 할 때도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습니다. 에스라가 황폐한 이스라엘을 인하여 참회 기도할 때, 무릎 꿇고 기도하였습니다.

다니엘이 기도하면 사자 굴에 들어간다는 것을 알고 기도할 때 무릎 꿇고 기도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앞두고 겟세마네에서 기도할 때, 무릎 꿇고 기도하였습니다. 바울이 에베소교회에서 고별메시지를 전하고 기도할 때,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물론 우리가 항상 기도할 때 무릎을 꿇고 기도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기도의 바른 자세를 갖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기도를 쓴 저자는 손을 들고 무릎을 꿇고 하는 기도를 권하고 있습니다. 이는 졸지 않기 위해서 좋은 방법입니다. 하지만 기도할 때 머리를 땅에 박고 하는 기도는 좋지 않은 기도입니다. 그러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잠을 자기 때문입니다. 기도할 때 코를 후비며 하는 것도 불경건한 자세입니다. 가능한 한 무릎을 꿇고 허리를 펴고 손을 들고 하는 것이 좋습니다.

 

(성령을 통하여)

 

16절을 보십시오.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바울은 첫번째 성령으로 말미암은 역사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는 표준 번역에는 성령을 통하여 라고 나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서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죄사함을 받았을 때 성령으로 인쳐 주셨습니다. 그의 성령이라고 한 것을 볼 때 성령은 예수님의 영입니다. 그 후부터 하나님은 성령으로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 해 주십니다. 예수님의 재림의 날까지 성령으로 함께 해주십니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성령이 소멸되지만 회개하면 다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일하십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성령은 우리를 인도하는 목자가 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한 후에 하나님은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불기둥은 어둠을 밝혀 주십니다. 추위를 막아 따뜻하게 해 주십니다. 구름기둥은 작열하는 뜨거운 햇빛을 막아 주십니다. 구름 기둥은 언제 떠나야 할지 언제 쉬어야 할지를 알려주십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를 앞서서 인도해 주십니다. 마찬 가지로 성령은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 하시며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우리 안에서 소원을 두고 일하십니다. 우리를 보호해 주십니다.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을 지시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성령으로 일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성령으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으로 일하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은 어떻게 일하십니까?

 

(하나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서)

 

성령은 그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서 일하십니다. 여기서 그는 하나님이십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광을 풍성히 드러내시며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풍성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사랑이 풍성하고 용서가 풍성하십니다. 물질이 풍성하십니다. 지혜가 풍성하십니다. 특별히 하나님은 영광이 풍성하십니다. 영광이 풍성하다는 말은 하나님의 이름을 넘치도록 풍성히 드러낸다는 말입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하나님이 빽빽한 구름 가운데 임재하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풍성히 드러내십니다. 성령의 역사가 있는 곳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풍성히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고 높이게 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성령의 능력으로 치료했을 때 사람들은 놀라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2:12) 베드로가 성령의 능력으로 날 때부터 앉은뱅이를 치료해 주었을 때 앉은뱅이는 걷자마자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3:9)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희한한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심지어 바울의 몸에서 앞치마나 손수건을 갖다 얹어도 병이 나았습니다. 이를 보고 사람들은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였습니다.(19:17) 성령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풍성히 드러냅니다. 특히 성령께서 무엇을 하시도록 기도하고 있습니까?

 

(속사람이 강건하게)

 

성령으로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은 속사람과 겉사람을 나누고 있습니다. 우리의 겉사람은 육체를 말합니다. 겉사람은 잘 먹고 운동을 적당히 하고 훈련을 하면 강건해집니다. 사람들은 겉사람을 강건하게 하기 위해 헬스클럽에도 다니고 보약도 먹습니다. 그러나 겉사람은 언젠가는 낡아지게 됩니다. 낡고 힘이 없어져서 죽게 됩니다. 나이는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고 강건해질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겉 사람은 낡아지나 속사람은 날로 새롭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속사람이 강건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속사람이 강한 사람입니까? 신앙의 지조를 지키고 마음의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믿음으로 살다가 조금만 힘든 일이 생기면 중심이 흔들려 버립니다. 집에 갔다가 부모님이나 친인척한테 신앙 문제나 개인 신상 문제 때문에 조금만 부정적인 소리를 해도 금방 마음이 힘들어져 버립니다. 어떤 사람은 친구들을 만나 그들의 잘 살고 여유로운 모습을 보고 나서 자신의 여유롭지 못한 신앙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힘들어합니다. 어떤 사람은 주위 친구가 기독교나 신앙 생활에 대해서 부정적인 소리를 하는 것을 듣고 나서는 힘들어합니다. 십자가를 조금 지면 힘들어집니다. 이런 모습들은 모두 속 사람이 강건하지 않은 것입니다. 속 사람이 강건하지 않은 사람은 그 내면이 촛불과 같이 연약한 사람입니다. 조그만 미풍만 불어도 꺼질 것처럼 위태롭습니다. 주위에서 그 모습을 보는 사람들이 언제 꺼질지 몰라 항상 불안하고 초조합니다.

그러나 속 사람이 강한 사람은 그 내면이 태양과 같아서 태풍이 불어도 끄떡도 하지 않습니다. 주위에서 아무리 부정적인 소리를 하고 힘 빼는 소리를 해도 전혀 요동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처럼 속이 강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을 외유내강(外柔內剛)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왜 우리가 속사람이 강해야 합니까?

 

(사단과 싸워서 이기는 강건함)

 

속사람이 강해야 사단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싸움은 눈에 보이지 않는 사단과의 싸움입니다. 사단과의 싸움에서 두려워하는 자는 이길 수 없습니다. 강하고 담대한 사람이 이길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영적 싸움을 위해서 강한 사람이 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가나안 정복 전쟁을 앞둔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바벨론의 공격을 받는 이스라엘에게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다 속사람을 강건해야 적을 이길 수 있다는 말입니다. 특히 사단과의 싸움을 싸우는 우리는 속 사람이 강하고 담대해야 합니다.

또한 속 사람이 강해야 말씀에 순종할 수 있습니다. 말씀에 순종할 때 죽을 것 같고 망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속 사람이 강하면 담대히 죽음을 각오하고 말씀에 순종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하나님의 명령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형통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속사람이 강건해질 수 있을까요? 사도 바울은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속사람은 성령의 능력으로 강해질 수 있습니다. 성령은 능력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성령을 받으면 권능을 받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속사람이 강해지기 위해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은 사단보다 강합니다. 우리의 죄는 우리를 연약하게 합니다. 우리는 죄사함을 받은 후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합니다. 우리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이 우리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지배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무의식까지 지배하도록 기도해야합니다. 우리가 성령의 은혜로 살면 우리의 속 사람이 강해집니다. 우리의 내면이 성령의 능력으로 가득 찹니다.

 

(성령으로 강해진 사람들)

 

성경에는 성령으로 강해진 사람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계집종 앞에서도 예수님을 세번 부인할 정도로 연약한 자였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을 때는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예수님께 사형 판결을 내린 공회 앞에서도 담대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령으로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루스드라에서 돌에 맞아서 기절하여 버린 바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성령이 충만한 그는 일어난 후 다시 루스드라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심으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셨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십자가를 담대히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성령으로 우리의 속사람을 강건케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에 계시도록)

 

17a절을 보십시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다음으로 그리스도께서 에베소 성도들의 마음에 계시도록 기도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가 마음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에 살아계셔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했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살아계신 하나님이요, 왕이요, 구원자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왕이요 주인으로 영접했습니다.

과거 우리는 세상 것을 왕으로 삼았습니다. 물질을 왕으로 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돈에 눈이 먼 사람들입니다. 사람을 왕으로 모신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람에 매여 있는 사람입니다. 오락을 왕으로 모신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게임에 노예가 된 사람입니다. 한 번 게임방에 가면 새벽이 될 때까지 나올 줄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술에 노예된 사람도 있었고 도박에 노예가 된 사람도 있었습니다. 학과 공부에 노예가 된 사람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자신이 왕이 되어 살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를 우리의 왕이요 주인으로 모신 다음에 이런 것들로부터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자유케 해주셨습니다.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셨으면 계속하여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에 계시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우리 속에서 우리에게 소원을 두고 능력으로 일하십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기도의 영을 주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양들에 대한 사랑을 주십니다. 우리의 마음에 순종을 주시고 감사를 주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죄를 이길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피곤치 않고 낙망치 않게 하십니다.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우리의 마음속에 계속 거하실 수 있습니까?

 

(항상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삶)

 

사도 바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에 계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상주시는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목숨까지 버리신 사랑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왕의 왕이요. 주의 주이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왕은 첫 자리에 계십니다. 우리의 첫 자리에 예수님을 모셔야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이 세상의 누구보다도 더욱 높으신 분으로 믿어야 합니다. 그분의 말씀에 순종해야합니다. 지속적인 믿음을 가져야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에 거하십니다. 우리는 처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할 때만 믿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항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성령을 의지하여 살아야합니다. 부부가 사랑 고백을 하듯이 매일 매일 예수님께 사랑 고백을 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처음도 믿음이요, 중간도 믿음이요, 끝도 믿음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감사하며 살아야합니다. 우리는 내가 원하는 대로 살지 말고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며 살아야합니다 그러면 항상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마음 속에 거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가운데 거하실 때 일어나는 역사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사랑에 뿌리가 박히고)

 

17b, 18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리스도를 주로 모신 사람은 그리스도의 사랑에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열매는 사랑입니다. 성령의 첫째 열매도 사랑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의 신앙을 나무와 집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나무는 뿌리가 깊어야 가뭄의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비바람이 불어도 넘어지지 않습니다. 뿌리 깊은 나무는 용비어천가에 있는 것처럼 꽃이 좋고 열매가 많습니다. 집은 터가 굳어야 합니다. 바위에 세운 집은 아무리 지진이 나도 넘어지지 않습니다. 바위에 세운 집은 홍수가 나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신앙의 뿌리가 중요합니다. 신앙의 기초가 중요합니다. 우리의 신앙의 뿌리, 기초는 그리스도의 사랑이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지식에 넘치는 사랑입니다. 지식을 초월하는 사랑입니다. 모든 지식은 교만하게 하지만 사랑은 사람을 겸손하게 합니다. 우리는 지식보다 사랑을 중시해야 합니다. 사랑의 기초가 인간적 사랑이면 쉽게 무너집니다. 감정에 기초하면 바닷물처럼 흔들립니다. 사랑의 기초가 그리스도에게 놓여야 합니다. 그리스도로부터 사랑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도 사랑이 풍성해집니다. 사랑의 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사랑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사랑의 집을 지을 수 있습니다. 스데반이나 손양원 목사님 같은 분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꽃을 피운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사랑의 집을 지어서 그곳에 많은 사람이 거하게 되었습니다. 데레사 수녀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많은 빈민들을 구제했습니다. 데레사 수녀는 그리스도가 함께 하지 않고는 사랑할 수 없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뿌리를 내려야 할 그리스도의 사랑은 어떠합니까?

 

(그리스도 사랑의 넓이)

 

19절을 보십시오.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모든 문제는 지식과 은사와 리더십으로 해결하지 못합니다. 오직 사랑으로 해결됩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히 임하였습니다. 구름이 가득 임하였습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 속에 충만히 임해야합니다.

첫째,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의 넓이에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사랑의 넓이는 포용력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넓이는 태평양 바다보다 넓고 우주 공간보다 넓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모든 사람을 포용함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이방인을 포용하시고 창녀 세리를 포용했습니다. 자신을 십자가에서 못질하는 로마 군병들을 포용하셨습니다. 3년동안 사랑하며 키웠지만 배신하는 가룟유다를 포용하셨습니다. 교만한 자를 포용하였습니다.

마틴 루터는 내가 하나님이라면 하루에도 열 번은 세상을 심판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이 공의를 이겼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 준 종교지도들을 품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들의 죄악을 대신 감당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예수님의 사랑에 뿌리를 내릴 때 우리는 누구도 포용하며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사랑의 길이)

 

둘째, 예수님의 사랑의 길이에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무한히 지속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목숨을 주시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죽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물고기 잡으로 간 베드로를 찾아가셔서 변함없이 사랑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없으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영원히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이 사랑에 뿌리를 내릴 때 양들을 오래 참고 끝없이 사랑할 수 있습니다. 보스톤 지하 병동에 한 소녀가 격리 수용되어 있었습니다. 이 소녀는 정신 질환이 심하여 사람들이 다가오면 괴성을 지르고 공격적이 되었습니다. 의사들은 회복불능을 선언하고 독방에 수용했습니다. 심지어 부모조차도 버리고 병원에 면회도 오지 않았습니다. 소녀는 온종일 독방에서 지냈습니다. 그런데 정년퇴임한 간호사 하나가 예수님의 사랑으로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소녀는 먹을 것을 주면 집어던졌고 말을 걸면 침묵으로 일관했습니다. 그러나 늙은 간호사는 육 개월 동안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고 섬겼습니다. 드디어 간호사의 지극한 사랑에 소녀는 마음의 문을 열었습니다. 소녀는 간호사의 사랑을 받아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회복 불가능한 사랑이 회복되었습니다. 마침내 소녀는 완전히 치료되어 다른 사람을 섬기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 소녀가 헬렌 켈러를 세계적인 인물로 교육시킨 설리반 선생님입니다. 그녀는 자신을 돌본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헬렌켈러를 세계적인 인물로 키웠습니다.

 

(그리스도 사랑의 높이)

 

셋째, 예수님의 사랑의 높이에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높은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숭고한 사랑입니다. 사랑에도 저질의 사랑이 있습니다. 육신적인 사랑, 감정적인 사랑, 쾌락적인 사랑은 저질의 사랑입니다. 부모의 사랑은 그래도 고상합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공동체를 위해서 희생한 사랑은 고상합니다. 그러나 이런 사랑에도 이기심이 내재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하나님 중심적인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온전히 희생하는 사랑입니다. 죄인들까지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고상한 사랑입니다. 우리를 하나님 나라까지 끌어올리는 사랑입니다.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이기적이고 죄악됨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우리가 이런 고상한 사랑에 뿌리 내릴 때 우리는 차원 높은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 전 한창 잘나가는 39세의 나이에 소아마비를 걸렸습니다. 이때 그는 아내 엘레나에게 "이래도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엘레나는 내가 당신을 사랑했지 당신의 다리를 사랑했소?"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어놓어 주었습니다. 아내의 숭고한 사랑으로 루즈벨트는 절망을 극복하고 12년 후인 51세 때에 32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그는 이 숭고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대공황에 빠진 미국민을 사랑하여 위대한 승리를 이루었습니다.

 

(그리스도 사랑의 깊이)

 

넷째,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의 깊이에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깊은 사랑입니다. 심원한 사랑입니다. 사랑도 천박한 사랑이 있고 심원한 사랑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고 지옥에 가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예를 들어서 사람에게 고기만 주는 사랑은 그를 평생 거지로 만드는 천박한 사랑입니다. 그러나 그에게 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는 사랑은 깊이 있는 사랑입니다. 죄를 지은 자를 그냥 받아 주는 것은 천박한 사랑입니다. 죄를 회개하도록 돕는 사랑은 아픔이 있습니다. 이것이 심원한 사랑입니다.

요셉은 형들의 죄악을 회개시키는 심원한 사랑을 했습니다. 요셉은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고 나가서 울고 와서는 이들을 훈련시켰습니다. 요셉은 속이 깊은 사랑을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앉은뱅이에게 돈을 주는 사랑을 하지 않고 예수님의 이름을 주어서 온전히 치료하는 심원한 사랑을 했습니다. 우리가 깊은 사람을 사랑하려면 우리 자신이 죽어야합니다. 나를 사랑하는 마음을 죽여야 합니다.

 

(충만한 그리스도의 사랑)

 

사도 바울은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하게 하시기를 기도했습니다. 여기서 모든 충만하신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예수님께는 사랑이 충만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핵심은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사랑이 차고 넘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면 이 사랑이 충만해야 합니다. 우리 마음 속에 그치지 않는 사랑의 샘이 솟아나야 합니다. 사랑을 하고 해도 계속하여 솟아나는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사랑이 없다면 아무 것도 아닌 꽝입니다.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의 표입니다. 단대생과 천안 12개 캠퍼스를 다 먹이고도 남는 충만한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은 이론이 아닙니다. 실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으로 눅팀 한 양을 섬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20절을 보십시오.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하나님은 능력으로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넘치도록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한마디로 풍성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자식 하나만을 구하는 자에게 하늘의 뭇별처럼 넘치도록 많은 자식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나 편안히 살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하늘나라까지 주십니다. 바울는 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영광을 하나님께)

 

21절을 보십시오.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사랑을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성령으로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영광은 교회와 예수님을 통하여 나타납니다. 교회를 예수님과 동일하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를 예수님의 몸처럼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교회는 하나 되어야 합니다. 머리 되신 예수님께 순종해야합니다. 그러면 영광이 영원히 풍성하실 것입니다.

이 시간 성령으로 우리의 속사람을 강건케 하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을 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이 무궁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에베소서 3장 강해 이부 그리스도의 사랑

에베소서 314-에베소서 321(18)

요절 에베소서 316절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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