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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요한복음 20장 강해 일이부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9-11-29 00:00:00
조회수 : 3,579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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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20장 강해 일부 부활의 말씀을 기억하지 못한 두 제자

요한복음 201-요한복음 2010

요절 요한복음 209(그들은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

 

천안에는 삼월에 폭설이 두 번이나 내렸습니다. 지난 주도 영하의 날씨라 나는 파카를 입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눈속에 개나리꽃이 피어나고 있습니다. 아무리 죽음의 세력이 강해도 생명의 역사는 일어나고 있습니다.

2010년 부활절이 일주일 남았습니다. 이번 주는 예수님의 수난 주간입니다. 그래서 오늘 주일날 대부분의 교회에서 예수님의 수난에 대해서 말씀을 전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사순절이라고 하여 부활 전 사십일을 기념합니다. 부활절은 딱 하루의 축제로 마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부활을 증거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 생애에 클라이막스입니다. 나의 생각에는 부활절을 사십일 기념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이번 주와 다음 주에 걸쳐서 부활절 말씀을 공부하고자 합니다.

오늘은 첫말씀으로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난 부활의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는 사실상 예수님의 부활을 매주일마다 고백합니다. 사도 신경을 통하여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의 몸이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그러나 우리는 베드로와 요한처럼 예수님의 부활을 말씀에 기초하여 잘 믿지 못합니다. 이 시간 말씀에 기초한 부활신앙을 가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순수한 사랑)

 

1절을 보십시오. “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

 

예수님은 금요일 돌아가셨습니다. 토요일이 안식일입니다. 안식일이 지나고 첫날이 되었습니다. 마리아는 안식일이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안식후 첫날 일찍이 무덤을 향하여 가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요안나도 갔다고 나옵니다. 이것은 2절에 우리라는 말을 볼 때 분명합니다.

요한은 대표로 막달라 마리아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과거 일곱 귀신이 들렸던 여자입니다. 흉악한 귀신이 들렸던 여자입니다. 예수님은 여자를 사랑하시고 일곱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마리아는 구원의 은혜가 분명하였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가장 사랑하였습니다. 그녀는 예수님께 값비싼 향유를 부어드렸습니다. 결혼을 위해서 예비한 것을 드렸습니다. 눈물로 발을 적시고 머리털로 발을 씻겼습니다. 예수님은 그녀가 예수님을 많이 사랑하여 많은 죄가 사하여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후에도 자신의 재산으로 예수님과 제자들을 섬겼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도 떠나지 않고 지켜보았습니다. 예수님이 비참하게 죽는 모습을 다 쳐다보았습니다. 요셉이 장례를 치르는 것도 지켜보았습니다. 그녀는 장례 후 사흘째 새벽 아직 동이 트기도 전에 무덤을 향하여 갔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의 시체에 향유를 발라드리기 위해서 가고 있습니다. 새벽에 무덤에 가는 일은 무서운 일입니다. 누가 돌을 굴려두지 않으면 들어갈 수도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반역자의 무리라고 낙인찍힐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마리아는 무덤으로 갔습니다. 그는 이런 모든 것을 따지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이 죽은 후에도 변함없이 예수님을 사랑하였습니다.

사랑은 따지지 않는 것입니다. 계산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신의 유익을 생각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은 이성을 초월합니다. 사랑은 두려움을 극복합니다. 사랑은 죽음을 극복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순수하게 사랑하는 자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말씀을 기억한 종교지도자)

 

당시에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었을까요?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제자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신다는 말씀을 잊었지만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실 것이라는 말씀을 믿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부활할 것을 대비하였습니다. 2762절부터 보면 그들은 평상시 예수님이 사흘 후에 부활한다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시체를 도적질하고 부활했다고 거짓말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무덤에 청년 두세 명이 옮길 수 있는 큰 돌로 무덤을 막아 놓았습니다. 아무도 돌을 옮기지 못하도록 돌에 로마 총독의 도장을 찍어서 인봉하여 놓았습니다. 경비병들을 동원하여 사흘 동안 굳게 지키게 하였습니다.(27:62-66) 오히려 불신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의 말씀을 기억하였습니다.

 

(옮겨진 돌)

 

마리아가 무덤에 왔을 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유대인들이 막아 놓은 큰 돌이 무덤에서 옮겨져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무덤은 큰 돌이 옮겨지고 무덤은 비어 있었습니다. 무덤에는 시체가 없었습니다. 돌이 옮겨지고 무덤이 비어있었다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을 사실적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시체를 찾는 여자들)

 

2절을 보십시오.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

 

마리아는 돌이 옮겨진 것을 보고 혹시 예수님이 부활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부활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부활하신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시체가 도적질 당하였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마리아는 급히 베드로와 요한에게 달려갔습니다. 마리아는 제자들을 동원하여 예수님의 시체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녀는 혼자서 모든 일을 하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을 동원하여서라도 함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습니다. 사랑은 문제를 만나면 어찌하든지 해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녀는 제자들에게 달려가서 말합니다. “예수님 시체가 사라졌어요. 사람들이 주님의 시체를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어요. 시체 좀 찾아주세요.”

 

(부활절 마라톤 경기)

 

3-5절을 보십시오.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갈 새 둘이 같이 달음질하더니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려가서 먼저 무덤에 이르러 구부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더니

 

여기서 다른 제자는 바로 요한입니다. 요한은 자신이 직접 본 모습을 자세히 기록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마리아의 말을 듣고 무덤으로 달려갔습니다. 새벽에 부활절 마라톤 경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요한이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려갔습니다. 젊은 요한이 베드로보다 더 잘 달렸습니다. 그는 먼저 무덤에 이르러 무덤을 굽어보았습니다. 무덤에는 세마포가 놓여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무덤에 들어가지는 않았습니다. 사색적인 그의 성격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도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졌다는 것을 들었습니다.(24:23)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는 시체가 없어졌다는 것을 알고도 무덤으로 가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베드로와 요한은 빈 무덤에 달려가 보았습니다. 베드로와 요한도 예수님을 가슴으로 사랑하였습니다. 사랑은 이렇게 가서 확인해보는 것입니다.

 

(부활의 사실적 증거)

 

6-8절을 보십시오. “시몬 베드로는 따라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쌌던 대로 놓여 있더라. 그 때에야 무덤에 먼저 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

 

시몬 베드로는 요한을 따라와서 무덤을 들여다보지도 않고 무덤으로 쑥 들어갔습니다. 베드로는 행동적입니다. 그는 무덤에서 세마포가 놓였고 그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쌌던 그대로 놓여 있음을 보았습니다. 시체만 빠져 나가고 옷과 두건이 그대로 놓여 있었습니다. 마치 나비가 빠져나가고 번데기만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베드로는 눈으로 그 사실을 확인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요한에게 너도 들어와 보라고 하였습니다. 요한도 뒤따라 들어와서 그것을 보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마리아가 말한 것처럼 도적질 당한 것이 아닌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도적질을 해갔으면 왜 시체만을 가지고 갑니까? 그 옷도 그대로 놓고 갈 리가 없습니다.

무덤의 세마포와 두건도 예수님의 부활을 사실적으로 보여줍니다. 이들은 이를 보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어야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부활하신 에수님을 믿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줍니다.

 

(성경을 기억하지 못하는 베드로)

 

9,10절을 보십시오. “(그들은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 이에 두 제자가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가니라.”

 

베드로와 요한은 부활의 현장을 목격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리라 하신 말씀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시편 1610절에는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예수님도 평상시 네 번이나 반복하여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말씀을 기억하지 않았을 때 부활의 현장을 보고도 믿지 못하였습니다. 마리아도 예수님을 보고도 믿지 못하였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두 번 만난 제자들이 세 번째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도 믿지 못하였습니다. 부활신앙은 사실과 말씀이 합하여질 때 생깁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성경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과 같이 갈 때 그들은 예수님을 알지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에게 성경 말씀으로 부활을 가르치지 그들은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사도 바울도 성경에 기록된 대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에 기초하여 부활 신앙을 심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합니다. 말씀에 기초할 때 우리의 신앙은 영원합니다. 천사도 예수님이 말씀대로 부활하셨다는 것을 증거하였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말씀을 기억하지 못하고 부활을 믿지 못하였습니다. 우리는 말씀에 기초하여야 부활신앙을 가질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시고 장사지낸바 되었다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났다고 말씀하였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말씀을 들음에서 나옵니다. 우리는 부활을 증거하는 기록된 말씀을 믿고 믿음으로 살아야합니다.

우리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우리는 오직 성경 말씀에 기초하여 부활신앙을 가질 수 있습니다. 저는 요한복음 1125,26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성경 말씀에 기초하여 부활신앙을 가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요한복음 20장 강해 일부 부활의 말씀을 알지 못한 두 제자

요한복음 201-요한복음 2010

요절 요한복음 209(그들은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

 

요한복음 20장 강해 이부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신 예수님

요한복음 2011- 요한복음 2018

요절 요한복음 2016.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

 

베드로와 요한이 빈무덤을 확인하고 집으로 돌아간 후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집으로 가지 않고 계속하여 무덤에서 울며 시체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마리아를 찾아 만나주시고 눈을 닦아주시며 부활의 증인으로 삼아주셨습니다.

 

(허망한 몸짓)

 

11절을 보십시오.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

 

베드로와 요한은 부활을 믿지 못하고 에수님의 시체가 사라진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된 것인가 알아보아야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시체라도 찾아보아야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뒤에 어떤 다른 행동이 없습니다. 그들은 시체를 찾을 생각을 하지 않고 그냥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들은 마리아처럼 예수님을 마음으로 깊이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 부활의 첫증인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마리아는 베드로와 요한을 따라 무덤으로 왔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빈무덤을 확인하고 집으로 돌아갔으나 마리아는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어찌하든지 예수님의 시체를 찾고자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시체를 찾아야 무엇합니까? 시체를 집에 가져갑니까? 그러나 그녀는 시체를 찾지 않고는 집에 갈 수 없었습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시체라도 찾고자 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한국전쟁 때 죽은 미군 유해가 북한에 있습니다. 미국은 이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지금도 그 유해를 찾고자 합니다. 그것 찾아봐야 이제는 다 썩어서 한 줌 흙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나라 군인을 사랑하여 어찌하든지 찾고자합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사랑하였고 어찌하든지 시체라도 찾고자 하였습니다.

그녀는 이 전에 무덤에 시체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다시 무덤을 구부려 보았습니다. 참으로 허망한 몸짓입니다. 그러나 이런 허망한 몸짓에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의 시체를 끝까지 찾고자 하였습니다. 그녀는 무덤을 보면서 울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어깨를 들먹이며 통곡하고 있었습니다.

 

(두 천사의 증거)

 

12절을 보십시오.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

 

그런데 빈무덤에 흰 옷 입은 두 천사를 보았습니다. 두 천사는 하나는 예수님의 머리 편에 하나는 예수님의 발편에 앉아 있었습니다. 천사들은 베드로와 요한이 무덤을 보았을 때는 없었습니다. 마리아가 다시 와서 무덤을 볼 때 비로소 나타났습니다. 마리아가 허망하지만 주님을 사랑하는 그 마음을 보시고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셨습니다. 마리아가 마리아는 갑작스럽게 두 사람이 나타난 것으로 놀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음 질문을 보면 그들을 천사로 생각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냥 두 청년이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어찌하여 우느냐는 천사의 말)

 

13절을 보십시오. “천사들이 이르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이르되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천사들은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는데 왜 우느냐는 말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시체를 어디에 두었는지 알지 못하여 운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가운데도 허망한 몸짓으로 천안에 남은 자들이 있습니다. 학사 목자들은 다른 곳에서 좋은 직장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에 대한 사랑을 기억하고 비록 가난하게 살아도 천안에 남은 자들입니다. 참으로 세상적인 가치관으로 보면 허망한 자들입니다. 부활의 예수님은 이들을 찾아와 주십니다. 캠퍼스 전도도 허망한 몸짓과 같습니다. 많은 학생을 만나도 소원 있는 사람은 적습니다. 약속을 해도 지키는 학생은 적습니다. 약속을 지켜도 지속적으로 말씀 공부하는 학생은 적습니다. 지속적으로 말씀을 공부해도 남는 사람은 적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예수님은 이런 허망한 몸짓을 축복하시고 우리를 만나주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마리아)

 

14절을 보십시오.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더라.”

 

마리아는 두 사람을 보고 뒤를 돌이켜 보았습니다. 무덤 밖에는 예수님이 서 계셨습니다. 천사를 보고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지 못하자 예수님이 직접 마리아를 찾아오셨습니다. ! 예수님이 이 세상에서 가장 먼저 마리아를 찾아오셨습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마리아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새로운 모습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썩지 않고 강하고 아름답고 신령한 모습으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후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죽은 후에 예수님은 단 한마디도 기도도 하지 않고 소원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예수님을 살리셨습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살리셨습니다. 이것이 부활입니다. 우리도 이와 같이 살아날 것입니다.

 

(예수님을 동산지기로 생각하는 마리아)

 

15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

 

예수님은 마리아에게 다시 물으십니다.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예수님은 천사가 물어본 말을 반복하여 묻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였는데 시체를 왜 찾느냐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으니 울지 말라고 하십니다. 더 이상 예수님의 시체를 찾지 말라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묘지를 관리하는 동산지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슬픔에 눈이 가리워졌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이 죽었고 다시 살지 못한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아무 것도 변한 것이 없는 현실을 보고 예수님이 부활했다고 믿지 못하였습니다. 마리아의 눈에는 계속하여 눈물이 흘렀습니다.

 

(마리아가 슬퍼하는 이유)

 

마리아가 왜 이렇게 슬퍼할까요? 물론 그녀의 말처럼 시체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깊이 파보면 꼭 시체가 없어져서 우는 것이 아닙니다. 그녀가 우는 이유는 예수님이 자신과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없이 어떻게 사느냐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예수님만 있으면 모든 문제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먹는 문제도 해결해주시고 바람과 바다도 잔잔케 하시고 병도 고쳐주시고 귀신도 쫓아주셨습니다. 매일 말씀을 주셔서 영혼을 만족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예수님 없이 이 땅에서 어떻게 사느냐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다른 사람이 죽어서 울 때는 상대방을 생각하기보다도 자신을 생각하며 웁니다. 제가 한교장 선생님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회갑이 넘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86살이 되어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분은 홀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오열하였습니다. 엄마, 나는 어떻게 살아요. 어머니 없이 어떻게 사느냐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마리아도 사랑하는 예수님이 없이 어떻게 사느냐고 통곡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정말 예수님이 살아나지 않았다면 예수님을 믿고 희생한 우리는 가장 비참한 자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시간과 물질을 드리고 청춘을 드리고 있습니다. 부활이 없이 이렇게 끝난다면 얼마나 비참합니까? 부활이 없다면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도 영원히 만날 수 없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갑니까? 직장생활은 어떻게 하고 양은 어떻게 칩니까? 우리는 슬퍼 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찌하여 우느냐고 하십니다. 내가 함께 하는데 왜 우느냐고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깨어있든지 자든지 예수님과 함께 살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 우리는 울 필요가 없습니다.

 

(슬픔을 극복하는 방법)

 

요즘 많은 사람이 슬퍼합니다. 어떤 사람이 슬픔이 커서 우울증이 됩니다. 사람들이 왜 슬퍼합니까? 사람들은 대부분 단절과 고독에서 슬퍼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우리를 떠나면 슬퍼합니다.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을 상실하면 슬퍼합니다.

죽음은 우리의 실패를 영원한 실패로 끝나게 합니다. 우리는 무력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죽음은 모든 것을 가져갑니다. 우리의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아 갑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소유를 빼앗아갑니다.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갑니다. 현실에서도 사랑하는 사람과 단절을 시킵니다. 불신으로 관계성을 파괴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예수님은 어찌하여 우느냐고 합니다. 우리가 무덤만 보면 슬퍼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주님을 보면 슬픔이 사라집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부활의 주님은 성령으로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시공의 제한을 받지 않고 함께 하십니다. 부활의 예수님 편에서 보면 슬퍼할 필요가 없습니다. 부활을 아는 사람은 슬퍼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천사가 어찌하여 우느냐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믿지 못하는 마리아에게 서운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영원히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은 내가 살았으니 울지 말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떠나도 나는 떠나지 않으니 울지 말라고 합니다. 세상에서는 버림받아도 내가 너를 버리지 않고 함께 있으니 울지 말라고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의 눈에서 눈물을 씻겨주십니다. 예수님은 청년 독자를 잃고 우는 과부를 찾아와 울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눈물을 누가 닦아주실 수 있습니까? 오직 부활하신 예수님이십니다.

 

(마리아의 사랑)

 

마리아는 어찌하여 우느냐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께 예수님의 시체를 찾습니다. 당신이 가져갔으면 나에게 알려달라고 합니다. 그러면 내가 시체를 가져가겠다고 합니다. 그녀가 도대체 어떻게 혼자 시체를 가져가겠다는 말입니까? 그래도 그 시체를 가져가겠다는 것이 그녀의 마음입니다. 그것이 그녀의 사랑입니다.

 

(마리아의 이르을 부르신 예수님)

 

16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예수님은 평상시 부르던 그 목소리로 마리아를 부르셨습니다. 마리아야! 예수님은 마리아를 깊이 이해하고 사랑으로 불러주셨습니다. 생전의 그 목소리로 부활하신 후에도 불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마리아 한 사람을 인격적으로 마리아를 만나주셨습니다. 마리아 한 사람을 깊이 사랑하고 불러주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사울아 사울아 불러주셨습니다. 부활의 주님이 우리를 불러주실 때 우리는 부활의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부활하는 것은 전적인 은혜입니다. 예수님은 다시 오실 때 우리의 이름을 인격적으로 부르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마리아를 부르자 마리아는 예수님의 목소리를 알아들었습니다.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습니다. 마리아는 선생님하며 예수님께 인사를 드립니다. 그녀는 시체를 찾고자 하였으나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녀를 만나주었습니다. 그녀는 선생님 하며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잡았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이 찾아와야 만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를 찾아왔습니까? 막달라 마리아를 찾아왔습니다. 먼저 베드로나 요한을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마리아를 부활의 증인으로 삼으셨습니다. 당시에 여자는 증인의 자격이 없었습니다. 왜 마리아를 부활의 첫증인으로 삼으셨습니까? 마리아가 변함없이 예수님을 사랑하였기 때문입니다. 순수하게 예수님을 사랑하였기 때문입니다. 끝까지 예수님을 사랑하였기 때문입니다. 허망한 몸짓을 하며 어찌하든지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를 찾아오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 주님하고 부르게 될 것입니다.

 

(부활의 증인이 되기를 원하시는 예수님)

 

17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마리아는 예수님을 붙잡고 다시는 헤어지지 않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를 붙들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예전의 예수님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새로운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하늘로 올라가야합니다. 하늘에 가셔서 성령으로 다시 오셔서 마리아와 영원토록 함께 하시고자 하십니다. 예수님은 마리아가 예수님을 붙잡지 말고 부활의 증인이 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아직 하늘에 올라가지 아니 하였으니 형제들에게 가서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전하라고 하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직접 찾아가지 않으습니다. 마리아를 통하여 부활의 소식을 전하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증인들을 통하여 예수님의 부활을 믿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에게 제자들을 향하여 가서 두 가지 사실을 전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아버지라는 것을 전하기 원하시는 예수님)

 

첫째는 내 아버지가 너희 아버지가 된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아버지가 제자들의 아버지가 되었다는 것을 전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외아들이십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을 믿는 자를 모두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죄인인 막달라 마리아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모두를 상향평준화를 시켜주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모든 신자들은 형제요. 자매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평등하게 되었습니다. 세계가 예수님 안에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하나님이 제자들의 하나님이 되었다는 것을 전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을 많이 행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을 제자들도 나의 하나님으로 체험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에게 기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가 바로 바울의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아버지가 나의 아버지이십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십니다.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알고 해결해주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 하나님 아버지를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를 믿고 아버지의 도움을 받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승천을 전하기 원하시는 예수님)

 

둘째, 예수님이 하나님께 올라간다는 것을 전해야합니다. 예수님은 하늘나라에 가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 가셔서 우리의 그리스도가 되십니다. 뿐만 아니라 형제된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 나라에 가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부활합니다. 우리도 새로운 몸을 입고 하나님 나라에 갑니다. 부활의 새 생명을 입고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살게 됩니다. 이곳은 눈물도 고통도 없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유는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를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해야합니다.

 

(내가 주를 보았다는 마리아)

 

18절을 보십시오.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막달라 마리아는 처음 부활의 메시지를 전하였습니다. 그의 메시지는 두 가지로 단순하였습니다. 첫째 예수님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부활의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습니다. 내가 부활의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다고 합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지못하면 장례 신앙을 갖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셨다는 마리아)

 

둘째 주께서 하신 말씀하신 대로 그대로 전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아버지가 우리의 아버지가 되었다는 것을 전하였습니다. 예수님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었음을 전하였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께로 가서 우리의 그리스도가 되었음을 전하였습니다. 부활의 예수님을 만나고 우리는 힘써 부활의 예수님을 전해야합니다.

 

(영원토록 함께 하시는 예수님)

 

아직도 날씨는 춥습니다. 그러나 추위 속에 꽃이 피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아직도 죽음의 권세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슬픔 많은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하여 성령으로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은 생전의 모습과 똑같이 성령으로 오셔서 우리를 도우시고 당신의 살아계심과 능력을 보여주십니다.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 안에서 슬픔을 거두고 기쁜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부활하신 에수님의 살아계심이 많이 나타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1

 

요한복음 20장 강해 이부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신 예수님

요한복음 2011- 요한복음 2018

요절 요한복음 2016.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

요한복음 20장 강해 이부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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