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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요한복음 18장 강해1 삼부 진리가 무엇이냐(28-40)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9-11-29 00:00:00
조회수 : 3,138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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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8장 강해 삼부 진리가 무엇이냐?

요한복음 1828-요한복음 1840

요절 요한복음 1838절 빌라도가 이르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

 

예수님은 빌라도에게 심문을 받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진리가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그는 진리를 알고자 하는 것 같습니다. 진리의 왕 예수님을 알고자 한느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는 진리를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진리를 알지 못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넘겨주었습니다. 그는 2000년 동안 모든 교회에서 사도신경을 외울 때마다 정죄를 받습니다. 빌라도는 왜 진리를 알지 못했을까요?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서 진리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기를 원합니다.

 

(대제사장의 사형판결)

 

28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예수를 가야바에게서 관정으로 끌고 가니 새벽이라 그들은 더럽힘을 받지 아니하고 유월절 잔치를 먹고자 하여 관정에 들어가지 아니하더라

 

예수님은 새벽에 대제사장 가야바의 관정에서 심문을 받으셨습니다. 저자 요한은 대제사장에게 심문 받은 내용을 과감하게 생략하였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사실만 기록하였습니다. 다른 복음서를 참조하면 종교지도자들은 가야바의 집에서 예수님에게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냐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렇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나중에 구름타고 영광 중에 오실 그리스도라고 증거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에게 신성모독죄로 사형 판결을 내렸습니다.

 

(속은 더럽고 겉은 거룩한 자들)

 

종교지도자들은 새벽에 예수님을 대제사장의 관저에서 로마 총독 관저로 끌고 갔습니다. 그들은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면 더립힘을 받는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더럽힘을 받으면 유월절 만찬을 먹을 수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더럽힘을 받지 않고자 빌라도의 관정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방인의 뜰에도 들어가지 않는 매우 깨끗하고 거룩한 자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시기심과 탐욕과 명예욕으로 가득찬 더러운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위선적이고 이중적인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겉보다는 속을 보십니다. 우리는 마음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반역자라고 고발함)

 

29,30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빌라도가 밖으로 나가서 그들에게 말하되 너희가 무슨 일로 이 사람을 고발하느냐 대답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 행악자가 아니었더라면 우리가 당신에게 넘기지 아니하였겠나이다

 

종교지도자들이 관정에 들어오지 않자 빌라도가 그들을 맞으러 밖에 나갔습니다. 빌라도는 ad 26-36년을 다스린 총독입니다. 빌라도는 유대인들에게 무슨 일로 예수님을 고발하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행악자라고 말합니다. 다른 복음서에 보면 그들은 예수님을 로마의 반역자라고 고발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는 유대인의 왕이라고도 합니다. 유대인의 왕은 그리스도의 별칭입니다. 로마인에게 유대인의 왕이라고 하면 로마의 반역자가 됩니다. 그들은 종교적인 문제(하나님의 아들)로 예수님에게 사형 판결을 내리고 정치적인 문제(유대인의 왕)로 로마 총독부에 고소하였습니다. 그들은 간악한 사단의 무리들이었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시는 예수님)

 

31,32절을 보십시오.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그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한이 없나이다 하니 이는 예수께서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가리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빌라도는 유대인들이 종교적인 문제로 예수님을 고발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정치적인 반역을 하지 않은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빌라도는 유대인들의 종교문제에 관여하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빌라도는 종교지도자들에게 예수님을 데려다가 그들 스스로 종교법에 의해서 재판하라고 하였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이미 예수님을 사형 판결하였는데 그들은 예수님을 죽일 권한이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들은 사람을 죽일 권한이 없었지만 스데반은 돌로 쳐 죽였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사형수를 돌로 쳐죽이는 방법으로 사형을 집행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법에 의해서 사형자를 돌로 쳐죽이는 일이 흔히 있었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스데반도 돌로 쳐죽였고 사도바울도 거의 죽기까지 돌로 쳤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예수님을 로마인의 손을 빌어죽이고자 하였습니다. 로마인들은 이방인들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저자 요한은 이들이 예수님을 돌로 쳐죽이지 않고 로마 법에 의해서 죽이고자 하는데는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어떤 죽음으로 죽을 것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평상시에 이방인에게 넘겨져서 십자가에 죽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모세가 뱀을 든 것처럼 나무에 들릴 것을 말씀하셨습니다.(3:14) 예수님을 십자가에 든 후에야 예수님을 믿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8:28, 12:34)

이사야 선지자도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이사야 535절에는 말씀하십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이 돌에 맞아죽지 않고 십자가에서 못에 찔리고 창에 상하고 징계를 받고 채찍에 맞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은 우리의 허물과 죄악과 상처를 담당하기 위해서입니다.

신명기 2123절에도 나무에 달려 십자가에 죽으실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예수님은 우리의 저주를 대신하시기 위해서 나무에 달려 죽으셔야 합니다.(3:13)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으셔서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아브라함의 복, 하나님의 복, 성령의 약속을 주시고자 하십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겨주므로 이 약속의 말씀이 성취되었습니다. 저자 요한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는 것을 하나님의 주권 편에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인간은 왕이 아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으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것을 주목해야합니다. 예수님이 죽으실 때 십자가 위에는 유대인의 왕이라고 쓴 죄패가 있었습니다. 헬라어와 로마어와 히브리어로 유대인의 왕이라고 써붙였습니다.(19:19,20)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유대인의 왕이 되고자 하셨습니다. 온 인류의 왕이 되고자 하셨습니다.

구약에서 보면 진정한 왕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초대왕 사울을 왕으로 삼을 때 몹시 싫어하셨습니다. 사람을 왕으로 세울 때 많은 부작용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왕에게 권력을 줍니다. 왕은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세금을 거두고 군인으로 징집합니다. 사람들의 자유를 억압합니다. 왕은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총이나 칼로 위협합니다.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총이나 칼로 죽입니다.

사람을 왕으로 모시지 말라는 것은 왕의 제도를 인정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왕의 제도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마음의 첫 자리에 사람을 왕으로 두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사람을 의지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사람을 왕으로 모시면 마음이 불안하고 두렵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예수님이 계시는 당시 로마 황제의 통치를 받으면서 않은 사람들이 고통하였습니다. 그들은 로마 황제를 신으로 여겼는데 로마황제는 많은 사람을 불안과 두려움에 떨게 하였습니다. 사람은 진정한 왕이 아닙니다. 그래서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인 후에는 로마 황제 즉위식에는 아주 이상한 일을 했다고 합니다. 왕이 즉위하기 위해서 마차를 타고 갈 때에 옆에 있는 사람이 큰 소리로 외친다고 합니다. 너는 왕이 아니다! 너는 왕이 아니다! 결국 진정한 왕은 하나님이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육신을 입은 하나님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왕이 아니라는 것을 외치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모든 힘을 버리셨습니다. 모든 무력을 버리셨습니다. 모든 권위를 버리셨습니다. 모든 자존심도 버리셨습니다. 자신의 힘과 명예와 권위를 다 버리셨습니다. 지혜도 버리셨습니다. 예수님은 무장을 완전 해제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하신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왕으로 삼으라고 강력하게 웅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나의 왕으로 모실 때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통치할 때 그곳에 힘이 있고 지혜가 있습니다. 영원한 평화와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나는 왕이 아니라는 것을 선언해야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왕이라고 고백해야합니다.

아버지는 나는 진정한 아버지가 아니다.’ 어머니는 나는 진정한 어머니가 아니다.’ 남편은 나는 진정한 남편이 아니다아내는 나는 진정한 아내가 아니다목자는 나는 진정한 목자가 아니다라고 말해야합니다. 하나님만이 진정한 목자라고 말해야합니다. 또한 나는 어떤 것도 나의 왕이 아니라고 외쳐야합니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나의 진정한 왕은 아닙니다. 하나님만이 나의 진정한 왕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진정한 자유를 누립니다.

 

(유대인의 왕이냐)

 

33절을 보십시오. “이에 빌라도가 다시 관정에 들어가 예수를 불러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빌라도는 유대인들의 의도를 알고 관정에 들어가 예수님을 심문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에게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고 물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네가 유대인의 왕 곧 정치적인 반역자냐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의 왕이냐는 말에는 정치적인 왕 외에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유대인의 왕은 메시야의 별칭입니다. 빌라도가 유대인의 왕이냐 묻는 것은 빌라도가 예수님을 진정한 왕 그리스도냐고 묻는 것입니다.

 

(스스로의 질문이냐)

 

34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냐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하여 네게 한 말이냐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이냐 묻는 빌라도에게 오히려 한 가지 질문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빌라도가 스스로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으로 생각하는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니까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물어보셨습니다.

예수님은 발라도가 스스로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구원 받기를 원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빌라도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나는 시간입니다. 독대하는 시간입니다. 예수님은 빌라도가 예수님을 왕으로 영접하고 영생을 얻고 하나님 나라에 가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짧은 시간이라도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죽는 것보다 빌라도 한 사람을 살리는데 관심이 있으셨습니다.

 

(우리는 재판장이 아니다)

 

35절을 보십시오.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빌라도가 이렇게 예수님과 직접 만났다는 것은 하나님의 큰 은혜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독대한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는 구원을 받을 만한 큰 기회를 얻은 거입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그 구원의 기회를 놓쳤습니다. 빌라도는 자신이 유대인이 아니기 때문에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이냐는 것에 관심이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 그리스도로 믿는 것은 유대인의 왕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의 왕은 유대인만 통치하는 왕이 아닙니다. 유대인에게서 나시는 왕은 만왕의 그리스도이십니다. 세계 만민이 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어야합니다. 빌라도는 예수님 앞에서 죄인의 위치에 서야 했습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죄인으로 자신을 발견하지 못하였습니다. 빌라도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죄인으로 보지 못하고 사람들 앞에서 재판장으로 앉아 있었습니다. 그는 재판장의 입장에서 의인인 예수님을 심문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재판장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인입니다. 빌라도는 유대인과 대제사장이 예수님을 반역자로 고소하였는데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느냐고 물었습니다. 왜 그들이 너를 반역자라고 넘겼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여기에 속하지 않은 나라)

 

36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예수님은 빌라도에게 자신이 왕이지만 이 세상에 속한 왕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세상의 왕이라면 제자들이 유대인들과 싸웠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열두 군단이나 되는 천사들이 싸워서 종교지도자들과 로마인을 몰아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눈에 보이는 왕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입니다. 부활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왕이 되셨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보이는 세계를 다스리는 왕이십니다. 새하늘과 새땅을 다스리는 왕입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나의 왕으로 모셔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어떤 것도 우리의 왕이 되지 못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왕이 될 때 우리는 자유를 잃어버립니다. 사람에게 매이고 불안해지고 두려워집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를 왕으로 모셨을 때 그들은 모세가 사라지자 진정한 행복을 잃고 두려워한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이 왕이다)

 

37절을 보십시오.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대

 

빌라도는 어쨌든 예수님에게 왕이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이 왕이라고 하면 예수님은 반역자로 사형판결을 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번에 분명히 나는 빌라도의 말과 같이 왕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왕이 되시기 위해서 태어났으며 왕이 되시기 위해서 세상에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왕이라고 하면 죽으실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도 왕이심을 분명히 증거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온 인류의 왕이 되고자 하셨습니다.

 

(진리의 왕 예수님)

 

예수님은 왕을 위해서 태어났으며 왕으로 증언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왕으로 진리에 대해서 증언하러 오셨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진리의 왕이십니다. 진리를 증거하시고 진리로 다스리는 왕이십니다.

세상 왕은 거짓된 왕입니다. 거짓은 무엇입니까? 거짓과 진실을 어떻게 구분합니까? 요즘에는 참과 거짓을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거짓이 더 참과 같습니다. 거짓과 참은 시간이 지나면 알 수 있습니다. 거짓은 일시적인 것입니다. 세상왕은 일시적인 왕입니다. 세상에 있는 것을 풀과 같고 불의 꽃과 같이 일시적입니다. 이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세상의 것은 죽음과 함께 살아집니다. 세상왕은 언젠가는 죽습니다. 그러므로 그 왕국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왕은 사단입니다. 사단은 거짓말쟁이입니다. 사람들을 위해 주는 것처럼 하지만 결국은 사람을 죽이는 왕입니다.

사단은 예수님에게도 내게 절하면 온천하의 영광을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왕 삼겠다고 하였습니다. 사단은 우리에게 돈을 주고 쾌락을 주고 명예를 주지만 결국은 우리의 목숨을 빼앗아갑니다. 사탄은 예수님에게 영원히 영광을 주지 못합니다.

육신의 몸을 가진 예수님이 영원히 다스리는 것도 거짓입니다. 육신은 쇠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활의 예수님은 진리의 왕이십니다. 진리는 영원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여 영원한 왕이 되셨습니다.

천사는 마리아에게 와서 예수님은 영원히 왕노릇하실 것이요. 그 나라가 무궁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오셔서 우리의 마음을 영원히 다스립니다. 예수님은 새하늘과 새땅에서 영원히 다스립니다. 진리의 왕은 진리의 말씀으로 다스리는 왕입니다. 진리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을 듣는자)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를 다스리는 영원한 왕이십니다. 세상 왕은 법으로 다스립니다. 국회에서 법을 만들고 대통령은 법을 집행하고 법원은 법을 지키지 않은 자를 재판합니다. 예수님은 말씀의 법으로 세상을 다스립니다. 그러면 누가 예수님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법을 지키듯이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합니다. 말씀을 항상 묵상해야 합니다. 입에서 말씀을 떠나지 말게 해야합니다. 은혜 속에서 말씀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해야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다스려주십니다.

 

(진리에 속한 자는 듣는다)

 

37절 후반절에 다시 보면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대

 

예수님은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자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진정한 진리를 찾는 사람은 동방박사처럼 예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왕으로 믿기 위해서는 진리 편에 서야합니다. 세상 편에서 진리 편에 서고자 결단해야 합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의 왕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분명한 결단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영접하는 결단을 해야합니다.

왕은 하나 뿐이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려면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거짓 왕을 몰아내야 합니다. 빌라도는 인간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였습니다.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자 하였습니다. 이런 것이 인본주의입니다. 그는 사람을 왕으로 모셨습니다. 자기 자신을 왕으로 모셨습니다. 인본주의자는 진리의 왕을 섬길 수 없습니다. 우리가 진리의 왕을 섬기려면 사람에게 인정을 구하는 마음을 버려야합니다. 사람들에게 욕 먹을 각오를 해야합니다. 어떤 희생이 있고 어떤 아픔이 있어도 분명히 진리 편에 서야 했습니다. 그러면 진리의 왕 예수님을 모시고 예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진리 편에 서는 결단)

 

38절을 보십시오. “빌라도가 이르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

 

예수님은 진리에 속한 자는 진리 편에 서야한다고 하자 그는 진리가 무엇인가 알고 싶었습니다. 그는 구도자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는 매우 훌륭합니다.

요즘의 많은 사람들이 진리에 대해서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진리보다는 현실의 편안함을 원합니다. 세상의 명예를 추구합니다. 쾌락을 추구합니다. 세상적인 힘을 추구합니다. 이런 면에서 진리를 찾는 빌라도는 훌륭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에게 진리를 설명해주지 않았습니다. 진리는 아는 지식의 문제가 아닙니다. 진리 편에 서고자 하는 결단의 문제입니다. 진리를 알기 위해서서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믿은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습니다. 요한복음 831,32절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예수님은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너희가 진리를 알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자신이 참이라고 생각하는 대로 행해야 진리를 압니다. 진리는 이념이 아닙니다. 진리는 인격입니다. 순종하는 자만이 진리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해야 진리를 알 수 있습니다.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문한 후에 나가서 유대인들에게 나는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무죄를 선언하였습니다. 재판장 빌라도도 예수님이 무죄하다고 공적으로 선언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정치적인 왕이 아닌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영적인 왕이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예수님의 무죄를 인정하고도 예수님을 석방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진리 편에 서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진리 편에 서면 민란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그는 총독에서 쫓겨날지 모릅니다. 이런 희생을 각오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진리 편에 서지 못하였습니다.

우리가 진리대로 행하려면 담대해야합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수아 17절입니다.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하나님은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진리 편에 서라고 하십니다. 여호수아가 진리 편에 섰을 때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승리를 주셨습니다.

 

(타협하는 빌라도)

 

39,40절을 보십시오. “유월절이면 내가 너희에게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으니 그러면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그들이 또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이 아니라 바라바라 하니 바라바는 강도였더라

 

빌라도는 유월절 명절 특사로 예수님을 놓아주고자 하였습니다. 빌라도는 유대인들에게 유대인의 왕 예수님을 놓아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협상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예수님도 놓아주고 인기도 얻고자 하였습니다. 그는 진리에 대해서 타협하고자 하였습니다.

우리는 진리에 대해서 타협해서는 안 됩니다. 진리는 하나입니다. 진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진리입니다. 나의 이해관계를 떠나서 진리입니다. 나의 친소관계를 떠나서 진리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든 소수가 주장하든 진리는 진리입니다. 우리는 진리에 대해서 절대적인 자세를 가져야합니다. 빌라도는 기회주의적입니다. 유약합니다. 줏대가 없습니다. 주위 환경에 부화뇌동합니다. 그는 비겁합니다. 진리를 따라가며 자신을 바치고자 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동시에 약자에 대해서 잔인합니다.

빌라도가 왜 진리 편에 서지 못했을까요? 빌라도는 세속적인 성공을 추구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세속적인 권력을 추구하였습니다. 돈을 추구하고 명예를 추구하였습니다. 자신을 사랑하였습니다. 이런 것을 손해보지 않고자 하였습니다. 이런 것을 추구하면 진리 편에 서지 못합니다. 이런 것을 다 잃을 각오를 해야 진리 편에 설 수 있습니다. 무장해제할 각오를 해야합니다.

예수님은 진리 편에 서고자 40일 굶는 것도 각오하였습니다. 돌로 빵을 만들어 먹으라는 것을 단호히 물리쳤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모든 영광을 포기하였습니다. 십자가의 길을 가고자 결단하였습니다. 이런 각오와 포기가 있어야 진리 편에 설 수 있습니다.

 

(바라바를 놓아주기를 원하는 유대인들)

 

빌라도가 예수님을 명절 특사로 놓아주기를 원하느냐고 묻자 유대인들은 악을 쓰며 예수님이 아니요 바라바요 바라바요하며 바라바를 놓아달라고 외쳤습니다. 바라바는 살인자요 강도입니다.

빌라도는 무죄한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도록 넘겨주고 살인자요 강도를 석방하였습니다. 결국 빌라도는 자신의 정치적인 이익을 위해서 진리를 포기하였습니다. 그는 진리 편에 서지 못하고 인간 편에 섰습니다. 그는 진리의 자녀가 아니라 거짓의 자녀 사단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나를 내려놓고)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이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왕이요. 진리의 왕이십니다. 예수님은 눈에 보이지 않는 왕이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려면 내가 왕 삼은 것을 내려 놓아야합니다. 빌라도는 사람들의 인정을 왕으로 모셨습니다. 스스로 왕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왕 삼은 것을 회개하고 예수님을 나의 왕으로 영접해야합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의지하지 말아야합니다. 예수님을 나의 왕으로 영접하고 진리 편에 서야합니다. 어떤 희생이 있어도 진리 편에 서야합니다.

그러면 왕되신 예수님이 성령으로 오셔서 우리의 마음을 영원히 통치해주십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시고 우리를 그곳의 백성으로 삼아주십니다. 우리가 진리 편에 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요한복음 18장 강해 삼부 진리가 무엇이냐?

요한복음 1828-요한복음 1840 빌라도가 이르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

요절 요한복음 1838

요한복음 18장 강해 삼부 끝입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57 [요한복음] 2019년 신년 제 1 강 하나되게 하소서 220 오요한 2018-12-30
56 [요한복음] 요한복음 21장 강해 삼사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오요한 2009-11-29
55 [요한복음] 요한복음 21장 강해 일이부 현장에 오신 부활의 주님 314 오요한 2009-11-29
54 [요한복음] 요한복음 20장 강해 삼사부 평강을 주신 부활의 예수님 오요한 2009-11-29
53 [요한복음] 요한복음 20장 강해 일이부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오요한 2009-11-29
52 [요한복음] 요한복음 19장 강해 삼사부 다 이루신 예수님 오요한 2009-11-29
51 [요한복음] 요한복음 19장 강해 1 일이부 보라 너희 왕이로다 오요한 2009-11-29
50 [요한복음] 요한복음 18장 강해1 삼부 진리가 무엇이냐(28-40) 오요한 2009-11-29
49 [요한복음] 요한복음 18장 강해 1일이부 체포당하신 예수님(1-27) 오요한 2009-11-29
48 [요한복음] 요한복음 17장 강해 삼사부 하나되게 하옵소서.(14-26) 오요한 2009-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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