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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요한복음 6장 강해 9,10부 너희도 가려느냐 (6장 60-71)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6-03-26 00:00:00
조회수 : 3,177

문제지풀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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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6장 강해 6부 너희도 가려느냐

말씀 요한복음 660-요한복음 671

요절 요한복음 667절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교회에는 많은 사람들이 옵니다. 그러나 그들이 다 교회에 다니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다닙니다. 하지만 교회에 다니는 그 사람들이 다 하나님 나라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 가운데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자만 하나님 나라에 갑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남는 자를 통하여 구원 역사를 이루십니다.

떠나는 자는 왜 떠날까요? 어떤 자가 남는 자가 될 수 있을까요? 말씀을 통하여 남는 자가 되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말씀이 어렵다는 무리들)

 

60, 61절을 보십시오.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 대 예수께서 스스로 제자들이 이 말씀에 대하여 수군거리는 줄 아시고 이르시되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예수님은 떡 다섯 개와 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이튿날 배고픈 무리들은 다시 떡을 달라고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모세가 광야에서 만나를 주신 것처럼 만나를 매일 내려 주시기를 원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처음에는 떡을 주셨지만 계속하여 떡만 바라는 이들에게 떡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떡을 주는 대신에 예수님 자신이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살이 참된 양식이요. 예수님의 피가 참된 음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나는 먹어도 죽지만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이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와 찢기신 살의 의미를 영접하고 영생을 얻기를 원하였습니다. 마지막 날에 죽지 않고 다시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무리뿐 아니라 제자들의 반응은 어떠합니까? 제자들은 예수님을 항상 따르는 자들입니다. 제자들 중에 여럿은 예수님의 말씀이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자신들을 식인종이나 드라큐라 취급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자신들이 아무리 배가 고프다고 해도 예수님을 잡아서 그 살과 피를 먹겠느냐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이 말씀에 대해서 수군거리는 줄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영접하지 못하고 실족될 것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이 실족할 것을 아시고 이들을 깨우쳐 주십니다. 예수님은 이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어려워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복음이 완성되면 알게 된다면)

 

62절을 보십시오. “그러면 너희는 인자가 이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본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우리는 말씀을 어려워하는 제자들이 어느 정도는 이해됩니다. 예수님은 당시에 십자가에 죽으시지도 않으시고 부활하지도 않으셨습니다. 복음이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이들이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신다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것처럼 보입니다.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라는 말씀을 근거로 크리스찬을 식인종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이들이 지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아시고 앞으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여 승천하실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당시는 말씀을 이해하기 어려워도 조금 참고 견디면 살을 먹고 피를 마신다는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다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을 만납니다. 이때 우리는 이 말씀을 억지로 이해하려고 노력해서는 안 됩니다.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을 나의 짧은 지식으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것을 기초로 실족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깨닫게 할 때가지 기다려야합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예수님이 열두 살 때 행적이 나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하고 갈릴리로 돌아가는 데 예수님이 없어졌습니다. 부모들은 다시 오던 길을 돌아가서 사흘만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그곳에서 성경선생들과 토론을 하고 있었습니다. 부모들은 예수님께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아버지와 내가 찾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집에 있어야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며 어머니를 질책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양친은 이런 말을 하는 어린 예수님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양친은 예수님을 판단하고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그 어머니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다고 판단하지 않고 마음에 두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나중에 깨닫게 하십니다. 저는 대학교 때 하나님의 예정에 대해서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예정이 되었다면 우리가 열심히 믿으려고 해도 믿을 수 없고 믿지 않으려고 해도 결국은 믿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를 한 목자님께 질문했습니다. 그분은 저에게 예정론을 설명하려고 하지 않고 조금 성숙하면 알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대신에 나에게 칼국수를 점심으로 사주셨습니다. 저는 이 말을 마음에 두고 있었고 신앙이 성장한 후에 이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창세 전에 우리를 택하시고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믿을 때 우리는 이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러나 예정론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결정론과는 다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격을 존중하며 인격적으로 인도하십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창세기에 이삭이 믿음의 결혼을 한 것에 대해서 너무 어렵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모른다고 믿음의 결혼에 대해서 함부로 말하고 판단하지 말아야합니다. 우리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모든 일을 믿음으로 합니다. 믿음으로 공부하고 믿음으로 일하고 믿음으로 양들을 감당합니다. 믿음의 결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다만 믿음으로 결혼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결혼은 우리의 중심이 하나님을 중심으로 바뀌고 인간적인 사랑이 아닌 하나님의 사랑을 알 때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됩니다.

요즘에 불신자들은 교회에 대해서 비판이 많습니다. 교회가 웬 십일조를 거두어들이느냐 교회가 왜 그렇게 전도에 열을 내느냐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신앙이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 있는 사람들은 십일조를 내는 것이나 선교하는 것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영접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들과 쓸데없는 논쟁을 벌일 필요가 없습니다. “너희가 예수님 믿고 믿음이 성장하면 다 알게 돼.“ 라고 말하면 됩니다.

저는 과거 욥기 말씀을 보면서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앞부분에서는 조금 은혜를 받지만 뒷부분에서는 다 같은 말 같고 누구 말이 옳고 누구 말이 그른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올해 양식을 통해서 욥기를 보면서 몸에 전율을 느꼈습니다. 그만큼 욥기가 은혜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전에 이해가 되지 않던 말씀도 시간이 흐르거나 신앙이 성장하면 이해가 될 때가 있습니다.

 

(관심이 육적인 데 있는 무리들)

 

63절을 보십시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들은 말씀을 통해서 떡을 얻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을 주시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영생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이 주시고자 하는 것과 무리들이 얻고자 하는 것이 다르니 무리들이 말씀을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아버지께서 주시는 참 떡을 주시겠다고 하자 그들은 아주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아멘! 하고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떡을 주시지 않고 내가 떡이라고 하자 이들은 수군거렸습니다. 그들은 육신의 떡을 먹고자 하니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성경을 기록한 목적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주제가 무엇입니까? 성경의 주제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성경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얻고 현재 행복을 누리고 죽어서는 천국에 가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시고자 한 것이 무엇입니까?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으면 큰 민족을 주신다고 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진정 주시고 하시는 것은 자식의 축복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십오 년만에 자식 하나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자식도 번제로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주시고자 하신 것은 바로 하나님 자신입니다. 하나님을 통해서 영생을 얻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서로 달랐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신앙에 갈등이 생겼습니다. 아브라함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 자신을 얻고자 할 때 비로소 신앙적인 갈등이 그치고 영생을 소유할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경을 읽는 목적은 세상적인 데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바람직한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처세를 잘 할 수 있는가? 이런 것입니다.

물론 성경에서 이런 것도 배울 수 있지만 이는 부수적이지 본질적인 내용이 아닙니다. 이런 것이 초기 신앙 생활할 때는 성경공부를 하는 목적이 될 수 있지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은 후에는 이것이 바뀌어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가 예수님을 떠나게 됩니다.

초기에 신자들은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서 고기를 잡으라 말씀하시고 이에 순종하여 그물이 찢어지도록 고기를 잡은 베드로를 보면 은혜를 받습니다. 그들은 자신도 믿음으로 순종하면 장학생이 되고 믿음으로 교수가 되겠다고 합니다. 믿음으로 십일조를 백만 원을 드릴 수 있다고 생각하고 기쁨이 충만합니다. 실제 이 말씀에 순종하여 현실에서 성공한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죄송하지만 이것을 목적으로 삼아서는 복음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고기를 많이 잡게 하셨지만 그 다음도 읽어야합니다. 그 다음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고기잡이를 그만 두고 예수님을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주시고자 하신 것은 고기가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체험하였으면 예수님을 중심으로 인생의 목적을 바꾸어야합니다.

사람들은 너희 처음은 미약하였으나 나중은 창대하리라.” 말씀을 매우 좋아하고 집에나 가게에 써 붙여 놓습니다. 이 말씀은 빌닷이 욥에게 카운슬링한 말씀입니다.(욥기 87) 빌닷은 욥의 문제를 정확히 알지 못하고 일반적인 카운슬링을 하다가 하나님의 책망을 받았습니다. 성경은 이 말씀을 통해서 아무리 맞는 말이고 좋은 말씀이라도 상대방을 정확히 알고 이해하고 말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사람들은 이런 성경의 가르침보다는 자기중심적으로 성경을 이해합니다. 사람들은 내가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는 말씀을 매우 좋아합니다. 사람들은 이 말씀을 보고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부자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사도바울은 자족하는 비밀을 말씀하시면서 주신 말씀입니다. 바울은 내가 부에도 처할 줄도 알고 가난에도 처할 줄을 알고 모든 것에서 자족할 줄을 안다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말씀을 오해합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부자가 될 수 있다고 받아들입니다.

어쨌든 사람들의 관심은 성경 말씀을 이용하여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서 잘 살고 건강하고 복 받을 수 있느냐에 관심을 갖습니다. 우리가 이를 책망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얻은 후에 방향 전환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는 예수님을 떠나게 됩니다. 영생을 얻고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 우리는 성경 말씀을 통해서 생명을 얻는데 관심을 가져야합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죄사함을 얻고 어떻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가 관심을 가져야합니다. 오직 하나님 나라를 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육의 문제도 책임지시고 인도하십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여러분은 교회에 왜 나오십니까? 어떤 분은 결혼하기 위해서 유비에프에 나온 분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결혼의 꿈이 있을 때는 열심히 교회에 다녔습니다. 교회에 있는 자매들이 좋아서 나왔습니다. 새벽기도까지 나왔습니다. 그러나 결혼의 꿈이 깨어지자 미련없이 떠났습니다. 또 어떤 분은 세상에서 연애를 하였습니다. 그는 말씀을 공부하면서 그 꿈이 깨어질 것 같으니 미련 없이 교회를 떠났습니다. 어떤 사람은 유비에프에 있는 분들이 장학생이 많이 되니까 자신도 장학생이 되고자 나왔습니다. 한 분은 진짜 장학생이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꿈을 이루자 교회를 떠났습니다. 또 한 분은 장학생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도 화가 나서 떠났습니다. 이 모든 사람들이 무엇이 문제입니까? 그들의 관심이 세상적이고 육적인데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처음에는 이런 세상적인 동기로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동기를 바꾸지 않으면 그 사람은 예수님을 끝까지 따를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병원에 왜 갑니까? 의사를 만나러 가는 것이 아닙니다. 병을 고치러 갑니다. 어떤 사람은 병을 고쳐서 병원을 떠나고 어떤 사람을 병을 고치지 못해서 병원을 떠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외에 목적이 세상에 있으면 결국은 예수님을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이런 세상적인 데서 예수님께로 목적을 돌려야합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구해야합니다,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주지 않으면)

 

64-66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아심이러라. 또 이르시되 그러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예수님은 제자들 중에 믿지 않는 자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지 않으면 아무도 예수님께 올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지 않으면 예수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예수님을 믿을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깨우쳐 주셔야 성경 말씀을 깨달아 알 수 있습니다.

성경 말씀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기록된 말씀입니다. 우리는 인간의 지혜로 성경 말씀을 알 수 없습니다. 성령이 임하셔야 우리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인간적인 지혜로 성경을 알려고 하다가 알지 못하고 넘어지는 자가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름수양회에서 말씀을 듣고 회개하였습니다. 매번 들은 말씀이고 어떤 분은 여러 번 들은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회개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때 성령께서 임하셔서 말씀을 깨닫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말씀이 어렵게 느껴질 때는 말씀을 깨닫도록 기도해야합니다.

저는 과거 말씀을 전하려면 이 사람 저 사람 메시지를 많이 보았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 짜깁기를 해서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그러나 기도를 배우고 복음을 알게 된 후에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말씀을 가지고 기도합니다. 특히 주일날 새벽기도 때 말씀에 기초하여 기도합니다. 기도하다 보면 성령께서 말씀을 많이 깨우쳐 주십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썼던 메시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말씀을 쓰게 됩니다. 나에게 이 시간이 가장 기쁜 시간입니다.

전에는 스텝 미팅에 가서 열심히 받아쓰고 정리하여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말씀을 배우지 않으면 말씀을 전할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말씀을 배우는 자세는 옳은 자세입니다. 그러나 이때도 우리는 그 사람의 말을 들으려 하기보다 성령께서 나에게 주시는 말씀을 들어야합니다. 성령께서 그분에게 깨우쳐주신 말씀을 듣고자 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성령님께 말씀을 배우는 자세입니다.

성령님이 말씀을 깨우쳐주시면 그 달콤함을 알 수 있습니다. “주의 말씀이 어찌 그리 단지요? 꿀송이보다 더 하니이다.” 고백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성령께서 오시면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고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생각나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 가운데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가 가룟유다이고 그가 자신을 팔 자임을 아셔습니다. 예수님은 그가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사도로 쓰임 받기를 원하셔서 너희 중에 나를 팔자가 있다고 안타깝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도 가려느냐)

 

67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예수님께서 떡을 주셨을 때 찾아온 무리는 많았습니다. 남자 어른만 오천 명이니 전체는 적어도 만 오천은 되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교회가 부흥되었으니 얼마나 큰 역사입니까? 그러나 그렇게 많이 모였다고 부러워할 것이 없습니다. 이들에게 떡을 주지 않고 영생의 말씀만 주자 모두가 다 떠났습니다. 예수님과 열두 사도만 남았습니다. 예수님은 남은 열두 사도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도 가려느냐?”

 

예수님은 많은 제자들까지 떠나자 매우 서운하셨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떠나자 열두제자도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예수님은 남은 열두 사도를 보며 분명한 결단을 촉구하셨습니다. 너희도 무리와 같이 다른 제자와 같이 가겠느냐 물으셨습니다. 가지 않고 남는다면 왜 남는지 분명한 소신을 가지고 남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교회에 왜 남아 있습니까? 왜 교회를 떠나지 않고 남아 있습니까? 우리는 내가 소망하는 것에 대한 분명한 이유르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합니다. 저는 예전에 이 말씀을 한 자매에게 준 일이 있습니다. 그때는 다른 한 자매가 이만회가 하는 신천지 이단으로 떠났습니다. 그가 떠나자 함께 공동 생활하던 두 명의 자매가 떠났습니다. 남아 있는 한 자매도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저는 그 자매에게 이 말씀을 주며 분명한 결단을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 자매는 믿음의 결단을 하고 남았습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분명한 결단을 하고 예수님을 따라야합니다.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68,69절을 보십시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베드로의 대답은 아주 분명합니다. 그는 영생의 말씀이 계시므로 예수님을 떠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도 처음에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많은 고기를 잡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고 대박이 터졌습니다. 하지만 베드로의 위대한 점은 방향을 바꾼 것입니다. 그는 고기를 따르던데서 예수님을 따르는 것으로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독립을 시켜 주실 것이니 따른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자신을 총리로 삼아 주실 것이므로 따른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영생의 말씀이 게시므로 떠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영생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바로 태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고 예수님을 통하여 영생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으므로 예수님을 떠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였습니다. 자신을 위해서 목숨까지 주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이 주시고자하는 하나님 나라를 알았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확신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떠날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할 때 우리는 남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영생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구원의 복음을 알 때 우리는 남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꼭 잡는 자가 남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관심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갖는 자가 남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말씀을 믿고 아는 삶)

 

베드로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임을 어떻게 알았습니까? 그는 예수님이 영생의 말씀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는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말씀을 체험하였습니다. 깊은데로 가서 고기를 잡으라고 하셨을 때 순종하여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알았습니다. 그는 계속하여 예수님을 따르며 예수님의 말씀이 얼마나 능력이 있는지도 알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죽은 자를 살리고 바람과 바다를 잔잔케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이를 통하여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심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이 진정한 구원자요. 그리스도이심을 알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져 보고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 수 없습니다. 눈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봄으로 예수님을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말씀공부하고 순종하는 것을 통하여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 생명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를 확신하고 말씀을 전해야합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해야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말씀의 역사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공부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말씀을 믿고 순종해야합니다. 알고 나서 믿는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먼저 믿고 순종하면서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알았습니다. 우리는 한 말씀이라도 믿고 순종해야합니다. 그래야 예수님이 그리스도임을 알 수 있습니다.

 

(택한 자 중에 있는 마귀)

 

70,71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의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그는 열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

 

지금 떠나지 않고 남은 자 중에 마귀와 같은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바로 가룟 출신 유다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열두 사도입니다. 그는 전도 여행 가서 예수님을 믿고 능력도 행했습니다. 귀신도 좇아내고 병자도 고쳤습니다. 그는 계산이 분명하여 재정부 일도 맡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중심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님보다 돈을 더 사랑했습니다. 그는 하나님나라다 이스라엘 민족을 더 사랑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독립국가의 왕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통하여 돈을 벌고자 하였습니다.

 

(더 사랑하는 자)

 

다른 열한 제자들도 가룟유다 같은 마음이 없었다면 거짓말입니다. 그러나 다른 제자들은 세상적인 것보다 예수님을 조금 더 사랑하였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십자가 앞에서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마음 중심으로 예수님을 사랑하였기 때문에 회개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던 베드로에게 찾아오셔서 물으셨습니다.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그렇습니다. 우리가 남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세상의 어떤 것보다 주님을 더 사랑해야합니다. 우리가 다른 것을 더 사랑할 때는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그 가운데 우리 모두 남는 자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모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요한복음 6장 강해 6부 너희도 가려느냐

말씀 요한복음 660-요한복음 671

요절 요한복음 667

요한복음 6장 강해 6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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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요한복음] 요한복음 5장 강해 7,8부 예수님에 대한 증거 (5:30-47) 오요한 2005-03-12
18 [요한복음] 요한복음 5장 강해 오육부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요5:19-29) 오요한 2005-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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