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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요한복음 6장 강해 일이부 오병이어의 기적(6:1-15)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5-03-12 00:00:00
조회수 : 2,837

문제지풀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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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6장 강해 일부 오병이어의 기적

말씀 요한복음 61-요한복음 615

요절 요한복음 615절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

 

기독교는 기적의 종교라고 합니다. 성경에는 많은 기적들이 나옵니다. 본문에도 예수님은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는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기적을 혼자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제자들과 함께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계산을 한 빌립은 예수님의 기적의 역사에 쓰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병이어를 드린 안드레는 예수님의 기적에 쓰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기적을 행하십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기적을 행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이 기적을 통하여 예수님이 생명의 떡임을 가르쳐주십니다. 우리에게도 예수님이 하시는 기적이 나타나고 예수님을 생명의 떡으로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표적을 보고)

 

1,2절을 보십시오.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음이러라.”

 

여기서 그 후는 다른 복음서를 참고하면 제자들이 전도여행을 마친 후입니다. 제자들은 전도 여행에 나가서 많은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피곤한 것을 아시고 한적한 곳에서 잠간 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디베랴 바다라고 하는 갈릴리 바다 건너편 벳세다 지방으로 가셨습니다. 이곳은 갈릴리 호수의 동쪽입니다. 이곳은 지금도 아름다운 곳으로 휴양지 사람들이 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오랜만에 맛보는 휴식으로 갈릴리 바다에 불어오는 바람처럼 기분이 시원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제자들은 쉴 수가 없었습니다. 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만나고자 몰려들었습니다.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자 예수님의 이름이 드러났습니다. 그들은 병자들을 고치는 능력을 보았습니다. 무리들은 능력의 근원 되시는 예수님을 만나고자 예수님께로 나왔습니다. 구름처럼 많은 사람이 모여 들었습니다. 이들은 주로 병들고 귀신들리고 가난하고 연약한 자들이었습니다.

 

(불쌍히 여기사)

 

3,4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님은 무리가 모이자 제자들과 함께 산에 오르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자리를 예수님과 함께 얕은 산 위에 마련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지도자로서 훈련시키고자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많은 무리가 나오는 것을 볼 때 조금 부담스러웠을 것입니다. 무리들은 제자들의 휴식을 방해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목자의 상황은 전혀 생각지 않고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자들입니다. 제자들은 이 무리를 볼 때 판단하는 마음이 생겨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이들은 벼룩만도 못한 자들이야 벼룩도 낯짝이 있다는데 이들은 낯짝도 없는 자들이야.’ 그러나 예수님은 이들을 보시고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않으셨습니다. 마가복음을 참조하면 예수님을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마가복음 6:34) 예수님은 그들이 당하는 질병의 고통을 아셨습니다. 그들의 배고픔을 아셨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서 무의미와 허무에 시달림을 아셨습니다. 그들이 죽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불쌍히 여기사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불쌍히 여기는 것이 예수님의 마음이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유월절 떡으로)

 

당시는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 때입니다. 유월절에는 무리들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야합니다. 그러나 당시에 성전은 썩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성전을 허물고 자신이 살아 있는 성전이 될 것이라고 선포하였습니다. 무리들은 유월절에 살아있는 성전이 되시는 예수님께로 나왔습니다. 특히 유월절에 이들을 보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남달랐을 것입니다. 유월절은 양의 피를 흘려서 이스라엘의 장자가 죽음의 재앙에서 살아난 날입니다. 그들이 430년 애굽의 종살이에서 벗어나 가나안 땅으로 출발한 날입니다. 신약에서 유월절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는 날입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날 자신을 어린 양으로 십자가에 내어주셔서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십니다. 자신의 살과 피를 온 인류에게 주시고자 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유월절 양이 되시는 예수님에게로 나왔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유월절에 무리를 보시며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와 죽음의 고통에 시달리는 이들을 보시고 깊은 슬픔을 느끼셨습니다.

 

(기적은 긍휼에서)

.

예수님의 기적은 불쌍히 여기는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출애굽의 기적이 어디서 시작되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노예살이로 고통하였습니다. 그들은 너무 고통스러워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불쌍히 여기서 열 가지 기적을 행하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나사로를 왜 살리셨습니까? 예수님은 죽음의 고통에 떠는 마르다와 마리아와 제자들을 불쌍히 여기사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예수님이 왜 문둥병자의 병을 치료하셨습니까? 문둥병자의 고통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셔서 치료하셨습니다. 우리 가운데 기적을 기대하십니까? 우리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말 안 듣는 캠퍼스 양들을 볼 때 판단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이들은 말씀 공부의 소원도 별로 없습니다. 약속을 하더라도 잘 지키지도 않습니다. 차라리 이런 양들은 지옥이나 가라고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바리새인의 마음이지 예수님의 마음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불쌍히 여기는 아음입니다. 불쌍히 여겨야 주님은 기적을 행하십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빌립을 지도자로 키우고자)

 

5,6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예수님은 눈을 들어 큰 무리에게 나아오는 것을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보시고 이들을 먹이고자 하는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아브라함을 시험할 때 어린양을 준비할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은 무리를 먹이고자 하는 마음으로 충만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혼자 먹이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이들을 먹이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문제를 통하여 제자들을 훈련하고자 하셨습니다. 제자들을 영적인 지도자로 키우고자 하셨습니다. 제자 중에 특히 빌립을 영적인 지도자로 훈련하고자 하였습니다. 빌립은 벳세다 가까운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빌립을 직접 전도하셨습니다. 구약 성경에 해박하였습니다. 빌립은 머리가 좋았습니다. 스마트한 이미지였습니다. 매우 합리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헬라어도 잘했습니다. 당시에 지성인이라고 하는 헬라인들이 빌립과 가장 친하게 지냈습니다. 빌립은 세상적으로 볼 때 지도자 감이었습니다. 마치 사도 바울과 같은 세계적인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빌립을 영적인 지도자로 키우기를 원하셔서 빌립에게 물어보셨습니다. 예수님은 빌립을 하나의 샘플로 제자들을 훈련하기를 원하였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먹이자)

 

예수님은 빌립에게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들을 먹이겠냐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빌립이 떡도 없고 돈도 없다는 것을 잘 아셨습니다. 그러면서도 빌립에게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들을 먹이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라는 말에 주목해야합니다. ‘우리는 일인칭 복수형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라고 말씀하셨으니 우선 우리는 예수님이 포함되는 말씀입니다. 다음에 우리는 예수님이 물어본 빌립을 포함하는 말입니다. 더 나아가 그곳에 있는 제자들을 포함합니다. 예수님은 빌립에게 내가 무리를 먹이고자하는데 너는 무엇을 하겠느냐고 물은 것입니다. 너도 나와 함께 무리를 먹이자는 말입니다.

 

(합리성, 정확성을 가진 빌립)

 

7절을 보십시오.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빌립은 빠르게 무리의 수를 헤아렸습니다. 그들에게 최소로 주었을 경우에 한 사람당 천 원짜리 김밥을 주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빌립은 한 사람의 식사비를 그곳에 있는 만 명의 사람들의 수에 곱하여서 총액이 천만 원 든다고 계산했습니다. 이백 데나리온임은 약 이천만 원의 돈입니다. 빌립은 결론적으로 무리들에게 조금씩만 주어도 이백 데나리온이 부족하다고 하였습니다. 그가 수학적인 사고력이 뛰어난 것은 지도자로 아주 좋은 것입니다. 지도자는 합리성, 정확성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면에서 수학을 잘하는 사람이 지도자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제껴놓고 혼자하고자 한 빌립)

 

하지만 그는 자신이 할 일만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이 할 일을 생각지 않았습니다. 그는 우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빌립 자신만 생각했지 예수님을 생각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은 내가 예수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포함하여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많은 병자를 고친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바람과 바다를 잔잔케 하는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엘리야를 통하여 떡 조금으로 사렙다 과부를 오랫동안 먹이신 하나님이십니다. 엘리사를 통하여 떡조금으로 선지자 무리를 먹이신 분이십니다. 그분과 함께 생각하면 우리는 불가능성 속에서 가능성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원하는 것은 내가 다 책임지고 먹이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하실 것을 믿고 내가 떡 몇 개나 있는지 찾아서 예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에게는 예수님의 마음이 부족하였습니다. 무리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빌립은 계산만 하다가 예수님이 원하시는 떡을 찾아서 드리지 못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고자 할 때 돈과 사람과 시간을 생각하고 할 수 없다고 합니다. 결국 빌립은 예수님의 시험에서 떨어졌습니다. 이때 혜성처럼 나타난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에수님의 마음을 가진 안드레)

 

8,9절을 보십시오.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안드레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우리에 자신도 포함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자신을 보며 묻지 않았지만 자신도 예수님의 질문에 포함시켰습니다. 안드레는 별로 유명하지 않은 제자입니다. 그는 능력도 없고 지혜도 없고 영향력도 없었습니다. 요한복음의 저자인 요한도 안드레를 베드로의 형제라고 한 것을 볼 때 안드레는 그렇게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안드레가 베드로를 인도했지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만 주목했지 안드레에게 관심을 두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안드레는 예수님의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알았습니다. 무리를 먹이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명령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이 다 먹이시는데 자신이 떡 몇 개나 있는지 찾아보기를 원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알았습니다.

 

(안드레의 오병이어)

 

안드레는 먼저 자신의 주머니를 찾았으나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재정부 실무를 맡은 유다에게 물어도 돈이 없었습니다. 안드레는 낙심치 않고 무리 가운데 먹을 것이 있는지 찾아보았습니다. 그는 자기가 가진 것이 없자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찾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른들은 가진 것이 없었습니다.

안드레는 무리 가운데서 보리 떡 다섯 개와 썩은 눈을 가진 고기 두 마리를 점심으로 가져온 아이를 보았습니다. 안드레는 작은 것을 소중히 여겼습니다. 안드레는 아이를 설득하였습니다. 아이에게 떡과 고기를 달라고 하여도 아이는 막무가내였습니다. 안드레는 함박꽃과 같은 웃음을 웃으며 그에게 예수님을 소개하였습니다. “얘야, 예수님께 가면 좋은 일이 일어난단다. 우리 이 떡과 고기를 가지고 예수님께 가볼까?” 아이도 안드레의 웃는 얼굴에 침 뱉지 못하였습니다. 아이는 안드레를 따라서 예수님 곁으로 나왔습니다. 안드레는 아이와 함께 떡 다섯 개와 고기 두 마리를 예수님께 드렸습니다.

안드레도 이것이 오천 명을 먹이는데 너무 부족한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 부족한 것은 우리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이 채워주시기를 바랐습니다. 그의 믿음도 온전하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도 미숙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미숙함 가운데서 자신의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안드레의 오병이어를 받으시고 무리를 먹이셨습니다. 스리랑카의 선교사님은 두 아들의 이름을 오병과 이어로 지었습니다. 그들이 귀하게 쓰임 받게 합니다.

 

(예수님과 마음이 통하는 자)

 

하나님의 역사는 꼭 머리 좋은 사람을 통해서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지도자는 이이큐를 가지고 뽑는 것이 아닙니다. 영어나 수학을 잘한다고 지도자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이 쓰시는 지도자는 예수님의 마음을 알고 자신이 할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예수님과 마음이 통했습니다.

마음이 있으면 길이 보이고 마음이 없으면 핑계가 보입니다. 그는 불가능하지만 예수님의 능력을 믿고 자신의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머리만 굴리며 있는 자를 쓰지 않습니다. 몸을 움직여 일하는 사람을 쓰십니다. 나에게 떡이 얼마나 있는지 찾아보는 사람을 쓰십니다. 예수님을 보고 불가능에 도전하는 사람을 쓰십니다. 사실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고자하는 것은 마치 산을 옮기는 것처럼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산을 옮기기 위해서 한 삽이라도 흙을 퍼서 나르는 사람입니다. 마치 거북이가 토끼에게 우리 경주하자고 도전하듯이 도전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믿음의 사람을 쓰십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기적을 행하십니다.

 

(우공이산)

 

혹시 우공이산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태형과 왕옥이라는 산이 있습니다. 우공이라는 사람은 나이가 90인데 이 두 산으로 인하여 돌아다녀야 하는 불편을 겪었습니다. 그는 이 두 산의 흙을 발해만까지 옮기고자 하였습니다. 발해만까지 흙을 옮기는데 일 년이 걸립니다. 사람들은 불가능하니 어리석을 짓을 그만 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내가 하지 못하면 자녀들이 하고 자녀들이 하지 못하면 손주가 할 것이라고 하며 흙을 옮기기 시작하였습니다. 산신령이 이를 보고 불쌍히 여겨서 옥황상제에게 고하였더니 옥황상제가 산을 옮겼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우공이산 하면 어리석은 사람이 산을 옮긴다는 뜻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요즘에는 쉬지 않고 한 가지 일을 하면 큰일을 이룬다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안드레는 참으로 우공과 같은 사람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믿고 불가능에 도전하면 하나님은 큰일을 이루십니다.

 

(ubf의 도전)

 

우리 유비에프를 통한 세계선교도 안드레와 같은 도전을 통하여 이루어진 일입니다. 누구도 당시에 한국이 세계선교를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평신도를 통해서 세계선교를 도전하였을 때 하나님은 놀라운 일을 이루셨습니다. 지금 캠퍼스 제자양성이 어렵다고 합니다. 이는 캠퍼스 전도를 해본 사람은 누구나 공감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안드레처럼 기도와 말씀과 섬김의 오병이어를 드릴 때 하나님은 우리를 쓰셔서 놀라운 캠퍼스 복음의 진보를 이루실 것을 믿습니다.

 

(기적을 행할 준비)

 

10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니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

 

예수님은 안드레가 가져온 오병이어를 보시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무리를 먹이고자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시키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서 무리를 정돈시켰습니다. 몇 명씩 소그룹으로 줄을 세웠습니다. 예수님은 이를 통하여 제자들이 기적을 몸으로 직접 체험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예수님에 대한 관심을 갖고 기적을 행할 준비를 시켰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으로 먼저 먹을 준비를 시키셨습니다.

 

(사람들의 원대로 주신 예수님)

 

11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예수님은 떡 다섯 개를 가지고 하나님께 크게 감사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셨습니다. 크게 감사 기도하시고 무리들이 원하는 만큼 고기도 나누어주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떡이나 고기의 양을 보고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그곳에 들어 있는 안드레의 믿음과 사랑을 보고 감사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기도를 들으실 것을 믿고 감사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어찌 된 일입니까? !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아무리 떡을 떼어주어도 떡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물고기도 그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원대로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간질나게 주시지 않았습니다. 풍성하게 주셨습니다. 우리가 필요한 만큼을 주십니다. 우리의 부족함을 채워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잔이 넘치게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 자신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안드레는 불씨를 제공했지만 예수님은 그 불씨로 불이 활활 타오르게 하였습니다.

 

(엘리야의 기적)

 

어떻게 이런 기적이 가능했을까요? 우리는 구약에서도 이런 유사한 예를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3년 육개월 비가 내리지 않을 것을 예언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가뭄의 때에 엘리야을 사르밧이라는 과부에게 보냈습니다. 사르밧 과부는 몹시 가난했습니다. 그녀는 가루 조금과 기름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것으로 떡을 만들어 먹고 자살하여 죽고자 하였습니다. 엘리야는 이 과부에게 가루로 떡을 만들어 먼저 자신에게 가져오라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이는 어려운 명령입니다. 차라리 벼룩의 간을 빼먹는 것이 낫지 어떻게 조금 남은 그것을 빼앗아 먹습니까? 하지만 여인은 엘리야의 말에 순종하여 떡을 만들어서 먼저 엘리야에게 드렸습니다. 그랬을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삼년 육개월 동안 떡을 만들어 먹었어도 기름과 가루가 그치지 않았습니다. 기적이 나타난 것입니다. 여기서 사르밧 과부가 드린 떡과 안드레가 드린 오병이어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기적의 원동력을 알겠습니까? 우리는 여기서 오병이어에 담긴 기적의 원동력은 두 가지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병이어는 가진 모든 것)

 

첫째는 우리의 가진 모든 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오병이어는 작은 것이지만 과부의 두 렙돈처럼 그들이 가진 전부입니다. 하나님은 양을 보지 않으십니다. 그곳에 담긴 진심을 보십니다. 우리는 가장 귀한 것을 드려야합니다. 그것이 오병이어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가진 이삭을 주님께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이삭을 통하여 하늘의 별처럼 번성하게 하셨습니다.

 

(오병이어는 가장 귀한 것)

 

둘째는 가장 귀한 것을 먼저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귀중한 것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시간도 귀합니다. 물질도 귀합니다. 우리의 몸도 귀합니다. 이것은 나에게 꼭 필요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귀한 것을 먼저 자신에게 씁니다. 이런 자들은 기적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그것으로 끝입니다. 우리가 기적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먼저 귀한 것을 하나님께 드려야합니다.

 

(우리의 오병이어)

 

예수님은 우리에게 우리가 어디서 말씀을 가져다가 천안 캠퍼스 양들을 먹일 수 있는가?” 물어보십니다. 예수님은 양들이 얼마나 영적인 소원이 없는지 아십니다. 우리가 앙케이트를 백 명해도 교회 다니는 사람들 외에는 영적인 소원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도 아십니다. 우리가 얼마나 직장일과 학교 일과 가정 일에 바쁜 지도 잘 아십니다. 우리가 아줌마 아저씨라 이들을 돌보는 것에 세대 차이를 느끼는 것도 아십니다. 그런데도 우리에게 어떻게 천안 캠퍼스 양들을 먹일 수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이런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이 우리가 어떻게 양들을 먹일 수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우리가 이 일을 위해서 할 일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먼저 회개와 순종과 감사와 사랑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먼저 심자가를 짐으로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것입니다. 시간을 드려 기도하는 것입니다. 물질을 먼저 드려 캠퍼스 역사를 동역하는 것입니다. 시간되는 대로 전도하는 것입니다. 그때 주님이 친히 일하실 것을 믿습니다.

 

(기적을 잊지 말게)

 

12,13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예수님은 그들이 배부른 후에 남은 것을 거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배부르게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습니다. 예수님이 풍성하게 먹이십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떡을 먹은 것에 그치지 않고 능력과 사랑의 예수님을 영원히 기억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잊어버렸을 때 그때 배부르게 먹고 거둔 떡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으십니다.

 

(예수님은 경제 메시야가 아님)

 

14,15절을 보십시오.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

 

무리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경제 메시야로 생각하였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모시면 그들은 항상 배부를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들을 떠나셨습니다. 예수님은 경제 메시야로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고자 하는 영적인 메시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예수님 자신을 주시고자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린 피와 찢긴 살을 그들에게 떡과 포도주로 주시고자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몸은 참 떡이요. 예수님의 피는 참 음료입니다. 예수님은 유월절에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으시고 살아나신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경제 메시야가 아니라 영적인 메시야로 오셨습니다. 우리 마음 속에 하나님 나라를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실 때 진정한 만족이 있고 힘이 넘쳐납니다. 우리는 죽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왕으로 삼고자 하는 자들을 피하여 산으로 가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기적을 만들자)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우리에게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천안 캠퍼스 양들을 먹이겠느냐고 물으십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먹이고자하는 마스터플랜을 가지고 계십니다. 다만 우리에게 함께 이 일에 동역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우리의 오병이어를 찾아서 주님께 드림으로 우리를 통하여 놀라운 캠퍼스 개척과 제자양성의 기적을 이루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먼저 십자가를 짐으로 나 자신을 드리기 원하십니다. 나 자신의 삶 속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기도와 일대일 말씀공부와 전도의 오병이어를 드리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3

요한복음 6장 강해 일부 오병이어의 기적

말씀 요한복음 61-요한복음 615

요절 요한복음 615절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

요한복음 6장 강해 일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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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요한복음] 요한복음 7장 강해 삼사부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25-52) 오요한 2006-04-16
25 [요한복음] 요한복음 7 장 강해 일이부 하나님에게서 온 교훈(1-24) 오요한 2006-04-04
24 [요한복음] 요한복음 6장 강해 9,10부 너희도 가려느냐 (6장 60-71) 오요한 2006-03-26
23 [요한복음] 요한복음 6장 강해 7,8부 내 살은 참된 양식 내 피는 참된 음료 오요한 2006-03-20
22 [요한복음] 요한복음 6장 강해 5,6부 생명의 떡 예수님 ( 6:30-40) 오요한 2005-03-12
21 [요한복음] 요한복음 6장 강해 삼사부 물위를 걸어오신 예수님(16-29) 오요한 2005-03-12
20 [요한복음] 요한복음 6장 강해 일이부 오병이어의 기적(6:1-15) 오요한 2005-03-12
19 [요한복음] 요한복음 5장 강해 7,8부 예수님에 대한 증거 (5:30-47) 오요한 2005-03-12
18 [요한복음] 요한복음 5장 강해 오육부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요5:19-29) 오요한 2005-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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