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컨텐츠 바로가기

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요한복음 6장 강해 삼사부 물위를 걸어오신 예수님(16-29)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5-03-12 00:00:00
조회수 : 2,592

문제지풀이(3)

    iconB_04208A.hwp  (19.00KB)

    iconB_04208B.hwp  (33.00KB)

    icon1.hwp  (49.00KB)

요한복음 6장 강해 이부 물 위를 걸어오신 예수님

말씀 요한복음 616-요한복음 621

요절 요한복음 619절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여 리쯤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오늘이 부활절입니다. 저는 과거에 부활절에는 부활에 관한 말씀을 골라서 특별히 전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제가 복음을 알게 된 후부터는 모든 메시지의 핵심이 부활의 주님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한 마디로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 나라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죄를 회개하고 항상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모시며 살아야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마음과 삶 속에 하나님 나라가 임합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부활의 예수님)

 

오늘 말씀은 예수님이 부활하시기 전의 모습이 나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부활하시기 전에 이미 부활하신 후의 모습을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밤에 파도치는 바다 위를 걸어오셔서 고통하는 제자들을 도와주셨습니다. 부활의 주님이 아니고 어떻게 물위를 걸어오실 수 있겠습니까? 만약 여러분 가운데 아직도 부활의 주님을 마음속에 받아들이지 않은 분이 있다면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는 오늘 이 부활절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혹시 부활의 주님이 마음 속에서 떠난 사람이 있다면 이런 분도 이 부활절이 예수님을 다시 영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항상 부활의 주님과 사는 사람은 더욱 기쁨으로 이 부활절에 다시 한 번 그분을 깊이 만나는 기쁨을 맛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부활의 주님을 만나면 많은 변화가 생깁니다. 먼저 우리의 인생 목적이 달라집니다. 일을 하는 방법이 달라집니다. 이 시간 부활의 주님이 우리의 교회에 찾아오시고 우리이 교회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큰 일 후에 기도하심)

 

우리가 지난 말씀에서 배운 것처럼 예수님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제자들은 갈릴리 바다 저편으로 잠시 쉬러 갔지만 무리 때문에 쉬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얼마나 피곤한가를 잘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친히 무리를 보내시고, 제자들은 배를 타고 바다 건너편으로 가서 휴식을 취하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많은 사람에게 떡을 먹이자 사람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삼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 왕으로 오신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십자가에서 감당하시고 부활하여 왕이 되고자 오셨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지상의 왕으로 삼고자 하는 것은 사단의 시험입니다. 예수님은 큰 역사 후에 자신이 사단의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무리를 보내신 후 홀로 산으로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연약한 제자들이 큰 역사 후에 인기에 들뜨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에 기초하도록 따로 보내시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셨습니다. 무리들이 떡보다는 예수님께 관심을 갖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떠나서 가는 제자들)

 

16,17절 보겠습니다. “저물매 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는 아직 그들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니

 

날은 이미 저물었습니다. 캄캄한 어둠이 내려왔습니다. 제자들은 바다에 내려가서 배를 타고 바다 건너편 가버나움으로 가고자 노를 저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배에 타지 않으셨습니다. 제자들은 부르심을 받은 후에 항상 예수님과 함께 다녔습니다. 그러나 이번만은 제자들만이 홀로 배를 타고 갔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떠나서 따로 배를 타고 가게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제자들이 육신의 예수님과 떨어져 있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하는가 가르치고자 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 가시고 제자들은 따로 지상에 남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때 제자들이 어떻게 행동해야하는지를 가르치고자 하셨습니다.

 

(고립무원의 제자들)

 

18. 19절을 봅시다.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여 리쯤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에서 노를 저어 십리쯤 가고 있었습니다. 이제 바다 한복판을 향하여 가는 중입니다. 캄캄한 밤입니다. 제자들은 지금 육신이 매우 피곤해 있었습니다. 얼마 전 제자들은 거의 이만 명의 양들을 섬겼습니다. 육신이 피곤하니 마음도 피곤하였습니다. 더구나 예수님도 그들과 함께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설상가상으로 큰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파도가 집채만큼 일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참으로 난감한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을 네 자의 한자 성어로 고립무원이라고 합니다.

 

(부활의 주님을 보여주심)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의 상황을 아시고 제자들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들을 도와주고자 가까이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오셨습니까? 배를 타고 오셨습니까? 바다를 헤엄쳐 오셨습니까? 아니면 헬리콥터를 타고 오셨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물 위를 걸어오셨습니다. 큰 파도치는 바다를 걸어서 오셨습니다. 참 놀랍죠? 예수님이 어떻게 물위를 걸어오실 수 있단 말입니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우리와 같은 육신이라면 물위를 걸을 수 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사람은 중력에 의해서 누구든지 물에 갈아 앉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중력을 초월하셨습니다. 물위를 걸으신 모습은 장차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과 흡사합니다. 새로운 몸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의 몸과 다릅니다. 썩지 않고 영광스럽고 강한 몸입니다. 부활의 몸은 중력의 제한을 받지 않습니다. 중력을 초월하여 하늘로 날아다닐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시공의 제한을 받지 않으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문을 닫았는데도 나타나시고 또 갑자기 사라지기도하십니다. 하늘로 들리어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 하시며 우리를 도우십니다.

 

(감옥의 요셉과 함께 하심)

 

요셉이 애굽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아무도 요셉과 함께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시공의 제한을 받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감옥의 담장을 넘고 방문을 넘어서 찾아오시고 요셉과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시공을 초월하여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 하시고 모세와 함께 하시고 다윗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셉의 마음 속에는 내주하실 수는 없으셨습니다. 그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 질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인간의 마음 속에 함께 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마음 속에 내주하시기 위해서 먼저 우리의 죄문제를 해결하셔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죄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육신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셨습니다. 인류의 모든 죄를 속하셨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은 하늘에 올라가셨습니다. 하나님 우편에 계신 예수님은 그의 피를 믿고 죄사함을 받은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셔서 그 마음 속에 내주하여 주십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졌습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가기까지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의 곁에 함께 하셔서 우리에게 여러 가지 표적과 기적을 행하십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우리가 사는 이 자상에는 여러 가지 바람이 풀고 파도가 치고 있습니다. 인간의 탐욕으로 범죄의 바람이 불기도 합니다. 요즘 이혜진, 우예슬 어린이의 살인 사건은 우리에게 큰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불황의 바람이 불어서 파산의 파도가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휘발유 값이 천정부지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원자재 값도 동반 상승하고 있습니다. 질병의 바람이 불어서 고통의 파도가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갈등의 바람이 불어서 마음에 분노의 파도가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이 때 아무도 우리를 도와주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이때도 예수님은 우리 마음 속에 오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유령이라고 생각하는 제자들)

 

예수님이 제자들을 찾아가셨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두려워하였습니다. 마가복음에 보면 제자들은 유령이다!” 하며 놀랍니다. 예수님을 보고 유령이라니 참으로 아이러니 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제자들은 왜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유령이라고 하셨을까요? 제자들은 몸도 마음도 피곤하며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자들에게 모든 상황이 자신이 원하는 방향과 반대로 진행되었습니다. 이런 것을 보자 제자들은 반드시 사단이 뒤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사단이 그들을 괴롭힌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렇게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데 사람의 형체같은 무슨 형제가 물 위를 저벅저벅 걸어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제자들은 그것을 보고 유령이 와서 자신을 죽이려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우리는 이런 제자들을 보면 섣부르게 정죄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악조건이 연속적으로 일어나면 우리도 사단이 주는 생각에 시달립니다.

 

(사단의 연속적인 공격)

 

저는 지금까지 건강하였습니다. 그러나 올해 들어서 연속적으로 질병과 사고자 찾아왔습니다. 과민성 대장으로 다섯 번의 복통이 있어서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태조산 등반을 하고 내려오다 넘어져 뇌진탕이 일어나 잠시 기억을 상실했습니다. 편도선염으로 침도 삼키지 못하고 일주일을 앓았습니다. 아파서 주일 메시지를 전하지 못한 것은 내 평생에 처음입니다. 이렇게 연속적으로 안 좋은 일이 일어나자 사단이 나를 잡아먹으려고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곳에 나와 함께 계시는 예수님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나를 찾아오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곳에서 나와 함께 하십니다. 다만 나의 내면이 어두워져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예수님을 잊은 제자들)

 

제자들이 이렇게 두려워한 더 근본적인 원인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마음 속에 예수님이 안 계셨기 때문입니다.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육신의 몸을 입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을 사랑하시고 도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무리에게 먹을 것을 주시고 제자들에게 휴식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제자들을 위해서 목숨까지 주시는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제자들은 바로 이 예수님을 잊어버렸습니다. 만약 그들이 이 예수님을 기억하였다면 고난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그들은 고난을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의 선물로 받아들이고 감사하였을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이 오셔서 그들을 도와주시도록 간절히 사모하였을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간절히 사모하였다면 그들은 물위에 걸어오신 예수님을 보고 기쁨으로 외쳤을 것입니다. “! 예수님이다.” 물위를 걸어오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어떻게 도우셨습니까?

 

(평안을 주시는 예수님)

 

20,21절을 보십시오. “이르시되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신대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그들이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물위를 걸어오신 예수님은 내니 두려워말라고 하셨습니다. 유령이 아니고 예수님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두려움을 쫓아내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면 우리 마음에 평안과 기쁨과 자유를 주십니다. 사단은 우리 마음에 두려움을 심습니다. 불안과 초조를 심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에게 사랑과 능력과 절제하는 마음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하여 두려워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41:10)

 

(두려워말고 믿기만 하라)

 

예수님이 가버나움에 갔을 때 야이로라는 회당장이 나왔습니다. 야이로는 외동딸이 죽어가니 고쳐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딸의 병을 고쳐주시기 위해서 가는 도중에 딸이 죽었습니다. 야이로는 이제 예수님도 어떻게 할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이 몰려 왔습니다. 예수님은 이를 아시고 야이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말고 믿기만 하라.” 야이로는 비록 아이가 죽었을지라도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두려워하지 않고 예수님을 마음으로 믿기만 하고 평안을 잃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야이로의 믿음을 보시고 소녀에게 가서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야이로의 딸을 살리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부활의 주님을 믿을 때 우리는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절망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부활의 주님은 우리의 현실에 포기한 문제를 해결해주십니다. 우리가 죽은 후에라도 우리를 다시 살려주십니다.

 

(하늘에서 오신 분)

 

오늘은 기쁜 부활절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려오셨습니다. 파도치는 바다를 건너 오셨듯이 하늘에서 우리를 찾아 오셨습니다. 이 예수님을 영접하면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에 영원토록 살아계십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생을 얻고 하나님 나라에 갈 준비를 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을 믿음으로 더 많은 사람이 영생을 얻고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요한복음 6장 강해 이부 물 위를 걸어오신 예수님

말씀 요한복음 616-요한복음 621

요절 요한복음 619절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여 리쯤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요한복음 6장 강해 이부 끝.

 

 

요한복음 6장 강해 삼부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

요한복음 622-요한복음 629

요절 요한복음 629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이튿날 예수님이 주신 떡을 먹은 사람들은 제자들만 배를 타고 가고 예수님은 가지 않은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어제 반대편 디베랴 바다에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떡을 주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떡을 먹기 위해서 예수님을 찾으러 어제 떡 먹던 곳으로 배를 타고 몰려왔습니다.

 

(무료식당 예수님)

 

22-23절을 보십시오. “이튿날 바다 건너편에 서 있던 무리가 배 한 척 외에 다른 배가 거기 없는 것과 또 어제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 배에 오르지 아니하시고 제자들만 가는 것을 보았더니 (그러나 디베랴에서 배들이 주께서 축사하신 후 여럿이 떡 먹던 그 곳에 가까이 왔더라)”

 

무리들은 어제 떡 먹던 곳에 예수님을 찾으러왔습니다. 그들은 그곳에 배 한척뿐이 없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자들만 그 배를 타고 간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생각해본 결과 예수님이 떡 먹던 곳에 그저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나고자 떡 먹던 곳에 무리들이 몰려왔습니다. 디베랴에서 배 여러 척이 어제 떡 먹던 곳으로 항해하여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가면 마음껏 식사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무료식당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찾는 사람들)

 

24,25절을 보십시오. “무리가 거기에 예수도 안 계시고 제자들도 없음을 보고 곧 배들을 타고 예수를 찾으러 가버나움으로 가서 바다 건너편에서 만나 랍비여 언제 여기 오셨나이까 하니

 

무리들이 어제 떡 먹던 곳에 왔을 때 그들은 그곳에 예수님도 제자들도 없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다시 예수님을 찾으러 배를 타고 가버나움으로 갔습니다. 그들은 매우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찾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 들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무료로 식사를 섬겨주는 식당이었습니다. 만약 우리에게 이렇게 많은 양들이 오면 우리는 기뻐서 환영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큰 역사라고 기뻐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들을 보고 전혀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떡에 관심 있는 자들)

 

26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예수님은 그들이 예수님을 찾는 동기와 목적이 잘못되었음을 알았습니다. 처음 온 무리들은 예수님이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왔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병자를 고치는 표적을 행하시는 예수님에 있었습니다. 오늘 예수님을 찾아온 이들은 떡을 먹고 배가 불러서 왔습니다. 이들의 관심은 예수님께 있지 않고 떡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 먹인다면 이들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들은 술(포도주) 생각이 나면 예수님을 찾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많은 고기를 잡게 했습니다. 베드로가 무리와 같았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예수님과 함께 고기를 잡아서 수산업계를 평정하자고 하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도 축복에만 관심을 가지면 타락한 신앙입니다.

 

(복받고자 온 사람들)

 

60-80년대에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몰려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떡을 주사 부요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에게 건강을 주셨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 받은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떠나고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께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주시는 축복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타락한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처음에 인간관계나 물질이나 건강 때문에 예수님을 따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체험하고는 이제 목적을 예수님께로 바꾸어야합니다. 예수님께로 목적을 바꾸지 않은 자들은 기복신앙을 가진 자들입니다. 이들은 진정한 크리스천이 아닙니다. 이들을 축복을 얻든지 못 얻든지 언젠가는 예수님을 떠나게 됩니다. 마치 병원에 병을 치료하러 간 사람이 병을 치료하든지 아니면 치료하지 못하든지 병원을 떠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인생의 목적을 바로 잡아 주십니다.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

 

27절을 보십시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예수님은 그들에게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서 일하라고 하십니다. 영생은 하나님 나라에 가서 부활하는 것입니다.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은 그 양식을 먹으면 부활하여 하나님 나라에 가는 것입니다.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영생하는 양식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성령의 도장을 찍어서 그리스도로 증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인정하신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 예수님만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십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통하여 영생하도록 하는 양식을 먹어야합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님을 통하여 영생을 얻고 하나님 나라에 가기 위해서 예수님께 나와야합니다.

 

(썩는 양식은 목적이 아님)

 

인간은 에덴에서 먹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인간이 타락한 후에 일을 해야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먹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먹는 것을 위해서 사는 것은 저주 받은 삶입니다. 동물과 같은 삶입니다. 동물도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을 합니다. 예전에는 대학가는 목적이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요즘에는 썩는 양식을 어떻게 잘 얻을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지방대의 문과생은 90프로가 전공을 살려 취업을 못한다고 합니다. 대학이 인문학을 없애고 취업이 잘 되는 과만 살립니다. 우리의 탐욕은 끝이 없습니다. 썩는 양식을 추구하면 거기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영생을 위하여 사는 삶)

 

하지만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인간은 더 높은 것을 위해서 살아야합니다. 우리는 영생을 위해서 살아야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영생을 얻으면 현재 우리의 마음 속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죽은 후에는 새로운 몸으로 변화되어 새하늘과 새땅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끝이 아닙니다. 죄를 지은 사람에게 한번 죽는 것은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모든 죄인들은 심판을 받고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나 죄사함을 받으면 우리는 영생을 얻습니다. 우리는 원튼 원치 않든 영벌과 영생 중에 하나를 받아야 합니다. 지옥과 천국 중에 한 곳에 가야합니다.

현재 예수님을 영접하고 영생을 누리는 사람은 죽은 후에도 하나님 나라에서 영생복락하게 됩니다. 그러나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서 영벌을 받게 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무엇보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영생을 얻고 하나님 나라를 누려야합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 이 세상에서 사는 우리의 삶의 목적입니다. 하나님이 심판을 유예시키 주신 이유도 영생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구하면 썩는 양식도 주십니다. 썩는 양식은 목적이 아니라 부수적인 결과입니다. 우리는 GDP 경쟁만 하지 말고 문화를 발달시키고 환경문제를 돌보아야합니다 무엇보다 영생과 하니님 나라를 추구해야합니다.

 

(믿는 것이 일이다)

 

28,29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그들은 하나님의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사실 그들의 관심은 영생에 있지 않았습니다. 이 세상의 떡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떡을 얻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떡을 얻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으셨습니다. 영생을 얻기 위해서 해야할 일을 가르쳐 주십니다. 하나님의 일은 한 마디로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하게 하시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믿어드려야 합니다. 현실에서도 하나님의 능력을 믿어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어드러야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주권을 믿어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어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보내신 자는 누구를 말할까요? 우선은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살을 찢기시고 피를 흘려서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사랑의 예수님을 믿어야합니다. 더 나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영접해야합니다. 영광의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을 때 영생을 주시고 성령을 주십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우리의 몸도 예수님처럼 홀연히 변화되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님 나라로 데리고 가십니다.

 

(하나님이 보낸 사람을 믿는 일)

 

다음으로 하나님의 보내신 자는 말 그대로 하나님이 나에게 보내신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은 많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은 하나님이 인도하신 남편과 아내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자녀가 되고 부모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인도하신 목자나 양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함께 하나님의 일을 하는 직장 동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들을 하나님이 보내신 자로 믿어야합니다.

 

(나에게 보낸 사람을 하나님 안에서 믿는 일)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쉬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인도하신 사람을 믿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을 힘든 일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들은 허물과 연약함이 있습니다. 다 죄인입니다. 이들을 믿어주야하니 이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하나님도 믿는 일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믿어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허물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는 두 번이나 자신의 아내를 누이로 속이고 사명의 땅을 두 번이나 떠났습니다. 첩을 얻어 죄의 씨를 낳았습니다. 사명을 떠나서 13년을 살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런 아브라함을 오래 참고 신뢰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모세는 어떠합니까? 그는 살인자입니다. 그는 망명하여 40년을 양치며 살던 자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입이 뻣뻣하여 할 수 없다고 하던 자입니다. 구스 아내를 후처로 얻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모세도 믿어주셨습니다.

다윗은 어떠합니까? 그는 충신을 살인한 자입니다. 간음자입니다. 거짓말을 한 자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인구 조사를 한 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다윗도 신뢰하여 주셨습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고 물고기 잡으러 간 자입니다. 요한과 야고보는 혈기 많은 자입니다. 항상 서로 누가 크냐고 다투던 자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을 신뢰하고 믿어주었습니다. 그들이 위대한 자가 될 것을 믿어주셨습니다. 그때 그들은 위대한 사도가 되었습니다.

 

(ubf 미국 선교초기에 한 일)

 

이사무엘 선교사님이 미국에 가서 한 것도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을 믿는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미국 젊은이들은 요즘 한국 젊은이들처럼 성적으로 문란했습니다. 그들은 영접하고 믿어주기가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을 예수님 안에서 믿어주었을 때 하나님이 일하시고 그들이 변화되었다고 합니다. 멕시코를 섬기는 황아브라함 목자님은 동거하는 양을 믿어주고 삼년 간 성경을 가르쳐주었다고 합니다. 삼년이 지나자 동거하는 것을 청산하고 새롭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율법이 아니라 사랑하고 믿어주는 것입니다.

 

(한 사람을 믿어주는 일)

 

제가 천안에 와서 한 일이 한 사람을 믿어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은 믿어주기 힘이 들었습니다. 그는 양들과 담배를 피웠습니다. 자매양을 데리고 야간 열차를 타고 어디를 다녀오기도 하였습니다. 뭔가 불평불만이 많았습니다. 돈을 빌려가고 갚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을 믿어주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을 쓰셔서 큰 일을 하셨습니다. 그분을 위대한 사람으로 키워주셨습니다.

제가 천안 역사를 이루며 한번 큰 실패를 맛보았습니다. 그 원인은 하나님의 보내신 사람을 믿어 주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아주 훌륭하신 분이십니다. 하지만 나와 생각이 맞지 않는다고 믿어주지 못했습니다. 혈기를 부리며 믿어주지 못했습니다. 그때 큰 실패를 맛보았습니다. 그를 통해서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어주는 일을 배웠습니다. 제가 평신도를 그만두고 전임목자를 할 때 다섯 번의 복통을 겪었습니다. 그 원인은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어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다른 사람을 믿어줄 수 있습니까? 예수님 안에서 가능합니다. 그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믿어줄 수 있습니다. 제가 예수님을 바라보므로 믿어주는 일을 힘써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요한복음 6장 강해 삼부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

요한복음 622-요한복음 629

요절 요한복음 629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요한복음 6장 강해 삼부 끝.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27 [요한복음] 요한복음 8장 강해 일부 나도 정죄치 아니하노니(1-11) 오요한 2006-04-16
26 [요한복음] 요한복음 7장 강해 삼사부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25-52) 오요한 2006-04-16
25 [요한복음] 요한복음 7 장 강해 일이부 하나님에게서 온 교훈(1-24) 오요한 2006-04-04
24 [요한복음] 요한복음 6장 강해 9,10부 너희도 가려느냐 (6장 60-71) 오요한 2006-03-26
23 [요한복음] 요한복음 6장 강해 7,8부 내 살은 참된 양식 내 피는 참된 음료 오요한 2006-03-20
22 [요한복음] 요한복음 6장 강해 5,6부 생명의 떡 예수님 ( 6:30-40) 오요한 2005-03-12
21 [요한복음] 요한복음 6장 강해 삼사부 물위를 걸어오신 예수님(16-29) 오요한 2005-03-12
20 [요한복음] 요한복음 6장 강해 일이부 오병이어의 기적(6:1-15) 오요한 2005-03-12
19 [요한복음] 요한복음 5장 강해 7,8부 예수님에 대한 증거 (5:30-47) 오요한 2005-03-12
18 [요한복음] 요한복음 5장 강해 오육부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요5:19-29) 오요한 2005-03-12
1 2 3 4 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