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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요한복음 5장 강해 삼사부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5:10-18)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5-03-12 00:00:00
조회수 : 2,928

문제지풀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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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5장 강해 이부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말씀 요한복음 510-요한복음 518

요절 요한복음 517절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오늘 말씀은 38년된 병자가 나은 후에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병을 치료해 주신 후에 안식일에 치료하였다고 유대인들의 핍박을 받고 죽음에 이르는 계기가 됩니다. 병 나은 사람은 예수님을 고발하여 예수님을 위험에 빠지게 합니다.

병이 낫는 것도 중요하지만 병이 나은 후에 어떻게 사느냐는 것도 중요합니다. 병이 나은 후에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고 예수님을 위해서 살아야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후에 예수님의 은혜에 기초하여 더욱 강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진정한 자유)

 

예수님은 안식일에 38년된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예수님은 38년된 병자에게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냥 걸어가라고 하실 수도 있었지만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셔서 과거를 청산하도록 도우셨습니다. 예수님은 삼십팔년 동안 병자가 가지고 있는 의존심의 자리, 불평의 자리, 무기력의 자리를 들고 걸어가서 이제는 감사한 삶, 자립적인 삶, 힘 있는 삶을 살기를 바라셨습니다. 예수님은 특별히 안식일에 병을 많이 고쳤습니다. 삼십팔년된 병자도 안식일에 고치고, 날 때부터 태어난 자도 소경을 고치고, 한손마른 자도 안식일에 고치시고, 고창병든 자도 안식일에 고치셨습니다. 예수님은 특별히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심으로 안식일이 주는 진정한 자유의 의미를 가르쳤습니다. 안식일은 병으로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자에게 병에게 자유를 주어 휴식을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에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한 것을 문제 삼았습니다.

 

(율법주의와 은혜 신앙)

 

9,10절을 보십시오.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요한복음에는 이 사건을 통하여 유대 바리새인과 예수님과의 첫 번째 충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안식일 날 병자를 고쳤다고 예수님을 고소하여 죽이고자 합니다. 유대인들과 예수님의 충돌은 요한복음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 충돌은 역사 속에서 이어지며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충돌은 율법주의와 은혜 신앙 사이의 충돌입니다.

 

(절대적인 안식일)

 

유대인들은 율법주의자들입니다. 이들은 안식일인데 자리를 들고 걸어가는 것이 옳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안식일은 어떤 날입니까? 하나님이 일주일동안 일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제 칠 일을 복주사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여기까지가 창세기에 기록된 내용입니다. 출애굽기에 와서 율법이 생기며 하나님은 십계명에서 육일 동안은 열심히 일하고 칠일에는 종을 포함한 모든 사람과 육축과 땅까지도 쉬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자는 두 번이나 죽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을 지키라는 말씀을 출애굽기에서만 다섯 번 반복하여 말씀하십니다. 다섯 번째는 안식일 날 불을 켜는 취사까지 금지시켰습니다. 민수기에 보면 실제로 안식일에 나무를 하다 돌에 맞아 죽은 예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안식일을 절대적으로 지키도록 하셨습니다.

 

(탐욕과 불신에서 자유)

 

하나님이 안식일 날 일한 사람을 죽이도록 한 것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있는 탐욕과 불신의 죄악을 죽이도록 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탐욕과 불신으로 안식일에도 먹고 살기 위해서 일을 합니다. 하나님은 탐욕과 불신의 죄를 마음속에서 절대적으로 끊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왜 안식일을 주셨습니까?

사람들은 탐욕으로 일 년 삼백육십오 일을 일하여 일의 노예가 됩니다. 안식일 날 일을 안 해도 먹고 살 수 있는 데 안식일날도 쉴 줄 모르고 일을 합니다. 내일 먹을 것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염려하여 오늘 내일 것까지 벌어놓으려고 합니다. 우리나라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에 조선시대까지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추석이나 설날 단오 칠석과 같은 명절이 아니면 항상 일을 했습니다. 양반들은 일을 하지 않고 놀면서 하인들에게 일을 시켰습니다. 하나님은 이를 아시고 안식일을 만들어서 연약한 사람들에게 일로부터 자유를 주기를 원하셨습니다. 노동자 농민들을 보호하기를 원하셨습니다. 동물과 자연까지 보호하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안식)

 

안식일 법의 의미는 탐심과 염려를 제거하는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안식일 사상은 가나안 땅의 삶과 연결됩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을 가나안 땅에서 안식하게 하십니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이 통치하는 곳입니다 우리가 죄의 통치를 벗어나 하나님의 통치를 받을 때 진정한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초청하였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죄사함을 받으면 진정한 안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짐을 예수님께 맡기고 믿음으로 살면 진정한 쉼이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안식일의 개념은 하나님 나라에서 진정한 쉼과 연결됩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서 먹고 살기 위해서 수고하는 모든 노동을 쉬고 진정한 안식을 얻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에서 누리는 진정한 안식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마음에 쉼을 얻을 수 있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 안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율법주의자의 특징)

 

시대가 흐르면서 유대인들은 안식일 법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안식일 유전을 만들었습니다. 이들은 안식일 날 걸어갈 수 있는 거리, 안식일 날 들고 갈 수 있는 무게를 정해 놓았습니다. 안식일에 들고 갈 수 있는 무게를 제한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한 번에 걷는 것도 900 m 이상을 걸으면 안 되었습니다. 십리를 가려면 다섯 번에 걸쳐서 나누어 걸었다고 합니다. 무게도 환자가 누워 있는 자리는 들고 걸어가도 되지만 환자가 없는 자리는 들고 걸어가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율법을 정해놓고 율법을 지켰는지 지키지 않았는지를 따지는 것이 율법주의입니다. 이런 율법주의 산앙생활은 여러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율법주의는 믿음보다 행위를 강조)

 

율법주의자들은 믿음보다 행위를 중시합니다. 행위로 열심히 일을 하면 자연히 자기 의가 생깁니다. 자기보다 못하는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합니다. 이들은 긍휼과 은혜가 없이 남을 비난합니다. 이들은 자신이 잘못하면 자기 불의에 빠져서 자학합니다. 극단적이 되면 자살하기도 합니다. 행위를 중시하는 사람들은 행위만을 보는 사람들 앞에서 살아갑니다. 사람들 앞에서 살다보니 자연히 가식적이고 이중적이 됩니다. 또한 율법주의자들은 자신의 힘으로 살아갑니다. 이들은 자연히 금세 피곤하고 지칩니다.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사는 자)

 

예수님은 율법주의자들을 많이 책망하셨습니다. 회칠한 무덤과 같이 이중적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약대는 삼키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이들은 안식일 법을 지키고 십일조를 내는 것은 철저히 하면서도 마음 속에 사랑과 믿음과 의는 저버렸습니다. 이들은 안식일 법은 그렇게 철저히 지키면서도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병자를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키우는 나귀가 구덩이에 빠지면 꺼내는 것이 죄가 아니라고 하면서 38년동안 병이 든 사람을 고치는 것을 죄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내로남불로 내가 하면 로맨스가 남이 하면 불륜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지 않고 자기만을 사랑하였습니다. 우리가 이런 율법주의 신앙에서 벗어나려면 우리는 부차적인 것보다 더욱 본질적인 것을 중시해야 합니다. 본질적인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이 최고의 법입니다. 어거스틴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마음대로 하라고 가르쳤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면 마음대로 죄를 지을 수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해도 죄가 아닙니다. 그 외에 본질적인 것으로 회개와 믿음과 감사를 강조해야합니다. 내면을 중시하려면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살아야합니다. 다윗은 하나님 보시기에 진실하게 살았습니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마음으로 진실하게 사는 것이 은혜의 복음신앙입니다. 그때 우리 마음에 자유가 있습니다. 마음에 참된 기쁨과 행복이 넘쳐납니다. 생명력이 넘칩니다.

 

(은혜의 예수님)

 

율법주의를 극복한 신앙이 은혜신앙입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갑니다. 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호흡조차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부활하신 에수님이 은혜를 주셔서 우리는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수고합니다. 그러나 내가 아니요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 사학년 팀이 은혜팀입니다. 내가 은혜를 알기 전에 율법적인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신앙생활이 피곤하고 지쳤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판단하고 정죄하여 피곤하게 하였습니다. 겉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속은 썩었습니다. 그러나 은혜의 예수님을 배우면서 신앙생활에 자유를 얻었습니다. 마음에 기쁨과 행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책임 전가하는 병나은 자)

 

11-13절을 보십시오. “대답하되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더라 한대 저희가 묻되 너더러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냐 하되 고침을 받은 사람이 그가 누구신지 알지 못하니 이는 거기 사람이 많으므로 예수께서 이미 피하셨음이라

 

바리새인들이 병 나은 자에게 안식일 법을 어긴 책임을 묻자 그는 병을 고치신 예수님께 책임을 전가하였습니다. 삼십팔 년된 병을 고침 받은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는 예수님께 평생을 감사해도 부족할 것입니다. 그는 이제는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위해서 살아야합니다. 그는 사람들이 안식일 법을 어긴 책임을 물으면 예수님께 책임을 돌리지 말고 자신이 책임을 져야 했습니다. 자신이 벌을 받고 예수님을 보호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보호하기는커녕 예수님께 책임을 돌렸습니다.

 

(병나은 자를 찾아오신 예수님)

 

14절을 보십시오.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

 

예수님은 이런 그를 아시고 찾아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보라하며 그 사람에게 주의를 집중시켰습니다.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죄를 범치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가 어떻게 다시 죄를 범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예수님의 은혜를 잊지 않는 것)

 

첫째, 병을 나은 은혜를 감당해야합니다. 은혜는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감당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은혜를 감당하는 비결은 은혜를 주신 예수님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은혜를 주신 예수님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은혜 위에 은혜를 주십니다. 그는 자신의 병을 고쳐 주신 예수님을 생각하고 예수님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요즘에 일용할 양식에 믿음의 이대 조상인 이삭이 나옵니다. 이삭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가뭄 중에도 백배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주위 사람들이 계속하여 시비를 걸어왔습니다. 그 시비를 걸어온 주된 목적은 사단이 이삭의 마음 속에서 하나님을 빼앗아 가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이삭은 말려들지 않았습니다. 그는 계속하여 우물을 빼앗겼을지라도 하나님을 빼앗기지 않았습니다. 더욱 십자가를 지면서 은혜를 잘 감당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에게 영생의 기쁨을 주셨습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분명히 함께 하시는 종으로 인정 받게 되었습니다. 더욱 창성하게 되었습니다.

 

(과거를 잊지 않는 삶)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해서는 은혜 받기 전에 내가 어떤 상태인지를 알아야합니다. 병나은 자는 예수님의 은혜를 받기 전에 삼십육 년을 침상에 누워지내야 했습니다. 그의 삶은 비참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비참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사 건강하게 해주셨습니다. 이를 기억할 때 지금 안식일 법을 어겼다고 받는 핍박을 넉넉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믿기 전에 나 자신이 얼마나 비참했는가 잊지 말아야합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받은 한 가지 은혜를 잊지 말아야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줄 알아야합니다.

 

(예수님을 경외하는 삶)

 

둘째, 다시는 죄를 범치 말아야합니다. 예수님은 간음하다가 죄사함을 받은 여인에게도 동일하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하셨습니다. 간음한 사람은 다시는 죄를 범치 말고 순결한 삶을 살아야합니다. 병이 나은 사람도 병이 있을 때 있었던 죄를 다시 범해서는 안 됩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을 믿기 전에 의존심이 있었고 불평이 있었고 무기력함이 있었습니다. 이제 예수님을 믿었으면 이런 죄를 다시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는 자신의 일에 대해서 책임을 지고 도전하고 감사하고 자립적인 삶을 살아야합니다. 어떻게 다시는 죄를 범치 않을 수 있습니까? 병을 고쳐주신 예수님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그 마음 중심에 모셔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마음 속에 계시는 성령님을 따라서 살아야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새 사람되게 하시고 우리를 변화시켜 주십니다.

 

(질병보다 심한 것)

 

예수님은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하셨습니다. 삼십팔 년된 병보다 더 심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죽은 후에 심판입니다. 죄는 예수님을 떠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은 사람이 타락하여 예수님을 떠나면 일곱 귀신이 들어갑니다.

 

(고자질하는 병나은 자)

 

15절을 보십시오. “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 하니라.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핍박하게 된지라

 

그 사람은 예수님이 다시 경고를 하셨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을 고친 이는 예수라고 말을 하였습니다. 은혜를 배신하였습니다. 그는 차라리 병이 낫지 않는 편이 나을 뻔였습니다. 가룟유다와 같이 은혜를 배신하는 악한 죄를 지었습니다.

 

(십자가에 못박는 자)

 

이로 인하여 예수님은 핍박을 받게 되었습니다. 18절에 보면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우리가 은혜를 배신하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다시 못 박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을 현저하게 욕을 보이는 것입니다. 이런 자는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안식일에 일하시는 하나님)

 

17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예수님이 안식일 날 일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안식일도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성서적인 노동관을 배울 수 있습니다. 유교적인 노동관은 노동은 천하게 여깁니다. 돈 많고 높은 지위에 올라간 사람은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특히 왕은 육체적인 일을 하지 않고 앉아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나라에 서양 문화가 들어올 때 서양 사람들이 땀을 뻘뻘 흘리면 테니스를 치니까 왜 그것을 하인을 시켜서 하지 높으신 분이 하느냐고 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처럼 유교는 노동을 천시합니다. 불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스님들은 일을 해서 먹을 것을 벌기보다 다른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동냥을 합니다. 도교도 신선은 놀고 먹는 자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노동관은 다릅니다. 하나님도 일을 하십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천지 창조를 하신 후에도 자연을 섭리하고 생명을 성장시키고 유지하는 일을 하십니다. 하나님은 안식일에도 비를 내리시고 바람이 불게 하시고 태양이 빛나게 하십니다.

 

(일하는 자의 행복)

 

우리는 일하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기쁨의 동산인 에덴 동산에서도 일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에덴 동산을 만드시고 다스리며 지키게 하셨습니다. 다스리는 것은 일을 말합니다. 사람은 일을 해야 존재 의미도 있고 건강합니다. 저는 우리가 옛날 살던 김웅회씨 집을 가보았습니다. 집은 온통 잡초가 가득하고 방에는 온갖 쓰레기가 가득했습니다. 유리창이 깨어지고 쇠는 녹이 슬었습니다. 그새 2,3년만 사람이 살지 않아도 이렇게 황폐하게 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일을 하지 않으면 늙고 못쓰게 됩니다. 삶의 무의미와 허무에 시달리게 됩니다. 실업자는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힘써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안식일에도 일을 해야합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일을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 살리는 일을 해야 합니다. 심방을 가고 양들과 교제를 나누기 위해서 축구를 하거나 볼링을 쳐도 좋습니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해야 합니다. 저는 죽을 때까지 성경 66권 강해서를 쓰고 유튜브 강해를 할 수 있다는 것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성경 강해를 하고 성경대로 살아가는 삶의 본을 보여주는 것이 내가 할 일입니다.

 

(하나님을 모독하는 삶)

 

18절을 보십시오. “유대인들이 이를 인하여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만 범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핍박했는데 안식일을 어기는 것에 대해서 한 가지 죄를 더하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모독했다는 것입니다. 당시에 사람들은 야훼 하나님의 이름도 부를 수 없어서 여호와(야훼 주)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다고 예수님을 더욱 미워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을 때도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공회에서 신성모독죄로 예수님에게 사형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정죄는 합당하지 못합니다. 이사야서에 보면 이사야는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들 자신도 요한복음 8장에 보면 자신들의 아버지가 하나님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예수님을 목숨을 걸고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로 증거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증거하신 이유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영접하는 자들을 하나님의 아들로 삼아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은 예수님이 목숨을 걸고 쟁취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천지 만물을 소유하신 부자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모든 병을 고칠 수 있을 뿐 아니라 죽은 자를 살리실 수 있는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의 죄를 사하주시는 분이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는 눈동자처럼 보호해주시는 분이 하나님 아버지십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분이 하나님 아버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의 신분을 고귀하게 여겨야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오손도손 사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자녀)

 

자 여기 만원짜리 돈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냥 만원을 준다면 다 받으시겠죠? 이제 만원짜리를 구겼습니다. 그래도 여러분에게 공짜로 준다면 여러분이 받으시겠죠? 이제 만원을 발로 밟았습니다. 그래도 여러분에게 만원을 준다면 받으시겠지죠? 만원짜리는 구겨도 만원이고 밟아도 만원입니다. 우리는 세상일에 의해서 구김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에 의해서 짓밟힐 때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이 바뀌나요? 아닙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도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가난해도 하나님의 자녀요. 거지라도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특권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자녀의 특권)

 

하나님의 자녀는 무엇보다 영생을 얻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유능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새로운 몸으로 부활하여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로서 특권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얻은 고귀한 은혜입니다. 우리가 이런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확신하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특권을 누리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야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가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요한복음 5장 강해 이부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말씀 요한복음 510-요한복음 518

요절 요한복음 517절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요한복음 5장 강해 이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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