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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요한복음 4장 강해 삼사부 참예배 ( 4:15-26)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5-03-12 00:00:00
조회수 : 2,589

문제지풀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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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4장 강해 2부 참 예배

말씀 요한복음 415-요한복음 426

요절 요한복음 426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하시니라.

 

우리는 한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를 배우고 있습니다. 이 여자는 다섯 남편과 이혼하고 지금도 다른 한 남자와 동거하고 있는 여자입니다. 여자는 남자들로 인하여 피곤하고 지쳐 있었습니다. 어떤 남자도 이 여자에게 참 만족과 기쁨을 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여자를 통해서 보면 남자들이 나쁜 놈 같습니다. 남자들이 바보 같아서 여자에게 만족을 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 여자의 실제 문제는 남편 문제가 아니라 예배의 문제입니다. 여자는 참 만족을 주시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지 않았기 때문에 남편들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면 남자는 만족을 주는 대상이 아닌 도움이 필요한 대상으로 보입니다. 남자들이 조금 부족해도 남자들에게 상처받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남자에게 피곤하고 지쳐 있는 여자에게 참 예배에 대해서 가르쳐 주십니다.

 

(성령을 갈망하는 여인)

 

15절을 보십시오. “여자가 가로되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이 여인에게 영원히 솟아나는 샘물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여인은 그 샘물을 한 번 마시면 영원히 물을 마시지 않아도 되는 신비로운 샘물로 생각하였습니다. 여인은 그런 물을 먹고 다시 목마르지도 않고 지긋지긋한 물 긷는 생활도 그만두고 싶었습니다. 그녀는 예수님께 그런 물을 달라고 요청합니다. 예수님이 여인에게 주시고자 하는 물은 우물에서 나오는 샘물이 아닙니다. 성령의 샘물입니다. 여인은 깊은 데서 성령을 갈망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인에게 어떻게 성령의 샘물을 얻을 수 있는지 말씀하십니다.

 

(남편을 불러오라)

 

16절을 보십시오. “가라사대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

 

예수님은 생수를 구하는 여인에게 네 남편을 불러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생수를 구하는 여인에게 생뚱맞게 왜 남편을 불러오라고 하였을까요? 당시는 외갓남자가 남편을 통하여 아내에게 무엇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남편을 불러오라는 것은 아닙니다. 물을 달라고 하는 여인에게 갑자기 네 남편을 불러오라고 하는 데는 예수님의 날카로운 통찰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생수를 먹으려면 반드시 남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여인에게 남편을 불러오라는 뜻이 무엇일까요?

 

(죄를 회개해야 성령을 받는다)

 

첫째, 죄 문제를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거룩한 영입니다. 더러운 죄가 있으면 성령님이 임하실 수 없습니다. 죄란 무엇입니까? 죄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창조주 하나님을 떠나서 남자에게서 만족을 얻고자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보다 남편을 높이고자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 남편을 더 사랑하였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무엇을 더 사랑하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느냐 아니면 하나님 외의 다른 것을 더 사랑하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천대까지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하는 자는 미워하여 죄를 삼사 대까지 갚으십니다. 여자가 하나님에게는 무관심하고 다른 남자를 사랑할 때 하나님께서는 여자에게 질투하여 분노하십니다.

여자는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남편을 회개해야 합니다. 가슴을 치며 죄를 회개해야합니다. 하나님을 무엇보다도 더 사랑해야 합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더 사랑하는 여자에게 성령님을 주실 수 있습니다. 여자에게 천대까지 복을 주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가장 생각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가장 많이 떠오르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무엇 때문에 기뻐하고 분노하고 슬퍼합니까? 그것이 하나님 때문입니까? 그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이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이런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합니다. 그래야 성령을 주십니다.

 

(상처를 드러내신 에수님)

 

둘째, 우리 마음의 상처를 드러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보다 세상을 사랑하면 마음에 그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상처를 받습니다. 우리가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것이 있으면 의지하는 그것으로부터 상처를 받습니다. 이 상처가 있으면 성령님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상처를 치료받아야 합니다. 이 여인은 여러 남편과 만나고 해어지면서 많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우리가 한 사람과만 이혼해도 상처를 받는데 다섯 번 이혼하였으니 얼마나 상처가 크겠습니까? 여인의 내면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비방과 정죄는 더욱 상처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상처를 치료해 주시기 위해서 채찍에 맞으시고 징계를 받으셨습니다. 우리는 치료받기 위해서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상처를 내어 놓아야 합니다. 아픈 상처를 드러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치료해 주십니다.

다윗도 자신의 죄악을 드러내지 않을 때는 여름 가뭄에 마름같이 뼈가 썩는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다윗이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내어 놓고 죄 사함을 받았을 때 그는 죄 사함을 받고 성령님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내어놓기 어려운 수치스러운 과거가 있습니까? 아무도 모르게 꽁꽁 숨겨 놓은 것이 있습니까? 이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내어놓아야 합니다. 그때 성령님을 충만히 주실 줄을 믿습니다. 아멘!

 

(죄사함 주신 예수님)

 

17,18절을 보십시오.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여자는 예수님께서 죄 문제를 지적하자 반사적으로 남편이 없다고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을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그 여자의 상처를 감싸 안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네 말이 옳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이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그 어느 남편도 참 남편이 아닌 것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녀의 아픈 마음을 위로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참으로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자비와 긍휼의 주님이십니다. 우리의 어떤 죄도 정죄치 않으십니다. 우리의 죄를 위해서 친히 고통을 당하신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수술한 부위를 아프지 않게 꿰메 주셨습니다.

 

(선지자)

 

19절을 보십시오. “여자가 가로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여자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행한 모든 과거를 말씀하시자 예수님을 영적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예수님이 선지자인 것을 인정하였습니다. 선지자는 주로 죄를 회개시키는 일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여인과 영적인 관계성이 생기기 생각하였습니다. 이렇게 양들의 죄 문제를 회개하도록 도와주어야 영적인 관계성이 맺힙니다. 대화도 바로 영적인 것으로 전환됩니다. 남편 문제를 해결하기 전까지는 예수님을 유대인 청년으로 알았으나 이제는 선지자로 알았습니다. 주로 물이 대화의 중심 소재였지만 죄 문제를 해결한 뒤에부터는 예배가 중심 소재로 바뀌었습니다. 여자의 중심이 사람에게서 하나님에게로 바뀌었습니다.

 

(예배의 장소가 중요하지 않다)

 

20절을 보십시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 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여자는 예수님에게 참 예배를 물어보았습니다. 당시에 세겜 근처에는 그리심산과 에발산이 있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 여로보암은 북이스라엘 사람들이 예루살램으로 예배를 드리러 가지 못하게 하려고 그리심 산에 산당을 짓고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여자는 어느 곳에서 예배를 드려야 진정한 예배인가 물어보았습니다.

 

(예배에 대한 관심)

 

우리는 여기를 읽다가 놀라게 됩니다. 그것은 여자가 예배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물어보았다는 사실입니다. 남자를 찾아다닌 여자를 생각할 때 이 여자는 예배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여자의 관심은 오직 남자에게만 있는 육신적인 여자 같습니다.

그러나 여자에게는 진정한 예배를 드리고자하는 강한 소원이 있었습니다. 여자가 남자가 참 남편을 찾아 방황한 것도 사실은 예배의 대상을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남편에게서 만족을 찾다가 남편이 자신에게 만족을 주지 못해도 그냥 그렇게 살아갑니다. 어떤 여자는 남편이 왜 자기에게 만족을 주지 못하느냐고 남편을 원수같이 여기며 살아갑니다. 왜 남편이 근본적으로 만족을 주지 못하는지, 어떻게 하면 참만족을 얻을 수 있는지 고민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만큼 예배의 소원이 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인은 여섯 번째 남자를 찾을 정도로 강한 소원으로 예배의 대상을 찾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간절히 찾는 사람이 진정한 예배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참 예배를 가르치신 예수님)

 

21,22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예수님은 여인에게 예수님을 신뢰하도록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믿을만한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에게서 태어나는 진정한 구원자이시므로 우리에게 참예배를 가르쳐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가르치는 참 예배는 무엇일까요?

 

(형식보다는 마음이 중요하다)

 

첫째, 형식을 중시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은 형식을 중시여깁니다. 예루살렘 성전이냐 아니면 그리심산 회당이냐를 따집니다. 의자가 긴 의자냐 아니면 하나씩 앉는 의자냐 건물이 가정처럼 되었느냐 첨탑이 있고 십자가가 있는 건물이냐를 따집니다. 형식을 중시하는 것은 사람들 앞에서 보이기 위한 예배입니다.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배시간에 기도도 사람들이 듣기 좋은 말을 하고 말씀도 사람들의 귀만 긁어주는 말만하기 쉽습니다. 예배시간에도 많은 형식과 절차를 중시하기 쉽습니다. 사도 신경을 앞에 외우느냐 아니면 끝에 외우느냐 교독문을 하느냐 안 하느냐하는 것을 따집니다.

그러나 진정한 예배는 형식보다 중심이 중요합니다. 예배는 사람 앞에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드리는 것입니다. 영이신 하나님 앞에서 마음으로 중심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아버지께 드리는 예배)

 

둘째, 우리의 진정한 예배의 대상은 오직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참 예배의 대상을 찾고 있습니다. 나의 인생의 모든 것을 드려도 아깝지 않은 것을 찾습니다. 자신의 모든 젊음을 바쳐 헌신한 만한 것이 무엇인가를 찾습니다. 이런 진정한 예배의 대상은 결코 세상에서는 없습니다. 어떤 남자도 어떤 여자도 자녀도 부모도 예배의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다섯 남자를 바꾸어보아도 아니 세상의 모든 남자를 바꾸어보아도 참예배의 대상은 없습니다. 물질도 명예도 권세도 우리의 예배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나 자신도 예배의 대상일 수는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왜 예배의 대상이 될 수 없을까요? 모두가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이 유일한 예배의 대상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본문에 보면 예수님은 세 번이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지칭하십니다. 요한복음에는 아버지라는 말이 60번 나옵니다. 하나님과 관계적인 측면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낳아주신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를 창조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거듭나게 하신 아버지이십니다. 창조주이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를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은 육신의 아버지가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영의 아버지이십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아버지이십니다. 영원히 살아계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전지전능하신 아버지이십니다. 어느 곳이나 계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우리의 진정한 예배의 대상은 바로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는 영이신 하나님 아버지를 예배할 때 진정한 만족과 기쁨이 있습니다.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

 

23,24절을 보십시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 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셋째,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예수님은 두 번이나 반복하여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영은 영어 성경에 보면 the sprit로서 우리의 영을 말합니다. 우리의 마음 중심을 말합니다. 예배는 우리는 육체로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 중심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성령님의 충만함을 덧입어야 합니다. 마음에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드려야 합니다. 마음 속에 성령님이 주시는 기쁨으로 드려야합니다. 진리는 the truth입니다. 진리는 진실이요, 바로 말씀이요 예수님이십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진리입니다. 예배는 예수님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중심이 되고 예수님의 피가 중심이 되어야합니다. 진리는 또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배는 하나님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말씀은 간단하게 하고 세상 이야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예배에는 성경 말씀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이 있는 곳에 성령님이 계십니다.

우리는 예배를 감정에 기초해서 드려서는 안 됩니다. 마치 댄스홀에 간 것 같이 예배가 광란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예배는 말씀에 기초하여 거룩함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우리의 영과 진리의 말씀으로 예배 드려야 합니다.

 

(회개하는 예배)

 

넷째, 우리는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5117절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우리는 근본 죄인입니다. 우리의 죄의 본성은 사실상 없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죄사함을 받지만 죄의 본성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육신을 쳐서 복종시키지 않으면 바로 죄의 본성이 우리를 지배합니다. 우리는 이런 죄의 본성을 인정하고 죄에 대해서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나가야 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불의 토색 간음하지 않음을 자랑하며 하나님께 나갔습니다. 십일조를 드리고 안식일을 지킨 것을 자랑하며 하나님께 나갔습니다. 그러나 세리들은 가슴을 치며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나갔습니다. 하나님은 바리새인의 기도와 세리의 기도중에 누구의 기도를 들으셨을까요? 세리의 기도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죄에 대해서 회개하는 마음으로 나가면 우리의 예배를 받으십니다.

 

(순종의 예배)

 

다섯째, 우리는 자신의 몸을 산 제사로 드려야 합니다. 로마서 12장 일절을 보면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하나님이 받으시는 가장 좋은 예물은 바로 우리 몸입니다. 마음으로만 드리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도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집에서 인터넷이나 텔레비전으로 드리는 예배는 몸으로 드리는 예배가 아닙니다. 우리는 몸으로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소감 발표도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몸으로 나와서 발표해야지 소감만 보내서는 안 됩니다.

더 나아가서 몸으로 드리는 예배는 몸 전체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해야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합니다. 순종이 예배보다 낫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삶속에서 우리 자신을 산 제물로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날마다 나의 뜻과 생각을 죽여야 합니다. 날마다 자신을 희생하는 삶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제물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기뻐하십니다. 한 주 죄만 짓다가 주일날 와서 예배드리면 받지 않으십니다. 한 주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면서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이 받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자를 수탈하고 음란한 죄만 짓다가 예배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이 예배를 드릴 때 눈을 가리고 귀를 막는다고 하셨습니다. 하루 24시간 우리의 몸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가인이 죄를 짓다가 제사를 드렸을 때 하나님은 가인의 제물을 받지 않으셨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한 주 죄만 지었다면 어떻게 합니까? 그때는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사랑과 감사의 예배)

 

여섯째, 하나님은 가장 소중한 것을 받으십니다. 아벨은 양의 첫새끼와 기름으로 드렸습니다. 가인은 자신의 소산 중에 일부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가장 소중하게 구별하고 준비된 것을 받으십니다. 말라기에 보면 하나님께 절뚝발이나 눈먼 것을 드리는 것을 받지 않으십니다. 흠 없고 점 없는 것으로 드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우리는 시간 물질 구별하여 준비된 상태로 드려야 합니다. 가장 좋은 것으로 드려야 합니다. 다른 어떤 것도 포기하고 예배를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주일예배도 조금 일찍 나와서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는 마음으로 드려야합니다. 하나님을 제사보다 긍휼을 원하십니다. 마음과 목숨과 힘을 다하여 사랑하는 예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마음껏 찬양하는 예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감사로 제사를 드리기 원하십니다. 찬미의 제사를 원하십니다.

 

(그리스도를 갈망하는 여인)

 

25절을 보십시오. “여자가 가로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

 

여자는 메시야 곧 그리스도가 오시면 예배의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메시야는 예배를 가르쳐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진정한 예배의 모범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산 제사를 드렸습니다. 순종과 사랑과 감사의 예배를 드리셨습니다. 인간을 대신하여 회개의 예배를 드렸습니다. 항삼 성령과 말씀이 충만한 예배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는 예배를 드렸습니다. 여자가 메시야를 갈망하자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예배의 회복자 예수님)

 

26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그리스도가 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진정한 예배를 드리도록 도와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가는데 가장 방해하는 것이 죄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죄를 위해 채찍에 맞으시고 피 흘리셨습니다. 우리의 주홍같은 죄를 씻으시고 흰 눈처럼 깨끗게 하셨습니다. 뿐만아니라 죄악된 우리가 하나님께 갈 수 있도록 부활하셔서 성령으로 우리를 도우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의지하여 예수님 이름으로 하나님께 참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참 예배를 드리면 남편이나 아내가 조금 부족해도 괜찮습니다. 왜냐면 예배할 때 하나님이 임재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만족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지 결코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양들이 조금 없어도 괜찮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양에 대한 보증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참예배를 드림으로 진정 행복한 삶 천대에 복을 받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요한복음 4장 강해 2부 참예배

말씀 요한복음 415-요한복음 426

요절 요한복음 426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4장 강해 이부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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