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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요한복음 4장 강해1 칠팔부 말씀을 인하여(4:39-54)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5-03-12 00:00:00
조회수 : 2,044

문제지풀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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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4장 강해 사부 말씀을 인하여

요한복음 439-요한복음 454

요절 요한복음 441절 예수의 말씀을 인하여 믿는 자가 더욱 많아

 

어제 결혼한 임하진 선교사님은 드폴에서 영어를 공부했습니다. 그곳에 있는 죠셉김 선교사님을 아실 것입니다. 그분이 천안에 영어를 가르치러 와서 어느 날 들어 누웠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표적을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그에게 요한복음 말씀 중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도마를 찾아가서 주신 말씀을 전하여 주었습니다. "네가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는 복되도다.“ 그는 이 말씀을 영접하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는 보지 못하는 예수님을 말씀에 기초하여 그리스도로 고백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어떤 사람들은 표적이 없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표적은 신앙의 기초가 될 수 없습니다. 표적은 믿음의 결과일 뿐입니다. 예수님은 표적을 보지 못하지만 말씀에 기초한 신앙을 더욱 기뻐하십니다. 이런 자에게 표적도 주십니다.

 

(간증에 기초한 믿음)

 

39절을 보십시오. "여자의 말이 그가 나의 행한 모든 것을 내게 말하였다. 증거하므로 그 동리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사마리아 여자는 자신이 체험한 예수님을 확신 있게 증거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행한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러자 여자가 살던 동리의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과연 여인을 아시고 변화시키신 분은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만난 사람이 자신이 만난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발표하는 라이프 소감이나 간증을 통하여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신앙도서를 통해서 예수님을 믿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의 증거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말씀에 기초한 믿음)

 

40-42절을 보십시오. “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 예수의 말씀을 인하여 믿는 자가 더욱 많아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을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니라 하였더라.”

 

사마리아 사람들은 여인의 증거를 듣고 예수님을 믿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와서 예수님이 자신들과 함께 유하기를 청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직접 만나기를 원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듣기를 원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소원을 들어주시고 그들과 함께 유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들과 일박이일의 사마리아 수양회를 가졌습니다. 급하게 열린 수양회지만 사마리아 사람들은 만사를 제쳐놓고 수양회에 참석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생명의 말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소감을 쓰고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였습니다. 그들은 과거 여인의 말에 기초하여 믿음을 가졌지만 이제는 예수님의 말씀에 기초하여 믿음을 가졌습니다.

 

(믿음의 성장)

 

우리가 처음에 신앙을 갖는 것은 주위 사람들의 영향력이 큽니다. 예수님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람들은 눈에 보이기 때문입니다. 주위 사람들 가운데 믿음으로 좋은 영향력이 있는 사람을 보고 예수님을 믿습니다. 은혜로운 간증을 듣고 예수님을 믿기도 합니다. 설교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도 있고 신앙 서적을 읽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꿈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믿는 사람도 있고 어떤 충격적인 사건을 겪은 후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이 여기서 그쳐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믿음이 성장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듣고 성경 말씀에 기초하여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말씀과 함께 하는 생활)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수님과 직접 생활하면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을 직접 만날 수 있을까요? 요한복음 일장에 보면 예수님은 태초에 계신 말씀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말씀으로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말씀은 영원불변의 패러다임입니다. 말씀대로 사는 사람들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을 통해서 그 뒤에 계신 말씀을 믿고 말씀대로 살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말씀으로 일하시는 성령님을 믿어야합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시고 예수님을 알게 하십니다. 우리는 성령님을 통하여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말씀을 묵상하는 생활)

 

말씀과 함께 유하는 생활은 어떤 생활일까요? 여호수아 일장 팔절 말씀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첫째는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며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묵상할 때 꿀송이보다 더 달콤한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소가 새김질을 하듯이 우리가 말씀을 묵상할 때 우리는 말씀이 주시는 생명력을 덧입게 됩니다. 말씀이 우리의 심령을 지배하게 됩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이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을 수 있습니다.

 

(말씀을 읊조리는 생활)

 

둘째는 말씀을 입에서 떠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입으로 시인하는 것입니다. 현실이 어떠하든지 말씀을 입으로 시인해야합니다. 현실은 이루어질 가능성이 없어도 말씀을 선포하고 반복하여 말씀을 암송해야합니다. 말씀에 기초하여 마음으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입으로 고백해야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열국의 아비라고 이름을 바꾸시고 항상 그를 열국의 아비라고 부르셨습니다. 그 가족들도 아브라함을 열국의 아비로 부르도록 시켰습니다. 더 나아가서 말씀을 주위 사람들에게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가르쳐야합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

 

셋째는 말씀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생활화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내 것이 되게 해야 합니다. 말씀을 살아 있는 육신으로 나타나게 해야 합니다. 말씀에 순종을 해야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로 믿어서 순종할 수도 있지만 순종하다보면 그리스도로 믿을 수도 있습니다.

 

(고향에서 냉대).

 

43,44절을 보십시오. “이틀이 지나매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며 친히 증거하시기를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 하시고

 

이틀 후에 예수님은 사마리아를 떠나서 갈릴리로 가셨습니다. 갈릴리 나사렛은 예수님이 자라나신 고향입니다. 예수님은 고향에 가시면서 선지자는 고향에서 높임을 받지 못한다고 증거하셨습니다. 대통령이 되거나 국회위원이 되거나 유엔 사무총장이 되어 고향에 가면 고향에서 존경을 받습니다. 심지어 서울대만 합격하든지 아니면 육사 수석합격하고 박사만 되어도 프랭카드를 걸고 환영합니다. 그러나 선지자는 다릅니다. 고향에서는 선지자를 하나님의 종으로 보지 못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과거에 매임)

 

첫째는 선지자의 과거 모습에 매여 있기 때문입니다. 선지자도 사람입니다. 인간적인 모습이 있습니다. 이런 인간적인 모습으로 선지자를 바라보니 존경할 수 없습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예수님도 어렸을 때는 똥오즘 싸시고 자랐을 것입니다. 동네 아이들과 뛰어 놀며 자랐을 것입니다. 함께 공중 목욕탕도 다니셨을 것입니다. 이런 모습에 기초하여 보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기 힘이 듭니다.

 

(인간적인 관계에 기초)

 

둘째는 인간적인 관계에 기초하여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옛날 시골은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습니다. 동네 모든 사람들이 서로 일가친척입니다. 이들은 모두 인간적인 관계로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너는 우리의 사촌 동생 조카 아저씨 이런 식으로 바라봅니다. 이웃집 아저씨를 이웃집 조카를 하나님의 아들로 보기 어렵습니다.

 

(영적인 관계)

 

우리는 여기서 인간적으로 친한 것이 영적으로 반드시 좋은 것이 아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친하면 영적으로 도울 수 없습니다. 주의 동역자들까지 인간적으로 친하여 함께 술을 먹으러 간다든지 하는 것은 신앙적인 관계를 갖는데 백해무익합니다. 서로 인간적으로 동정하며 불신의 말을 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를 그르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하나님 안에서 영적인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서로를 하나님의 종으로 존중하는 마음으로 대해야 합니다. 부부간에 부자간에도 서로 영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 중요합니다. 친구들 간에도 영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럴 때 고향에서도 서로 존경할 수 있습니다. 제가 하는 분은 친구가 목사가 되었는데 그분을 존경하고 장로가 되신 분이 있습니다. 조덕삼 장로는 이자익 머슴을 존경하여 목사로 세웠습니다. 그럴 때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예수님과 영적인 관계)

 

예수님은 가족들을 영적으로 대하셨습니다. 가족들이 찾아왔을 때 그들은 나의 가족이 아니요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만이 나의 가족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족들은 예수님의 말씀으로 잠시 서운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를 통하여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보게 됩니다. 예수님의 어머니나 예수님의 형제들이 변화되어서 사도행전의 좋은 동역자가 됩니다. 안드레가 변화되자 그의 형 베드로가 변화됩니다. 요한이 변화되고 그의 형 야고보가 변화됩니다. 이들은 초대교회의 사도팀에 있으면서 형 동생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서로 사도로서 존중하였을 것입니다.

 

(영적인 관계의 예들)

 

저는 오베드로 선교사님과 옛날 술친구이지만 지금은 주의 종으로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고 있습니다. 나는 아들딸인 오요한 오은혜 목동과도 영적인 관계를 맺고자 힘을 쓰고 있습니다. 남기혁 목동은 어머니 아버지와 일대일 말씀 공부를 합니다. 육적으로는 어머니 아버지이시지만 영적으로는 어머니 아버지도 복음이 필요한 양입니다. 이렇게 부모님과 영적으로 좋은 관계성을 맺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4장 강해 사부 말씀을 인하여

요한복음 439-요한복음 444

요절 요한복음 441절 예수의 말씀을 인하여 믿는 자가 더욱 많아

요한복음 4장 강해 사부 끝입니다.

 

 

 

 

 

요한복음 4장 강해 오부 두 번째 표적

말씀 요한복음 444-요한복음 454

요절 요한복음 450그 사람이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예수님은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첫 번째 표적을 행하여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드러내셨습니다. 모친이 절대적으로 순종하고 순종을 가르쳤기 때문에 예수님은 능력을 행하여 자신을 그리스도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두 번째 표적도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간 신하의 아들을 고치셨습니다.

 

(표적 신앙)

 

45절을 보십시오. “갈릴리에 이르시매 갈릴리인들이 그를 영접하니 이는 자기들도 명절에 갔다가 예수께서 명절 중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음이더라.”

 

어떤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몇 명 있었습니다. 이들은 명절에 예루살렘에 갔다가 예수님이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표적을 보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었습니다. 그들의 신앙은 표적에 기초한 신앙입니다. 우리가 표적을 통해서 예수님을 믿는 것도 잘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표적을 보고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표적을 통해서 예수님을 믿는 것에서 한 단계 더 나가야합니다. 표적을 통하여 예수님의 말씀에 관심을 가져야합니다.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을 믿어야합니다. 예수님 자신에 가져야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기초하여 믿어야합니다. 예수님의 피와 성령에 기초하여 믿어야합니다. 그렇지 않고 믿음의 기초를 표적에 두면 예수님이 표적을 행하지 않을 때 예수님을 떠날 수 있습니다. 표적이 신앙의 동기는 되지만 신앙의 기초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왕의 신하의 믿음)

 

46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라 왕의 신하가 있어 그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에 오심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 하니 저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

 

예수님은 갈릴리에 계시다가 가나 지방으로 가셨습니다. 이곳은 예수님이 물을 포도주로 바꾸어 만든 곳입니다. 왕의 신하가 가버나움에 살고 있었습니다. 당시 갈릴리 왕은 헤롯 안티파스입니다. 헤롯왕이 죽은 후에 그 아들입니다. 헤롯 안티파스의 신하 아들이 병들었습니다. 거의 죽게된 심각한 상태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가나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신 표적에 대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이 많은 병자를 고친 소식도 들었습니다. 이 예수님이라면 자신의 아들의 죽어가는 병을 고쳐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는 가버나움에서 가나까지 거의 백리 길을 와서 예수님께 아들의 병을 고쳐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표적 신앙의 문제들)

 

48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은 그가 표적을 보고 표적에 기초하여 예수님을 믿는 표적 신앙을 가질까 봐 경계하셨습니다. 표적과 기사를 보고 예수님을 믿는 표적신앙은 엄밀한 의미에서 신앙이 아닙니다. 그들은 표적이 있으면 예수님을 믿지만 표적이 없으면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이들은 표적이 신앙생활의 목표이지 표적을 행하시는 예수님이 신앙생활의 목표가 아닙니다. 표적 신앙은 자신의 욕심에 기초한 것입니다. 이들은 아무리 표적을 보아도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하여 더 큰 표적을 구합니다.

예수님이 오병이어로 오천명을 먹이자 무리들은 계속 떡을 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떡을 주지 않고 말씀을 주자 이들은 다 떠났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표적을 보아도 그 표적으로 만족하고 예수님을 떠나고 예수님이 표적을 주시지 않아도 예수님을 떠납니다. 마치 병원에 가는 사람이 병을 고치는 것이 목적이므로 병을 고쳐도 떠나고 병을 고치지 못해도 떠나는 것과 같습니다. 표적 신앙을 갖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마음에 예수님과 인격적인 관계성도 없고 마음에 하나님 나라도 없습니다. 마음에 진정한 행복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도마에게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않고 믿는 자는 복되도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표적을 보았으면 표적 자체에 관심을 갖지 말고 표적을 행하신 예수님과 말씀에 관심을 가져야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기초하여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십자가와 부활에 뿌리를 내려야합니다.

예수님은 표적에 기초한 신앙을 경계하십니다. 예수님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표적 밖에 보여줄 표적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표적을 보지 않고도 십자가와 부활에 기초하여 믿기를 원했습니다. 말씀에 기초하여 예수님을 믿는 순수한 신앙을 갖기를 원하셨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믿음으로 살면 표적을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이 표적을 보여주지 아니하실지라도 하나님을 믿겠다고 결단하였습니다. 우리는 말씀에 기초한 순수한 믿음을 가져야합니다. 십자가와 부활에 기초한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당신의 때에 표적을 주십니다.

 

(말씀을 믿고 가더니)

 

49,50절을 보십시오. “신하가 가로되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 하신대 그 사람이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신하는 예수님이 거절하시는 말씀을 듣고서 표적에 기초한 신앙을 회개하였습니다. 예수님이 표적을 보여 주시지 않아도 예수님을 신뢰했습니다. 예수님의 인격을 신뢰하고 예수님께 다시 간청하였습니다.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 오소서

 

예수님은 이런 신하의 믿음에 응답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직접 가지 않으시고 말씀으로만 하셨습니다. “네 아들이 살았다!” 신하는 표적신앙을 회개하고 말씀에 기초한 신앙을 갖게 되었습니다. 말씀에 기초한 신앙은 표적을 보더라도 그 표적을 행하신 예수님과 말씀에 관심을 갖고 말씀에 기초하여 믿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물고기를 많이 잡는 표적을 체험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관심은 표적에 있지 않았습니다. 표적을 행한 예수님께 관심을 가졌습니다. 예수님 앞에서 자신을 죄인으로 발견하였습니다. 예수님 앞에서 자신을 죄인으로 발견하고 죄사함을 받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베드로는 그 후에 예수님이 더 큰 표적을 주지 않아도 예수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영생의 말씀이 계시는데 내가 누구에게로 가겠느냐고 반문하였습니다. 그는 영생의 말씀을 주시는 예수님을 떠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신뢰하였기 때문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그대로 믿고 갔습니다.

왕의 신하는 네 아들이 살았다는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갔을 것입니다. 이 말씀에 기초하여 그래 내 아들은 살았어’. 를 외치며 가쁨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는 아들이 지금 나은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아들이 병들었다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 현실은 말씀과 달랐습니다. 그래도 현실을 보지 않고 말씀만을 전폭적으로 신뢰하며 나갔습니다. 우리는 말씀이 현실과 달라도 말씀만을 전폭적으로 신뢰하며 나가야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백부장도 종이 중풍병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만 하셔서 나을 수 있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만하시고 오시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백부장의 믿음을 크게 칭찬하였습니다. 하인의 병을 낫게 하셨습니다.

 

(아들의 치료)

 

51-53절을 보십시오. “내려가는 길에서 그 종들이 오다가 만나서 아이가 살았다. 하거늘 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은즉 어제 제 칠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 하는지라. 아비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았다. 말씀하신 그 때인 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안이 다 믿으니라."

 

그가 믿음으로 내려갔을 때 종들이 와서 아들이 살았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여 주었습니다. 신하는 언제 나았는가 물어보니 제 칠시 곧 오후 한 시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때였습니다. 그는 말씀의 역사인지를 분명히 확인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시공을 초월하여 즉시 역사하셨습니다. 신하와 그 가족들이 모두 이 사건을 통하여 말씀에 기초하여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표적을 보고 믿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에 기초하여 믿었습니다. 말씀에 기초한 믿음을 가진 후에 표적이 따라왔습니다. 말씀이 먼저고 표적이 나중입니다.

 

(시공을 초월한 말씀)

 

우리는 여기서 아주 중요한 진리를 알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믿은 그 순간에 병이 나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믿는 그 순간에 시공을 초월하여 일하십니다.

이는 마치 양자 역학에서 시공을 초월하여 한 쌍의 양자가 영향을 받는 것과 같습니다. 한 쌍의 양성자중에 하나의 양자를 측정하여 하나가 플러스가 나오면 다른 하나는 지구에서 아무리 멀리 떨어져있어도 마이너스가 나옵니다. 100만 광년을 떨어져 있어도 빛의 속도보다 빠르게 즉시로 이런 현상이 나타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면 말씀은 시공을 초월하여 친히 일하십니다. 예수님이 네 아들이 살았다 말씀하고 신하가 믿었을 때 즉시 세계 어느 곳이나 그 능력이 나타납니다. 참으로 신비로운 말씀의 능력입니다.

 

(말씀의 패러다임)

 

우리는 예수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예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는 패러다임입니다. 우리는 현실보다 말씀의 패러다임을 신뢰해야합니다. 현실에 문제가 있으면 말씀을 의심하기보다 현실에 조건을 의심해야합니다. 현실이 변하기를 기다려야합니다. 다른 영향을 주는 요인을 찾아야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마음 속에 믿으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친히 일하십니다. 마치 한 쌍의 양자처럼 믿는 즉시 일을 하십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일하십니다. 우리가 하진 목자님이 영어시험을 볼 때 본국에서 말씀을 믿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면 말씀은 지구 반대편에 있는 미국에 친히 나타나서 하진 목자님이 영어시험을 잘 보도록 일하십니다. 우리가 하진 목자님의 결혼식에 비가 오지 않을 것을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친히 일하사 구름을 멈추게 하십니다. 우리가 모임에 떠나 있는 양을 위해서 믿음으로 기도하면 주님은 친히 일하사 그 마음을 변화시켜 주십니다. 참으로 신비롭죠? 그렇습니다. 참으로 신비로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믿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신앙의 업그레이드)

 

54절을 보십시오. “이것은 예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신 후 행하신 두 번째 표적 이니라

 

예수님은 첫 번째 표적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셨습니다. 변화의 능력자이심을 보여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표적을 보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두 번째 표적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말씀으로 시공을 초월하여 일하시는 분임을 드러내셨습니다. 왕의 신하는 권위가 있었지만 자신의 자존심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며 갔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친히 말씀으로 역사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말씀에 기초한 신앙을 갖게 되었습니다. 신앙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었습니다. 우리에게 말씀을 기초한 신앙이 왜 중요할까요?

 

(불변하는 말씀)

 

첫째, 말씀은 변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영원토록 변함이 없습니다. 풀은 시들고 꽃은 마르나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합니다. 말씀은 불변하는 패러다임입니다. 우리가 사람들의 말이나 사람들의 인간관계나 표적에 기초하여 신앙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다 변하는 것입니다. 이곳에 기초하여 신앙의 집을 지은 사람은 언제 무너질지 모릅니다. 그러나 말씀에 기초하여 집을 지은 사람은 영원히 신뢰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인격적인 신앙)

 

둘째, 말씀에 기초한 신앙은 인격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표적은 일이지만 말씀은 인격입니다. 표적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나 말씀에 기초하여 그 말을 한 사람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깊은 사랑의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은 사람이 영생을 얻고 하나님 나라를 소유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표적을 행하더라도 예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지 못하면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표적만 행하고 인격적인 관계를 맺지 못한 사람들을 내가 알지 못한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말씀에 기초하여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서 예수님과 깊은 사랑의 관계성을 맺어야 합니다.

 

(말씀 안에 생명)

 

셋째, 말씀 안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말씀 안에는 기쁨이 있고, 힘이 있고, 자유가 있고, 생명이 있습니다. 말씀 안에 지혜가 있고, 능력이 있습니다. 말씀만이 우리를 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하여 성령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말씀을 믿고, 믿음으로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신비로운 말씀)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참으로 신비롭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면 하나님께서 친히 일하십니다. 즉시로 일하십니다. 말씀을 믿으면 우리는 예수님과 깊은 인격적인 관계성을 맺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은 우리 마음 속에 살아계십니다. 우리 마음 속에 영생이 있고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말씀에 기초한 신앙을 굳게 붙잡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요한복음 4장 강해 오부 두 번째 표적

말씀 요한복음 444-요한복음 454

요절 요한복음 450그 사람이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요한복음 4장 강해 오부 끝.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17 [요한복음] 요한복음 5장 강해 삼사부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5:10-18) 오요한 2005-03-12
16 [요한복음] 요한복음 5장 강해 일이부 진정한 베데스다 예수님( 5 : 1-9) 오요한 2005-03-12
15 [요한복음] 요한복음 4장 강해1 칠팔부 말씀을 인하여(4:39-54) 오요한 2005-03-12
14 [요한복음] 요한복음 4장 강해 오륙부 눈을 들어밭을 보라(27-38) 오요한 2005-03-12
13 [요한복음] 요한복음 4장 강해 삼사부 참예배 ( 4:15-26) 오요한 2005-03-12
12 [요한복음] 요한복음 4장 강해 일이부 솟아나는 샘물(4: 1-14절 ) 오요한 2005-03-12
11 [요한복음] 요한복음 3장 강해1 칠팔부 그 아들을 믿는자(3장31-36) 오요한 2005-03-12
10 [요한복음] 요한복음 3장 강해 오육부 이런 기쁨 ( 3:22-30) 오요한 2005-03-12
9 [요한복음] 요한복음 3장 강해 삼사부 하나님의 사랑 (3:16-21) 오요한 2005-03-12
8 [요한복음] 요한복음 3장 강해 일이부 우리가 어떻게 거듭나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는가? 놋뱀처럼 장대에 들리신 예수님 오요한 2005-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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