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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요한복음 4장 강해 오륙부 눈을 들어밭을 보라(27-38)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5-03-12 00:00:00
조회수 : 2,811

문제지풀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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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사장 강해 삼부 눈을 들어 밭을 보라

말씀 요한복음 427-요한복음 438

요절 요한복음 435절 너희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여러분은 주로 무엇을 보십니까? 텔레비전의 드라마입니까? 직장에 관련된 일입니까? 여러분은 주로 무엇에 관심을 갖습니까? 주식입니까? 가족들입니까? 아니면 돈 버는 일입니까? 아니면 학과 공부입니까?

예수님은 우리에게 눈을 들어 밭을 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소망을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한 영혼의 구원에 관심을 가지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눈을 들어서 밭을 보는 가운데 많은 곡식을 추수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을 신뢰하는 제자들)

 

27절을 보십시오. “이 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무엇을 구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저와 말씀하시나이까? 묻는 이가 없더라.”

 

제자들은 사마리아 동네에서 먹을 것을 사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한 여인과 대화하고 계셨습니다. 총각 예수님이 붉은 립스틱에 미티스커트를 입은 야한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하다니 제자들은 총각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를 이상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무엇을 구하시는지 아니면 왜 여자와 말씀하시는지 묻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신뢰하고 공경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신뢰의 관계성을 맺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사람을 신뢰할 때 꼬치꼬치 묻지 않습니다. 자신의 기준에 맡지 않는다고 비난하지도 않습니다. 참고 기다려 줍니다.

 

(사람들과 소통하는 여인)

 

28,29절을 보십시오.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여자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한 후에 변화되었습니다. 그는 직업이라고 할 수도 있는 물동이를 확 내팽개쳤습니다. 치마꼬리를 움켜잡고 동네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그녀는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말한 사람을 와 보세요. 그리스도가 아닙니까?” 여자는 금세까지만 해도 사람들과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을 보면 여자 편에서 먼저 피했습니다. 자신의 과거를 숨기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영접하자 그녀는 변화되었습니다. 모든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먼저 달려갔습니다. 자신의 과거를 고백하며 리이프 소감을 발표했습니다. 자신이 만난 예수님을 증거했습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력은 위대합니다.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사람들과 관계성을 회복하게 만듭니다. 예수님은 이론이 아니라 생명입니다. 예수님의 생명이 들어간 사람은 누구도 변화됩니다. 세리 레위가 성마태가 되었습니다. 인신매매자요. 방탕한 유다가 유대인의 조상이요. 예수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변화가 전도다)

 

30절을 보십시오. “저희가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많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여자가 전한 말씀이 논리적이고 감동력이 있어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여자가 신학교를 나오거나 선교사 교육을 받아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의 변화된 모습을 보고 나온 것입니다. 여자가 자신들에게 다가올 사람이 아닌데 다가왔습니다. 여자가 저렇게 기뻐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는데 너무나 기뻐하고 있습니다. 과연 여자를 변화시킨 예수님은 누군가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들은 여자를 변화시키신 예수님을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진짜 그리스도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우르르 예수님을 보러 몰려 나왔습니다.

 

(갈급한 사마리아 사람들)

 

유대인들은 혼혈족인 사마리아 사람들이 부도덕하다고 정죄했습니다. 제자들도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사람들의 내면은 갈급해 있었습니다. 그들도 여자와 같이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겉으로 보면 그리스도가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내면에서는 그리스도를 간절히 찾고 있습니다. 그들의 상처를 치료해 주실 그리스도를 찾고 있습니다. 그들의 가난과 질병에서 구원할 그리스도를 찾고 있습니다. 삶의 무의미와 권태에서 구원할 그리스도를 찾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가 만난 예수님을 확신있게 증거해야 합니다. “나를 구원하신 그분이 그리스도가 아닙니까? 와 보세요.”

 

(사람들이 얄지 못하는 양식을 가지신 예수님)

 

“31. 그 사이에 제자들이 청하여 이르되 랍비여 잡수소서 32. 이르시되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지금은 점심 때가 벌써 지났습니다. 사마리아 지방에서 사온 육개장은 벌써 식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어서 식사를 하시도록 권했습니다. 예수님이 먼저 드셔야 제자들도 먹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엉뚱한 말씀을 하십니다.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제자들은 아하, 누가 예수님께 잡수실 것을 갖다드렸군말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 혼자서 맛있는 것을 잡수셨는가속으로 수군거렸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말씀이 양식이다)

 

34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예수님이 말씀하신 양식은 제자들이 생각하는 양식과 다른 양식입니다. 물론 예수님도 육신을 입으셨기 때문에 밥을 드셔야합니다. 우리 인간은 밥을 먹지 않고 사십 일을 살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물을 마시지 않고 십일을 살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식사를 적당히 먹어야합니다. 예전에는 너무 못 먹어서 병이 났습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너무 많이 먹어서 병이 납니다. 우리는 적당히 먹어야 합니다. 적당히 먹어야 건강합니다.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성장할 수도 있습니다. 요즘에 삼시세끼라는 프로그램이 인기 있고 냉장고를 부탁해라는 프로그램이 인기 있습니다. 먹방이 유행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밥만으로 살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영혼의 양식이 필요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기쁨과 힘을 줍니다. 우리를 영적으로 성장하게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이 어찌 그리단지요? 꿀보다 더하니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거듭난 사람들은 말씀을 공부할 때 이런 기쁨을 맛보았을 것입니다.

 

(살과 피가 양식이다)

 

우리는 말씀뿐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합니다. 예수님은 나의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나의 피는 참된 음료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나의 죄를 위해서 피 흘리신 예수님을 묵상해합니다. 나의 죄와 연약함과 질병을 위해서 채찍에 맞으신 예수님을 묵상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죄사함을 받고 성령을 받습니다. 새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양식)

 

그러나 지금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양식은 말씀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살과 피도 아닙니다. 한 차원 높은 양식입니다. 이는 사명인이 먹어야 하는 양식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그 뜻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 양식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오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서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실 때는 그냥 보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보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의 뜻은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는 세상 만민을 구원하는 뜻을 이루셨습니다.

 

(한 사람의 구원이 주는 양식)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하며 여인을 구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나아가서 세상 만민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며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었습니다. 예수님의 삶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자신을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는 삶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이 양식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한 사람의 구원을 도우며 힘을 얻고 만족을 얻고 기쁨을 얻으셨습니다.

 

(사명의 완성이 양식이다)

 

하나님은 한 사람 한 사람을 세상에 보내실 때 당신의 뜻을 두십니다. 우리에게 맡기신 일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을 세상에 보내실 때는 그를 통하여 이방인의 구원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 평생을 바쳤습니다. 하나님의 주신 사명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쳤다고 말했습니다. 그에게 두신 사명을 다 이루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양식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않을 때 배가 고프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룰 때 만족이 있고 기쁨이 있었습니다. 힘이 나셨습니다. 매일 양식을 먹듯이 하나님의 뜻을 매일 이루시는 삶을 사셨습니다. 마침내는 십자가에 죽으시는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배고파하셨습니다.

 

(사명을 이루는 삶을 살자)

 

우리가 이 세상에 왜 태어났습니까? 우리가 그냥 우연히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시간이 남아서 우리를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냥 왔다가 그냥 가는 존재가 아닙니다. 빈둥거리며 살다가 죽는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내실 때는 뜻이 있어서 보내신 것입니다. 에베소서에 보면 하나님은 선한 일을 위하여 우리를 지으셨다고 하셨습니다.(2:10) 선한 일을 계획하시고 우리를 보내셨습니다. 우리는 그 일을 온전히 이루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양식입니다. 그때 우리의 영혼이 만족이 있고 기쁨이 있고 성장이 있습니다.

 

(사명은 행복이다)

 

사명은 우리를 힘 있게 하고 생명력 있게 합니다. 정년퇴임한 사람들이 쉽게 늙고 빨리 죽는다고 합니다. 우리의 사명은 정년퇴임이 없습니다. 우리가 죽을 때까지 사명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신 사명을 발견하고 그 사명을 온전히 이루는 것을 우리의 양식으로 삼아야 합니다.

 

(성경 강해의 사명)

 

저는 내가 왜 이 세상에 태어났는가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왜 천안 유비에프 교회을 시작하셨는가 생각해봅니다. 거기에는 분명히 뜻이 있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 심한 무의미와 권태에 시달렸습니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살다가 죽는 것 이렇게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라리 일찍 죽을까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알고 나서 나의 할 일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나의 은사를 살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은사는 성경 육십육권의 강해서를 쓰는 것입니다. 저는 시편이나 여호수아 말씀 곧 개척되지 않은 말씀을 메시지로 전하며 심히 놀랐습니다. ‘!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구나그리고 말씀에서 기쁨을 느낍니다. 이것을 쓰는 것이 나의 은사요 나의 사명입니다. 더 나아가 이것을 펜으로만 쓰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써야 합니다. 우리의 가정을 통하여 써야 합니다. 우리의 교회를 통하여 써야합니다. 이사야에 보면 말씀이 있는 곳으로 세계만방이 모여든다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말씀을 배우기 위해서 예루살렘 성전으로 모여 듭니다.(2:1,2)

제가 복음에 기초한 성경 66권 강해서를 쓰고 그 샘플을 우리 교회에 만들 때 세계에서 말씀을 듣고자 천안ubf로 모여 들 줄을 믿습니다. 또한 성경 강해대로 살아갈 때 세계만민이 빛을 보고 몰려올 것입니다. 아멘!

 

(영적인 추수기)

 

35절을 보십시오."너희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예수님은 예수님께로 나오는 사마리아 사람들을 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예수님을 대조하여 말씀하십니다. 당시에 곡식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됩니다. 제자들은 영적으로도 사마리아 사람들은 구원의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을 볼 때도 구원이 먼 사람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시각은 다릅니다. 예수님이 보실 때 사마리아여인은 준비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영적인 곡식은 현재가 추수기입니다.

아브라함으로부터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는 농사를 짓는 시기였습니다. 하나님은 많은 선지자를 보내사 복음의 씨를 뿌렸습니다. 물을 주고 거름을 주셨습니다.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여 잡초를 제거하였습니다. 이제 예수님이 오시면서부터 천국 창고로 사람들의 영혼을 거두어들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하신 말씀을 통하여 두 가지를 배웁니다.

 

(양들에 관심을 가질 것)

 

첫째, 눈을 들어서 밭을 보아야합니다. 제자들의 눈은 지금 먹는 밥에 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먹고 사는 것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눈을 들어 관심을 하나님의 양떼에 돌리라고 하셨습니다. 영어 성경에는 눈을 뜨라고 합니다. 우리는 먹고 사는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학점 따는데 취업하는데 직장 일에 가정 일에 관심이 많습니다.

물론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려면 이런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 관심의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런 것은 사명을 감당하는데 필요한 부수적인 것입니다. 우리의 아르바이트일 뿐입니다. 우리는 사명에 관심을 집중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일 이것이 본업입니다. 먼저 캠퍼스 학생들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양들의 생명을 살리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비전을 가질 것)

 

뿐만 아니라 눈을 들어 밭을 보라는 것은 하나님의 비전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마리아를 바라보고 사마리아 선교의 비전을 갖기를 원하셨습니다. 더 나아가 땅 끝까지 바라보는 세계선교의 비전을 갖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자녀 없는 현실로 사라의 배만 바라보았습니다. 그럴수록 가족적이 되고 자기중심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아브라함에게 뭇별을 보여주시고 자식이 그와 같이 많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 땅을 양보했을 때에 아브라함이 있는 곳에서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하셨습니다. 그 땅을 다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더 나아가서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고 하셨습니다. 그 땅을 다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자식이 없어 피해의식에 빠졌을 때 하나님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도 눈을 들어서 캠퍼스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충청권 캠퍼스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넓은 세계 캠퍼스를 보아야 합니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습니다. 우리는 세계로 나가서 세계를 다녀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바라보고 다니는 그곳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절박한 마음)

 

둘째, 예수님은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곡식이 추수하게 되었을 때는 빨리 추수해야 합니다. 이는 추수의 절박성과 긴박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열심히 농사를 지어놓은 벼가 추수를 하지 않아서 뚝뚝 떨어져 썩어 갈 때 농부의 마음이 어떠하겠습니까? 열심히 돌본 돼지나 닭이나 오리를 구제역으로 땅에 파묻는 농부들의 마음이 어떠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복을 전하셨는데 이 복음을 듣지 못하고 한 생명씩 지옥에 떨어져 죽어가는 것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하겠습니까? 우리는 이런 절박함으로 복음을 전해야합니다. 우리는 어찌하든지 하는 아버지의 심정으로 복음을 전해야합니다.

이 목자님의 후배 하나가 우울증으로 자살을 하였습니다. 이 목자님이 그곳을 다녀와서 그 부모님들의 애통하는 마음을 배웠다고 하였습니다. 그런 어머니와 아버지의 마음으로 우리는 복음을 전해야합니다. 사도바울은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그런 절박함으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우리가 이런 절박성과 긴박성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함께 기뻐하는 복음 역사)

 

36-38절을 보십시오.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내가 너희로 노력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의 노력한 것에 참예하였느니라.”

 

추수하는 는 자는 추수를 하면 기쁨이 가득합니다. 추수한 것으로 많은 이익을 봅니다. 씨를 뿌리는 자도 추수 때에 함께 기뻐합니다. 자신이 뿌린 씨가 결실을 맺었기 때문에 보람을 느낍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하여 두 가지를 배웁니다.

 

(씨뿌리는 자의 삶)

 

첫째, 우리는 기쁨으로 씨를 뿌려야합니다. 우리가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씨를 뿌렸는데 내가 거두지 못하면 우리는 실망이 됩니다. 내가 헛수고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복음을 전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내가 뿌린 씨를 내가 꼭 거두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한 사람은 뿌리고 한 사람은 거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누군가가 거두고 그러면 그때 뿌린 자도 함께 상을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때로는 다른 사람이 씨를 뿌렸는데 우리가 거두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는 추수를 통하여 복음의 씨를 뿌려준 사람을 생각하고 감사를 해야 합니다. 시편에 보면 눈물로 씨를 뿌린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둔다고 하셨습니다. 씨를 뿌리는 것은 힘이 드는 일이고 눈물나는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뿌린 씨를 반드시 거둔다는 것을 믿을 때 기쁨으로 씨를 뿌릴 수 있습니다.

 

(거두는 때가 있다)

 

둘째, 우리는 거두는 것은 각자 때가 있음을 알아야합니다. 지금 당장 거두려고 하지 말고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벼를 뿌리면 적어도 일곱 달은 기다여야 합니다. 포도나무를 심었으면 적어도 삼년을 기다려야합니다. 특히 십년을 보는 자는 나무를 심고 백년을 보는 자는 사람을 키운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백년대계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사람을 키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삼천년 후를 생각하며 키우셨습니다. 천년 후를 생각하며 이스라엘 백성을 키우셨습니다.

우리 주위에 조상들이 심어놓은 나무에서 열매를 따서 먹는 후손들을 보면 아름답습니다. 조상들은 먼 미래를 생각하며 나무를 심었고 후손들은 그 덕을 보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먼 미래를 보면서 씨를 뿌리고 나무를 심어야 합니다. 우리는 힘써 복음을 전해야합니다.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이 반드시 열매를 주실 줄을 믿습니다. 우리 유비에프 선배들은 먼 미래를 바라보며 복음의 씨를 심었습니다. 우리도 삼십년 후를 바라보며 아니 백년 후 천년 후를 바라보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전 세계를 바라보면 복음의 일꾼을 양성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열매를 주실 것을 믿습니다.

 

셋째, 우리는 때가 되면 거두어야합니다. 다른 사람이 기도하고 말씀을 전한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가 노력하지 않은 것을 거둘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거듭나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뿌린 사람에게도 기쁨이 됩니다. 언더우드는 나는 씨를 뿌리러 왔는데 거두게 되었다고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뿌리러 나가고 거두러나가야 합니다. 시대적으로도 주고 받고 동시대에도 교회끼리 주고 받는 것입니다. 아멘!

 

요한복음 사장 강해 삼부 눈을 들어 밭을 보라

말씀 요한복음 427-요한복음 438

요절 요한복음 435절 너희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요한복음 4장 강해 3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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