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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요한복음 3장 강해 오육부 이런 기쁨 ( 3:22-30)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5-03-12 00:00:00
조회수 : 2,178

문제지풀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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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3장 강해 3부 이런 기쁨

말씀 요한복음 322-요한복음 330

요절 요한복음 329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어떤 마을에 현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존경을 받고 분이었습니다. 그가 산책을 나갔다가 보석을 발견합니다. 이 정도면 한 평생 먹고 살만한 재산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을 잘 보관했습니다. 어느날 남루한 거지 하나가 와서 먹을 것을 달라고 했습니다. 현자는 그에게 저녁상을 해다 바쳤습니다. 아주 고맙습니다. 인사하고 휘휘 돌아보더니 상위에 보석을 보았습니다. 그러더니 저 보석을 나 줄 수 없습니까? 그러면 이제 다시 거지 노릇을 하지 않으면서 살 것 같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현자는 보석을 선뜻 내어 주었습니다. 거지는 보석을 가지고 나가더니 하루 후에 보석을 가지고 현자를 찾아왔습니다. “저는 배는 고프지만 잠은 잘 자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 보석을 갖다 놓으니 잠을 잘 못 잤습니다. 그래서 도로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 거지가 뜻있는 말을 하였습니다. “선생님. 이 보석을 선뜻 내어 줄 수 있는 그 마음을 주십시오.” 라고 하였습니다. 보석이 없어도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그런 마음을 달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는 이런 기쁨이 가득한 세례요한이 나오고 있습니다. 요한은 제자들이 자신을 떠나서 예수님께 가자 이런 기쁨이 충만하다고 하였습니다.

 

(요한에서 예수님의 시대로)

 

22-24절을 보십시오. “이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유대 땅으로 가서 거기 함께 유하시며 침례를 주시더라. 요한도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침례를 주니 거기 물들이 많음이라. 사람들이 와서 침례를 받더라. 요한이 아직 옥에 갇히지 아니 하였더라.”

 

예수님은 니고데모와 대화하신 후에 유대 땅으로 가서 거기 유하시며 침례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실 예수님이 침례를 주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들이 준 것입니다.(4:1,2) 예수님의 제자들은 침례를 줌으로서 적극적으로 성도 수를 늘리고자 하였습니다. 요한도 전에 침례를 주던 살롐 가까운 에논에서 침례를 주고 있었습니다.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러 모였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예수님께로 모여 들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점점 요한의 시대는 쇠하여 지고 예수님의 시대가 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저자는 요한이 아직 옥에 갇히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옥에 갇히기 직전이라는 말입니다. 얼마 후에는 죽음을 맞이할 것입니다. 저자는 요한의 시대가 끝나고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자신의 사명을 다 이루었습니다.

 

(요한 제자들의 시기심)

 

25,26절을 보십시오. “이에 요한의 제자 중에서 한 유대인으로 더불어 결례에 대하여 변론이 되었더니 저희가 요한에게 와서 가로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강 저편에 있던 자 곧 선생님이 증거하시던 자가 세례를 주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

 

요한의 제자 중에 서 한 유대인과 결례에 대해서 변론하였습니다. 결례는 손발을 깨끗이 하거나 식기를 깨끗이 닦는 것을 말합니다. 부정한 것을 한 후에 깨끗하게 하는 의식을 말합니다. 아이를 낳은 후에 산모가 깨끗해지거나 문둥이가 나은 후에 깨끗하다고 인정받는 것도 결례입니다. 침례를 주는 것도 결례에 속합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침례를 주는 것에 대해서 의논하였을 것입니다. “그 갈릴리 어부들이 침례를 주어도 되는 거야!” “글세 말야 그들은 자격도 없잖아. 이번에 그들이 침례 주는 것에 대해서 태클을 걸어야 해” “맞아 이 문제는 침례의 원조이신 우리 요한 선생님께 이야기 해야 해그래서 그들이 요한에게 와서 말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과 함께 요단강 저편에 있던 자 곧 선생님이 증거하시던 자가 침례를 주매 다 그리로 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세례 요한이 예수님이 침례 주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고 이것을 막아 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들의 마음 속에는 예수님에 대한 시기와 질투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이전만 해도 침례요한의 인기는 대단했습니다. 온 예루살롐 사람과 유대인이 다 침례를 받으러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침례요한의 인기는 점점 사그러들고 있었습니다. 반면에 갈릴리 목수의 아들 예수님의 인기는 점점 커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 둘씩 빠져 나가서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로 가고 있었습니다. 요한 베드로 안드레 모두 요한의 제자였으나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요한의 제자들의 마음 속에는 자연스럽게 배가 아파오고 열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무서운 명예심)

 

이 시기심은 무서운 질병입니다. 우리가 잘 살고 출세하면 좋을 것 같지만 좋지 않습니다. 자신보다 더 잘 살고 더 출세한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절대적인 빈곤보다 더 큰 상대적인 빈곤감에 시달립니다.

에피크루스는 사람에게 세 가지 욕망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의식주의 욕망이 있습니다. 이는 기본적인 욕구입니다. 두 번째는 성욕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이는 다스릴 수 있는 욕구입니다. 셋째, 부와 명예와 대한 욕구는 채워질 수도 없습니다. 이는 상대 욕구라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더 인정 받고 더 높임 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이 욕망의 노예가 되어서 불행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 중에 특히 명예욕은 시기심을 불러일으킵니다.

 

(무서운 시기심)

 

시기와 질투는 사람을 병들게 만듭니다. 질투는 자기를 상실하게 합니다. 그 사람은 자신을 망가지게 합니다. 시기는 자신의 뼈를 썩게 합니다. 시기는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미움과 증오를 갖게 합니다. 살인하게 합니다.

가야바가 대제사장입니다. 하나님께서 준비시킨 이스라엘 민족의 종교지도자입니다. 이런 제사장이 예수님을 사형죄로 고소하는 원고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대제사장이 예수님을 죽일 수 있단 말입니까? 이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이유는 시기와 질투입니다. 시기와 질투가 큰 죄임을 알아야 합니다. 뿌리 깊은 죄가 시기입니다.

 

(가인의 시기심)

 

가인은 자신의 형제인 아벨을 돌로 쳐 죽입니다. 인류 최초로 친족을 살인합니다. 어떻게 형제가 형제를 죽일 수 있습니까? 시기심이 이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하나님이 왜 아벨의 제사를 받으시는데 나의 제사를 안 받느냐는 것입니다. 가인은 아벨도 제사를 안 받았다면 마음이 편했을 것입니다.

 

(사울의 시기심)

 

사울은 충신 다윗을 죽이고자 합니다. 다윗은 사울과 이스라엘을 위해서 싸우는 명장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딸을 아내로 삼은 사위였고 자신의 아들의 절친한 친구였습니다. 그러나 시기심은 이런 사위요. 충신을 죽게 합니다. 죽이고자 하는 이유는 딱 한 가지입니다. 다윗이 자신보다 더 많은 인정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는 다윗을 죽이고자 할 뿐 아니라 스스로는 번민에 시달립니다. 그리고 이로 인하여 많은 신하들이 죽게 합니다.

 

(대소의 시기심)

 

요즘 드러마 주몽이 뜨고 있습니다. 주몽이 아버지 금와왕의 인정을 받자 부여 왕자인 대소는 주몽을 시기합니다. 그는 시기심으로 적에게 아군의 정보를 알려 주어 아군이 피해를 보게 합니다. 시기심은 나라가 망하든, 백성이 죽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나 하나만 잘되면 된다는 생각입니다.

 

(선조의 시기심)

 

원균이 성웅 이순신 장군을 시기하여 모함하고 백의종군하게 만들었습니다. 나라가 망해도 이순신을 끌어내리고자하였습니다. 이순신 드라마에 보면 심지어 선조왕도 이순신을 시기하여 죽이려고 하였다고 합니다. 이를 보면 시기심이 얼마나 무섭고 사람을 파멸에 이르게 하고 공동체를 파괴하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형의 시기심)

 

둘째 아이를 낳으면 첫째는 둘째를 괴롭힙니다. 예전에 오빠 요한이는 추석날 동생 은혜의 눈에 모래를 뿌려서 은혜가 소경이 되지 않나 크게 당황한 적이 있습니다. 첫째가 둘째의 얼굴을 할퀴는 것은 흔히 있는 일입니다. 이것을 아시한다고 합니다. 심지어 저도 젊은 선생들이 인기가 더 있으면 시기심이 생기는 것을 보고 놀라게 됩니다. 시기심은 어린이 늙은이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에게 공통된 본성입니다. 그러면 이런 시기심은 어쩔 수 없는 것입니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닙니다. 세례요한은 이런 시기심을 극복한 아주 좋은 예를 보여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믿음)

 

27절을 보십시오.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세례요한은 자신에게 오던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가는 것을 신앙적으로 소화합니다. 하나님의 주권 편에서 예수님의 인기를 받아들입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많이 간다고 합니다.

우리는 우리 주위의 잘 되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주권 편에서 소화해야 합니다. 악인이 형통을 보더라도 하나님이 주신 바라고 받아 들여야 합니다.(24:1) 악인의 형통은 회개치 않는 자들을 지옥에 끌어들이기 위한 하나님의 방치입니다. 전혀 부러워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아벨의 제물을 받으신 것도 하나님의 선하신 주권이고 하나님이 다윗을 기름부어 세우신 것도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하나님의 이런 주권을 인정하면 그 주권에 순종해야합니다. 시기심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교만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할 때 시기심의 많은 부분이 없어집니다.

 

(요한의 정체성 발견)

 

28절을 보십시오. “나의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거할자는 너희니라.”

 

세례요한은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리스도의 선구자로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사명과 정체성을 발견해야 합니다. 사람은 그리스도가 아니요. 창조주가 아닙니다. 피조물이요. 죄인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영광을 취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께 온전히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나의 사명 발견)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사명을 받아 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각자의 사명은 우리 지체와 같습니다. 손과 발이 하는 일이 다르고 눈과 귀가 하는 일이 다릅니다. 이는 서로 비교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각자가 하는 일이 다릅니다. 세례요한은 요한이 할 일이 있고 예수님은 예수님이 할 일이 있습니다.

요한의 사명은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앞에서 이 일을 하고 물러나는 것입니다. 모두는 하나님 앞에서 절대 가치가 있습니다. 이런 가치를 발견하고 비교의식을 버릴 때 우리는 시기심에서 자유함을 갖을 수 있습니다. 요한은 자신의 사명을 다하고 물러가는 것입니다.

 

(주인공은 예수님)

 

29을 보십시오.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 하였노라.”

 

세례요한은 이런 기쁨이 충만하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기쁨은 신랑의 친구가 갖는 기쁨입니다. 한 신랑이 결혼하는데 그의 친구가 있습니다. 미국이나 한국은 둘러리로 두 명씩이 옵니다. 들러리는 신랑이나 신부만 못한 사람들만 옵니다. 결혼식을 하는 신랑은 신부를 취하여 좋아합니다. 그러면 친구는 신랑이 왜 신부를 취하는가 시기하지 않습니다. 신랑이 신부를 취하는 것을 너무나 당연히 여깁니다. 그는 자신이 신랑이 아니요. 신랑의 친구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주연은 신랑이요. 친구는 조연입니다. 드라마에서 주연이 떠야 조연도 조명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조연은 주연이 인기를 얻으면 덩달아 좋아합니다. 주연이 인기가 있어야 조연도 인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친구는 신랑을 사랑하기 때문에 함게 기뻐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사랑하고 내가 예수님이 아니라 예수님의 증거자를 것을 알 때 가뻐할 수 있습니다.

 

(함께 하는 기쁨)

 

이런 기쁨은 누군가 성공하면 나도 좋은 것입니다. 내 기쁨처럼 기뻐하는 것입니다. 월드컵에서 골을 넣으면 전국민이 함께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는 내가 축구 선수가 아닌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잘 되는 것이 내가 잘 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감옥에 갇혔을 때 어떤 사람들은 바울을 시기하여 열심히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바울에게 괴로움을 주고자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괴로워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전파되는 것으로 인하여 기뻐하고 기뻐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고 나는 예수님을 전달하는 사명이라는 것을 알 때 우리는 기뻐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기뻐하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부모는 자식이 잘 될 때 시기하지 않습니다. 기뻐합니다.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기쁨의 중요성)

 

세례요한의 마음에는 시기와 질투가 없었습니다. 시기와 질투가 없을 때 자유하게 됩니다. 마음에 기쁨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 기쁨이 가득합니다. 로만 커즌이라는 사람이 병의 분석이라는 책을 씁니다. 그는 병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호탕하게 웃으라고 합니다. 위장병은 웃어야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암 말기 환자는 인생의 긍정적인 면을 보고 마음껏 웃었습니다. 그러자 병이 나았다고 합니다. 웃으면 엔돌핀이 나옵니다. 엔돌핀이 나오면 마약보다 더 큰 기쁨이 생깁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웃을 수 있습니까? 시기와 질투를 버려야 합니다.

 

(최윤희씨)

 

웃음이 헤픈 여자가 성공한다는 책이 있습니다. 최윤희씨가 쓴 책인데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초청받는 스타 강사입니다. 그의 비결은 웃음입니다. 그는 남편이 사업을 하다가 망했습니다. 이혼을 하려다가 절차가 너무 복잡해서 못했습니다. 동반 자실을 하려고 하다가 애들이 너무 재미있게 노는 것을 보고 포기한 사람입니다. 묻지마 인생으로 타락을 하려다가 양심은 있어서 그것을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재기하기 위해서 현대그풉 주부사원 공채 시험에 응시합니다. 1331:1의 경쟁률을 보고 포기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녀는 재주도 없고 못생긴 아줌마였습니다. 그런데 적극적인 여자 한분이 옷자락을 끌어서 결국은 시험을 보게 됩니다. 객관식 문제는 대부분 찍었습니다. 자기 소개서에는 에꾸눈 임금의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의 지혜에 대해서 썼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인생의 긍정적인 면만 보겠다고 썼습니다. 특기는 멍하게 하늘 쳐다보기, 바람 맞으며 걷기, 취미는 인상 쓰고 있는 사람 간지럼 피우기라고 썼습니다. 그는 튀는 말로 인하여 이곳에 뽑혀가지고 카피라이터가 되었습니다. 그 후 그는 많은 사람에게 기쁨을 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물론 최윤희씨는 나중에 자살하였습니다. 인간의 기쁨은 이런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서의 기쁨은 영원합니다.

 

(칭찬하는 사람들)

 

우리는 남이 내게 하는 칭찬을 받아들여야합니다. 남이 나를 칭찬하면 고맙습니다.” 라고 해야 합니다. 그 칭찬을 받을 수 있는 것에 대해서 하나님과 다른 사람에게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칭찬할 때 웃기고 있네하면 그 사람과의 관계가 파괴됩니다. 자신이 잘난 체하면 다른 사람의 시기심을 받습니다. 자신이 칭찬을 받았으면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고 남을 칭찬해야 합니다. 당신 덕분이라고 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남을 칭찬하는 말에 동의해야 합니다. 나도 그 말에 적극 칭찬해야 합니다. 그래 맞아 하고 공감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깍아 내려서는 안 됩니다. 이런 사람은 스스로 망해가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 위장병으로 빨리 죽습니다.

 

(한계를 아는 것)

 

30절을 보십시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우리는 시기심을 극복하기 위해서 나의 한계를 알고 한계를 설정해야합니다. 한계를 설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자입니다. 그 일을 했으면 세례요한은 물러가야 합니다. 세례 요한은 광야의 소리 외치는 자의 소리로 초지일관했습니다. 여기서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소리는 의미를 전달하고 사라지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것에 대해서 꾸준히 지켜갔습니다.

 

(물러나는 기쁨)

 

우리에게는 물러나는 기쁨도 있습니다. 김동길 목사가 이런 강의를 하였습니다. 감투는 머리에 맞아야 합니다. 너무 크면 눈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것을 눌러쓰고 죽은 사람이 있습니다. 감투를 남에게 씌워두고 보는 재미도 좋습니다. 물러가는 기쁨이 있습니다. 꽃이 피는 아름다움도 있지만 지는 아름다움도 있습니다. 이 기쁨이 없으면 안 됩니다.

 

(프란시스의 기쁨)

 

성프란시스가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임종이 가까울 때 큰 소리로 찬송을 부릅니다. 성프란시스가 죽을 때 참을 수 없는 기쁨이 있습니다. 주님을 만냐야 하는데 이렇게 기쁠 수가 없습니다. 주님만을 사랑하고 높이는 사람은 기쁩니다. 이는 깊은 내면에 예수님이 있기 때문입니다. 페러다임을 바꾸어야 합니다. 칭찬하고 존경하고 물러나는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나의 물러남)

 

내 나이도 내년에는 오십입니다. 이제 제가 복음 역사를 섬길 수 있는 날은 15년 정도 남았습니다. 그러면 물러나야 합니다. 그 후에 또 15년 정도 더 살면 하나님 나라 가야 합니다. 이것이 나의 인생입니다. 제가 이것을 받아들이고 기쁨으로 물러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물러나지 않고자 발버둥치면 안 됩니다.

 

(배우고자 하는 마음)

 

우리가 시기하는 사람은 대부분 우리보다 훌륭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그를 시기하기보다 배워야합니다. 그에게서 배우면 나도 그 사람처럼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분은 나의 좋은 선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분이 있어서 나는 행복합니다. 그분의 그늘에 쉴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합니다.

사랑의 교회가 많이 성장했습니다. 우리는 옥한음 목사를 통하여 제자양성을 배웁니다. 여의도 순복음 교회가 많이 성장하였습니다. 우리는 조용기 목사님을 통하여 성령의 강물이 흐르는 것이 무엇인가 배웁니다. 소망교회에 유지들이 많이 모입니다. 우리는 곽선희 목사님을 통하여 말씀을 사랑하는 것을 배웁니다. 하나님은 종로의 전요한 목자님을 통하여 많은 제자양성을 이루셨습니다. 우리는 전요한 목자님을 통하여 겸손과 제자 양성을 배웁니다. 우리는 이런 분들이 있어서 행복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에게 신랑되신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친구로 자신을 발견함으로 기쁨이 충만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요한복음 3장 강해 3부 이런 기쁨

말씀 요한복음 322-요한복음 330

요절 요한복음 329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요한복음 3장 강해 삼부 끝입니다.

11,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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