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컨텐츠 바로가기

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요한복음 4장 강해 일이부 솟아나는 샘물(4: 1-14절 )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5-03-12 00:00:00
조회수 : 3,848

문제지풀이(3)

    icon3.hwp  (83.50KB)

    icon4.hwp  (97.00KB)

    icon1.hwp  (38.50KB)

요한복음 4장 강해 1부 솟아나는 샘물

말씀 요한복음 41-요한복음 414

요절 요한 복음 414절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인간은 물이 몸의 8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사람에게 물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사람이 밥을 먹는 것보다 물을 마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은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모든 생명에게 필요합니다. 식물도 물이 있어야 살고, 동물도 물이 있어야 살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잠시 먹는 한 바가지 물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영원토록 솟아나는 샘물이 필요합니다. 영혼의 만족을 주는 물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원토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십니다. 예수님에게서는 나 하나만 먹을 만큼의 샘물이 솟아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에게서는 내 가족과 이웃과 우리의 후손과 세계만민이 먹을 만큼의 샘물이 솟아납니다. 이 샘물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샘물에서 성령님이 계속하여 우리의 마음 속에서 솟아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관심)

 

1,2절을 보십시오. “예수의 제자를 삼고 세례를 주는 것이 요한보다 많다 하는 말을 바리새인들이 들은 줄을 주께서 아신지라. 예수께서 친히 세례를 주신 것이 아니요, 제자들이 준 것이라.”

 

예수님의 제자들이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세례요한이 세례를 주는 것보다 제자들이 더 많은 세례를 주었습니다. 바리새인과 종교지도자들은 세례요한이 세례를 주었을 때 매우 예민하게 반응했습니다. 그들은 조사단을 파견하여 세례요한이 과연 메시야인가 아니면 엘리야인가 알고자 하였습니다. 세례요한은 조사단에게 자신을 철저히 부정하고 예수님만을 증거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세례요한보다 세례를 더 많이 준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제 바리새인들의 관심은 요한에게서 예수님께로 향하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다시 조사단을 파견하고자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관심이 자신에게 쏠린 것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아직 자신을 그리스도로 공표할 때가 아닙니다. 아직은 십자가에 죽으실 때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들과 쓸데없는 논쟁을 피하고자 유대를 떠나서 갈릴리로 가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한 사람이라도 더 복음을 전하여 구원하고자 하셨습니다.

 

(유다와 사마리아의 갈등)

 

3,4절을 보십시오. “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 새 사마리아로 통행하여야 하겠는지라.”

 

당시에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과 상종치 않았습니다. 여기에는 뿌리 깊은 역사적인 배경이 깔려 있습니다. 사마리아는 북이스라엘의 수도입니다. 이스라엘은 남북이 갈라진 후에 북이스라엘은 앗시리아에 의해서 망했습니다. 그들은 망한 후에 우상을 숭배하고 혼혈족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 중건 때도 많은 방해를 하였습니다.

선민의식이 강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을 사람 취급을 하지 않고 무시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욕을 할 때 너는 사마리아 사람이다. 귀신들렸다고 하였습니다.(8:48) 유대인들은 유대에서 갈릴리로 갈 때 빠른 길로 가려면 사마리아 땅을 통행해야 합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사마리아로 다니지 않고 요단강을 건너서 먼 길로 돌아다녔습니다. 마치 우리가 중국이나 러시아에 갈 때 북한으로 가지 못하고 멀리 돌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유대인과 사마리아 사람의 적대관계는 우리나라 남한과 북한의 반목과 질시보다 더 심각했습니다. 남북분단은 겨우 50년 정도 되었지만 사마리아인과 유대인의 분단은 930년이나 되었습니다. 남북의 갈등은 이념의 갈등이지만 이들의 갈등은 종교적인 갈등입니다. 종교적인 갈등은 이념의 갈등보다 더 깊고 심각합니다.

이린 상황에서 유대인인 예수님은 사마리아로 통행하고자 하셨습니다. 통행하여야 하겠는지라는 must 로서 통행하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입니다. 왜 예수님이 사마리아로 통행하고자 하였을까요?

 

(벽을 허무시는 예수님)

 

첫째, 예수님은 사람이 만든 모든 벽을 허물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벽을 허물고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사람들 사이의 모든 담을 허물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피로 사람들 사이의 모든 담을 허셨습니다. 예수님 안에서는 사마리아 사람이나 유대인이나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는 남한이나 북한이나 영남이나 호남이나 보수나 진보나 구세대나 신세대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여자나 남자나 다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남편과 아내, 아버지와 아들, 목자와 양도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하시는 예수님)

 

둘째, 예수님은 사마리아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도행전에서도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친히 본을 보이사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도행전에서 제자들이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하지 않자 핍박을 통하여 사마리아 땅으로 흩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흩어진 자들이 복음을 전하자 이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하십니다.

담안선교회가 있습니다. 교도소에서 출소한 사람들을 돕는 선교회입니다. 이 중에 84명의 목회자가 나왔다고 합니다. 니고데모는 변화되는데 3년이 걸립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여자는 바로 변화됩니다. 많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기 원하십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세계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하십니다. 전에 예수님은 공산권에 통행하며 복음을 전하고자 하셨습니다. 이제 공산권에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이슬람권과 북한에도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십니다. 한국에서 백만 선교사를 파송하여 세계에 복음 전하기를 원하십니다.

 

(소외된 자의 친구 예수님)

 

셋째, 예수님은 소외된 자의 친구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유대사람들에게 소외된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은 존엄성이 있고 존중받기를 원하십니다. 사람들은 무시 받고 소외되면 고통스럽습니다. 하나님 편에서 보면 소외되는 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닙니다. 소외된 사람들은 마음이 가난하고 복음을 갈망합니다.

현대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소외와 고독 문제입니다. 현대인들은 고독하고 소외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돈을 중시 여기고 조직을 중시여깁니다. 사람들이 물질주의 사회, 조직 사회에서 무시 받고 있습니다. 교통사고가 나도 돈으로 해결하면 그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족끼리도 돈을 위해서 서로를 살해하기도 합니다. 조직의 유지 발전을 위해서 한 두 사람 희생하는 것을 문제 삼지 않습니다. 학교에서도 왕따 문제는 심각합니다. 요즘 학생들은 사람들과 바른 관계를 잘 맺지 못합니다. 현대인들은 고독과 소외 문제로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들은 복음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복음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찾아가시고 복음을 전하기 원하십니다. 오늘 일시 귀국한 양순 선교사도 소풍 갈 때 두 명의 친구와 함께 가기로 약속을 했다가 두 명의 친구에게 버림을 받았습니다. 친구 없이 외롭게 다녔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로 통행하여야 하겠는지라는 말씀을 듣고 소외된 자신을 찾아오신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 후 변화되어 중국의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유서 깊은 수가 동네)

 

5,6절을 보십시오.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행로에 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제 육시쯤 되었더라."

 

예수님은 사마리아 수가라는 곳에 이르렀습니다. 그곳은 야곱이 8년 정도 머물렀던 세겜 땅입니다. 야곱은 이곳에서 서원을 갚지 않고 머뭇거리다가 딸 디나가 성폭행을 당하고 아들들은 살인극을 벌였습니다. 이곳 주위에는 유서 깊은 축복의 산 그리심산과 저주의 산 에발산도 있습니다. 야곱은 이곳에서 우물을 파고 땅을 샀습니다. 땅의 일부를 요셉에게 물려주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리심산과 에발산을 보며 이스라엘의 역사를 회상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우물곁에 그대로 털석 주저앉으셨습니다. 당시는 6시로 지금의 낮 열두십니다. 이때는 중동 지방에서 시에스타라고 합니다. 관공서도 문을 닫고 상점도 문을 닫고 낮잠을 자는 시간입니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시에스타 시간을 피하여 아침 저녁으로 삼삼오오 짝을 지어 물을 길러나옵니다. 리브가나 라헬이 물을 길러 나온 것도 저녁 무렵이었습니다. 이들은 나와서 동네의 중요한 정보도 얻고 수다를 떨며 스트레스를 풉니다.

지도 밖으로 여행하라는 한비야씨의 책에 의하면 이곳의 여름 온도는 50도를 웃돈다고 합니다. 이런 찌는듯한 더위로 예수님은 목이 타셨습니다. 배도 고프셨습니다. 매우 피곤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피곤한 중에도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목마른 사람이 되신 것은 사람들의 목마름을 해결해 주시기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영적인 피곤함과 목마름을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친히 목마르고 피곤한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목마르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 모든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갈증이 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인을 구원하기 위해서 목이 마르셨습니다.

 

(고독한 사마리아 여인)

 

7절을 보십니다.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하시니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러왔습니다. 여자는 당시 사마리아 여자들에게서 소외된 고독한 여자였습니다. 당시는 엄한 율법사회였습니다. 부정한 여인은 돌로 쳐 죽이는 사회였습니다. 이런 사회에서 여인은 다섯 남자와 결혼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다른 한 남자와 동거 중이었습니다. 여자들은 이 여인을 볼 때 벌레를 보듯이 징그럽게 여겼습니다. 사람 취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여인은 무시 받을수록 더욱 사람들과 관계를 끊고 혼자서 생활하였습니다. 여인은 고독하고 소외되었습니다. 마음에는 깊은 상처가 있었습니다. 여인은 깊은 상처 속에서도 사람들의 인정에 목이 말랐습니다.

그곳은 물이 귀한 곳입니다. 집에 수도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공동 우물을 사용하였습니다. 이천 년 전에 야곱이 파놓은 우물을 그 후손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혼자서 물을 길러 와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육신의 목마름보다 더 깊은 목마름이 있었습니다. 여러 남자를 만났지만 해결되지 않는 영혼의 목마름이 있었습니다.

 

(존중하는 마음)

 

예수님은 이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에게서 대화의 기술을 배울 수 있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을 때 대화는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여인과 대화하는 데는 많은 장벽이 있었습니다. 유대인과 사마리인의 장벽, 남자와 여자의 장벽, 거룩하신 분과 죄인의 장벽이 있었습니다. 이런 많은 장벽을 극복하고 어떻게 대화를 할 수 있을까요?

첫째, 예수님은 여인을 존중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타레박이 없었지만 여인이 타레박이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이용하여 여인을 물을 줄 수 있는 여인으로 높여주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존중히 여김을 받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은 여인의 과거를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너의 부정한 과거를 다 알아, 회개해.” 라고 했다면 여인은 어떻게 하였을까요? 여인은 마음 문을 닫고 너나 잘 하세요.” 하고 도망을 갔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위대한 장점이 있습니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는데 재주 없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만의 타레박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존중히 여겨주어야 합니다. 그것을 이용하여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특히 요즘의 신세대들은 우리 세대에 비하여 컴퓨터를 능숙하게 다릅니다. 잘 놀고 창의적입니다. 우리는 이들의 이런 훌륭한 장점을 보고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부부싸움을 하는데 물어보면 정말 사소한 것 때문에 싸웁니다. 때로는 돈이나 음행 문제의 큰 것으로 싸웁니다. 그들은 크든 작든 하나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자신을 무시했다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서로 잘 살고 대화를 잘 할 수 있는 전제입니다.

 

(공통 관심사)

 

둘째, 여인의 공통관심사로 대화하였습니다. 예수님과 여인의 공통점은 목이 마르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육신의 목이 마르고 여인은 영혼의 목이 마릅니다. 예수님과 여인은 둘 다 물을 먹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공통 관심사인 물을 화제로 말을 거셨습니다. 사람들은 각자의 관심이 있습니다. 남자들은 축구에 관심이 많습니다. 요즘 학생들은 어학연수에 관심이 많습니다. 부모들은 자녀교육에 관심이 많습니다. 사람들은 돈을 버는데 관심이 많습니다. 영화볼 때는 팝콘을 좋아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런 공통관심에서부터 시작하여 대화를 시작해야합니다.

 

(상대에 대한 이해심)

 

셋째, 예수님은 여인의 특성을 알고 이해하셨습니다. 여자들은 모성애가 있습니다. 여자들은 자식을 낳고 젖을 먹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먹이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의 모성애를 자극하여 물을 달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과 대화를 하려면 그 사람을 잘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듣기 좋아하는 말이 있고 듣기 싫어하는 말이 있습니다. 각 사람마다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깊은 관심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알고 이해해야 합니다. 그의 취미가 무엇인지 그의 특성이 어떠한지 알아야 합니다. 그의 가정환경이 어떠한지 알아야합니다. 예를 들어서 한 형제는 볼링을 좋아하지 축구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스포츠 중계보다는 드라마를 좋아합니다. 이런 것을 알아야 그와 대화가 쉽게 됩니다.

 

(마음 문을 두드리시는 예수님)

 

예수님은 육신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십자가에 죽기까지 겸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타레박도 없는 몸으로 낮아져서 여자를 존중히 여겨주셨습니다. 그녀의 관심사를 알았습니다. 그녀의 여자로서 특성을 알았습니다. 그녀가 타레박이 가지고 있음을 아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십니다. 우리를 이해하시고 존중히 여기십니다. 우리와 대화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마음 문 밖에 와서 문을 두드리십니다. 우리는 마음 문을 열고 예수님과 대화를 해야 합니다.

 

(쌀쌀한 여인)

 

9절을 보십시오. “사마리아 여자가 가로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치 아니함이러라.”

 

예수님이 물을 좀 달라고 하자 여인의 반응은 쌀쌀했습니다. 여자는 예수님을 유대인 남자로만 보았습니다. 서로 상종치 못할 사람으로만 보았습니다. 그의 말속에는 역사적인 상처가 묻어나 있습니다. 그 여자가 남자에게 받았던 상처가 반발심으로 나왔습니다. 이 여인만이 다른 사람들에게 받았던 상처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알기 원하심)

 

10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예수님은 여인의 쌀쌀한 말에 조금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여자의 말을 당연하게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여자가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모르는 것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안다면 여자의 태도가 달라질 것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여자가 하나님의 선물과 예수님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 보내신 선물입니다. 예수님은 여인에게 꼭 필요한 영혼의 생수를 주시기 원하셨습니다. 우리는 선물 받기를 좋아합니다. 여자들은 더욱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가장 좋은 선물로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가장 좋은 선물을 보내셨습니다. 가장 좋은 선물은 받는 사람에게 정말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주는 사람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가장 좋은 선물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가장 소중한 독자입니다. 죄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구원자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목마름을 채워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풍성히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건강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삶에 지혜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에게 많은 생명의 열매를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배우자를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장래와 직장을 책임지시고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교회를 만드시는 머리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이렇게 좋으신 예수님을 안다면 예수님을 달라고 구할 것입니다.

 

(관심을 예수님께로)

 

사마리아 여자는 물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남자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여자는 좋은 남자만 만나면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녀는 그런 가치관 가운데 좋은 남자를 만나기 위해서 온 일생을 투자하였습니다. 사람들의 비방에도 불구하고 줄기차게 남자를 구했습니다. 그러나 남는 것은 피곤함과 상처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에게 이제 남자 헌팅하는 것을 중지하고 대신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을 구하도록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성령을 받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면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건강에 관심이 많습니다. 건강에 좋다면 뭐든지 찾고 구합니다. 사람들은 돈에 관심이 많습니다. 아파트 분양을 받으려고 텐트를 치고 며칠 전부터 기다립니다. 어느 가게에서 산 로또 복권이 잘 당첨된다는 말만 들어도 그 가게로 사람들이 모여 듭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고자 많은 물질과 시간을 허비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좋은 것을 모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관심을 갖지 않고 예수님을 소외시킵니다. 성경에는 예수님보다 세상적인 것에 관심을 갖는 것을 죄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런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해야합니다. 저는 과거 제자양성을 구하였습니다. 그때 실망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을 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예수님을 구하는 자에게 예수님은 생수를 주십니다. 생수는 오아시스에서 흘러나오는 샘물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생수는 무엇일까요?

 

(야곱 같은 남자에 대한 관심)

 

11,12절을 보십시오. “여자가 가로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이 생수를 얻겠삽나이까?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었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먹었으니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여자는 예수님이 하나님이 보내신 선물인 것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다만 예수님이 생수를 주시는 분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예수님이 타레박이 없이 물을 주려한다고 핀잔하였습니다. 그녀는 예수님과 이 우물을 판 야곱을 비교하였습니다. 혹시 예수님이 야곱보다 더 훌륭한 사람인가 물었습니다.

여자는 야곱을 긍정적으로 생각했습니다. 야곱은 한 여자를 라헬을 위해서 14년을 봉사한 진실한 사랑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진실한 사랑으로 칠년을 수일처럼 일을 한 사람입니다. 죽을 때까지 라헬 한 사람을 사모한 사람입니다. 죽은 후에는 그 자녀를 사랑하였습니다. 여자는 야곱과 같은 남자를 만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여자는 예수님께 야곱처럼 자신을 사랑해 줄 수 있는지 묻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 여자는 예수님께 관심을 갖고 예수님을 일곱 번째 남자로 삼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어쨌든 여자가 예수님께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매우 좋은 현상입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에게 자신이 누군지를 소개합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

 

13,14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예수님은 이 물을 먹는 자는 잠시 만족이 있지만 다시 목마르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물은 세상적인 것을 말합니다. 세상적인 이성이나 물질이나 명예나 모든 것은 이 물에 속합니다. 겜이나 도박이나 육체적인 쾌락도 이 물에 속합니다. 여자들은 아름다움에 목마름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지식에 대한 목마름이 있습니다. 이런 것은 삶의 수단이지 목적이 아닙니다. 이런 물은 다시 목이 마릅니다. 사람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하나님만이 채워줄 수 있는 빈 공간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의 갈한 영혼을 채워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주시는 물은 다릅니다. 예수님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습니다. 영혼의 만족이 있고 영원한 만족이 있습니다. 마음 속에 진정한 기쁨과 행복이 솟아납니다. 죽어서 부활할 때까지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우리를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여주십니다.

 

(샘물 되신 예수님)

 

우리는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 주시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물 한 바가지가 아니라 샘물 자체입니다. 물한 바가지는 다시 다 먹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샘물은 계속 물이 솟아나기 때문에 항상 목이 마르지 않습니다. 샘물이 많아 솟아나서 자신과 가족과 주위 사람들을 다 먹게 할 수 있습니다.

이 샘물은 우리의 마음 속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을 의미합니다. 에덴동산에게도 한 곳에서 발원하여 네 개의 강물이 흐릅니다. 새하늘과 새땅에도 생수의 강이 흐릅니다. 에스겔서에 보면 성전에서 성령의 강물이 흐릅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 샘물을 소유할 수 있습니까? 우리의 내면에 어떻게 하면 성령의 샘물이 형성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이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그 속에서 솟아나는 샘물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먹는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먹는 것은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예수님은 성령의 샘물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나를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의 샘물이 솟아날뿐 아니라 그것이 강을 이루어 흘러납니다. 나만 먹는 것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이 다 먹고 마시게 하십니다.

또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순종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먹는 것을 순종하는 것으로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면 우리의 영혼이 좋은 성령님을 얻게 됩니다.

우리가 성령의 샘물을 얻기 위해서는 예수님께 나아가야합니다. 예수님께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 자신을 구해야합니다. 예수님을 우리의 그리스도로 믿어야 합니다. 내 마음에 예수님을 주인이요 왕으로 모셔야합니다.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하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주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하고 예수님의 샘물을 소유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지금까지 남자에게 관심을 갖고 남자를 구했습니다. 여자는 남자를 구할수록 더욱 갈증이 났습니다. 남자는 마치 목마를 때 마시는 소금물과 같았습니다. 남자를 구하였을 때 그녀는 마음과 몸이 상처투성이었습니다. 피곤하고 지쳤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이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하였을 때 그에게 영생의 샘물이 솟아났습니다. 마음의 중심에 남자를 두었던 것을 회개하고 예수님을 두었을 때 그녀는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성령의 샘물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을 구하는 나의 삶)

 

저는 학생시절에는 이성의 사랑을 구했습니다.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면 행복할 줄 알고 끊임없이 찾았습니다. 사람들의 인정을 구하였습니다. 목자가 되어서는 제자의 숫자를 구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는 피곤한 삶이었습니다. 나의 영혼은 말라갔습니다. 목자를 그만 두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죄악된 것을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을 구했을 때 나의 마음에는 성령의 샘물이 솟아났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이 넘쳐났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가운데 우리 마음 속에서 생수의 강이 솟아나기를 기도합니다. 부르짖어 성령을 구하여 우리 교회에서 흐르는 성령의 강물이 천안 캠퍼스 다 먹고 세계 만민이 먹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요한복음 4장 강해 1부 솟아나는 샘물

말씀 요한복음 41-요한복음 414

요절 요한 복음 414절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한복음 4장 강해 일부 끝.

 

11,11,17 -1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17 [요한복음] 요한복음 5장 강해 삼사부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5:10-18) 오요한 2005-03-12
16 [요한복음] 요한복음 5장 강해 일이부 진정한 베데스다 예수님( 5 : 1-9) 오요한 2005-03-12
15 [요한복음] 요한복음 4장 강해1 칠팔부 말씀을 인하여(4:39-54) 오요한 2005-03-12
14 [요한복음] 요한복음 4장 강해 오륙부 눈을 들어밭을 보라(27-38) 오요한 2005-03-12
13 [요한복음] 요한복음 4장 강해 삼사부 참예배 ( 4:15-26) 오요한 2005-03-12
12 [요한복음] 요한복음 4장 강해 일이부 솟아나는 샘물(4: 1-14절 ) 오요한 2005-03-12
11 [요한복음] 요한복음 3장 강해1 칠팔부 그 아들을 믿는자(3장31-36) 오요한 2005-03-12
10 [요한복음] 요한복음 3장 강해 오육부 이런 기쁨 ( 3:22-30) 오요한 2005-03-12
9 [요한복음] 요한복음 3장 강해 삼사부 하나님의 사랑 (3:16-21) 오요한 2005-03-12
8 [요한복음] 요한복음 3장 강해 일이부 우리가 어떻게 거듭나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는가? 놋뱀처럼 장대에 들리신 예수님 오요한 2005-03-12
1 2 3 4 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