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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히브리서 11장 강해 일부 (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2-10-23 00:00:00
조회수 : 5,004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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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11장 강해 일부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히브리서 111-히브리서 116

요절 히브리서 116

 

예수님은 우리를 위한 제사장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에서 제사장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몸으로 피흘려 제물이 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피를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과학의 기초는 사실이요 과학하는 기본은 믿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사실을 믿지 않으면 사실은 적어도 나에게는 사실이 아닙니다. 세상에 불행한 사람이 의심하는 사람입니다.

은수저를 선물로 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왕도 은수저로 식사를 합니다. 은수저는 전도열이 빨라서 뜨거운 것을 먹으면 혀를 델 수 있습니다. 그래도 은수저를 사용하는 것은 은수저를 통하여 음식에 독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음식마다 이것이 독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음식을 의심하며 먹는 것입니다.

왕은 높은 지위에 있어 사람들의 인정을 받습니다. 맛있는 것을 먿습니다. 아름다운 여자들이 주위에 가득합니다. 왕은 행복할 것 같지만 전혀 행복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먹는 것도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며 먹는데 무슨 행복이 있습니까?

진정한 행복은 믿음에서 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대문을 열어놓아도 도둑 걱정이 없는 시질이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차를 몰고 가다가 걸어가는 사람이 있으면 태웠습니다. 걸어가는 사람은 손을 들고 차를 태워달라고 하였습니다. 그 때가 행복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지금 사회는 불신 사회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누리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피를 믿어야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서로를 믿어주어야 합니다.

앞에는 이론적인 배경을 설명하고 11장은 실례를 들어 설명합니다. 믿음이 18번 나와서 믿음장이라고 합니다. 오늘 말씀에는 믿음의 본질과 족장들의 믿음이 나옵니다.

 

(믿음은 실제적인 재산)

 

1절을 보십시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믿음은 실상이요. 증거라고 합니다. 실상은 substance 실체, 사실을 말합니다.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확실히 사실에 근거한 것입니다. 역사적인 사실에 근거한 것이요 확실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실에 근거한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의 실제적인 재산입니다. 그래서 흔히 믿음은 유산이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야곱은 자녀들에게 믿음을 물려주었습니다. 우리는 최고의 재산인 믿음을 갖어야 합니다.

믿는 사람들이 결혼할 때 상대방이 믿음이 있는 것은 당연하고 그 외에 여러 가지를 요구합니다. 이들은 믿음을 추상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믿음은 실제적인 것입니다. 믿음만 있으면 다른 것이 없어도 충분합니다.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이 필요한 물질도 주시고 건강도 주시고 사랑도 주시고 힘도 주십니다. 우리는 자녀에게 믿음을 유산으로 물려주어야합니다. 그러면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믿음은 하루 아침에 형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수년 동안 약속을 지킬 때 믿음이 생깁니다. 믿음은 신실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번도 거짓말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정확하고 완전하십니다.

믿음은 증거가 있습니다. 증거는 evidence로 확실한 증거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확실한 증거를 갖는 것입니다. 믿음은 위기 상황에서 확실한 증거를 보게 됩니다. 믿음은 위기를 뚫고 헤쳐나가는 것입니다. 미국 퍼듀 수양회에 갔을 때 뉴욕공항에서 암담하였습니다. 말도 통하지 않고 비행기는 결항되었고 수양회는 바로 내일 시작됩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이것을 뚫고 나갔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뚫고 나가는 것입니다.

 

(믿음은 말씀에 기초해 현재를 살아가는 것)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입니다. 바라는 것은 나의 욕심에 기초한 소원이 아닙니다. 욕심에 기초하여 바라는 소원을 믿는다고 사실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남의 물건을 내것이라고 믿어서는 안 됩니다. 공부는 안하면서 일등할 것을 믿는다고 일등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라는 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미래를 말합니다. 미래에 될 것을 믿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열국의 아비가 될 것을 믿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교회의 반석이 될 것을 믿고 살았습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그로 인하여 복을 받을 것을 믿습니다. 그 미래를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사는 것입니다.

젊은 사람들이 열심히 공부합니다. 대학 때가 있으면 대학원 때가 있고 사십 중년이 옵니다. 하나님 나라에 갈 때가 있습니다. 그 때를 생각하며 오늘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젊은 사람은 사십대를 생각하며 오늘을 사는 것입니다. 목자가 된다 교수가 된다 사업가다 된다 의사가 된다는 것을 확신을 가질 때 그 믿음이 오늘을 지배합니다. 그래서 미래가 오늘을 지배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에 의해서 다스려지는 오늘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미래가 오늘 실제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야할 결정적 미래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야합니다. 우리가 오늘 살아기지만 생각과 뜻은 미래에 갑니다. 미리 가본 미래라는 책이 있습니다.

결혼할 것을 생각하고 오늘을 살아갑니다. 결혼한 후에를 생각하며 오늘을 생각합니다. 언젠가는 아들딸이 있을 것을 생각하고 부모에게 하는 것입니다. 학생은 선생이 되었을 것을 생각하고 선생의 입장에서 수업을 들어야합니다.

이것이 미리 가본 미래라는 것입니다. 교수가 되었는데 앞에 자람이 장난을 하면 속이 상합니다. 그것을 생각하고 오늘 열심히 공부하는 바른 학생이 되는 것입니다. 미래에 대한 믿음이 나의 생활, 인격. 존재 자체를 변화시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 나라에 갈 것입니다. 우리는 미리 가본 천국을 생각하며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미래에 하나님 나라에 갈 것을 믿음으로 오늘을 살아야 합니다.

 

(보지 못하는 것이 나타나는 것)

 

다음으로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라고 합니다. 보지 못하는 것은 깊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세계를 의미합니다. 믿음은 보지 못하는 세계를 보는 증거입니다.

우리의 인식에 한계가 있습니다. 아주 작은 것은 육안으로 보지 못하고 현미경으로 보고 아주 멀리 있는 것은 망원경으로 볼 수 있습니다. 내 보는 것이 자세하지 못하고 시야가 좁습니다. 시야가 불완전합니다. 미래를 보지 못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지 못합니다. 눈으로 보는 것은 물리적입니다.

이치를 통해서 논리적으로 알 수 있는 것도 있습니다. 마음으로 알 수도 있습니다. 육감을 통해서 아는 것도 있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계는 제한됩니다. 미래는 오직 믿음으로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믿음으로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어거스틴은 하나님은 믿으려고 해야지 이해하려고 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해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살면 하나님의 살아계신 증거가 나타납니다.

칼빈은 믿음은 드러나지 않은 것이 드러나고,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이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믿음만이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일하심이 실제로 나타나게 합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엄연한 사실이 있습니다. 사실이 존재하는 데 사실에 대해서 인정하는 자세가 믿음입니다. 의심하면 사실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됩니다.

은총이 사실이라면 의심하는 자는 은총을 못 받습니다. 능력이 사실이라면 능력을 받지 못합니다.

의사는 약을 먹어서 낫겠냐 의심을 많이 해서 고치기 어렵다고 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어리석고 약하고 무능해집니다. 엄연한 사실적 효과를 수용하지 못합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생명력이 나타나고 구원을 받습니다.

어거스틴은 보지 못하는 하나님을 믿고 그것을 믿음으로 본다고 합니다. 알 수 없는 것을 말씀에 기초하여 믿으면 알게 됩니다. 믿지 않으면 모르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는 것 같이 볼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증거를 얻은 사람들)

 

베드로는 깊은 데로 가서 고기를 잡으라는 말씀을 믿고 순종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는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믿고 순종할 때만이 하나님을 보고 알 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사랑도 믿음으로 알 수 있습니다.

부잣집 외동딸은 시집가기 어렵습니다. 어떤 사람이 사랑한다고 하면 그녀도 너를 사랑해야한다고 해야하는 데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부잣집딸이라 돈을 보고 사랑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믿음이 없으니 사랑을 알 수 없습니다.

어느 부모도 자식을 사랑합니다. 자식은 부모의 사랑을 믿음으로 보아야합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공부 안하고 말을 안 들으면 너는 도대체 누구 자식이길래 그러느냐고 책망했다고 합니다. 자식이 가만히 있더랍니다. 어머니도 누구 자식인지 모르면 내가 누구 아들인지 어떻게 아느냐고 따지더라는 것입니다.

자녀는 부모의 사랑을 믿어야합니다. 어느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지 않습니까? 부모는 자녀를 목숨보다 더 사랑합니다. 믿으면 잔소리가 고맙습니다. 부모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얻어다 키운 것처럼 느껴집니다. 사랑은 믿고 나면 모두가 귀하게 여겨집니다. 안 믿으면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갑니다. 알 수 없게 됩니다.

신령한 세계를 믿어야합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우리는 이천년 전에 예수님이 나의 모든 죄값을 치르신 것을 믿어야합니다. 나의 모든 저주와 불행을 가져간 것을 믿어야합니다. 죄사함을 받은 자에게 하나님 나라를 주실 것을 믿어야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사는 삶)

 

우리가 하나님 나라와 그리스도의 피를 왜 못 믿습니까? 죄악 때문입니다. 교만 때문입니다. 욕심 때문입니다. 마귀가 의심을 심습니다. 믿지 못하면 아무것도 모르게 됩니다.

사람들 중에 믿음은 없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허황된 것이아라고 잘못 생각하여 믿음을 갖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믿음은 사실을 믿는 것이지 없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실을 말씀에 기초하여 믿을 때 그 사실이 나에게 실제적인 사실이 되는 것입니다.

행전 20장에 보면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에 가는 것을 말립니다. 그가 예루살렘에 가려면 무슨 일을 만날런지 모른다고 합니다. 그러나 바울이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은 분명히 압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을 압니다. 하나님을 믿음으로 보면 하나하나가 의미를 갖게 됩니다.

예수님도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미래를 믿고 살아갑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고 살아갑니다. 창조 섭리 경륜을 느끼고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하나님의 심판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하나하나 심판하십니다. 어려운 일을 당해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정확하게 심판하십니다. 우리는 그 미래를 보며 살아갑니다. 우리가 한 선행에 대해서 하나님은 모두 상을 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상주시고 천국으로 인도하실 것을 믿으며 살아갑니다.

 

(선진들의 예)

 

2절을 보십시오.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여기서 증거는 good testmony로서 좋은 간증을 말합니다. 선진들이 믿음으로 살아서 좋은 간증거리를 만들었습니다. 이제부터 선진들의 믿음을 예로 들어서 설명합니다. 믿고 나면 모두가 사실로 다가옵니다. 믿음의 조상들이 다 그렇게 살았습니다

 

(말씀에 기초한 믿음)

 

3절을 보십시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습니다. 아무도 천지창조를 본 사람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에 기초하여 창조주 하나님을 믿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인생과 역사의 주관자 하나님을 믿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말씀대로 되는 것을 믿습니다.

우리는 그냥 모든 것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여 하나님의 천지 창조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이 믿음을 가질 때 보이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신령한 것으로 말미암아 물질적인 세계도 운영됩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가 보이는 세계를 지배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신뢰해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다 그대로 되었습니다. 다만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말씀만 그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된다는 것을 확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여 믿을 수 있습니다.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이 땅을 너와 네 후손에게 주리라는 말씀에 기초하여 믿고 기도하여 이 예배당을 얻었습니다. 우리의 이 예배당을 주신다는 믿음이 먼저 있었고 우리 교회 건물이 지어졌습니다.

부부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여 이 사람을 주셨다는 것을 믿음으로 결혼하였고 그들의 믿음에 의해서 자녀가 생겨난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새로운 창조의 역사를 이룰 수 있습니다.

 

(첫것을 드리는 아벨의 믿음)

 

4절을 보십시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아벨은 믿음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여기에 민간전설이 있습니다. 아담과 이브가 첫애 가인을 낳았습니다. 가인을 남매 쌍둥이를 낳았다고 합니다. 다음에 아벨을 낳았습니다. 가인의 여동생을 아벨에게 아내로 주고자 했다고 합니다. 가인이 화가 났다고 합니다. 아담이 하나님께 묻자고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서 결정하자고 했다고 합니다. 아벨은 양을 잡아 드렸는데 하나님이 불을 내려 태웠습니다. 하나님은 불을 보내서 아벨을 의인으로 증거하셨습니다.

여기서 증거는 witness로서 확실한 사실을 말합니다. 성령의 불이 내려온 것이 확실한 사실이라는 말입니다. 아벨은 하나님이 불로 태우심으로 간증거리를 얻었습니다 가인도 농사하는 것으로 제사를 드렸는데 하나님이 거들떠 보지 않았습니다. 가인이 이중으로 화가 났다고 합니다. 아내도 못얻고 아버지의 말을 거역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기회를 보아 아벨을 죽였습니다. 그 후에 가인은 아벨의 아내를 취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전설이지 사실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가인은 믿음없이 제사를 드렸다는 것이고 아벨은 믿음으로 제사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가인은 시기 질투 때문에 하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시기 질투하는 마음이 가득차면 기도응답이 없습니다.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면 하나님이 주시지 않습니다. 아벨은 순수한 마음으로 드렸습니다. 아벨은 자신을 바치는 뜻으로 생명을 드렸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아벨은 자신과 양의 첫새끼를 드렸습니다. 가장 귀한 것을 드렸습니다. 자신이 가진 것 중에서 구별하여 가장 소중한 것을 드렸습니다. 예배할 때 기도할 때 가장 소중한 것을 드리는 믿음이 있어야합니다. 우리의 첫것을 먼저 하나님께 드려야합니다.

가인은 첫것을 드리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는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제물이나 행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성령의 불로 우리에게 보내주셔서 우리를 의로운 자로 증거해 주십니다. 우리가 드린 믿음의 제사를 받으십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믿음)

 

5절을 보십시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에녹은 하나님으로부터 약속들을 적게 받았지만 그의 믿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습니다. 세상은 죄로 어두워갔지만 그는 그러한 비도덕적인 문화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365년동안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면 자연스럽게 하나님과 동행하게 됩니다.

에녹에 대한 전설도 있습니다. 에녹은 매일 하나님과 산책을 하였습니다. 주님은 매일 그를 만났고 에녹은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어느날 하나님이 에녹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은 조금 멀리까지 걸어보자 점심을 싸가지고 오너라 그래서 에녹은 점심을 싸가지고 갔습니다. 하나님과 에녹은 조금 걷다가 함께 점심을 먹고 다시 또 계속 걸었습니다. 그러다가 에녹이 늦었어요 주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어요 말했습니다. 그러자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집보다 내 집이 더 가까이 왔구나 나와 함께 내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어떻겠니? 에녹의 믿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고 하나님은 그가 죽음을 보지 않도록 그를 데리고 갔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우리의 존재목적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에녹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는 듯이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큰바위 얼굴처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레오나르드다빈치가 최후의 만찬이라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림에 대해 전해져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모델이 필요합니다. 베드로를 그릴 때는 베드로같은 사람을 만나면 그리고 야고보 같은 사람을 만나면 야고보 같은 사람을 그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리는 것이 힘들었다합니다. 예수다운 사람을 찾기 위해서 삼년을 찾았다고 합니다. 성가대원 하나가 빛이 났다고 합니다. 그는 말씀을 보고 기도하며 예수님을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믿음으로 예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다빈치는 그가 예수님을 닮아서 그를 예수님의 모델로 그렸다고 합니다.

그 후에 가룟유다를 그려야하는데 그 사람이 없습니다. 간사하고 악한 사람을 그려야 합니다. 6년을 찾아헤맸습니다. 로마 시장이 로마 감옥에 사형을 기다리는 수백 명의 사람이 있는데 그들 중에 찾아보라고 하였습니다. 다빈치는 그곳에서 가장 악랄하고 잔인하게 살인을 한 사형수를 발견하여 그를 모델로 가룟유다를 그렸습니다.

그림이 완성된 후에 다시 로마 감옥으로 돌아가게 된 사형수가 갑자기 무릎을 꿇으며 나를 모르겠냐고 하였습니다. 다빈치는 당신 같은 악랄한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그림 속에 예수님을 가르키며 육년 전에 예수님의 모델이 바로 나였다고 대성 통곡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가 로마에 가서 친구의 꼬임에 빠져 그렇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친구의 꼬임에 빠져서 그와 함께 다니며 허랑방탕하게 살았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면 예수님을 닮게 됩니다. 나쁜 친구와 같이 동행하니 그는 악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니 하나님이 불러갔습니다. 처음으로 휴거하는 예를 남겼습니다. 악한 세상에 살면서도 착하고 진실하게 살아서 에녹을 노아 홍수 이전에 데려갔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

 

6절을 보십시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내가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우리가 사람답게 살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늙어서 깨닫다가 죽습니다. 그러므로 젊어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서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를 기쁘게 하지 말아야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인격과 인격이 만나는 것은 기쁨입니다.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 선물을 사주는 것보다 더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은 믿어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믿음으로 나가야 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께 나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합니까?

 

(하나님은 살아계시다는 것을 믿는 믿음)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것을 믿어야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사랑하신 하나님을 믿어야합니다 정확하고 완전하신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러시아는 많은 자원이 있는데도 잘 못 삽니다.

그들이 못사는 이유는 하나님을 부인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부정하니 인간의 존엄성도 무너집니다. 사람 사이에 불신이 생깁니다. 하나님이 있어야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답게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면 악마의 사람이 됩니다. 우리가 이런 것을 많이 보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어야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면 눈에 보이는 사람을 하나님 안에서 믿을 수 있습니다.

사람은 다 거짓됩니다. 우리는 사람을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다른 사람을 믿을 수 있습니다. 나는 당신을 하나님 안에서 믿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을 믿습니다.

믿음이 없다면 사랑이 아닙니다. 인격과 인격의 만남, 관계 기쁨은 다 믿음에서 오는 것입니다. 의심 받는 것처럼 괴로운 것은 없습니다. 고통스러운 것은 없습니다. 설명을 해주면 점점 안 믿습니다. 의심은 점점 퍼져나갑니다. 부부 사이에 의심을 하면 남남입니다. 의심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고통입니다. 물론 사람은 다 거짓됩니다. 사람을 믿었다가 큰 손해볼 수 있습니다. 믿는 도끼에 발등찍힌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믿을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을 소망두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믿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믿을 때 그에게 소망을 갖습니다. 믿으면 그 말을 들어줍니다. 그 말에 순종합니다. 집에서 청소해달라 쓰레기 통 비워달라는 것도 믿음에 기초한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절망적인 상황도 하나님 사랑을 믿음으로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히틀러가 이스라엘 사람을 많이 박해했습니다. 유대인 육백만을 죽였습니다. 그 캄캄한 벽에 돌조각으로 써놓은 낙서가 있습니다. 지금 태양이 빛나지 않을지라도 태양이 존재하는 것을 믿는다 지금 느낄 수 없어도 하나님의 사랑이 있음을 믿는다. 지금 그분이 침묵해도 그분이 말씀하시는 것을 믿는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섭섭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속에 있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 하나님은 바로 심판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상을 주십니다. 그것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로마서 824,25절에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으매 보는 것을 아무도 바라지 않습니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려야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절대적인 믿음으로 실아갑니다. 꽉꽉 채워서 믿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에 기초한 것입니다. 우리가 혈서를 쓴다고 믿는 것이 아닙니다. 발가락을 짤라서 믿어달라고 해도 믿지 않습니다. 믿어달라고 하는 것처럼 답답한 관계가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여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 거짓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진실임을 증거하였습니다 믿음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사람들의 전설이 있습니다. 대여섯난 아들을 업고 아버지가 광야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저쪽에서 오는 아버지의 친구를 만났습니다. 친구가 등에 업고 가는 친구가 누구냐 아들이라고 합니다. 친구가 아들에게 업고 가는 사람이 누구냐 물으니 아버지가 아니라고 합니다. 내 아버지냐는 증거가 무엇이냐고 합니다. 아버지니까 업고 건너지 않느냐고 합니다. 그러니 형님도 종도 업을 수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 사십년 광야에서 업어 건너셨습니다. 그들은 이 사람처럼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어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인도하신 것을 믿지 못합니다.

 

(상주심을 믿는 믿음)

 

하나님이 성주심을 믿어야합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상을 주십니다. 확실하게 상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내가 선을 행하는 것에 대해서 보상해주십니다. 내가 부지런히 하나님을 찾을 때 반드시 상을 주십니다. 내가 성령을 따라서 선을 행할 때 상을 주십니다. 특별한 사랑을 주십니다. 사람이 주는 상보다 더 크고 좋은 상을 주십니다.

상은 모두에게 주는 것이 아닙니다. 상받는 것은 기분 좋은 것입니다. 그것은 영광입니다. 상은 율법적인 관계에서 주는 것이 아닙니다. 은총적인 관계에서 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믿고 사는 것입니다.

어느 부자가 나이 많아서 많은 종들을 데리고 있었습니다. 주인은 늙어서 죽기 전에 종들을 위해서 선한 것을 하고자 하였습니다. 종들은 주인이 구두쇠라는 것을 압니다. 사실은 검소하게 절약하는 주인이었습니다. 내일 아침에 집에 올 때 그릇을 가져오라고 하였습니다. 큰 그릇을 가져오면 많이 담아 주고 작은 그릇을 가져오면 작은 것을 주겠다고 합니다. 한 종은 의심하고 작은 종자기를 가져옵니다. 다음 종은 밥그릇을 가져오고 다음 종은 소쿠리를 가져옵니다. 주인은 이들에게 그릇에 엽전돈을 담아줍니다. 첫 번째 종이 왜 그것밖에 안 주느냐고 하니 주고 싶어도 너의 그릇이 작다고 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그릇입니다. 큰 믿음을 가져야 큰 복을 받습니다. 소갈머리가 대통만하다고 합니다 바늘구멍만하다고 합니다. 믿음이 그래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안서호수같은 큰 믿음을 가져야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도 믿음입니다. 어떤 분이 화장실을 고치는데 만원이 들었습니다. 돈을 받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백만원을 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은 교회 건축하는데 익명으로 헌금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백배의 복을 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방법)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믿음으로만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믿어야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값을 치르신 예수님의 피를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나의 모든 좌와 저주를 가져가신 것을 믿어야합니다. 우리를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시는 성령 하나님을 믿어야합니다. 상주시는 하나님을 믿어야합니다.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믿어야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주는 상보다 더 큰 상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더 확실히 심판하십니다. 하나님 안에서 다른 사람을 믿어야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이 다스리는 하나님 나라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아멘!

히브리서11장 강해 일부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히브리서 111-히브리서 116

요절 히브리서 116

히브리서 11장 강해 일부 끝입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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