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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히브리서 9장 강해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2-10-19 00:00:00
조회수 : 2,650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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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9장 강해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말씀 히브리서 9장 1-히브리서 9장 28
요절 히브리서 9장 12절

히브리서는 히브리적인 기독론입니다. 헬라사람들은 복음을 철학적으로 설명하여 만든 니케아 신조가 있습니다. 로마 사람들은 자신들의 논리로 실명하여 만든 사도 신경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 전체로 보면 히브리적인 고백이 완전합니다. 이 고백은 역사적인 사실을 들어서 설명합니다. 그 사실 속에 들어있는 그리스도에 대한 상징을 말합니다. 우리는 그 상징을 대할 때마다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알 수 있고 우리와의 관계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가장 근본적으로 가르쳐주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세상에 속한 성소)

1,2절을 보십시오. “첫 언약에도 섬기는 예법과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더라 예비한 첫 장막이 있고 그 안에 등잔대와 상과 진설병이 있으니 이는 성소라 일컫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이미 애굽에서 구원하셨습니다. 그들을 시내광야에 놓고 신앙의 모형을 가르쳐주십니다. 가나안 땅에서 살아가는 신앙 생활의 기본을 가르쳐줍니다. 사십 년 동안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대해서 훈련을 가르쳐줍니다. 광야는 율법 중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사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훈련을 사십년간 시키고 일용할 양식을 먹는 훈련을 시키십니다. 새벽기도 나오는 것도 훈련이 필요합니다. 처음에 새벽기도 나오면 하루 종일 힘이 듭니다. 한 달은 훈련해야 새벽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사십년간 훈련시키십니다. 문화인류학자는 하나의 문화패턴을 만드는데 사십년 걸린다고 합니다. 우리의 몸을 다스리는데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다음에 성전을 짓고 성막 중심으로 살게 하십니다. 다음에는 모세 중심으로 살아갑니다. 하나님이 지명한 사람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십니다. 모세를 통하여 주시는 음성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는 훈련을 시킵니다. 오늘 말씀에는 성소가 나옵니다. 모세가 지은 성전을 기초로 설명합니다. 성소는 하나님의 임마누엘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올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내려오십니다. 하나님이 성소에 성육신하여 오셔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교회는 우리가 사는 집모양으로 지어야 합니다. 교회는 우리의 중심에 두어야합니다. 교회는 가장 질이 좋은 것으로 지어야합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소중한 마음을 드립니다. 성소는 하나님의 아버지 집입니다. 하나님이 아버지고 우리는 자녀고 우리끼리는 형제자매입니다. 다정하고 평안하고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예전의 예배드리는 곳은 성전 마당 뜰입니다. 그들은 서서 예배를 드립니다. 첫 언약에는 섬기는 예법과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습니다. 성소에는 제사장만 들어갑니다. 예비한 첫장막인 성소에는 왼편에 등잔대가 있고 오른 쪽에는 진설병이 있습니다. 중앙에는 상이라고 표현된 분향단이 있습니다. 등잔대는 성령의 불을 의미하고 진설병은 생명의 떡이 되시는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어야합니다. 분향단은 성도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를 의미합니다. 아침 저녁으로 향을 피워서 기도합니다.

(지성소)

3-5절을 보십시오. “또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장막을 지성소라 일컫나니 금 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판들이 있고 그 위에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으니 이것들에 관하여는 이제 낱낱이 말할 수 없노라” 또한 둘째 휘장을 들어가면 그 안에 지성소가 있습니다. 지성소에는 대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습니다. 법궤라고도 합니다. 이 언약궤는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의미합니다. 언약궤 안에는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십계명 언약의 돌판 둘이 있습니다. 만나는 하나님이 우리의 양식을 책임져주심을 의미합니다. 아론의 싹난 지팡이는 부활의 하나님이 절대주권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만 지도자하고 아론만 제사장한다고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하나님은 이들이 원망하는 말을 그치게 하십니다. 각지파의 지팡이를 가지고와서 각지파의 이름을 쓰라고 하십니다. 지팡이를 지성소에 놓으니 아론의 지팡이에만 싹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레위지파에 있는 모세와 아론을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세와 아론을 지명했다는 믿음을 가져야합니다. 언약의 돌판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복받는 십계명의 말씀을 주십니다. 언약궤 위에는 속죄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속죄소에서 인간의 죄를 사하십니다. 속죄소를 영광의 그룹천사들이 보호하며 덮고 있습니다.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

6,7절을 보십시오. “이 모든 것을 이같이 예비하였으니 제사장들이 항상 첫 장막에 들어가 섬기는 예식을 행하고 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 년에 한 번 들어가되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예비하였습니다. 제사장들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첫장막인 성소에 들어가 섬기는 예식을 행합니다 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만이 홀로 일 년에 한번 들어갑니다. 자기와 백성을 위하여 드리는 피의 제사를 드리고 들어갈 수 있습니다 대제사장의 옷에는 밑에 방울을 답니다. 방울이 그치면 죽은 것으로 생각하고 대제사장을 끌어내립니다. 일년에 한번 제사를 드리는 것으로 일년의 모든 죄를 사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실 것을 의미합니다. 형식적인 제사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음과 회개와 순종과 감사의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성전은 그림자)

8-10절을 보십시오. “성령이 이로써 보이신 것은 첫 장막이 서 있을 동안에는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따라 드리는 예물과 제사는 섬기는 자를 그 양심상 온전하게 할 수 없나니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일 뿐이며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 성령이 성전을 통하여 예수님을 보여주셨습니다. 첫장막인 성전이 있을 동안에는 우리 인간에게 지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대제사장이나 제사장을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 성전은 하늘 장막을 비유한 것입니다. 성전에서 예물과 제사를 드리는 자를 양심상 우리의 죄를 사하여 온전하게 할 수 없습니다 제사를 드리는 것은 먹고 마시는 예범과 씻는 정결예법과 함께 육체의 예법일 뿐입니다. 눈에 보이는 성전은 예수님께서 오셔서 개혁할 때까지만 유효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것은 대혁명입니다. niv 성경에는 the new order라고 나옵니다. 스마트폰으로 새로운 질서가 생긴 것과 같습니다. 혁명은 실체를 바로잡는 것입니다. 실체가 오면 그림자는 사라집니다. 개혁은 새로운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바르게 만든 것입니다. 본래의 것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셔서 성전을 온전하게 하셨습니다. 성전은 그림자라면 예수님은 그림자의 실체이십니다. 구약은 모든 것이 그림자고 예수님이 리얼리티입니다 예수님의 핵심은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때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휘장이 찢어졌습니다. 하나님께로 가는 문이 활짝 열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피의 제사를 드리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피를 의지하여 하나님께 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습니다. 천국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11-12절을 보십시오.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셨습니다. 구약의 제사장은 참제사장이신 예수님이 오면 사라집니다. 예수님은 손으로 짓지 아니한 성소 곧 피조물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들어가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있는 성소입니다. 예수님은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를 사하셨습니다. 과거에는 죄를 덮어주었지만 이제는 죄를 완전히 제거해주십니다. 예수님은 양을 잡지 않고 자기를 죽여 자기 피로 가지고 나갔습니다. 예수님의 피는 완전한 제사입니다. 하나님은 십자가의 피를 통해서 우리를 보십니다. 하나님의 의로우심은 충족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자원하여 죽으셨습니다. 양이나 염소는 강제로 죽었습니다. 예루살렘의 제사를 드릴 때는 피가 강물처럼 흘렀습니다. 14만 8천마리를 유월절날 죽였다고 합니다. 이것은 자원적인 것이 아닌 율법적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여 대신 죽은 것입니다. 십자가는 사랑의 계시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볼 때마다 우리를 위해서 피를 흘리신 예수님을 보아야합니다. 예수님은 단번에 하늘 성소에 들어갔습니다,. 예수님은 단번에 제사를 드렸습니다. 온전한 제사이므로 단번에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십자가를 보시고 우리를 복주십니다. 하나님은 십자가의 피로 우리를 소중하게 보십니다. 십자가 안에서 나의 죄악된 자는 죽었습니다. 죄사함을 받은 우리에게 영원한 성령을 주십니다. 김익두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는 깡패요 조폭입니다. 그는 온동네에 예수님을 믿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옛날의 김익두는 죽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를 잘 아는 한 아줌마가 설거지하다가 그 물을 김익두 얼굴에 퍼부었습니다. 김익두 전도사님이 내가 죽었으니 네가 살지 라고 하였습니다. 죽기 전에 이런 일을 당하였으면 그 아줌마는 제삿날입니다. 내가 꿈틀거려서는 안됩니다. 내가 죽은 그것이 제사입니다. 네가 제사된 것을 알아야합니다. 내가 죽은 것을 알아야합니다

(양심을 깨끗게 하심)

13,14절을 보십시오.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염소와 황소의 피와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합니다. 피는 생명을 의미합니다. 피가 있다는 것은 생명이 죽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피는 하나님께 드리는 뇌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피를 잡수시라고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고기 타는 냄새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제물이 아들이라도 그것을 기뻐받으시는 것은 아닙니다. 제물을 많이 드리고 값비싼 것을 드렸다고 기뻐하지 않습니다. 비둘기만 드려도 제사가 됩니다. 중요한 것은 피를 드리는 것입니다. 죄값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죄를 지어서 죽어마땅합니다. 하나님은 제물을 보십니다. 그 피를 죄인의 몸에 뿌립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이 죽은 것을 보십니다 하나님은 죄인이 죽은 자로 보십니다. 아담이 범죄하여 아담에게 짐승의 가죽옷을 지어입히십니다. 피를 흘려서 우리의 죄를 덮어주시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아담은 무화과 나무 잎을 지었습니다. 그것은 죄를 가리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가죽옷으로 죄를 덮어주십니다. 깨끗하고 거룩한 제물을 죽여서 피를 보고 그를 통해서 죄인이 죽었다고 간주하여 주십니다. 제단에게 제물이 나를 대신하여 죽은 것입니다. 양이나 소가 죽어야할 것이 아닌데 우리를 대신하여 죽습니다. 그 죽음을 보고 우리를 살려주십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충족시키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용서한 표로서 제물을 바치라고 하십니다. 피를 바쳐서 용서하는 것이 아닙니다. 용서하면서 제물을 바치라고 하는 것입니다. 죄인의 입장에서는 이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합니다. 양이 지글지글 타고 있을 때 내가 죽고 있는 것을 체험합니다.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양심을 깨끗하게 하십니다. 우리의 양심을 새롭게 하십니다. 요즘 교육은 양심을 무디게 하고 양심을 화인맞게 합니다. 세상의 법은 교도소에 넣어도 그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우리에게 성령을 주셔서 죽은 행실에서 떠나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십니다. 보혈의 능력이 우리를 새롭게 하십니다. 폭스바겐은 배출가스를 조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진실은 드러내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의 모든 죄를 드러내시고 깨끗하게 하십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때 나는 죽은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제사입니다. 미국의 산드라는 마을에 특별한 비문이 있습니다. 죽은 자에게 찬사를, 산 자에게는 추억을, 후손에게는 감명을 이라고 적혀있습니다. 하이겔이라는 사람이 학교에 갔다 오는데 엄청난 눈이 왔습니다. 동생이 추워하니 자신의 옷을 입혔습니다. 자신의 옷을 다 입히고 형은 죽었습니다. 아침에 사람들이 나가보니 형은 죽고 동생은 살아 있습니다. 그 형의 무덤을 만들고 비석을 만들어놓은 것입니다. 내 대신 죽었다고 할 때 나는 죽은 것입니다. 이제는 나 자신을 위해서 살지 않고 나를 위해서 죽은 분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나는 죽었다고 믿고 새로운 삶으로 사는 것입니다. 옛날 제사는 불완전하고 예수님은 완전한 제사입니다. 짐승의 피는 양심으로 새롭게 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피는 우리의 영을 새롭게하십니다. 우리를 중생하게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두려움없이 친교를 갖게 합니다.

(새언약의 중보자)

15a절을 보십시오.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 예수님은 새 언약의 중보자이십니다. 예수님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화해시키는 중보자이십니다.

(죽어야 효력이 있나니)

15b-17절을 보십시오.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유언은 유언한 자가 죽어야 되나니 유언은 그 사람이 죽은 후에야 유효한즉 유언한 자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효력이 없느니라” 예수님은 첫 언약인 십계명을 지키지 못한 죄에서 속죄하시려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인 하나님 나라를 약속으로 받게 하십니다. 유언은 유언한 자가 죽어야 효력이 있습니다. 유언한 자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효력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죽으셔서 새언약이 효력을 갖게 하셨습니다. 언약은 유언과 같은 것입니다. 일벙적이고 절대적인 것입니다.

(피흘림이 없이는 사함이 없다)

18-22절을 보십시오. “이러므로 첫 언약도 피 없이 세운 것이 아니니 모세가 율법대로 모든 계명을 온 백성에게 말한 후에 송아지와 염소의 피 및 물과 붉은 양털과 우슬초를 취하여 그 두루마리와 온 백성에게 뿌리며 이르되 이는 하나님이 너희에게 명하신 언약의 피라 하고 또한 이와 같이 피를 장막과 섬기는 일에 쓰는 모든 그릇에 뿌렸느니라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십계명인 첫 번째 언약을 주실 때도 피로 세우셨습니다. 모세가 율법대로 모든 십계명을 온 백성 앞에서 읽었습니다 송아지와 염소의 피와 물을 붉은 양털과 우슬초를 취하여 그 두루마리의 십계명 말씀과 온백성에게 뿌렸습니다. 율법을 따라서 거의 모든 물건은 피로써 정결하게 됩니다. 피흘림이 없니는 죄사함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피를 흘려 우리의 죄를 사하여주십니다. 희생이 없이는 죄사함도 없습니다.

(모형은 사라지는 것임)

23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정결하게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지니라” 여기서는 교리부분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지금까지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어떤 점에서 위대한 제사인가 나왔습니다. 지금까지는 예수님의 제사직분을 말씀하셨지만 이제는 예수님의 제사를 잘 설명하여주십니다.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짐승의 피로서 정결하게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늘에 있는 것은 이런 짐승의 피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해야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케 하십니다. 그림자와 본체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본체없는 그림자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사진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그 사진의 본체인 사람을 모른다면 그 사진이 소용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사진만 좋아하고 그 사람을 만나서 싫어한다면 말이 안 됩니다. 우리나라에 백년 전에 하와이로 이민갔습니다. 나이 사십이 넘어서 결혼해야하는데 한국에 있는 사람과 결혼하였습니다. 한국 사람이 사진 하나만 미국에 보내고 실제 그 사람이 그곳에 갑니다. 미국에 있는 처녀가 사진을 보고 생각하다가 실제 남자를 보니 소도둑 같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포샵을 통하여 사진을 수정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본체가 있고 사진이 있습니다. 본체가 나타나면 사진을 소용없습니다. 본체가 나타났는데 사진만 들고 있으면 정신 나간 사람입니다. 옛날에 방이 하나 있는데 그곳이 침실이고 응접실이고 식당입니다. 벽에 사진을 걸어놓습니다. 그 한 가운데 있는 색이 누렇게 바랜 사진을 걸어놓습니다 사진을 볼 때마다 무슨 생각을 할까요? 저런 때가 있었지 하며 옛날을 생각합니다. 당신 참 그때는 예뻤어 하는 말은 욕입니다. 사진보다는 실물이 좋다고 해야합니다. 엣날 사진을 볼 때는 그때보다 지금이 낫다고 해야합니다. 옛날에 매여 지금의 본체를 소홀히 여겨서는 안됩니다. 장엄한 제사의식은 그림자입니다. 예수님이 나타난 것을 보면 그림자를 잊어야합니다. 그 많은 제사를 돌아볼 필요가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은 예표입니다. 앞에 올 것을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 미리 알아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미리 알아야 현재의 인식이 달라집니다. 옛날 어른들이 여자를 가르칠 때 남자는 다 도둑이다 늑대라고 합니다. 결혼하며 늑대라고 생각합니다. 그집에 가면 귀신이 되라고 합니다. 요즘에는 결혼하면 신부나 친정어머니는 울지 않고 친정아버지가 웁니다. 예언은 성취되는 순간에 그 예언의 내용은 사라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사전 지식을 주었습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이고 제사의 주인이고 구약의 주인입니다. 다시 옛날로 돌아가서는 안 됩니다. 신랑의 친구가 신혼여행 따라가면 안 됩니다. 신랑의 친구는 신랑으로 기뻐합니다. 신랑이 왔으니 친구는 사라지는 것입니다. 예표는 그 의미를 다하고 사라집니다. 성소는 짐승의 피로 정결케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늘에 있는 것은 이런 짐승의 피가 아닌 예수님의 피로 정결케 됩니다.

(하늘에서의 제사)

24절을 보십시오.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곧바로 하늘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서 영원히 중보기도해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위해서 피의 제사를 드리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하나님께 나갈 수 있습니다. 진짜 의미는 하늘에 있습니다. 성전은 하늘에 있습니다. 어떤 교회는 유대 회당을 빌려서 예배드립니다. 유대 회당에는 십자가 대신에 휘장을 쳐놓았습니다. 그곳에는 골동품 같은 것이 많습니다. 하늘의 성전만이 참성전입니다. 땅에 있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그림자입니다. 그곳에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아곳에 있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완전한 제사를 드립니다. 소나 양은 예수님의 피를 예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피로 완전한 제사를 드립니다. 우리는 예수의 보혈로 깨끗함을 받아야합니다. 그것이 완전한 제사입니다. 우리는 그 효과를 믿음으로 수용해야합니다. 우리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께 나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 죄문제를 해결하심으로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나가게 하십니다. 천국 시민이 되게 하여 무비자로 하나님 나라에 나가게 하십니다.

(단번에 제사를 드리신 예수님)

25,26절을 보십시오.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 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지니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한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제물의 피로서 성소에 들어가는 것 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십니다. 그러면 그가 세상을 창조한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몸을 제물로 드리므로 죄를 없이하십니다. 드렸다는 것은 완전한 희생입니다. 진실한 희생입니다. 전적인 헌신입니다. 예전에는 제사장이 제사를 반복하였습니다. 제사장이 죽고 제사는 불완전합니다. 완전한 제사를 드리면 다시 드릴 필요합니다. 우리가 아플 때 사람들은 여러 가지 약처방을 알려줍니다. 머리카락이 빠지면 검은 콩, 외제약을 줍니다. 약처방이 많으면 그 약은 거짓입니다. 약효가 있으면 그것만 먹으면 됩니다. 약방문이 많은 것은 고치기 어려운 병입니다. 제사가 많다는 것은 불완전한 것입니다. 완전한 제사는 한 가지로 끝입니다. 예수님은 다 이루었다고 합니다.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심으로 완전히 대가를 치르십니다. 예수님은 테델레스타이라고 합니다. 헬라에서 고적을 발굴해보면 헬라 사람들의 세금 영수증이 있습니다. 거기에 테텔레스타이라고 있습니다. 지불완료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모든 죄를 영원히 없애십니다. 아담에서 예수님 재림때까지 모든 죄를 없이 하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것을 받아들이면 모든 것은 끝난 것입니다. 우리는 죄에서 자유를 얻고 성결하게 됩니다. 다시 제사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칼바르트는 예수님이 최초의 화해된 인간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일반제사는 불완전합니다. 대제사장은 자기도 죄인이고 다른 사람의 죄를 다 모릅니다. 회개치 않는 사람이 와도 그를 알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영원히 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죄를 다 아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 외에 다른 제사장이 필요 없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불완전합니다. 하늘에서 제사를 드려야 완전한 것입니다. 많은 소와 양을 잡아도 소용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제물이 상달해야합니다. 하나님이 죄인을 용서하시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십니다. 예수님은 완전하고 영원한 제사를 드립니다.

(죽음 후에 있는 심판)

27절을 보십시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 세상으로만 끝나면 불공정합니다. 완전범죄한 자는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죄를 상대적으로 생각합니다. 동성애를 죄로 생각지 못합니다. 그리고 선을 행하고 상을 받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입니다. 그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사람에게 가장 큰 두려움이 있다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고 다음은 심판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할 때 예수님의 피를 믿는 자는 휴거합니다. 예수님은 지상에 천년 왕국을 이루시고 그 후에 불신자들을 다시 심판하십니다. 그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불못에 들어가 영원히 고통할 것입니다. 이런 심판에 대한 인식이 있을 때 우리는 피의 은혜를 알게 됩니다.

(심판을 피하게 하심)

28절을 보십시오.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우리에게 천국가는 티켓을 주면서 죽으라고 하면 죽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죽음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나를 대신하여 죽은 것입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십자가에서 자신을 드리셨습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보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라고 하였습니다. 담당했다는 것은 죄에 대한 대가를 온전히 치르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대신 심판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의지하여 하나님께 나가야합니다. 십자가의 피를 통해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해야합니다. 사람이 죽는 순간 고무풍선이 터지는 것같이 펑터지면서 자신의 시체를 본다고합니다. 일생을 살은 것이 한 순간에 지나간다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에 섭니다. 그때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고 심판대 앞에 서야합니다. 빌레그레헴 목사 딸이 있습니다. 그녀가 빌리그레헴 목사님이 사랑을 많이 했습니다. 그녀가 잘못하자 어머니가 많이 때렸습니다. 딸은 마귀가 잘못했다고 합니다. 엄마는 마귀를 때리기 위해서 딸을 때렸다고 합니다. 다음에는 또 잘못하여 때리려고 하자 딸은 마귀가 나갔다고 합니다. 그러니 때리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마귀는 나갔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갈망하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두 번째 재림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속죄의 완성자로 오십니다. 마호멧은 계시의 완성자라고 하지만 그는 우리를 위해서 몸을 드려서 속죄하지 못합니다. 그때는 죄 때문에 자신을 희생제물로 드리는 일이 없이 영광스런 몸으로 나타나실 것입니다. 도스토에푸스키는 사형 집행 오분전에 석방됩니다. 그는 매일 오분간의 감격으로 살았다고합니다. 아멘
히브리서 9장 강해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말씀 히브리서 9장 1-히브리서 9장 28
요절 히브리서 9장 12절
히브리서 9장 강해 끝입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9 [히브리서] 히브리서 9장 강해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오요한 2012-10-19
8 [히브리서] 히브리서 8장 강해 내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오요한 2012-10-19
7 [히브리서] 히브리서 7장 강해 영원한 제사장 예수님 오요한 2012-10-18
6 [히브리서] 히브리서 6장 강해 영혼의 닻 예수님 오요한 2012-10-17
5 [히브리서] 히브리서 5장 강해 대제사장 되신 그리스도 오요한 2012-10-16
4 [히브리서] 히브리서 4장 강해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라 오요한 2012-08-31
3 [히브리서] 히브리서 3장 강해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려면 오요한 2012-08-29
2 [히브리서] 히브리서 2장 강해 예수님을 천사보다 못하게 하신 이유 오요한 2012-08-28
1 [히브리서] 히브리서 1장 강해 아들을 통하여 말씀하셨으니 오요한 2012-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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