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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히브리서 7장 강해 영원한 제사장 예수님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2-10-18 00:00:00
조회수 : 3,280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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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7장 강해 영원한 제사장 예수님
말씀 히브리서 7장 1-히브리서 7장 28절
요절 히브리서 7장 24절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느니라

(영원히 계시는 제사장)

오늘 말씀은 오묘하고 신비로운 말씀입니다. 히브리서는 히브리적인 맥락에서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언어 종교 문화를 배경으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우리와는 다른 문화이므로 그들의 세계에 들어가서 이해해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르는 제사장으로 소개합니다. 우리를 위해서 죽으시고 영원히 계시는 제사장입니다. 시간과 역사를 초월한 제사장입니다. 예수님은 훌륭하고 좋으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신 제사장입니다. 예수님은 천사보다 우월하고 모세보다 우월한 분을 소개하고 이제는 대제사장보다 우월하신 분임을 소개합니다.

(아브라함에게 복을 빈 멜기세덱)

1,2a절을 보십시오.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왕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아브라함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니라” 히브리인들은 예수님의 족보의 정통성을 의심합니다. 혈통적으로 볼 때 대제사장으로 볼 수 있는가하는 의문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레위지파가 아니고 유다지파입니다. 히브리서는 예수님의 제사장직을 설명하기 위해서 멜기세덱이라는 존재에서 시작합니다. 제사장은 아론이 있기 전에 아브라함 때부터 있었습니다. 창세기와 시편에서 멜기세덱이 두 번 나옵니다. 아브라함은 멜기세덱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을 만납니다. 예수님은 아브라함 때부터 우리의 제사장이 되십니다. 아브라함은 모든 믿는 사람을 대표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아브라함의 믿음으로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우리도 아브라함과 함께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에게 십일조를 드립니다. 십일조를 드린 것은 역사적인 사건이고 우주적인 사건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의를 준 제사장)

2b,3절을 보십시오. “그 이름을 해석하면 먼저는 의의 왕이요 그 다음은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히브리서 저자는 멜기세덱을 소개합니다. 첫째로, 멜기세덱이란 이름은 정의의 왕이라는 뜻이요, 다음으로, 그는 또한 살렘 왕인데, 그것은 평화의 왕이라는 뜻입니다. 멜기세덱은 예수님과 같이 제사장이면서 동시에 왕입니다. 멜기세덱은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생애의 시작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습니다. 대제사장은 종신제입니다. (출애굽기 40장 15) 멜기세댁은 임기가 없이 영원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과 같아서, 언제까지나 제사장으로 계신 분입니다. 그는 예수님과 같은 영원한 제사장입니다. 아브라함은 그돌라오멜 동맹군을 물리치고 승리를 하였습니다. 그는 전쟁에서 이기고 자기가 일한 만큼 노획물을 취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다시 그들이 쳐들어올 것을 생각하지 두렵습니다. 여러 사람을 죽이고 나니 자신이 전쟁을 잘했는가 하는 번민이 있습니다. 아브라함 링컨이 노예해방을 위해서 노예해방을 하였습니다 7년간 전쟁을 하며 많은 전쟁을 하였습니다. 장군들은 하나님이 우리 편이면 얼마나 좋으냐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링컨은 내가 하나님 편인가 가 중요하다고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불안에 떨 때 멜기세덱이 나타났습니다. 그는 평화의 왕입니다. 의의 왕입니다. 멜기세덱은 모든 인류를 대신하는 제사장입니다. 그는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타났습니다. 그는 아브라함의 식구를 먹였습니다.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을 위로해주셨습니다. 네가 잘했다고 칭찬해주었습니다. 아브라함을 복주십니다.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을 의롭다고 여겨주십니다. 평화는 의에 기초한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아브라함은 평안을 얻었습니다. 사람들은 죄를 짓고 피하고 숨으려고 합니다. 죄와 타협하고자 합니다. 하나님이 의롭다고 할 때만 평화가 있습니다. 루터는 의와 평강은 하나님이 주시는 최고의 선물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앞에서 경배하고 십일조를 바쳤습니다. 모든 노획물을 바치고 아비멜렉이 제사장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보다 높은 예수님)

4-7절을 보십시오."이 사람이 얼마나 높은가를 생각해 보라 조상 아브라함도 노략물 중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느니라 레위의 아들들 가운데 제사장의 직분을 받은 자들은 율법을 따라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자라도 자기 형제인 백성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레위 족보에 들지 아니한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고 약속을 받은 그를 위하여 복을 빌었나니 논란의 여지 없이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서 축복을 받느니라" 우리는 멜기세덱이 얼마나 위대하신가를 생각하여 보아야합니다. 족장인 아브라함까지도 가장 좋은 전리품의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바쳤습니다. 레위 자손 가운데서 제사장 직분을 맡은 사람들은, 자기네 동족인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율법을 따라 열의 하나를 받으라는 명이 내려 있습니다. 비록 레위 백성도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태어났지만, 그들은 동족에게 십일조를 받습니다. 그러나 멜기세덱은 이스라엘의 족보에 들지도 않았는데, 아브라함에게서 열의 하나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을 축복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제사장을 통해서 축복하십니다. 두말 할 것 없이 축복은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서 받는 법입니다. 멜기세덱은 아브라함보다 높습니다.

(인간 제사장 보다 높으신 예수님)

8-10절을 보십시오. “또 여기는 죽을 자들이 십분의 일을 받으나 저기는 산다고 증거를 얻은 자가 받았느니라 또한 십분의 일을 받는 레위도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십분의 일을 바쳤다고 할 수 있나니 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날 때에 레위는 이미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음이라” 이스라엘에서는 죽을 수밖에 없는 레위인이 십분의 일을 받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 때는 살아계심이 입증되신 멜기세덱이 십분의 일을 받습니다. 이 멜기세덱은 예수님이십니다. 그렇게 말하면, 십분의 일을 받는 레위까지도 아브라함을 시켜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바친 셈이 됩니다.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났을 때에는, 레위는 아직 그의 조상 아브라함의 몸 속에 있었으니 말입니다. 십일조는 제사장에게 바치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바침으로 제사장과 자신과 관계가 이루어집니다. 멜기세덱은 십일조를 받은 사람으로 아브라함보다 높은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이 바쳤으니 그에서 태어난 레위지파도 멜기세덱에게 바쳤습니다. 아브라함에서 태어난 제사장도 그에게 바쳤습니다. 예수님은 제사장에게 십일조를 받은 제사장 보다 높으신 분이십니다. 이것을 생리적인 유전설이라고 합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 십일조를 바친 것입니다. 멜기세덱은 십일조를 받고 그들을 위해서 복을 빌었습니다. 복은 높은 자가 낮은 자에게 비는 것입니다. 멜기세덱은 그만큼 이스라엘 제사장보다 높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인간 제사장보다 높으신 분이십니다

(제사법이 바뀌어야하는 이유)

11-13절을 보십시오.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에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냐 제사 직분이 바꾸어졌은즉 율법도 반드시 바꾸어지리니 이것은 한 사람도 제단 일을 받들지 않는 다른 지파에 속한 자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그런데 이 레위 계통의 제사직과 관련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율법으로 명령을 받기는 하였습니다. 만일 그 제사직으로 완전한 것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면, 아론의 서열이 아닌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른 다른 제사장이 생겨날 필요가 없습니다. 제사 직분이 아론의 서열에서 멜기세덱의 서열로 변하면, 율법에도 반드시 변화가 생기게 마련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율법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먼저 율법을 주신 이유를 생각해보아야합니다. 첫째는 율법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려줍니다. 생명을 사랑하고 순결을 사랑하고 사유재산을 소중히 하고 인격을 소중히 여기라고 합니다. 둘째는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길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행복하게 사는 길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주일을 철저하게 지키는 사람이 행복합니다. 십계명대로 살면 행복합니다. 부모공경하고 부부간에 순결을 지키면 행복합니다. 열심히 일하는 가정은 행복합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뜻을 떠나면 벌 받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으면 우상을 섬깁니다. 일본 사람들은 집집마다 우상을 만들어놓습니다. 어떤 집은 여우를 사랑의 화신이라고 섬깁니다. 여우를 섬기면 남자가 바람을 안 피운다고 합니다. 율법을 다시 내용에 따라서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도덕법이 있습니다. 십계명이 도덕법입니다. 또 하나는 제사법이 있습니다. 제사법에도 하나님의 사랑의 계시가 있습니다. 우상을 섬기면 화를 받는다고 하시고 살인자가 생기면 죽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이 이런 법을 지키지 못할 것을 아십니다. 아이들이 책망을 받으면 다시는 안 할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어린 아이의 이런 말을 못 믿을 것입니다. 이런 아이같은 우리를 심판하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제사법을 주신 것입니다. 탕자는 집을 나갔지만 호적에서 파지 않습니다. 탕자를 기다립니다. 탕자가 돌아오면 잔치하려고 준비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제사법에 속한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엄격한 율법을 주십니다. 그러면서 도피성을 만듭니다. 죄를 지을 것을 알면서도 사랑합니다. 죄 지은 다음에도 사랑하십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사랑이 계시되어 있습니다. 이런 자들을 어떻게 사랑하는가하는 것입니다. 그들을 대신하여 제물을 바치게 합니다. 내 대신 양을 죽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제사를 드립니다. 양과 함께 죽은 것을 믿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믿고 돌아오면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사랑합니다. 그래서 제사법을 만드셨습니다. 제사는 크게 속죄제와 화목제로 드립니다. 속죄제는 다 태워드립니다. 화목제는 제사장과 제사를 드린 사람이 오른편 가슴가 뒷다리를 함께 먹습니다. 제사를 드리는 이유는 제물이 대신 죽는 것입니다. 내가 죽은 것을 믿어야합니다. 우리 죄를 위하여 하나님이 자신의 아들을 희생하신 것을 믿어야합니다. 그 제사는 그림자입니다. 불완전합니다. 그래서 제사법이 바뀌어야합니다. 진짜 제사는 십자가의 제사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완전한 제사가 이루어집니다. 생명은 생명으로 사하여 집니다. 피흘림이 없이는 사함도 없습니다. 죄사함은 사건이지 심리적인 것이 아닙니다. 내가 운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하면 저절로 사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빚갚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빚을 탕감해 주지 않으면 빚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빚을 반드시 갚아야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철저히 빚을 갚아야합니다. 죄가 실제이듯이 속죄도 실제의 사건입니다. 이것이 제사입니다. 반드시 죄의 값을 치러야합니다. 그것이 양을 잡아 드리는 것입니다. 레위자손이 제사를 드립니다. 제사의 삼대조건이 있어야합니다. 제사장이 있어야합니다. 하나님이 지명한 사람이 있어야합니다. 내 자식이나 내 생명을 가지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대로 나가야합니다. 하나님이 지명한 제물이 있어야합니다. 돼지는 안 됩니다. 온전한 죄인이 되어야합니다. 진실과 참회로 나가야 합니다. 제사장을 의지하고 제물을 의탁해야합니다. 이것은 실제 사건이요. 실제 상황이 아닙니다. 레위기 26장에 제사장 조건이 나옵니다. 건강해야합니다. 완전해야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야 합니다. 사람 제사장은 완전할 수 없습니다. 제사장은 자기를 위해서 제사를 드립니다. 제물도 완전하지 못합니다. 양이나 염소는 불완전합니다. 그러므로 제사법이 바뀝니다. 제사법이 바뀌어 예수님은 레위지파가 아닌 다른 유다지파에 속한 분입니다. 유다 지파에 속한 사람으로서는, 아무도 제단에 종사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그 중에 핵심은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준비하신 완전하신 제물입니다. 십자가의 예수님을 보아야 죄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얻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복을 받는다는 것은 부수적인 것입니다. 이것은 중심으로 믿는 것은 언저리 신앙입니다. 참제사장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만이 완전한 제물입니다. 죄인은 예수님을 믿어야합니다. 이 믿음이 중요합니다. 제물과 내가 동일시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사장이 레위지파를 통해서 아론의 후손을 통하여 온다는 제사법을 바꾸고 멜기세덱을 통하여 오게 하십니다.

(유다 지파에서 나신 예수님)

14-15절을 보십시오. “우리 주께서는 유다로부터 나신 것이 분명하도다 이 지파에는 모세가 제사장들에 관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없고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이 일어난 것을 보니 더욱 분명하도다” 우리 주님께서는 유다 지파에서 나신 것이 명백합니다. 그런데 모세는 유다 지파와 관련해서는, 제사장들에 관해 아무것도 말한 바가 없습니다. 멜기세덱과 같은 모양으로 다른 제사장이 생기면, 예수님이 유다 지파에서 태어났다는 이 사실은 더욱더 명백합니다.

(생명의 능력으로 된 제사장)

16,17절을 보십시오. “그는 육신에 속한 한 계명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따라 되었으니 증언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 예수님은 제사장의 신분을 규정한 율법을 따라 제사장이 되신 것이 아니라, 썩지 않는 생명의 힘을 따라 제사장이 되셨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제사장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두고서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계통)을 따라서 영원히 제사장이다" 한 증언이 있습니다.(시편 110편 4절) 제사장은 레위지파에 속합니다. 아론의 후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유다지파입니다. 예수님은 영원히 살아계시는 영원한 제사장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따라서 제사장이 된 것이 아닙니다. 오직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따라서 된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제사장이 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멜기세덱의 반열을 따라서 영원한 제사장이 됩니다. 예수님이 우리 대신 제물을 드립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예수님을 믿은 내 생명은 어머니 배에서 태어난 생명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새생명을 얻은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은 것입니다. 영국의 시인 데니스에게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보느냐고 하는가 물었습니다. 꽃에 대한 태양과 같이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태양이 있어 꽃이 있듯이 예수님이 있어 내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죽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세례받은 날을 생일로 지키는 날입니다. 죽고 영적으로 태어난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율법으로 죽고 속됨으로 죽고 은혜로 거룩함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못 만났다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하고 놀랍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다고 생각합니다. 십자가를 볼 때 그리스도 안에 살아 있는 자로 발견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산자로 자신을 여깁니다. 예수님에게 생명력을 공급받습니다. 그래서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십자가 안에서 나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나는 소중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는 대제사장)

18,19절을 보십시오. “전에 있던 계명은 연약하고 무익하므로 폐하고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전에 있던 계명은 온전히 우리의 죄를 사하지 못하기 때문에 무력하고 무익하므로, 폐하게 되었습니다. 율법은 아무것도 완전하게 하지 못하였습니다. 율법은 우리를 온전히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더 좋은 소망이신 예수님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소망을 힘입어서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는 예수님은 제사장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의 행적은 말하지 않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역사적인 사건이요 우주적인 사건입니다. 히브리서의 예수님은 영원한 제사장이요 참된 제사장이라고 합니다. 구약의 제사장은 임시적이요. 그림자요 예표적이요. 상징적인 것입니다. 그 본체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본체가 있어야 그림자는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제사의 계명은 페하여집니다. 우리에게는 더 좋은 소망이 있습니다. 더 좋은 소망은 지성소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제사장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 가까이 나갑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맹세로 제사장 되신 예수님)

20-21절을 보십시오. “또 예수께서 제사장이 되신 것은 맹세 없이 된 것이 아니니 (그들은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으되 오직 예수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이로 말미암아 맹세로 되신 것이라 주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아니하시리니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신 것이 아닙니다. 레위 계통의 사람들은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자기에게 말씀하시는 분의 맹세로 제사장이 되신 것입니다. "주께서 맹세하셨으니, 주께서는 뉘우치지 않으실 것이다. 너는 영원히 제사장이다"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가 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더 좋은 언약을 보증하시는 분이 되셨습니다 여호와는 맹세하고 그 맹세를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에게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서 영원한 제사장이 되리라 맹세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왕인 동시에 제사장이 되십니다 아론의 자손은 죄가 있습니다. 유한합니다. 일시적인 죄사함만을 줄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레위지파를 따라서 제사장이 되지 않습니다. 영원한 평화의 왕, 멜기세덱의 서열을 좇아 제사장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자신의 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우리의 죄를 영원히 용서해주십니다. 그리스도는 부활하여 영원한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서 중보기도하십니다. 대제사장이 열두지파의 죄를 어깨에 매고 그들을 가슴에 품고 나가서 기도합니다. 예수님도 우리의 허물과 죄악을 감당하며 우리의 죄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시며 우리를 위하여 중보기도하십니다. 우리는 대제사장인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께 나갈 수 있습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중보하는 역할을 합니다. 제사장은 하나님의 마음에 들어야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분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레위후손이고 아론의 후손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자녀를 통하여 말씀하신다고 하십니다. 사람이 정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신 것입니다. 민수기에 보면 고라의 무리들이 반역을 하다가 많은 사람이 죽습니다. 제사장은 하나님의 절대주권 속에 세워집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기뻐하셨습니다.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 예수님)

22절을 보십시오.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제사장은 사람과 친해야하고 동정해야합니다 예수님은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됩니다. 예수님은 영원히 살아계십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완전한 제사가 우주에 이루어집니다. 살아계신 그리스도가 우리의 중보자이십니다. 죄인을 사랑하고 영접합니다. 죄인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십니다. 친히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우리를 그만큼 소중합니다. 아르키메데스의 원리라고 합니다. 물이 많이 빠져나간 것은 그만큼 내가 부피가 크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그만큼 죄가 많습니다. 그만큼 소중한 것입니다. 소중한 것은 값을 묻지 않고 삽니다. 돈이 아깝지 않습니다. 자랑스럽고 행복한 것입니다. 정말 좋은 물건이 있을 때는 값이 아깝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엄청안 값을 치렀습니다. 내 생명이 소중하고 사는 것이 소중하고 젊음이 소중합니다. 하루 종일 찬송을 불러도 행복합니다. 다른 사람이 욕을 해도 주님은 나를 소중히 사랑합니다. 예수님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 안에서 나의 가치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제사장은 맹세로 된 것입니다. 죄사함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언약은 디아네케로 유언이라는 뜻입니다. 일방적인 약속입니다. 집과 밭을 주겠다고 합니다. 한번 유언을 하면 고칠 수 없습니다. 약속한 사람이 죽은 것입니다. 이 약속을 지키는 자에게만 효력이 있습니다. 예수 믿으면 집을 주겠다고 하면 믿어야합니다. 죽음으로 사인하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언약의 보증입니다. 보증은 다른 사람이 보증을 서서 확실하게 합니다. 죄인을 위해서 높은 사람이 보증을 서면 감옥에서 나옵니다. 보증자를 보고 죄인을 석방하고 돈을 빌려줍니다. 보증자와 보증서는 자는 동일시합니다. 보증은 내가 책임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보증섭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것에 대해서 내가 책임지겠다고 합니다. 보증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보증서고 십자가로 사인하였습니다. 우리는 부족합니다. 그러나 보증자가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하지만 지혜는 없고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랑도 능력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내 의를 보증하였습니다. 보증은 큰 자여야합니다. 돈많고 권력이 있어야합니다. 마움만 가지고 안 됩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십니다. 우리를 위해서 보증이되고 십자가의 사랑을 하십니다. 자신의 목숨으로 보증서십니다. 우리를 위해서 언제나 기도하십니다. 보증을 받는 우리가 보증서는 사람을 믿어야합니다. 보증을 받는 사람이 못 믿으면 안 됩니다. 보증을 믿지 않는다고 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어느 나라를 위해서 일많이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동생은 못된 짓을 하였습니다. 체포되고 사형선고 받았습니다. 형님이 마음이 아픕니다. 부모도 돌아가십니다. 대통령을 찾아가 부탁합니다. 저를 보아서 사면할 수 없을까요? 대통령이 그분을 증거합니다. 사면장을 써줍니다. 사면장을 들고 찾아갑니다. 동생을 찾아가 물어봅니다. 사면되면 무엇을하고 싶으냐고 합니다. 사형선고를 내린 재판장을 죽인다고 합니다. 배심원을 죽이겠다고 합니다. 형님은 울었습니다. 그대로 돌아섰습니다. 감옥을 나오면서 사면장을 찢었습니다. 보증설만한 사람이 되지 못합니다. 우리는 보증선 예수님을 믿고 그 뜻에 합당한 겸손과 진실이 있어야합니다.

(영원한 제사장 예수님)

23-24절을 보십시오. “제사장 된 그들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으로 말미암아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느니라 ” 또한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은 죽음 때문에, 그 직무를 계속할 수 없어서, 그 수가 많아졌습니다. 히브리인들은 제사장이 많고 제사가 화려한 것에 끌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영원히 계시는 분이시므로, 제사장직을 영구히 간직하십니다. 따라서 그는 자기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오는 사람들을 언제나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그는 늘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중재의 간구를 하십니다. 제사장은 수효가 많은 것은 죽기 때문입니다. 바벨론 포로 이후에 대제사장이 83명이었다고합니다. 죽으니 대대로 이어진 것입니다. 인간 제사장은 죽는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어지고 죽고를 반복합니다. 수가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대가 끊어집니다. 제사장의 직위도 완전하지 못합니다. 제사장이 실수를 많이 합니다. 매너리즘에 빠집니다. 정성이 부족합니다. 가장 극적인 것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것이 대제사장 가야바입니다. 성전이 강도의 굴이 됩니다. 성전이 오래되니 제사는 관심이 없고 이권에 관심을 갖습니다. 제사장이 타락합니다. 그런 일이 많습니다. 왕도 백성도 타락해도 제사장은 바로 서야했습니다. 성전도 타락하고 제사장도 타락합니다. 그러므로 완전치 못합니다. 제사드리는 사람들도 완전치 못합니다. 진정으로 회개하고 예물을 드려야합니다. 진정한 회개없이 제물만 드립니다. 제물을 바치면서 죄는 죄대로 짓습니다. 회개없는 사람이 제물을 많이 바칩니다. 회개없이 제물만 바칩니다. 하나님은 다시는 제물을 가져오지 말라고 하십니다. 회개나 진실이 없는 제물은 가져오지 못하게 합니다. 회개와 정성으로 예물을 드려야합니다. 영과 진리로 예물을 드려야 합니다. 제사는 있지만 경건의 의미는 타락합니다.

(항상 살아계신 예수님)

25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그러나 예수님은 영원히 살아계십니다.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서 항상 기도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죄와 사망에서 온전히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죄가 없으신 대제사장 예수님)

26절을 보십시오.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이라 ”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제사장으로 계시기에 적격이십니다. 그는 거룩하시고, 순박하시고, 순결하시고, 죄인들과 구별되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제사장이십니다.

(단번에 드린 대제사장)

27,28절을 보십시오. “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하게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 예수님은 다른 대제사장들과는 다릅니다. 인간 제사장은 불완전합니다. 인간 제사장들은 날마다, 먼저 자기 죄를 위하여 희생제물을 드리고, 그 다음에 백성을 위하여 희생제물을 드립니다. 제사장은 자신들도 죄인입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 먼저 제사를 드리고 목욕하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불완전한 사람이 불완전한 제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긍휼을 주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렇게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제사장입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제사장입니다. 단 한번에 제사를 드립니다. 그는 자기를 바치셔서, 단 한 번에 결정적으로 이 일을 이루셨습니다. 모세의 율법은 사람들을, 약점이 있어도, 대제사장으로 세우지만, 율법이 생긴 다음에 하나님께서 맹세하신 말씀은, 영원히 완전하게 되신 하나님의 아들을 대제사장으로 세웁니다. 예수님은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합당해야합니다. 죄인에게 존경을 받아야합니다.

(대제사장 예수님)

대제사장 예수님 인간의 죄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흠없는 대제사장입니다. 흠없는 제물을 드렸습니다. 우리가 죄를 회개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우리를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십니다.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 나라를 누리게 하십니다. 할렐루야!
히브리서 7장 강해 영원한 제사장 예수님
말씀 히브리서 7장 1-히브리서 7장 28절
요절 히브리서 7장 24절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느니라
히브리서 7장 강해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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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히브리서] 히브리서 2장 강해 예수님을 천사보다 못하게 하신 이유 오요한 2012-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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