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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히브리서 6장 강해 영혼의 닻 예수님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2-10-17 00:00:00
조회수 : 3,797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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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6장 강해 영혼의 닻
말씀 히브리서 6장 -히브리서 6장 20
요절 히브리서 6장 19절

예수님은 영원한 제사장입니다. 멜기세덱의 지피플 따라서 대제사장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온전한 제사장일뿐 아니라 십자가에 자기 피를 흘려서 하나님께 나갑니다.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오늘 말씀은 그 분을 믿는 그 신앙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우리는 영혼의 닻이신 예수님을 의지하여 하나님 나라로 나가야 합니다.

(성숙해야함)

1a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 성장은 지식의 성장입니다. 성숙은 인격의 성장입니다. 건물이 다 지어지면 완전힙니다. 논리가 딱 떨어지면 완전합니다. 지식을 다 알면 완전한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완전은 인격의 완전입니다. 완전보다는 성숙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다른 번역에서는 성숙이라고 나옵니다. 꽃은 열매를 맺기까지는 완전하지 않습니다. 차가 처음 살 때가 완전한 것입니다. 완전히 익었다는 것은 먹을 수 있다 향기롭다 맛있다고 합니다. 사과가 익은 것은 종자를 퍼뜨리는 것입니다. 모든 종자는 완숙하게 되면 생명을 생산하는 것입니다. 동물의 세계도 그렇습니다. 동물이 어느 수준까지 자라면 새끼를 낳습니다. 새끼를 낳기 전에는 미숙한 것입니다. 정신적으로도 성숙한 것은 스스로 독립합니다. 많은 사람에게 은혜를 끼칩니다. 다른 사람에게 신세를 끼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도와줍니다. 이것이 성숙입니다. 성숙하려면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본받아야합니다. 어떤 부인이 결혼하고 병원에 가니 삼 센티의 생명이 있다고 합니다. 두 달 후에 병원에 갔더니 생명이 자라지 않는다고 합니다. 얼마 있다가 유산합니다. 자라지 않으면 생명이 아닙니다. 신앙도 자라야합니다. 한평생 예수님 믿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전도하지 못하면 미숙입니다. 최권능 목사님이 예수 천당이라고하였습니다. 자기 교수 앞에 가서 예수 믿으라고 하였습니다. 교수가 나라고 하니 당신은 벙어리 목사라고 하였습니다. 성숙하면 전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신앙생활은 이런 면으로 나가야합니다. 피타고라스는 학생을 둘로 나눕니다. 첫째는 열심히 배우기만 하는 사람입니다. 비생산적입니다. 공부를 위해서 공부하는 사람입니다. 둘째는 성숙한 학생이 있습니다. 지식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여 훌륭한 인격으로 성장합니다. 교인도 그렇습니다. 밤낮 성경공부만 합니다. 그런 사람이 말이 많습니다. 아는 척하는데 아는 것이 없습니다. 필로라는 철학자는 셋으로 나눕니다. 첫째는 아주 기초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여기서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꼭 물어보아야 알고 남이 설명해야 압니다. 둘째는 발전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를 배우면 열을 깨닫습니다 스스로 지식을 깨닫습니다. 셋째는 완전한 사람이 있습니다. 지식을 갖고 행동합니다. 행동하며 깨닫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면서 사랑을 깨닫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면서 행복을 누립니다. 원수를 미워하다보면 자신이 죽습니다. 핍박하는 자를 위해서 기도해 보아야합니다. 그러면 은혜가 충만합니다. 기도하지 못하면 점점 썩어집니다. 성숙한 신앙은 배우고 실천하고 실천하면서 깨닫습니다. 그리스도의 초보를 버려야합니다. 그것을 넘어서 성숙해야합니다. 유치한 것을 버려야합니다.

(회개한 후에)

1b2절을 보십시오.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초보적인 교인이 회개에 매여 있는 사람입니다. 회개는 돌아서는 것입니다. 죽은 자의 행실을 회개합니다. 이기적이고 질투하는 것입니다. 회개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밤낮 울기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울기만 하면 안 됩니다. 울다가 울면서 끝나면 안 됩니다. 눈물과 통곡이 분명하지만 그곳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울기만 하여 다른 사람이 기도하지 못하게 합니다. 설교들을 때 세 번 웃고 두 번 울어야합니다. 회개에만 머물러서는 죽은 사람입니다. 나도 회개하고 남에게도 매일 회개하라고 합니다. 율법주의라는 마귀가 그 사람을 삼킵니다. 자기 죄를 회개하지는 않고 남에게 회개 안한다고 합니다. 민족이 회개하고 대통령이 회개해야한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은 어떻게 해야하겠습니까? 이것은 죽은 신앙입니다. 그리스도가 없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거기에 머물면 안 됩니다. 회개하면 예수님을 믿어야합니다. 자기를 부정해야하지만 은혜 안에서 자신을 긍정해야합니다. 주의 은헤로 나는 영생하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율법 앞에 죽고 은혜로 사는 것을 발견해야합니다. 은혜를 모르면 율법주의자가 됩니다. 나를 보면 죄악된 자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합니다. 과거를 보아도 은헤 안에 있는 것입니다. 아직 살아있다는 것만 보아도 은혜입니다. 병원으로 감옥을 거쳐서 여기까지 온 것을 감사합니다. 모든 것을 은혜 안에서 해석해야합니다. 아브라함 링컨이 남북전쟁할 때 주일을 지켰습니다. 매주 예배를 지켰습니다. 어느날 목사님이 전쟁으로 부상자가 많이 나와서 교회를 병원으로 만든다고 합니다. 링컨은 일어나서 그것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럴수록 더 예배하고 기도해야 한다고 합니다. 예배는 절대로 그대로 지켜야한다고 합니다. 어려운 일이 있습니다. 전쟁에는 악이 있습니다. 죽어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도 예배하는 일이 더 우선적입니다. 사상자를 위해서 봉사해야하지만 예배가 우선적입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신앙입니다. 하나님을 믿었으면 다음에는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해야합니다.

(세례 받은 후에)

세례의 터를 닦자 말아야합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습니다. 회개한 죄까지 또 회개합니다. 이것은 십자가에 대한 모독입니다. 아이들이 실수할 때가 있습니다. 이이들이 잘못했다고 해서 용서했습니다. 그러면 감사해야합니다. 그런데 나는 구제불능이라고 해서는 안됩니다. 용서받았으면 새로운 사람이 된 것입니다. 세례 받았으면 새사람이 된 것입니다.

(안수 받은 후에)

안수에는 히브리사람은 세 가지가 있습니다.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을 때 안수합니다. 죄를 전가합니다. 제사장이 머리에 손을 얹고 죄사함 받았다고 선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은 것을 믿어야합니다. 둘째는 축복합니다. 야곱이 자녀를 안수하고 축복합니다. 셋째는 임직의 안수입니다. 사명을 주는 안수입니다. 이때 성령이 임합니다. 우리는 안수를 받고 다음에 안수 주는 자로 생활해야합니다. 계속 안수만 받고자 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안수하는 생활로 나가야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여지는 안수입니다.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 후에)

은혜의 가장 큰 적은 자기를 우상화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거룩함에 매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의를 받아들여야합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에 도달해야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가야합니다. 믿지 않는 자는 심판을 받는다는 것을 믿어야합니다. 그리스도에게로 더욱 나가야합니다. 그래야 은혜를 알고 은사를 알고 충만함을 압니다. 스데반 앞에는 원수가 없습니다. 천사의 얼굴이 되어서 죽이는 자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그들을 하나님의 심판에 맡깁니다. 이것이 성숙의 극치입니다. 마음으로 지식으로 몸으로 생명으로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3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이것이 가능합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야 우리는 성숙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나의 양을 먹이는데서 예수님의 양을 먹여야합니다. 나의 중심에서 그리스도 중심으로 바뀌어야합니다. 산상수훈을 실천해야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본질)

4-5절을 보십시오.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오늘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본질이요. 그리스도인됨의 속성입니다. 크리스찬은 한번 비침을 받았습니다. 빛의 비추임을 받았습니다 비침을 받는 것이 예수 믿는다는 것입니다 빛은 비유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고 오는 것입니다. 빛은 위에서 우리의 마음으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위로부터 오는 말씀의 은헤를 받은 것입니다. 복음을 들어야 믿습니다. 복음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복입니다. 예수 믿는 것보다 더 큰 복은 없습니다. 복음을 들을 때 우리의 마음에 속에 빛이 비추어졌습니다. 빛이 오면서 우리의 영혼이 밝아지면서 예수를 믿은 것입니다. 사죄의 은총을 받습니다.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말씀의 은혜를 받습니다. 그런 기간이 있어서 예수 믿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임종이 가까이 왔습니다. 그 임종이 가까운 사람이 초등학교 때 예수 믿으면 천당간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죽을 때까지 교회에 못갑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목사님을 불러오라고 하였습니다. 전도하고 세례를 주고 임종기도를 합니다. 아멘하면서 죽습니다. 주위의 사람이 기립하여 박수를 칩니다. 죽어가는 사람이 천당을 보면서 웃으며 죽습니다. 그 다음날 온집안 식구가 교회에 나옵니다. 그 한 말씀을 초등학교 때 한 번 들은 것이 빛이 비추인 것입니다. 빛이 꽂힌 것입니다. 말씀의 능력이 빛을 비추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자 예수님은 하나님이 그것을 알게 하신 것이라고 합니다. 하늘의 은사를 맛보는 것입니다. 죄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아무도 나의 죄를 사할 수 없습니다. 용서하는 것은 우리 인간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죄는 하나님만이 사할 수 있습니다. 사랑받는 나 자신을 깨닫습니다. 나는 하나님에 의해서 쓰여지고 있는 것입니다. 맛본다는 말은 미리 맛보는 것입니다. 먹는 것과 맛보는 것은 다릅니다. 먹는 것은 제대로 먹는 것입니다. 맛보는 것은 체험을 하는 것입니다. 사죄의 은사를 체험합니다. 성령님에 참여합니다. 성령이 감동해야 사랑을 믿게 됩니다. 우리는 많은 사랑을 받습니다. 그러나 사랑을 깨닫지 못합니다. 사랑 속에서 살면서 사랑을 깨닫지 못합니다. 성령은 중생하고 성화하고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확신하게 합니다. 성령의 은사를 압니다. 말씀의 은사도 알고 삶의 가치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도 타락한 사람이 있습니다. 애굽에서 출애굽한 후에도 타락한 사람이 있습니다.

(다시 타락하지 말아야함)

6절을 보십시오.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성경 말씀 중에 난해한 말씀입니다. 편하고 쉽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는 생선을 먹는 것같이 읽어야 합니다. 생선을 익히거나 찜을 하거나 굽거나 생선의 원형을 그르쳐서는 안 됩니다. 원형을 망가치면 안 됩니다. 생선을 그대로 두고 불을 천천히 올려야합니다. 먹을 수 있는 것은 먹고 가시같은 것은 바짝 굽고 갈아서 국에 넣어서 먹어야합니다. 가시를 그냥 먹으면 목에 걸립니다. 성경에 잘 이해되는 것이 있습니다. 성경에 원형을 그대로 두면서 읽어야합니다. 성경을 억지로 풀어서는 안 됩니다. 나이가 들고 신앙이 성숙하면 알게 됩니다. 어떤 것은 사도 바울에게 물어야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한 번 타락한 자는 다시 새롭게 할 수 없다고 합니다. 다시 회개케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참으로 두려운 말씀입니다. 예수 믿으면서 잘못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죄는 알고 짓는 죄가 있고 모르고 짓는 죄가 있습니다. 알고짓는 죄는 중죄가 됩니다. 꼭같은 죄라도 지성인의 죄가 큽니다. 뻔히 알면서도 죄를 지으면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 믿기 전에 짓는 죄가 있습니다. 예수 믿으면서 짓는 죄는 중죄가 됩니다. 같은 죄라도 죄의 무게가 다릅니다. 같은 죄라고 연약하여 짓는 죄와 고의적으로 짓는 죄는 다릅니다. 고의적으로 짓는 죄는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은혜를 받고도 타락했습니다. 이런 사람은 다시 회개하기에 불가능합니다. 다시 회개케 할 수가 없습니다. 못들은 사람은 듣게 하면 됩니다. 이들은 깨닫고 체험하면 됩니다. 그러나 다 체험하고 고의적으로 타락했습니다. 이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가룟유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많은 체험을 했습니다. 그 다음에 예수님을 팔았습니다. 이런 자는 회개하기가 어렵습니다. 예수님도 그를 회개시키지 못하였습니다. 예수 믿는다는 것은 큰 은혜요 은사입니다. 영국 작가 오스카 와일드가 있습니다. 그가 쓴 지옥의 단편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이 생전에 많은 사람의 병을 고쳤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되었을까 썼습니다. 예수님이 어디에 가니 폐인이 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절름발이였습니다. 예수님이 고쳐주었습니다. 그는 직업이 없습니다. 얻어먹다보니 보니 술주정뱅이가 되었습니다. 어디에 가니 창녀가 있습니다. 그녀는 귀신 들렸던 사람인데 온전하게 되었습니다. 해먹을 것이 없습니다 귀신들렸던 사람이라고 상대해주지 않아 창녀가 되었다고 합니다. 어디에 가니 깡패가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믿고 눈을 떴습니다. 눈을 뜨고 나니 아니꼬운 것이 많아 조폭이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은혜를 받고 타락한 자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구원할 수 없습니다. 말씀도 알고 성령도 아는 사람이 타락하면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어렵다는 뜻으로 해석합니다. 사람은 불가능하고 하나님만 가능하다고 합니다. 어떤 목사님의 딸이 불신자와 결혼하였습니다. 멀리 이사갔습니다. 그곳에 아버지와 동기인 목사가 있습니다. 그 목사님이 딸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10년간 교회에 나가지 않습니다. 아들이 하나 있는데 병들어죽었습니다. 그녀가 친구 목사에게 가서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친구 목사가 함께 눈물을 흘리다가 너를 교회에 나오게 하기가 하나님도 어렵구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손을 대야지 사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여 직접 손을 대야 변화됩니다. 큰 환난과 핍박 앞에서 배교자가 나옵니다. 가룟유다 같은 사람이 생깁니다. 큰 체험을 받은 사람이 타락하면 다시 돌아오기 어렵습니다. 네로 황제때 많은 기독교인이 죽습니다. 베드로가 로마를 떠나 죽고자 합니다. 그때 예수님이 다시 로마로 가는 것을 만납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고 거꾸로 매달려 죽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곳에 쿼바디스 도미네라는 교회가 서있습니다. 배교하면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는 것입니다. 자기를 버리지 못하면 은혜에 대한 모독입니다. 순교못하는 것은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모독입니다. 순교못하면 부활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예수님을 현저히 욕을 보이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은 후에 두 가지 반응)

7,8절을 보십시오.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이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큰 은혜를 받고 채소를 내고 엉겅퀴를 내기도 합니다. 출애굽한 후에 대적하고 불신하고 원망하는 자들입니다. 반면에 감사하고 찬양하고 사랑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채소는 쓰임 받지만 엉겅퀴를 내는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에는 불에 태워버립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항상 같습니다. 그러나 은혜를 받은 사람이 알곡을 내기도 하고 가라지를 내기도합니다. 예수님은 가룟유다에게 처음부터 나지 않았으면 좋을 뻔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으면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합니다.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서는 안 됩니다.

(구원에 가까운 자)

9절을 보십시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것 곧 구원에 속한 것이 있음을 확신하노라” 사랑하는 자들아! 는 서신의 대상을 부를 때 많이 씁니다. 사랑을 화증하고 확인하며 편지를 씁니다. 히브리서는 이 말을 딱한 번밖에 쓰지 않습니다. 이 말 속에는 다음의 모든 말에 대해 상대방이 다음의 말을 듣고 따를 것을 믿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아! 라고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 마음이 열립니다. 서로 간에 소통이 이루어집니다.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있음을 확신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상대방에게 항상 나를 실망시킨다고 하면 되겠습니까? 우리는 당신은 나를 실망시켰습니다. 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당신은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낫다고 해야 합니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낫다 훌륭하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던 중에 제일 잘했다는 것은 진보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월이 가면서 발전해야합니다. 좀더 덕이 있고 거룩이 있어야합니다. 수십년이 지나도 발전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성품에 가까이 가서 성화되었습니다. 라는 말을 듣는다면 이것은 높은 칭찬입니다. 구원에 속한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구원에 가깝다고 합니다. 구원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구원이 있습니다 이미 구원 받았지만 진짜 구원은 앞에 있습니다. 현재 매일 매일 그리스도를 닮아가고 어려움에서 구원받습니다. 죄와 혈기와 정욕과 세상과 비난을 이깁니다. 구원에 가깝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성품에 가깝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믿음과 소망에 가까이 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가까이 갔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선행을 기억하심)

10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하나님은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기억하십니다. 하나님은 알고 보고 계십니다. 지나간 일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오래 전에 나는 다 잊은 것도 하나님은 기억하십니다. 예수님은 내 이름으로 소자 중에 냉수한 그룻을 주어도 결단코 상을 잃어버리지 않겠다고합니다. 하나님은 꼭 기억하십니다. 우리의 선행을 기억하고 반드시 갚아 주십니다. 하나님은 행위를 기억하십니다. 우리의 행위 전반을 기억하십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을 기억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뜻과 중심을 기억하십니다. 예수님은 에베소 교회에 대해서 수고와 인내를 안다고 합니다. 그런데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합니다. 그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을 기억합니다. 사랑의 동기가 다릅니다. 참 사랑은 동기가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나나 너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때문에 사랑합니다. 이것을 기억하십니다. 곽목사는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입었습니다. 오년 동안 미국에서 공부를 하였습니다. 여비에서 학비 생활비도 미국에서 보내주었습니다. 사람들이 책도 많이 사가지고 왔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하였습니다. 여름방학에도 놀지 않았습니다. 그가 어떻게 이런 은혜를 입었을까 생각하며 할아버지를 감사했습니다. 할아버지가 많은 목사를 키웠습니다. 그들이 평양 신학을 나오고 일본 유학도 나왔습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할아버지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주고 곽목사는 예수의 이름으로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정확하게 기억하십니다. 그의 이름으로 나타난 사랑을 기억하십니다. 아가페적인 사랑입니다. 유명한 전설이 있습니다. 로마군인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는 부상을 당해 죽기 전에 간신히 도망가고 있습니다. 눈 앞에 문둥병자가 떨고 있습니다. 군인은 찢어진 옷을 문둥이에게 씌워주었습니다. 문둥병자가 자꾸 떨린다고 합니다. 군인이 문둥병자를 끌어안았습니다. 둘다 죽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면서 보니까 예수님이 찢어진 군복을 입고 계셨습니다. 네가 나에게 입혀준 것이라고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한 것을 기억합니다. 냉수한 그릇이라도 준 것을 기억합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한 것은 부도가 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섬긴 것을 기억하십니다. 예수님은 섬김 받으려 오지 않고 섬기려 오셨습니다. 오로지 봉사하는 마음을 가져야합니다. 우리는 봉사하는 것이 부족합니다. 미국인은 일주일에 두 번은 자원봉사를 합니다. 자원봉사를 못한 것은 공친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자원 봉사의 손이 모자랍니다. 우리는 꼭 돈을 받고 합니다. 섬기는 마음을 봉사합니다. 성도를 섬기는 것을 봉사하는 것을 기억합니다. 그리스도의 지체를 섬기는 것입니다. 성도의 교제를 기억하십니다. 우리의 죄악에 대해서 삼사대까지 벌을 내리나 선에 대해서는 수천 대까지 복을 주십니다.

(약속을 기업으로 받은 자들)

11,12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우리는 약속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선행을 기억하고 상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약속은 꿈이 아닙니다. 약속을 받아서 누려야합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약속을 받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낳아야합니다. 땅을 주신다고 하였으면 땅을 받아야합니다. 아브라함은 이십오 년을 기다렸습니다. 믿음으로 인내로 기다렸습니다. 약속을 받기 전까지는 시험에 빠졌습니다. 다시 일어나 믿음을 새롭게 하였습니다. 그는 죽은 자와 방불한 가운데도 약속을 믿었습니다. 이것을 표본으로 하고 본받는 자가 되라고 합니다. 아브라함과 동일한 부지런을 가져야 합니다. 꾸준히 해야합니다. 골프를 치면 열심히 합니다. 새벽 기도를 들락날락하지 말아야합니다. 숨 안 쉬고 살 수 없습니다. 무엇을 하면 꾸준히 해야합니다. 그래야 약속을 받습니다.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릅니다. 바른 소망을 갖고 부지런해야합니다. 어떤 사람이 바닷가에서 알라딘의 요술램프를 발견했습니다. 문지르니 거인이 나와 소원이 무엇이냐고 하였습니다.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하였습니다. 내년 이때에 신문을 보여달라고 하였습니다. 주가가 올라가는가 보려고 하였습니다. 주가가 어떻게 되는가를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신문에 자기가 죽는 부고가 있습니다. 주가가 올라가는 이런 소망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끝까지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가져야합니다. 낙심치 말아야합니다. 게으르지 않아야합니다. 쉬는 것과 게으른 것은 다른 것입니다. 피곤할 때 쉬어야 하지만 게으르지 말아야합니다. 게으른 것은 정력 낭비요. 시간 낭비요. 생명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시간을 죽이고 능력을 소실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마음으로 처음하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교회에 나올 때는 처음 나온 것처럼 마지막 날인 것처럼 나와야합니다. 한 전도사가 인천 개척교회에서 설교합니다. 목사님이 안계셔서 전도사가 설교하였습니다. 이상한 느낌이 있습니다. 이 예배에 온 사람이 다음에 못나올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다음에 나오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회개하고 가라고 하였습니다. 24살의 부인이 차에 쿵 쓰러졌습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우리가 다시 여기에 나온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우리가 믿음과 인내를 지켜야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약속을 받을 사람이 있고 못 받을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현실로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다 약속을 받아야합니다.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

13-15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하셨더니 그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히브리적인 개념에서 예수님을 설명합니다. 예수님은 누구며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말합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무엇일가요? 주관적인 신념을 말할 때가 있습니다. 목사님이 믿습니까? 물으면 청충은 아멘! 하라고 합니다. 나이 많은 장로님이 아멘꺼리가 있어야 하지요. 합니다. 아멘은 속에서 우러나야합니다. 믿습니다. 하는 것은 의심하는 것입니다. 안 믿어지니까 믿습니다고 소리칩니다. 옛날 어른들은 사랑한다는 말을 잘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거니 하고 살았습니다. 쑥스럽게 사랑하느냐고 묻느냐고 합니다.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하면 거짓입니다. 꽃을 가지고 와도 사랑한다는 말에 속지 않습니다. 믿음은 주관적인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주관적인 결단이나 의지가 아닙니다. 믿음은 나에서 우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장사 잘 될 것 로또 복권 당첨될 것을 믿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에는 약속이 있습니다. 약속 없는 믿음은 정신적인 현상에 불과합니다. 약속에 기초하여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준다고 할 때 줄 것을 믿는다고 해야합니다. 시골학교 교장선생님이 은퇴할 때가 되었습니다. 50명 되는 졸업생들에게 아주 비싼 시계를 들고 여러분에게 한 사람에게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아무도 손을 들지 않습니다. 아무도 믿지 않고 손을 들지 않습니다. 작은 아이가 손을 들었습니다. 교장선생님은 믿는자가 되세요. 라고 했습니다. 작은 아이가 시계를 받았습니다. 약속을 의심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약속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약속 없는 믿음은 신념입니다. 확신은 주관적인 것이고 믿음은 객관적인 것입니다. 약속 있는 믿음이 믿음입니다. 구약에서 믿음이 무엇이냐를 설명합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설명합니다. 아브라함은 스스로 아들 낳을 줄을 믿은 것이 아닙니다. 만사형통할 것을 믿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먼저 약속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고 땅을 주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복이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약속을 믿고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는 것이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은 미래적입니다. 앞으로 주겠다고 합니다. 이것을 믿고 오늘 만족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훈련입니다. 교육학적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아이들이 달라고 하면 내일 준다고 약속합니다. 아이는 울어도 힘써도 안 줍니다. 아이는 잊어도 약속한 것을 줍니다. 이런 훈련을 시켜야합니다. 십년 후에 준다면 믿고 따라가야합니다.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로 즐거워해야합니다. 약속에 대한 수락, 진실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먼 머리에 약속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약속하셨습니다. 일방적으로 땅과 자녀를 약속하였습니다. 우리는 약속을 쌍방적으로 생각합니다. 성경에서는 일방적으로 주십니다. 종말론적인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약속합니다. 후손 가운데 선인이 악인이 날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후손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멀리 멀리 약속합니다. 이 약속은 창조적입니다. 하나님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사람은 변해도 이 약속을 받을 만한 자로 만듭니다. 공부 잘하면 진실하면 사랑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 받을만한 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탕자가 집을 나가도 사랑합니다. 돌아오기를 기다립니다. 좋은 아들을 만듭니다. 우리는 무능해서 약속을 하다 약속이 깨져도 그만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을 이루십니다. 많은 어려움이 있어도 약속을 이루십니다. 약속을 만들어갑니다. 좋은 부모는 자식을 훈련시킵니다. 마침내는 효자를 만들어갑니다. 그가 훌륭한 부모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변하지 않습니다. 절대적인 은혜입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나는 나를 못믿어도 하나님은 나를 믿습니다. 아이들이 아침 네 시에 일어나서 공부하겠다고 합니다. 안 일어나면 코를 잡고 물박아지를 씌우라고 합니다. 아이들은 자신을 믿을 수 없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의지를 믿을 수 없습니다. 아침에 공부할 수 있도록 부탁합니다. 내가 나를 못믿어도 부모는 믿습니다. 라스베가스에 가서 지갑을 다 꺼내서 부인에게 줍니다. 부인도 못믿습니다. 목사가 다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나를 믿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나를 믿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오래참는 믿음입니다. 기다려야합니다. 아브라함은 여러번 흔들렸습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지 못합니다. 26년이 흐릅니다. 자신과 아내를 보아도 약속을 믿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자녀를 준다고 하여도 믿지 못합니다. 그는 실수하여 서자를 만들어 이스마엘을 만들었습니다. 유대와 아랍의 싸움은 이삭과 이스마엘의 싸움입니다. 그래서 약속을 믿을 때마다 부끄럽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한 하나님이니 온전하라고합니다. 아브라함은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습니다. 그는 실수가 많았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내년에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그 말씀을 믿었습니다. 죽은 것과 방불한 데서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믿음을 의로 여기고 약속을 주십니다. 참으로 좋으신 분이십니다. 그의 믿음이 시원찮다고 하고 약속을 취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순종하여 독자를 드렸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절대 순종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믿고 순종하는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죽이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여 그 아들을 통해서 복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복을 약속하십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끝까지 인내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당대에 아들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사백년이 지나서 이루어졌습니다. 사백년이 지나서 자녀를 하늘을 별과 같이 번성케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약속을 이루십니다.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

16-18절을 보십시오.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큰 자를 가리켜 맹세하나니 맹세는 그들이 다투는 모든 일의 최후 확정이니라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하지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을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로 말미암아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에게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사람들은 자기보다 위대한 이를 두고서 맹세합니다. 그런데 맹세는 그들에게 모든 논쟁을 그치게 하여 주고, 확정을 지어 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을 상속받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이 불변함을 더욱 밝게 나타내 보이시려고, 맹세로써 보증해 주셨습니다. 이는, 앞에 놓인 소망을 붙잡으려고, 세상에서 피신한 사람들인 우리가 이 두 가지 변할 수 없는 사실, 곧 하나님의 약속과 맹세를 의지하여, 큰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고 맹세하실 때에, 거짓말을 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맹세하고 약속을 지킵니다. 아브라함은 끝까지 믿고 인내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 땅을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의 이름을 열국의 아버지로 바꾸어줍니다. 소중한 이삭을 하나님께 바칩니다. 아들을 아끼지 않았으니 네 씨가 대적의 문을 얻을 것이라고 합니다. 네 씨로 천하만민이 복을 얻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는 믿음으로 승리입니다. 하나님께 믿음의 인정을 받습니다. 모든 과거의 죄를 용서하십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계열을 따라 사는 자에게 약속이 이루어집니다. 참 이스라엘인 교회 그리스도인에게 약속이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믿음의 예표입니다. 믿고 믿음대로 되지 않으면 부도 수표와 같습니다. 참믿음을 가진 사람은 소망으로 삽니다.

(영혼의 닻 예수님)

19,20절을보십시오.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 영혼의 닻이 있습니다. 배에는 닻이 있어 배를 안정하게 정박합니다. 예수님이 주신 약속은 영혼의 닻입니다. 닻에 의지하여 배가 흘러가지 않습니다. 닻을 내리는 데 모래만 있으면 안 됩니다. 바위가 있어야합니다. 부나 명예나 지식은 쓸모없는 닻입니다. 그리스도만이 영원한 닻입니다. 그리스도가 하신 약속만이 우리의 닻입니다. 천국이 우리의 닻입니다. 영국 화가 프레드릭왓츠의 그림 소망이 있습니다. 오바마도 이 그림을 통해서 힘을 얻었다고 합니다 둥그런 지구가 있습니다. 지구 위에 올라서 소년이 바이올린을 켭니다. 줄이 다 끊어지고 한 줄로 바이올린을 켭니다. 이 그림의 제목은 소망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끊어졌습니다. 한 줄 예수님만 남아도 충분히 인생을 노래할 수 있습니다. 다 사라져도 한 줄 남은 예수님의 소망으로 밝은 노래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영혼의 닻과 같습니다. 닻에 의지하여 오늘을 살아갑니다. 그를 의지하여 성소 휘장에 들어갑니다. 예수님을 의지하여 하나님께 나갑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갑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완전하고 유일한 닻입니다. 그리로 앞서가신 예수님을 말합니다. 개척자입니다. 먼저 지성소에 들어갑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의지하여 우리도 지성소로 그리로 들어갑니다. 예수님은 영혼의 닻이요 마스터 키가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천국에 들어갑니다. 우리는 십자가로 보증한 약속에 기초하여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휘청거지지 말고 믿음을 가져서 약속을 받아야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행을 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야 합니다. 아멘!
히브리서 6장 강해 영혼의 닻
말씀 히브리서 6장 -히브리서 6장 20
요절 히브리서 6장 19절
히브리서 6장 강해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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