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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히브리서 5장 강해 대제사장 되신 그리스도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2-10-16 00:00:00
조회수 : 2,616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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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5장 강해 대제사장 되신 그리스도
말씀 히브리서 5장 1-히브리서 5장 14절
요절 히브리서 5장 5절

(이스라엘 사람의 제사)

히브리서는 히브리 문화권에 있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메시지입니다.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많은 제사를 드렸습니다. 당시의 역사가들의 기록에 의하면 유월절에는 하루에 양 18만 마리를 드렸다고 합니다. 성전에서 흐르는 피가 강과 같았다고 합니다. 사람들마다 자신의 죄를 위해서 제사를 드립니다. 그 큰 제사의 현장을 보고 그 제사 의식에 참여한 사람이 이 본문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읽으면 이해되지만 우리는 설명을 해야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제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계시합니다 히브리서는 히브리적인 문화 속에서 전하는 기독론입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예수님이 대제사장이 되신다고 합니다.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는 대제사장)

1절을 보십시오. “대제사장마다 사람 가운데서 택한 자이므로 하나님께 속한 일에 사람을 위하여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게 하나니” 대제사장은 모든 사람 가운데서 뽑힌 사람입니다. 아론의 후손 중에 장자만 대제사장이 될 수 있습니다. 제사장은 사람들을 위하여, 하나님과 관계되는 일을 수행하라고 세우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데제사장으로 하여금 예물을 드리고 속죄의 희생제사를 드리게 하려고 세우셨습니다. 대제사장은 하나님께 나가는 데 장애되는 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제사를 드리는 사람입니다. 제사장은 속죄제 번제 소제 화목제를 드립니다. 사람이 죄를 지었습니다. 영원히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제사장을 통하여 구원받는 길을 여셨습니다. 루터는 하나님은 왼손과 오른 손이 있다고 합니다. 왼손에는 율법이 있습니다. 율법은 죄인은 영원히 죽는다고 합니다. 오른 손에는 은혜입니다. 은혜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십니다. 우리가 죄를 회개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도스토에 푸스키의 죄와 벌에서 시간이 지나도 죄가 사하여 지지 않습니다. 레미제라불에서도 죄는 평생을 따라갑니다. 장발장은 선을 행해도 자벨 형사는 평생을 따라옵니다. 결심하고 선한 일을 행해도 죄가 사하여 지지 않습니다. 더러운 죄인의 손으로 하는 선이 죄를 사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고행을 해서 면죄받지 못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죄사함을 받아야합니다. 하나님은 제사를 통하여 죄사함을 받게 하셨습니다. 대제사장이 제물을 드려야 죄사함을 받습니다. 속죄는 하나님이 계시해주신 대로 나가야합니다. 부자간에도 자식이 부모에게 잘못했습니다. 자식이 잘못한 것은 두고 돈 많이 벌어서 속죄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는 돈보다 부모의 말을 듣기 원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이 제사를 통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연약한 인간 대제사장은 인간을 이해할 수 있음)

2절을 보십시오. “그가 무식하고 미혹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휩싸여 있음이라” 인간 대제사장은 자기도 연약함에 휩싸여 있으므로, 무지해서 유혹에 빠진 사람들을 너그러이 대하실 수 있습니다. 대제사장은 같은 인간이므로 인간의 연약함을 이해하고 도울 수 있습니다. 대제사장은 사람을 대표하여 하나님께 나가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잘못해서 집에 들어오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아이가 할아버지나 할머니를 찾아갑니다. 할아버지가 손자를 끼고 아들에게 용서해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대제사장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 같은 죄인이 하나님께 직접 나가지 못합니다. 요한복음 17장에 보면 예수님이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을 대신하여 제사를 드립니다. 대제사장은 죄인을 대신하여 죄인이 되는 것입니다. 죄인을 사랑하고 죄인을 위하여 두둔하고 죄인을 대신하면 자신도 죄인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죄인이 되어 하나님께 나갑니다. 제사장은 죄인을 이해해야합니다. 죄인을 긍휼히 여겨야합니다. 죄인을 보고 죽어마땅하다고 보면 안 됩니다. 캐치미 이프유캔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수표를 위조하는 천재가 있습니다. 이 사람이 어렸을 때 집에 가니 어머니가 다른 남자와 불륜을 맺는 것을 봅니다. 그 순간 그 사람은 집을 나갑니다. 그는 머리가 좋아서 형사가 잡을 수 없습니다. 그가 어느날 집에 돌아가보니 어머니가 그 남자와 살고 있습니다. 딸도 낳습니다. 그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아섭니다. 형사에게 손을 내밀고 나를 잡으라고 합니다. 그 사람은 어머니의 타락을 보고 자포자기합니다. 가정이 잘못되면 자식이 잘못됩니다. 제사장은 이런 죄인을 보고 정죄하지 않고 이해하고 동정하는 마음이 있어야합니다. 제사장은 체험적으로 이해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합니다.

(자신을 위한 제사를 드리는 대제사장)

3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백성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림과 같이 또한 자신을 위하여도 드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인간 대제사장은 그 연약함 때문에 그는 백성을 위해서 속죄제를 드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기를 위해서도 속죄의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대제사장은 자신도 죄를 지은 죄인이기 때문에 먼저 자신을 위해서 속죄제사를 드리고 다음에 백성을 위해서 속죄제사를 드려야합니다. 제사장은 결점이 있습니다. 사람마다 죄를 짓고 죄를 모릅니다. 모르는 동안은 회개를 할 수 없습니다. 회개가 없으니 구원도 모릅니다. 죄를 발견하면 하나님께 나와서 제사를 드려야합니다. 우리가 모르는 죄를 범합니다. 대제사장은 연약함으로 상대방에게 죄를 깨닫게 할 능력이 없습니다. 일반 대제사장은 거짓된 죄인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제사만 많이 드리면 사함받게 되겠지 하는 것입니다. 회개는 안하고 양이나 소만 많이 드리기만 하면 용서받을 줄 생각합니다. 이사야서 일장에 보면 하나님은 제물을 가져오지 말라고 합니다. 회개는 없이 헌금만 드립니다. 인간 제사장은 그것을 모릅니다. 그러나 진정한 대제사장 예수님은 그&#47559지 않습니다.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 죄를 드러나게 하십니다. 진정한 회개를 하도록 하십니다. 진정한 회개를 할 때 진실을 찾고 용서받게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깊은 속을 아시고 회개하도록 도우십니다. 예수님은 죄인이 아니라 의인입니다. 진정한 대제사장은 예수님뿐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야 하는 대제사장)

4절을 보십시오. “이 존귀는 아무도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오직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라야 할 것이니라” 대제사장의 명예는 자기 스스로 얻는 것이 아닙니다.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자가 얻는 것입니다. 대제사장의 명예는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주시는 명예입니다. 제사장은 고시를 합격하여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임명하는 것입니다. 목사 고시 합격 못하면 목사가 되지 못합니다. 예장 통합측에서는 해마다 목사고시를 보면 60프로만 합격합니다. 사오년 불합격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제사장은 그런 고시로 뽑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거룩하냐 선하냐 윤리가 어떠냐는 것을 묻지 않습니다. 레위 후손이요 아론의 후손만 대제사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중에도 건강하고 나이의 제한에 맞아야합니다. 제사장은 하나님이 친히 임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절대권한입니다. 민수기에 보면 대제사장이 거룩한 옷을 입고 제사지내고 말씀을 전합니다. 고라의 무리들이 반역합니다. 아론 대제사장에게 분수에 지나다고 합니다. 너무 거만하게 한다고 합니다. 나도 드릴 수 있다고 합니다. 그는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제사장이 되고자하는 사람 250명을 죽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

5절을 보십시오.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스스로를 높여서 대제사장이 되는 영광을 차지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세례 받을 때에 "너는 내 아들이다.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때 예수님께 대제사장의 영광을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유일한 독생자이시므로 하나님이 대제사장의 영광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지명하여 불렀습니다. 누구 아들이고 가정이 어떻고 비난해서는 안 됩니다. 제사장은 하나님이 임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명한 것입니다. 목자를 볼 때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저 분을 여기에 보내셨다고 여겨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빗나가면 엉망이 되는 것입니다. 대학생이 말씀을 들으며 목사님과 하나님과 나와 함께 있는 경험을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목사님을 통하여 내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 사람은 제사장인 목사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난 사람입니다.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대제사장)

6절을 보십시오. “또한 이와 같이 다른 데서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셨으니” 또 하나님은 시편에서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른 영원한 제사장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는 맹세하고 그 맹세를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에게 멜기세덱의 서열을 좇아서 영원한 제사장이 되리라 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왕인 동시에 제사장이 되십니다 아론의 자손은 죄가 있습니다. 유한합니다. 일시적인 죄사함만을 줄뿐입니다. 그래서 메시야는 레위지파를 따라서 제사장이 되지 않습니다. 영원한 평화의 왕 멜기세덱의 서열을 좇아 제사장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자신의 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우리의 죄를 영원히 용서해주십니다. 그리스도는 부활하여 영원한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서 중보기도하십니다. 대제사장이 열두지파의 죄를 어깨에 매고 그들을 가슴에 품고 나가서 기도합니다. 예수님도 우리의 허물과 죄악을 감당하며 우리의 죄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시며 우리를 위하여 중보기도하십니다. 우리는 대제사장인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께 나갈 수 있습니다.

(경외하는 대제사장 예수님)

7절을 보십시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예수께서는 인간으로 세상에 계실 때의 일입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제물이 되었는지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죽음에서 구원하실 수 있는 분께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습니다. 나의 마음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기도하였습니다. 구약에서는 짐승이 울었습니다. 소가 울고 양이 울었습니다. 예수님은 본인이 제물이 되어 우셨습니다. 하나님의 원은 자신의 아들을 제물로 죽여서 우리를 살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큰 부르짖음과 많은 눈물로써 하나님께 순종의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해산하기 위해서 눈물의 통곡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우리의 고통을 다 이해하고자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갖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목숨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셨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아낌없이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시는 경외심을 보시고서, 그 간구를 들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을 죽음에서 부활하여 우리의 그리스도로 삼아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경외하는 마음으로 아브라함이 이삭을 드리듯이 순종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순종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간구를 들어주심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기도를 들으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자신이 제물이 되셨습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번제 속죄제 화목제를 드리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제사를 받으시고 그를 제물로 인정하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습니다.

(고난으로 온전하게 되신 예수님)

8절을 보십시오.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십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심으로써 복종을 배우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통하여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순종은 배우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하여 배우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기를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완전히 죽으심으로 속죄양으로 완전하게 되셨습니다. 우리는 순종을 통하여 완전하게 되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완전한 속죄제물이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실패하지 않은 사람은 쓰지 않고 빨리 출세한 사람은 안 썼다고 합니다. 이순신 장군은 많은 고난을 받고 출세하였습니다. 고려의 장군은 강감찬 장군이 유명합니다. 50살이 넘어서 등용합니다. 75세에 출전합니다. 84세에 돌아가십니다. 키도 작고 위모도 볼품이 없습니다. 고난을 많이 받은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홍명보는 수비를 합니다. 월드컵에세번 출전합니다. 그는 감독하면서 겸손합니다. 고난을 통하여 겸손하게 된 사람만이 그 사람만 행복할 뿐 아니라 공동체도 행복합니다.

(구원의 근원이 되신 예수님)

9절을 보십시오.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예수님은 그 후에 자기에게 복종하는 모든 사람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었습니다. 어린 양되신 예수님을 통하여 구원이 시작되고 모든 사람들에게 퍼져나갑니다. 우리도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예수님께 복종하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구원하셨듯이 우리를 구원하여주십니다. 우리도 순종으로 자신을 산제물로 드려야합니다. 고난의 길을 가야 합니다. 당시의 성도들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순종의 제사를 드려야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순종하는 자는 영원히 구원하여 주십니다. 죄인들은 대제사장을 믿어야합니다. 저분은 나의 진심을 안다는 것을 믿어야합니다. 그분은 나를 불쌍히 여기고 나의 죄를 대신 한 것을 믿어야합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인간 목자에게 나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저자는 사람들에게 나가지 말고 예수님께로 나가기를 원하십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신 예수님께로 나가야 합니다. 애쓰고 힘써서 기도하신 예수님께 나가야 합니다. 고등학생이 여러번 가출하였습니다. 훈육주임이 때리고 설득도합니다. 학생이 선생님은 어떻게 나를 아느냐고 합니다 선생님이 나도 과거에 가출했다고 합니다. 세 번했다고 합니다. 선생님은 나를 안다는 것입니다. 가출이 재미있고 위험하고 고통스러운 것을 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셔서 순종하고 고통을 겪은 것입니다. 어떤 분은 아주 어렵게 살았습니다. 식당에 밥그릇이 얼마나 큰가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이것은 겪은 본 사람이 압니다. 뚱뚱해질까봐 다이어트하는 사람이 모릅니다. 대제사장이 나를 안다 이해한다고 생각합니다. 죄인과 대제사장이 하나가 되어야합니다. 그래야 죄사함을 받습니다. 우리는 나를 아시고 구원하시는 예수님을 믿어야합니다.

(멜기세덱의 계보를 따른 대제사장 예수님)

10,1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으셨느니라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가 듣는 것이 둔하므로 설명하기 어려우니라”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서 대제사장으로 임명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레위지파가 아니지만 멜기세덱을 후손으로 오셔서 대제사장이 되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삽입절입니다. 저자는 멜기세덱에 관해서는 할 말이 많습니다. 그러나 수신자들이 듣는 것이 둔하여 더 이상 설명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둔하다는 말은 열정이 식어서 말씀에 대한 간절함이 없는 것입니다. 게으르다는 말입니다. 유대인들은 아직도 레위지파의 제사장을 생각합니다. 저자는 멜기세덱 기독론을 말합니다. 임시 구약에 나타난 그리스도입니다. 멜기세덱의 그리스도를 말하니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것을 알아들을 만큼 성숙해야 합니다. 멜기세덱은 평화의 왕이요. 의의 왕입니다. 히브리서의 주제가 대제사장으로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는 왕이십니다. 멜기가 왕이라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이 전쟁에서 돌아올 때 멜기세덱이 나타납니다. 아브라함을 위로합니다. 멜기세덱은 단 한번 나타나는 신비로운 사람입니다. 그리스도도 멜기세덱과 같이 단한번 나타납니다.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신비롭습니다. 예수님도 삼십삼 년을 사시다 돌아가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드러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신비로운 그리스도로 우리에게 계십니다. 멜기세덱은 제사장이면서 왕이십니다. 예수님도 제사장이면서 평화의 왕이시오. 의의 왕이십니다 이스라엘은 모세의 율법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러나 모세보다 먼저 있었던 사람이 아브라함이고 그때 멜기세덱이 있었습니다. 그는 율법 이전이고 모세 이전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의 완성자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아론과 제사장은 아론과 레위의 후손입니다. 예수님은 유다지파입니다. 제사장은 레위지파에서 나옵니다. 유대지파인 예수님이 제사장이 될 수 있는 가장 큰 증거가 멜기세덱입니다. 예수님은 레위의 후손으로 온 것이 아니라 멜기세덱의 후손으로 오셨습니다.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에게 떡과 포도주를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자신의 살과 피를 떡과 포도주를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시고 우리는 그를 의지하여 갑니다.

(초보에 머무른 히브리 성도들)

12a절을 보십시오.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때가 오래되었으므로 히브리신자들은 마땅히 선생이 되었어야합니다. 당시에 히브리서 수신자들은 복음을 받은지 30-40년이 흘렀으므로 그들은 선생이 되어야 했습니다. 복음을 깨달았으면 전도하고 말씀을 가르쳐야합니다. 교회 안나가자니 지옥갈 것 같고 나가기는 싫어서 늦게 나옵니다. 복음을 깨달으면 자연히 가르치고 봉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목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다시 능력을 받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신자들은 하나님 말씀의 초보적 원리에 대해서는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할 처지가 되었습니다. 잘 알아듣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말씀을 가르치는 성경선생이 성숙한 사람입니다.

(고난의 말씀을 먹어야 성숙한 자임)

12b를 보십시오.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그들은 나이가 들어서 어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단단한 음식은 못먹고 젖이나 먹어야할 처지가 되었습니다. 단단한 음식을 씹어먹으며 맛을 보는 사람이 어른입니다. 젖은 쉽게 넘어가고 소화가 잘 되는 것만 먹습니다. 이가 빠지면 먹는 재미의 반은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가 빠지면 숟가락을 가지고 참외나 사과를 긁어먹습니다. 먹는 재미가 없다고 합니다. 말씀도 굳은 말씀이 있습니다. 그런 말씀을 소화하는 사람입니다. 조금만 어려운 말씀을 하면 못 알아듣고 오해를 합니다. 제자들은 십자가와 고난의 말씀을 들을 때 거부하였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와 고난의 말씀을 들을 줄 알아야합니다. 몸이 자라는 것은 성장이라고 하고 내면이 자라는 것은 성숙이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이 성숙할까요? 어린아이들은 무자라듯이 잘 자랍니다. 내적인 성장은 눈에 띠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나이는 먹었어도 생각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 어린 아이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책임을 돌리고 의심을 할 때 침착할 수 있고 자신을 믿을 수 있다면 성숙한 사람입니다. 기다릴 때도 기다림에 지치지 않고 거짓으로 속임을 당해도 거짓으로 맞서지 않으면 성숙한 것입니다. 미움을 받을 때 미워하지 않고 모든 것을 잃어버려도 잃어버린 것에 대해서 한마디도 안할 수 있으면 성숙한 것입니다. 잃어버린 후에도 자신에게 유익하게 하고 견디라는 말밖에 없을 때 견딜 수 있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입니다.

(선악을 분별하는 자가 성숙한 자임)

13,14절을 보십시오.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젖은 어린 아이가 먹는 것입니다 이들은 옳고 그른 말씀을 분별할 능력이 없습니다.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가 먹는 것입니다. 이들은 훈련을 받아서 지각을 사용함으로 선악을 분별할 수 있는 세련된 지각을 가진 자들입니다. 어른과 어린아이의 차이는 판단력에 있습니다. 소감을 쓰면서 지각을 사용해야합니다. 메시지를 연구하고 가르치면서 지각을 사용해야합니다. 먹을 것과 안 먹을 것을 판단해야합니다. 먹어서 유익한 것과 유익하지 않은 것을 판단해야합니다. 어린 아이는 아무 것이나 삼킵니다. 성숙한 사람은 꼭 먹어야할 것을 먹을 만큼 먹습니다. 너무 많이 먹고 씩씩 대는 사람이 어리석습니다. 성숙한 사람은 듣는 것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숙하려면 연단을 받아야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을 받아야합니다. 욥은 내가 단련하신 후에 순금처럼 나올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경건에 이르는 연습을 해야합니다. 성장할 때는 밥을 잘 먹습니다. 영적으로 성장할 때도 말씀을 사모합니다. 신령한 젖을 사모해야 합니다. 벧전 3장 18절에서도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라고 합니다. 어떤 랍비가 장례식에 갔습니다. 제자들에게 장례식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한 제자는 장례식의 화려함을 보고 망자는 부자라고 합니다. 한 제자는 사람이 많은 것을 보고 망자의 덕을 보았습니다. 한 제자는 관이 얼마짜리에요. 광장하다고 합니다. 선생은 죽음을 보았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은 겉으로 나타난 것만 보았지만 랍비는 그의 죽음을 통하여 나의 죽음을 보았습니다. 남의 장례식에는 나의 죽음을 보았습니다. 화환 많다 몇 개더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여기서 들으면 이 말이 옳고 저기 가서 들으면 저 말이 옳은 사람은 분별력이 없습니다. 진리의 말씀을 옮게 분별해야합니다. 율법주의와 복음 신앙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신비주의와 성육신의 복음을 구별할 수 있습니다. 모든 부흥회를 찾아다니지 않습니다. 성숙하지 않은 사람은 이단에 대한 분별력이 없습니다. 그들의 말씀을 듣고도 은혜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말씀을 수용하는 능력이 있어야합니다. 예수님은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더디 믿는 자라고 책망하십니다. 듣고나서 빨리 잊어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돌밭이나 가시떨기 밭은 수용능력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실천능력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담배는 해롭다는 책을 쓰면서 매일 담배를 세갑씩 피웠습니다. 그는 책을 쓰고 폐암으로 죽었습니다. 알면서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아는 것은 많지만 실천력이 없습니다. 실천력이 없으면 말씀은 머리에서 맴돌다가 사라집니다.
히브리서 5장 강해 대제사장 되신 그리스도
말씀 히브리서 5장 1-히브리서 5장 14절
요절 히브리서 5장 5절
히브리서 5장 강해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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