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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히브리서 2장 강해 예수님을 천사보다 못하게 하신 이유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2-08-28 00:00:00
조회수 : 2,799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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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2장 강해 잠시 천사보다 못하신 예수님
말씀 히브리서 2장 1-히브리서 2장 18
요절 히브리서 2장 7절

(구원자 예수님)

유대인들은 자신의 율법으로 구원받고자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율법으로 구원받지 못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구원하지 못합니다. 영혼자체가 병들었기 때문입니다. 물에 떠내려 가는 사람이 자기 머리카락을 잡는다고 나오지 못합니다. 밖에서 우리의 머리를 잡아줄 때 가능합니다. 밭이 스스로 싹을 내지 못합니다. 외부에서 밭에 씨를 뿌려야 싹이 나옵니다. 이 씨가 바로 복음입니다. 자기의 수행이나 고행으로 우리는 구원 받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잠시 천사보다 못하게 되셨습니다. 십자가의 죄인이 되셨습니다. 그 후에 부활하여 하나님 우편에서 영광스럽게 되시고 성령을 보내사 구원역사를 이루십니다. 다시 오셔서 우리를 온전히 구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영원히 천사보다 뛰어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지 천사가 우리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1장은 예수님이 계시의 완성자요 신성을 강조하였습니다. 2장은 예수님의 인성을 강조하십니다. 예수님의 성육신과 십자가를 가르칩니다. 이 편지를 받는 사람들은 고난을 받고 있습니다. 그들이 고난을 받아야하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예수님을 꼭 붙잡아야 함)

1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이미 들은 예수님의 복음에 더욱 유념해야합니다. 이미 들려주신 그리스도를 유념해야합니다. 십자가에 죽으신 부활의 주님을 유념해야합니다. 유념하라는 것은 프로스캐인으로 꼭 붙잡고 굳게 간직하라는 말입니다. 경외심을 갖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는 것입니다. 수업시간에 잘 들으면 다 이해하게 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집중하는 것입니다. 경외심을 갖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어야합니다. 그러면 바른 길에서 잘못된 길로 흘러 떠내려 가지 않게 됩니다. 흘러내린다는 말은 파라레인으로 바른 길에서 잘못된 길로 빠져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건성으로 복음을 듣는 자는 죄에 빠집니다. 우리는 집중해서 복음을 들어야합니다. 나이가 들면 자주 잊어버립니다. 그런 사람은 계속 들어야합니다. 콩나물에 물을 붓듯이 말씀을 잊어버려도 말씀을 계속 들어야합니다. 우리는 집중하여 졸지 말고 말씀을 들어야합니다. 우리가 돈 십만원만 잃어도 욕한마디만 들어도 그것을 기억하고 잠이 오지 않습니다. 잘못들으면 생명을 잃을 수 있다는 그런 마음으로 복음의 말씀을 들어야합니다. 흘러내리는 것은 흘러내리는 배가 항구에 가까이 오다가 항구에 오지 못하고 떠내려 가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죄악의 물결이 세차게 흐르고 있습니다. 당시 초대 교회에는 고난의 물결이 도도하게 흐르고 있었습니다. 요즘은 향락의 물결이 넘실대며 흐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물결에 놓여 있는 배와 같습니다. 아니면 항해하는 배와 같습니다. 우리를 정박하게 하는 닻과 같은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우리의 배를 움직이게 하는 기관이 바로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죄악의 물결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꼭 붙잡아야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뿌리를 내려서 닻을 내려야합니다. 주의를 기울여 경외심을 갖고 말씀을 생각해야합니다. 그리스도를 붙잡기 위해서 피흘리기까지 싸워야합니다. 할례를 해야 구원받을 수 있다는 율법주의에 빠지지 말아야합니다. 천사를 통하여 계시하여 주는 신비주의에 빠지지 말아야합니다. 우리는 조금도 쾌락이나 안일의 죄악과 타협하지 말고 십자가의 복음을 잡아야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꼭 붙잡지 않는다면 죄악의 물결에 떠내려갑니다. 단대의대에 이관우 교수는 왜 자신이 은혜를 받았는가를 생각합니다. 그는 과거에 선생이 숙제를 내주면 가장 먼저 했다고 합니다. 공납금을 내라고 하면 정한 기간에 가장 먼저 냈다고 합니다. 성경을 공부할 때도 삼십분 먼저 와서 책상을 준비해놓고 말씀을 들었다고 합니다. 목자님이 집에 심방왔을 때는 나가서 콜라를 사가지고 와서 대접했다고 합니다. 이런 경외심이 있어서 하나님이 자신을 불쌍히 여겨주신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경외심이 있어야 구원을 받습니다.

(모세를 등한히 여긴 자의 심판)

2절을 보십시오.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하지 아니함이 공정한 보응을 받았거든”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법적인 효력이 있습니다. 천사에게 하신 말씀은 모세를 통해서 주신 율법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지진과 천둥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모세의 과거를 묻지 말아야합니다. 모세가 살인하고 도망간 것을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모세를 하나님이 세우신 종으로 인정하고 모세를 통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모세를 거절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심판하셨습니다. 천사를 통해서 주신 율법을 지키지 않고 범죄한 모든 자는 공정한 보응을 받았습니다. 고라를 중심으로 모세에 반역한 자들은 지진이 나서 죽었습니다.

(복음을 등한히 여기는 자가 받는 심판)

3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그런데 이제는 모세에게 말씀을 주신 하나님이 친히 육신의 모습을 입고 오셨습니다. 그림자가 아닌 본체가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직접 오셨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하여주셨습니다. 은혜의 복음을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같이 천사보다 휠씬 뛰어난 예수님이 육신의 모습으로 오셨으므로 사람들은 그를 귀히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통하여 직접주신 큰 구원의 복음을 등한히 여기면 우리는 그 보응을 피할 수 없습니다. 큰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복음은 영접하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지만 거절하는 자에게는 심판을 하십니다. 복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는 자는 구원을 받습니다. 등한히 여기는 것은 소홀히 여기거나 무시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듣는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믿음으로 복음을 들어야합니다. 이 구원은 처음에는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신 것입니다. 나중에는 예수님에게서 들은 사도들이 우리에게 전하여 준 것입니다. 이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이 복음을 무시하면 하나님의 크신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불과 유황으로 타는 지옥 불에 들어갑니다. 우리에게 준 복음은 큰 축복이므로 책임도 큽니다. 포도원 농부의 비유에서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처음에는 종들을 보냅니다. 그런데 농부들은 종들을 죽였습니다. 나중에는 자신의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이들은 아들을 죽였습니다. 주인은 아들을 죽인 농부를 다 진멸하십니다. 초기에 선교사들이 병자들에게 페니실린을 공짜로 주었습니다 사람들은 공짜는 가짜로 생각하고 다 버렸습니다. 안철수씨가 의료봉사를 가서 약을 처방하였는데 아무 효력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알아보니 약을 공짜로 주니 다 버렸습니다. 다음부터는 반드시 조금이나마 돈을 받고 약을 주었습니다. 환자들의 병이 나아서 명의로 소문났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복음은 공짜로 주는 은혜의 복음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의 복음을 공짜라고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중국에서 파파로치의 음악을 듣기 위해서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왔습니다. 그런 열성으로 복음을 들어야합니다. 이 복음을 등한히 여기면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표적과 기사로 증거된 복음)

4절을 보십시오.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 히브리인들은 천사가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주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능력을 주시는 분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셨습니다. 표적은 보이는 것이요 기사는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능력은 이적들입니다. 예수님은 죽은지 나흘이나 되는 나사로를 살리심으로 증거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새로운 몸으로 부활시키심으로 증거하였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은 최고의 표적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나누어주신 성령의 선물로 그 표적과 함께 예수는 주님이라고 증언하셨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나사렛 예수님의 이름으로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웁니다. 이를 통하여 하나님이 베드로와 요한과 함께 있다는 것을 증명해줍니다. 그들은 신학교 졸업장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증거가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면 성령이 통역해주십니다. 베드로가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할 때 그들에게 성령을 주십니다. 성령께서 베드로가 전한 복음을 통역해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도 이렇게 큰 표적과 기사를 행하십니다.

(세상은 예수님께 복종할 것임)

5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우리가 말하는 바 장차 올 세상을 천사들에게 복종하게 하심이 아니니라” 당시에 사람들은 천사들을 권세 있는 자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도들이 말하는 바 장차 올 세상을 천사들에게 복종하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장차 올 세상은 새하늘과 새땅입니다. 그 땅은 만왕의 왕이요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에게 복종하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영원히 통치하는 왕이 되실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한 사람과 식사합니다. 우리는 그 사람과 식사하면서 그의 이전의 모습을 알아야합니다. 또 앞으로 그분이 어떤 분이 될까를 생각해야합니다. 그래야 그분을 바로 대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예수님의 과거와 미래를 알아야합니다.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어떤 모습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미래를 알아야합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 하나님이시었습니다. 앞으로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 되십니다 스데반이나 베드로나 바울은 구약의 말씀을 가지고 예수님을 설명합니다. 히브리서 특징은 구약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을 증거하십니다.

(사람을 귀하게 여기신 하나님)

6-8a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누구인가가 어디에서 증언하여 이르되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그를 잠시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며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시며 만물을 그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셨느니라 하였으니” 하나님은 시편 8편 4절에 말씀하셨습니다. 본래 이 시는 사람의 존귀를 노래하는 노래입니다. 다윗은 하늘의 별을 보면서 자신이 얼마나 존귀한 존재인가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시고 만물을 사람의 발 아래 복종케 하셨습니다 사람에게 땅을 정복하며 다스리는 권한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죄를 지으므로 천사보다 잠시 못하게 되었습니다. 9절에도 잠시 천사보다 못하게 하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하여 사람을 구원하시고 만물을 복종케 하십니다. 사람의 발아래 복종하지 아니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영광과 존귀로써 사람에게 관을 씌우셨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셨습니다. 다윗은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그를 기억하시냐고 묻습니다. 사람의 아들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그를 돌보시냐고 묻습니다. 하나님은 사람과 인자로 인간을 생각하시고 돌보십니다.

(지금은 만물이 예수님께 복종하지 않음)

8b,9a절을 보십시오. “만물로 그에게 복종하게 하셨은즉 복종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어야 하겠으나 지금 우리가 만물이 아직 그에게 복종하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 히브리서 저자는 시편 말씀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합니다. 히브리 저자는 여기서 인자를 예수님으로 해석합니다. 다니엘이나 에스겔에서도 메시야를 인자로 표현하였습니다. 인자는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인자는 고난을 받고 다시 구름타고 오실 예수님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인자 예수님에게 복종시키심으로써, 그에게 복종하지 않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게 하실 것이라고하셨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보기로는, 아직도 만물이 다 예수님에게 복종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와 아직 사이에 있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죽음을 맛보신 예수님)

9b를 보십시오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예수께서 다만 잠시 동안 천사들보다 낮아지셔서, 죽음의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천사는 십자가에 죽을 수 없지만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공자나 석가도 우리를 위해서 죽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노화나 병으로 죽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으로 잠시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사람의 죄사함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셔야 했습니다. 우리는 죄로 인하여 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대속적인 죽음을 맛보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앞에서 심히 놀라시고 슬퍼하셨습니다.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천사는 죽음을 맛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천사보다 뛰어나십니다. 우리는 천사에게서 탁월한 사랑을 느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죽음을 맛보심으로 우리는 죽음을 맛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버림 받음으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신앙 생활을 천사처럼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과 같이 육신을 입고 잠시 고통을 맛보아야합니다. 예수님은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같이 슬퍼하시며 우셨습니다. 이제는 부활하여 하나님 우편에서 영광과 존귀의 면류관을 받아 쓰신 예수님을 우리가 봅니다. 하지만 재림 전까지는 만물이 예수님께 복종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 만물이 예수님의 발아래 복종할 것입니다.

(고난을 받은 그리스도)

당시에 사람들은 메시야를 정치적인 개념을 생각합니다. 다윗의 왕국과 같은 나라를 만드는 메시야를 말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정치적으로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메시야인 자신을 칭할 때 인자로 자신을 표현합니다. 인자는 고난의 메시야, 영광의 메시야를 말합니다. 예수님은 대제사장 가야바 앞에서 인자가 구름타고 오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속적인 메시야 대신에 인자라는 말을 썼습니다. 스데반이 죽을 때 예수님을 인자라고 단 한번 말하였습니다. 히브리서는 인자를 통해서 예수님을 설명합니다. 시편 말씀대로 라면 예수님의 발 앞에 만물이 복종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직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예수님을 봅니다. 예수님은 죽음의 고난을 받으심으로 천사보다 못하게 되셨습니다. 당시에 천사는 의인보다 못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천사가 성도를 시중합니다. 의인은 천사보다 서열이 높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예수님을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셨습니다. 십자가에 의인이 아닌 죄인으로 죽게 하셔서 죄인이 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본체를 비우셨습니다. 종이 되고 사람이 되고 죄인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이 죄인이 되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신 모습으로 오면 모두가 죽음을 당합니다. 예수님은 죄인으로 오셔서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음을 맛보게 하시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인과 같은 경험을 하셨습니다. 같은 경험을 하지 않으면 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아이를 낳아본 사람이 애기 낳는 고통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이 맛보는 죽음의 고통을 이해하시기 위해서 죽음을 맛보셨습니다. 우리가 죽음을 맛보지 않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친히 죽음을 맛보셨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영광과 존귀로 관쓰신 예수님)

지금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고 계십니다. 하나님 우편에서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고 게십니다. 우리가 영광과 존귀를 쓰신 예수님을 봅니다. 우리는 현재 하나님 우편에 계신 이 예수님을 보아야합니다. 다시 오실 예수님을 보아야합니다.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신 예수님을 보아야합니다. 하지만 만물을 아직 발아래 복종케 하지는 못했습니다.

(영원한 왕이 될 때 십자가가 이해됨)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만물을 발아래 두실 것입니다. 제자들은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 능력의 예수님이 십자가에 고난 받은 것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재림하셔서 영원한 왕이 될 때 십자가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구원의 창시자 예수님)

10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히브리서 말씀은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가장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성경의 핵심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핵심은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히브리서는 십자가와 부활을 중심으로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잘 설명합니다. 만물은 하나님을 위해서 존재하고 만물은 하나님을 통하여 만들어졌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범죄한 인간을 이끌어 부활의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을 하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창시자 예수님의 고난을 통하여 예수님을 구원자로서 완전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심으로 구원의 주가 되시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는 완전한 구원자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구원의 창시자가 되었습니다. 죄에 빠진 인간을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는 창시자가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는 창시자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고난을 통하여 구원의 창시자가 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여기서 구원의 창시자는 주라는 말입니다. 대부분 주는 종이 주인을 가르치는 말입니다. 여기서 주는 알케온으로서 히브리서 12장에서 나오는 나온 말입니다. 알케는 근원 시작이라는 말입니다. 만물의 알케가 무엇이냐고 말하는 것은 근원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근원은 존재의 기초라는 말입니다. 히브리서는 존재의 근원이 물질이 아니라 인격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구원의 근본이요. 근원이요. 시작입니다. 개척자입니다. 구원의 주입니다. 예수님은 구원의 시작자이십니다. 그분이 있음으로 구원이 있습니다. 그분을 구원의 주 믿음의 주라고 부릅니다.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합니다. 고난은 저주가 아니라 고난은 구원의 완성입니다. 고난은 온전하게 이르는 과정입니다. 신천지는 십자가는 실패로 생각합니다. 신천지는 십자가가 없습니다. 십자가 없는 번영 신학이 있습니다. 이것도 신천지와 유사합니다.

(한 가족으로 만든 예수님)

11절을 보십시오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거룩하게 하시는 예수님과 거룩하게 함을 입은 사람들이 다 한 근원 하나님에서 났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를 형제라 부르기를 부끄러워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를 한 가족으로 만들어주시고 자랑스럽게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큰 형님이 큰 오빠가 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형제로 부르십니다. 지체가 낮은 사람이 지체 높은 사람을 친구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지체가 높은 사람이 지체 낮은 사람을 친구라고 하면 자신을 낮추고 친구를 높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을 삼으심)

12,13절을 보십시오.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으며 또 다시 내가 그를 의지하리라 하시고 또 다시 볼지어다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 하셨으니” 예수님은 주의 이름을 자신의 형제들에게 선포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다윗은 함께 하는 사람들을 형제라고 하엿습니다. 고난 받는 것은 형제된 증거입니다. 주님과 함께 부활 영광을 참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난 받는 것도 예수님과 함께 고난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영원한 가족 공동체입니다. 고생하며 자랄 때 형제애가 생깁니다. 형제라는 말이나 집이라는 말이 11번이나 나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가족 공동체를 강조하십니다. 예수님은 말씀대로 사는 자를 형제요 자매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부활 후 마리아에게 나의 아버지 너희의 아버지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교회 중에서 찬송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하나님을 의지하리라 하셨습니다. "보십시오, 내가 여기에 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들이 여기에 있습니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대로 예수님은 큰 형이 되시고 우리는 그의 형제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밑에서 예수님과 우리는 한 가족이 되었습니다. 교회는 가족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형제자매들과 가족으로 사귐을 가져야합니다. 배사라 선교사는 재래식 화장실에 가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재미 있었다고합니다. 배사라 선교사님은 한국 사람과 한 가족이 되었습니다.

(인간과 같아지신 예수님)

14a,을 보십시오.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 예수님이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죽으신 이유를 설명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습니다. 우리 인간은 육신을 입고 죽어야합니다. 예수님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에 속하였습니다. 육신의 모습을 입고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은 죽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에 우리를 대신하여 못으로 망치질을 당하셨습니다. 채찍에 맞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으로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낮아져 인간과 같이 되셨습니다. 인간이 무식하면 예수님도 무식하게 되고 인간이 약하면 예수님도 약하고 인간이 죄를 지으면 예수님 자신도 죄인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높은 위치에 서면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진정한 사랑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주는 것 봉사하는 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같아지는 것입니다. 같아져야 진정한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같은 경험에 들어가야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북한 사람의 고난을 당하지 않으면 그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서울을 떠나서 혼자 피난갔습니다. 같아지지 않으면 내가 아무리 뜨겁게 사랑해도 상대방이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우리를 도와주는 것이 하나의 취미라고 합니다. 이런 것을 도덕적 향락주의라고 합니다. 진정으로 사랑하고 사랑을 나누어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마음으로 감사하게 하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같아지지않으면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마음의 문을 열지 않습니다. 사랑은 힘든 것입니다. 계모가 전처의 자식을 사랑하는 것도 어렵고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 인간과 같아지셨습니다.

(죽음에서 해방시키신 예수님)

14b,15절을 보십시오.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사람들은 사망권세에 시달립니다. 죽기를 두려워합니다. 예수님은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 평생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자신이 죽음으로 놓아주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도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죽으면 부활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죽음의 두려움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피흘려죽으심으로 마귀를 멸하셨습니다. 마귀는 죄가 있을 때 일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 피로 죄값을 치르셨으므로 마귀가 힘을 쓰지 못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피를 통하여 마귀에서 자유할 수 있습니다. 죽음의 세력에서 자유하게 하십니다. 우리를 슬픔과 두려움과 허무와 무의미에서 자유하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불러서 살리셨습니다. 그가 나왔을 때 팔과 다리가 매여져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풀어놓아다니라고 하였습니다. 시니어 선교사들이 중앙아시아나 모슬렘 지역으로 가서 선교사역을 감당합니다. 그를 통하여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죄에서 자유함을 얻게 됩니다.

(성도를 붙잡아 주시는 예수님)

16절을 보십시오. “이는 확실히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확실히 천사들을 붙들어주려 하심이 아닙니다. 불신자들을 붙들어주려 하심이 아닙니다.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주고자 하십니다. 붙들어주신다는 것은 보살펴주시고 돌보아주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을 보살펴주십니다.

(자신을 제물로 드리신 예수님)

17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예수님이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낮아지심이 마땅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천사보다 못하게 된 것이 마땅합니다. 고난을 이상하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합당하고 마땅하게 생각해야합니다. 우리도 형제 자매와 같이 되어야합니다. 예수님은 반드시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해야한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인간에 대해서 자비하시고 하나님에 대해서 충성스러운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우리에 대한 자비요 하나님에 대해서는 충성입니다. 예수님은 대제사장이 되어 죄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셨습니다. 구약의 대제사장은 짐승의 피를 흘리심으로 죄를 온전히 없앨 수 없었습니다. 대제사장은 일시적입니다. 여러 번 반복하여 제사를 드려야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이 어린양이 되어 백성의 죄값을 치르고 죄에서 자유하게 하고자 자신의 피를 흘리셨습니다. 단번에 제사를 드렸습니다. 유도에서 한판승부가 있듯이 예수님은 단 한번에 자신의 피를 드림으로 죄에서 승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피흘려죽으심으로 완전한 제사를 드리셨습니다. 아론이나 다른 제사장은 똑같은 죄인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가 없는 완전한 제사장입니다. 한 아가씨가 재판을 받습니다. 법관이 백불의 벌금이라고 소장을 읽고 죄인에게 유죄라고 생각하는가 물었습니다. 아가씨는 유죄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법관은 옷을 벗고 내려와서 백불을 놓고 올라갔습니다. 범관이 아가씨의 아버지입니다. 범관으로 재판을 하였습니다. 아버지로서 그 벌금을 내어주었습니다. 아가씨는 자유하게 되었습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은 우리에게 공의로 심판하시고 육신의 몸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셔서 우리를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시험당하는 자를 도우시는 예수님)

18절을 보십시오.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예수님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사십일동안 마귀에게 세차례에 시험을 받았습니다. 베드로를 통하여 오는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시험을 받으셨으므로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의지함으로 넉넉히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고난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고학을 한 사람은 고학한 사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고난을 당하지 않은 사람은 고난당한 사람을 위로할 자격이 없습니다. 아프리카에 성당 제막식을 하는데 흰색 마리아를 보고 다 도망갔습니다. 다음에 그곳에 검은 페인트를 하자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예수님은 많은 시험을 당하여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친구라고 자녀라고 형제라고 부릅니다.

(십자가의 예수님을 경외하는 삶)

유대사람들은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천사보다 조금 못한 그분을 그리스도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천사보다 못하게 된 것은 큰 은혜입니다. 예수님이 천사보다 못하게 되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를 이해하셨습니다. 우리와 같아졌습니다. 우리는 죄와 사망에서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하여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경외해야합니다. 군대에서 선임이 잘해주면 후임은 선임을 무시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잘 대해주신 예수님을 마음으로 경외해야합니다. 사랑의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만왕의 왕이 되실 때 경외심이 없는 자는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여기서 예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아멘!
히브리서 2장 강해 잠시 천사보다 못하신 예수님
말씀 히브리서 2장 1-히브리서 2장 18
요절 히브리서 2장 7절
히브리서 2장 강해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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