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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히브리서 4장 강해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라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2-08-31 00:00:00
조회수 : 4,297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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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4장 강해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말씀 히브리서 4장 1-히브리서 4장 16
요절 히브리서 4장 11절

안식은 쉬는 것입니다. 행복한 것입니다. 목적에 도달해서 만족해하는 것입니다. 아주 힘들게 일한 사람이 휴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안식은 힘껏 일하고 행복해하는 것입니다. 이대로 눈감고 눈을 뜨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선한 일을 위해서 수고한 경우는 플러스 알파가 주어집니다. 그 행복은 이루말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인간이 누리는 행복입니다. 의를 위해서 희생하고 얻는 안식은 귀한 것입니다 하루는 놀고 하루는 일하는 사람은 안식의 의미를 모릅니다. 단테의 신곡에는 중간 지옥이 나옵니다. 간음 도둑질하지 않고 적어도 900가지 이내의 죄를 짓고 가는 곳입니다 남을 해롭게 하지도 않고 이롭게 하지 않은 사람이 가는 곳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가는 곳이 중간 지옥입니다. 게으른 사람입니다. 이들은 천국에 못 갑니다. 그는 해야할 일을 하지 못한 것입니다. 천국은 힘써 일하고 부지런하고 선한 일을 자발적으로 한 사람들이 가는 곳입니다. 네로의 핍박으로 유대교 신자들은 카타콤에서 숨어 살았습니다. 붙잡히면 그들은 이스라엘로 송환되었습니다. 히브리저자는 그들에게 안식을 얻는 길을 말씀하십니다. 3장에서는 안식에 들어가기 위해서 예수님을 경외하도록 말씀하셨습니다. 4장에서는 안식에 들어가려면 십자가에 죽으신 대제사장 예수님을 의지하라고 하십니다.

(안식에 이르지 못할까 두려워해야함)

1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 우리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할까 두려워해야합니다. 2장 13절에 조심하라고 합니다. 민수기 14장에 보면 10두령은 못들어갑니다. 원망한 세대는 못들어갑니다.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성도들 중에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염려합니다. 마음이 완고한 사람이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갑니다. 이들은 말씀을 듣지 않습니다 말씀을 믿지 않습니다. 원망하고 불평한 사람들입니다. 믿고 순종한 사람들만이 들어갑니다. 믿음과 순종은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말씀에 대한 순종은 안식에 들어가는 지름길입니다. 왕의 마음을 마음대로 휘두루는 황후가 있습니다. 왕후에게 그 비결을 물었습니다. 남편에게 즐겨 순종하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복음을 믿음과 결부시킬 것)

2절을 보십시오.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이스라엘 사람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들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들은 자들입니다. 들은 바 그 말씀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유익하지 못하였습니다. 말씀을 믿음과 결부시키지 못하였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듣고도 믿지 않아서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생깁니다. 그러나 듣는다고 다 믿음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들은 것을 믿음과 결부시켜야합니다. 그리고 온전히 순종해야합니다. 듣되 깨닫고 회개해야합니다. 인내하고 욕심 버리고 염려를 극복해야합니다. 길가 돌밭 가시밭은 좋은 열매가 맺지 못합니다. 좋은 밭과 같아야합니다.

(믿는 자가 안식에 들어감)

3절을 보십시오.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가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어졌느니라” 첫째로 하나님의 안식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한 후부터 안식을 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노하여 맹세하기를 그들이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습니다. 믿지 않는 자들은 안식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미 믿은 우리들은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갑니다.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로지 믿음입니다. 나는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겨야합니다 하나님이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실 것을 믿어야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이루셨습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죽으시며 모든 것을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다만 믿는 일을 해야합니다. 내 안에서 행하시는 분은 여호와이십니다. 우리는 우리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다만 믿으면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안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자)

4,5절을 보십시오. “제칠일에 관하여는 어딘가에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또 다시 거기에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안식은 아나파우시스로 위로부터 그치다 멈추다는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쉼을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완성의 의미가 있습니다. 손녀가 할아버지는 누가 만들었냐고 하니 하나님이 만들었다고합니다. 나는 누가 만들었냐니까 하나님이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손녀가 하나님이 솜씨가 요즘 좋아졌다고합니다. 자신이 잘 생겼다는 말이지요 하나님은 모든 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시고 제 칠일에 모든 일을 쉬셨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거기에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내 안식은 하나님의 안식입니다. 하나님은 일을 하고 안식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피곤하여 쉬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안식은 완성의 의미가 있고 만족의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노동하고 자는 의미가 아닙니다. 목표에 도달한 것입니다. 무기물 유기물 인격체를 창조하셨습니다. 다음 단계가 안식입니다. 오늘 말씀에는 이것을 중시합니다. 안식은 변화입니다. 성경에는 부활이라는 말보다 그리스도와 같이 변화된다고 합니다. 안식은 그리스도와 같은 단계로 변화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는 것은 그리스도적 단계로 간 것입니다. 새로운 차원으로 간 것입니다. 예수님과 같은 상태로 간 것입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과 같은 안식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이 들어간 안식)

6-7절을 보십시오. “그러면 거기에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나니” 둘째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안식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에게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습니다.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이스라엘은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들어가지 못하였습니다. 처음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오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은 오늘 그의 음성을 듣거든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회개하는 자가 안식에 들어갑니다. 여호수아는 진정한 안식을 주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다른 날에 진정한 안식을 주는 날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날이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오늘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오늘 안식할 때가 남아 있습니다. 본문에는 오늘이라는 말이 다섯 번 반복됩니다. 우리는 항상 오늘 마음을 부드럽게 해야합니다.

(가나안은 하나님 나라의 그림자)

8절을 보십시오. “만일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만일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진정한 안식을 주었다면 다른 날 안식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안식의 의미가 우리에게 남아 있습니다. 이것이 출애굽을 통해서 잘 나타납니다. 애굽땅은 세상입니다. 광야는 교회입니다. 요단강은 죽음입니다. 가나안 땅은 안식의 땅입니다. 이것은 시간적인 의미가 아니라 공간적인 의미입니다. 가나안을 간 것은 영원한 하늘나라로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애굽을 나오고 광야를 지나고 마지막 가나안 땅으로 갑니다. 사람이 가사 상태에 있다가 살아난 사람이 있습니다. 600명을 상대로 연구하였습니다. 로키 산맥에서 짚차를 타고 가다가 차가 호수에 빠진 것을 여섯 시간에 끌어냈습니다. 급냉동이 되어서 뇌파가 남아 있습니다. 그분이 깨어났습니다. 다리를 잘 못씁니다. 그분이 살아 있습니다. 죽을 때 고무풍선이 터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답니다. 자신의 시체를 자신이 본다고 합니다. 뒤를 볼 때 큰 강을 건넌다고 합니다. 그것이 요단강입니다. 성경은 가나안 땅을 말합니다. 가나안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전쟁이 없는 곳입니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곳입니다. 가나안 땅은 진정한 안식의 땅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그림자입니다. 우리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이스라엘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곳이 있다는 소망을 더욱 갖습니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려면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아야합니다. 끊임없이 회개하고 순종해야합니다. 애굽에서 나오고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가면 불쌍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 가운데 대부분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였습니다. 이것은 교회에 나오면서 천국 못가는 사람이 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이는 기막힌 일입니다. 예수님 믿는다고 하면서 은혜 못받는 사람입니다.

(현재적인 의미의 안식)

10절을 보십시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 셋째 현재적인 안식을 말합니다.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쉽니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갔다고 함으로 현재 여기서 실존적인 의미의 안식을 누리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죄와 사망에서 안식을 얻습니다. 온전한 자유와 평안을 누립니다. 오늘도 안식을 경험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그 자랑을 갖고 살아갑니다. 자신감을 갖고 살아갑니다. 아이들이 부모님은 나를 사랑한다는 확신이 있습니다. 절대적인 감격 속에 살아갑니다. 하나님이 나를 다 주관한다고 믿습니다. 완전히 맡기면 안식합니다. 오늘 사는 생명력으로 살아갑니다. 몸도 건강하고 감성도 이성도 건강합니다. 오늘은 오늘대로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충만한 은혜에 들어갑니다. 아직 남아있을지라도 못들어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써야함)

11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우리는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써야합니다. 여기서 안식은 카타파우시스로 멈추다 끝내다 그만두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써야 하는 이유는 누구든지 순종하지 않는 자의 본보기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내가 무엇을 하고자 하면 안식하지 못합니다. 온전히 다 이루신 예수님, 다 이루실 성령님을 믿어드릴 때 우리는 진정한 안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사단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무엇을 하라고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하는 일을 해야합니다. 우리가 들어갈 안식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일생을 일하고 하나님 나라에서 쉽니다. 우리는 긴장에 시달리지만 우리는 그곳에서 참안식을 얻습니다. 인격의 완성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적인 성품이 우리에게 완성됩니다. 그리스도와 만남의 관계가 이루어집니다. 그때는 우리가 예수님과 얼굴과 얼굴을 대하는 참만족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로 가는 것입니다. 천국은 안식입니다. 천국 안식의 모형이 안식일입니다. 안식일을 생각해야합니다. 주일이 안식일입니다. 주일에 들어가기를 힘써야합니다. 이스라엘 사람은 안식일에 전화도 안 받고 텔레비전도 안 봅니다. 이스라엘 랍비는 안식일에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금요일에 해가 지고 땡하면 쉬는 것입니다. 이렇게 지키는 자는 하나님이 부르시면 바로 갑니다. 주님이 오라고 하면 연기 신청해서는 안 됩니다. 주일을 지키는 것은 죽는 연습입니다. 하나님 나라 가는 연습입니다. 신문도 안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부르면 예 준비되었습니다. 하는 것입니다. 항상 죽을 준비를 하고 사는 것입니다. 주일 지키는 것이 안식에 들어가는 훈련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의 마음에 불신과 탐욕을 회개해야하니다. 스티븐 지라드라는 재벌이 있습니다. 주일날 하역 작업을 해야겠다고하였습니다. 한 청년이 주일지키느라고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그후에 직장을 얻으려고 하는데 못얻었습니다. 한 달 후에 사장이 전화왔습니다. 사장이 그의 믿음을 보고 은행에 취업을 시켜주었습니다. 그 사람이 스티븐 지라드라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써야 합니다. 내 영혼은 자유함을 지켜야합니다. 그래야 영원한 안식에 들어갑니다. 아멘!

(창조적인 하나님의 말씀)

12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안식에 들어갑니다. 예수님을 붙드는 것은 말씀을 붙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듣는 것을 잘 들어야합니다. 듣는 대로 달라집니다. 인성도 습성도 운명도 바뀝니다. 잊어버려야 할 것은 잊어버려야 합니다. 그 한 마디 말을 들어서 인생이 곤두박질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사람에 대해서 나쁜 말을 해서 그 사람을 만나면 그 생각이 납니다. 이상하게 보니까 그 말이 사실처럼 보입니다. 그 말을 지워버리려면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말이 기억을 만들고 인격을 만듭니다. 말에 의해서 인간관계가 망가집니다. 나자신도 나쁜 사람이 되었습니다. 말의 능력이 큽니다. 말이 씨가 됩니다. 그러므로 말조심해야합니다. 예수님은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하나님께 심판받는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쓸데없는 말을 말합니다. 내 입에서 나가는 말은 내가 책임을 져야합니다. 내가 하는 말은 내 말입니다. 헬라식으로 말은 지식이고 가치관이고 철학입니다. 히브리적으로 말은 창조입니다. 말의 마술적인 능력을 생각합니다. 열려라 하면 열립니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고 합니다. 히브리인은 말씀은 창조의 능력이 있습니다. 말씀은 생명력과 역사성과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나의 명예를 걸고 운명을 걸고 말해야합니다.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

첫째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습니다. 여기서 말씀은 독립적인 존재성을 갖고 있습니다. 인격적으로 존재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십니다. 그리고 말씀이 육신을 입고 오십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도 그 다음입니다. 말씀이 독립적이고 인격적이고 생명의 근원으로 존재합니다. 말씀이 주인입니다. 여기에 말씀은 뿌리가 되고 근원이 되는 로그스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입으로 전해지는 말씀은 레마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격적으로 살아있습니다. 말씀이 역사합니다. 우리는 말씀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져야합니다. 기독교를 말씀의 종교라고 합니다. 우리는 오직 말씀을 따라가고 말씀 안에서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마음으로 말씀을 믿고 고백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말씀 안에서 출생합니다. 우리의 생명도 말씀에서 나온 것입니다. 말씀이 아니면 성장하지 못합니다. 죽기 전에 한 마디라도 말씀을 들어야합니다. 말씀을 듣지 않으면 예수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깨닫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사람의 입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전도자의 입을 사용하여 말씀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전도자를 고용하는 것입니다. 기도 응답도 목자의 메시지를 통해서 응답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주체지 목자가 주체가 아닙니다. 말씀은 친히 말씀하십니다. 아주 신비로운 것입니다. 말씀이 주체가 되어 살아서 역사하십니다. 우리는 모든 메시지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권능의 하나님 말씀)

둘째 말씀은 권능이 있습니다. 활력이 있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사람이 변화됩니다. 말씀으로 병자가 낫고 귀신이 나갑니다. 말씀으로 바람과 바다를 잔잔케합니다. 죽은 자가 살아납니다. 말씀은 임종하는 자에게 임합니다. 어떤 분이 예수님을 믿는 자는 무식하고 한심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죽을 때 말씀을 찾았습니다. 임종시에는 요한복음 14장 시편 23편 말씀을 읽습니다. 말씀을 읽기 전에는 얼굴이 새까맣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듣고 나서 얼굴이 환하게 밝아져서 웃으며 죽습니다. 말씀을 읽어주니 지옥의 고통에서 벗어나 천국의 기쁨을 맛봅니다. 칼빈은 성경은 성령의 학교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 성령이 나타납니다. 충만 충만하라고 하여 성령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성경을 삼십분 보고 삼십분 기도해야합니다. 발란스를 맞추어야합니다. 사도행전에서 말씀과 함께 성령이 나타납니다. 성경을 읽으면 성령이 나타나고 성령께서 말씀을 깨닫게 합니다. 성령이 말씀을 능력있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운동력이 있습니다. 죄를 사망을 시험을 나를 이기게 합니다. 말씀은 효과를 냅니다.

(예리한 하나님 말씀)

셋째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합니다. 한쪽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양쪽이 있습니다. 한쪽만 있어도 들어가는데 양쪽이 있으니 잘 들어갑니다.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합니다.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참합니다. 구원하고 치료하고 심판하는 검입니다. 원만한 병은 기다려보고 약을 먹고 수술합니다. 아까운 손이나 다리를 잘라냅니다. 머리도 깨고 잘라냅니다. 그 후에 봉해주어야합니다. 그래야 살아있는 세포가 살아납니다. 암세포는 도려내야 합니다 아무리 아까워도 도려내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안에 들어와서 죄악을 잘라냅니다. 더러운 것 어둔 과거 사망 율법과 과거를 잘라내야합니다. 내가 끊어야할 것을 말씀이 잘라내게 합니다. 어떤 사람이 말씀의 은혜를 받으니 담배맛이 달아납니다. 내가 고치지 못하는 것이 말씀의 능력으로 고칩니다. 말씀이 순수한 나를 살려냅니다. 혼은 모든 동물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정신입니다. 이것을 쪼갭니다. 영은 하나님과 만남의 관계를 가진 것입니다. 이것이 죽어갑니다. 말씀 안에서 영이 살아납니다. 관절과 골수를 쪼개서 몸도 살아납니다. 머리도 관절도 고칩니다. 인도의 바마드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강도의 조직원입니다. 어느집에서 물건을 털어냈습니다. 그곳에서 성경책이 있는데 담배를 피우고자 가지고 왔습니다. 언제는 담배 피우기 전에 읽어보고 피웠습니다. 어느때 성경을 읽고 통곡을 하고 변화되었습니다. 율법과 죄에서 구원 받았습니다. 사망에 속한 것 불의에 속한 것을 제거하고 생명을 살아나게 합니다.

(벌거벗기는 하나님의 말씀)

13절을 보십시오. “지으신 것이 하나 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죄를 드러나게 합니다. 지으신 것이 하나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습니다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깊은 마음 생각을 심판합니다. 우리 마음의 동기를 아십니다. 우리의 중심을 아십니다. 아! 이것이 무서운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생각을 바꾸게 하십니다. 루터는 성경은 하나님과 나를 보는 거울이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모습이 보이고 나의 추한 모습이 보이고 운명이 보입니다. 그래서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납니다. 모든 위선과 거짓이 드러납니다. 말씀이 나를 벗깁니다. 나의 진실한 모습이 나타나게 됩니다. 깊은 속의 죄를 드러냅니다. 그래서 진실을 찾게 됩니다. 겸손을 찾게 됩니다. 오직 사랑 오직 믿음 오직 은혜로 하나님 앞에 서게 됩니다.

(대제사장이신 예수님)

14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여기서 10장까지는 대제사장 예수님을 말씀하십니다. 오늘 그 말씀의 서론입니다. 예수님이 대제사장임을 선언하고 예수님이 대제사장 되시는 자격을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안식을 얻고 대제사장을 통하여 안식을 얻습니다. 말씀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히브리 문화권에 있는 히브리사람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대제사장으로 설명합니다.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십니다. 위대하신 대제사장입니다. 일반대제사장은 땅에 있습니다. 그러나 에수님은 승천하신 분이십니다. 승천하셨다는 것은 하늘을 관통하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하늘을 뚫고 올라가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도리를 굳게 잡아야합니다.(삼장1절) 예수님은 그리스도라고 믿음의 고백을 해야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갑니다. 로마사람이나 헬라사람들에게 대제사장이라는 말이 잘 이해가 안 됩니다. 그러나 히브리인들은 잘 이해가 됩니다. 히브리입장에서 대제사장을 이해해야합니다. 히브리종교 문화 속의 대제사장을 생각해야합니다. 그들이 생각한 대제사장을 이해해야합니다. 대제사장은 구원을 하는 자입니다. 사람을 대표하여 하나님께 나갑니다. 하나님을 대신하여 우리에게 오는 사람은 선지자입니다. 선지자는 말씀을 가지고 옵니다. 너희는 왜 그것도 못하느냐 잘하지 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갈 수 없는 죄인입니다. 감히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습니다. 우리를 대신할 분이 있어야합니다. 그분이 대제사장입니다. 제사장은 성소에서 드립니다. 대제사장은 지성소에서 제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죄 때문에 하나님께 나갈 수 없습니다. 우리가 구원 받기 위해서는 죄사함을 받아야합니다. 요즘은 죄를 자책감으로 말합니다. 성경에서 죄는 실제입니다. 느낌이나 감상이 아닙니다. 한번 실수했다가 고치는 것으로 죄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 생각 말 행동도 죄입니다. 비행기가 떨어지면 불랙박스를 찾습니다. 불랙박스는 녹음기입니다. 비행기가 부서져도 불랙박스는 남아 있습니다. 본부와 교신한 것이 남아 있습니다. 불이나고 강도가 온 것이 들어 있습니다. 불랙박스는 항상 녹음하는 것입니다. 비행기가 어디로 가고 무슨 사고가 났느냐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블렉박스가 있습니다. 우리의 뇌속에는 하나님이 만들어놓은 블렉박스가 있습니다. 그곳에 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경직 목사가 97세가 될 때였습니다. 열어를 잘 하던 그분은 영어를 하나도 생각 못 합니다. 그런데 다 잊어버렸던 어머니와 아버지와 하던 대화가 생각이 납니다. 노인들은 옛날 것이 생각납니다. 그것이 블렉박스입니다. 하나님 심판대 앞에 설 때 모든 것이 다 드러납니다. 이것이 죄입니다. 죄는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돈을 훔쳤으면 갚았다고 훔친 죄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손해를 끼쳐서 그는 사업이 망하고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갚을 수 없습니다. 죄는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죄는 내가 내 힘으로 갚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충족해야 합니다. 물에 떠내려 가는 사람이 자기 머리를 잡아다닌다고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밖에서 누가 잡아주어야 합니다. 노예가 스스로 자유를 얻습니다. 노예가 돈을 벌고 재주를 부려도 자유할 수 없습니다. 혼자서 열심히 번다고 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자유를 주어야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죄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스스로 자유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가려면 하나님이 대신 값을 치러야합니다. 그것을 위해서 대제사장이 양을 잡아 제사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죄는 대제사장만이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제사장만이 드려야합니다. 제사장의 손으로 바쳐져야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제사장을 통해서 구원의 길을 열었습니다. 우리는 죄사함을 받고 참 안식을 얻습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시는 예수님)

15절을 보십시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할 이가 아닙니다. 우리를 공감하시는 분이십니다.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사십일 금식하신 후에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베드로를 통해서 시험을 받으셨고 십자가에 죽으실 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모든 시험을 말씀으로 이기셨습니다. 제사장은 하나님이 세우셔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인간을 이해해야합니다. 죄인이 대제사장을 믿습니다. 대제사장은 죄인을 불쌍히 여겨야합니다.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오셨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죽으실 아무 이유가 없으신 분이 죽으셨습니다. 죽지 않으셔도 되는 분이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유일한 대제사장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하여 만족을 얻으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청은 다 들으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만이 완전한 제사장입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잘 이해하십니다. 남자는 여자의 마음을 모릅니다. 이것 때문에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같은 경험이 아니면 이해가 안 됩니다. 가난한 사람의 사정은 부자가 모릅니다. 젊은이의 마음이 늙은이가 모릅니다. 말이 안 통하고 가슴이 통하지 않습니다. 전부 짝사랑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이해하시고자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몸으로 우리의 삶을 경험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배고픈 사정을 아십니다. 피곤해서 쉬셨습니다. 예수님은 썩은 성전을 보고 분노하셨습니다. 고독해하기도 하였습니다. 십자가에 죽이실 때 목마르다고 하였습니다. 피가 빠지니 목이 마릅니다. 링거도 대부분 물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셔서 혼자 일하며 가난하였습니다. 우리를 대신하여 시험을 당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성욕이 있고 명예욕이 있고 식욕이 있었습니다. 똑같은 &#47897망이 있었습니다. 욕망이 없다면 시험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사십일 금식을 하자 돌이 빵으로 보였습니다. 그러자 마귀가 돌을 떡으로 먹으라고 합니다. 배고픔의 시험을 당하였습니다. 명예에 대해서 시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거절하였습니다. 볼트만은 고난 받을 수 없는 하나님은 사랑할 수 없는 하나님이라고 하였습니다. 고난당하지 않은 사람은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가 없으십니다. 대제사장은 하나님 앞에 완전한 사람이어야합니다. 완전한 사람이 대제사장입니다. 예수님은 시험을 이겼습니다. 시험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시험은 당하였으나 죄가 없으므로 완전한 대제사장입니다. 사람을 이해하는 데서 완전하고 사람을 돕는데도 완전한 분이십니다. 죄인은 죽고 의인은 삽니다. 그러나 의인이 죽으면 죄인이 사는 것입니다.

(은혜의 보좌 앞에 나가야 함)

16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어야합니다. 이를 위해서 예수님이 주시는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가야합니다. 심판의 보좌 앞에 나가는 것이 아니라 은혜의 보좌 앞에 나가야합니다. 보혈로 죄사함을 주시는 시온소로 나가야합니다. 하나님은 시온소에서 우리를 만나주십니다. 십자가에서 우리를 만나주십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보좌에 나가야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피흘리신 대제사장 예수님을 의지하여 나갑니다. 나의 행위를 기초하여 나가서는 안 됩니다. 오직 주님의 긍휼과 사랑에 기초하여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복을 받지 못하는 것은 행위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대제사장에게 업혀서 나갑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예수님이 우리의 기도를 갖고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의지하여 당당하게 나가야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그곳에서 만나주십니다. 그곳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안식에 들어가기 위해서 힘쓸 것)

결론적으로 우리가 안식에 들어가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완고하게 하지 말고 끊임없이 회개해야합니다. 둘째는 이미 다 이루신 예수님을 믿고 믿음으로 나가야합니다 모든 것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믿음으로 살아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해야 합니다. 셋째는 우리의 대제사장 예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대제사장 예수님 앞에서 그의 긍휼과 사랑을 의지하여 나가야합니다. 주님의 보혈의 공로를 의지하여 나아가야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아멘!
히브리서 4장 강해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말씀 히브리서 4장 1-히브리서 4장 16
요절 히브리서 4장 11절
히브리서 4장 강해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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