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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역대하 25장 강해 겸손에서 교만으로 간 아마사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4-09-05 00:00:00
조회수 : 2,132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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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하 25장 강해 겸손에서 교만으로 간 아마샤
역대하 25장 1-역대하 25장 28
요절 역대하 25장 16 선지자가 아직 그에게 말할 때에 왕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너를 왕의 모사로 삼았느냐 그치라 어찌하여 맞으려 하느냐 하니 선지자가 그치며 이르되 왕이 이 일을 행하고 나의 경고를 듣지 아니하니 하나님이 왕을 멸하시기로 작정하신 줄 아노라 하였더라

처음처럼 이라는 소주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 소주를 좋아했습니다. 우리가 처음처럼 끝까지 가기가 쉽지 않아서 처음처럼 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 나오는 아마샤도 다른 왕들처럼 처음처럼 끝까지 가지 못하였습니다.

(정직하지만 온전하지는 않은 아마샤)

“1. 아마샤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이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이십구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여호앗단이요 예루살렘 사람이더라 2. 아마샤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기는 하였으나 온전한 마음으로 행하지 아니하였더라”

아마샤가 요아스를 이어서 왕이 되었을 때에, 그는 스물다섯 살이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스물아홉 해 동안 다스렸습니다. 그의 어머니 여호앗단은 예루살렘 사람입니다. 아마샤는 유다의 제9대 왕으로서 B.C. 796-767년까지 다스렸습니다. 모친 여호앗단은 여호야다가 요아스를 위해서 선택해준 두 명의 아내 중 한 사람이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24:3). 그녀가 예루살렘 사람이라는 사실은 여호야다가 요아스의 아내를 주의깊게 선택하였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아마샤는 주께서 보시기에 올바른 일을 하였으나, 마음을 다하여 하지는 않았습니다 아마샤의 통치에 대한 총평입니다. 그의 통치 성격은 병행 구절인 왕하 14:3,4에 더 상세히 나타납니다. 그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다윗 왕의 훌륭한 통치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의 통치는 부왕 요아스의 통치와 비슷하였습니다. 그 역시 산당을 제하지 않아 백성들이 그곳에서 제사를 드리고 분향하였습니다. 마음을 다하지 않았다는 것은 역대기 저자가 아마샤의 통치 후반부를 한마디로 평가한 표현입니다. 아마샤는 에돔 정벌시 세일 자손의 우상을 가져 왔고 그것을 숭배하였습니다(14절). 또한 그는 선지자의 권고도 듣지 아니하고 에돔 신들을 의지하였습니다(20절).

(아버지의 정의를 세운 아마샤)

“3. 그의 나라가 굳게 서매 그의 부왕을 죽인 신하들을 죽였으나 4. 그들의 자녀들은 죽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함이라 곧 여호와께서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자녀로 말미암아 아버지를 죽이지 말 것이요 아버지로 말미암아 자녀를 죽이지 말 것이라 오직 각 사람은 자기의 죄로 말미암아 죽을 것이니라 하셨더라”

아마사는 왕권을 확고하게 장악하였습니다. 나라가 굳게 섰다는 사실을 모반(謨叛) 세력(24:25)의 약화와 아마샤의 왕권 강화를 들 수 있습니다. 요아스를 죽인 신복들의 추종 세력과 왕위를 새로 이은 아마샤의 추종 세력 사이에는 정치적 갈등, 힘의 갈등이 존속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아마샤가 반대 세력을 처단할 수 있을 정도로 왕권이 강화되었습니다. 유다가 등을 돌린 에돔을 정벌할 수 있을 정도의 경제력과 군사력(5,6절)을 갖춘 단계로 들어서고 있습니다. 아마샤의 통치 성격이 여호와의 말씀에 근거하여 행할 수 있는 자리에까지 올라왔습니다. 그것은 모반자들의 재판과 용병 10만을 돌려 보낸 사실(10절)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아마사는 왕권을 강화한 뒤에, 부왕을 살해한 신하들을 처형하였습니다. 다윗도 기름부음 받은 사울 왕을 해(害)하였다고 말한 아말렉 소년을 처형하였습니다(삼하 1:5-15).
그러나 처형받은 신하의 자녀는 죽이지 않았으니, 그것은 그가 모세의 책, 곧 율법에 기록된 말씀을 따른 것이었습니다. 거기에는 "아버지가 자녀 대신에 처형받아서는 안 되고, 또 자녀가 아버지 대신에 처형받아서도 안 된다. 오직 각 사람은 자신이 지은 죄에 따라 처형받아야 한다" 하고 말씀하신 주의 명령이 있습니다. 동양에서는 모반자의 일가 전체까지 죽여 후환을 없애는 예가 다반사였습니다. 그러나 아마샤는 부왕을 살해한 자들만 처형하였습니다. 그는 복수심에 불타는 감정을 억누르고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사법적 처리를 하였습니다. 그는 모세 율법책에 기록한 대로 곧, 신 24:16에 근거하여 형을 집행하였습니다. 신명기의 이러한 법 정신, 즉 범법 행위에 대한 사법적 형집행 원리에 있어서 범법자만 처벌한다는 정신은 고등한 것입니다. 이러한 법 정신은 반(反)국가 단체에 가담, 협력하였을 경우 그 자녀와 친척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우리의 형법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위대합니다.

[북이스라엘 용병을 산 아마사]

“5. ○아마샤가 유다 사람들을 모으고 그 여러 족속을 따라 천부장들과 백부장들을 세우되 유다와 베냐민을 함께 그리하고 이십 세 이상으로 계수하여 창과 방패를 잡고 능히 전장에 나갈 만한 자 삼십만 명을 얻고 6. 또 은 백 달란트로 이스라엘 나라에서 큰 용사 십만 명을 고용하였더니”

아마샤는 에돔과 전쟁을 하기 위해서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 사람들을 그들이 소속된 가문별로 군대 단위로 조직하고, 그들 위에 군대 지휘관인 천부장과 백부장을 임명하여 세웠습니다. 아마샤는 지금까지 국내의 혼란으로 약화되었던 군대를 다시 강화하고 조직화하였습니다. 이 군대 조직에 편성된 사람들은 스무 살 이상 된 남자들로서, 모두 삼십만 명이나 되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창과 방패로 무장하고, 전쟁터에 나갈 수 있는 장정들이었습니다. 아사의 군대 58만(14:8)과 여호사밧의 군대 116만(17:14-19)에 비해 오히려 작은 수입니다. 이러한 병력의 감축으로 인하여 아마샤는 북이스라엘로부터 10만의 용병을 사들였습니다. 그는 은 백 달란트를 주고, 북왕국 이스라엘에서 용감한 군인 십만 명을 고용하였습니다. 1달란트는 약 34kg이므로 이것은 약 3.4톤에 해당되는 엄청난 양입니다.

(이스라엘 군대를 돌려보내라는 하나님의 사람)

“7. 어떤 하나님의 사람이 아마샤에게 나아와서 이르되 왕이여 이스라엘 군대를 왕과 함께 가게 하지 마옵소서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곧 온 에브라임 자손과 함께 하지 아니하시나니 8. 왕이 만일 가시거든 힘써 싸우소서 하나님이 왕을 적군 앞에 엎드러지게 하시리이다 하나님은 능히 돕기도 하시고 능히 패하게도 하시나이다 하니”

어떤 하나님의 사람이 아마샤에게 찾아갔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란 표현은 구약에서 선지자를 지칭하는 일반적인 칭호입니다. 모세(30:16신 33:1수 14:6대상 23:14스 3:2), 다윗(8:14느 12:24,36)을 가리켜 하나님의 사람이라 표현하기도 했으며, 삼손의 부친 마노아의 부인은 천사를 가리켜 그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삿 13:6,8). 그러나 위의 경우를 제외한 일반적인 용법에서는 선지자를 지칭합니다(삼상 2:279:6왕상12:2213:1,2617:18,2420:28왕하 1:9등).
하나님의 사람이 왕에게 가서 임금님께서는 이스라엘 군대를 데리고 가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아마샤에게 이스라엘의 용병을 에돔 정벌에 쓰지 말 것을 권고합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과 함께하지 아니하시기 때문입니다. 유다 왕 아비야가 북왕국 여로보암과 더불어 싸울 때 밝혀진 것으로(13:4-12) 유다가 하나님의 언약대로 다윗 왕통을 잇고 있으며 여호와를 예배하는 나라이지만, 북이스라엘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는 남유다와 함께 하시지만 북왕국 이스라엘, 곧 에브라임 자손과 함께 계시지 않는다고 합니다. 온 에브라임 자손은 북왕국 이스라엘에 대한 다른 표현입니다. 에브라임 지파는 북이스라엘의 최고 지파이기도 하고 그 영토도 북왕국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선지자들은 종종 북이스라엘을 가리켜 에브라임이라 호칭하였습니다(사9:917:328:3호 14:8).
하나님의 사람은 여기서 용병을 쓰지 않아야 할 두 번째 이유를 제시힙니다. 그것은 유다 군대가 용병 대신에 하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용병을 쓰는 것은 아마샤에게 믿음이 없음을 보이는 것입니다. 용병을 쓰면 하나님께서는 다른 신들보다 우월하심에도 불구하고 아마샤 왕을 대적 앞에 엎드러지게 하실 것입니다. 그런데도 임금님께서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여 북 이스라엘 군대와 함께 출동하여, 힘써 싸워 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마사 왕이 대적들 앞에서 엎어지게 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임금님을, 이기게도 하실 수 있고, 지게도 하실 수 있습니다 아마샤가 믿음의 결단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군대를 돌려보낸 아마사)

“9. 아마샤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이르되 내가 백 달란트를 이스라엘 군대에게 주었으니 어찌할까 하나님의 사람이 말하되 여호와께서 능히 이보다 많은 것을 왕에게 주실 수 있나이다 하니라 10. 아마샤가 이에 에브라임에서 자기에게 온 군대를 나누어 그들의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였더니 그 무리가 유다 사람에게 심히 노하여 분연히 고향으로 돌아갔더라”

아마샤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북 이스라엘 군인을 고용하느라고 지불한 은 백 달란트는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아마샤는 선지자의 충고를 따를 것인가? 아니면 눈앞의 손실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거역할 것인가 하는 일대 선택의 기로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마샤는 하나님께서 더 풍성히 채워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을 듣고 용기를 얻어 눈앞의 손실을 기꺼이 감수하기로 결단을 내렸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주께서는 그것보다 더 많은 것을 임금님께 주실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아마샤는 에브라임에서 온 군인들을 그들의 고향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그들은 유다 사람에 대하여 몹시 불쾌하게 생각하면서,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들이 분노한 것은 단순히 감정상의 문제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이 용병들은 비록 삯을 받고 고용되긴 했지만 그들이 전쟁에 참여할 때는 많은 전리품 등을 획득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을 얻지 못한 데 대하여 분노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유다 성읍을 노략하였습니다(13절).

(에돔과 전쟁에서 아마사의 승리)

“11. 아마샤가 담력을 내어 그의 백성을 거느리고 소금 골짜기에 이르러 세일 자손 만 명을 죽이고 12. 유다 자손이 또 만 명을 사로잡아 가지고 바위 꼭대기에 올라가서 거기서 밀쳐 내려뜨려서 그들의 온 몸이 부서지게 하였더라”

아마샤는 용기를 내어 출병하였습니다. 담력을 내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히트하자크는 강하게 되다라는 동사의 강조형 재귀으로서 스스로 강하게 되다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외형적인 군비(軍備)보강 등에 의하여 강해진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에 용기를 말합니다. 용기가 있어야 말씀에 순종할 수 있습니다. 유다의 군대는 소금 계곡에 이르러서, 세일 자손 만 명을 죽였습니다. 유다 군대가 또 별도로 만 명을 산 채로 붙잡아서, 절벽 뒤로 끌고 올라가, 그 밑으로 떨어뜨리자, 그들의 몸이 으스러졌습니다. 세일은 바위라는 뜻의 히브리어 셀라를 그대로 음역한 것입니다. 셀라는 에돔의 수도인 듯하며 오늘날의 페트라(Petra)로 추정됩니다. 이 지역은 곧에돔 사람들에 의해 재탈환되었습니다(28:17사 16:1,2암 1:11).

(북이스라엘 군대의 행패)

“13. 아마샤가 자기와 함께 전장에 나가지 못하게 하고 돌려보낸 군사들이 사마리아에서부터 벧호론까지 유다 성읍들을 약탈하고 사람 삼천 명을 죽이고 물건을 많이 노략하였더라”

그러는 동안에 아마샤가 전쟁에 함께 데리고 출동하지 않고 되돌려 보낸 북 이스라엘 군인들은, 사마리아와 벳호론 사이에 있는 유다의 여러 마을을 약탈하고, 사람을 삼천 명이나 죽이고, 물건도 많이 약탈하였습니다 아마샤가 돌려 보낸 용병들은 사마리아까지 되돌아갔으나 곧장 다시 돌이켜 사마리아와 벧호론 사이에 있는 유다 성읍들을 약탈하고 유다 사람 3천을 죽였습니다. 이때 이들은 아마샤가 자신들을 단순히 되돌려 보낸 것에 대해 앙심을 품고 이같은 약탈 행위를 저지른 것 같이 생각됩니다.

(에돔의 다신에게 경배한 아마사)

“14. ○아마샤가 에돔 사람들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세일 자손의 신들을 가져와서 자기의 신으로 세우고 그것들 앞에 경배하며 분향한지라”

아마샤는 에돔 사람들을 학살하고 돌아올 때에, 세일 자손의 신상들을 가져 와서 자기의 신으로 모시고, 그것들 앞에 경배하며 분향하였습니다. 세일 사람들이 섬기던 신들(엘로헤)이 다신(多神)임은 복수형 명사에서 알 수 있습니다. 결정적으로 그 명사의 서술 동사인 구원하다가 3인칭 복수형인 것을 보면, 분명히 신들이 광대함이나 웅장함을 나타내는 복수형이 아니고, 숫자적으로 복수인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아마샤는 유일하신 하나님만 섬기는 것이 아니라 다신을 섬겼습니다. 그는 에돔신이 자신을 도와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하나님도 섬기고 다른 여러신을 섬기면 더 많은 복을 받을 줄 생각한 것 같습니다.

(아마사를 책망한 선지자)

“15.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아마샤에게 진노하사 한 선지자를 그에게 보내시니 그가 이르되 저 백성의 신들이 그들의 백성을 왕의 손에서 능히 구원하지 못하였거늘 왕은 어찌하여 그 신들에게 구하나이까 하며”

이 일로 주께서 아마샤에게 크게 진노하셔서 예언자 한 사람을 보내시니, 그가 가서 아마샤에게 이 신들은 자기들을 섬기는 그 백성들을 임금님의 손에서 건져 내지도 못하였는데, 임금님께서는 이 신들에게 비시니 어찌 된 일이냐고 책망하였습니다. 아마샤는 다신교 배경에서 온 우상들을 하나님으로 여기고 섬기려 하였으므로 여호와의 진노를 면치 못합니다. 선지자는 오직 여호와만 구원자이시며, 그 신들은 자기 백성인 세일 사람들을 아마샤의 손에서조차 구원하지 못한 무능한 신임을 지적하면서 아마샤의 어리석음을 꼬집었습니다. 선지자는 아마샤를 여호와의 진노에서 구원하고자 하는 사랑에서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곧 바로 심판하지 않습니다. 하나남은 오래 참으십니다.

(선지자의 책망을 받지 않은 아마사)

“16. 선지자가 아직 그에게 말할 때에 왕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너를 왕의 모사로 삼았느냐 그치라 어찌하여 맞으려 하느냐 하니 선지자가 그치며 이르되 왕이 이 일을 행하고 나의 경고를 듣지 아니하니 하나님이 왕을 멸하시기로 작정하신 줄 아노라 하였더라”

예언자가 이렇게 말머리를 꺼내는데, 아마샤 왕이 그의 말을 가로막았습니다. 우리가 언제 선지자를 왕의 고문으로 추대하였느냐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왕과 그 신하들을 말합니다. 어찌하여 네가 우리의 일을 간섭하느냐고 책망합니다. 아마샤의 이 반박으로 볼 때 그는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조차 제대로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전쟁의 승리로 인하여 매우 교만해 있었습니다. 네가 맞아 죽지 않으려거든 그치라고 호통을 쳤습니다. 그러자 예언자는 이렇게 말하고 더 이상 그를 돕지 않았습니다. 진주를 개에게 줄 수 없습니다. 임금님께서 나의 충고를 받지 않고 이렇게 하시는 것을 보니, 하나님께서 임금님을 망하게 하시기로 결심하셨다는 것을 이제 알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에 선전포고한 아마사]

“17. ○유다 왕 아마샤가 상의하고 예후의 손자 여호아하스의 아들 이스라엘 왕 요아스에게 사신을 보내어 이르되 오라 서로 대면하자 한지라”

유다 왕 아마샤가 참모들과 함께 이스라엘에 대항할 모의를 하였습니다. 상의하고는 모사를 구하고, 충고를 받아들여라는 뜻입니다. 아마샤가 선지자의 경고를 거부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다른 신하들의 건의를 받아들였습니다. 예후의 손자요 여호아하스의 아들인 이스라엘의 요아스 왕에게 전령을 보내어서, 서로 직접 만나 힘을 겨루어 보자고 제안하였습니다 아마샤가 북이스라엘에게 보내는 정식 선전 포고문입니다. 그는 아람과 싸움에서 이기고 교만해져서 북이스라엘도 이긴다는 자신감이 넘쳤습니다. 그러나 북이스라엘과 싸우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아마샤는 북이스라엘 용병들의 약탈에 대하여 만족할 만한 대가를 요구하기 위하여 전쟁을 선포함으로써 상대를 위축시키려 했습니다.

(전쟁을 그만 두라는 요아스)

“18.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유다 왕 아마샤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레바논 가시나무가 레바논 백향목에게 전갈을 보내어 이르기를 네 딸을 내 아들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라 하였더니 레바논 들짐승이 지나가다가 그 가시나무를 짓밟았느니라 19. 네가 에돔 사람들을 쳤다고 네 마음이 교만하여 자긍하는도다 네 궁에나 있으라 어찌하여 화를 자초하여 너와 유다가 함께 망하고자 하느냐 하나”

이스라엘의 요아스 왕은 유다의 아마샤 왕에게 사람을 보내어서 회답하였습니다. 레바논의 가시나무가 레바논의 백향목에게 전갈을 보내어서 백향목의 딸을 며느리로 달라고 청혼하였습니다. 레바논의 들짐승이 이를 듣고 지나가다가 그 가시나무를 짓밟은 일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요아스가 아마사의 무분별한 행동을 지적하기 위한 풍자적인 표현법으로 보입니다. 이 우화는 아마샤를 모욕하기 위한 것으로서, 요담의 비유와 유사합니다(삿 9:7이하). 여기서 풍자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나무들을 의인화시켰습니다. 가시나무는 유다를, 백향목은 이스라엘을 지칭하여 요아스는 결코 아마샤가 이스라엘과 대등한 관계로 대면할 수 없다고 비꼬아 말했습니다. 교만한 자는 가시나무와 같고 겸손한 자는 백향목과 같습니다. 들짐승들은 요아스를 말합니다. 너는 에돔을 쳐부수었다는 것을 스스로 대견스럽게 여겨 자랑하면서, 건방지게 우쭐댄다고 합니다. 차라리 네 궁전에 그대로 머물러 있으면 별 탈이 없을 터라고 합니다. 어찌하여 너는 네 자신과 유다를 함께 멸망시킬 화근을 스스로 불러들이느냐고 하였습니다. 어찌하여 화를 자취(自取)하여는 24:20의 스스로 형통치 못하게 하느냐라는 말과 의미가 동일합니다. 순리에 어긋나게 교만하여 욕심을 부리는 자들은 결국 파멸할 수 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파멸한 사람의 공통점입니다. 요아스가 아마샤를 따끔하게 충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아스는 전쟁을 하지 말고 돌아가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다시 한번 요아스를 통하여 아마샤가 파멸에 이르지 않도록 돕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심판을 받기 전에 심판을 피할 수 있는 여러번의 기회를 주십니다. 그러나 교만한 사람은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북이스라엘왕의 말을 듣지 않은 아마샤)

“20. 아마샤가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이라 그들이 에돔 신들에게 구하였으므로 그 대적의 손에 넘기려 하심이더라”

요아스가 이렇게 말하여도 아마샤는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교만하였습니다. 여기에는 하나님께서 하신 주권이 있습니다. 유다 사람들이 에돔 신들의 뜻을 물으므로, 하나님께서 유다 사람들을 여호아스의 손에 넘겨 주시려고, 아마샤의 마음을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이 말씀은 역대기 저자가 14-16절과 연관지어 언급한 해석으로 보입니다. 교만하여져서 마음이 굳어진 아마샤는 결국 선지자의 예언(16절)대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마샤에게 완고한 마음을 넣어 주셨다는 의미가 아니라 내버려 두셨다는 뜻입니다. 아마샤의 교만과 완고한 마음을 그대로 방치해 두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마샤의 마음 위에서 선하진 뜻을 갖고 일하고 계십니다. 따라서 마음이 완악해진 그는 선지자의 예언(16절)대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전쟁에 패한 이미새)

“21.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올라와서 유다 왕 아마샤와 더불어 유다의 벧세메스에서 대면하였더니 22. 유다가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한지라”

이스라엘의 요아스 왕이 올라와서, 유다의 아마샤 왕을 맞아 유다의 벳세메스에서 대치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다 군대는 이스라엘 군대에게 패하여, 뿔뿔이 흩어져 자기들의 집으로 도망가고 말았습니다. 모든 병사들이 놀라 자기 집으로 도망갔습니다. 이처럼 아마샤의 군대는 전의(戰意)를 상실하여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예루살렘을 약탈한 이스라엘왕 요아스)

“23.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벧세메스에서 여호아하스의 손자 요아스의 아들 유다 왕 아마샤를 사로잡고 예루살렘에 이르러 예루살렘 성벽을 에브라임 문에서부터 성 모퉁이 문까지 사백 규빗을 헐고 24. 또 하나님의 전 안에서 오벧에돔이 지키는 모든 금은과 그릇과 왕궁의 재물을 빼앗고 또 사람들을 볼모로 잡아 가지고 사마리아로 돌아갔더라”

이스라엘의 요아스 왕은 벳세메스에서 아하시야의 손자요 요아스의 아들인 유다의 아마샤 왕을 사로잡아서, 예루살렘으로 들어 왔습니다. 요아스가 유다의 중심부를 치기에 가장 유리한 고지이면서 유다땅이었던 벧세메스에 올라왔다는 것은 이 전쟁이 북왕국에 의해 먼저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왕 요아스는 선전 포고문을 받은 뒤 일단 유다 왕 아마샤에게 경고하였습니다. 아마샤가 자긍하고 있는 틈을 타 기습적으로 공격하였을 것입니다. 그는 예루살렘 성벽을, 에브라임 문에서부터 성 모퉁이 문에 이르기까지 사백 자 길이의 성벽을 허물어 버렸습니다. 에브라임 문은 베냐민 문이라고 불리우기도 하는데 예루살렘 성읍 북쪽에서 에브라임 땅으로 통하는 통로였습니다. 성모퉁이 문은 옛 성벽의 북서쪽 모퉁이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다메섹으로 통했습니다. 이처럼 북이스라엘의 군대는 북쪽으로 향해 있는 모든 벽을 헐어 버리고, 유다 왕 아마샤를 포로로 잡았습니다. 유다는 이스라엘의 세력권에 들어가고 만 것입니다.
그는 또 하나님의 성전 안에서 오벳에돔이 지키고 있는 모든 금과 은과 그릇들을 약탈하고, 왕궁의 보물 창고를 약탈하고, 사람까지 볼모로 잡아서 사마리아로 돌아갔습니다. 역대기 저자는 하나님의 전(殿) 안에 있는 모든 금은과 기명들을 ''오벧에돔이 지키던 것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대상 26:15에 따르면, 오벧에돔의 가문은 레위 지파로서 성전의 곳간을 지키는 책임을 맡았습니다. 이스라엘 왕 요아스는 아마샤를 잡아갔다가 다시 본국으로 돌려보내는 대신 다른 사람들을 볼모로 잡아간 것 같습니다. 볼모로 잡혀간 사람들은 왕의 자녀들이거나 왕족일 가능성이 큽니다. 이와같이 이스라엘이 유다 사람들을 볼모로 잡아간 것은 유다가 다시는 이스라엘에 대해 대항하지 못하게 하고, 또 이스라엘이 유다의 내정(內政)을 간섭하겠다는 뜻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아마샤의 죽음)

“25. ○이스라엘 왕 요아하스의 아들 요아스가 죽은 후에도 유다 왕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가 십오 년 간 생존하였더라 26. 아마샤의 이 외의 처음부터 끝까지의 행적은 유다와 이스라엘 열왕기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유다의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 왕은 이스라엘의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 왕이 죽은 뒤에도 열다섯 해를 더 살았습니다. 이스라엘에게 패한 후유증으로, 아마샤의 세력은 크게 약화되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죽은 이후에도 그 세력은 회복되지 못하였고, 온갖 음모의 수난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 15년의 기간은 아마 그에게 있어 형벌과 같았을 것입니다. 아마샤가 다스리던 기간에 일어난 다른 사건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유다와 이스라엘의 열왕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왕하 14:18에는 유다 왕 역대지략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주요하게 사용된 역사 자료들로 보이며, 이 두 자료는 서로 깊은 연관이 있을 것입니다.

(아마사에 대한 반역)

“27. 아마샤가 돌아서서 여호와를 버린 후로부터 예루살렘에서 무리가 그를 반역하였으므로 그가 라기스로 도망하였더니 반역한 무리가 사람을 라기스로 따라 보내어 그를 거기서 죽이게 하고 28. 그의 시체를 말에 실어다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유다 성읍에 장사하였더라”

아마샤가 주를 따르다가 등지고 돌아선 뒤에, 예루살렘에서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아마샤가 돌이켜 여호와를 버린 것은 무리들이 아마샤를 대항하여 모반을 일으킨 근본적인 원인입니다. 모반이 곧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역대기 기자는 말합니다. 여기서 모반한 무리가 누구인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아마 요아스 통치 말기부터 아마샤의 통치 때까지 유다를 집권한 방백들에 대항하여 반감을 품고 있던 무리들일 것으로 추측됩니다. 여호야다가 죽은 이후 그 세력을 상실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24:15-19)과 의로운 백성들이 바로 그 무리들인데 이들은 유다를 제사장의 나라로 만들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일찍이 16세로 부친과 함께 통치를 시작한 어린 웃시야를 완전한 통치자로 옹립시키고자 했을 것입니다. 아마샤가 이렇게 궁지에 몰리게 된 것은 교만해져서 이스라엘과 전쟁을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역대기 기자는 이것을 아마샤가 여호와를 버린 시기와 연결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샤는 라기스로 도망하였습니다. 라기스는 예루살렘의 남서쪽 약 40km지점에 위치한 요새로서 여로보암 때로부터 애굽인을 막는 중요한 기지로 사용되어 왔습니다(11:9). 아마샤가 이곳으로 피신한 것은 이미 위태해진 왕권을 회복시키려는 시도 때문이었거나, 아니면 다급한 곤경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그는 자객에게 살해됨으로써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반란을 일으킨 사람들은 라기스에까지 사람을 보내어, 거기에서 그를 죽였습니다. 그의 주검을 말에 싣고 와서, 그의 조상들과 함께 다윗 성에 장사하였습니다. 앗수르 왕 에살핫돈의 비문에는 유다 왕 므낫세가 유다 성읍의 왕이라고 표기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유다 성읍이 바로 남유다의 수도였던 예루살렘을 가리키고, 후대에는 다윗성이라는 이름 대신 유다 성읍이라고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아마사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말을 듣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아마사를 사랑하여 선지자를 통해서 이스라엘왕 요아스를 통해서 반복하여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교만해져서 결국 말씀을 듣지 않다가 망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위 사람들을 통하여 말씀하실 때 잘 듣고 순종해야합니다. 승리한 후에 겸손해야합니다. 아멘!
역대하 25장 강해 겸손에서 교만으로 간 아마샤
역대하 25장 1-역대하 25장 28
요절 역대하 25장 16 선지자가 아직 그에게 말할 때에 왕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너를 왕의 모사로 삼았느냐 그치라 어찌하여 맞으려 하느냐 하니 선지자가 그치며 이르되 왕이 이 일을 행하고 나의 경고를 듣지 아니하니 하나님이 왕을 멸하시기로 작정하신 줄 아노라 하였더라
역대하 25장 강해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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