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22장 강해 아달랴와 여호사브앗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4-08-29 00:00:00
조회수 : 2,924
역대하 22장 강해 아달랴와 여호사브앗
역대하 22장 1-역대하 22장 12
요절 역대하 22장 10. ○아하시야의 어머니 아달랴가 자기의 아들이 죽은 것을 보고 일어나 유다 집의 왕국의 씨를 모두 진멸하였으나
 
공산주의는 독재보다 무섭습니다. 여호람의 뒤를 이어 아하시야가 왕이 됩니다. 아하시야 시대에는 아달랴라는 여인으로 인하여 국권이 급속도로 쇠퇴합니다. 아하시야가 죽은 후에 아달랴가 자신의 손자인 다윗의 씨를 죽이고 자신이 왕이 됩니다. 시누이인 여호사브앗이 다윗의 씨를 살립니다.  여기에는 아달랴와 여호사브앗의 두명의 여인의 대조된 삶이 나옵니다.
 
[아하시야를 왕으로 삼은 예루살렘 주민들]
“1. 예루살렘 주민이 여호람의 막내 아들 아하시야에게 왕위를 계승하게 하였으니 이는 전에 아라비아 사람들과 함께 와서 진을 치던 부대가 그의 모든 형들을 죽였음이라 그러므로 유다 왕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야가 왕이 되었더라” 
예루살렘 사람들이 여호람의 막내 아들 아하시야를 왕으로 삼아, 왕위를 잇게 하였습니다.  본절의 병행 구절인 왕하 8:24에는 아하시야가 어떻게 왕위에 오르게 되었는지 자세히 설명되어 있지 않습니다.  본절에는 아하시야의 즉위 사건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설명되어 있습니다. 왕위 계승과 관련하여 혼선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하시야의 모친인 아달랴가 왕권을 장악하려는 어떤 계략에 대해 예루살렘 거민이 반대하고 아하시야를 적극적으로 왕위에 계승시켰습니다. 이 추론의 타당성은 아하시야가 일년을 통치하고 죽자 그녀가 유다 왕가의 씨를 진멸시키려한 사실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10절).  전에 아라비아 사람들과 함께 진영에 쳐들어 왔던 침략군들에게 아하시야의 형들이 다 학살당하였으므로, 여호람의 막내 아들 아하시야가 유다의 왕이 되었습니다.  여호람의 아들들이 진영에 있을 때 아라비아 사람과 블레셋 사람의 침입으로 인해 죽임을 당하엿습니다. 역대하 21:17에 있는 여호람의 아들들의 죽음에 관한 기록의 보충적 설명입니다.
 
(아들 아하시야를 범죄케 한 아달랴)
 
“2. 아하시야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사십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일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아달랴요 오므리의 손녀더라” 
아하시야가 왕이 되었을 때에,  아하시야는, 스물두 살이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한 해밖에 다스리지 못하였습니다. 그의 어머니 아달랴는 오므리의 손녀입니다. 왕하 8:26에는 아하시야가 위에 나아갈 때를 나이 이십 이세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본절에는 사십 이세로 나타납니다.  필사자가 이십을 사십으로 오기한 것으로 대부분의 주석 학자들에 의해 주장합니다.  아하시야의 부친 여호람이 40세에 죽었는데(21:5) 1년을 다스리고 사망한 그의 아들이 42세일 수는 없습니다.
 오므리의 손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딸이란 뜻입니다. 혹자는 아달랴를 오므리의 딸이요, 아합의 누이(21:6과 비교하라)라고 주장합니다. 여기서 아달랴를 오므리의 딸이라고 한 것은 오므리가 아달랴의 부친이기 때문이 아니라 오므리 왕가의 시조(始祖)이기 때문입니다. 오므리는 아합의 부친이며 아달랴는 그의 손녀가 됩니다. 이런 때에 히브리어는 손녀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어머니에게 꾐을 받은 아하시야)
“3. 아하시야도 아합의 집 길로 행하였으니 이는 그의 어머니가 꾀어 악을 행하게 하였음이라 4. 그의 아버지가 죽은 후에 그가 패망하게 하는 아합의 집의 가르침을 따라 여호와 보시기에 아합의 집 같이 악을 행하였더라” 
아하시야 역시 아합 가문의 길을 따라 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의 어머니 아달랴가 그를 꾀어, 악을 행하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아달랴는 남편 여호람이 죄를 짓게 하고 아들 아하시야가 죄를 짓게 하였습니다. 악모악처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아달랴는 유다 가문을 다 병들여 놓았습니다. 아달랴가 왕후로서 모든 세력을 잡고 그의 아들 아하시야를 조종한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달랴는 배후에서 그의 아들 아하시야를 조정하여 유다를 더욱 바알 숭배로 몰아가려 했습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이방여인이 유다의 심장부,  곧 왕궁에 들어옴으로 유다는 그 존재의 성격을 상실하여 가고 있었습니다.  유다는 하나님의 소유요, 제사장의 나라요, 거룩한 백성의 성격을 거의 상실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아하시야는 아합 가문을 따라 주 앞에서 악을 행하였습니다.  아하시야는 아버지가 죽은 다음에 아합 가문 사람들의 의견을 따라 유다를 다스렸습니다. 그는 아합의 딸 아달랴의 영향으로 북이스라엘을 따라서 살았습니다. 그리다가, 그는 그만 망하고 말았습니다. 아달랴가 아합 종교의 전파를 위해 종교 지도자들을 아하시야에게 보냈음을 암시합니다.
  여기서 역대기 저자는 여호사밧이 아합의 집과 연혼한 것이(18:1) 얼마나 악한가 하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아하시야는 다윗의 통치 성격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윗이 세운 모범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을 철저히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로 규정지어 가려 했던 통치 성격을 본받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배교의 자리로 떨어진 아합의 통치를 본받았습니다. 비록 그가 형식상으로는 철저히 언약의 나라의 왕으로 군림했다 할지라도 실질적으로는 이방의 왕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왕 요람을 문병간 아하시야)
 
“5. 아하시야가 아합의 집의 가르침을 따라 이스라엘 왕 아합의 아들 요람과 함께 길르앗 라못으로 가서 아람 왕 하사엘과 더불어 싸우더니 아람 사람들이 요람을 상하게 한지라 6. 요람이 아람 왕 하사엘과 싸울 때에 라마에서 맞아 상한 것을 치료하려 하여 이스르엘로 돌아왔더라 아합의 아들 요람이 병이 있으므로 유다 왕 여호람의 아들 아사랴가 이스르엘에 내려가서 방문하였더라” 
아하시야는 아합 가문 사람들의 의견을 따라, 이스라엘의 아합의 아들 요람 왕과 함께 시리아의 하사엘 왕을 맞아 싸우려고, 길르앗의 라못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는 외가가 있는 북이스라엘과 친하게 지냈습니다. 요단 동편에 위치한 길르앗 라못은 레위 지파의 므라리 자손에게 분배된 성읍입니다(수 21:38). 이 성읍은 남북 분열 이후 아람의 지배하에 들어갔습니다. B.C. 853년에 아합은 그곳을 되찾으려고 여호사밧과 연합 공격을 했지만 도리어 전사(戰死)하고 말았습니다(18:34). 몇년 후에 아합의 둘째 아들 요람이 그 성읍을 재탈환했지만 다시 하사엘의 공격으로 부상을 입고 퇴각했습니다.
 이 시기에도 남왕국과 북왕국의 동맹은 사돈관계를 맺었으므로 여전히 유지되고 있어서 군사 행동을 양국이 함께 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하사엘은 벤하닷 왕 수하에 있던 장군이었으나 역모를 꾀하여 그 왕을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었습니다. 그가 왕이 된 과정과 그의 잔인함에 대한 선지자 엘리사의 예언이 왕하 8:12,13에 나옵니다. 그 싸움에서 시리아 군인이 아합의 아들 요람을 쳐서 부상을 입혔습니다. 아람 사람들을 70인역에서는 궁수들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요람은 여호람의 단축형입니다. 따라서 여호사밧의 아들 유다 왕 여호람과 아합의 아들 요람은 동명이인인 셈입니다. 그 이름의 뜻은 여호와는 존귀하시다입니다. 성경에서는 이 두 이름이 서로 바뀌어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왕 요람은, 시리아의 하사엘 왕과 라마에서 싸울 때에 입은 부상을 치료하려고, 이스르엘로 돌아갔습니다. 이스르엘은 므깃도와 벱세안 사이 에스드렐론 평지 동쪽 끝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곳에도 북왕국의 왕족이 거처하고 있는 왕궁이 있었습니다. 그 때에 아합의 아들 요람이 병이 들었으므로, 유다의 여호람 왕의 아들 아하시야가 문병을 하려고 이스르엘로 내려갔습니다. 유다 왕 여호람의 아들 아사랴는 아하시야를 잘못 표기한 것입니다. 유다 왕 아하시야가 이스라엘 왕 요람을 방문할 때 길르앗 라못(라마)에서 이스르엘로 내려갔는지, 아니면 예루살렘에서 이스르엘로 내려갔는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왕하 9:14,15에 따르면, 요람이 이스르엘로 치료하러간 이후에도 이스라엘 군대는 예후와 함께 여전히 라마에서 하사엘과 접전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때 아하시야가 계속 하사엘과 싸우다가 요람을 방문한 것인지 아니면 예루살렘으로 갔다가 방문한 것인지 본문의 문맥을 통해서는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 내려가서 라는 단어가 예루살렘에서 이스르엘로 내려간 것을 가리킨다고 보는 학자가 있습니다. 어쨌든 아하시야의 이 방문은 아합의 집과 관련있는 모든 왕족, 즉 유다와 이스라엘의 두 왕족이 예후의 손에 참형을 당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여기에는 여호와를 배반한 자들을 벌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7a절).
 
(아합의 집을 멸한 예후)
 
“7. ○아하시야가 요람에게 가므로 해를 입었으니 이는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이라 아하시야가 갔다가 요람과 함께 나가서 님시의 아들 예후를 맞았으니 그는 여호와께서 기름을 부으시고 아합의 집을 멸하게 하신 자이더라”. 
아하시야는 요람에게 문병을 갔다가 오히려 해를 입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일을 그렇게 꾸미셨기 때문입니다. 해를 받았으니는 파멸, 몰락이라는 뜻입니다.  아하시야의 패망은 하나님의 엄위로운 심판이었습니다. 반면에 열왕기 기자는 이 사건을 신학적 해석을 가하지 않고 단지 역사적 사실로 보고합니다(왕하 9:27). 그러나 역대기 기자는 그 사건을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으로 언급함으로써 하나님의 심판임을 지적합니다.
 임시는 히브리어 원문에 의하면 님시입니다. 왕하 9:2에는 예후를님시의 손자 여호사밧의 아들 예후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원문을 직역하면 님시의 아들 여호사밧의 아들 예후로 번역됩니다. 그러므로 예후는 적어도 님시의 손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아하시야가 병문안을 하러 갔다가, 뜻밖에도 요람과 함께 나가서, 님시의 아들 예후와 맞닥뜨리게 되었습니다. 예후는 이미 엘리야를 통하여 주께서 아합 왕가를 멸망시키시려고 기름 부어 뽑아 세운 사람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아합의 집을 멸하시기 위해 어떻게 예후에게 기름을 부으셨는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왕하 9:1-10에 나옵니다. 역대기 저자는 이 사실을 본문과 같이 간략하게 기록하면서 아하시야도 아합의 집안 식구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예후가 아하시야를 죽인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다음의 8,9절에서는 주로 아하시야와 그의 가족들에 대한 예후의 심판적 행위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하시야를 죽인 예후)
 
“8. 예후로 하여금 아합의 집을 심판하게 하실 때에 유다 방백들과 아하시야의 형제들의 아들들 곧 아하시야를 섬기는 자들을 만나서 죽였고 9. 아하시야는 사마리아에 숨었더니 예후가 찾으매 무리가 그를 예후에게로 잡아가서 죽이고 이르기를 그는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던 여호사밧의 아들이라 하고 장사하였더라 이에 아하시야의 집이 약하여 왕위를 힘으로 지키지 못하게 되니라”
 예후는 아합 왕가를 징벌하면서, 유다 군대의 지휘관들과, 아하시야를 섬기는 조카들까지, 닥치는 대로 죽였습니다. 아하시야의 형제의 아들들은 형제의 아들들(KJV, RSV, NASB, 한글개역), 조카(JB, 공동변역), 친척의 아들들(NIV), 친척(NEB) 등으로 번역됩니다. 보수주의 학자들은 이 아하시야의 형제의 아들들과 그 병행 구절인 왕하10:13,14의 아하시야의 형제들을 일단 동일인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이 두 구절을 이해하는 과정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카일은 열왕기하의 형제를 아하시야의 조카와 사촌으로 이해합니다. 아하시야의 실제 형제들은 침략자들에 의해 이미 살해되었기 때문에(1절21:17), 형제라는 말은 조카와 사촌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열왕기하와 역대하의 기록을 조화시키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 조카와 사촌이 과연 아하시야 왕을 섬길 수 있는(8절) 성년이었느냐 하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학자들은 본절의 형제가 NIV에서처럼 친척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역대기 저자가 열왕기 저자와는 달리 아하시야의 형제들 대신에 아하시야의 형제의 아들들로 바꾼 것은 그가 열왕기하에는 없는 사실 곧 아하시야의 형제들이 죽었다는 점(1절21:17)을 더 언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언어의 오해를 없애고 정확히 제시하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하시야의 형제의 아들들이란 아하시야의 조카와 사촌일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은 아하시야의 친척의 아들들, 곧 그 왕을 섬길 수 있는 성년이 된 친척의 아들들을 뜻하게 됩니다. 따라서 열왕기하의 기록도 이렇게 이해되어야 합니다. 
아하시야는 사마리아로 가서 숨어 있었으나, 예후가 그를 찾아 나섰습니다. 마침 예후의 부하들이 아하시야를 붙잡아 예후에게로 데리고 왔습니다. 예후가 그를 죽였습니다. 열왕기하에는 역대기하와는 달리 아하시야의 죽음이 아하시야의 형제의 아들들의 죽음보다 먼저 나옵니다(왕하 9:2710:13,17). 이 차이는 역대기의 짧은 언급이 시간상의 배열보다 주제상의 배열을 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역대기 기자는 아하시야의 형제의 아들들의 죽음을 먼저 언급하고, 다음으로 아하시야의 죽음과 그의 장례와 왕권의 약화를 차례로 언급하려는 목적 때문에 그 순서를 뒤바꾸었을 것입니다. 아하시야는 사마리아에 숨었더니...잡아다가 죽였다는 이 언급은 열왕기하의 언급(9:27,28)과 모순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역대기 저자는 열왕기하에 빠진 기사를 더 첨가시켜 보충하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이런 전제 하에 아하시야의 최후 행적을 추적한다면 다음과 같이 재구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하시야는 예후의 추격을 받고 사마리아로 대피하였으나 곧 예후의 부하들에게 발각, 체포되어 예후에게로 이송되어 오던 중, 이블르암 근처 구르 비탈에서 탈출을 시도하다가 큰 상처를 입고 므깃도로 도망하였으나 그곳에서 절명(絶命)하였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마음을 다하여 주님만 찾은 여호사밧의 아들이었다 하면서, 그를 묻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나니, 아하시야의 가문에는 왕국을 지켜 갈 만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하시야의 뒤를 이을 마땅한 계승자가 없었습니다. 다른 한편, 아하시야의 모친 아달랴가 정권을 완전히 장악하는 것을 막을 만한 힘이 아하시야의 집에 없었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다윗의 씨를 말린 유다 여왕 아달랴]
“10. ○아하시야의 어머니 아달랴가 자기의 아들이 죽은 것을 보고 일어나 유다 집의 왕국의 씨를 모두 진멸하였으나” 
아하시야의 어머니 아달랴는 자기 아들이 죽는 것을 보고, 유다 집의 왕족을 다 죽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아하시야의 아들 곧 손자들의 씨를 말렸습니다. 다윗왕가는 꺼져가는 등불처럼 되었습니다. 왕의 씨라고 하면 왕위를 계승할 자격이 있는 아하시야의 모든 아들들과 친척들을 포함합니다. 이 때에 아하시야의 친척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이전에 아라비아 사람들(21:16,17)과 예후(본장)에 의해서 모두 살해되었기 때문입니다. 22세에 왕위에 오른 아하시야에게서 난 자식들은 모두 대단히 어렸을 것입니다. 아달랴는 그녀의 친정 아합의 집이 이미 멸망한 상태에서 정권을 잡지 않으면 자신이 죽임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자신의 손자 손녀까지도 모두 살해하였을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유다 백성들은 어린 왕자 하나를 왕위에 옹위하여 아달랴를 몰아내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요아스가 7살 되던 해, 즉 그로부터 7년 후 제사장 여호야다에 의해서 유다 왕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다윗의 집과 맺으신 언약(21:7삼하 7:14-16)에 신실함을 보이신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요아스를 구한 고모 여호사브앗)
 
“11. 왕의 딸 여호사브앗이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왕자들이 죽임을 당하는 중에서 몰래 빼내어 그와 그의 유모를 침실에 숨겨 아달랴를 피하게 하였으므로 아달랴가 그를 죽이지 못하였더라 여호사브앗은 여호람 왕의 딸이요 아하시야의 누이요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내이더라” 
그러나 왕자들이 살해되는 가운데서도, 왕의 딸 여호세바가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몰래 빼내어, 유모와 함께 침실에 숨겼습니다. 다윗의 꺼져가는 등불을 꺼지지 않게 보호하였습니다. 여호사브앗은 여호람의 딸이며 아하시야의 누이입니다. 아달랴가 아닌 다른 아내에게서 난 딸일 것입니다. 그녀는 아하시야 집의 멸망을 막기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왕궁에서 요아스를 훔쳐내어 유모와 함께 성전에 있는 침실에 숨겼습니다. 여호세바는 아달랴에게서 화를 면하게 하였으므로, 아달랴가 요아스는 죽이지 못하였습니다. 여호세바는 여호람 왕의 딸이요, 여호야다 제사장의 아내입니다. 요아스의 고모입니다. 아하시야에게는 누이가 되는 사람입니다 제사장 여호야다가 대상 6장의 족보 가운데도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이전까지는 그렇게 세력 있는 제사장은 아니었다고 판단됩니다. 그러나 여호사브앗(열왕기에는 여호세바)으로 인하여 여호야다는 후에 세력을 얻게 되었고 아달랴를 몰아내고 왕위를 복원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맡게 됨으로써 새로운 세력으로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게 됩니다.
 
(6년간 숨어산 요아스)
 
“12. 요아스가 그들과 함께 하나님의 전에 육 년을 숨어 있는 동안에 아달랴가 나라를 다스렸더라”
요아스는 그들과 함께 여섯 해 동안을 하나님의 성전에 숨어 지냈으며, 그 동안에, 나라는 아달랴가 다스렸습니다. 요아스가 왕위에 오를 때 나이가 7세였습니다. 따라서 요아스가 태어난 지 몇 개월이 안되어 아달랴의 살륙 사건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하여 우리는 모세 시대의 유아 살해 사건(출 1:15-22)과 예수 시대의 유아 살해 사건(마 2:13-18)을 연상하게 됩니다. 이처럼 다윗의 씨에 대한 무서운 사단의 공격 속에서도 그 씨를 보존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은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신실한 언약의 이행인 것입니다.
역대하 22장 강해 아달랴와 여호사브앗
역대하 22장 1-역대하 22장 12
요절 역대하 22장 10. ○아하시야의 어머니 아달랴가 자기의 아들이 죽은 것을 보고 일어나 유다 집의 왕국의 씨를 모두 진멸하였으나
역대하 22장 강해 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