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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역대하 22장 강해 아달랴와 여호사브앗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4-08-29 00:00:00
조회수 : 2,924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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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하&nbsp22장 강해 아달랴와 여호사브앗
역대하&nbsp22장&nbsp1-역대하&nbsp22장&nbsp12
요절 역대하&nbsp22장&nbsp10.&nbsp○아하시야의 어머니 아달랴가 자기의 아들이 죽은 것을 보고 일어나 유다 집의 왕국의 씨를 모두 진멸하였으나
&nbsp
공산주의는 독재보다 무섭습니다.&nbsp여호람의 뒤를 이어 아하시야가 왕이 됩니다.&nbsp아하시야 시대에는 아달랴라는 여인으로 인하여 국권이 급속도로 쇠퇴합니다.&nbsp아하시야가 죽은 후에 아달랴가 자신의 손자인 다윗의 씨를 죽이고 자신이 왕이 됩니다. 시누이인 여호사브앗이 다윗의 씨를 살립니다.&nbsp 여기에는 아달랴와 여호사브앗의 두명의 여인의 대조된 삶이 나옵니다.
&nbsp
[아하시야를 왕으로 삼은 예루살렘 주민들]

“1.&nbsp예루살렘 주민이 여호람의 막내 아들 아하시야에게 왕위를 계승하게 하였으니 이는 전에 아라비아 사람들과 함께 와서 진을 치던 부대가 그의 모든 형들을 죽였음이라 그러므로 유다 왕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야가 왕이 되었더라”&nbsp

예루살렘 사람들이 여호람의 막내 아들 아하시야를 왕으로 삼아,&nbsp왕위를 잇게 하였습니다. &nbsp본절의 병행 구절인 왕하&nbsp8:24에는 아하시야가 어떻게 왕위에 오르게 되었는지 자세히 설명되어 있지 않습니다. &nbsp본절에는 아하시야의 즉위 사건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설명되어 있습니다. 왕위 계승과 관련하여 혼선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nbsp아하시야의 모친인 아달랴가 왕권을 장악하려는 어떤 계략에 대해 예루살렘 거민이 반대하고 아하시야를 적극적으로 왕위에 계승시켰습니다. 이 추론의 타당성은 아하시야가 일년을 통치하고 죽자 그녀가 유다 왕가의 씨를 진멸시키려한 사실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10절).&nbsp 전에 아라비아 사람들과 함께 진영에 쳐들어 왔던 침략군들에게 아하시야의 형들이 다 학살당하였으므로,&nbsp여호람의 막내 아들 아하시야가 유다의 왕이 되었습니다. &nbsp여호람의 아들들이 진영에 있을 때 아라비아 사람과 블레셋 사람의 침입으로 인해 죽임을 당하엿습니다.&nbsp역대하&nbsp21:17에 있는 여호람의 아들들의 죽음에 관한 기록의 보충적 설명입니다.
&nbsp
(아들 아하시야를 범죄케 한 아달랴)
&nbsp
“2.&nbsp아하시야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사십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일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아달랴요 오므리의 손녀더라”&nbsp

아하시야가 왕이 되었을 때에,&nbsp 아하시야는,&nbsp스물두 살이었습니다.&nbsp그는 예루살렘에서 한 해밖에 다스리지 못하였습니다.&nbsp그의 어머니 아달랴는 오므리의 손녀입니다. 왕하&nbsp8:26에는 아하시야가 위에 나아갈 때를 나이 이십 이세라고 했습니다.&nbsp그런데 본절에는&nbsp사십 이세로 나타납니다.&nbsp 필사자가&nbsp이십을&nbsp사십으로 오기한 것으로 대부분의 주석 학자들에 의해 주장합니다.&nbsp 아하시야의 부친 여호람이&nbsp40세에 죽었는데(21:5) 1년을 다스리고 사망한 그의 아들이&nbsp42세일 수는 없습니다.
&nbsp오므리의 손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nbsp딸이란 뜻입니다. 혹자는 아달랴를 오므리의 딸이요,&nbsp아합의 누이(21:6과 비교하라)라고 주장합니다.&nbsp여기서 아달랴를 오므리의 딸이라고 한 것은 오므리가 아달랴의 부친이기 때문이 아니라 오므리 왕가의 시조(始祖)이기 때문입니다.&nbsp오므리는 아합의 부친이며 아달랴는 그의 손녀가 됩니다.&nbsp이런 때에 히브리어는&nbsp손녀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nbsp
(어머니에게 꾐을 받은 아하시야)

“3.&nbsp아하시야도 아합의 집 길로 행하였으니 이는 그의 어머니가 꾀어 악을 행하게 하였음이라&nbsp4.&nbsp그의 아버지가 죽은 후에 그가 패망하게 하는 아합의 집의 가르침을 따라 여호와 보시기에 아합의 집 같이 악을 행하였더라”&nbsp

아하시야 역시 아합 가문의 길을 따라 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nbsp그의 어머니 아달랴가 그를 꾀어,&nbsp악을 행하게 하였기 때문입니다.&nbsp아달랴는 남편 여호람이 죄를 짓게 하고 아들 아하시야가 죄를 짓게 하였습니다.&nbsp악모악처의 대표적인 예입니다.&nbsp아달랴는 유다 가문을 다 병들여 놓았습니다.&nbsp아달랴가 왕후로서 모든 세력을 잡고 그의 아들 아하시야를 조종한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nbsp아달랴는 배후에서 그의 아들 아하시야를 조정하여 유다를 더욱 바알 숭배로 몰아가려 했습니다.&nbsp우상을 숭배하는 이방여인이 유다의 심장부,&nbsp 곧 왕궁에 들어옴으로 유다는 그 존재의 성격을 상실하여 가고 있었습니다. &nbsp유다는 하나님의 소유요,&nbsp제사장의 나라요,&nbsp거룩한 백성의 성격을 거의 상실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nbsp아하시야는 아합 가문을 따라 주 앞에서 악을 행하였습니다.&nbsp 아하시야는 아버지가 죽은 다음에 아합 가문 사람들의 의견을 따라 유다를 다스렸습니다.&nbsp그는 아합의 딸 아달랴의 영향으로 북이스라엘을 따라서 살았습니다.&nbsp그리다가,&nbsp그는 그만 망하고 말았습니다. 아달랴가 아합 종교의 전파를 위해 종교 지도자들을 아하시야에게 보냈음을 암시합니다.
&nbsp 여기서 역대기 저자는 여호사밧이 아합의 집과 연혼한 것이(18:1)&nbsp얼마나 악한가 하는 사실을 강조합니다.&nbsp아하시야는 다윗의 통치 성격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nbsp그는 다윗이 세운 모범을 따르지 않았습니다.&nbsp하나님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을 철저히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로 규정지어 가려 했던 통치 성격을 본받지 않았습니다.&nbsp도리어 배교의 자리로 떨어진 아합의 통치를 본받았습니다.&nbsp비록 그가 형식상으로는 철저히 언약의 나라의 왕으로 군림했다 할지라도 실질적으로는 이방의 왕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왕 요람을 문병간 아하시야)
&nbsp
“5.&nbsp아하시야가 아합의 집의 가르침을 따라 이스라엘 왕 아합의 아들 요람과 함께 길르앗 라못으로 가서 아람 왕 하사엘과 더불어 싸우더니 아람 사람들이 요람을 상하게 한지라&nbsp6.&nbsp요람이 아람 왕 하사엘과 싸울 때에 라마에서 맞아 상한 것을 치료하려 하여 이스르엘로 돌아왔더라 아합의 아들 요람이 병이 있으므로 유다 왕 여호람의 아들 아사랴가 이스르엘에 내려가서 방문하였더라”&nbsp

아하시야는 아합 가문 사람들의 의견을 따라,&nbsp이스라엘의 아합의 아들 요람 왕과 함께 시리아의 하사엘 왕을 맞아 싸우려고,&nbsp길르앗의 라못으로 올라갔습니다.&nbsp그는 외가가 있는 북이스라엘과 친하게 지냈습니다.&nbsp요단 동편에 위치한 길르앗 라못은 레위 지파의 므라리 자손에게 분배된 성읍입니다(수&nbsp21:38).&nbsp이 성읍은 남북 분열 이후 아람의 지배하에 들어갔습니다. B.C. 853년에 아합은 그곳을 되찾으려고 여호사밧과 연합 공격을 했지만 도리어 전사(戰死)하고 말았습니다(18:34).&nbsp몇년 후에 아합의 둘째 아들 요람이 그 성읍을 재탈환했지만 다시 하사엘의 공격으로 부상을 입고 퇴각했습니다.
&nbsp이 시기에도 남왕국과 북왕국의 동맹은 사돈관계를 맺었으므로 여전히 유지되고 있어서 군사 행동을 양국이 함께 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nbsp하사엘은 벤하닷 왕 수하에 있던 장군이었으나 역모를 꾀하여 그 왕을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었습니다.&nbsp그가 왕이 된 과정과 그의 잔인함에 대한 선지자 엘리사의 예언이 왕하&nbsp8:12,13에 나옵니다.&nbsp그 싸움에서 시리아 군인이 아합의 아들 요람을 쳐서 부상을 입혔습니다.&nbsp아람 사람들을 70인역에서는&nbsp궁수들이라고 번역했습니다.&nbsp요람은&nbsp여호람의 단축형입니다.&nbsp따라서 여호사밧의 아들 유다 왕 여호람과 아합의 아들 요람은 동명이인인 셈입니다.&nbsp그 이름의 뜻은 여호와는 존귀하시다입니다.&nbsp성경에서는 이 두 이름이 서로 바뀌어 나타나기도 합니다.
&nbsp이스라엘왕 요람은,&nbsp시리아의 하사엘 왕과 라마에서 싸울 때에 입은 부상을 치료하려고,&nbsp이스르엘로 돌아갔습니다.&nbsp이스르엘은 므깃도와 벱세안&nbsp사이 에스드렐론&nbsp평지 동쪽 끝에 위치해 있습니다.&nbsp이곳에도 북왕국의 왕족이 거처하고 있는 왕궁이 있었습니다.&nbsp그 때에 아합의 아들 요람이 병이 들었으므로,&nbsp유다의 여호람 왕의 아들 아하시야가 문병을 하려고 이스르엘로 내려갔습니다.&nbsp유다 왕 여호람의 아들 아사랴는&nbsp아하시야를 잘못 표기한 것입니다.&nbsp유다 왕 아하시야가 이스라엘 왕 요람을 방문할 때 길르앗 라못(라마)에서 이스르엘로 내려갔는지,&nbsp아니면 예루살렘에서 이스르엘로 내려갔는지는 분명치 않습니다.&nbsp왕하&nbsp9:14,15에 따르면,&nbsp요람이 이스르엘로 치료하러간 이후에도 이스라엘 군대는 예후와 함께 여전히 라마에서 하사엘과 접전을 벌이고 있었습니다.&nbsp그러나 이때 아하시야가 계속 하사엘과 싸우다가 요람을 방문한 것인지 아니면 예루살렘으로 갔다가 방문한 것인지 본문의 문맥을 통해서는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 내려가서 라는 단어가 예루살렘에서 이스르엘로 내려간 것을 가리킨다고 보는 학자가 있습니다.&nbsp어쨌든 아하시야의 이 방문은 아합의 집과 관련있는 모든 왕족,&nbsp즉 유다와 이스라엘의 두 왕족이 예후의 손에 참형을 당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nbsp여기에는 여호와를 배반한 자들을 벌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7a절).
&nbsp
(아합의 집을 멸한 예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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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nbsp○아하시야가 요람에게 가므로 해를 입었으니 이는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이라 아하시야가 갔다가 요람과 함께 나가서 님시의 아들 예후를 맞았으니 그는 여호와께서 기름을 부으시고 아합의 집을 멸하게 하신 자이더라”.&nbsp

아하시야는 요람에게 문병을 갔다가 오히려 해를 입게 되었습니다.&nbsp이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일을 그렇게 꾸미셨기 때문입니다.&nbsp해를 받았으니는&nbsp파멸, 몰락이라는 뜻입니다.&nbsp 아하시야의 패망은 하나님의 엄위로운 심판이었습니다.&nbsp반면에 열왕기 기자는 이 사건을 신학적 해석을 가하지 않고 단지 역사적 사실로 보고합니다(왕하&nbsp9:27).&nbsp그러나 역대기 기자는 그 사건을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으로 언급함으로써 하나님의 심판임을 지적합니다.
&nbsp임시는 히브리어 원문에 의하면&nbsp님시입니다.&nbsp왕하&nbsp9:2에는 예후를님시의 손자 여호사밧의 아들 예후로 기록하고 있습니다.&nbsp그러나 이 원문을 직역하면&nbsp님시의 아들 여호사밧의 아들 예후로 번역됩니다.&nbsp그러므로 예후는 적어도 님시의 손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nbsp아하시야가 병문안을 하러 갔다가,&nbsp뜻밖에도 요람과 함께 나가서,&nbsp님시의 아들 예후와 맞닥뜨리게 되었습니다.&nbsp예후는 이미 엘리야를 통하여 주께서 아합 왕가를 멸망시키시려고 기름 부어 뽑아 세운 사람이었습니다.&nbsp여호와께서&nbsp아합의 집을 멸하시기 위해 어떻게&nbsp예후에게 기름을 부으셨는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왕하&nbsp9:1-10에 나옵니다.&nbsp역대기 저자는 이 사실을 본문과 같이 간략하게 기록하면서 아하시야도 아합의 집안 식구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nbsp따라서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예후가 아하시야를 죽인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nbsp다음의&nbsp8,9절에서는 주로 아하시야와 그의 가족들에 대한 예후의 심판적 행위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하시야를 죽인 예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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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nbsp예후로 하여금 아합의 집을 심판하게 하실 때에 유다 방백들과 아하시야의 형제들의 아들들 곧 아하시야를 섬기는 자들을 만나서 죽였고&nbsp9.&nbsp아하시야는 사마리아에 숨었더니 예후가 찾으매 무리가 그를 예후에게로 잡아가서 죽이고 이르기를 그는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던 여호사밧의 아들이라 하고 장사하였더라 이에 아하시야의 집이 약하여 왕위를 힘으로 지키지 못하게 되니라”

&nbsp예후는 아합 왕가를 징벌하면서,&nbsp유다 군대의 지휘관들과,&nbsp아하시야를 섬기는 조카들까지,&nbsp닥치는 대로 죽였습니다.&nbsp아하시야의 형제의 아들들은&nbsp형제의 아들들(KJV, RSV, NASB,&nbsp한글개역), 조카(JB,&nbsp공동변역), 친척의 아들들(NIV), 친척(NEB)&nbsp등으로 번역됩니다.&nbsp보수주의 학자들은 이&nbsp아하시야의 형제의 아들들과 그 병행 구절인 왕하10:13,14의&nbsp아하시야의 형제들을 일단 동일인으로 이해합니다.&nbsp그러나 이 두 구절을 이해하는 과정에는 차이가 있습니다.&nbsp카일은 열왕기하의&nbsp형제를 아하시야의 조카와 사촌으로 이해합니다.&nbsp아하시야의 실제 형제들은 침략자들에 의해 이미 살해되었기 때문에(1절21:17), 형제라는 말은 조카와 사촌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nbsp그리하여 열왕기하와 역대하의 기록을 조화시키려고 했습니다.&nbsp그러나 이러한 해석에도 문제가 있습니다.&nbsp그것은 그 조카와 사촌이 과연 아하시야 왕을 섬길 수 있는(8절)&nbsp성년이었느냐 하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nbsp그러므로 다른 학자들은 본절의&nbsp형제가&nbspNIV에서처럼&nbsp친척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nbsp그리고 역대기 저자가 열왕기 저자와는 달리&nbsp아하시야의 형제들&nbsp대신에&nbsp아하시야의 형제의 아들들로 바꾼 것은 그가 열왕기하에는 없는 사실 곧 아하시야의 형제들이 죽었다는 점(1절21:17)을 더 언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nbsp다시 말하면,&nbsp언어의 오해를 없애고 정확히 제시하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nbsp그러므로&nbsp아하시야의 형제의 아들들이란 아하시야의 조카와 사촌일 필요가 없습니다.&nbsp그들은 아하시야의 친척의 아들들,&nbsp곧 그 왕을 섬길 수 있는 성년이 된 친척의 아들들을 뜻하게 됩니다.&nbsp따라서 열왕기하의 기록도 이렇게 이해되어야 합니다.&nbsp
아하시야는 사마리아로 가서 숨어 있었으나,&nbsp예후가 그를 찾아 나섰습니다.&nbsp마침 예후의 부하들이 아하시야를 붙잡아 예후에게로 데리고 왔습니다.&nbsp예후가 그를 죽였습니다.&nbsp열왕기하에는 역대기하와는 달리 아하시야의 죽음이&nbsp아하시야의 형제의 아들들의 죽음보다 먼저 나옵니다(왕하&nbsp9:2710:13,17).&nbsp이 차이는 역대기의 짧은 언급이 시간상의 배열보다 주제상의 배열을 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nbsp역대기 기자는 아하시야의 형제의 아들들의 죽음을 먼저 언급하고,&nbsp다음으로 아하시야의 죽음과 그의 장례와 왕권의 약화를 차례로 언급하려는 목적 때문에 그 순서를 뒤바꾸었을 것입니다.&nbsp아하시야는 사마리아에 숨었더니...잡아다가 죽였다는 이 언급은 열왕기하의 언급(9:27,28)과 모순되는 것으로 보입니다.&nbsp그러나 역대기 저자는 열왕기하에 빠진 기사를 더 첨가시켜 보충하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nbsp이런 전제 하에 아하시야의 최후 행적을 추적한다면 다음과 같이 재구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nbsp아하시야는 예후의 추격을 받고 사마리아로 대피하였으나 곧 예후의 부하들에게 발각,&nbsp체포되어 예후에게로 이송되어 오던 중,&nbsp이블르암 근처 구르 비탈에서 탈출을 시도하다가 큰 상처를 입고 므깃도로 도망하였으나 그곳에서 절명(絶命)하였습니다.
&nbsp사람들은&nbsp그가 마음을 다하여 주님만 찾은 여호사밧의 아들이었다 하면서,&nbsp그를 묻어 주었습니다.&nbsp그리고 나니,&nbsp아하시야의 가문에는 왕국을 지켜 갈 만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nbsp아하시야의 뒤를 이을 마땅한 계승자가 없었습니다.&nbsp다른 한편,&nbsp아하시야의 모친 아달랴가 정권을 완전히 장악하는 것을 막을 만한 힘이 아하시야의 집에 없었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다윗의 씨를 말린 유다 여왕 아달랴]

“10.&nbsp○아하시야의 어머니 아달랴가 자기의 아들이 죽은 것을 보고 일어나 유다 집의 왕국의 씨를 모두 진멸하였으나”&nbsp

아하시야의 어머니 아달랴는 자기 아들이 죽는 것을 보고,&nbsp유다 집의 왕족을 다 죽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아하시야의 아들 곧 손자들의 씨를 말렸습니다.&nbsp다윗왕가는 꺼져가는 등불처럼 되었습니다. 왕의 씨라고 하면 왕위를 계승할 자격이 있는 아하시야의 모든 아들들과 친척들을 포함합니다.&nbsp이 때에 아하시야의 친척들은 거의 없었습니다.&nbsp이전에 아라비아 사람들(21:16,17)과 예후(본장)에 의해서 모두 살해되었기 때문입니다. 22세에 왕위에 오른 아하시야에게서 난 자식들은 모두 대단히 어렸을 것입니다.&nbsp아달랴는 그녀의 친정 아합의 집이 이미 멸망한 상태에서 정권을 잡지 않으면 자신이 죽임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자신의 손자 손녀까지도 모두 살해하였을 것입니다.&nbsp만일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유다 백성들은 어린 왕자 하나를 왕위에 옹위하여 아달랴를 몰아내고 말았을 것입니다.&nbsp그러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요아스가&nbsp7살 되던 해,&nbsp즉 그로부터&nbsp7년 후 제사장 여호야다에 의해서 유다 왕이 되었습니다.&nbsp이것은 다윗의 집과 맺으신 언약(21:7삼하&nbsp7:14-16)에 신실함을 보이신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nbsp
(요아스를 구한 고모 여호사브앗)
&nbsp
“11.&nbsp왕의 딸 여호사브앗이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왕자들이 죽임을 당하는 중에서 몰래 빼내어 그와 그의 유모를 침실에 숨겨 아달랴를 피하게 하였으므로 아달랴가 그를 죽이지 못하였더라 여호사브앗은 여호람 왕의 딸이요 아하시야의 누이요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내이더라”&nbsp

그러나 왕자들이 살해되는 가운데서도,&nbsp왕의 딸 여호세바가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몰래 빼내어,&nbsp유모와 함께 침실에 숨겼습니다.&nbsp다윗의 꺼져가는 등불을 꺼지지 않게 보호하였습니다.&nbsp여호사브앗은 여호람의 딸이며 아하시야의 누이입니다.&nbsp아달랴가 아닌 다른 아내에게서 난 딸일 것입니다.&nbsp그녀는 아하시야 집의 멸망을 막기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왕궁에서 요아스를 훔쳐내어 유모와 함께 성전에 있는 침실에 숨겼습니다.&nbsp여호세바는 아달랴에게서 화를 면하게 하였으므로,&nbsp아달랴가 요아스는 죽이지 못하였습니다.&nbsp여호세바는 여호람 왕의 딸이요,&nbsp여호야다 제사장의 아내입니다.&nbsp요아스의 고모입니다.&nbsp아하시야에게는 누이가 되는 사람입니다 제사장 여호야다가 대상&nbsp6장의 족보 가운데도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이전까지는 그렇게 세력 있는 제사장은 아니었다고 판단됩니다.&nbsp그러나 여호사브앗(열왕기에는&nbsp여호세바)으로 인하여 여호야다는 후에 세력을 얻게 되었고 아달랴를 몰아내고 왕위를 복원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맡게 됨으로써 새로운 세력으로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게 됩니다.
&nbsp
(6년간 숨어산 요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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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nbsp요아스가 그들과 함께 하나님의 전에 육 년을 숨어 있는 동안에 아달랴가 나라를 다스렸더라”

요아스는 그들과 함께 여섯 해 동안을 하나님의 성전에 숨어 지냈으며,&nbsp그 동안에,&nbsp나라는 아달랴가 다스렸습니다.&nbsp요아스가 왕위에 오를 때 나이가&nbsp7세였습니다.&nbsp따라서 요아스가 태어난 지 몇 개월이 안되어 아달랴의 살륙 사건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nbsp이를 통하여 우리는 모세 시대의 유아 살해 사건(출&nbsp1:15-22)과 예수 시대의 유아 살해 사건(마&nbsp2:13-18)을 연상하게 됩니다.&nbsp이처럼 다윗의 씨에 대한 무서운 사단의 공격 속에서도 그 씨를 보존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은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신실한 언약의 이행인 것입니다.
역대하&nbsp22장 강해 아달랴와 여호사브앗
역대하&nbsp22장&nbsp1-역대하&nbsp22장&nbsp12
요절 역대하&nbsp22장&nbsp10.&nbsp○아하시야의 어머니 아달랴가 자기의 아들이 죽은 것을 보고 일어나 유다 집의 왕국의 씨를 모두 진멸하였으나
역대하&nbsp22장 강해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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