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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역대하 21장 강해 며느리를 잘못얻은 비극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4-07-30 00:00:00
조회수 : 1,879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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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하 21장 며느리를 잘못 얻은 여호사밧의 비극
역대하 21장 1-역대하 21장 20
역대하 21장 6. 그가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행하여 아합의 집과 같이 하였으니 이는 아합의 딸이 그의 아내가 되었음이라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남유다는 다윗과 솔로몬의 영광이 이어졌습니다. 여호사밧은 유다의 제이전성기로 여겨졌습니다.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 왕은 그 영광을 다 말아먹었습니다. 8년동안 통치하였는데 다시 일어서지 못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북이스라엘보다 위대했던 유다가 한 순간에 망하게 되었습니다. 그 아내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

“1. 여호사밧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누우매 그의 조상들과 함께 다윗 성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여호람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2.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의 아우들 아사랴와 여히엘과 스가랴와 아사랴와 미가엘과 스바댜는 다 유다 왕 여호사밧의 아들들이라”

여호사밧이 세상을 떠나서 그의 조상에게로 갔습니다. 여호사밧은 다윗 성에 있는 왕실 묘지에 장사하였습니다. 그의 아들 여호람이 그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습니다. 여호사밧의 죽음은 여호람의 통치 헹위와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여호람은 여호사밧이 사망하기 4년전부터 그의 부친과 함께 섭정을 해왔습니다. 여호사밧이 장사되던 해인 B.C. 848년에 드디어 단독 통치자가 되었습니다. 이제 여호람은 그의 왕권을 강화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에게는 아우들이 있었습니다. 그의 아우 아사랴와 여히엘과 스가랴와 아사랴와 미가엘과 스바댜는, 모두 이스라엘의 여호사밧 왕이 낳은 아들이었습니다.

(아우를 죽인 여호람)

“3. 그의 아버지가 그들에게는 은금과 보물과 유다 견고한 성읍들을 선물로 후히 주었고 여호람은 장자이므로 왕위를 주었더니 4. 여호람이 그의 아버지의 왕국을 다스리게 되어 세력을 얻은 후에 그의 모든 아우들과 이스라엘 방백들 중 몇 사람을 칼로 죽였더라 5. 여호람이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삼십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팔 년 동안 다스리니라”

여호람의 아버지 여호사밧은, 여호람의 아우들에게는, 은 금과 보물과 요새화된 유다의 성읍들을 후하게 선물로 주었습니다. 왕위 계승 문제로 다투지 않도록 미리 손을 썼습니다. 여호람은 맏아들이었으므로 왕의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여호람은 여호사밧과는 달리 북 이스라엘 왕들처럼 폭군이었습니다. 여호람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라 세력을 굳히자, 자기 아우들을 모두 죽였습니다. 이들은 선한 아우들이라고 한 것을 보면 이들은 반역의 의도가 없었습니다.
여호람의 아우들이 여호람과 그의 아내의 우상숭배를 반대하였습니다. 그들은 여호람의 폭군적인 통치를 경계했습니다. 여호람은 아우들을 그의 정적(政敵)으로 간주하고 살해했습니다. 이스라엘 지도자들 얼마도 아우 죽이는 것을 반대하자 함께 칼로 쳐죽였습니다. 이스라엘 원로들을 죽였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여덟 해 동안 다스렸습니다. 여호람이 왕이 되었을 때에, 그는 서른두 살이었습니다. 이 팔 년은 공동 섭정을 한 것을 제한 그의 통치 기간(B.C. 848-841)을 말합니다. 이 통치 기간은 유다에 있어서 비극 그 자체였습니다. 그가 무고한 자의 피를 흘리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소비한 시간과 심한 중병으로 오년간 앓은 것을 제외하면 그의 통치 기간은 그리 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내 아달랴의 영향을 받은 여호람)

“6. 그가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행하여 아합의 집과 같이 하였으니 이는 아합의 딸이 그의 아내가 되었음이라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여호람은 아합의 딸을 아달랴를 아내로 맞아들였기 때문에, 아합 가문이 한 대로 곧 이스라엘 왕들이 간 길을 갔습니다. 여호람은 선왕들인 아사와 여호사밧의 선한 길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도리어 북이스라엘 왕들처럼 행했습니다. 그 원인으로서 역대기 저자는 여호사밧의 결혼 동맹(18:1)의 실책을 지적합니다. 아합의 딸 아달랴가 여호람의 아내가 되어 그 남편에게 많은 영향력을 끼쳐 다윗 왕가를 아합 왕가와 같이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여호람의 잘못된 혼인으로 말미암아 유다 왕국의 통치의 반신정 통치를 합니다. 참된 혼인의 중요성을 배웁니다. 이와 같이 하여, 그는 주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였습니다. 여기서부터 남유다의 부귀가 사라집니다.

(다윗의 등불을 지키신 하나님)

“7. 여호와께서 다윗의 집을 멸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셨음은 이전에 다윗과 더불어 언약을 세우시고 또 다윗과 그의 자손에게 항상 등불을 주겠다고 말씀하셨음이더라”

여호람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습니다. 그는 유다를 우상 숭배하는 나라로 이끌어 갔습니다. 그럼에도 블구하고 주께서는 다윗 왕가를 멸망시키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윗과 세우신 언약(삼하 7:13-16) 때문에 다윗의집 곧 다윗 왕가를 멸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여호람에게는 형벌을 내리시겠지만, 그 왕위는 그의 아들로 이어져 다윗 왕가를 계속 존속시킵니다. 다윗 왕조가 북이스라엘의 여러 단명한 왕조들과 다른 점입니다. 일찍이 주께서 그의 종 다윗과 언약을 맺으시고, 다윗과 그 자손에게서 왕조의 등불이 영원히 꺼지지 않게 하시겠다고 하신 약속을 지키십니다. 역대기 저자는 등불을 생명의 상징으로 사용합니다(욥 18:6잠 13:924:20). 다윗의 씨는 예수님이 오시기까지 결코 소멸되지 않습니다.

(에돔에서 탈출한 여호람)

“8. ○여호람 때에 에돔이 배반하여 유다의 지배하에서 벗어나 자기 위에 왕을 세우므로 9. 여호람이 지휘관들과 모든 병거를 거느리고 출정하였더니 밤에 일어나서 자기를 에워싼 에돔 사람과 그 병거의 지휘관들을 쳤더라”

유다의 국력은 급속히 약하여졌습니다. 여호람이 다스리는 동안에, 에돔이 유다에 반기를 들고, 자기들의 왕을 따로 세웠습니다 에돔은 다윗에 의해 유다의 속국이 되었다가(삼하8:13, 14 대상 18:11-13) 솔로몬의 통치 이후 잠시 독립을 했습니다(왕상 11:14 이하). 그러나 여호사밧 때에 다시 유다의 속국이 되었다가(20:36의 에시온게벨은 에돔 땅이다) 여호람 때에 다시 유다의 지배하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유다는 여호람의 악정으로 인하여 세력이 급격히 약화되었으며 대외적으로도 그 면모를 크게 잃었습니다. 에돔이 여호사밧에 의해 파견된 유다의 섭정왕(왕상 22:47)을 죽이고 그들이 스스로 왕을 세웠습니다. 여호람은 지휘관들을 이끌고 병거대를 모두 출동시켰다가, 병거대 지휘관들과 함께 에돔 군대에게 포위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여로람은 밤에 에돔 군대의 포위망을 뚫고 빠져 나왔습니다. 여호람은 에돔을 쳐서 다시 속국으로 삼기 위하여 출정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도리어 에돔 군사에 포위되어 사경에 몰리게 되었던 바람에 일어나서 에돔의 포위망이 약한 곳올 쳐서 가까스로 살아났습니다. 이러한 여호람의 대 에돔전 실패가 에돔으로 하여금 완전한 독립을 얻도록 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여호와를 버린 여호람)

“10. 이와 같이 에돔이 배반하여 유다의 지배하에서 벗어났더니 오늘까지 그러하였으며 그 때에 립나도 배반하여 여호람의 지배 하에서 벗어났으니 이는 그가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렸음이더라”

이와 같이, 에돔은 유다에 반역하여 그 지배를 벗어나 오늘날까지 이르렀고, 립나 성읍이 반란을 일으켜 여호람의 지배에서 벗어난 것도 같은 무렵입니다. 립나는 블레셋 근방 유다의 남서 변방 지역에 있는 라기스에서 얼마 멀지 않은 도시입니다(수 15:42대상 6:57). 한때 이스라엘 제사장들의 도시이며 도피성(수 12:1521:13) 중의 하나였던 이곳이 유다를 배반한 이유는 이웃에 있던 블레셋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립나가 하나의 독립국이 되었는지 아니면 블레셋의 한 도시로 편입되었는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후에 앗수르의 산헤립이 립나를 장악한 일이 있습니다(왕하 19:8). 여호람이 이런 변을 당한 것은 주 조상의 하나님을 저버렸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를 버렸기 때문이라는 말은 열왕기에 없는 역대기 저자의 독자적인 주석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버리면 하나님도 우리를 버립니다. 마치 하나님이 내린 구원의 밧줄을 우리가 놓으면 하나님도 어쩔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유다가 속국들을 잃어버리게 된 것은 여호람의 배교 때문이라는 해석합니다. 그의 왕후 아달랴가 유입한 이방 종교를 유다에 퍼뜨린 것이 근본 원입니다.

(산당을 세워 미혹하게 한 여호람)

“11. ○여호람이 또 유다 여러 산에 산당을 세워 예루살렘 주민으로 음행하게 하고 또 유다를 미혹하게 하였으므로”

여호람은 또 유다의 여러 산에 산당을 세우고, 예루살렘 주민에게 음행을 하게 하였습니다. 음란하듯 우상을 섬기게 하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예젠은 직역하면 그가... 음행케 하였다 입니다. 이 예젠이라는 동사는 음행을 하다, 간음하다라는 뜻의 동사 사역형 능동으로서 영적 간음행위, 즉 우상 숭배 행위를 가리키는 데도 쓰입니다. 여기서는 우상숭배의 의미로 쓰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을 여호와와 결혼한 신부들로 생각했고. 다른 이방신들을 섬기는 것은 간음 행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유다 백성을 그릇된 길로 가게 하였습니다. 미혹케 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다흐는 밀다, 강요하다, 재촉하다라는 이 동사는 누구 누구를...하게끔 하였다는 뜻을 갖습니다. 여호람(북이스라엘의 요람과 같은 사람입니다)이 종교 정책에 따라 우상 숭배를 강요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정착한 후 초기에는 극히 일부에서만 바알 숭배가 행해졌으나, 북왕국 오므리 왕조패에 이르러 그것은 절정에 달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이세벨과 아합으로 인하여 북왕국 이스라엘에서는 바알 종교가 국교의 자리에 오를 정도로 극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본서 기자는 아합의 가문을 바알 종교의 대명사로 사용하고 있는 습니다.

(여호람의 죄를 책망)

“12. 선지자 엘리야가 여호람에게 글을 보내어 이르되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네가 네 아비 여호사밧의 길과 유다 왕 아사의 길로 행하지 아니하고 13. 오직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행하여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이 음행하게 하기를 아합의 집이 음행하듯 하며 또 네 아비 집에서 너보다 착한 아우들을 죽였으니”

그래서 엘리야 예언자가 그에게 다음과 같은 글을 보냈습니다. 그는 첫째 아합의 집을 좇아 우상을 숭배하며 백성으로 그 죄에 빠지도록 미혹하였습니다. 둘째 그 아우들은 살해했습니다. 이 실책에 대해 여호와께서 보응하신다는 것입니다. 임금님의 조상 다윗의 주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고 전합니다. 왕이 유다 왕 그 아버지 여호사밧이 가던 길과 네 할아버지 아사가 가던 길을 따르지 아니 하였습니다. 역대기에서는 여호사밧과 아사왕이 특별히 동일한 유형의 선왕(善王)으로 언급되고 있습니다(14:217:320:32) 여호람은 오히려 이스라엘 왕들이 걷던 길을 따라가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으로 음행을 하게 하기를, 마치 아합 왕가가 하듯 하였다고 합니다. 또 여호람은 네 아버지 집에서 난 자식들, 곧 너보다 착한 아우들을 죽였습니다 여호람이 그의 아우들을 죽인 것은 단지 그들의 소유가 탐나서가 아니라 그들이 그의 우상 숭배 정책에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로 그들이 선한 아우들로 평가되었습니다. 엘리야의 편지에 이 살륙 사건이 언급된 것으로 보아 이 편지가 여호사밧 사후에 보내졌습니다. 그는 엘리야의 책망을 듣고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유다와 여호람에 대한 심판예 예언)

“14. 여호와가 네 백성과 네 자녀들과 네 아내들과 네 모든 재물을 큰 재앙으로 치시리라 15. 또 너는 창자에 중병이 들고 그 병이 날로 중하여 창자가 빠져나오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이제 나 주가 네 백성과 네 자식들과 네 아내들과 네 모든 재산에 큰 재앙을 내리겠다고 하십니다. 재앙은 치명적인 타격, 전투에서의 학살, 역병의 학살입니다. 이 재앙이 그의 백성과 그의 자녀와 아내들과 그의 모든 재물에 내려질 것이므로 온역이나 역병과 같은 의미로 쓰여졌습니다. 따라서 이것은 16,17절에 기록된 블레셋의 침입에 의한 손상을 입습니다. 또 너는 창자에 중병이 들고, 그 병이 날로 더 악화되어, 마침내 창자가 빠져 나올 것이라고 하십니다. 여호람이 오랜 기간 동안 병을 앓다가 죽게 될 것입니다. 이 예언은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19절). 여호람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간에 맺은 시내산 언약에 충실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 신정 국가의 왕으로서 백성을 언약의 하나님만 경배하고 섬기도록 가르치고 모범을 보이고 통치를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방 종교를 도입하는 죄악을 범하였습니다. 그 결과 언약의 약속대로 그에게 저주가 임했습니다.

(아람의 침략)

“16.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들과 구스에서 가까운 아라비아 사람들의 마음을 격동시키사 여호람을 치게 하셨으므로 17. 그들이 올라와서 유다를 침략하여 왕궁의 모든 재물과 그의 아들들과 아내들을 탈취하였으므로 막내 아들 여호아하스 외에는 한 아들도 남지 아니하였더라”

주께서는 또 블레셋 사람과 에티오피아에 인접하여 사는 아라비아 사람들의 마음을 부추겨, 여호람을 치게 하셨습니다. 여호람의 부친 여호사밧에게 조공을 바쳐왔던 이 무리들이(17:11) 이제 유다를 침략하였습니다. 역대기서에서 이들의 존재는 주로 팔레스타인과 애굽사이의 접경 지대에 사는 유목민들로 나타납니다. 이들은 어느 때는 이스라엘 사방에서 여호와의 행하심을 목격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였습니다.(14:1420:29), 어느 때는 이스라엘을 징벌하기 위한 하나님을 지팡이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그들이 유다로 쳐올라 와서 왕궁의 모든 재물을 탈취하였습니다. 블레셋과 아라비아 사람들이 왕궁의 모든 재물과 여호람의 아들들과 아내들을 탈취하여 갔습니다. 여호람의 아들들과 아내들까지 잡아 갔습니다. 막내 아들 아하시야 이외에는 아무도 남겨 두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왕궁은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왕궁입니다. 예루살렘의 왕궁과 성전의 보물이 탈취당했다는 언급이 없고, 여호람의 아들들이 모두 살해되었기 때문입니다. 왕자들을 견고한 성읍에 거하게 했던 당시의 관습과 연관됩니다.(3절). 그들은 요새 성읍에 거하고 있었기 때문에 피살되고 말았습니다. 여호아하스는 22:1에서 아하시야로 불리워지고 있습니다. 이 두 이름은 여호와의 이름과 붙들다 라는 뜻의 동사 아하즈가 결합된 것으로서 두 이름의 의미는 동일합니다. 두 단어의 결합 순서가 뒤바뀌어진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러한 징계 가운데서도 한 아들을 남기신 것은 다윗의 집을 멸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셨기 때문이며 다윗의 언약에 대한 하나님의 성실함 때문입니다.

(여호람의 병)

“18. ○이 모든 일 후에 여호와께서 여호람을 치사 능히 고치지 못할 병이 그 창자에 들게 하셨으므로 19. 여러 날 후 이 년 만에 그의 창자가 그 병으로 말미암아 빠져나오매 그가 그 심한 병으로 죽으니 백성이 그들의 조상들에게 분향하던 것 같이 그에게 분향하지 아니하였으며”

이런 일이 있은 뒤에, 주께서 여호람에게 벌을 내리셔서, 그의 창자에 불치의 병이 들게 하셨습니다. 여호람의 병이 하나님의 형벌로 인한 것이기 때문에 궁중의 의사들이 그 병의 원인도 알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아무런 치료법도 통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이 불치의 병으로 꼬박 두 해를 앓다가, 창자가 몸 밖으로 빠져 나와서, 심한 통증에 시달리다가 죽고 말았습니다. 2년 동안의 병고(病苦)는 오히려 죽음 자체보다도 더큰 형벌로 여겨졌습니다. 그는 날마다 더 심해지는 병을 앓으면서 무고한 형제들을 죽인 죄의 대가를 받았습니다. 백성은, 왕들이 죽으면 으레 향을 피웠으나, 여호람에게만은 향을 피우지 않았습니다. 백성들은 이전의 왕이 죽을 때처럼 분향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여호람의 죽음에 애도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백성들이 여호람의 악정에 대하여 공개적인 불만을 표시하였습니다.

(여호람의 죽음)

“20. 여호람이 삼십이 세에 즉위하고 예루살렘에서 팔 년 동안 다스리다가 아끼는 자 없이 세상을 떠났으며 무리가 그를 다윗 성에 장사하였으나 열왕의 묘실에는 두지 아니하였더라”

여호람이 왕이 되었을 때에, 그는 서른두 살이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여덟 해 동안 다스리다가, 그의 죽음을 슬프게 여기는 사람도 없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끼는 자 없이란 구절을 많은 영역본과 주석 학자들이 애도하는 자 하나 없이 라는 뜻으로 나옵니다. 여호람이 죽었을때 백성들은 분향도, 애도도 하지 않았으며 그의 시체를 열왕의 묘실에 두지도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언약의 나라에서 왕으로서의 정당한 역할을 전혀 행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그를 다윗 성에 묻기는 하였으나, 왕실 묘지에 장사하지는 않았습니다.
역대하 21장 며느리를 잘못 얻은 여호사밧의 비극
역대하 21장 1-역대하 21장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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