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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역대하 24장 강해 여호야다와 요아스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4-09-03 00:00:00
조회수 : 2,133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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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하 24장 강해 여호야다와 요아스
역대하 24장 1-역대하 24장 27
요절 역대하 24장 1. 요아스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칠 세라 예루살렘에서 사십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시비아요 브엘세바 사람이더라

[여호야다가 사는 날 동안 정직히 행한 요아스]

“1. 요아스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칠 세라 예루살렘에서 사십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시비아요 브엘세바 사람이더라 2. 제사장 여호야다가 세상에 사는 모든 날에 요아스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으며 3. 여호야다가 그를 두 아내에게 장가들게 하였더니 자녀를 낳았더라”

요아스가 왕이 되었을 때에, 그는 일곱 살이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마흔 해 동안 다스렸습니다. 그의 어머니 시비아는 브엘세바 사람입니다. 여호야다 제사장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요아스가 주님 보시기에 올바르게 다스렸습니다. 여호야다는 왕에게 두 아내를 추천하였습니다. 왕과 그 두 아내 사이에서 아들 딸들이 태어났습니다. 요아스 왕의 통치 기간은 B.C. 835년부터 796년까지 40년 동안이며 여호야다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습니다.
그때까지 그로 하여금 정직한 왕으로 살게 하였던 힘은 바로 여호야다의 교훈(왕하 12:2)에서 비롯한 것이었습니다. 여호야다는 마치 요아스의 아버지된 심정으로 요아스에게 아내를 선택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여호야다가 왕의 아내를 선택함에 있어서 혼신의 정성을 다 쏟은 것은 요아스가 고아였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아달랴와 같은 악한 여인과의 결혼으로 인한 비극을 다시는 반복하지 않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윗 왕통을 이어감에 있어서 여성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직접 체험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야다는 그의 개혁 과정에서 왕가의 풍습에 일부일처제의 원리를 확고히 세우지는 못하였습니다. 왕족이 거의 멸절된 상태에서 자녀를 낳는 일이 요아스 왕에게는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요아스는 좋은 사람 여호야다를 스승으로 만났습니다. 여호야다는 영향력이 있었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죄와 타협지 않았습니다. 말씀에 절대순종하여 나라를 세우고자 하였습니다 목숨을 걸고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우리가 말씀에 절대성을 가질 때 영향력이 있습니다. 요아스는 좋은 영향력을 받았지만 여호야다가 죽은 후에 자립신앙을 갖지 못하였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좋은 영향력을 받아야하지만 또한 그것을 내것으로 만들어서 자립 신앙을 가져야합니다.

(여호와의 전을 보수에 뜻을 둔 요아스)

“4. ○그 후에 요아스가 여호와의 전을 보수할 뜻을 두고 5.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유다 여러 성읍에 가서 모든 이스라엘에게 해마다 너희의 하나님의 전을 수리할 돈을 거두되 그 일을 빨리 하라 하였으나 레위 사람이 빨리 하지 아니한지라”

얼마 뒤에 요아스는 주의 성전을 새롭게 단장할 마음이 생겼습니다. 요아스는 하나님을 사랑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성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우선적으로 성전을 수리해야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하여 성전을 짓고자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여 먼저 성전을 깨끗이 하였습니다. 요아스가 집권 초기에 여호와의 전을 수리하고자 했던 것은 그 동안 아달랴의 악정 하에서 성전이 많이 파괴되었고 성전의 모든 성물이 바알들에게 드려졌기 때문이었습니다(7절).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을 불러 유다의 여러 성읍으로 두루 다니면서,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서 해마다 돈을 거두어, 하나님의 성전을 보수하도록 하라고 지시하였습니다. 지체하지 말고, 곧 실시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러나 레위 사람들이 곧바로 움직이지 아니하였습니다.
열왕기하에는 레위 사람이 나오지 않고 제사장만이 등장합니다(왕하 12:4). 역대기 저자는 성전에 관한 직무를 수행하는 데에 레위인이 포함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므로 이일에 보다 많은 사람이 참여하였음을 보여 줍니다. 열왕기하에서는 예루살렘 성 이외의 성읍에서 돈을 거두었다는 언급이 없으나 역대기 저자는 유다 여러 성읍에서 직접 돈을 거두어 오도록 왕이 명령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로 볼 때 역대기 저자의 기록이 보다 구체적임을 알수 있습니다. 요아스가 제사장과 레위 사람에게 성전 수리를 명하였으나 그의 재위 23년까지 성전은 수리되지 않고 퇴락한 상태 그대로 있었습니다(왕하 12:6).

(성전 보수를 지체한 여호야다를 책망함)

“6. 왕이 대제사장 여호야다를 불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레위 사람들을 시켜서 여호와의 종 모세와 이스라엘의 회중이 성막을 위하여 정한 세를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거두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요아스 왕은 제사장 여호야다의 영향을 받아 믿음이 성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여호야다보다 더 하나님을 사랑하였습니다. 이전에는 여호야다의 영향을 받았지만 이제는 여호야다에게 영향을 주는 단계가 되었습니다. 왕이 30살이 되어 성인이 되자 성전수리를 지체하는 여호야다 대제사장을 불러 추궁하였습니다. 요아스 왕이 제사장과 레위 사람에게 성전 보수 공사의 책임을 맡겼으나 이 공사가 지연되자 요아스는 대제사장 여호야다를 불러 질책하였습니다. 대제사장은 왜 레위 사람들에게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세금을 거두어들이라고 요구하지 않았냐고 책망하였습니다. 그 세금은 주의 종 모세와 이스라엘 회중이 증거의 장막을 위하여 백성에게 부과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요아스는 제사장, 레위 사람 모두의 무책임을 지적하였습니다. 열왕기하에서는 제사장이 돈을 직접 받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왕하 12:6,7). 여호야다가 목숨을 걸고 반정(反正)을 일으켰고 개혁을 추진시켰음에도 성전 보수 공사의 일에는 힘을 다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가 요아스의 계획이 시기적으로 부적절하다고 판단한 때문인지 아니면 그의 신앙의 한계 때문이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성경에서는 아무리 훌륭한 믿음의 인물일지라도 연약성을 가지고 있을 보여줍니다.

(성전의 성물을 바알에게 바친 아달랴)

“7. 이는 그 악한 여인 아달랴의 아들들이 하나님의 전을 파괴하고 또 여호와의 전의 모든 성물들을 바알들을 위하여 사용하였음이었더라”

요아스는 성전을 보수하고자 하였지만 아달랴는 성전을 파괴한 여자입니다. 그 사악한 여인 아달랴가 자기 아들들을 시켜서, 하나님의 성전을 부수고 들어가게 하였습니다. 또 그 안에 있던 성물들까지 꺼내다가 바알에게 바치게 하였기 때문에, 성전 보수를 서둘러야만 하였습니다. 아달랴의 아들들은 죽임을 당한 아하시야의 아저씨와 형제들을 가리킵니다.(21:422:1), 아니면 아달랴의 추종자, 또는 그녀의 제사장들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전을 깨뜨리고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원형은 파라츠입니다. 이 단어가 여기서는 주로 두 가지 뜻으로 번역됩니다. 하나는 깨뜨리다(KJV, JB), 다른 하나는 부수고 들어가다(RSV, NIV, NEB, 공동번역)로 나타납니다. 근래에는 후자로 번역되는 것이 지배적입니다. 아달랴는 여호와의 전에 보관되어 있던 모든 금그릇 은그릇 등을 바알을 숭배하기 위해 사용하였습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이에 대하여 "저희가 바알을 위하여 쓴 은과 금도 내가 저에게 더하여 준 것이어늘 저가 알지 못하도다"(호 2:8)라고 기록합니다.

(성전 보수 헌금을 거둔 요아스)

“8. ○이에 왕이 말하여 한 궤를 만들어 여호와의 전 문 밖에 두게 하고 9. 유다와 예루살렘에 공포하여 하나님의 종 모세가 광야에서 이스라엘에게 정한 세를 여호와께 드리라 하였더니 10. 모든 방백들과 백성들이 기뻐하여 마치기까지 돈을 가져다가 궤에 던지니라”

왕은 명령을 내려서, 궤 하나를 만들어 주의 성전 문 밖에 놓게 하였습니다. 유다와 예루살렘에 선포하여, 하나님의 종 모세가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바치도록 정한 세금을 주께 드리도록 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제사장이 받았으나 이제 직접 하나님께 드리도록하는 새로운 계획이 왕에 의해 제시됩니다. 요아스는 궤를 만들어 성전 문밖에 두고 모세의 정한 세를 하나님께 드리게 하였습니다. 이전에는 제사장과 레위 사람이 여러 성읍에 돌아 다니면서 성전 보수를 위해 세를 거두는 방식이었으나 잘 시행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자발적으로 드리도록 하였습니다. 자발적으로 역사를 섬기게 하자 더 큰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왕하 12:9에 의하면 궤는 여호와의 전문 어귀 우편 곧 단 옆에둔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역대기 저자는 여호와의 전 문밖에 두게 하였다고 기록합니다. 열왕기하의 상세한 기록에 따라 단 옆 곧 번제단 옆에 놓인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왜냐하면 문을 지키는 제사장들이 백성들의 손에서 은을 받아 그 궤에 넣었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왕하 12:9). 이 명령은 이전에 제사장과 레위인들에게 주어졌던 것입니다(5,6절). 그러나 이제 왕이 직접 유다와 예루살렘에 반포하여 정한 세를 여호와께 드리라고 명령합니다. 지도자들과 백성이 모두 기꺼이 돈을 가지고 와서, 궤가 가득 찰 때까지 거기에 돈을 던져 넣었습니다 역대기 저자는 본절에서 유다의 모든 백성들이 성전 수리를 위한 헌금 활동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는지를 명백히 밝히고 있습니다. 히브리 원문에 따라 직역해 보면 그 궤에 가득차기까지입니다. 방백들과 백성들은 왕의 뜻을 기꺼이 받들어 그 궤가 가득찰 때까지 계속해서 헌금하였고, 그 궤를 비우고 다시 그곳에 궤를 갖다 놓으면 또 그 궤를 채웠습니다(11절).

(성전을 수리하게 한 요아스)

“11. 레위 사람들이 언제든지 궤를 메고 왕의 관리에게 가지고 가서 돈이 많은 것을 보이면 왕의 서기관과 대제사장에게 속한 관원이 와서 그 궤를 쏟고 다시 그 곳에 가져다 두었더라 때때로 이렇게 하여 돈을 많이 거두매”

궤가 차면, 레위 사람들이 그 궤를 왕궁 관리들에게로 가지고 갔습니다. 거기에 많은 액수의 돈이 찬 것을 그들에게 보여 주면, 왕실 서기관과 대제사장의 관리가 와서, 그 궤의 돈을 계산하였습니다. 그리고 나면, 레위 사람들은 다시 그 궤를 성전 밖 제자리에 가져다 놓곤 하였습니다. 왕의 유사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페쿠다는 소집, 돌봄, 관리, 직분이라는 뜻의 여성 명사로서 왕의 일을 처리, 관리, 보호하는 일을 맡은 사람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고정된 직책이 아니라 임시로 헌금관리를 위해서 세운 직책입니다. 왕의 서기관은 헌금 액수를 기록하고 문서화하여 보관하는 업무를 수행한 듯하며(왕하 12:10 주석 참조), 대제사장의 아전은 그 돈을 가져다가 여호와의 전 간역자에게 주어 인건비로 사용케 하는 역할을 담당한듯합니다(12절). 때때로는 궤에 돈이 가득 찼을 때마다라는 뜻입니다.

(여호와의 전을 보수하는 요아스)

“12. 왕과 여호야다가 그 돈을 여호와의 전 감독자에게 주어 석수와 목수를 고용하여 여호와의 전을 보수하며 또 철공과 놋쇠공을 고용하여 여호와의 전을 수리하게 하였더니 13. 기술자들이 맡아서 수리하는 공사가 점점 진척되므로 하나님의 전을 이전 모양대로 견고하게 하니라”

왕과 여호야다가 그 돈을 주의 성전 공사 감독관들에게 넘겨 주면, 그들은 주의 성전을 새롭게 단장할 석수와 목수를 고용하고, 주의 성전을 보수할 기능공들, 곧 쇠나 놋쇠를 다룰 기술자들도 고용하였습니다. 여호와의 전 간역자(幹役者)는 왕하 12:11에는 여호와의 전을 맡은 자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성전 수리를 위하여 고용된 석수, 목수, 철공장, 놋공장들을 지휘하는 총책임자를 가리킵니다. 일을 맡은 사람들이 부지런히 일을 하는 데다가, 그들이 하는 일마저도 잘 진전이 되어서, 주의 성전은 본래의 설계대로 견고하게 세워졌습니다. 여기서 수리에 해당되는 히브리 단어 아루카는 시간이 오래 걸리다라는 뜻의 동사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연장(prolongation)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단어는 종종 회복, 수리라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느 4:7사 58:8렘 8:2230:1733:6). 따라서 이 아루카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일이 회복되고 진척되는 모양을 묘사할 때쓰는 단어임이 분명합니다.

(성전의 기구를 만듬)

“14. 공사를 마친 후에 그 남은 돈을 왕과 여호야다 앞으로 가져왔으므로 그것으로 여호와의 전에 쓸 그릇을 만들었으니 곧 섬겨 제사 드리는 그릇이며 또 숟가락과 금은 그릇들이라 여호야다가 세상에 사는 모든 날에 여호와의 전에 항상 번제를 드렸더라”

공사를 맡은 사람들이 공사를 마친 뒤에, 남은 돈을 왕과 여호야다에게 가져 왔습니다. 왕이 그것으로 주의 성전에서 쓸 기구, 곧 예배 때에 쓸 기구와, 번제를 드릴 때에 쓸 기구와, 숟가락과 금그릇이나 은그릇을 마련하게 하였습니다. 여호야다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주의 성전에서 번제를 드리는 일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왕하 12:13에는 그릇을 만들지 아니하고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절은 모든 사업을 다 필역한 후에 그 남은 돈으로 그릇을 만든 사실을 기록하고 있고, 열왕기 기자는 성전 수리 사업이 한창 진행 중에 있는 동안에는 결코 다른 목적으로 그 궤의 돈을 사용치 못하도록 하여 일의 진행을 신속히 하였음을 나타내기 위하여 그릇을 만들지 아니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번제에 직접 쓰이는 그릇들, 즉 지성소 안에 있는 제단 그릇과 주발 및 금은 숟가락을 가리킵니다(민 4:12). 이 그릇들은 성전 업무에 쓰이는 그릇, 제사장들이 쓰는 다른 그릇들이나 잔과 구별됩니다(출 25:29). 본래의 제사드리는 그릇들은 아달랴에 의해 바알 숭배에 사용됨으로 더럽혀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새롭게 제사에 쓰일 그릇들을 만듦으로써 여호와께 대한 예배 업무를 완전히 회복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본절 끝부분에 항상 번제를 드렸다는 기록은 바로 이러한 완전한 제사 회복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한 사람 요아스의 결단과 리더십으로 성전은 새롭게 수리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영향력이 중요함을 배웁니다. 한 사람이 분명한 리더십을 가질 때 백성들은 자발적으로 동참합니다. 아달랴의 영향으로 성전은 무너졌고 예배도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요아스 한 사람의 영향력으로 성전과 예배가 회복되었습니다. 리더십은 영향력으로 나타납니다. 이런 영향력은 죄와 타협하지 않는데서 나타납니다. 우리는 죄와 타협하지 않는 절대성을 가져야합니다.
우리는 요아스를 통하여 성전을 수리하는 것을 배웁니다. 우리는 물론 외적인 교회 건물도 잘 수리해야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우리 마음의 성전입니다. 우리의 성전에 성령님이 거하실 수 있도록 수리해야합니다. 죄로 인하여 성령이 소멸되지 않도록 해야합니다. 우리의 성전에 교만과 정욕과 불신과 인본주의가 틈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성령님을 경외해야합니다. 우리가 두렵고 떨림으로 성령님을 경외할 때 성령님은 우리 가운데 거하십니다. 아멘!

[다윗 성에 장사된 여호야다]

“15. ○여호야다가 나이가 많고 늙어서 죽으니 죽을 때에 백삼십 세라 16. 무리가 다윗 성 여러 왕의 묘실 중에 장사하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과 하나님과 그의 성전에 대하여 선을 행하였음이더라”

여호야다가 늙어 나이가 차서 죽으니, 그가 세상에서 누린 햇수는 백삼십 년이었습니다. 그가 평생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과 성전을 위하여 좋은 일을 하였다고 해서, 사람들은 그를 다윗 성 왕실 묘지에 안장하였습니다 이 장수는 축복의 표지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야다를 통해 개혁을 추진함에 있어 그를 오랫 동안 살게 하셨습니다. 여호야다는 왕이 아닌 자로서 유일하게 열왕의 묘실에 안치되었습니다. 아마 그가 요아스의 목숨을 구하여 다윗 왕권을 잇게 하고 성전을 정결케 하며 여호와 숭배를 회복하였기 때문에 이런 특별한 영예가 그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당시 여호야다의 위치가 왕에 버금가는 위치였고 왕의 외척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대우를 하였을 것입니다. 또 130세나 되는 그의 많은 나이도 존경의 요소로 작용했을 것입니다.

(방백의 말을 듣고 우상을 섬긴 요아스)

“17. 여호야다가 죽은 후에 유다 방백들이 와서 왕에게 절하매 왕이 그들의 말을 듣고 18.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겼으므로 그 죄로 말미암아 진노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니라”

여호야다 제사장이 죽은 후에 유다 지도자들이 요아스왕을 부추겨서 자기들의 말을 듣도록 하였습니다. 여호야다의 죽음은 요아스의 통치에 있어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요아스는 여호야다가 사는 날 동안에는 정직히 행하였습니다(2절). 그는 마치 가나안에서 태어난 세대와 유사합니다. 또한 여호야다가 사는 모든 날에는 여호와의 전에서 항상 번제가 드려졌습니다(14절).
그러나 이제 여호야다가 죽자, 유다 방백들이 요아스를 우상 숭배에로 유혹하였습니다. 이곳에 온 유다 방백들은 그동안 여호야다로 인하여 그들의 정치적 목적을 실현할 수 없었던 파당(a Party)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아달랴 생존시 바알을 숭배하던 자로서 바알 숭배를 회복하려는 자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같은 파당이 집권 세력으로 부상(浮上)하기 위하여 우상 숭배를 주장한 것은 그것이 당시 국제정세에 대처하는 데 보다 용이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요아스는 이때 분명히 이들을 의견을 물리쳐야 했습니다. 이때는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강하고 담대한 마음으로 죄와 싸워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연약하였습니다. 자립신앙이 없었습니다. 요아스 왕이 방백들의 말을 듣자 백성은 그들 조상의 하나님의 성전을 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기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러한 죄 때문에 유다와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진노가 내렸습니다 .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은 백성들)

“19.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선지자를 보내사 다시 여호와에게로 돌아오게 하려 하시매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경고하였으나 듣지 아니하니라”

주께서는 백성을 사랑하셔서 주께로 돌이키도록 경고하시려고 예언자들을 보내셔서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였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예언자의 말 듣기를 거절하였습니다. 이 선지자들 가운데 하나를 스가랴, 또는 요엘로 추정하나 단정키는 어렵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종종 유다의 왕들과 백성들의 실수와 죄악을 경계하기 위하여 선지자들을 보내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은혜롭게도 버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보내시는 것은 자기 백성들을 향한 자비임과 동시에 자신들의 죄악을 핑계치 못하게 하는 저주가 됩니다.

(요아스를 책망하는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

“20. ○이에 하나님의 영이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감동시키시매 그가 백성 앞에 높이 서서 그들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스스로 형통하지 못하게 하느냐 하셨나니 너희가 여호와를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너희를 버리셨느니라 하나”

여호야다 제사장의 아들 스가랴가 하나님의 영에 감동이 되어, 백성 앞에 나서서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어찌하여 너희가 주의 명을 거역하느냐 책망합니다. 그들이 주를 거역하면 형통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주를 버렸으니, 주께서도 그들을 버리십니다.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에 대해서는 학자들은 마 23:35에 언급된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를 스가랴와 동일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스가랴는 여호야다의 아들이 아니라 손자일 가능성이 크며 이는 여호야다가 나이가 많았다는 사실로도 뒷받침됩니다. 스가랴를 감동시키시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옷 입히다라는 뜻의 동사의 완료형 3인칭 여성 단수입니다. 따라서 직역하면 하나님의 신이 스가랴를 옷 입히셨다라는 뜻이 됩니다. 이것은 성령에 감동된 상태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스가랴가 온전히 성령에 감싸여 성령의 도구가 되었다는 뜻을 나타냅니다(대상 12:18 주석 참조). 스가랴가 백성들에게 설교할 때 서 있었던 위치는 백성들보다 높은 장소였던 것 같습니다. 백성들은 바깥 뜰에 있었고 제사장인 그는 안뜰에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는데(21절) 안뜰은 바깥 뜰보다 높아서 백성들이 잘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축복의 길을 버리고 저주의 길을 가고 있음을 가리킵니다. 스가랴가 예언할 이 때에 이미 전쟁의 소문들이 횡행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스가랴를 죽인 요아스)

“21. 무리가 함께 꾀하고 왕의 명령을 따라 그를 여호와의 전 뜰 안에서 돌로 쳐죽였더라”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없앨 음모를 꾸몄고, 드디어 왕의 명령에 따라, 주의 성전 뜰에서 그를 돌로 쳐죽였습니다. 요아스는 무리의 꾀임에 빠져 의로운 스가랴를 돌로 처죽이도록 명하였습니다. 모세의 법에 의하면 여호와의 이름을 훼방하였거나(레24:16), 몰렉에게 자녀를 바쳤거나(레 20:2), 아들이 아비에게 완악하고 패역하였거나(신 21:20,21), 간음을 하였을 경우에 이런 형벌을 집행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스가랴는 이런 종류의 죄를 범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배교의 길을 걷고 있는 요아스와 대립된다는 이유로 처형되었습니다. 언약의 나라에서는 왕권이 최종적이지 않고 하나님의 권위가 최종적입니다. 하나님의 법에 어긋나는 왕권은 그 자체가 육적이요, 세상적이요, 이방적입니다. 요아스는 언약의 나라의 왕으로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유다를 다스려야한다는 본연의 자세를 완전히 상실한 자였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종 스가랴를 죽인 것은 하나님을 대적한 것입니다. 그들이 스스로 화를 자초한 것입니다. 스가랴는 구약의 마지막 순교자입니다.

(여호야다의 은혜를 배반한 요아스)

“22. 요아스 왕이 이와 같이 스가랴의 아버지 여호야다가 베푼 은혜를 기억하지 아니하고 그의 아들을 죽이니 그가 죽을 때에 이르되 여호와는 감찰하시고 신원하여 주옵소서 하니라”

이렇듯 요아스 왕은, 스가랴의 아버지 여호야다가 자기에게 보인 그 충성을 생각하지 않고, 그의 아들을 죽였습니다. 스가랴는 죽으면서 주께서 이 일을 굽어 보시고, 원수를 갚아 달라고 외쳤습니다. 스가랴의 뜻은 하나님이 기억하시다는 뜻입니다. 스가랴를 죽임으로 하나님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은혜''''는 히브리어로 헤세드이며 여기서는 세속적 의미의 구출, 즉 목숨을 구출받은 사실(22:10-12)을 뜻합니다. 감찰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동사 다라쉬는 죄를 찾아 응징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스가랴의 이 기도는 하나님께 요아스 왕과 스가랴 사이에 올바른 공의의 판단을 구하는 기도이며, 백성들에게 공의가 가리워지지 아니하고 명백히 나타나기를 요구한 기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갚을 줄을 알아야 합니다. 뿐만아니라 사람이 베푸신 은혜도 갚을 수 있어야합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모르는 자를 공의로 심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배반한 가룟유다를 심판하셨습니다.

[아람 군대의 공격을 받은 요아스]

“23. ○일 주년 말에 아람 군대가 요아스를 치려고 올라와서 유다와 예루살렘에 이르러 백성 중에서 모든 방백들을 다 죽이고 노략한 물건을 다메섹 왕에게로 보내니라 24. 아람 군대가 적은 무리로 왔으나 여호와께서 심히 큰 군대를 그들의 손에 넘기셨으니 이는 유다 사람들이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렸음이라 이와 같이 아람 사람들이 요아스를 징벌하였더라”

해가 바뀔 무렵에, 시리아 군대가 요아스를 치러 진군하였습니다. 그들은 유다와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백성의 지도자들을 죽이고, 노략한 물건은 다마스쿠스에 있는 자기들의 왕에게로 보냈습니다. 일 주년 후에서 일주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그 해 마지막에(KJV, RSV), 해가 바뀔 무렵에(NIV, VEB,공동번역)등으로 번역됩니다. 그러므로 한글 개역이 일 주년 후에로 번역한 것에는 미흡한 점이 있습니다. 일 주년 후란 만 1년이 지난 시점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해가 바뀔 무렵에 시리아 군대가 유다를 쳐들어왔습니다. 시리아 군대는 수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께서는 유다 백성이 주 조상의 하나님을 버린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셔서, 그 적은 수의 시리아 군대가 유다의 대군과 싸워 이기게 하셨습니다. 침략한 아람 군대는 적은 무리였고 유다는 심히 큰 군대였음에도 여호와께서 이 유다 군대를 아람 군대에 붙이시므로 유다는 패배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징벌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전쟁이 여호와께 속해 있음을 다시 한번 발견할 수 있습니다(20:15). 우리가 하나님을 버리면 하나님도 우리를 버리십니다. 하나님을 버리는 자는 망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으려면 하나님을 버리지 말아야합니다. 하나님 한분만을 사랑하고 의지해야합니다.

(다윗의 묘실에 묻히지 못한 요아스)

“25. 요아스가 크게 부상하매 적군이 그를 버리고 간 후에 그의 신하들이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들의 피로 말미암아 반역하여 그를 그의 침상에서 쳐죽인지라 다윗 성에 장사하였으나 왕들의 묘실에는 장사하지 아니하였더라”

시리아 군대는 요아스에게 심한 타격을 입히고 물러갔습니다. 요아스의 신복들은, 요아스가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 제사장을 죽인 일에 반감을 품고, 요아스가 잠을 자고 있는 동안에 그를 죽이고 말았습니다. 요아스가 아람 군대의 침략으로 큰 부상을 입자, 그 신복들은 이를 호기(好機)로 삼아 침상에 누워있는 그를 살해하였습니다. 그들의 모반의 명분은 스가랴의 피를 갚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명목은 요아스를 살해한 것에 정당성을 가질 수 없습니다(25:3,4). 왜냐하면 그것은 단지 원수 갚는 데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며 정당한 사법적 절차를 걸친 형집행이 수반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요아스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도 갖지 못한 채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요아스는 이렇게 죽고 말았습니다. 요아스의 중대한 경책(警責)을 받은 것은 사가랴를 죽인 것에 대한 대가입니다. 더 나아가 아람 왕 하사엘에게 바친 조공과 뇌물에 대한 경책(왕하 12:18)입니다. 그는 다윗 성에 묻히기는 하였으나, 왕실 묘지에 안장되지는 못하였습니다 다윗의 묘실에 들어가지 못한 이 사실은 요아스의 통치에 대한 유다 백성들의 역사적 평가와 역대기 저자의 평가가 부정적이었음을 잘 보여줍니다.

(아마사가 왕이 됨)

“26. 반역한 자들은 암몬 여인 시므앗의 아들 사밧과 모압 여인 시므릿의 아들 여호사밧이더라 27. 요아스의 아들들의 사적과 요아스가 중대한 경책을 받은 것과 하나님의 전을 보수한 사적은 다 열왕기 주석에 기록되니라 그의 아들 아마샤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요아스에게 반란을 일으킨 사람은, 암몬 여인 시므앗의 아들 사밧과 모압 여인 시므릿의 아들 여호사밧입니다. 왕하 12:21에는 사밧이 요사갈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병행 구절에서 여호사밧은 소멜의 아들로 나타납니다. 소멜은 시므릿의 아버지요 시므릿은 여호사밧의 어머니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호사밧은 소멜의 외손이 되는 것입니다. 요아스의 아들들의 이야기와, 요아스가 중대한 경책을 받은 것과, 하나님의 성전을 보수한 사적은, 모두 열왕기 주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의 아들 아마샤가 그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습니다. 열왕기 주석의 왕하 12:19에는 유다 왕 역대지략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주석이라는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미드라쉬는 보다 기초적인 왕궁 연대기에 대한 해석을 뜻합니다.
역대하 24장 강해 여호야다와 요아스
역대하 24장 1-역대하 24장 27
요절 역대하 24장 1. 요아스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칠 세라 예루살렘에서 사십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시비아요 브엘세바 사람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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