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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사사기 11장 강해 위기의 때에 필요한 사사 입다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2-05-29 00:00:00
조회수 : 4,368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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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11장 강해 위기의 때에 필요한 사람
사사기 11장 1-사사기 11장 40절
요절 사사기 11장 6절

우리나라의 최초의 한글 소설이 무엇인가? 아시죠? 예. 홍길동전입니다. 홍길동은 서자로서 서자의 한을 극복하기 위해 평생을 싸웠습니다. 그러나 그 소설을 잘 읽어 보면 자기 한 사람의 한을 푸는데 그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한 일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서자는 호부호형을 하지 못한다는 가정적 금기를 깨고 호부호형을 하게 된 것이고 둘째는 서자는 벼슬을 하지 못한다는 사회적인 금기를 깨고 병조판서가 된 것입니다. 그는 이러한 자신의 한을 해결하고 율도국으로 도적들과 함께 들어가서 왕이 되어 살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잠시 가난한 자들에게 재물을 나눠주는 선행을 한 것이 훌륭한 점입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홍길동과 유사한 입다가 나옵니다. 입다도 서자로서 한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입다는 홍길동과 달랐습니다. 입다는 이러한 서자의 슬픔을 하나님께 들고 나가서 자신의 문제도 해결하고 자신처럼 억울하게 고통 당하는 버림 받은 자들의 목자가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암몬의 침략에 의해 위기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어 이스라엘을 암몬으로부터 구원하여 주었습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서 어떻게 자신의 슬픔을 극복하고 위기의 때에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나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입다는 기생의 아들입니다)

1절을 보십시오. “길르앗 사람 입다는 큰 용사였으니 기생이 길르앗에게서 낳은 아들이었고” 입다는 므낫세의 핵심 지파인 길르앗 사람이요. 큰용사였습니다. 그는 길르앗의 아들입니다. 일당천의 큰용사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출생신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기생의 신분이었습니다. 여기서 기생은 창녀를 의미합니다. 창녀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는 홍길동과 같은 서자 출신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신분에 따라서 사람을 평가합니다. 입다는 기생의 아들로서 사람들로부터 무시를 당했습니다.

(입다는 길르앗의 아들들에게 쫓겨났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길르앗의 아내도 그의 아들들을 낳았더라 그 아내의 아들들이 자라매 입다를 쫓아내며 그에게 이르되 너는 다른 여인의 자식이니 우리 아버지의 집에서 기업을 잇지 못하리라 한지라” 길르앗의 본처도 아들들을 낳았습니다. 적자인 아들들은 자라면서 입다를 서자라고 미워했습니다. 그들은 첩의 소생은 아버지의 기업을 함께 받을 수 없다고 그를 쫓아내었습니다. 그는 마치 고구려를 세운 고주몽이 부여왕 금와의 아들들로부터 버림 받아쫓겨난 것과 같습니다. 적자인 이삭을 위하여 서자 이스마엘을 쫓아낸 것과 같습니다. 이스마엘을 쫓아낼 때도 상속자가 될 수 없다는 논리로 쫓아냅니다. 입다는 가족들로부터 버림을 받았습니다.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신분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버림을 받아야 했을 때 그의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이런 고통은 버림 받아 본 사람은 알 것입니다. 버림 받을 때 자신에 대한 무의미 무가치함을 느낍니다.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을 버린 사람들에 대한 미움과 반항심이 생겨나서 복수합니다.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지존파나 막가파들도 버림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잡류와 함께 사는 입다)

3절을 보십시오. “이에 입다가 그의 형제들을 피하여 돕 땅에 거주하매 잡류가 그에게로 모여 와서 그와 함께 출입하였더라” 입다는 이복 형제들을 피하여 도망가서 이방땅 돕 땅에 거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잡류가 입다에게 와서 그를 따랐습니다. 여기서 잡류란 비다 가난하다 버림받다 라는 뜻으로 가난하고 부모가 없고 입다와 같이 버림 받은 자들입니다. 입다가 이들을 이해하고 따뜻하게 대해 주자 그들은 입다에게 몰려 들었습니다. 입다는 버림받은 자의 슬픔을 이해하고 버림받은 자들의 목자가 되었습니다. 이는 마치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다닐 때에 다윗에게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여 든 것과 같습니다. (삼상 22장 2절) 입다는 버림 받았을 때 형들에 대한 미움과 복수심을 극복했습니다. 자신에 대한 절망감을 극복했습니다. 오히려 입다는 버림 받음을 통해서 내면이 넓어지고 거친 사람들까지도 품고 섬기는 목자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되었을까요? 그는 버림 받았을 때 하나님께로 나아갔기 때문입니다. 그가 하나님께 고하고 외교분쟁이 있을 때 대화하는 내용을 볼 때 그는 말씀공부에 전무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사기 11장 11절에 이스라엘 지도자의 요청을 받고 하나님께 고한 것을 볼 때 기도에 전무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버림받았을 때 자신을 이해하시고 변함없이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와 말씀에 전무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면 하나님은 버림받은 자를 영접하고 크게 쓰십니다. 우리 예수님도 버림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가족들에게 미쳤다고 버림 받았고 로마인들에게 사형수로 버림 받았고 종교지도자들에게 무능하다고 버림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님을 그리스도요 모퉁이의 머릿돌로 쓰셨습니다. 시편 기자는 이 예수님을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너희가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마가복음 12장 10,11)하나님은 버린 자들을 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에는 버림 받은 자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요셉은 형들로부터 버림 받았습니다. 그는 형들과 온 세계의 지도자가 되는 꿈을 꾸었습니다. 형들은 시기하여 요셉을 애굽의 노예로 버렸습니다 .요셉은 버림받은 자로서 형들에 대한 미움과 분노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그가 하나님께 나아가자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해주셨을 때 요셉은 비록 노예로 있을 지라도 가정 총무가 되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순결하게 살았을 때 보디발의 처로부터 성폭행자라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서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자신의 진정한 친구로 삼았습니다. 그때 그는 감옥에서 자신과 같이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 술맡은 자와 떡굽는 자의 목자가 되었고 하나님은 양들을 쓰셔서 애굽의 총리가 되게 도우셨습니다. 모세도 동족에게 버림 받고 40년 미디안 나그네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그의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영접하였을 때 하나님은 그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사용하여 주셨습니다. 우리에게도 버림 받는 문제는 심각합니다. 우리 유비에프를 처음 시작하시고 이끌고 계시는 사무엘 선교사님은 일찍 친어머니를 여의고 새엄마 밑에서 자랐습니다. 새엄마의 혹독한 대우를 받으며 많이 울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 선교사님은 이때 진정한 친구되신 하나님께로 나아갔습니다. 그때 사무엘 선교사님은 지성인들을 이해하는 지성인들의 대목자가 되었습니다. 모니카 사모는 대학시절 유비에프를 떠나서 간호사고시공부에만 전념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험에 모니카목자는 떨어졌습니다. 더구나 감기 몸살이 걸려서 꼼짝 못하고 누워 있었습니다. 세상으로부터 철저히 버림 받았습니다. 그때 서베드로 선교사님이 심방 오셔서 마가복음 12장 10,11절 말씀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는 이 말씀을 붙잡고 다시 일어나 충대 법경대를 개척하고 다음 해에 간호사고시에 합격했습니다. 그리고 저와 결혼했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 왕따 문제가 심각합니다. 물론 왕따를 시키는 사람도 문제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왕따 당하는 사람들을 돕는 것도 중요합니다. 우리는 먼저 이들을 왕따를 당하신 예수님께로 인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들이 하나님께 귀하게 쓰음 받을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면 주위사람들에게 버림 받을 것 같은 두려움이 있습니다. 이들이 권하는 술을 먹지 않고 이들과 함께 주일날 MT를 가지 않고 노래방에 가지 않으면 우리는 버림 받을 것 같은 두려움이 몰려 옵니다. 그러나 우리는 버림 받을 것을 두려워 해서는 안 됩니다. 이들에게 버림 받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해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들에게 버림 받지 않고자 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십니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왕따를 당하지 않으려고 한다면 하나님께 따돌림을 받는 하따를 당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 인생은 종을 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이런 것을 배설물처럼 버려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버리기 전에 자신이 먼저 사람들을 버렸습니다. 이는 그가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빌립보서 3장 8절) 사도들은 복음을 전하다가 사람들에게 버림 받을 뿐아니라 매까지도 맞았습니다. 그때 그들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받는 것에 대해서 기뻐하였습니다. (행5장 41절) 초대교회 사도들은 직장과 가정으로부터 버림을 받고 소아시아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이들을 권면하였습니다. "사람에게는 버린바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돌이신 예수께 나가라."(벧전 2장 2절) 그들이 세상적으로 보면 버림 받은 나그네요 가난한 자이지만 예수님께 나아가면 하나님은 그들을 왕같은 제사장으로 삼아 주십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적극 버림 받고 보배로운 산돌이신 예수님께 나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사람들은 위기의 때에 입다를 찾았습니다.)

4-6절을 보십시오. “얼마 후에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을 치려 하니라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을 치려 할 때에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를 데려오려고 돕 땅에 가서 입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암몬 자손과 싸우려 하니 당신은 와서 우리의 장관이 되라 하니” 얼마 후에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을 치러 왔습니다. 환난의 날에 이스라엘 백성 중에는 원수들과 대항해서 싸울 수 있는 용사가 없었습니다. 길르앗에서 대장을 잦지 못한 길르앗 장로들은 수소문 끝에 입다를 초빙하고자 의견을 모으고 입다를 찾아왔습니다. 사실 그들은 평상시에 입다를 지도자로 원치 않았습니다. 같이 있기도 싫어했습니다. 그러나 날로 임박해 가는 위기 상황에서 입다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입다는 서자지만 리더십이 있었고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입다를 찾아가서 말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암몬 사람들과 싸우러 가는 참이요. 그대가 와서 우리의 사령관이 되어 싸워 주오."(6)

(길르앗 주민의 머리로 삼겠다)

7,8절을 보십시오.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전에 나를 미워하여 내 아버지 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이제 너희가 환난을 당하였다고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하니라 그러므로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에게 이르되 이제 우리가 당신을 찾아온 것은 우리와 함께 가서 암몬 자손과 싸우게 하려 함이니 그리하면 당신이 우리 길르앗 모든 주민의 머리가 되리라 하매” 입다는 그들의 요구에 즉각 응답하지 않고 과거 자신을 쫓아낸 그들의 죄를 따졌습니다. 그러자 장로들은 입다에게 더욱 좋은 조건으로 간구합니다. "마음을 가라 앉히고 우리와 함께 가서 암몬 사람들을 무찌릅시다.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우리가 그대를 길르앗 땅의 우두머리로 삼겠소." 그들은 입다를 군사령관 뿐 아니라 싸움이 끝난 후에 이스라엘의 최고 지도자 사사로 세워 줄 것을 약속했습니다. 입다는 평상시에 기생의 아들로 태어나서 가족들로부터 버림받고 떠돌아 다니는 잡류들의 보스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평상시에는 사람들로부터 무시받고 소외되었습니다. 그런데 환난의 때에는 가장 필요한 자요 민족의 최고 지도자로 추대 받게 되었습니다. 그가 믿음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위기의 순간에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평상시에 거북선을 만들어 위기를 대비한 장군입니다. 임진왜란의 위기에서 조선을 구하였습니다. 입다는 이순신장군처럼 위기의 때 필요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입다)

9절을 보십시오.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암몬 자손과 싸우게 할 때에 만일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게 넘겨 주시면 내가 과연 너희의 머리가 되겠느냐 하니” 입다는 정말 자신이 암몬자손과 싸워서 승리하면 자신을 우두머리로 삼을 것인가 다짐하며 물었습니다. 그는 서자로서 사사가 될 소망을 가졌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게 붙이시면 이라고 말한 것을 볼 때 그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환난의 때에 절망보다는 희망을, 패배보다는 승리의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환난 날에 필요한 사람은 믿음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평상시에는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환난을 당하면 당할수록 더욱 빛이 납니다. 마치 밤에 별이 빛나는 것과 같습니다.

(기도하는 입다)

10,11절을 보십시오.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에게 이르되 여호와는 우리 사이의 증인이시니 당신의 말대로 우리가 그렇게 행하리이다 하니라 이에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과 함께 가니 백성이 그를 자기들의 머리와 장관을 삼은지라 입다가 미스바에서 자기의 말을 다 여호와 앞에 아뢰니라” 이스라엘 장로들은 전쟁에서 이기면 입다를 사사로 삼겠다고 하였습니다. 입다는 장로들과 함께 돌아갔고 그들은 입다를 군대장관으로 삼았습니다. 입다는 미스바에 가서 하나님께 길르앗 사람들이 자신을 찾아와 한 이야기를 다 아뢰었습니다. 입다는 하나님과 깊은 신뢰의 관계성이 있었습니다. 그는 평상시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보고하고 하나님의 방향을 받고자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환난 날에 필요한 사람을 비유를 들어 설명했습니다. 믿음으로 살지 않는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사람과 같습니다. 이들은 비가 오고 바람이 불면 집이 무너져 내립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반석위에 집을 짓는 사람과 같습니다. 이들은 어떤 어려움이 와도 무너져 내리지 않습니다. 평상시에는 말씀을 공부하고 말씀대로 사는 것이 어리석어 보입니다. 이들은 괜히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같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환난이 오면 믿음의 사람이 필요하게 됩니다 .이번 터어키에 지진이 일어난 곳도 기초가 튼튼한 집들만 무너지지 않고 바다 모래를 사용하여 부실공사를 한 대부분의 집들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암몬의 침략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는 항상 환난이 있습니다. 갑작스럽게 깜짝 놀랄만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병들기도 하고 죽기도하고 교통사고 화재들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가정의 경제가 어려워지기도 하고 부모님들이 이혼하는 집도 있습니다. 나라의 경제가 곤두박질 치기도 하고 전쟁이나 지진으로 수만명이 죽기도 합니다. 평상시에 큰 소리치던 사람들이 위기의 때에는 아무쓸모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믿음의 사람은 위기의 때에 드러납니다. 이때 가장 필요한 사람은 믿음의 사람입니다, 환난의 때에 말씀을 듣는 것으로 만족하며 말씀에 뿌리가 없는 사람들은 위기의 때에 버림 받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순종하며 사는 사람들은 더욱 믿음이 견고해지며 환난을 믿음으로 극복하게 됩니다. 우리 가운데 IMF의 위기를 맞게 되자 부실 기업들은 여기저기서 도산을 했습니다. 그러나 건실한 기업들은 오히려 IMF의 기간 동안 더욱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사도바울은 고향에서 성경과 말씀으로 준비하였기 때문에 세계선교의 때에 쓰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평상시에 말씀의 바위 위에 우리 신앙의 집을 짓는 가운데 위기의 때 쓰임 받는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2-28절까지는 입다가 암몬 사람들과 외교적인 담판을 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요단 동편 땅을 요구하는 암몬 자손들).

12,13절을 보십시오. “입다가 암몬 자손의 왕에게 사자들을 보내 이르되 네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내 땅을 치러 내게 왔느냐 하니 암몬 자손의 왕이 입다의 사자들에게 대답하되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올라올 때에 아르논에서부터 얍복과 요단까지 내 땅을 점령했기 때문이니 이제 그것을 평화롭게 돌려 달라 하니라” 암몬 사람들이 쳐들어 오자 입다는 먼저 사신을 보내어서 치러 온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들이 본래 자기 땅인데 이스라엘에게 빼앗긴 땅을 찾으러 왔다고 말했습니다. 요단 동편 길르앗 땅은 압몬 사람의 땅이 아닙니다. 아모리와 시혼과 바산왕 옥의 땅이었습니다. 모세가 이곳 사람들이 길을 내어주지 않고 대적함으로 물리치고 점령한 곳입니다 입다는 역사를 통해서 그것을 설명합니다.

(모압 암몬 땅을 점령하지 않았다)

14-18절을 보십시오. “입다가 암몬 자손의 왕에게 다시 사자들을 보내 그에게 이르되 입다가 이같이 말하노라 이스라엘이 모압 땅과 암몬 자손의 땅을 점령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올라올 때에 광야로 행하여 홍해에 이르고 가데스에 이르러서는 이스라엘이 사자들을 에돔 왕에게 보내어 이르기를 청하건대 나를 네 땅 가운데로 지나게 하라 하였으나 에돔 왕이 이를 듣지 아니하였고 또 그와 같이 사람을 모압 왕에게도 보냈으나 그도 허락하지 아니하므로 이스라엘이 가데스에 머물렀더니 그 후에 광야를 지나 에돔 땅과 모압 땅을 돌아서 모압 땅의 해 뜨는 쪽으로 들어가 아르논 저쪽에 진 쳤고 아르논은 모압의 경계이므로 모압 지역 안에는 들어가지 아니하였으며” 입다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들어서 그들의 주장이 부당함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올 때에 에돔과 모압 사람들 땅을 점령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은 홍해를 가르고 가데스바데아에 이르렀습니다. 모세는 에돔왕에게 그 땅을 통과하게 해달라고 하였으나 에돔왕은 허락지 않았습니다. 그와 같이 모압왕에게도 청하였으나 모압왕도 허락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들과 싸우지 말고 돌아가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순종하여 에돔땅과 모압 지역을 돌아서 아르논 저쪽에 진을 쳤습니다. 아르논은 모압의 경계이지 모압땅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모압과 압몬땅을 점령하지 않았습니다.

(아모리 땅과 바산 땅을 점령한 것이다)

19-22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이 헤스본 왕 곧 아모리 족속의 왕 시혼에게 사자들을 보내어 그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우리를 당신의 땅으로 지나 우리의 곳에 이르게 하라 하였으나 시혼이 이스라엘을 믿지 아니하여 그의 지역으로 지나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그의 모든 백성을 모아 야하스에 진 치고 이스라엘을 치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시혼과 그의 모든 백성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겨 주시매 이스라엘이 그들을 쳐서 그 땅 주민 아모리 족속의 온 땅을 점령하되 아르논에서부터 얍복까지와 광야에서부터 요단까지 아모리 족속의 온 지역을 점령하였느니라” 이스라엘은 아모리왕 시혼에게 길을 가나안 땅으로 가는 길을 빌려달라고 하였습니다. 아모리왕 시혼은 길을 비워 주지 않을 뿐 아니라 군사를 이끌고 싸우러 나왔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아모리 왕을 물리치고 그 땅을 빼앗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암몬사람들이 자기 땅이라고 주장하는 땅은 사실은 암몬 사람들의 땅이 아니라 아모리 사람의 땅을 빼앗은 것입니다.

(길르앗 땅은 하나님이 주신 땅입니다)

23-24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아모리 족속을 자기 백성 이스라엘 앞에서 쫓아내셨거늘 네가 그 땅을 얻고자 하는 것이 옳으냐 네 신 그모스가 네게 주어 차지하게 한 것을 네가 차지하지 아니하겠느냐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서 어떤 사람이든지 쫓아내시면 그것을 우리가 차지하리라” 더구나 길르앗땅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땅입니다. 암몬 사람들도 그들의 신 그모스가 땅을 차지하게 하면 그 땅을 차지할 것입니다. 입장을 바꾸어놓고 생각해보자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주신 땅을 받은 것 뿐입니다.

(삼백년을 거주한 땅입니다)

25-28절을 보십시오. “이제 네가 모압 왕 십볼의 아들 발락보다 더 나은 것이 있느냐 그가 이스라엘과 더불어 다툰 일이 있었느냐 싸운 일이 있었느냐 이스라엘이 헤스본과 그 마을들과 아로엘과 그 마을들과 아르논 강 가에 있는 모든 성읍에 거주한 지 삼백 년이거늘 그 동안에 너희가 어찌하여 도로 찾지 아니하였느냐 내가 네게 죄를 짓지 아니하였거늘 네가 나를 쳐서 내게 악을 행하고자 하는도다 원하건대 심판하시는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자손과 암몬 자손 사이에 판결하시옵소서 하였으나 암몬 자손의 왕이 입다가 사람을 보내어 말한 것을 듣지 아니하였더라” 그들은 모압왕 발락보다도 못한 자라고 말합니다. 발락은 발람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저주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스라엘과 다투지는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은 이 땅에 거한 지가 이미 300년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거주하면 점유권이 인정되어서 이 땅은 이스라엘의 땅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땅은 암몬 사람들의 땅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땅입니다. 지금까지 자신들의 땅이었다면 왜 삼백년 동안 가만히 있었느냐고 되묻습니다. 왜 그들이 아무 죄없는 이스라엘과 싸우는 죄를 짓게 하느냐고 책망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이 일을 공의로 심판하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입다는 왜 이스라엘의 땅인가? 하는 정당한 근거를 갖고 있었습니다. 입다는 싸움만 잘할 뿐 아니라 해박한 역사적 지식과 성경 말씀에 대한 기초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지성과 야성을 겸비한 목자를 환난의 때에 쓰십니다. 성경공부에 능통한 성경선생을 쓰십니다. 하지만 암몬 사람들은 입다의 말을 듣지 않고 계속 싸우고자 하였습니다.

(입다는 사람을 번제물로 드리고자 서원하였습니다)

29-31절을 보십시오. “이에 여호와의 영이 입다에게 임하시니 입다가 길르앗과 므낫세를 지나서 길르앗의 미스베에 이르고 길르앗의 미스베에서부터 암몬 자손에게로 나아갈 때에 그가 여호와께 서원하여 이르되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넘겨 주시면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물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 암몬이 입다의 말을 듣지 않고 이스라엘을 공격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신이 입다에게 임했습니다. 그는 군대를 이끌고 암몬 자손에게 나아갔습니다. 입다는 전쟁을 하기 전에 승리의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는 전쟁에 나아가서 죽을 것 같은 두려움이 밀려 왔습니다. 그는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하나님께 서원기도를 드렸습니다.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자신의 손에 붙이시면 자신이 암몬 자손에게 평안히 돌아 올 때에 누구든지 자기 집문에서 나와서 그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번제로 드리겠다고 서원하였습니다. 입다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서원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서원의 내용은 비신앙적인 내용이었습니다. 그는 사람을 번제로 드리겠다고 하였습니다. 몰렉신을 섬기는 모압사람들이 자식을 신에게 바치는 것을 보고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였지만 하나님도 이삭을 번제로 드리는 것을 막았습니다. 우리는 완전히 절망적인 상황에서 서원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서원을 할 때 신중히 해야 합니다. 지킬 수 있는 서원을 해야합니다. 서원의 내용이 성경적으로 옳은 것을 서원해야합니다. 어렸을 때는 어른들에게 물어보고 해야 합니다. 교회의 목사나 장로에게 물어보고 해야합니다. 우리가 바르게 서원을 해야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우리의 신앙이 성장할 수 있습니다.

(암몬의 이십 성읍을 친 입다)

32,33절을 보십시오. “이에 입다가 암몬 자손에게 이르러 그들과 싸우더니 여호와께서 그들을 그의 손에 넘겨 주시매 아로엘에서부터 민닛에 이르기까지 이십 성읍을 치고 또 아벨 그라밈까지 매우 크게 무찌르니 이에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 항복하였더라” 하나님은 입다의 믿음을 받으시고 암몬과의 전쟁에서 대승리를 주셨습니다. 그가 옳지 않은 서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은혜로 이기게 하셨습니다. 그는 이로엘에서부터 민낫에 이르기까지 이십 성읍을 쳤습니다. 아벨 그리밈까지 매우 크게 무찔렀습니다.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에게 항복하였습니다

(입다를 영접하는 외동딸)

34절을 보십시오. “입다가 미스바에 있는 자기 집에 이를 때에 보라 그의 딸이 소고를 잡고 춤추며 나와서 영접하니 이는 그의 무남독녀라” 입다가 집으로 개선할 때 그의 아끼고 사랑하는 무남독녀인 딸이 소고를 치고 춤추며 그를 가장 먼저 영접했습니다. 입다는 서원한 대로 딸을 번제로 드려야 했습니다. 입다는 하나님께 드린 서원과 딸에 대한 사랑 사이에 갈등하였습니다. 서원을 갚느냐 아니면 서원을 어기고 딸을 키우느냐?는 것입니다. 입다는 슬프고 괴로웠습니다. 다른 사람이 그를 영접하였으면 그는 서원으로 다른 사람을 드리고 딸은 드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원칙에 어긋납니다. 그는 서원을 파기하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입다는 자신에게 해가 되어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한 서원을 지키고자 했습니다. 그런 점은 훌륭한 점입니다. 그러나 서원 자체의 내용이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날 때는 파기할 수 있습니다. 그는 잘못 서원한 것을 회개하고 딸 대신에 양이나 염소를 드려야 했습니다. 미가서 6장 8절에는 말씀하십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알아야합니다.

(서원을 갚고자하는 입다)

35절을 보십시오. "입다가 이를 보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어찌할꼬 내 딸이여 너는 나를 참담하게 하는 자요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 중의 하나로다 내가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 하니" 입다는 옷을 찢으며 참담하고 괴로움을 표현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입을 열었으니 돌이키지 못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드린 서원을 절대적인 자세로 순종하고자 하였습니다. 그의 믿음과 충성심은 훌륭합니다. 그러나 그 서원내용이 성경 말씀에 기초하여 옳지 않을 때는 서원을 취소할 수 있습니다. 레위기에 보면 아내가 남편에게 허락을 받지 않고 서원했을 때는 남편이 취소할 수 있고 자녀가 부모의 허락없이 서원했을 때도 취소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서원이 비성경적인 서원을 했을 때는 취소하고 변경할 수 있습니다. 입다는 너무 단순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번제물이 된 외동딸)

36-40절을 소십시오. "딸이 그에게 이르되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여셨으니 아버지의 입에서 낸 말씀대로 내게 행하소서 이는 여호와께서 아버지를 위하여 아버지의 대적 암몬 자손에게 원수를 갚으셨음이니이다 하니라 또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이 일만 내게 허락하사 나를 두 달만 버려 두소서 내가 내 여자 친구들과 산에 가서 나의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겠나이다 하니 그가 이르되 가라 하고 두 달을 기한하고 그를 보내니 그가 그 여자 친구들과 가서 산 위에서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고 두 달 만에 그의 아버지에게로 돌아온지라 그는 자기가 서원한 대로 딸에게 행하니 딸이 남자를 알지 못하였더라 이것이 이스라엘에 관습이 되어 이스라엘의 딸들이 해마다 가서 길르앗 사람 입다의 딸을 위하여 나흘씩 애곡하더라“ 입다의 딸도 믿음으로 대답했습니다. 여호와께 입을 열었으니 말씀대로 행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암몬자손에게 원수를 갚았으니 자신은 죽어도 좋다고 하였습니다. 그 아버지에 그 딸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부탁을 하였습니다. 두달 동안 말미를 주면 친구들과 산에 가서 처녀로 죽음을 애곡하겠다고 하였습니다. 딸은 아버지의 허락을 받고 두 달동안 산에 올라가 친구들과 애곡하고 돌아왔습니다. 입다는 눈물을 무릎쓰고 딸을 번제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우리는 입다와 그의 딸을 통해서 서원한 것은 반드시 갚고자 하는 훌륭한 점을 배웁니다. 아무리 해가 되어도 갚아야한다는 것을 배웁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서원을 갚아 딸을 죽이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한 것은 아쉬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기계적인 하나님이 아니라 인격적인 하나님이십니다. 긍휼의 하나님이십니다. 인격적인 하나님을 믿는 것이 죄와 타협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해하시고 사랑하여주십니다. 다윗이 제사장이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먹었을 때 하나님은 다윗을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을 이해하여 주었습니다. 당시는 사사기라 성경 말씀에 기초한 신앙이 부족하였습니다.

(위기 속에 쓰임 받은 입다)

입다는 전쟁에서 승리를 하고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광해군도 서자로서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한을 가지고 있어 폭군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입다는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훌륭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입다는 버림 받았을 때 버림 받은 자들의 목자가 되었습니다 기도와 말씀에 전무하였습니다. 우리는 미리 준비하여 위기 속에서 쓰임 받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아멘!
사사기 11장 강해 위기의 때에 필요한 사람
사사기 11장 1-사사기 11장 40절
요절 사사기 11장 6절
사사기 11장 강해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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