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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사사기 6장 강해 큰 용사여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5-03-06 00:00:00
조회수 : 3,650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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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6장 강해 큰 용사여!
말씀 사사기 6장1-사사기 6장 32
요절 사사기 6장 12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우리는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고 부르고 있습니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평가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자신의 신분이나 능력이나 소유나 외모에 근거하여 자신을 평가합니다. 환경이 좋고 일이 잘 되어 갈 때는 자신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그러나 모든 일이 뜻대로 잘되지 않을 때는 자신을 부정적으로 평가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는 기드온의 부르심이 나옵니다. 성경책에 나오는 삼대 승리라면 미디안을 무찌른 기드온의 승리, 골리앗을 물리친 다윗의 승리, 그리고 850명의 바알 아세라 선지자를 물리친 엘리야의 승리를 들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는 그 승리의 주역인 기드온이 나옵니다. 기드온하면 큰 용사의 이미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도 부르심을 받았을 때는 졸장부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큰 용사로 평가하시고 큰 용사로 쓰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큰 용사로 자아를 발견하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미디안의 손에 넘겨주신 하나님)

1-2a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칠 년 동안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넘겨 주시니 미디안의 손이 이스라엘을 이긴지라” 이스라엘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아모리 신을 섬겼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칠 년 동안 미디안의 손에 붙였습니다. 미디안은 이스라엘을 침략해 와서 이스라엘을 이겼습니다.

(여호와께 부르짖는 이스라엘)

2b-6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산에서 웅덩이와 굴과 산성을 자기들을 위하여 만들었으며 이스라엘이 파종한 때면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 사람들이 치러 올라와서 진을 치고 가사에 이르도록 토지 소산을 멸하여 이스라엘 가운데에 먹을 것을 남겨 두지 아니하며 양이나 소나 나귀도 남기지 아니하니 이는 그들이 그들의 짐승과 장막을 가지고 올라와 메뚜기 떼 같이 많이 들어오니 그 사람과 낙타가 무수함이라 그들이 그 땅에 들어와 멸하려 하니 이스라엘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궁핍함이 심한지라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이스라엘 자손들은 미디안의 침략 때문에 산에서 구멍과 굴과 산성을 만들고 숨어 살았습니다. 그들은 공습경보가 울리면 일을 하다말고도 방공호로 대피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파종할 때면 미디안 사람, 아말렉 사람, 동방사람이 치러 올라와서 진을 치고 토지 소산을 멸하였습니다. 이스라엘 가운데 식물을 남겨두지 아니하였습니다. 양이나 소나 나귀도 남기지 않고 약탈해 갔습니다. 미디안 연&#54689군은 메뚜기가 와서 곡식을 뜯어 먹는 것과 같이 와서 이스라엘을 멸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피곤하고 지친 삶을 살았습니다. 가난하고 굶주린 삶을 살았습니다. 이스라엘이 미디안의 침략으로 미약함이 심하였습니다. 칠년 동안 이런 고통을 당한 후에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였습니다. 그들은 전심으로 눈물을 흘리며 울며 회개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평상시에도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평상시에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랑해야합니다. 아브라함이 축복의 때에 이삭을 드린 것처럼 다윗이 통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성전을 지어 드린 것처럼 축복의 때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더 큰 복으로 주십니다. 복에 복을 더하십니다.

(선지자를 보내심)

7-8a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부르짖었으므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한 선지자를 보내시니 그가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 하나님은 곧바로 그들을 구원해 주시지 않고 이스라엘에게 한 선지자를 보내셔서 그들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말씀의 종을 보내사 말씀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들을 때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이 심히 미약하게 된 이유를 지적하여 주셨습니다.

(구원의 은혜를 잊은 이스라엘)

8b-9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의 하나님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며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오게 하여 애굽 사람의 손과 너희를 학대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너희를 건져내고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었으며 내가 ” 첫째는 이스라엘이 미디안의 통치를 받은 것은 애굽의 압제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노예로서 채찍에 맞으며 학대받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주의 종 모세를 보내어 그들을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고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에에게 주셨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조금 평안하고 풍요로워지자 하나님을 잊었습니다.

(가나안 신을 두려워함)

10절을 보십시오. “또 너희에게 이르기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 너희가 거주하는 아모리 사람의 땅의 신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였으나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셨다 하니라” 둘째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가나안 땅의 신을 두려워했습니다. 농사를 주관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비와 이슬을 주관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그들은 가나안 신이 노하여 농사를 망치게 할까 두려웠습니다. 그들에게 두려움이 임하자 가아낭 우상인 바알과 아세라를 숭배하는 죄악을 지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물질뿐 아니라 모든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어야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해야합니다. 우리가 마음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세상이 두려워지고 죄를 짓게 됩니다.

(겁쟁이 기드온)

1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사자가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에게 속한 오브라에 이르러 상수리나무 아래에 앉으니라 마침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을 들으신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죄를 책망하였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이스라엘의 죄를 책망하신 후에 한 구원자를 세우고자 하셨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의 아버지 요아스가 살고 있는 오비라에 이르렀습니다. 그때 기드온은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고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미디안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지하에 있는 포도주 틀에서 타작을 하였습니다. 지하에는 밀검불과 먼지로 가득찼습니다. 그래도 먹고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밀타작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두려움 많은 겁쟁이요. 먹고 살기 위해 자기 하나만 생각하는 소시민이었습니다. 이는 한창 비전에 불탈 나이에 도서관 칸막이에서 장래에 대한 두려움에 떨며 취업공부에만 열을 올리는 학생들과 같습니다. 여호아의 사자는 기드온에게 나타나 부르셨습니다.

(큰 용사 기드온)

12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매” 기드온은 용사가 아니요 겁쟁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드온을 이 겁쟁이야 졸장부야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큰 용사여 부르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기드온을 큰 용사라고 불렀을까요? 용사이신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큰 용사되신 하나님입니다. 모세는 홍해를 건넌 후에 하나님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여호와는 용사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 (출애굽기 15장3절) 여호와는 용사이십니다. 여호와는 큰 용사이십니다. 큰 용사되신 여호와가 함께 하시면 그도 용사로 변화됩니다. 여호와께서 함께 하실 때 기드온은 변화되어 미디안 군사를 한 사람을 치듯이 진멸시켰습니다. 이는 기드온이 잘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용사이기 때문입니다. 모세도 큰 용사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바로를 두려워하여 미디안으로 망명을 갔던 자입니다. 하나님이 부르실 때 그도 큰용사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홍해를 가르는 능력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모세만 나타나면 바로가 두려워떠는 자가 되었습니다.

(기드온에 대한 하나님의 믿음)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부르시고 평가하는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현재의 우리의 모습을 보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변화된 미래의 모습으로 현재 우리를 부르십니다. 현재 기드온은 겁쟁이입니다. 그는 미래 용사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장차 용사여"라고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현재 "큰 용사여"라고 부르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믿음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믿음이란 현재에 미래의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믿음 안에서는 기드온이 현재 큰 용사인 것입니다. 장차 큰 용사가 된 것은 다만 믿음의 결과일 뿐입니다.

(열국의 아버지 아브라함)

우리는 하나님이 이런 믿음을 갖고 계심을 성경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서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십년이 지나도 딸자식 하나 없었습니다. 주님을 위해 물질을 쓰고 시간을 드렸고 진심을 드렸지만 남는 것은 사람들과 원수 관계를 맺은 것뿐이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암담한 현실과 미래로 인해서 절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찾아오시고 그를 밖으로 끌고 나가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이는 얼마나 믿기 어려운 말씀입니까? 해도 안된다는 경험이 그에게 불신을 심었습니다. 사단은 해도 별수 없지 않느냐? 고 속삭였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를 의롭다고 여기셨습니다. 그는 믿음을 가진 후에도 사라가 임신하지 못하여서 첩 하갈을 얻어서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그는 이제 하나님께 어떤 기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스마엘의 아버지로 그럭저럭 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14년이 흘러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99세 때에 이런 아브라함을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책망하셨습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그리고 그의 이름을 바꾸어 주셨습니다.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하려 함이니라." 그때부터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을 아브라함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한 명의 아들도 없는 아브라함을 "열국의 아비여!"라고 부르셨습니다. 이는 인간적으로 보면 너무나 우스운 일입니다 자식 하나도 없는 늙은이를 열국의 아비라니! 참으로 믿기 어려운 일입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 일입니까? 이는 열국과 같은 많은 자손을 잉태케 할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브라함과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움직일 때 그에게서 열국과 같은 많은 믿음의 후손들이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와! 이는 엄청난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믿음이 있습니다.

(교회의 주촛돌 베드로)

시몬은 어부였습니다. 어부는 이제나 그때나 무식합니다. 거칠고 우악스럽습니다. 시몬은 감정적이고 다혈질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나서기 좋아하지만 자신이 한 말도 책임질 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장차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는 자입니다. 예수님은 시몬을 보시자마자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요한복음 1장 42절) 예수님은 베드로를 장자 게바가 될 테니 장차게바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현재 게바라고 부르셨습니다. 그의 이름을 곧바로 게바(베드로)로 바꾸어주셨습니다. 게바란 바위라는 뜻입니다 이는 교회의 기초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그를 "교회의 기촛돌이여"라고 부르셨습니다. 이는 적어도 삼년 뒤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그를 교회의 기초라고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의 믿음대로 그는 교회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베드로입니다. 열 두 제자도 마찬 가지입니다. 이들은 각양각색이고 인간적으로 부족하고 흠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들을 부르실 때 처음부터 "사도여!"라고 부르셨습니다. (누가복음 6장13절)

(왕같은 제사장들)

초대교회에 성도들은 핍박을 피하여 소아시아 지방에 흩어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나그네요 망명객이요 버림받은 자들이요 가난한 자들이었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한없이 비참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들을 무엇이라고 부릅니까?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들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벧전 2장 9절) 베드로는 그들을 "왕 같은 제사장들이여!"라고 불렀습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인간의 중보자들입니다. 인간의 죄를 속죄하고 중보기도하는 사람들입니다. 제사장들은 가장 영광스럽고 아름다운 직책입니다. 그들은 옷도 흰색 자주색 푸른색 붉은 색으로 화려합니다. 그리고 왕은 한 나라의 통치자들입니다. 가장 높은 직책입니다. 우리 복음을 전하는 자는 왕같은 제사장들입니다. 장차 예수님이 재림했을 때 성도들은 열 두 보좌에 않아서 왕노릇할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해야 다른 사람들이 구원을 받고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말을 순종해야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들에게 복을 주시고 우리를 저주하면 하나님이 그들을 저주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왕같은 제사장들이여!"라고 부르십니다.

(큰 목자여)

우리는 자신을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우리는 학생이요 직장인입니다 .학교에서는 작은 동아리입니다. 우리는 이런 현실을 보면 위축되고 왜소하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또 지방대 출신으로 취업이 어렵고 사람들이 우리를 인정해 주지도 않습니다. 집안도 내세울 것이 없는 가나한 사람들이요. 권세도 없는 집안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보십니까? 큰 목자여 부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학생들을 찾아 오셔서 말씀하십니다 "위대한 목자여!"라고 부르십니다. "위대한 말씀의 종이여!" 라고 부르십니다 누가 뭐라고 하든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눈으로 자신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를 보는 그 소망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왜냐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고난 속의 하나님 사랑)

13절을 보십시오.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나이까 또 우리 조상들이 일찍이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우리를 넘겨 주셨나이다 하니” 기도온은 "큰 용사여 주께서 너와 함께하시도다"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그는 큰 용사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미쳤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미디안 사람들에게 약탈 당하는 현실을 볼 때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시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는 출애굽 당시에 이적도 없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멀리 떠나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붙이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들을 미디안 손에 붙이신 것은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하셔서 그들을 돌이키고자 징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아들을 징계하십니다. 그들을 미디안 손에 징계하신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표시입니다. 반대로 이방인들이 우상 숭배할지라도 하나님은 그들을 내버려 두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입니다. 그들이 죄악에 빠지면 하나님은 어김없이 그들을 징벌하십니다. 우리도 가난하고 연약하게 살아가는 현실을 보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징계 속에 담긴 하나님의 사랑을 보야야 합니다. 반 고흐는 노아의 홍수 심판을 그림으로 그렸습니다. 그는 홍수 후에 무지개를 핏빛으로 벌겋게 그렸습니다. 그는 그 무지개에서 십자가에서 자신을 내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았습니다. 그는 무지개 속에서 자식을 죽일 수 밖에 없는 아버지의 슬픈 마음을 보았습니다. 고흐는 이 그림을 이스라엘이 나치 독일에 의해 학살 당할 때 그렸습니다. 이스라엘이 그처럼 많이 죽어가는 상황 가운데서 그는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통곡하시는 고통을 보셨습니다. 자신도 병마와 가난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현실의 어려움이 있다고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신 것이 아닙니다. 이곳에는 진한 하나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힘으로)

14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그를 향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이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하시니라” 이적을 기대하는 기드온에게 하나님은 네 힘을 의지하고 구원하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이 주신 우리의 힘을 의지하여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 오병이어를 드리면 하나님은 그것을 축복하셔서 오천명을 먹이십니다. 우리가 태산을 옮긴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하나님이 옮겨줄 것을 믿고 흙한 줌을 옮기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지진이 나게 해서라도 태산을 옮겨주십니다. 이기풍목사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는 아주 믿음이 좋으신 분이십니다. 그는 신학교를 다닐 때 금식철야기도를 하였습니다. "주님 저에게 all A를 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는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는 말씀을 잡고 밤새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시험지를 받으니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는 이것을 보고 나서 “하나님도 시험 문제만큼은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는 믿음을 잘 모르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으면 자신의 힘을 의지하여 공부를 하고 오병이어를 드려야 합니다. 그 때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힘을 의지하여 최선을 다하여 공부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세계적인 대목자가 되기를 원하면 말씀을 연구하고 한팀의 일대일을 해야 합니다.

(자신을 보면 절망한다)

15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 하니” 므낫세는 요셉의 아들로 손자가 아들의 반열에 오른 작은 지파입니다. 그리고 기도온은 집안의 막둥이였습니다. 그는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볼 때 자신감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자신을 보면 믿음이 달아납니다. 우리는 지혜도 능력도 부족합니다. 우리는 의지도 박약합니다. 아무리 능력이 많은 사람이라도 자신을 보면 불신이 생깁니다.

(임마누엘의 증거)

16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반드시 기드온과 함께 하십니다. 기드온은 연약하지만 하나님은 함께 하사 승리를 주십니다. 그는 자신을 보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지금 우리와도 함께 하십니까? 구약에서는 하나님이 선택한 소수의 사람들과 함께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예수님을 영접한 모든 사람들과 함께 해 주십니다 .예수님의 또 다른 이름은 임마누엘입니다.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입니다. (마태복음 1장 23절)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에수님을 영접한 모든 사람과 함께 해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도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태복음 28장 20절) 부활하신 하나님은 사명을 감당하는 자와 항상 함께 해주십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요한복음 14장 16절) 하나님은 성령님을 보내사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히브리서 13장 5절에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떠나지 않고 버리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해 주신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신다는 말입니다. 이사야는 강대국의 침략 앞에 두려워 떨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증거하였습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이사야 41장 10절)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우리를 굳세게 하시고 우리를 도와주시고 우리를 붙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연약하더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아야 합니다. 비록 기드온은 연약하더라도 그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을 때 그는 넉넉히 승리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때로 사람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났습니다. 그러나 그는 해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주께서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주 되시는 표징을 보이소서)

17-18절을 보십시오.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만일 내가 주께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와 말씀하신 이가 주 되시는 표징을 내게 보이소서 내가 예물을 가지고 다시 주께로 와서 그것을 주 앞에 드리기까지 이 곳을 떠나지 마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 그가 이르되 내가 너 돌아올 때까지 머무르리라 하니라” 기드온은 자신과 함께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 되시는 확신을 얻기를 원했습니다. 기드온은 내가 주께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와 말씀하신 이가 주여호와 하나님되시는 표징을 내게 보여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였습니다.

(불이 나와서 고기를 사름)

19-21절을 보십시오. “기드온이 가서 염소 새끼 하나를 준비하고 가루 한 에바로 무교병을 만들고 고기를 소쿠리에 담고 국을 양푼에 담아 상수리나무 아래 그에게로 가져다가 드리매 하나님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고기와 무교병을 가져다가 이 바위 위에 놓고 국을 부으라 하니 기드온이 그대로 하니라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잡은 지팡이 끝을 내밀어 고기와 무교병에 대니 불이 바위에서 나와 고기와 무교병을 살랐고 여호와의 사자는 떠나서 보이지 아니한지라” 기드온은 하나님께 염소새끼 한 마리를 준비하고 가루 한 에바로 무교전병을 만들고 고기를 소쿠리로 담고 국을 양푼에 담아서 상수리나무 아래 가져다가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고기와 무교전병을 반석 위에 두고 국을 그곳에 쏟으라고 하셨습니다. 기드온이 그대로 하자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잡은 지팡이 끝을 내어밀러 고기와 무교전병에 대자 불이 반석에서 나와 고기와 무교전병을 살랐습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떠나서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사자는 지팡이 끝에서 불이 나오게 하심으로 기드온과 말씀하시는 분이 바로 주의 사자임을 보여 주셨습니다. 불이 나와서 사르게 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불로 우리의 죄를 심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불처럼 힘이 있으신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불은 셩령의 불이요 말씀의 불이십니다. 기드온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시오.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사죄의 은혜)

22-24절을 보십시오. “기드온이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을 알고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내가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여 보았나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기드온이 여호와를 위하여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것을 여호와 살롬이라 하였더라 그것이 오늘까지 아비에셀 사람에게 속한 오브라에 있더라” 기드온은 그제야 자신과 대화하신 분이 하나님의 사자임을 알았습니다. 그는 주여호와를 대면하여 보았으므로 죽을 것 같아서 슬프다고 말합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불신의 죄악으로 심판을 받아 마땅한 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친히 그를 위로해 주셨습니다. 그에게 안심하고 두려워말라고 하셨습니다.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죄을 발견하자 그의 모든 죄악을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자비로우신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의 내면에 평안을 주셨습니다. 기드온은 그곳을 여호와 살롬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에게 평안을 주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먼저 죄사함을 주시고 그에게 힘을 주셨습니다.

(죄와의 싸움)

25-26절을 보십시오. “그날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네 아버지에게 있는 수소 곧 칠 년 된 둘째 수소를 끌어 오고 네 아버지에게 있는 바알의 제단을 헐며 그 곁의 아세라 상을 찍고 또 이 산성 꼭대기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규례대로 한 제단을 쌓고 그 둘째 수소를 잡아 네가 찍은 아세라 나무로 번제를 드릴지니라 하시니라” 기드온이 주의 사자를 만난 밤입니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네 아비의 수소 곧 칠년 된 둘째 수소를 취하여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그의 아버지 집에 있는 바알의 단을 헐며 단 곁의 아세라 상을 찍으라고 하셨습니다. 물질의 신과 쾌락의 신을 부수라는 것입니다. 이 산성 꼭대기에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규례대로 한 단을 쌓고 그 둘째 수소를 취하여 그가 찍은 아세라 나무를 태워 번제를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영접하고 온전한 순종을 드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미디안과 싸우기 전에 먼저 자신의 집에 있는 죄와 싸우도록 하셨습니다. 내면에 우상을 제거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통해서 적과 싸우기 전에 내부의 죄와 싸우게 하셨습니다. 우상 숭배가 만연된 당시의 분위기로 우상을 훼파하는 것은 죽음을 각오하는 것입니다. 기드온이 우상을 훼파했을 때 그들이 기드온을 죽이고자 하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명인의 삶을 살려면 우리 속에 우상을 섬기는 죄와 싸워야 합니다. 오직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영접해야합니다.

(밤에 우상을 깨뜨립)

27절을 보십시오. “이에 기드온이 종 열 사람을 데리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대로 행하되 그의 아버지의 가문과 그 성읍 사람들을 두려워하므로 이 일을 감히 낮에 행하지 못하고 밤에 행하니라” 기드온 집에 있는 우상은 매우 큰 우상이었습니다. 그는 종 열명을 데리고 밤에 우상을 훼파하고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습니다. 기드온이 밤에 행한 것은 가족과 성읍사람들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비록 연약하여 밤에 행했을지라도 불로써 자신에게 임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내면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순종했습니다.

(죄악된 시대)

28-30절을 보십시오. “그 성읍 사람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본즉 바알의 제단이 파괴되었으며 그 곁의 아세라가 찍혔고 새로 쌓은 제단 위에 그 둘째 수소를 드렸는지라 서로 물어 이르되 이것이 누구의 소행인가 하고 그들이 캐어 물은 후에 이르되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이를 행하였도다 하고 성읍 사람들이 요아스에게 이르되 네 아들을 끌어내라 그는 당연히 죽을지니 이는 바알의 제단을 파괴하고 그 곁의 아세라를 찍었음이니라 하니” 기드온이 우상을 훼파하자 성읍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성읍사람들은 기드온이 바알의 단을 훼파하고 아세라 단을 찍었기 때문에 당장 끌어내서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면 우상 숭배자인 자신들이 죽어야 하는데 그들은 의로운 기드온을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그 만큼 그 시대는 가치관이 전도되었고 죄악이 가득찬 시대였습니다.

(바알이 자신을 위해서 싸울 것이다)

31절을 보십시오. “요아스가 자기를 둘러선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바알을 위하여 다투느냐 너희가 바알을 구원하겠느냐 그를 위하여 다투는 자는 아침까지 죽임을 당하리라 바알이 과연 신일진대 그의 제단을 파괴하였은즉 그가 자신을 위해 다툴 것이니라 하니라” 그러나 기드온의 아버지 요아스가 기드온을 변호하여 주었습니다. 변호한 내용의 핵심은 왜 당신들이 바알을 위해서 나서서 큰 소리치느냐?는 것입니다. 정말 바알이 신이라면 바알 스스로 그 사람을 죽일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당신네는 가만히 있으라는 것입니다. 아버지 요아스가 바알의 편을 들지 않고 기드온 편을 들어서 기드온을 구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버지를 쓰셔서 기드온을 구해 주셨습니다. 이를 통해서 기드온은 하나님이 도우시는 큰 체험을 했습니다. 두려움을 극복하고 죄와 우상과 싸울 때 하나님께서 친히 도와주시고 생명을 보호해 주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바알을 위하여 싸우는 자)

32절을 보십시오. “그 날에 기드온을 여룹바알이라 불렀으니 이는 그가 바알의 제단을 파괴하였으므로 바알이 그와 더불어 다툴 것이라 함이었더라” 기드온은 이 우상 훼파를 통해서 여룹바알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여룹바알이라는 뜻은 바알과 싸우는 자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외적인 대적과 싸움을 싸우기 전에 먼저 내면의 죄와 싸워야 합니다. 모임에 파고드는 우상숭배의 죄 그리고 정욕의 죄 탐심의 죄, 불신의 죄, 불평불만의 죄 그리고 하나님을 시험하는 영적인 교만의 우상을 찍고 헐어버려야 합니다. 여호와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해야합니다.

(미디안의 공격)

33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 사람들이 다 함께 모여 요단 강을 건너와서 이스르엘 골짜기에 진을 친지라” 때에 미디안 사람과 아멜렉 사람과 동방 사람들이 다 모여 요단을 건너와서 이스라엘 골짜기에 진을 쳤습니다. 사사기 8장 10절을 참고하면 미디안 연합군은 13만 5천 명이었습니다. 이들은 평상시 전쟁을 익숙하게 한 백전노장들이었습니다. 미디안 사람들은 평상시처럼 이스라엘을 약탈하고자 하였습니다.

(여호와의 영이 임하니)

34,35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하시니 기드온이 나팔을 불매 아비에셀이 그의 뒤를 따라 부름을 받으니라 기드온이 또 사자들을 온 므낫세에 두루 보내매 그들도 모여서 그를 따르고 또 사자들을 아셀과 스불론과 납달리에 보내매 그 무리도 올라와 그를 영접하더라” 그때 여호와의 신이 기드온에게 강림했습니다. 강림하셨다는 말은 옷을 입혔다는 말로 성령께서 기드온을 온전히 사로잡았다는 뜻입니다. 죄사함을 받은 기드온에게 성령이 임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고자하는 자에게 성령이 임하십니다. 사단이 강력하게 역사할 때 하나님께서도 강력하게 역사하십니다. 우리는 사단의 역사가 있을 때 성령의 역사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사단의 역사가 강할수록 성령께서 강력하게 역사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기드온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기드온은 성령이 임하자 리더십이 생겼습니다. 기드온은 군사 소집 나팔을 불었습니다. 그러자 동족인 아비에셀 지파가 모여 들었습니다. 아비에셀은 므낫세 씨족 중에 일부였습니다. 기드온이 사자를 보내자 아비에셀이 속한 므낫세 지파와 그 외에 아셀 스블론 납달리 지파도 모여 들었습니다. 기드온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음으로 리더십이 생겼습니다. 자기 하나만 돌보던 자가 많은 군사들의 대장이 되었습니다. 기드온은 성령이 임하자 담대함이 생겼습니다. 포도주 틀에서 숨어 밀타작을 하던 자가 담대히 적을 대항하여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종은 하나님께 쓰임 받기 전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은 권능이 있습니다. 성령은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십니다. (이사야 11장 2절) 성령은 우리를 위로해 주시고 도와주시며 상담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평강을 주시고 사랑을 주십니다. 성령은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의 은사, 병고치는 은사, 능력을 행하는 은사, 예언의 은사, 영들 분별하는 은사, 방언의 은사, 방언통역의 은사를 주십니다. (고린도전서 8장 11-13절) 하나님은 말세에 예수님을 믿는 모든 육체에게 성령을 부어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도 성령을 기름 부음함을 받으셨고 열 두 사도도 오순절 다락방에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사도바울도 아나니아를 통해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그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을 때 능력있는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성령은 한 번 받은 것으로 그치지 않고 날마다 새롭게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성령 충만함을 주사 캠퍼스 개척역사를 힘있게 섬기게 도우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전쟁에서 승리한다는 확신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막상 싸움을 싸우고자 하니 또 두려움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구원에 대한 확신을 위한 기도)

36-40절을 보십시오. “기드온이 하나님께 여쭈되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거든 보소서 내가 양털 한 뭉치를 타작 마당에 두리니 만일 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주변 땅은 마르면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줄을 내가 알겠나이다 하였더니 그대로 된지라 이튿날 기드온이 일찍이 일어나서 양털을 가져다가 그 양털에서 이슬을 짜니 물이 그릇에 가득하더라 기드온이 또 하나님께 여쭈되 주여 내게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말하리이다 구하옵나니 내게 이번만 양털로 시험하게 하소서 원하건대 양털만 마르고 그 주변 땅에는 다 이슬이 있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그 밤에 하나님이 그대로 행하시니 곧 양털만 마르고 그 주변 땅에는 다 이슬이 있었더라”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기드온이 말씀에 확신을 얻기 위해서 기도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 같이 자신의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는 것에 대한 확신을 얻고자 했습니다. 그는 타작 마당에 양털 한 뭉치를 둘 테니 그곳에만 이슬이 내리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대로 해주셨습니다. 이슬을 짜니 물이 그릇에 가득했습니다. 기드온은 다시 한번 겸손히 기도했습니다. 이제는 양털에만 이슬이 내리지 않도록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번 기도도 그대로 들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기도하는 기드온에게서 확신이 오기까지 기도해야 함을 배웁니다. 확신을 얻은 후에 신중히 행동해야 함을 배웁니다. 하나님은 표적과 기적을 통하여 말씀에 확신을 주십니다. 예수님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확신이 오기까지 세 번이나 반복하여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확신이 생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 내면에 불신과 싸우는 일은 땀이 피로 바뀌는 고통스러운 노동입니다. 우리는 한 말씀이라도 확신이 오기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그때 그 말씀이 나에게 힘이 됩니다. 저는 봄학기 내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잡고 기도했습니다. 이 말씀에 확신을 얻었을 때 하나님은 사단의 역사가 강력하게 일어나는 중에서도 승리를 주셨습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신중히 행했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미디안을 이기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고 믿음으로 아멘하고 나갑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죄가 있을 때는 미디안의 통치를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야합니다. 나의 확신을 하나님이 주시는 확신으로 생각하고 믿습니다. 아멘! 만 반복하여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아는데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믿음으로 나가야 합니다.

(결론 우리의 참 모습)

요즘 많은 사람들이 겁많은 소시민으로 만족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연약하고 소심한 우리를 찾아오셔서 부르십니다. "큰 용사여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시오 죄를 심판하시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시오 우리의 생명을 보호해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에게 큰 소망으로 부르시는 소망의 하나님이시오. 믿음의 하나님이십니다. 큰 용사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께 나아가서 로 우리의 참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amen..!
사사기 6장 강해 큰 용사여!
말씀 사사기 6장1-사사기 6장 32
요절 사사기 6장 12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사사기 6장 강해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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