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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여호수아 5장 강해 여리고 전쟁 준비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6-05-21 00:00:00
조회수 : 3,437

문제지풀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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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5장 강해 여리고 전쟁 준비

말씀 여호수아 51-여호수아 515

요절 여호수야 58절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날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굴러가게 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은 믿음으로 요단강을 건넜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자연과의 싸움이 아니라 사람과 싸워야 합니다. 이들은 여리고 정복전쟁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들이 여리고 전쟁을 앞두고 해야할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무기를 구입하고 만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군사를 훈련시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딱 세 가지를 하라고 하십니다. 첫째는 이스라엘 백성이 할례를 하라고 합니다. 둘째는 유월절을 지키라고 합니다. 셋째 여호수아가 신발을 벗으라고 합니다. 이는 전쟁에서 모두가 불리한 행동입니다. 왜 이 세 가지를 하라고 하셨을까요?

 

(정신을 잃는 가나안 사람들)

 

1절을 보십시오. “요단 서편의 아모리 사람의 모든 왕과 해변의 가나안 사람의 모든 왕이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말리시고 우리를 건네셨음을 듣고 마음이 녹았고 이스라엘 자손들의 연고로 정신을 잃었더라

 

여호와께서 요단강물을 마르게 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은 요단을 건넜다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요단강물을 멈추게 하신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주위에 있는 강대국들은 하나님에 대한 소식을 듣고 마음이 녹고 정신을 잃었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자신들을 심판할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보내사 십자가에 죽게 하시고 다시 살리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하여 죽음의 강물이 멈추게 하시고 하나님 나라로 건너게 하셨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사단은 간담이 녹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유비에프를 통하여 놀라운 세계 선교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그 세계 선교 보고 대회를 갖습니다. 이를 듣고 사단은 간담이 녹고 정신을 잃을 것입니다.

 

(할례를 하라)

 

2,3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 여호수아가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할례산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할례를 행하니라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정복을 앞두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할례를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길갈의 할례산에서 할례를 행하였습니다. 칼이 없는 상황에서 불을 일으키는 부싯돌을 가지고 날카롭게 칼을 만들어 살을 베어내었습니다. 마취도 하지 않고 수술 도구도 없이 할례를 하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전쟁을 앞두고 할례를 한다는 것은 더욱 무모한 일 같습니다. 할례를 하여 고통할 때 여리고 사람들이 침략하면 전멸할 수 있습니다. 여리고 성은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이 할례하는 것을 보고 기습공격을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시므온과 레위는 세겜 대적들에게 할례를 하라고 한 후에 기습 공격하여 전멸시킨 일이 있습니다. 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할례가 필요했을까요?

 

(할례 받지 못한 자손들)

 

4-5절을 보십시오. “할례를 시행한 까닭은 이것이니 애굽에서 나온 모든 백성 중 남자 곧 모든 군사는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노중에서 죽었는데 그 나온 백성은 다 할례를 받았으나 오직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노중에서 난 자는 할례를 받지 못하였음이라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을 한 후에 시내산에서 할례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40년 광야 생활을 하면서 다 죽었습니다. 광야에서 태어난 자는 할례를 하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은 할례 받지 못한 이스라엘 자손에게 할례를 받게 하셨습니다. 할례는 아브라함이 불신을 회개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을 때 한 것입니다. 언약 백성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리고 정복을 앞두고 이스라엘이 할례를 하게 함으로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도록 도우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전쟁을 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할례를 통하여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상이의 언약관계를 맺게 하셨습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과 할례를 받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표식이었습니다. 그들이 할례를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정체성을 갖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정체성을 갖고 전쟁을 하게 하셨습니다.

 

(마음의 할례)

 

6,7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치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대하여 맹세하사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하여 우리에게 주마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그들로 보지 못하게 하리라 하시매 애굽에서 나온 족속 곧 군사들이 다 멸절하기까지 사십년 동안을 광야에 행하였더니 그들의 대를 잇게 하신 이 자손에게 여호수아가 할례를 행하였으니 길에서는 그들에게 할례를 행치 못하였으므로 할례 없는 자가되었음이었더라

 

할례를 하고 이스라엘에서 출애굽한 한 사람들은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원망하고 불평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가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간음하고 우상숭배하고 하나님을 시험하였습니다. 교만하여 반역하고 하나님을 시험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보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다 불순종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었습니다. 애굽에서 나온 사람은 육신의 할례를 받았으나 마음의 할례를 받지 못하였습니다. 그 후 태어난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할례를 하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할례를 받지 못한 이들에게 할례를 하라고 하십니다. 그들에게 육신의 할례와 함께 마음의 할례를 받게 하였습니다. 광야에서 모든 죄를 끊어버리게 하십니다.

 

(아브라함의 할례)

 

본래 할례는 아브라함의 때에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큰 민족을 이루며 복을 주어 이름을 창대케 할 것이며 복의 근원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을 통하여 천하만민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하나님을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10년이 지나도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첩 하갈을 얻어서 이스마엘을 얻었습니다. 이스마엘이 태어나자 하나님의 약속하고는 상관없이 살았습니다. 단지 이스마엘의 아버지로 만족하며 살았습니다. 그냥 아파트를 사고 직장에서 돈 벌고 가끔 극장도 가며 사는 삶으로 만족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표시로 일주일에 한 번씩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에게는 양치는 것도 말씀을 전하는 것도 이제 잊어버린 지 오래였습니다. 복의 근원으로서 소망이 사라졌습니다. 이스마엘을 낳고 그렇게 십삼 년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십삼 년이나 기다렸습니다. 그래도 변화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고 책망하셨습니다. 그에게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지라약속을 새롭게 하셨습니다. 이름도 열국의 아비라는 뜻의 아브라함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그로 심히 번성케 하리니 나라들이 그에게서 나오며 열왕이 그에게서 나올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약속의 말씀을 살에 새기기 위해서 할례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할례의 의미는 불신의 살을 잘라내는 것입니다. 자기중심적이고 가정 중심적인 삶을 잘라내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중심으로 살겠다는 결단입니다. 이제는 열국의 아비로 사명인의 삶을 살겠다는 결단입니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살겠다는 것입니다. 이후부터 이스라엘 백성은 모두 할례를 하게 하였습니다. 할례를 하지 않는 자는 이스라엘 백성에서 끊어져 나갔습니다. 할례를 하지 않은 것은 믿음이 없이 불신 가운데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할례 받은 백성으로서 긍지와 자부심이 대단했습니다. 할례는 선민이라는 표시입니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운 동기도 할례 없는 자가 할례 받은 백성을 모욕하였기 때문입니다. 사울이 자살해서 죽은 것도 할례 받지 않은 백성들에게 죽음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모세의 할례)

 

모세도 시내산에서 살면서 할례를 받았습니다. 모세가 애굽 땅으로 돌아갈 때 하나님은 모세를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고자 하면서 가족 중심의 신앙을 떠나지 못하였습니다. 처자식을 하나님께 맡기지 못하였습니다. 모세의 아내 십보라가 차돌을 취하여 아들의 양피를 베어던지면서 모세에게 당신은 피 남편이라고 했을 때 하나님은 모세를 살려주셨습니다. 이후에 모세는 처자식을 장인집에 돌려보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출애굽하기 직전 유월절 만찬을 먹을 때 할례를 하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할례를 한 출애굽 일 세대는 다 죽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할례를 받지 못한 출애굽 이 세대가 태어났고 하나님은 이들에게 할례를 하게 하였습니다. 이들에게 할례를 행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애굽의 수치를 굴러가게 하심)

 

8-9을 보십시오. “온 백성에게 할례 행하기를 필하매 백성이 진중 각 처소에 처하여 낫기를 기다릴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날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굴러가게 하였다 하셨으므로 그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할례를 마쳤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할례를 하라고 한 이유를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애굽에서의 수치를 굴러가게 하신 것입니다. 애굽의 수치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없이 사람들의 노예로 살아온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우상을 숭배한 삶입니다. 불신하고 불평하고 원망하고 교만한 삶입니다. 그들은 출애굽을 하였지만 마음 속에는 애굽의 노예생활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자유롭지 않았습니다. 마음에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 음란하고 정욕적으로 사는 것이 자연스러웠습니다. 사람의 종이 되어 반항적이고 불평과 불만이 많았습니다. 소망이 없고 무기력하게 살았습니다. 수동적이고 의존적으로 살아갑니다. 노예들은 생각하기를 싫어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40년 광야 생활을 하게 한 후에 할례를 행함으로 이런 불신자로서 수치를 굴러가게 하신 것입니다. 이제는 이 모든 애굽 생활을 청산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거룩한 백성, 순종하는 백성, 감사하는 백성, 사랑하는 백성으로 살게 하셨습니다. 꿈과 비전과 자유가 있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노예에서 자유한 삶)

 

얼마 전에 sbssos라는 프로그램에서 현대판 노예 할아버지가 나왔습니다. 그는 주인에게 연금도 착취당하고 노동력도 착취당했습니다. 그는 음식 쓰레기를 뒤져서 허기를 채웠습니다. 하수구에서 몸을 씻어야 했습니다. 옷은 다 너덜너덜했습니다. 마치 소돼지 같은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주인에게 맞아서 몸의 여기저기에는 상처투성이었습니다. 그는 그러면서도 그를 구원해 주려고 하는 사람들을 피하고 거절합니다. 그 삶을 당연히 여기며 자신을 착취하는 주인을 당연히 여깁니다. 하지만 sos팀에 의해서 할아버지는 구원을 받고 현재 양로원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모습입니다. 인간은 죄와 사망의 권세에 시달리면서도 그 가운데서 자유를 찾지 못합니다. 도와 주려고 하는 사람을 오히려 무시하고 멸시합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이 노예로 살면서도 430년을 살다보니 그곳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소망을 잃어버렸습니다. 몸은 벗어났어도 마음은 아직 노예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할례를 하여서 왕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로 삼기를 원하십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할례)

 

우리 신약에서 할례는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사도행전에 보면 신약에서도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루살렘 공회에서는 분명히 할례를 받지 않아도 구원을 받을 수 있음을 천명하였습니다. 다만 할례의 영적의미가 중요한 것입니다. 골로새서 211,12절은 말씀하십니다.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우리는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았습니다. 구약에서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양피를 베었습니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하나님의 말씀 곧 복음으로 할례를 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할례를 받습니다. 십자가의 칼로 죄악을 베어내야합니다. 육적인 사람을 베어내고 영적인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더 나아가서 옛사람은 완전히 죽여서 무덤에 묻어야합니다. 교만의 사람, 불신의 사람, 탐욕의 사람, 자기 사랑의 사람을 무덤에 묻어야 합니다. 부활의 주님과 함께 그리스도인으로 다시 살아나야합니다. 겸손과 순종과 감사와 사랑을 하는 그리스도인으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이것이 영적인 할례입니다. 따라서 신약에서 세례는 영적인 할례와 같은 것입니다.

 

(말씀을 새기는 삶)

 

로마서 229절에 보면 사도바울은 우리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지만 할례를 하지 않으면 할례가 무익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율법을 행하는 자가 진정한 유대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할례는 육체에 하는 것이 아니고 마음에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결국 할례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말씀을 높이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사야서 보면 이렇게 말씀을 높일 때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이루실 것인가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말씀을 높이면 하나님도 우리를 높여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승리를 주십니다.

 

(유월절을 지킴)

 

10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자손들이 길갈에 진 쳤고 그 달 십 사일 저녁에는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켰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길갈에서 유월절을 맞이하여 처음으로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그들은 유월절을 지키면서 그들을 430년의 노예살이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였습니다. 열 가지 재앙과 어린양의 피로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기억하였습니다. 그들은 새 생명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그들은 유월절을 지키며 가나안 땅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고자 하였습니다. 신약에서 유월절은 어린 양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와 찢기신 삶을 나의 것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성만찬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를 통하여 죄사함을 받고 예수님의 생명을 소유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령을 따라서 사는 것입니다.

 

(무교절을 지킴)

 

11절을 보십시오. “유월절 이튿날에 그 땅 소산을 먹되 그 날에 무교병과 볶은 곡식을 먹었더니

 

이스라엘은 유월절 후에 무교절을 지켰습니다. 누룩을 제거했습니다. 마음에 있는 죄의 누룩 거짓의 누룩을 제거했습니다. 순결하고 진실한 삶을 결단하였습니다. 우리는 죄사함을 받은 후에 거룩한 삶을 살아야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완전하신 것같이 우리도 완전해야합니다.

 

(만나가 그침)

 

12절을 보십시오. “그 땅 소산을 먹은 다음 날에 만나가 그쳤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는 만나를 얻지 못하였고 그 해에 가나안 땅의 열매를 먹었더라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만나를 주셔서 이스라엘을 먹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스스로 먹고 살 수 있는 약속의 땅에 왔습니다. 이제 만나는 그치게 되었습니다. 왜냐면 계속하여 만나를 주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게을러지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 310절에 하나님은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먹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일을 하고 그 대가를 얻는 것이 이 세상에 사는 우리 삶의 원칙입니다.

 

(여호와의 군대장관)

 

13,14절을 보십시오.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이 왔을 때에 눈을 들어 본즉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 섰는지라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그에게 묻되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대적을 위하느냐 그가 가로되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 장관으로 이제 왔느니라 여호수아가 땅에 엎드려 절하고 가로되 나의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여호수아가 여리고 가까이 왔을 때에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군대장관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가나안 정복 전쟁을 하시기 위해서 이곳에 오셨습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군대장관을 보자 군대장관에게 우리 편이냐 적의 편이냐 물었습니다. 그런데 군대장관은 누구의 편이라고하지 않으셨습니다. 나는 아무편도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군대정관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군대장관이 하나님 편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 편)

 

어느 교회에서 분쟁이 일어나서 서로 싸웠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각자 자기 편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때 한 사람이 이 밀씀을 근거로 하나님이 우리 편이라고 생각지 말고 우리가 하나님 편이 되자는 말을 하는 것을 듣고 공감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이 내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내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 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도 내편이 되어서 우리를 위해서 싸워주실 것입니다. 여호수아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 자신의 편이 되어 달라고 기도하는 것보다 자신이 하나님 편이 되어서 싸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믿으라)

 

15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군대 장관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신발을 벗으라고 하셨습니다. 전쟁을 하기 위해서는 워카를 신고 끈을 졸라매야 하는데 신발을 벗으라고 하십니다. 신을 벗으라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첫째는 이곳에 하나님이 임재하심을 믿으라는 말입니다. 여호수아는 지금까지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지만 지금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신을 신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믿으면 거룩한 땅에서 신발을 벗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마음속에 영접해야 합니다. 야곱은 에서가 자신을 죽이고자 하는 것을 피하여 메소포타미아 지방으로 도망을 갔습니다. 그는 도망가다가 벧엘이라는 곳에서 돌베개를 하고 잠을 잤습니다. 그는 외롭고 쓸쓸했습니다. 미래에 대한 염려와 불안이 밀려 왔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꿈에 나타나셔서 그와 함께 하시는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야곱은 그때 꿈에서 깨어나 이렇게 말합니다. “두렵도다 이곳이 다른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야곱은 그곳에 계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야곱은 그곳에 돌단을 쌓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신자가 있는 그곳이 바로 하나님이 임재하신 곳입니다. 모세는 살인을 하고 도망하여 미디안 땅에 거하였습니다. 그곳에서 양을 치며 사십년을 살았습니다. 그곳에서는 어떤 희망도 의미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떨기 불꽃 가운데서 모세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신발을 벗으라고 하였습니다. 모세는 그곳에서 신발을 벗고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영접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우리의 마음에 들어오셨습니다. 우리는 죄의 신발을 벗어야 합니다. 불신의 신발을 벗어야 합니다. 불평의 신발, 불순종의 신발을 벗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주시는 평안의 신발을 신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성령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도우실 것입니다.

 

(주도권을 양도하라)

 

둘째, 신을 벗는 것은 주권을 양도하는 것입니다. 룻기에 보면 룻의 기업을 무르는 장면이 나옵니다. 당시는 남편이 죽으면 시동생이 남편을 대신하여 형수를 취하고 그 기업을 계승해야 했습니다. 만약 시동생도 없으면 가까운 친척이 결혼하여 기업을 계승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룻은 남편도 죽고 시동생 둘도 다 죽었습니다. 그에게는 기업을 무를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때 가까운 친척 하나가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그는 룻의 집에 있는 재산은 탐이 나서 기업을 무르고자 하였지만 룻과 결혼해야 한다는 말에 기업 무르는 것을 포기합니다. 그리고 보다 먼 친척인 보아스가 기업을 무르게 됩니다. 이때 기업을 무를 자가 신을 벗어서 보아스에게 줍니다. 왜냐면 그 당시에 모든 것을 무르거나 교환하는 일을 확정하기 위하여서는 신을 벗어서 이웃에게 주는 전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신을 벗는다는 것은 이스라엘 군대의 지휘권을 하나님의 군대장관에게 넘겨준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죄의 신을 벗자)

 

우리도 우리의 신발을 벗어야 합니다. 먼저 내가 있는 가정이나 직장에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영접하고 더러운 죄의 신발을 벗어야 합니다. 양똥 묻은 신발, 정욕의 신발을 벗어야합니다. 가장은 신발을 벗어서 하나님께 넘겨 드려서 하나님께서 가장이 되게 해야 합니다. 원장은 신을 벗어서 하나님을 원장으로 모셔야 합니다. 목자는 신을 벗어서 하나님을 목자로 모셔야 합니다. 천안 유비에프의 목자도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나 오요한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우리의 목자로 모십니다. 학생들은 신을 벗고 하나님을 지혜의 왕으로 모셔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영적 전쟁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할례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고 새로운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둘째는 유월절을 지키며 구원의 은혜를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신을 벗어야 합니다. 우리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우리의 마음 속에 모셔 들여야 합니다. 그분께 우리의 싸움의 모든 주권을 양도해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편이 되어야합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을 나의 그리스도로 그리고 나의 군대장관으로 모셔들여서 우리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여호수아 5장 강해 여리고 전쟁 준비

말씀 여호수아 51-여호수아 515

요절 여호수야 58절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날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굴러가게 하였다

여호수아 5장 강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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