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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욥기 23장 강해 정금 같이 나오리라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0-04-07 00:00:00
조회수 : 2,836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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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23장 강해 순금같이 나오리라 342

욥기 231-욥기 2317

요절 욥기 2310절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욥기 2324장은 엘리바스의 세 번째 변론에 대한 욥의 대답입니다. 욥은 지금까지 많은 고난을 받았습니다. 재산을 하루 아침에 잃고 자녀도 잃었습니다. 건강을 잃고 여러 달 극심한 피부병에 시달렸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욥은 자신이 받는 고난의 의미를 깨닫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단련하시기 위해서 고난을 주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 단련을 통하여 자신이 정금같이 변화될 소망을 보고 있습니다. 그는 정금같이 귀하고 순수하게 변화될 것을 믿었습니다. 그는 이 소망이 있었기 때문에 현재의 고난을 잘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우리 속에 있는 고난의 의미를 깨닫고 고난을 감당할 힘을 얻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욥의 반항과 근심)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오늘도 내게 반항하는 마음과 근심이 있나니 내가 받는 재앙이 탄식보다 무거움이라. 내가 어찌하면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의 처소에 나아가랴 어찌하면 그 앞에서 내가 호소하며 변론할 말을 내 입에 채우고 내게 대답하시는 말씀을 내가 알며 내게 이르시는 것을 내가 깨달으랴 그가 큰 권능을 가지시고 나와 더불어 다투시겠느냐 아니로다 도리어 내 말을 들으시리라 거기서는 정직한 자가 그와 변론할 수 있은즉 내가 심판자에게서 영원히 벗어나리라.”(1-7)

 

욥은 오늘도 하나님께 반항하고 근심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고난에 대해서 무관심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는 의로운 자신에게 왜 고난을 주셨는지 하나님께 반항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죄가 많은 다른 사람도 잘 사는데 왜 하필 나에게 이런 고난을 주시는가 반항심이 생겼습니다. 혹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가 있는가 근심하였습니다. 내가 깨끗하게 산다고 살았지만 하나님 앞에서 나도 알지 못하는 죄가 있는가 근심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받는 재앙이 탄식보다 무거웠습니다. 그는 재앙으로 인하여 탄식보다 더 깊은 탄식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탄식하여도 없어지지 않는 고난을 받고 있었습니다.

욥은 자신의 반항심과 근심을 사람들에게 가지고 나가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진정한 위로자가 되지 못합니다. 친구들은 그를 정죄하고 그의 마음에 상처를 두었습니다. 그는 반항심과 근심을 하나님 앞에서 해결하고자 하나님께 들고 나갔습니다. 욥은 하나님을 찾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처소에 나가서 기도하고자 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였습니다. 호소는 present my case로서 자신의 상황을 그대로 하나님께 쏟아놓는 것입니다. 근심과 반항심을 그대로 털어놓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고통이 불합리함을 하나님과 변론하기를 원했습니다. 변론은 argument로서 무슨 문제에 대해서 합리적으로 따지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고난 받을 이유가 없는데 고난을 주시는 하나님께 따지고자 하였습니다. 만약에 죄가 있으면 죄를 알려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욥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대답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싶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큰 권능으로 연약한 자신과 다투지 않을 것을 알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자신의 말을 들어주실 것을 알았습니다. 자신의 사정을 다 기록해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고난에 두신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또한 그는 정직한 자로서 좋으신 하나님과 변론하고자 하였습니다. 여기서 그와 변론은 reason with him으로서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왜 자신에게 고난을 주시는지 합리적인 이유를 설명해주시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에게 고난을 주는 이유를 앎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시련과 질병의 심판에서 영원히 벗어나기를 원하였습니다.

 

(문제를 들고 나가 하나님의 뜻을 찾는 삶)

 

우리는 욥을 통해서 두 가지를 배웁니다. 첫째는 문제를 갖고 하나님께 나가야합니다. 우리는 문제를 갖고 사람들과 싸우지 말아야합니다. 욥의 친구들은 욥의 고난을 율법적이고 인과응보적으로 보았습니다. 욥이 친구들과 싸우면 피곤합니다.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체념하게 됩니다. 운명으로 받아들이면 자신을 자학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나가서 하나님과 대화해야 합니다.

둘째 고난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야합니다. 진실하게 자신의 사정을 아뢰고 말씀을 듣는 가운데 그 고난에 대한 하나님의 합리적인 설명을 들어야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반항하는 마음 근심을 풀어주실 것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소경이 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그 사람이나 부모가 죄를 범한 것으로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고난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시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설명을 듣자 소경은 힘이 났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눈을 뜰 수 있었습니다.

나사로가 병이 났습니다. 사람들은 이것은 죽을 병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영광을 얻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편에서 해석을 하자 제자들은 그 사건을 소망 가운데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많은 사건 사고가 일어납니다. 우리는 이런 것을 우연이나 운명으로 받아들이지 말아야합니다. 이 가운데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찾아야합니다. 우리에게 있었던 한국 동란, IMF경제 위기도 하나님 편에서 보면 우리민족을 회개시키고 연단시키고자 하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입니다. 우리가 시험에 떨어지고 질병에 걸렸으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왜 이런 것을 주셨는지 하나님 편에서 해석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러면 의미가 생기고 소망이 생깁니다.

 

(외적인 데 안 계신 하나님)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8,9)

 

욥이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지만 하나님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앞으로 가도 하나님은 거기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뒤로 가도 하나님은 그곳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왼쪽에서 일하지만 왼쪽으로 돌이켜도 하나님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오른쪽에서 일하고 계시지만 오른쪽으로 돌이켜도 하나님을 볼 수 없었습니다. 사방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지금 하나님은 욥과 함께 하셨습니다. 고난을 통하여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너를 신뢰한다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욥은 외적인 어떤 변화나 표적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였습니다. 이렇게 표적을 구하면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욥을 아시는 하나님)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10)

 

10절에 그러나가 중요합니다. ‘그러나는 극적인 전환을 의미합니다. 욥은 하나님을 외적인 데서 하나님을 만날 수 없자 내면적인 데로 시선을 돌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깨우침을 얻고자 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욥에게 한 가지 확신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는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성령으로 그의 마음에 대답해주셨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자신의 길을 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의 처지를 아시고 그의 길을 아시고 인도하여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마음 속에 반항심도 아시고 근심도 아십니다. 욥은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욥의 믿음이 순수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가 고난을 받으면 반항심과 근심의 불순물이 나타나는 것도 아셨습니다. 그는 인간적인 면이 있음도 아십니다. 그의 인간적인 면이 훈련을 받아야하는 것도 아십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금보다 귀한 은혜 신앙을 가르쳐주시고자 하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신앙을 가르치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욥이 이런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을 것도 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에게 고난의 용광로를 통과 하시게 한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욥의 무죄함을 아시고 그의 선을 행한 것도 아시고 의로운 것도 아십니다. 그의 연약함을 아시고 고통하는 것도 아십니다. 하나님은 욥을 아시고 하나님의 때에 욥의 고통을 감하여 주실 것입니다. 욥을 아시고 욥을 도와주십니다. 하나님은 욥의 인생을 전체적으로 보시고 아시고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내가 나를 아는 것보다 나를 더 잘 아신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따르게 됩니다. 하나님이 나를 아신다는 것만 기억해도 나의 슬픔이 많이 사라집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아시고 우리가 감당치 못할 시험을 주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시험하실 때는 피할 길도 함께 내어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자신의 목숨까지 우리를 위하여 버리시는 선한 목자이십니다. 우리는 우리를 아시고 우리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신 예수님을 만날 때 반항심과 근심이 해결됩니다.

 

(욥을 순금처럼 단련하시는 하나님)

 

둘째, 욥은 하나님이 자신을 단련하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욥을 벌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단련하고 계신 것입니다. 욥을 단련하여 그의 믿음을 순금과 같이 만들고 계십니다. 우리가 시련의 때에 받는 고난으로 인하여 잠간 근심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시련의 때도 크게 기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금보다 귀한 믿음을 단련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하여 우리의 믿음을 정금처럼 순수하게 만들고 계십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믿음으로 만들어주십니다.

믿음은 이론이 아닙니다. 성경공부 많이 한다고 믿음이 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이 기도한다고 믿음이 커지는 것도 아닙니다. 사금이나 산금(山金)에서 얻은 금은 조잡한 금이라고 하여 조금(粗金)이라고 부릅니다. 예전에는 순금을 만들 때는 조금을 망치로 부수어서 뜨거운 용광로 속에 집어넣어 녹여서 순금을 추출하였습니다.

금이 용광로 속에 들어가서 순금이 되듯이 우리의 믿음은 고난을 통하여 순수하게 됩니다. 고난이 없이는 믿음이 견고해 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에게 고난을 주십니다. 욥은 하나님의 단련을 통하여 믿음이 순수해졌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축복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시련과 고난을 주셔도 순수하게 하나님을 자신의 창조주요 구원주로 믿었습니다.

사단은 욥이 아무 까닭없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가 아무 까닭없이 순수하게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욥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알고 겸손해졌습니다 .참으로 이런 믿음이 아름다운 믿음입니다. 귀한 믿음입니다.

사람은 태어나며 불순물이 있습니다. 인간적인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거스리는 반항심이 있습니다. 죄를 사랑하는 세상적인 욕심이 있습니다. 미움과 시기와 다툼이 있습니다. 원망하고 불평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교만하여 남을 무시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이기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고난은 이런 인간적이고 육적인 것을 제하고 순수한 사람을 만듭니다. 죄를 멀리하는 사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 만듭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하는 사람,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겸손한 사람으로 만듭니다. 이것을 알 때 우리는 고난의 날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혈기를 아시고 사십년 연단하셨습니다. 다윗의 정욕적이고 거짓된 것을 아시고 사울을 통해서 훈련하여 순결하고 진실한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요셉의 내면성 없는 것을 아시고 그를 노예와 죄수로 연단하여 섬기는 사람으로 만드셨습니다. 벧전 16, 7절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정한 음식보다 귀한 말씀)

 

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랐으며 내가 그의 길을 지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정한 음식보다 그의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도다.”(11-12)

 

욥은 하나님의 뜻을 확신하고 이제 하나님의 발걸음을 따라서 한 걸음씩 걸어갔습니다. 하나님의 길을 따라감으로 죄악으로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입술로 하시는 명령의 말씀을 어기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는 십계명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는 고난을 받자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 깊이 새겨졌습니다. 더 나아가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였습니다. 그는 맛있는 음식보다 그분의 입의 말씀을 더 귀히 여겼습니다.

시편 기자의 고백처럼 말씀을 천천 은보다 더 귀히 여겼습니다. 귀히 여겼다는 말은 I have treasured the words of his mouse로 하나님의 말씀을 정금과 같이 귀하게 여겼다는 말입니다. 욥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맛있는 음식과 같이 맛있고 꿀송이보다 더 달았습니다. 욥은 하나님의 훈련을 통하여 말씀의 맛을 알고 말씀에 순종하는 말씀의 종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고난을 받으면 말씀의 가치를 알고 말씀의 맛을 알게 됩니다.

 

(인격적인 하나님을 모르는 욥)

 

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능히 돌이키랴 그의 마음에 하고자 하시는 것이면 그것을 행하시나니 그런즉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 이런 일이 그에게 많이 있느니라.”(13,14)

 

욥은 하나님은 뜻이 일정하게 정해져 있다고 말합니다. 누구도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시는 뜻을 돌이킬 수 없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그 마음에 하고자 하시는 것을 다 행하신다고 합니다. 욥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었습니다. 욥은 자신이 재산을 잃고 자식을 잃고 건강을 잃은 것도 돌이킬 수 없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뜻 위에서 자신의 뜻을 이루어가십니다. 하나님은 절대주권자이십니다. 하나님은 긍휼로 절대주권을 행하고 계십니다. 욥은 그런 일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오 가져가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킹제임스 성경에는 13절 앞에 그러나가 있습니다. 욥은 절대주권에 대한 깨달음이 있었지만 그의 신앙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욥은 하나님의 뜻을 알았지만 인격적인 하나님을 충분히 알지 못하였습니다. 욥은 누구도 하나님의 뜻을 돌이킬 수 없다고 합니다. 그는 성경에 하나님께서 때로 뜻을 돌이키시기도 하신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를 긍휼히 여기십니다. 우리의 체질이 연약함을 아시고 때로 뜻을 돌이키십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통곡하는 기도를 들으시고 뜻을 돌이키사 그를 15년 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니느웨 백성들이 회개하는 것을 보시고 시십일 후에 멸망시키고자 하는 뜻을 돌이켰습니다. 하나님은 레위지파가 뜨겁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보시고 저주하는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송아지 우상을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을 다 멸하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의 중보기도를 들으시고 뜻을 돌이키사 멸하지 않았습니다. 시편 106편에 보면 사사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살면서 죄악을 반복하여 짓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징계하고자 하였지만 그들이 회개하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긍휼을 베풀어주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기도를 들으시고 뜻을 돌이키사 롯을 구하셨습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순종하며 감사할 때 하나님은 때로는 뜻을 돌이키사 우리에게 복을 주십니다. 고난을 감하여 주십니다.

또한 욥은 하나님은 자기의 마음에 하고자 하는 대로 행하시는 분이라고 말합니다. 욥에게 하나님은 마치 폭군과 같이 보였습니다. 그는 하나님도 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에 의해서 능력이 제한 받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다하실 수 있다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지 않게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천 년 후에 구원역사를 이루시지 않고 바로 구원역사를 이루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도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고자 하였지만 아브라함의 기도를 들으시고 롯이 피하기 전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 자신을 조롱하는 자들을 다 심판하실 수 있지만 그들을 심판하실 수 없었습니다. 그들을 사랑하여 자신의 능력을 포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공의로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기도 하시고 사랑과 공의에 의해서 하지 못하는 일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인격적인 하나님을 알아야합니다.

 

(두려워해야 하지만)

 

그러므로 내가 그 앞에서 떨며 지각을 얻어 그를 두려워하리라 하나님이 나의 마음을 약하게 하시며 전능자가 나를 두렵게 하셨나니 이는 내가 두려워하는 것이 어둠 때문이나 흑암이 내 얼굴을 가렸기 때문이 아니로다.”(15-17)

 

욥은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 떨었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의 마음을 약하게 하시며 두렵게 한다고 고백합니다. 욥이 두려워하는 것은 하나님 때문이지 흑암이 욥을 기리웠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욥은 고난 중에서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는 훈련을 받으며 하나님을 경외하였습니다. 하나님의 훈련은 우리를 경외심 있는 사람으로 키우십니다.

그러나 욥은 인격적인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품에 안길 수도 있어야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해야 우리는 하나님의 따뜻한 품에 안길 수 있습니다. 탕자와 같이 아버지를 사랑하여 아버지에게 달려갈 수 있습니다.

 

(훈련 받을 때 소망을 갖자)

 

결론적으로 우리는 고난 중에 우리를 정금처럼 연단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을 믿어야합니다. 욥이 두려운 중에도 하나님이 자신을 연단하신 후에 정금같이 될 것을 믿은 것은 큰 믿음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그 주권이 선하심을 믿었습니다. 그는 현재의 환난이 소망을 이루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는 정금같이 순수한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소망 속에서 인격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해야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할 때 우리의 훈련을 통해서 하나님의 소망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훈련을 많이 받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두신 소망이 크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소망을 가질 때 하나님의 훈련을 잘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고난 중에서도 사랑의 하나님을 보아야합니다. 긍휼의 하나님을 보아야 합니다. 우리를 훈련하여 크게 쓰시고자 하시는 소망의 하나님을 보아야합니다. 정금같이 변화될 소망을 보아야합니다. 우리가 이런 소망을 갖고 현실의 고난을 극복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더 나아가서 적극적으로 고난을 자원하여 받을 수 있습니다. 아멘!

욥기 23장 강해 순금같이 나오리라 342

욥기 231-욥기 2317

요절 욥기 2310절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욥기 23장 강해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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