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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이사야 60장 강해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2-01-18 00:00:00
조회수 : 6,213

문제지풀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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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60장 강해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말씀 이사야 601-이사야 6022

요절 이사야 60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사람들은 떠오르는 새천년의 태양을 보기 위해 몇 달 전부터 정동진 숙박업소를 예약했습니다. 그러나 날씨 관계로 아쉽게도 정동진에서 태양을 볼 수 없었습니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실망하고 돌아 왔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큰 빛이 있는 곳으로 모여 듭니다. 그 빛을 받고 자신도 빛을 발하는 희망찬 인생을 살고자 합니다. 그러나 세상에 있는 자연의 빛이나 사람이 만든 빛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고 때가 되면 꺼져 버립니다. 우리를 실망 시키지 않고 우리에게 영원한 희망을 주는 빛은 어떤 빛입니까?

본문에는 하나님이 우리의 빛이 되심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빛을 받아서 일어나 빛을 발하는 인생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는 은혜를 말합니다. 그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는 것을 소망합니다. 교회를 통하여 구원 받은 백성들이 새로운 이스라엘을 세울 것을 예언합니다. 예루살렘은 예수 믿는 사람들의 마음의 고향입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누워 있는 자들)

 

1절 전반부를 보십시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빛이 만방에 전해집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먼저 일어나라고 외치십니다. 일어나라는 말씀을 볼 때 현재 그들은 드러누워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낙심하고 절망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희망을 상실할 때 드러눕습니다. 배에 기름이 끼고 배가 부르면 드러눕습니다. 잠을 잘 때 드러눕습니다. 병이 들면 드러눕게 됩니다. 죽게 되면 눕게 됩니다. 하나님은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드러누운 이스라엘을 향하여 이제 일어나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은 세 종류의 사람들에게 일어나라고 말씀하십니다.

 

(청년아 일어나라)

 

첫째는 예수님은 죽은 자를 향하여 일어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나인성 과부의 죽은 아들을 향하여 "청년아 일어나라!" 하셨습니다. 청년은 열정이 넘쳐야 합니다. 청년은 꿈과 비전이 넘쳐야 합니다. 청년은 모험하고 도전하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관 속에 누워 있는 청년은 새천년이 와도 누워 있습니다. 기선의 기관과 같이 박동치는 그 심장이 다시 뛰지 않습니다. 독수리 같이 빛나던 그 눈동자가 풀리고 눈꺼풀은 내려온 채 다시 올라가지 않습니다. 망아지와 같이 대지를 박차고 달리던 그의 다리는 굳어져 움직이지 못합니다. 우리 예수님은 그를 향하여 외쳤습니다. "청년아 일어나라" 예수님의 말씀으로 그는 관을 박차고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은 회당장 야이로의 죽은 딸을 향하여 달리다굼 하셨습니다. 이는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는 말씀입니다. 야이로의 딸은 소녀였습니다. 소녀의 눈은 샛별처럼 빛납니다. 소녀의 볼은 불그스럼하게 상기되어 있습니다. 소녀의 웃음은 함박꽃처럼 밝습니다. 소녀는 꽃처럼 예쁩니다. 소녀는 사랑스럽습니다. 소녀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죽은 소녀는 소경처럼 눈이 감기고 얼굴에는 검은 색이 감돕니다. 죽은 소녀는 웃을 줄을 모릅니다. 그는 혐오스러운 존재입니다. 죽은 소녀는 차갑고 딱딱합니다. 죽은 소녀는 이제 더 이상 성장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소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소녀야 일어나라" 소녀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이 일어나라 부르신 두 사람의 공통점은 젊은이입니다. 오늘날도 예수님은 누구를 향해 외치시겠습니까? 다 늙어가는 늙은이를 향해 외치시겠습니까? 젊은이를 향해 외치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젊은 청년을 향해 외치십니다. "청년아. 일어나라." 젊은 여인들을 향해서 외치십니다. "소녀야. 일어나라!" 우리 젊은이들이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일어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에스겔서에 보면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해골 골짜기에 대한 이상을 보여 주었습니다. 에스겔이 보니 큰 골짜기에 해골이 가득차 있었습니다. 뼈들이 심히 많고 아주 말랐습니다. 핏기는 그만두고 물기 하나 없었습니다. 살아날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뼈들을 향하여 외쳤습니다.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두리니 너희가 살리라 또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에스겔이 외치자 소리가 나고 움직이고 이 뼈가 저 뼈가 들어 맞아서 뼈들이 서로 연락하였습니다.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었습니다.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자 그들이 살아서 큰 군대가 되었습니다. 뼈와 해골과 같은 자들도 예수님의 말씀이 들어가고 성령의 생기가 들어가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른 뼈를 향하여 명령하십니다. "일어나라" 예수님의 말씀은 죽은 자를 살리는 권능이 있습니다.

여기 계신 분 가운데 죽은 분은 한 분도 없습니다. 모두가 살아서 여기까지 왔고 두 눈을 뜨고 나를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죽은 자들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거듭되는 실패로 인해 영적으로 죽어 있어 삶의 의욕이 없습니다. 어떤 분은 열등감과 비교의식으로 죽어 있습니다. 죄의식으로 죽어 있습니다. 현실적인 물질 문제로 죽어 있습니다. 학과 공부 문제로 죽어 있습니다. 가정문제로 죽어 있습니다. 창공을 나는 독수리 같은 삶을 살고자 하는 패기가 없이 죽어 있습니다. 꿈과 비전이 없이 평생 DDR이나 하며 살고자 합니다. 어떤 분은 시궁창 미꾸라지라도 좋으니 인생을 즐기며 편하게 살면 그만이라는 안일주의로 죽어 있습니다. 공부해도 취직도 되지 않는다고 자포자기한 사람도 있습니다. 지금 한국의 캠퍼스는 마른 뼈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민족의 심장부 상아탑이 지금은 뼈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래도 과거 우리 아버지들을 소를 팔아서라도 자식을 공부 시켰기 때문에 상아탑이 우골탑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그 때는 캠퍼스가 해골탑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때의 사회 환경은 지금보다 더 열악했습니다. 하지만 선배들은 꿈이 있었고 인생을 말하고 철학을 말했습니다. 캠퍼스 잔디밭에 모이면 인생을 얘기하고 자유를 이야기했습니다. 그것이 멋이요 재미였습니다. 그들은 세계를 향해 나가고자 하는 꿈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이 만큼 잘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대학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마른 뼈들로 가득합니다. 술로 찌들고 정욕으로 눈이 충혈되고 인터넷 게임으로 심신이 지쳐 있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로 찌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들을 향해 외쳐야 합니다. 일어나라 이들에게 하나님의 생기 성령이 들어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아멘!

 

(고질병든 자여 일어나라)

 

둘째, 병든 자들을 향해 예수님은 일어나라고 외치십니다. 요한복음 5장에 보면 38년 병자가 나옵니다. 그는 고질병자였습니다. 그는 생존 경쟁에 패배하여 희망을 상실한 채 누워 있었습니다. 그는 거듭되는 실패로 인하여 나는 할 수 없다고 누워 있었습니다. 여러 번 병을 낫고자 시도했지만 낫지 못하자 나의 병만큼은 안 된다고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칠전팔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는 이 말을 믿고 37전 했으나 37패를 하였습니다. 그는 열 번 찍어 안 넘어 가는 나무 없다는 말을 믿고 37번을 도전했습니다. 그러나 도끼도 나름이라는 말이 그를 슬프게 하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실패하자 이제는 소원을 상실했습니다. 그는 이제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는 말씀을 잡고 체념하고 자족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베다스다 못가에 무기력하게 누워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38년 된 병자를 찾아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사람에게는 누구나 나음 받아야할 고질병이 있습니다. 어느 민족이나 나음 받아야할 고질병이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오랫동안의 식민지 생활로 노예 근성과 거지 근성이 몸에 배어 있습니다. 노예 근성은 내일은 없다는 것입니다. 노예들은 오직 현재를 즐기는 데 관심이 있습니다. 누가 시켜야 일을 하지 시키지 않으면 일을 하지 않습니다. 노예들은 자발성이 없습니다. 노예들은 어떻게 하면 편히 쉴 것인가에 관심을 갖지 일을 하지 않습니다. 노예는 순간의 쾌락만을 찾습니다. 노예들은 불평불만이 많습니다. 문제의 원인을 나에게서 찾지 않고 항상 다른 사람에게서 찾습니다. 노예는 다른 사람에 대해서 반항심과 반발심이 있습니다. 몸은 순종을 해도 마음은 순종을 하지 않습니다. 또한 우리에게는 거지근성이 있습니다. 거지는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을 좋아합니다. 거지는 스스로 일하지 않고, 남을 의지합니다.

다음으로 우리민족의 고질병은 열등감이 있습니다. 열등감이 있는 사람은 쓸데없는 자의식이 강합니다. 열등감은 허황된 과시욕으로도 나타납니다. 때로는 자기를 너무 비하시킵니다. 한때 우리는 울밑에선 봉선화와 같이 처량한 민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민족은 봉선화와 같이 슬프고 처량한 것을 좋아합니다. "우러라 우러라 새여 자고 니러 우러라 새여 널라와 시름한 나도 자고 니러 우니노라 얄리 얄리 얄랑성 얄라리 얄라"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이런한 슬픔은 패배주의에서 온 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깊은 패배주의가 있습니다. 무엇을 하다가도 안 되면 스스로 포기하기를 잘합니다. 예를 들어서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고 합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패배주의는 나같은 사람이 어떻게, 나같은 지방대학생이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는가, 한국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하며 자학합니다. 그러나 지방 대학생이라고 못할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이러한 열등감과 패배주의는 나음 받아야 할 고질병입니다. 예수님은 노예근성과, 거지근성, 패배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우리에게 일어나라고 명령하십니다.

한 형제가 있었습니다. 그는 이혼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나고, 그 어머니와 함께 또 다른 아버지에게로 가서 자라며 운명에 슬피 울었습니다. 그는 공고 출신이요, 지방 대학생으로 아무 희망이 없었습니다. 그는 쉽게 포기하고 쉽게 절망하기를 잘했습니다. 그는 한번 절망하면 아무 것도 못했습니다. 그는 학생 시절에 신앙 생활을 하다가도 수없이 넘어지고, 엎어졌습니다. 그는 일어서려고 하다가도 또 넘어질 것을 생각하며 아예 일어서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일어나라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때 그는 말씀을 공부하고 장차 MIT의 선교사가 되고자 했습니다. 그는 이 꿈을 안고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그는 신혼 여행을 가서도 밤에 해변가에 가서 MIT 공대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때 그는 인하대 교수목자가 되었습니다. 그 아들이 서울대를 졸업하고 동경대에서 석사를 하고 일본선교사로 파송되었습니다. 고질병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어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권능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생명이 있습니다. 말씀은 운명을 바꾸어 놓습니다. 사람들에게는 병든 영혼이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떠난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생명이 죽은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성도 있습니다. 그런데 심령이 병들어 있습니다. 탐욕으로 병들었습니다. 교만으로 병들었습니다. 시기심으로 병들었습니다. 미움의 독한 병이 들어있습니다. 좋지 못한 습관에 병이 들었습니다. 불신과 교만과 정욕과 탐욕으로 병들어 있습니다. 혈기가 있고, 허영심이 있습니다. 이러한 병이 있으면 일할 수 없고, 일어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사람을 향해서 일어나라고 명령하십니다. 이런 자들은 자신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일어날 수 있습니다.

 

(자는 자여 일어나라)

 

셋째, 자는 사람을 향하여 일어나라고 외치셨습니다. 요나가 하나님의 사명을 어기고, 엉뚱한 곳으로 가고 있는 배에 승선했습니다. 그는 배 밑에 가서 에라 모르겠다 하며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그는 사명을 버리고 생활인이 되어서 잠을 잤습니다. 불순종과 고집으로 잠을 잤습니다. 그때 마침 바다에 큰 풍랑이 일어났습니다. 선장이 잠을 자고 있는 그를 찾아가 깨웠습니다. "자는 자여 어찜이뇨, 일어나라" 하나님은 순종의 사람으로, 사명의 사람으로 일어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기까지 기도하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일어나라 나와 함께 가자" 그들은 병든 것도 아닌데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막연한 두려움으로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져야할 십자가에 짓눌려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자는 자들은 자기 주위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깨닫지 못합니다. 자는 자들은 자기의 사명이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육신의 안일과 세상 쾌락에 빠져 잠을 자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자들에게 외치십니다. "자는 자여 일어나라" 우리가 언제까지 자기 문제로 잠을 자야 합니까? 우리가 언제까지 어린 아이처럼 자기 중심적이 되어 하나님의 역사에 무관심해야 합니까? 우리는 일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5:14) 우리가 잠자는 데서 일어나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우리에게 빛을 비출 것입니다.

 

(빛을 발하라)

 

1절 전반부를 다시 보십시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하나님이 우리를 일어나라고 하신 목적은 빛을 발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빛된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백성은 범죄하고 타락하여 빛을 잃었습니다. 빛을 발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빛을 발할 수 없습니다. 그들이 빛을 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무엇입니까?

 

1절 후반부를 보십시오.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빛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빛이 이르고 하나님의 영광이 임할 때 그들은 빛을 비출 수 있습니다. 이 영광의 광채는 태양빛보다 더 밝고 찬란합니다. 이 빛은 바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빛입니다. 고린도후서 46절에 보면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에게 비치었다고 하였습니다. 달은 본래 빛이 없습니다. 발광체가 아닙니다. 태양의 빛을 받아 반사합니다. 태양의 빛을 많이 받으면 보름달이 되고, 적게 받으면 그믐달이 됩니다. 지구도 빛이 없습니다. 태양 가까이서 빛을 받으면 적도가 되고 태양 멀리서 빛을 받으면 남극이나 북극이 됩니다. 달이나 지구처럼 우리에게도 빛이 없습니다. 빛을 발하고 싶어도 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받아서 우리도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하나님도 빛이 되십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실 때 맨처음 빛을 만드셨습니다. "빛이 있으라" 하시자 빛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맨처음 빛을 만드신 것은 하나님이 빛이시기 때문입니다. 새 하늘 새 땅은 광명한 대낮 같습니다. 밤이 없고, 어둠의 그늘이 없는 빛의 세계입니다. 빛되신 하나님께서 비추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은 우리에게 빛을 비춰 주십니다.

이 빛은 최후에는 심판을 통하여 나타납니다. 이 빛은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나타납니다. 우리는 이 빛을 받아서 세상을 향하여 빛을 비춰야 합니다. 우리는 좀더 빛되신 하나님께 가까이 가야합니다. 모세가 하나님과 친밀하게 살았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과 가까이 살아야합니다. 노아나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듯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처럼 말씀에 절대 순종하며 다니엘처럼 절대 기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그렇게 살 수 있습니다. 달보다 맑고 해보다 밝은 빛을 내게 됩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하여 순교자를 통하여 빛을 비추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어떤 빛이 되십니까? 예수님은 인생들에게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해주는 진리의 빛입니다. 예수님은 인간들에게 죄사함을 주는 복음의 빛입니다. 죽은 자들에게 생명을 주는 부활의 빛입니다. 미워하는 자들에게 사랑할 힘을 주시는 사랑의 빛이십니다. 절망한 자에게 희망을 주는 소망의 빛이 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을 때 이 빛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이 빛을 받을 때 별처럼 영롱하게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높은 산에 올라가, 높은 하늘에 올라가 빛을 온세계에 발해야 합니다. 불교는 은둔의 종교이지만 기독교는 적극적으로 세상에 빛을 발하는 종교입니다. 그러면 빛이 하는 역할은 무엇입니까?

 

(빛은 어둠을 밝힘)

 

첫째, 빛은 어두움을 밝게 합니다. 어두움을 밝게 하기 때문에 바른 방향으로 인도합니다. 성경 말씀은 우리의 발의 등불입니다. 예수님이 이 빛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오시자 어둠이 물러가고, 사망 권세가 물러갔습니다. 예수님이 오시자 절망과 무기력이 물러갔습니다. 빛은 어두움을 이깁니다. 여기에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내면과 양들의 문제를 보고 절망합니다. 시대를 보고 절망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빛되신 예수님께서 반드시 어둠의 세력을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양들에게 빛되신 예수님을 증거할 때 언젠가 양들의 내면이 변화됩니다. 복음의 빛은 반드시 승리합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돋는 해로 오셨습니다. 어둠을 물리치고 밝은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박목월 시인은 돋는 해를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넘어 산 넘어서 어둠을 살라 먹고, 산 넘어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이글 애띤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예수님은 어둠을 살라먹고 산을 넘어 이 땅에 오신 돋는 해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강렬한 빛이 사도 바울에게 비췄습니다. 사도바울은 교만과 무지로 내면이 어두웠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비취자 그는 사랑의 사도, 빛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가 잡은 요절 말씀은 이사야서 49:6 "내가 너를 이방의 빛을 삼아 너로 땅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는 평생을 소아시아와 로마에 빛을 비추는 삶을 살았습니다. 온 세계를 비추는 빛으로 살았습니다.

 

(따뜻하게 하는 빛)

 

둘째, 빛은 열을 냅니다. 열은 따뜻하게 합니다. 열은 역동적인 에너지가 있습니다. 빛은 사람을 열나게 합니다. 사람이 성령의 빛을 받으면 속이 뜨거워 집니다. 독수리가 하늘을 향해 올라가듯이 힘찬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무기력하게 살던 사람들이 힘이 있게 살게 됩니다. 열이 기관차를 움직이고, 비행기를 움직이듯이 우리가 성령의 빛을 받으면 열이 나고 열이 나면 세계를 정복할 수 있습니다. 열은 만물을 소생시키고, 성장하게 하고, 결실하게 하듯이 우리를 열매 맺게 합니다.

 

(빛을 나타내는 삶)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생명의 빛을 받았습니다. 소망의 빛, 사랑의 빛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참된 생명이 무엇인가를 알았습니다. 참된 가치관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역경을 뚫고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일어나서 진리의 빛, 생명의 빛, 소망의 빛을 발해야 합니다. 빛의 아름다움을 나타내야 합니다. 비가 온 후에 빛이 비취면 영롱하고 신비한 무지개가 나타납니다. 구름 속에 있는 물방울의 작은 결정이 햇빛을 받아 아름답게 빛이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빛을 받아 예수님의 아름다운 형상을 나타내야 합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를 무지개처럼 나타내야 합니다. 516에서 예수님은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사람들이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어두운 세상)

 

2절을 보십시오. “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어둠이 땅을 덮습니다. 캄캄함이 만민을 기다립니다. 하나님 없는 세계는 어둡습니다. 죄와 사망의 세력이 그들을 덥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게는 하나님이 임하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임합니다. 이스라엘이 빛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달과 같습니다. 빛되신 하나님이 임해야 그들이 빛을 비출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캄캄한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되어야 합니다.

 

(빛을 향하여 나오는 자들)

 

3,4절을 보십시오. “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네 아들들은 먼 곳에서 오겠고 네 딸들은 안기어 올 것이라

 

나라들이 이스라엘의 빛을 보고 나아올 것입니다. 나라의 왕들이 이스라엘이 비치는 광명으로 나오게 됩니다. 온세계는 어둡습니다. 사망과 미움이 가득차 있습니다. 등대를 향하여 배가 나아오듯이 그들이 빛을 발하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나아올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의 빛, 공의의 빛을 비추어야 합니다. 그래서 세계 만민이 우리의 빛을 사모하여 나오게 해야 합니다. 요즘의 크리스천이 빛을 잃고 세상 향해 나가고 있습니다. 물질의 빛, 쾌락의 빛을 향해서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향해서 나오게 해야 합니다. 아이슬랜드 노르웨이 스웨던 핀란드 영국 덴마크 스위스 그리스 여덟 개 나라는 십자가가 그려져 있습니다. 달러에는 하나님을 신뢰한다고 써있습니다. 이들이 하나님의 복을 받습니다

사방에서 무리가 빛을 향하여 나옵니다. 그들이 아들과 딸들을 데리고 돌아옵니다. 빛이 있으면 사람들이 모입니다. 우리가 빛을 발할 때 열방이 우리의 빛으로 나아옵니다. 일어나 빛을 발하자 세계 곳곳, 열방과 열왕들이 몰려옵니다. 마치 집을 떠난 새가 보금자리로 다시 돌아오듯이 원근에 흩어졌던 이스라엘이 귀향하게 됩니다. 세계만민이 그들도 빛이 되고자 나옵니다.

 

(이스라엘은 화창하리니)

 

5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네가 보고 기쁜 빛을 내며 네 마음이 놀라고 또 화창하리니 이는 바다의 부가 네게로 돌아오며 이방 나라들의 재물이 네게로 옴이라

 

이들을 보고 이스라엘은 기쁜 빛을 내고 화창해집니다. 어둠 속에 살던 그들이 세상의 빛이 되었다는 것에 너무 행복해 합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부와 재물을 갖고 모여듭니다. 사람이 모이면 돈도 자연히 모이는 것입니다. 열방이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헌금합니다. 이스라엘은 이방인에게 물질로 섬김을 받게 됩니다.

 

(성전을 영화롭게 하심)

 

6-9절을 보십시오. “허다한 낙타, 미디안과 에바의 어린 낙타가 네 가운데에 가득할 것이며 스바 사람들은 다 금과 유향을 가지고 와서 여호와의 찬송을 전파할 것이며 게달의 양 무리는 다 네게로 모일 것이요 느바욧의 숫양은 네게 공급되고 내 제단에 올라 기꺼이 받음이 되리니 내가 내 영광의 집을 영화롭게 하리라저 구름 같이, 비둘기들이 그 보금자리로 날아가는 것 같이 날아오는 자들이 누구냐 곧 섬들이 나를 앙망하고 다시스의 배들이 먼저 이르되 먼 곳에서 네 자손과 그들의 은금을 아울러 싣고 와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에 드리려 하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에게 드리려 하는 자들이라 이는 내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음이라

 

세계에서 허다한 낙타에 금과 유향을 싣고 옵니다. 이들이 모여서 여호와를 찬송하고 영화롭게 합니다. 동방박사가 예수님께 금과 유향과 몰약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세계 만민이 모여서 세계 선교 대회를 하고 하나님께 헌금을 드립니다.

세계 만민이 양과 숫양을 가져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제사를 기쁘게 받으십니다. 성전이 이방인이 제사 드리는 곳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 영광이 임한 성전을 이방인들로 더욱 영화롭게 하십니다. 예루살렘은 지정학적인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갖고 있는 곳입니다.

구름 같이 비둘기들이 보금자리로 오는 것 같이 이방민족이 나아옵니다. 세계 곳곳에서 하나님을 앙망하고 나옵니다. 그들은 배들에 그들의 자손을 태우고 은금을 싣고 하나님께 나아옵니다. 이들은 은금을 싣고 와서 예물을 사랑의 여호와 이름을 생각하며 드립니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하나님께 드립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영화롭게 하셔서 세계 만민이 그들을 섬기게 하십니다.

 

(열방의 왕들이 이스라엘을 섬길 것이며)

 

10,11절을 보십시오. “내가 노하여 너를 쳤으나 이제는 나의 은혜로 너를 불쌍히 여겼은즉 이방인들이 네 성벽을 쌓을 것이요 그들의 왕들이 너를 섬길 것이며 네 성문이 항상 열려 주야로 닫히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들이 네게로 이방 나라들의 재물을 가져오며 그들의 왕들을 포로로 이끌어 옴이라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는 영광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질 교회의 영광 재림의 영광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전에 이스라엘의 죄로 인하여 이스라엘을 쳤습니다. 과거 이방인들이 이스라엘의 성벽을 헐었습니다. 이방의 왕들은 이스라엘 사람을 괴롭혔습니다. 우리의 죄대로 갚으시면 구원 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께서 은혜로 이스라엘을 불쌍히 여기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위하여 긍휼을 베풀어주십니다. 그들이 바벨론에서 돌아옵니다. 마치 애굽에서 430년 노예에서 돌아오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의 때입니다. 이제는 이방인들이 이스라엘을 위하여 성벽을 쌓습니다. 열방의 왕들이 이스라엘을 섬깁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죄악으로 심판하시면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십니다. 부모가 자식을 책망하다보면 끝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창조적인 사랑을 베푸십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이 되도록 그들을 훈련시키십니다. 우리의 행위를 따라서 보상하는 것이 아니고 먼저 긍휼을 베푸십니다. 긍휼을 받고 우리는 새로워집니다.

호세아 3장에서처럼 하나님은 고멜같은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고멜을 아내로 삼았으나 그는 나가서 다시 창녀가 됩니다. 하나님은 이런 고멜을 돈주고 사오라고 합니다.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 된 자를 사오라고 합니다. 다른 남자를 사랑하지 말라고 합니다. 나도 그러하겠다고 합니다. 자신이 스스로 돌아올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데리고 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엄청난 사랑을 베푸시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십니다. 한때는 심판하였으나 이제는 은혜를 베푸십니다. 고린도후서 6장에서 하나님은 은혜 베풀 때에 은혜를 베풀고 구원을 베풀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받았다는 것은 큰 은혜입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는 사람들은 은혜를 받은 자들입니다. 그들은 새로운 성전을 지으면서 통곡하고 기뻐합니다. 은혜의 때에 내가 있었다는 것은 큰 복입니다.

예루살렘의 성문이 주야로 열려 닫히지 않고 항상 열려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성문으로 출입합니다. 사람들이 이방 나라의 재물을 그 성문으로 가져옵니다. 왕들이 포로로 잡혀서 성문에 들어옵니다.

 

(성전을 영화롭게 하심)

 

12,13절을 보십시오. “너를 섬기지 아니하는 백성과 나라는 파멸하리니 그 백성들은 반드시 진멸되리라 레바논의 영광 곧 잣나무와 소나무와 황양목이 함께 네게 이르러 내 거룩한 곳을 아름답게 할 것이며 내가 나의 발 둘 곳을 영화롭게 할 것이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세계 만민 가운데 복의 근원으로 삼으십니다. 이스라엘을 섬기는 나라들은 점점 흥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섬기지 않는 백성과 나라는 파멸됩니다. 하나님을 그 백성들을 반드시 진멸합니다. 역천자는 망하고 순천자는 흥합니다. 교회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흥합니다. 그에게 복을 주십니다. 철저히 효자인 사람이고 교회 중심으로 살아갑니다. 하나님이 크신 은혜를 주십니다. 공산주의는 교회를 핍박하여 망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영광스럽게 합니다. 레바논의 영광이 이스라엘에 이릅니다. 레바논에서 유명한 잣나무와 소나무와 황양목을 갖고 이스라엘에 이르러 거룩한 성전을 아름답게 하십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발을 두시는 성전을 영화롭게 합니다. 교회를 영화롭게 함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합니다. 교회가 흥망성쇠의 중심이 됩니다.

 

(여호와가 구원자임을 알게 됨)

 

14-16절을 보십시오. “너를 괴롭히던 자의 자손이 몸을 굽혀 네게 나아오며 너를 멸시하던 모든 자가 네 발 아래에 엎드려 너를 일컬어 여호와의 성읍이라,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의 시온이라 하리라 전에는 네가 버림을 당하며 미움을 당하였으므로 네게로 가는 자가 없었으나 이제는 내가 너를 영원한 아름다움과 대대의 기쁨이 되게 하리니 네가 이방 나라들의 젖을 빨며 뭇 왕의 젖을 빨고 나 여호와는 네 구원자, 네 구속자, 야곱의 전능자인 줄 알리라

 

바벨론이나 앗수르는 이스라엘을 괴롭혔습니다.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자의 자손들이 변화되어 이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이스라엘에 나옵니다. 이스라엘을 멸시하던 모든 자들이 다 이스라엘의 발 앞에 엎드립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을 여호와의 성읍이라고 합니다.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사람들이 믿는 거룩한 하나님의 시온이라고 부를 것입니다.

전에는 이스라엘이 죄로 인하여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여 미움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을 향하여 나아가는 자가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이스라엘을 떠나서 세계로 흩어졌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영원한 아름다움과 대대의 기쁨을 주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인하여 기쁨을 얻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속에 사랑이 있습니다. 은혜 속에도 사죄함이 있습니다. 은혜 안에서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원하십니다.

루터는 하나님의 왼손은 율법이고 오른 손은 은혜라고 하였습니다. 왼손의 상징이 경찰서입니다. 오른 손의 상징이 교회입니다. 경찰들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성직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서 힘쓰는 사람들입니다. 율법이 멈추고 은혜의 때가 나타납니다. 전에는 율법으로 채찍을 맞습니다. 핍박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순교당하고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합니다.

일제시대에 교회 문을 닫게 하였습니다. 교인들은 교회 마당에서 기도하고 나왔습니다. 교회 종을 다 떼었습니다. 그 후에 해방이 되어 감격합니다.

육이오전쟁 때 교회 문을 닫았습니다. 상당히 오랫동안 그랬습니다. 목사들이 많이 순교합니다. 하나님이 버리시나 생각합니다. 전에는 버림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은혜를 입습니다. 육이오 전쟁이 끝나고 다시 교회 문을 엽니다.

북한은 교회를 불태웠습니다. 북한은 한해에 400명 정도의 교인이 총살당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신 것 같은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때 캄캄함이 임합니다. 예수님은 왜 나를 버리셨느냐고 합니다. 미움을 받을 때는 누고도 도와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영영한 아름다움과 대대의 기쁨이 되게 하십니다. 팔일오 해방되자 감옥에 있던 사람들이 나왔습니다. 그들이 교회에 가서 간증합니다. 그들이 설교를 잘합니다. 하얀 무명옷을 입고 죽도록 충성하라고 합니다. 때가 되면 영원한 아름다움이 되게 합니다. 교회의 영광을 주십니다. 그리스도를 위해서 수고한 자만이 영광을 누리게 하십니다.

바울 성당에는 바울의 시체가 베드로 성당에는 베드로의 시체가 있습니다. 그 성당은 그들의 기념비가 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방 나라들의 젖을 빨며 뭇왕들의 젖을 빱니다. 모든 나라가 교회를 섬기고 교회를 단장합니다. 이스라엘이 이방 나라에게서 많은 유익을 얻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날에 여호와가 이스라엘의 구원하시고 구속하신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이 자신들을 구원하신 것을 알게 됩니다. 이 모든 일을 이루신 분이 바로 야곱의 전능자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화평과 공의가 있는 나라)

 

17절을 보십시오. “내가 금을 가지고 놋을 대신하며 은을 가지고 철을 대신하며 놋으로 나무를 대신하며 철로 돌을 대신하며 화평을 세워 관원으로 삼으며 공의를 세워 감독으로 삼으리니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영화롭게 하십니다. 놋을 대신하여 금으로 장식합니다. 철을 대신하여 은으로 장식합니다. 나무를 대신하여 놋을 사용합니다. 돌을 대신하여 철을 사용합니다.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풍요롭고 영화롭게 하십니다. 마치 솔로몬의 시대와 같이 부요하고 풍요롭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관원과 감독이 이스라엘을 화평으로 다스리고 공의로 다스리게 하십니다. 이스라엘에는 평화가 찾아오고 공의가 가득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화평과 공의가 있는 나라로 세우십니다.

 

(구원과 찬송의 성)

 

18절을 보십시오. “다시는 강포한 일이 네 땅에 들리지 않을 것이요 황폐와 파멸이 네 국경 안에 다시 없을 것이며 네가 네 성벽을 구원이라, 네 성문을 찬송이라 부를 것이라

 

이스라엘에 다시는 강포한 일이 들리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국경 안에 황폐와 파멸이 다시는 없습니다. 앞으로 이루어질 영광의 나라입니다. 그들은 예루살렘 성벽으로 구원을 받고 그 성문에 모여서 하나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안에서 하나님의 구원이 있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가 넘쳐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여호와가 영원한 빛이 되며)

 

20절을 보십시오. “다시는 낮에 해가 네 빛이 되지 아니하며 달도 네게 빛을 비추지 않을 것이요 오직 여호와가 네게 영원한 빛이 되며 네 하나님이 네 영광이 되리니 다시는 네 해가 지지 아니하며 네 달이 물러가지 아니할 것은 여호와가 네 영원한 빛이 되고 네 슬픔의 날이 끝날 것임이라

 

예루살렘 성에는 다시는 낮에 해가 뜰 필요가 없고 밤에 달이 빛을 비출 필요가 없습니다. 빛되신 여호와가 영원한 빛이 되십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영광이 되십니다. 다시는 해나 달이 지고 어둠이 없습니다. 여호와가 영원한 빛이 되십니다. 이스라엘의 슬픔의 날은 끝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새 예루살렘의 모습입니다.

새하늘과 새땅에는 해도 달도 별도 없습니다. 상함도 고통도 사망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그들의 빛이 되십니다. 오직 여호와를 섬기는 기쁨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밤은 밤대로 낮은 낮대로 겨울은 겨울대로 여름은 여름대로 좋습니다. 여호와께서 해가 되고 빛이 됩니다.

 

(영원히 땅을 차지 하리니)

 

21,22절을 보십시오. “네 백성이 다 의롭게 되어 영원히 땅을 차지하리니 그들은 내가 심은 가지요 내가 손으로 만든 것으로서 나의 영광을 나타낼 것인즉 그 작은 자가 천 명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

 

이스라엘 백성이 다 의로운 백성이 되어 영원히 땅을 차지할 것입니다. 백성전부가 하나님의 의를 이룹니다. 우리가 의롭게 살아서 의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영광의 날에 의롭게 합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왕이 되어 모두가 자유롭게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합니다. 윤리에서 종교가 나오는 것이 아니고 종교에서 윤리가 나옵니다. 은혜에서 율법이 나옵니다. 자녀들도 뜨거운 사랑을 느낄 때 그들이 바른 사람이 됩니다. 버릇이 나쁜 친구도 좋은 버릇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의로움은 사랑의 열매입니다. 은혜의 열매입니다. 이스라엘은 부활하여 새하늘과 새땅에서 영원히 살게 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심은 나뭇가지요. 하나님이 손으로 만든 작품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작은 자가 천 명을 이루고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번성하고 강하게 하십니다. 때가 되면 여호와께서 이 모든 일을 속히 이루실 것입니다. 분할 성취하다가 온전한 성취가 이루어집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결론적으로 우리는 빛이 없습니다. 어둠에 지배당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보내어 주심으로 생명의 빛, 구원의 빛, 소망의 빛, 사랑의 빛을 비추어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일어나 빛을 발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일어나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빛을 비출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Amen!

 

이사야 60장 강해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말씀 이사야 601-이사야 6022

요절 이사야 60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이사야 60장 강해 끝입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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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이사야] 이사야 60장 강해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오요한 2012-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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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이사야] 이사야 58장 강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 오요한 2012-01-18
60 [이사야] 이사야 57장 강해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 오요한 2012-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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