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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이사야 55장 강해 만민의 인도자 이스라엘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2-01-18 00:00:00
조회수 : 4,736

문제지풀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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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55장 강해 만민의 인도자 이스라엘

말씀 이사야 551-이사야 5513

요절 이사야 551"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1)."

 

세상의 허영과 쾌락의 꽃송이는 먼지같이 일어나고, 그 열매는 사해의 모습과 같고 그리고 목에서 재로 변한다어떤 무명인이 쓴 시가 있습니다. 이는 쾌락은 먼지처럼 많이 일어나고 결과는 죽음이고 결국은 다 사라진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채우면 저것을 채우고 싶고, 저것을 채우면 또 다른 것을 채우고 싶은 것이 세상의 쾌락과 허영입니다. 사람들은 탐욕으로 목마름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말씀에서 목마른 자들을 초청하십니다. 그들에게 진정한 만족을 얻고 하나님 나라를 누리는 법을 알게 하십니다. 이사야서의 중요한 말씀 중에 하나입니다. 만민을 초청하는 은혜로운 말씀입니다.

 

(인간의 여러 가지 목마름)

 

1절을 보십시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 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하나님은 목마른 자들을 초청하십니다. 인간은 다 목마릅니다. 목마르다는 것은 무엇인가 구하고 사모하고 추구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구하고 찾고 사모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입니다. 사람이 숨을 쉬고 있는 한 언제나 무엇인가를 구하고 추구하고 사모하는 것을 쉬지 않습니다. 가난한 사람이나 부한 사람이나 유식한 사람이나 무식한 사람이나 권세 있는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관계없이 무엇인가를 사모하고 구하고 찾습니다. 사람이 목말라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처지와 환경, 개성과 성격, 그리고 취미에 따라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돈에 목말라 있고, 어떤 사람은 사랑에 목말라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지식에 목말라 있고, 또 다른 사람은 이성에 대한 목마름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어떤 것에 대한 목마름이 없는 채 그저 그날그날 먹고 마시는 향락에 빠져서 인생을 탕진하는 찰라주의자들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소비가 미덕임을 강조하는 자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것보다도 돈에 목말라 합니다.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의 돈의 위력은 그 어떤 것보다 막강합니다. 과거 재벌은 권력의 시녀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권력 위에 군림하고 있습니다. 재벌들은 權不十年(권세는 십년을 못간다)란 신조를 가지고 재력을 이용하여 자기 마음대로 권력을 흔들고 있습니다. 자본주의가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돈에 대한 목마름은 더하게 될 것입니다. 젊은이들은 이성에 대한 목마름이 있습니다. 과거 어떤 형제는 이성에 대한 목마름으로 치마 두른 사람만 보면 정신을 잃었습니다. 현대는 전문가가 되지 못하면 이 시대를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새로운 지식에 대한 목마름이 있습니다. 그 외에 사람들은 사랑에 대한 목마름, 명예에 대한 목마름, 권력에 대한 목마름이 있습니다.

 

(채워지지 않는 목마름)

 

사람들은 이런 것에 온 마음과 온 힘을 다하고 나중에는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얻고자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무리 찾고 찾아도 찾거나 구할 수 없고, 얻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절망과 안타까움과 한숨이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설령 얻는다 할지라도 그런 것들이 우리에게 행복과 만족과 기쁨을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돈을 추구하여 돈을 벌었다고 하여 부족함이 없고 기쁨과 행복이 있을까요? 넓은 저택과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닌다고 행복할까요? 고지를 점령하여 top class에 올랐다고 단잠을 잘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사람들의 욕구는 끝이 없습니다. 전세를 살다보면 집을 사고 싶고, 집을 사게 되면 더 넓고 더 좋은 집을 갖고 싶습니다. 소형 승용차를 타다 보면 중형 승용차를 타고 싶고, 중형 승용차를 타면 고급 승용차를 타고 싶습니다. 재물을 얻으면 명예를 얻고 싶고, 명예를 얻으면 권력을 얻고 싶고, 권력을 얻으면 천수를 누리고 싶습니다. 세상에 보이는 것들을 다 소유한다 할지라도 목마름은 그치지 않습니다. 이런 것들은 얻기 전까지는 얻고 싶지만 일단 얻고 나면 실망의 재, 허무의 재로 남게 됩니다. 전도서 저자는 이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도다(1:8)." 세상을 제패했던 알렉산더 대왕은 더 정복할 것이 없어서 그 보좌에서 울었고, 찰스 5세는 왕위를 버리고 평민의 생활을 택하였습니다. 이는 바로 그 무엇도 인간을 만족케 할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저 멀리 보이는 무지개를 잡을 수 있을 줄 생각하고 달려가다가 결국 무지개를 잡지 못하고 고생만 하다가 늙어 죽게 됩니다.

 

(만족을 주는 생수의 강물)

 

우리가 이런 영적인 목마름을 어떻게 채울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이런 인간들을 향하여 물로 나아오라고 초청하십니다. 다시 한 번 1절을 보십시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1)."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온 후에 광야에서 물이 없어 사람들과 가축들은 목말라 죽을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들을 보시고 반석에서 샘물을 나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순간 생수를 마음껏 마시고 생명의 활기를 되찾았습니다. 여기에서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광야같이 메마른 세상에 반석으로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광야에 생수가 강물처럼 흘러 넘치게 하십니다.

이 물은 웅덩이에 고인 물과 다릅니다. 웅덩이에 고인 물은 썩고 냄새가 납니다. 썩은 물을 마시고 나면 역겹고 구역질이 나게 되고, 사람을 피곤케 하고, 허탈하게 하고, 허무하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생수는 맑고 깨끗합니다. 영혼을 늘 새롭게 하고, 새 힘을 줍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물은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흘러내리는 생수입니다.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7:7)." 이 생수가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과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을 주십니다 우리의 마음에 의와 평강과 기쁨의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하십니다. 이 물을 마신 자는 성령의 충만함을 덧입게 되어 새로움이 싹트고 움직이고 일어나게 됩니다. 양심이 움직이고 智力이 생기고 머리가 맑아 무슨 일을 하더라도 힘차게 할 수 있습니다. 다시는 목마르지 않는 참 만족을 주십니다.

 

(목마른 자에 대한 하나님의 초청)

 

우리가 어떻게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나아오라" "청종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찾으십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우리를 찾으시는데서 시작 됩니다. 하나님이 잔치를 베풀고 초청하는데 사람들이 거절합니다. 소를 사고 밭을 사고 장가가서 바쁘다고 거절합니다. 주인이 섭섭해 합니다. 거절하는 것은 초청하는 것은 주인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인격과 명예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신랑 신부의 부모는 손님이 없으면 마음이 상합니다. 손님이 많이 오면 흡족해합니다. 초청하고 음식을 마련했는데 손님이 없으면 섭섭합니다. 하늘 아버지가 인간을 초청합니다. 주님께 오면 됩니다. 이 세상 천지에 아무리 인심이 후하고 좋아도 돈 없이 살 수 있는 것이라곤 하나도 없습니다. 공짜로 무엇을 준다는 곳에는 반드시 그 뒤에 검은 그림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돈 없는 자도 와서 마시라고 초청하십니다. 이것은 너무 값이 비싸서 하나님이 대신 치러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값없이 사서 마시라고 하십니다. 포도주와 젖을 사라고 하십니다. 포도주는 새술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은 부작용이 없는 술입니다. 젖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사서 마시라는 것은 자기 것이 되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사서 내 것으로, 나의 이름으로 등기를 하라는 것입니다. 등기를 하게 되면 누가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서 마시라는 것은 예수님의 피를 나의 것으로 영접하고 성령을 충만히 받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나의 말씀으로 받으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내세우지 말고 빈손으로, 마음으로 주님께로 오기만 하면 됩니다. 하늘 나라가는 티켓을 살려고 하다가 천국에 못 갑니다. 의를 쌓고 인격을 만들려고 했는데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내가 값을 지르고자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값을 다 치르셨습니다. 하나님께 나가려면 내 의, 선행, 적선, 거룩함을 다 버려야합니다. 그것은 답답하고 미련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안 되었으면 앞으로 안 됩니다 바리새인들 제사장 서기관들이 그랬습니다. 예수님을 박해한 사람들이 자기 의가 있는 사람입니다. 복을 받는 것도 그렇습니다. 내가 선을 하고 의를 행하여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선을 하고 돈을 버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값없이 가야합니다. 빈손 들고 가야합니다. 절대적인 은혜입니다 감당할 수 없는 충만한 은혜입니다.

 

(성령 안에서 만족한 삶)

 

요한복음 7:38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누구든지는 모든 인생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를 초청하셨습니다. 여기서는 목마른 사람을 초청하십니다. 목마른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와서 마시면 목마름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 성령은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정도가 아닙니다. 강물처럼 철철철 흘러 끊임없이 풍성하게 공급하여 줍니다. 이 은혜는 나로 끝나지 않고 내 가정, 내 친구, 내 캠퍼스, 내 나라, 더 나아가 세계에까지 이릅니다.

요즘 학생들은 목마름을 해결하고자 자기 나름대로 무엇인가 이것저것 열심히 합니다. 목마름을 해결하고자 술을 마시고 춤추며 밤을 지새우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은 늘 불안하여 쉼이 없고 안식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죄로 인하여 참 쉼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항상 불안, 염려, 근심, 걱정이 끊이지 않으며 쉼과 평화와 기쁨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자들에게 성령을 주신다고 약속해 주십니다. 우리가 말씀을 공부하고 죄를 진실되게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면 성령을 충만히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배부르게 못하는 것들)

 

2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하나님은 인간적이고 물질적이고 육적인 것을 양식 아닌 것이요 배부르게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이런 것이 우리를 배부르게 못할까요? 사람은 짐승과 달리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배만 채우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본능만 채우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짐승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짐승은 자기 본능만 채우면 만족합니다. 짐승은 도덕적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지 않습니다. 짐승은 영적인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먹고, 자고, 번식하는 것 이외는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영적인 거룩한 존재이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것으로 채워져도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치 않을 때 참 만족이 없습니다. 그렇게 좋은 침대에서 수면제를 먹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믿고 순종하는 삶)]

 

우리는 세상의 헛된 것에 많은 시간을 뺏기며 살 것이 아닙니다.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지 말아야 합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일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먹고 사는 것이 우리의 인생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더 높은 것을 추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더 고상한 것을 추구해야합니다. 성령의 포도주와 말씀의 젖을 사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추구하는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영적인 목마름을 채워야 합니다.

이 영적인 목마름은 우리의 깊은 내면에 잠재해 있기 때문에 이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영적 목마름이 있다는 것을 시인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혼의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이면 누구에게나 육적인 목마름 그 이상의 영적인 목마름이 있습니다. 이 영적 목마름은 육적 목마름으로 결코 채울 수 없습니다. 영적인 목마름을 해결치 않는 한 인간은 늘 타는 목마름으로 슬퍼하고 고통당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영적으로 목마른 자들에게 나를 청종하라고 합니다. 청종하라는 말은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좋은 것을 얻고 기름진 것으로 채울 것이라고 하십니다. 바로 진정한 양식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생명의 양식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순종하면 하나님은 성령을 주십니다. 우리의 영혼을 기름진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을 주십니다. 죽은 후에도 다시 살리십니다. 아멘!

 

(귀를 기울이고 순종하라)

 

3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니라.”

 

하나님은 진정 이 말씀은 하나님께 나아가서 말씀을 들을 때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말하고 있습니다. 먼저 영혼이 살게 됩니다. 우리 영혼이 하나님이 주시는 십자가의 은혜와 생명의 말씀으로 포동포동 살이 찌고 살아나게 됩니다. 우리의 영혼이 만족과 기쁨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습니다. 다윗에게 허락하신 확실한 은혜의 언약을 세워주십니다. 예수님을 보내신다는 약속입니다.

예수님은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십자가의 피를 믿기만 하면 죄를 용서하시고 일방적으로 그들을 도우십니다. 우리에게 성령을 풍성히 주십니다. 주님께 나가서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가서 말씀을 듣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하고 관심이 있는 것에 대해서 가게 되고 그 음성을 듣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믿을 때 포도주와 젖을 값없이 마실 수 있습니다. 포도주를 마시면 기쁨이 넘칩니다. 젖을 먹으면 생명을 유지하고 성장하게 합니다.

나다나엘은 전도를 듣고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있느냐고 의심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께로 나갔습니다. 우리는 교회로 나가고 말씀공부 모임에 나가야 합니다. 깨달음이 없어도 성경은 읽어야합니다. 무슨 소리하는 줄 몰라도 기도는 해야 합니다.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가까이 가서 말씀을 들어야합니다. 공부하는 자세, 에배 드리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한 것은 멀찍이 따랐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 나가서 귀를 기울이고 들어야합니다. 마음을 기울이고 들으면 내가 달라집니다. 내가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변화됩니다. 말씀을 듣다보니 담배가 잊어버려져 끊어집니다. 가까이 가서 말씀을 들으면 지정의가 달라지고 건강해집니다. 약봉투를 가지고 다니다가 약봉투가 사라집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귀를 기울이고 들어야 합니다. 그러면 영혼의 소생함이 있습니다. 그러면 건강한 영혼이 됩니다. 건강한 이성이 됩니다. 건강한 감성이 됩니다. 건강한 몸이 됩니다. 모든 하는 일이 즐거워집니다. 거기까지 가면 점점 크고 위대한 역사를 이루게 됩니다.

 

(만국의 인도자로 세우심)

 

4,5절을 보십시오. “내가 그를 만민에게 증거로 세웠고 만민의 인도자와 명령자를 삼았었나니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부를 것이며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네게 달려올 것은 나 여호와 네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인함이니라. 내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느니라"

 

이사야 55장 복음적인 초청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의지하여 나가야합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율법적인 관계를 버리고 나가야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크신 약속을 하였습니다. 말씀을 듣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이스라엘에게 주시는 약속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마음에 젖과 꿀이 흐를 때 주님이 주신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만민의 목자가 되게 하십니다. 만민에게 하나님을 증거하는 목자요, 만민을 인도하는 자요, 만민에게 명령하고 방향을 주는 자로 세워 주십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말씀을 주십니다. 성령이 충만하게 하십니다. 이스라엘에게 젖이 넘쳐서 만국을 먹이십니다.

하나님은 만민의 제사장 나라가 된 이스라엘을 축복하십니다. 제사장 이스라엘은 그들이 알지 못하는 나라를 부릅니다. 그들을 알지 못하는 나라가 이스라엘에게로 달려옵니다. 이스라엘을 향하여 세계만민이 몰려오게 하십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친히 이 일을 이루십니다. 세계만민 가운데 목마른 자들이 다 갈증을 채우기 위해서 이스라엘에게 나오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영화롭게 하십니다.

우리 한국의 후진국 대학생들이 복음을 전했을 때 선진국 미국 독일 대학생들이 우리 선교사님들의 방향에 따라서 움직입니다. 이는 우리가 훌륭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나아가서 성령 충만한 자들을 만민 가운데서 영화롭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나라, 우리를 알지 못하는 나라들이 몰려오게 됩니다. 세계선교 보고 대회 때 이곳에 세계만민이 몰려오는 것은 한국의 대학생들이 말씀을 높이고 청종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운데서 성령의 강물이 흐르기 때문입니다. 우리 천안도 말씀을 높이고 청종하여 성령의 포도주가 풍성하고 말씀의 양식이 넘쳐나게 해야합니다. 성경 66권의 강해서가 나오게 해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그러면 세계 233개국에서 비신자들이 천안 ubf로 몰려 올 것입니다

 

(만날만한 때에 회개해야함)

 

6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하나님은 언제나 만날 수 있지만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늘 기회가 주어진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늘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구원의 문이 항상 열려 있는 것으로 잘못 생각합니다. 젊은이들은 영원히 젊은이로 살 줄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복음을 전하면 훗날 믿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구원의 문은 항상 열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자 방주의 문을 닫으셨습니다. 젊음이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내일을 누구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내일은 그만 두고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습니다.

내가 가르치던 한 학생이 2년 전 새아버지와의 갈등을 고민하다가 자살을 했습니다. 누구도 그가 죽을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젊기 때문에 천수를 누리며 살 줄 생각할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낳는 순서는 정해져 있지만 죽는 순서는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누구도 나의 삶을 예측할 수 없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젊음은 자랑할 것이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6)." 우리는 말씀을 들을 때 고집부리지 말고 속히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구하고 찾으라는 것은 복음입니다. 아쉬운 것은 우리인데 하나님이 주신다고 하십니다.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기도는 주님의 부름에 대한 응답입니다. 기도하라는 말이 복음입니다. 달라고 하면 주시겠다고 합니다. 기도하는 자세 마음 가짐이 이루어지면 주십니다. 회개하지 않고 믿음이 없으면 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찾으라 부르라고 하십니다. 기도하라는 말입니다. 만날만한 때에 찾아야합니다. 아무 때나 기도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기도할 수 있는 것이 은혜입니다. 우리 마음에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어떤 때는 기도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형식적인 기도만 합니다. 기도하러 나오는 것이 복입니다. 기도하러 나오지 않는 것은 기도의 문이 열리지 않은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간절한 마음을 갖게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만이 간절한 마음을 주실 수 있습니다. 전도서 121을 보면 "너는 청년의 때 곤고의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지금 곧 이 때에 창조자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기회는 항상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버스가 지나 간 다음에 손을 들어본들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구원의 때는 바로 이 때입니다. 요한복음 5:25은 말씀합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고린도후서 6:1,2을 보면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말씀을 전하는 자는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이라는 절박한 자세로 전해야 하고, 듣는 자는 이 순간이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이라는 절박한 자세로 말씀을 듣고 순종해야 합니다. 정근모 박사는 자기 친구인 이범석 외무부 장관에게 오늘 복음을 전하고자 했지만 다음 기회로 미루었습니다. 그런데 이범석 외무부 장관이 아웅산 사건으로 죽게 되었습니다. 그는 바로 오늘 복음을 그 친구에게 전하지 못한 것을 깊이 회개하고 틈만 나면 복음을 전한다고 합니다. 디엘 무디는 복음 전하는 것을 내일로 미루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시카고에 화재 사건이 발생하여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듣지 못하고 죽게 되었습니다. 그후 그는 회개하고 복음 전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때 내일로 미루지 않았다고 합니다. 복음을 듣고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합니까?

 

(자기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야 함)

 

7절을 보십시오.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리라."

 

왕이 초청하십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려면 악인은 길을 버리고,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세상으로 향한 마음을 회개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아이를 못 가졌습니다. 절도 가고 무당도 가고 교회에 왔습니다. 그의 생각이 아이에만 온통 가 있어서 불평합니다. 그러나 아기에서 하나님께로 마음을 돌려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입니다. 나는 왜 존재합니까? 무엇을 해야합니까?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입니다. 내가 악한 생각을 고집해서는 안 됩니다. 악인은 그 길을 버리고 돌아오라는 것은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생각을 바꾸어야합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믿고 회개해야합니다.

악인은 넓은 길로 갑니다. 넓은 길은 사망의 길입니다. 넓은 길은 많은 사람이 다닙니다. 쾌락의 길은 넓기 때문에 사람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갑니다. 그러나 이 길은 반드시 사망의 길입니다. 이런 사람은 넓은 길에서 벗어나 좁은 길로 돌아서야 합니다. 좁은 길은 협착하여 많은 사람들이 다니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길은 생명의 길입니다. 이 길은 진리의 길, 거룩한 길입니다. 이 길은 십자가의 길, 고난의 길입니다.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가치관과 사상과 행동이 달라지기 때문에 생각은 아주 중요합니다. 사도 바울은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 했습니다.(로마서 8:5-9) 예수님은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밖에서 사람의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생각, 곧 음란, 도적질, 살인, 간음, 악독, 속임, 음탕, 흘기는 눈, 훼방, 교만, 광패라 하셨습니다(7:21,22). 창세기 보면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하다고 했습니다.(6:5) 사람들은 생각의 자유는 헌법에도 보장되어 있기 때문에 아무렇게 생각해도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육신적인 생각은 사망이요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우리는 불의하고 추한 생각을 돌이켜 저 높고 거룩한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교만을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두려워하는 불신을 회개해야합니다. 불평 불만하는 탐욕의 죄를 회개해야합니다. 우리는 하나님보다도 세상을 사랑하는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보다도 사람을 사랑하는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보다도 하나님의 역사를 더 사랑한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서 지은 모든 죄를 자복해야 합니다. 우리는 회개하고 우리의 죄값을 치른 예수님의 피를 믿어야합니다. 성령을 의지하여 마음과 목숨과 힘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이 때 하나님이 너그럽게 용서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루에 일곱 번씩 일곱 번 죄를 지어도 용서해주십니다. 우리의 심령에서 기쁨이 넘칩니다. 피가 박동하고 생명이 약동합니다. 어두움의 세력이 물러가고 희망찬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내면이 순결하여 지고 진실하여집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으로 말씀을 공부하고 진실되게 회개할 때 우리 내면에 흘러 넘치게 됩니다. 온전히 하나님께로 돌아가야합니다. 하나님으로 만족하고 기뻐해야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합니다. 이때 영생과 평안이 있습니다. 기쁨과 긍휼과 용서함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은 다름)

 

8,9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고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우리가 길을 버리고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생각을 따라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생각이 우리의 생각과 다르고, 하나님의 길은 우리의 길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 소신껏 사는 것을 멋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생각은 우리의 소신과 다르고 하나님의 길은 우리의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하나님의 길은 우리의 길보다 높으며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소신보다 높습니다. 나의 소신은 밴댕이 속처럼 좁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넓습니다. 나의 소신은 종지 같이 얄팍하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대양처럼 깊습니다. 나의 소신은 단국대를 벗어나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5대양 6대주로 향하십니다.

어린애가 웁니다. 그러나 어른이 보면 별것 아닙니다. 아이는 작은 것 때문에 울고불고 합니다. 지금은 우리에게 중요하지만 멀리서 보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작은 것으로 벌 받았느니 울며불며 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 생각을 기초로 기도해서는 안 됩니다 내 능력을 기초로 기도해도 안 됩니다. 내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께는 가능합니다. 우리의 인간적인 생각에 매여서 기도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므로 나의 길과 나의 생각을 돌이켜 회개하고 하나님의 길과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생각을 빨리 자식을 낳는 것이었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그가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생각은 빨리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가는 것이었지만 하나님의 생각을 그들을 거룩한 백성으로 삼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성령을 보내시며 그들을 통하여 세계선교를 이루시는 것입니다. 메시야를 보내고 메시야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는 것입니다. 그들은 정치적인 독립을 원하지만 하나님을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십자가 없는 영광을 얻는 것이지만 하나님은 십자가를 통해서 그리스도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생각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됨)

 

10-11절을 보십시오. “이는 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리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셔서 소출이 나게 하며 싹이 나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는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는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

 

비나 눈은 하늘에서 내려와서 토지를 적셔 싹이 나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하여 파종한 자에게 종자와 양식을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비와 눈과 같이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반드시 이루십니다(10,11).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고 절대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형통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세계만민 구원역사를 이루어주십니다. 우리가 전한 말씀이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열매를 맺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생명을 얻게 하십니다. 내게 주시는 말씀이 반드시 열매를 맺습니다. 내 사업을 인생을 인도하고 내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말씀이 이슬과 비와 같이 생명력을 공급합니다. 우리는 천지개벽같은 변화가 임하기를 바랍니다. 그보다는 아침이슬처럼 조용히 내리는 봄비처럼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가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 반드시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예루살렘과 자연이 회복될 것임)

 

12,13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기쁨으로 나아가며 평안히 인도함을 받을 것이요 산들과 언덕들이 너희 앞에서 노래를 발하고 들의 모든 나무가 손뼉을 칠 것이며 잣나무는 가시나무를 대신하여 나며 화석류는 찔레를 대신하여 날 것이라 이것이 여호와의 기념이 되며 영영한 표징이 되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 이스라엘은 기쁨으로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게 됩니다. 산들과 작은 산들이 노래를 발하고 들의 모든 나무가 손바닥을 치게 됩니다. 대자연도 복을 받습니다. 뿐만 아니라 잣나무는 아무 쓸모없는 가시나무를 대신하여 나고, 화석류는 질려를 대신하여 나게 됩니다. 들에도 좋은 나무로 가득 찹니다. 나무들도 서로 싸웁니다. 좋은 나무와 나쁜 나무가 싸우는 것도 사람의 믿음에 달려 있습니다.

중국은 지금 식량이 남아돌고 있습니다. 정부가 수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만 해도 중국은 식량부족함이 있었습니다. 그런 곳은 복음이 크게 역사하는 곳입니다. 조그만 마을도 교회가 들어서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인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그때 중국 땅에 복을 주십니다. 북한은 2천만뿐이 안 되는데 굶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중국 혁명이 가득 찼는데 사랑의 공동체를 중시합니다. 혁명 개혁 싸움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 마음가짐으로 갈 때 풍년을 주십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회개하는 마음으로 용서를 믿고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십니다. 이런 모습이 여호와의 명예가 되며 영영한 표징이 되어 끊어지지 않습니다(12,13). 하나님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만드십니다.

 

(지금이 여호와께로 돌아올 때)

 

우리가 살다 보면 권력과 명예, 그리고 돈이 제일 중요한 것으로 생각될 때가 있어서 그것을 얻고자 몸부림을 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으로 인생의 목마름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여호와께로 돌아올 때 타는 목마름을 해결될 수 있습니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1)." 우리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 성령이 충만한 삶을 살면 하나님이 넘치도록 축복하실 것을 믿습니다. 아멘 이사야 55장 강해 만민의 인도자 이스라엘

 

말씀 이사야 551-이사야 5513

요절 이사야 551"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1)."

이사야 55장 강해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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