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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이사야 49장 강해 구원을 땅끝까지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8-10-03 00:00:00
조회수 : 8,952

문제지풀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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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49장 강해 구원을 땅 끝까지

말씀 이사야 491-이사야 4926

요절 이사야 496"그가 가라사대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 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오히려 경한 일이라 내가 또 너로 이방의 빛을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오늘 말씀은 종의 노래의 두 번째 노래입니다. 하나님은 어렵고 힘든 시대에 이사야와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종으로 부르시고 그를 훈련하사 땅 끝까지 구원을 베풀고자 하는 큰 소망과 비젼을 주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사야에 대해서 일차적으로 이야기 하지만 궁극적으로 그리스도 예수님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메시야에 대한 예언과 세계 구원의 계획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부르심)

 

1절을 보십시오. "섬들아 나를 들으라 원방 백성들아 귀를 기울이라.여호와께서 내가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나를 부르셨고 내가 어미 복중에서 나옴으로부터 내 이름을 말씀하셨으며"

 

여기서 나는 이사야, 이스라엘 또는 약속된 메시야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이 선택하신 자를 통하여 구원역사를 이루십니다. 섬들과 원방백성은 세계만민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선지자 이사야로 하여금 세계를 품고 모든 나라, 모든 백성들을 향하여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십니다.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부르신 부르심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서 말씀을 보면 이사야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부르심 받은 것은 웃시야 왕이 죽던 해인 청년의 때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가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그를 부르시고 그가 어미 복중에서 나옴으로부터 그 이름을 말씀하셨다고 하였습니다. 사도바울도 창세 전에 우리를 택하셨다고 하였습니다.

야곱도 태에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의지로 원해서나, 우리의 자격이 있어서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오직 이 부르심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은혜와 섭리 가운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임의로 변하는 기업체에서처럼 권고 사직을 시키지 않으십니다. 테에서 나를 부르셨다는 부르심에 대한 확신이 있을 때 구원 받을 수 있습니다. 어떤 어려움 가운데서도 눈을 돌리지 않고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훈련을 받을 수 있고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사야를 부르신 하나님은 그를 어떤 자로 빚으셨습니까?

 

(날카로운 칼, 마광한 살로 훈련하심)

 

2절을 보십시오. "내 입을 날카로운 칼같이 만드시고 나를 그 손 그늘에 숨기시며 나로 마광한 살을 만드사 그 전통에 감추시고"

 

총포가 발달되지 않았을 당시에 칼과 살은 근거리와 원거리에서 쓰는 전쟁 무기였습니다. 닐키러은 칼은 적의 갑옷을 뚫고 급소를 찌를 수 있을 정도로 잘 갈고 준비된 것입니다. 날카롭다는 것은 정확하게 본질을 꿰뚫는 것입니다. 영적 싸움은 눈에 보이지 않는 사단과의 전쟁입니다. 사탄은 그 모습을 교묘하게 감추고 다닙니다. 생기 발랄한 젊은 대학생들을 보면 겉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영적인 싸움은 이처럼 보이지 않게 숨어 역사 하는 사탄의 세력을 분별하고 사람의 근본 문제를 드러내고 그것과 싸우는 것입니다. 입이 날카로운 칼 같고 마광한 살 같은 사람이 바로 준비된 말씀의 종입니다.

본래 이사야의 입은 날카로운 칼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훈련을 받자 사람들의 근본 문제가 하나님을 떠난 죄 문제요 회개하지 않는 문제임을 알았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가 그토록 거역하던 그 분께로 돌아오라고 외치는 그 시대의 날카로운 말씀의 종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날카로운 말씀의 종으로 연단될 때 양들의 어떤 죄라도 깨우치고 회개시키며 사단의 어떤 거짓도 파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날카로운 칼과 마광한 살을 만드사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칼을 손에 감추시고 근거리 공격에 화살을 전통에 넣어 두었다가 원거리 공격에 사용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주의 종을 어떻게 날카로운 칼과 같은 말씀의 종으로 연단하십니까? 말씀의 종은 자기 말이나 사람의 말이나 지식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도록 세우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종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을 정확히 깨닫고 전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깊이 연구하고 순종하는 투쟁이 필요합니다.

히브리서 412, 13절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그 자체가 살아 있고 운동력이 있습니다.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갭니다.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모든 것이 벌거벗은 것 같이 다 드러납니다. 말씀의 종은 자신이 먼저 심령으로 말씀을 받고 먼저 순종한 후에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그때 성령님께서 그 말씀을 통해 감동하는 역사를 이루십니다. 나아가 말씀의 종은 말씀과 삶이 일치하고 인격이 연단되어야 합니다. 철광석이 날카로운 칼이 되려면 제련과 연마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날카로운 칼이 되려면 철광석을 가져다가 고온으로 끓는 용광로에 집어넣어 녹여 불순물을 제거합니다. 녹은 철 용액을 틀에 부어 칼의 형태를 만든 다음, 뜨거운 불에 넣어 달구었다가 해머로 수없이 두들겨서 강하게 단련시킵니다. 그 후 찬물에 담금질을 합니다. 이런 과정을 반복한 후 강성과 연성이 겸비된 좋은 강철이 됩니다. 또 그 강철을 갈아 날을 세울 때 날카로운 칼 보검이 만들어 집니다.

이처럼 말씀의 종은 인격이 연단되어야 합니다. 날카로운 말씀의 종이 되려면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갈고 닦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말씀의 종은 겸손해야 하고 진실하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고난은 우리가 하나님이 쓰실만한 인격과 말씀의 종이 되기 위한 과정입니다. 우리가 인생의 고난이나 훈련을 만날 때 기죽거나 낙심하지 말고 나를 더 큰일에 쓸만한 종으로 빚으시기 위해 훈련하시는구나 생각을 하고 적극 십자가를 감당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예쁘게 빚으시는 토기장이시고 또 강하고 날카롭게 하시는 대장장이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날카로운 말씀의 종으로 더 크게 쓰시고자 더 큰 훈련과 고난으로 우리의 인격을 연단해 가십니다. 하나님은 바벨론 70년 용광로 생활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연단하셨습니다. 그 때 이스라엘이 날카로운 칼이 되어 온인류 가운데 역사하였습니다. 한 마디를 해도 마광한 살과 같이 인류의 심령에 꽂히게 되었습니다.

칼이 강해서 날카로울 뿐 아니라 잘 부러지지 않는 연성을 가져야 합니다. 말씀의 종은 날카로울 뿐 아니라 내구성이 있어야합니다. 한 사람을 죄에서 구원하고 제자로 양육하는 일은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믿음에서 나온 소망을 끊지 않는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날카로운 칼이요 마광한 살이 되기까지 우리를 연단 하시고 그의 손 그늘에 감추시고 전통에 숨기십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크게 쓰십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날카로운 칼, 마광한 살과 같은 말씀의 종으로 빚으시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자)

 

3절을 보십시오.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나의 종이요 내 영광을 나타낼 이스라엘이라 하셨느니라.“

 

우리가 말씀의 종으로 쓰임 받는 것은 자기 광을 내기 위함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종의 삶의 동기와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사랑과 거룩, 은혜, 진리 등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강도 높게 더 크게 연단하시는 이유도 더 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도구로 쓰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개인뿐만 아니라 우리 모임과 하나님의 백성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부르시고 고난을 주시고 훈련을 하시고 소망 가운데 키우시는 하나님을 믿어 드리고 우리를 맡겨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영광의 도구로 온전히 쓰십니다.

 

(상급은 하나님께 있다)

 

4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나는 말하기를 내가 헛되이 수고하였으며 무익하게 공연히 내 힘을 다하였다 하였도다 참으로 나에 대한 판단이 여호와께 있고 나의 보응이 나의 하나님께 있느니라."

 

이사야 선지자는 김 빼는 힘든 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사야 선지자는 부르심을 받은 후에 힘을 다해 수고했습니다.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왕에 4대에 걸쳐 60년 이상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는 문제의식 없는 백성에게 앞으로 있을 하나님의 심판을 그대로 전하기 위해 3년 동안 벗은 몸, 벗은 발로 쌩 쇼를 하며 마치 행위예술 하는 사람들처럼 말씀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아들의 이름도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는 메시지가 담긴 이름으로 지었습니다. 이사야는 힘을 다해 심정을 갖고 말씀을 전했는데 호응도 눈에 보이는 열매도 없었습니다. 고생을 해도 그 대가나 열매만 있으면 견딜만하고 힘이 납니다.

그러나 시간과 물질과 정열을 바쳐서 수고했는데도 열매가 없으면 헛수고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때 마음이 피곤해지고 피해의식에 시달리기 쉽습니다. 주님을 섬길 힘을 잃고 눕거나, 반발감에서 내가 뭘 하겠어 하며 자기 것을 꾸리고자 은근히 방향을 틀어 버립니다.

하지만 이사야는 어떻게 했습니까? 이사야는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자기의 인생을 판단하실 분이 하나님이라고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연단과 훈련으로 그는 잠시 힘들었으나 하나님을 믿고 바라봤습니다. 하나님은 어머니의 태에서 나오기 전부터 자신을 부르시고 훈련과 고난을 감당하는 그의 수고와 고난과 아픔을 다 이해하고 계셨습니다. 누구하나 그에게 감사하다고 카톡하나 안 보냈어도, 하나님은 그를 위해 상급을 예비해 놓고 계셨습니다. 이사야는 하나님 앞에 자신을 깊이 발견했습니다.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은 그를 어떻게 보시며 하나님은 그에게 어떤 분이 되십니까?

 

(나의 힘은 여호와다)

 

5절을 보십시오. "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나니 그는 태에서부터 나를 그의 종으로 지으신 이시요 야곱을 그에게로 돌아오게 하시는 이시니 이스라엘이 그에게로 모이는도다 그러므로 내가 여호와 보시기에 영화롭게 되었으며 나의 하나님은 나의 힘이 되셨도다

 

이사야는 하나님 보시기에 존귀한 자로 자신을 발견하였습니다. 내가 여호와 보시기에 영화롭게 되었다고 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하나님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사야는 열매가 있든 없든, 사람들이 인정해주든 인정해주지 않든 하나님은 변함 없이 자신을 존귀하게 여겨주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를 생각할 때 그는 하나님을 통하여 새 힘을 얻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편이 되심을 생각할 때 그 어떤 것도 부럽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믿는 자를 결코 부끄럽게 하지 아니 하십니다. 하나님께 나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힘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이사야의 힘이시오. 방패요. 지극히 큰 상급이 되어주십니다. 이제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이루실 역사를 말씀하십니다. 그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에게로 모이는 것을 바라봅니다. 그는 먼 미래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봅니다.

 

(야곱의 지파를 일으킬 것이다.)

 

6절을 보십시오. "그가 이르시되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매우 쉬운 일이라 내가 또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이사야는 이스라엘을 회복시키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게 이 완악한 이스라엘을 돌이키는 일이 경한 일이고 작은 일이라고 하십니다.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들이 있습니다. 보전된 자들이란, 영적 갈급함으로 말씀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고 자신들을 인도해 줄 목자를 기다리고 있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보전된 자, 곧 남겨진 자들을 돌아오게 하는 역사입니다.

하나님은 너무 힘들어 차라리 죽여 달라고 기도하던 선지자 엘리야에게도 내가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자 칠천을 남겨 두었다고 하셨습니다. 요즘 캠퍼스 복음 역사를 섬기는 것도 너무나 힘들게 보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힘들다고 생각하는 것은 마치 돌아오지 않을 양을 억지로 돌이키려고 하는 것처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께서 보전하신 자들을 돌아오게 하는 것입니다. 양들도 때로 무지하고 완악하여 목자에 반발하고 가슴 아프게 하기도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께서 보전하신 자들이기 때문에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를 생각할 때 캠퍼스 양들을 돌이키는 것은 결코 벅찬 일만은 아닙니다. 6만여 천안캠퍼스 양들 가운데에 하나님께서 보전하신 자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보전된 자들을 돌아오게 하심으로 우리를 쓰셔서 천안캠퍼스와 한국 캠퍼스 복음화를 능히 이루실 것입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이는 율법이 시온 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으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2 : 3) 말씀과 같이 우리가 찾아가지 않아도 양들이 생명의 말씀을 찾아 천안 UBF로 몰려오게 될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소망은 이스라엘 구원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더 큰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그에게 어떤 더 큰 뜻을 두셨습니까?

 

(이방의 빛을 삼아)

 

하나님은 이스라엘 구원역사도 벅차다던 이사야를 이방의 빛으로 삼겠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이사야를 이방의 빛이라고 하신 것을 볼 때, 이방 세계는 깊은 어두움 가운데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문화의 어둠, 종교의 어둠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죄악과 영적 무지 속에서 헤매고 있습니다. 그들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지만, 왜 사는지, 또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몰라 방황하고 있습니다. 인도는 소가 조상이라고 하여 소와 함께 살아갑니다. 결국 영원한 멸망과 심판 가운데로 떨어질 것입니다. 무엇보다 사망의 어둠 속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이방인들에게 구원을 베풀기 원하십니다. 그 구원의 소식이 땅 끝까지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려면 누군가가 이 구원의 복음을 가지고 그들에게 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이스라엘 복음화를 가볍게 이루시고 그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땅 끝까지 구원의 복음을 증거 하는 역사를 이루고자 하십니다.

 

(이방의 빛 예수님)

 

그런데 실제로 이사야는 이방 땅에 가지 못했다고 합니다. 평생 이스라엘 안에서 말씀을 전하다가 이스라엘 복음화의 역사를 못보고 일생을 마쳤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가 전한 말씀이 이방의 빛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가 전한 예수님이 이방인의 빛이 되어 어둔 그들을 비추셨습니다.

사도행전 8장에 보면 에디오피아 내시가 예루살렘에 예배하고 돌아다가다 빌립과 이사야서 말씀 공부를 통해 예수님을 영접하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이방의 빛 이사야의 메시지는 이방인인 우리에게까지 왔습니다. 우리는 수양회 때마다 이사야서 53장의 예수님의 고난에 관한 그의 메시지를 통해 감동을 받고 많은 사람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케 합니다. 이사야가 전한 말씀은 지금도 이방의 빛이 되어 구원의 빛이 되어 땅 끝까지 전파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과 그 후의 역사를 통하여 이방인이 돌아오게 하였습니다. 이방인의 빛 예수님은 세계를 변화시키십니다. 자본주의의 뿌리는 기독교입니다. 종교가 바뀌면 문화, 경제, 정치가 변화됩니다.

 

(이방의 빛 천안 ubf)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와 우리 모임에게도 이와 같은 소망과 비젼을 주십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의 관심은 주로 먹고사는 문제 곧 경제 문제에 있습니다. 그래서 신입생들조차 졸업 후 진로로 고민하고 직장문제, 경제 문제 외에는 다른데 관심이 없습니다. 또 우리 각자에게도 현재 한계와 힘든 문제가 있습니다. 한 팀의 일대일, 또 한 명 제자 양성이 너무나 힘들게 보입니다. 물질 문제로 고민하는 분도 있습니다. 우리는 눈앞의 이 한 가지 감당하는 것도 너무나 벅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와 우리 모임과 이 나라에 두신 소망을 두고 계십니다. 한 명 1:1과 제자 양성은 물론, 천안 캠퍼스개척은 경한 일이요, 우리를 이방의 빛을 삼아 땅 끝까지 구원의 복음을 베풀고자 하십니다. 구체적으로 천안 UBF로 부르셔서 우리에게 두신 소망이 무엇입니까? 이는 천안 UBF 교회가 그 누구나 어떤 모임보다 더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고 경외하는 교회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의 복음에 기초한 제자양성을 하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말씀이 살아있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이 일을 하십니다.

하나님은 정치인들의 욕심과 그릇된 판단으로 일어나는 전쟁조차 쓰셔서 굳게 닫혀 있던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와 같은 회교권의 문을 열고 계십니다. 김일성 대학 개척을 위한 우리의 기도를 받으시고 북한을 조금씩 여시고 개성공단에서 생산된 그릇이 백화점에서 불티나게 팔리기도 했습니다. 중국이나 일본에서 욘사마 열풍은 배용준이나 스타들이 잘 나서만은 아닙니다. 우상 숭배로 찌든 그들이 한국 사람을 좋아하는 기적을 만들어 복음을 전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구원을 베풀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소망은 어려운 시대에도 줄기차게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복음을 가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이방의 빛으로 삼겠다고 하십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이 시대 하나님의 소망입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의 부르심과 훈련과 쓰시려는 소망을 생각할 때 그 동안 벅차다고 생각하던 문제들이 오히려 경한 일임을 보게 됩니다. 어둠 가운데 있는 이방에는 예수님의 생명의 빛, 말씀의 빛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이방의 빛은 궁극적으로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누가복음 232절을 보면 예수님을 이방을 비추는 빛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어두운 세상에 생명을 불어넣는 참 빛이십니다. 참이스라엘 교회가 이방의 빛이 되어 복음을 비추어야합니다.

 

(열왕이 경배하리니)

 

7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의 구속 자,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이신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멸시를 당하는 자, 백성에게 미움을 받는 자, 관원들에게 종이 된 자에게 이같이 이르시되 너를 보고 열 왕이 일어서며 방백들이 경배하리니 이는 너를 택한 바 신실한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인함이라"

 

이사야는 당대에 멸시와 미움과 종 취급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말씀하신 것들, 곧 이스라엘 복음화와 세계선교를 다 성취하셨습니다. 이로써 이사야를 열왕과 방백들이 존경하는 위대한 하나님의 종으로 높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과거에 출애굽 역사를 이루실 뿐 만 아니라 또 이스라엘을 바벨론에서 구원하시는 이스라엘의 구속자이십니다. 사랑과 권능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세상 사람과는 구별되는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빈틈없고 정확하시고 완전하게 우리에게 하신 약속을 다 성취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멸시당하신 예수님을 만유의 그리스도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때로 멸시를 당하나 열왕이 존경하도록 높여주십니다. 하나님의 종의 삶은 세상 사람과 다르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에게 미움과 멸시를 당합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생명 구원 역사를 이루는 삶을 사실 때 말할 수 없는 멸시와 미움과 핍박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나서 열왕 가운데 믿는 왕들이 일어서며, 방백들이 다 경배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사는 자들과 성령으로 함께 하시고 비록 고난과 훈련이 있지만 반드시 높이시고 주님의 영광에 동참하게 하십니다.

 

(은혜의 때에 하나님이 도우십니다.)

 

8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 내가 장차 너를 보호하여 너를 백성의 언약으로 삼으며 나라를 일으켜 그들에게 그 황무하였던 땅을 기업으로 상속하게 하리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은혜 받을 만한 때에 응답하십니다. 구원의 날에 이스라엘을 도와주십니다. 70년 광야 생활 후에 구원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은혜를 베풀고 구원을 이루십니다.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입니다. 하나님은 주의 종을 보호하여 백성의 언약으로 삼으십니다. 주의 종을 통하여 백성과 언약을 맺으십니다. 하나님은 백성을 일으켜 그들에게 황무하였던 땅을 기업으로 주어 상속하게 하십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후서 62절에서 이 말씀을 인용합니다. 지금이 은혜의 때요 구원의 날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에게는 심판의 때가 있고 구원의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많은 고통으로 치십니다. 모든 사람들이 겸손하게 하십니다. 그때 복음을 전합니다. 복음을 받아들이게 합니다. 이때는 은혜의 때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로 말하면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는 때는 심판의 때이고 다시 예루살렘을 재건하는 것은 긍휼의 때입니다.

예수님이 오시고 사람들이 복음을 듣게 됩니다. 모든 사도와 선지자들이 복음을 듣습니다. 그때가 구원의 날입니다. 그 예언의 말씀이 지금 이루어진 것입니다. 은혜의 사건이 바로 내 앞에 있는 사건입니다. 은혜의 때가 여기에 있습니다. 북한에 있는 성도들이 고생하고 은혜의 때를 맞지 못하고 죽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은혜의 때에 내가 참석하지 못하면 나는 불행한 것입니다. 내가 응답받는 그 시간이 바로 은혜의 때가 됩니다. 일제의 압제에서 많은 사람들이 고생합니다. 해방을 못본 사람들이 있습니다. 해방의 기쁨이 넘치는 그곳에 내가 있다는 것이 행복입니다.

 

(동서남북에서 자손들이 돌아옴)

 

9-12절을 보십시오. “내가 잡혀 있는 자에게 이르기를 나오라 하며 흑암에 있는 자에게 나타나라 하리라 그들이 길에서 먹겠고 모든 헐벗은 산에도 그들의 풀밭이 있을 것인즉 그들이 주리거나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며 더위와 볕이 그들을 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는 이가 그들을 이끌되 샘물 근원으로 인도할 것임이라 내가 나의 모든 산을 길로 삼고 나의 대로를 돋우리니 어떤 사람은 먼 곳에서, 어떤 사람은 북쪽과 서쪽에서, 어떤 사람은 시님 땅에서 오리라

 

하나님은 잡혀 있던 자가 돌아오게 하십니다. 흑암에 잇는 자에게 빛으로 오게 하십니다. 그들은 돌아오는 길에서 먹겠고 모든 헐벗은 산도 풀밭이 있게 하십니다. 그들은 더 이상 주리거나 목마르지 않습니다. 더위와 햇볕이 그들을 상하게 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긍휼히 여겨서 그들을 샘물 근원으로 인도하여주십니다. 샘물 근원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성령의 샘물이 솟아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산에 길을 내고 대로를 만드십니다. 먼곳에서 동서남북에서 돌아오게 하십니다. 하나님 나라로 가는 많은 사람이 나옵니다.

 

(하늘이여 노래하라)

 

13절을 보십시오. “하늘이여 노래하라 땅이여 기뻐하라 산들이여 즐거이 노래하라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셨은즉 그의 고난 당한 자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는 이스라엘의 축복을 말씀하십니다. 한번 포로로 끌려가면 끝입니다. 망한 나라가 다시 회복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위로하시고 그 고난 당한 자를 긍휼히 여기십니다.

출바벨론 사건은 예수님을 통하여 구원받을 것을 예표합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는 것이 구원론입니다. 하늘도 땅도 이스라엘 가운데 이루신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 기뻐하고 노래부릅니다. 예수님을 통한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질 때 어린아이가 기뻐 외치고 돌들도 기뻐 외칩니다.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14-17절을 보십시오.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네 자녀들은 빨리 걸으며 너를 헐며 너를 황폐하게 하던 자들은 너를 떠나가리라

 

지금 바벨론에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나를 잊으셨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께 버림 받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회복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것은 커다란 오해입니다. 여인이 자식을 잊지 않고 긍휼히 여기십니다. 어머니가 잠을 자다가도 자식이 울면 깨어납니다. 도덕적으로 타락하여 병이 들어 죽어서 어머니가 자녀를 잊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부모라도 자식을 혹시 잊는 사람이 있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잊지 않으십니다. 어머니의 사랑이 가장 고상하고 위대하지만 결점이 있습니다. 지혜가 없고 능력이 없습니다. 주어야하는데 줄 것이 없습니다. 여호와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지혜와 능력이 있습니다. 어머니가 우는 아이라고 아이를 집어던지지 않습니다. 어머니가 자녀를 사랑하는 것은 본능적입니다. 자식이 잘못 되어도 부모는 사랑합니다. 부모는 자식이 패륜아라도 사랑합니다. 어머니는 자식을 버리지 않듯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잊지 않습니다. 징계를 받아도 하나님의 사랑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그래도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나를 버려도 하나님은 나를 버리지 않습니다. 어떤 경우도 버리지 않습니다. 자녀는 가출해도 부모는 가출한 아이를 잊지 않습니다. 나는 절망해도 하나님은 절망하지 않습니다. 어떤 고난 속에도 하나님의 사랑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탕자는 재산도 탕진하고 몸도 망가졌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사랑을 기억하고 돌아옵니다. 그는 이것으로 훌륭한 사람이 됩니다. 탕자는 어려울 때에 아버지는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생각하였습니다. 거기서 자신의 정체감을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손바닥에 새기시고 그 성벽을 항상 앞에 두고 지켜보고 계십니다. 예전에 약속하고 잊어버리니까 손가락에 끈을 매놓습니다. 끈을 보고 약속을 기억합니다. 하나님은 어찌하든지 이스라엘을 기억해냅니다. 영원히 잊지 않습니다 성벽이 항상 있습니다. 무너진 성벽이 하나님 앞에 있습니다. 심판 받아 무너진 성벽을 하나님이 보고 계십니다. 그래서 무너진 성벽을 회복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랑하여 연단시키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자녀들은 발길을 재촉하여 모여듭니다. 예루살렘을 헐며 황폐하게 하던 자들은 다 예루살렘을 떠나갈 것입니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18-19절을 보십시오.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그들이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 네가 반드시 그 모든 무리를 장식처럼 몸에 차며 그것을 띠기를 신부처럼 할 것이라 이는 네 황폐하고 적막한 곳들과 네 파멸을 당하였던 땅이 이제는 주민이 많아 좁게 될 것이며 너를 삼켰던 자들이 멀리 떠날 것이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십니다. 눈을 들어서 사방을 보라고 합니다. 예루살렘을 떠났던 자들이 다 모여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삶을 두고 맹세합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은 모여든 사람들을 장식물처럼 몸에 차며 신부가 장식물을 자랑스럽게 여기듯이 그들을 자랑스러워할 것입니다. 현재는 이스라엘 땅이 황폐하고 적막하고 파멸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민이 많이 모여서 좁아질 것이며 그들을 삼켰던 자들은 멀리 떠나게 될 것입니다.

 

(이들은 어디서 생겼는고)

 

20-21절을 보십시오. “자식을 잃었을 때에 낳은 자녀가 후일에 네 귀에 말하기를 이곳이 네게 좁으니 넓혀서 내가 거주하게 하라 하리니 그 때에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누가 나를 위하여 이들을 낳았는고 나는 자녀를 잃고 외로워졌으며 사로잡혀 유리하였거늘 이들을 누가 양육하였는고 나는 홀로 남았거늘 이들은 어디서 생겼는고 하리라

 

잃은 줄로만 알았던 자녀가 후일에 돌아와서 사람들이 많아 땅이 좁으니 터전을 넓혀달라고 합니다. 그는 자녀를 잃고 외로워졌으며 사로잡혀가 유리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에게 많은 자녀가 태어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그 자녀들을 양육하였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수고하지 않은 많은 자녀들이 생겨 난 것으로 인하여 놀라워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친히 하신 일입니다.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것은 엄청난 불행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바벨론 포로에서 자녀를 낳고 돌아옵니다.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은 거의 다 죽고 그 자녀들이 돌아옵니다. 하니님은 환난 중에서 역사하십니다. 우리는 이 깊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해야합니다.

 

(고난 중에 일하신 하나님)

 

22,23절을 보십시오. “주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라 내가 뭇 나라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민족들을 향하여 나의 기치를 세울 것이라 그들이 네 아들들을 품에 안고 네 딸들을 어깨에 메고 올 것이며 왕들은 네 양부가 되며 왕비들은 네 유모가 될 것이며 그들이 얼굴을 땅에 대고 네게 절하고 네 발의 티끌을 핥을 것이니 네가 나를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나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 민족들을 향하여 깃발을 세우십니다. 그들이 아들들을 품에 안고 딸들을 어깨에 메고 돌아옵니다. 왕들은 이스라엘의 양부가 되고 왕비는 이스라엘 백성의 유모가 됩니다. 이방나라의 왕들이 이스라엘을 섬깁니다. 다니엘이 바벨론과 폐르시아에서 총리를 합니다. 에스더가 왕후가 됩니다. 유대인을 죽이려던 하만과 그 일행이 죽습니다. 이방땅에 가 있으면서 유대인들은 환난과 역경 중에서 더 성숙합니다. 포로된 백성들에게 초조하게 생각하지 말라고합니다. 결혼하고 애도 낳고 정착하라고 합니다. 그들이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습니다. 그들이 돌아오게 됩니다. 그 고난의 기간에 더 놀라운 역사를 이루십니다. 고난이 없어지는 것이 구원은 아닙니다. 고난 중에서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고난 중에 역사하는 하나님의 은총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치 바로의 딸이 버려진 모세를 키워서 보낸 것과 같이 신기한 일을 하십니다. 열왕들이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고 발의 티끌을 핥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서 여호와께서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게 하십니다. 하나님을 믿고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치 않고 영광스럽게 하십니다.

 

(이스라엘의 편이 되신 하나님)

 

24-25절을 보십시오. “용사가 빼앗은 것을 어떻게 도로 빼앗으며 승리자에게 사로잡힌 자를 어떻게 건져낼 수 있으랴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용사의 포로도 빼앗을 것이요 두려운 자의 빼앗은 것도 건져낼 것이니 이는 내가 너를 대적하는 자를 대적하고 네 자녀를 내가 구원할 것임이라

 

용사나 승리자는 바벨론 사람들입니다. 용사가 빼앗은 것을 도로 빼앗을 수 없고 승리자에게 자로잡힌 자를 건져낼 수 없습니다. 예전에 노예는 사람 대접을 못받습니다. 자녀는 마치 짐승새끼와 같습니다. 이들이 어떻게 자유를 얻으며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승리자와 용사에서 구원하십니다. 누구도 이스라엘을 바벨론에서 구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일을 하십니다. 바벨론 용사의 포로도 빼앗으시고 두려운 폭군의 빼앗은 것도 건져내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자를 대적하시고 그 자녀들을 구원하십니다. 이스라엘은 포로로 잡혀갈 때 그들은 잘못했다고 회개합니다. 그들은 성전을 더럽히고 우상을 숭배합니다. 매 맞을 때 그들은 잘못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우상을 섬기고 많은 죄를 지었습니다. 선진국의 종교문화를 수입하여 혼합종교가 되었습니다. 도덕적으로 정치적으로 타락했습니다. 그들은 매 맞는 순간 죽어 마땅하다고 합니다.

 

(야곱의 전능자인 줄 알리라)

 

26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를 억압하는 자들에게 자기의 살을 먹게 하며 새 술에 취함 같이 자기의 피에 취하게 하리니 모든 육체가 나 여호와는 네 구원자요 네 구속자요 야곱의 전능자인 줄 알리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억압하는 자들이 자기 살을 먹게 하십니다. 새 술에 취함같이 자기 피에 취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친히 바벨론을 심판하십니다. 모든 육체가 여호와는 구원자요. 구속자요. 야곱의 전능자임을 알게 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구원을 통하여 자신이 구원자요. 전능자이심을 드러내십니다. 여호와는 전적인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출애굽을 통하여 하나님이 여호와이심을 나타내신 것처럼 지금도 여호와이심을 나타내십니다. 구원의 역사는 하나님이 친히 이루시는 역사입니다. 하나님은 친히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고 찬양을 받으십니다.

 

(하나님의 비전을 갖자)

 

결론적으로 오늘 말씀을 통하여 이사야 한 사람을 부르시고 날카로운 칼, 마광한 살로 훈련하셔서 그를 이방의 빛으로 삼으시고 땅 끝까지 구원을 베풀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소망과 믿음을 배우게 하십니다. 실제 말씀의 종으로 훈련받고 인격의 훈련을 받고 복음을 전하는 것은 고난이요 우리가 감당할 십자가입니다. 이것이 힘들지만 영광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항상 고난과 훈련이 셀수록 영광이 큼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고난의 길은 예수님이 가신 길이요 이사야가 순종한 길입니다. 우리는 현실이 어려울 때 더욱 큰 비전과 소망을 가져야합니다. 어둘수록 멀리 보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식이 없는 상황에서 하늘의 뭇별을 보았습니다. 이런 비전을 주시고 소망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고 우리 자신들이 날카로운 칼, 마광 한 살 같은 빼어난 말씀의 종으로 성장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이사야 49장 강해 구원을 땅 끝까지

말씀 이사야 491-이사야 4926

요절 이사야 496"그가 가라사대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 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오히려 경한 일이라 내가 또 너로 이방의 빛을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이사야 49장 강해 끝입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59 [이사야] 이사야 56장 강해 만민이 기도하는 집 오요한 2012-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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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이사야] 이사야 54장 강해 장막터를 넓히라 오요한 2012-01-18
56 [이사야] 이사야 53장 강해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오요한 2012-01-18
55 [이사야] 이사야 52장 강해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오요한 2012-01-18
54 [이사야] 이사야 51장 강해 이스라엘을 통해 하나님의 공의를 만민의 빛으로 세운다 오요한 2009-12-15
53 [이사야] 이사야 50 강해 1학자들같이 알아듣게 하시는도다 오요한 2008-10-03
52 [이사야] 이사야 49장 강해 구원을 땅끝까지 오요한 2008-10-03
51 [이사야] 이사야 48장 강해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오요한 2008-09-23
50 [이사야] 이사야 47장 강해 나외에 다른 이가 없다는 바벨론 오요한 2008-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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