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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이사야 43장 강해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8-09-23 00:00:00
조회수 : 7,858

문제지풀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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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bf(말씀사랑교회) 2023년 신년 말씀

이사야 43장 강해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말씀 이사야 431-이사야 4328

요절 이사야 43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데카르트는 모든 것을 의심했습니다. 그는 가장 확실한 것에서부터 시작하고자 했습니다. 그가 마지막 의심할 수 없는 하나의 사실은 자신이 의심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의 명제를 세웠습니다. 그것이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성도에게도 하나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나를 먹여 주시고 입혀 주셔서 현재 살아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우리를 지켜 주신 것을 생각하면 감사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또 미래를 생각하면 두렵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미래를 생각할 때 두려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 포로에서 많은 근심 걱정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그들은 인간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은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윤리적으로 신앙적으로 흔들리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너는 내 것이라" 말씀하셔서 두려움을 제거해 주십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말씀하시며 미래에 임할 비전을 가르쳐 주십니다. 이전 것을 기억하지 못할 정도의 새 일을 행하십니다.

 

(여러 가지 두려움)

 

1절을 보십시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것이라"

 

야곱아 이스라엘아 부르십니다. 야곱은 구원받기 전의 모습이고 이스라엘은 구원 받은 후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이스라엘로 부르셨지만 이스라엘에게는 자연인 야곱의 모습이 있습니다. 야곱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되어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현재 두려움 가운데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바벨론의 포로 생활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벨론에 의해서 언제 어떻게 죽음을 당할지 모르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장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 모릅니다. 하나님께 버림 받은 것 같은 두려움에 시달립니다. 그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온 것은 하나님께 버림 받은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도 삶을 살다보면 두려움이 우리 마음을 지배할 때가 있습니다. 질병에 대한 두려움도 있습니다. 우리는 눈이 아프면 실명되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아기가 열이 올라가면 혹시 장애라도 생기면 어떻게 하나 염려하고 배가 아프면 혹시 암은 아닌가 염려합니다. 또한 학과 공부나 직장 일을 할 때도 염려가 있습니다. 학과 공부에 실패하면 어쩌나 직장은 잡을 수 있을까 직장에서 쫓겨나지는 않을까 직장일에 실패하지는 않을까 염려가 생깁니다. 제자를 양육하면서도 계속된 두려움에 시달립니다. 제자가 말씀 공부 약속을 지킬까 제자가 변화될까 제자가 순종을 할 것인가? 제자가 믿음의 결혼을 할 수 있을까 결혼에 실패하지는 않을까 두려움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임신한 후에는 혹시 장애자가 태어나지는 않을까 염려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불신자와 달리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근본 원인은 하나님이 누구시며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어떠한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너는 내 것이라)

 

우리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다시 1절을 보십시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것이라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주요 우리의 조성자이시오 우리의 구속자시요 우리를 부르신 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셔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시고 보라 얼마나 좋으랴 감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흙을 빚어서 우리를 만든 조성자이십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인격으로 조성하여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깎고 때리고, 나는 매를 맞고 책망 받고 손해도 보면서 나라는 존재가 조성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우리의 창조주 하나님을 버리고 자신의 욕심을 따라갔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떠나 바벨론 포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구스와 애굽을 속량물로 주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페르시아는 구스와 애굽을 공격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자치권을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들을 위하여 외아들을 보내사 피값을 치르시고 다시 하나님의 소유로 사 주셨습니다. 구속하고 불렀다는 것은 현재완료형입니다. 이미 불렀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값주고 사신 하나님은 "너는 내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소유주가 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소유주가 되셔서 친히 우리를 책임져 주십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이 모든 것을 책임지고 인도하여주십니다.

우리가 은행에 돈을 맡기면 돈이 없어도 평안합니다. 은행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맡기면 그것이 지금 내게 없어도 행복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애굽이나 우상을 의지하지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모든 것을 책임져주신다고 하십니다.

 

(원종수박사)

 

원종수 박사는 "너는 내 것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 책을 보면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시고 어떻게 함께 해주셨는지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가난한 과부의 외아들이었습니다. 그는 가난하고 배경도 없었습니다. 폐병에 걸려서 죽을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치료하시고 그가 서울의대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의사고시에서 수석하고 미국에 유학 가서 암전문의가 되기까지 어떻게 섬세하게 돌보셨는가 나옵니다. 왜 하나님께서 그를 그렇게 섬세하게 돌보셨습니까? 원종수는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원박사가 자신을 완전히 하나님께 맡겨드렸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가 된다는 것은 은혜 중에 은혜입니다. 같은 물건이라도 주인에 따라 가치가 달라집니다. KBS 2TV 진품명품에 보면 누구의 소유냐에 따라서 값이 매겨집니다. 세종대왕의 벼루, 이순신 장군의 칼, 김홍도의 그림, 김정희의 글씨 같은 것은 값이 높습니다. 외국에서도 피카소의 그림이나 링컨의 만년필, 에디슨의 시계, 다이애너비가 입던 드레스 같은 물건은 값이 나가고 사람들의 인기가 높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보배로운 소유입니다. 위인과 명사들의 소지품이라는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어떤 물건이 국보 취급을 받는 것이라면 하나님의 소유인 크리스찬들은 얼마나 고귀한 존재들입니까? 크리스찬은 천하와 바꿀 수 없는 존귀한 존재입니다. 자녀도 누구의 자녀냐에 따라서 대접이 달라집니다. 대통령의 자녀들은 함부로 대할 수 없습니다. 대통령의 자녀들은 청와대 경호원의 특별 경호를 받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천사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특별경호를 받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함부로 건딜다 보면 큰 일 납니다.

 

(지명하여 불렀나니)

 

하나님은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지명이란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특별한 목적을 위해 택하신 것을 의미합니다. 인격적으로 한 사람 한사람 부르십니다. 민주당 총재인 김대중 대통령은 중요한 부서에 사람을 인선하여 지명하여 세웠습니다. 대통령의 지명을 받은 사람은 최고의 영광으로 생각하고 모든 일을 그만 두고 달려갑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들을 부러워합니다. 풀의 꽃같은 세상의 대통령이 지명하여 부르는 것도 이렇게 영광스러워 합니다. 하물며 전능하신 만왕의 왕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은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하나님은 캠퍼스의 많은 사람들 중에서 나를 보시고 "이 사람은 나의 아들 딸을 삼아야지"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지목하여 이름을 부르시고 "너는 내 것"이라고 도장을 찍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요 소유가 된 것은 의롭고 업적이 많아서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와 주권으로 죄인들 가운데서 나를 지목하여 부르셨습니니다. 하나님이 지목하여 부르셔서 우리를 쓰시고자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된 것은 오직 감사할 뿐입니다.

장티푸스를 걸려서 한 교회를 폐쇄하게 되었습니다. 최씨는 순경에게 장티푸스를 감기라고 거짓말하였습니다. 순경은 삼일 후에 장티푸스면 교회를 불지르겠다고 하였습니다. 최씨는 밥을 먹지 않고 기도합니다. 하나님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보라고 하십니다. 교회를 폐쇄하는데 내가 거짓말을 하지 않을 수 있느냐고 합니다. 이제는 교회가 하나님의 것이니 하나님이 교회를 책임져달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최씨를 치료하여주셨습니다. 우리가 잘못하고 실수하고 만신창이가 되어도 주의 것을 인정해야합니다.

 

(특별한 하나님의 보호)

 

2절을 보십시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지금 이스라엘은 바벨론의 용광로 속에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그곳에서 지켜주십니다. 그들이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는 길은 물을 건너는 것과 같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모든 가운데서 보호하여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을 어떻게 특별히 보호해 주시는지 나옵니다. 부르심을 받은 자도 물을 지나고 불을 지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가운데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사단은 우리를 불과 물 가운데 집어 넣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어떤 물과 불 가운데서도 우리를 보호해 주십니다.

애굽왕 바로는 이스라엘을 홍해 바다 가운데 몰아 넣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홍해 바닷물을 가르셔서 이스라엘을 보호해 주셨습니다. 오히려 애굽군대를 바다에 집어 넣어 주었습니다. 대적자들은 다니엘의 세 친구가 금신상에 절하지 않았다고 하여 극열히 타는 풀무 가운데 집어 넣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불꽃이 친구들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않게 보호해 주셨습니다. 오히려 대적자들을 불에 태우셨습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우리를 죽이고자 하는 불과 물 사이를 지날 때가 있습니다. 질병의 물, 시험의 불, 실패의 불, 비방의 물을 지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때도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보호해 주십니다. 다윗은 사울로부터 항상 죽음의 위협 아래 있었습니다. 그는 사망과 자신과의 사이가 한 걸음 사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눈동자와 같이 보호해 주셨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하나님이 값을 치르신 이스라엘)

 

3,4절을 보십시오.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얼마나 귀히 여기시는가 나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는 그들을 위하여 어떤 값을 치렀는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물건의 가치는 값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셔서 애굽의 장자를 다 죽이셨습니다. 이스라엘을 좇아온 애굽 군대를 바다에 몰아넣어 몰사시켜 죽여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랑하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고자 구스(이디오피아)와 스바(아프리카의 나라)를 망하게 하셨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겨 주셨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서 바벨론을 대속물로 주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눈동자같이 귀히 여깁니다. 보배로운 소유로 삼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민족을 사랑하셔서 일본을 대속물로 주셨습니다. 일본에 두 개의 원자 폭탄을 떨어뜨려 그 생명을 희생시키신 것은 그 만큼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개인적으로 보아도 그렇습니다. 나 한 사람을 키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부모님 목자님들의 희생이 있었습니까? 나 하나 키우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동역자와 양들의 희생이 있었습니까?

하나님은 이것도 부족하여 우리를 위해서 독생자 예수님까지 희생제물로 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만큼 우리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빅토리 위고는 허랑방탕한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위고를 회개시키기 위해서 딸을 데려가셨습니다. 이를 보고 위고는 자신의 딸을 죽이기까지 자신이 회개하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이때 회개하고 장발장을 썼습니다. 우리가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안다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스라엘을 돌아오게 하시는 하나님)

 

5-7절을 보십시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네 자손을 동쪽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쪽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 내가 북방에게 이르기를 놓으라 남방에게 이르기를 구류하지 말라 내 아들들을 원방에서 이끌며 딸들을 땅 끝에서 오게 하라.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니 두려워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으면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포로로 잡혀가고 세계 각국에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돌아오게 하십니다. 그들을 동서남북 사방에서 돌아오게 하십니다. 비록 땅 끝에 있을지라도 그들을 돌아오게 하십니다. 어디에 흩어졌든지 갇혀 있든지 다 모으십니다. 왜냐면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컫는 자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야할 존재들입니다. 마치 자녀가 잘되어야 부모의 이름이 드러나듯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 되어야 하나님의 이름이 드러납니다.

우리는 이제 자신의 유익이나 영광을 위해서 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할 일은 내 영광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서 살아야합니다. 우리가 온전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면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과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를 친히 돌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친히 우리를 책임지고 돌보십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나라로 회복시키고자 하십니다. 세계만국에서 말씀을 듣게 하기 위해 교회로 나아오게 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이렇게 구원하시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여호와를 증거하는 이스라엘)

 

8-9절을 보십시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을 이끌어 내라 열방은 모였으며 민족들이 회집하였는데 그들 중에 누가 이 일을 알려 주며 이전 일들을 우리에게 들려 주겠느냐 그들이 그들의 증인을 세워서 자기들의 옳음을 나타내고 듣는 자들이 옳다고 말하게 하여 보라"

 

이스라엘은 자신의 죄로 인하여 바벨론 포로로 잡혀 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통하여 그들을 당신의 증인을 삼으십니다. 이스라엘을 증인 삼으셔서 세계 모두가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십니다. 만방에 여호와가 하나님 됨을 증거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열방들과, 뭇 민족도 함께 재판정으로 나오라고 하십니다. 그들의 신들 가운데서 어느 신도 미래를 예고할 수 없습니다. 그들 가운데서 아무도 이제 곧 일어날 일을 예고할 수 없습니다. 그 신들이 증인들을 내세워서, 자신들의 옳음을 증언하게 하고, 사람들 앞에서 증언하게 하여서, 듣는 사람들마다 그것이 사실이라고 말하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증거하게 하십니다. 현재 이스라엘은 소경 같고, 벙어리 같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역사를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하사 구원의 하나님을 보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제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증인으로 세우고자 하십니다. 구원받은 그들은 이제 하나님을 보고 듣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들의 영적인 눈이 열렸습니다. 증인은 사실을 보고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몸으로 확실히 체험한 사람만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잠잘 때나 술취했을 때 경험한 사람은 증인이 될 수 없습니다. 증인은 이 사건을 사실로 증거하기 위해서 나의 목숨까지 걸 수 있어야 합니다. 증인들이 거짓말하는 경우는 용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내 생명을 바치고자 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이해득실을 따집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법정의 증인으로 삼으십니다. 열방과 민족이 모인 곳에서 증인이 되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증인 만들 방법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니엘과 그 친구들이 바벨론에서 포로로 잡혀가서 여호와 하나님의 증인이 됩니다. 관직에서 쫓겨나도 정직하게 유대인의 규례대로 하나님을 위해서 살 것이라고 합니다. 그들의 용기가 어디서 났을까요? 포로로 잡혀갔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에서 평안 가운데 있을때는 그렇게 못할 것입니다. 그들이 고난에 갔으니까 이제는 생명까지 포기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갑니다. 왕이 볼 때 이들은 기가막히게 똑똑한 사람입니다. 느브갓네살 왕이 자신의 백성을 믿지 못해도 식민지 백성 다니엘을 믿고 총리로 임명합니다. 그들의 충성심은 큰 고통을 겪었기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그들이 증거할 내용은 무엇입니까?

 

(여호와가 참 하나님이심을 증거하게 하심)

 

10,11절을 보십시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 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이스라엘은 하나님만이 유일한 창조주요 그들의 구원자라는 것을 증거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알고 믿고 깨닫기를 원하십니다. 믿음이 그냥 생기지는 않습니다. 많은 고난을 통해서 형성된 것입니다. 그들은 고난을 통해서 여호와가 하나님이심을 깨달았습니다.

대부분 큰 사랑은 네 살까지 부모에게 받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내가 부모가 되면서 그 사랑을 알고 깨닫습니다. 내가 사랑을 베풀면서 부모의 사랑을 깨닫습니다. 우리가 많은 정보를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우리가 정보경영을 잘 해야 합니다. 꼭 필요한 것만 알아야합니다. 참지식은 깨달음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깨달음을 주시기 위해서 많은 고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구원자로서 높임 받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구원자로서 자신의 이름이 드러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세계만민이 구원자 하나님을 믿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통하여 세계만민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난을 주십니다. 고난을 통하여 여호와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나만의 깨달음으로 얻기 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우리를 죄사함을 주시고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이는 구원자 하나님의 이름을 세계 캠퍼스에 증거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증거해야 합니다. 베드로도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를 제사장 나라로 삼으신 것은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은 선포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유일한 구원자 하나님)

 

12,13절을 보십시오. "내가 알려 주었으며 구원하였으며 보였고 너희 중에 다른 신이 없었나니 그러므로 너희는 나의 증인이요 나는 하나님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과연 태초로부터 나는 그이니 내 손에서 건질 자가 없도다 내가 행하리니 누가 막으리요

 

하나님은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여호와는 태초부터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태초부터 구원자가 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알려주시고 구원하셨으며 보이셨습니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그리고 바벨론에서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나 한 사람을 심판에서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통하여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을 증거하기를 원하십니다. 나를 통하여 하나님을 알게 하십니다. 내가 고통을 넉넉히 견디는 모습을 통하여 하나님을 증거해야합니다. 하나님은 어저깨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구원하신 손에서 누구도 다시 빼앗을 자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구원을 행하실 때 막을 자는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와이십니다. 스스로 구원역사를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어떤 신보다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을 힘써 증거해야 합니다.

로마의 호민관이 예수 믿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인이 기쁘게 사자 굴에서 죽는 사람을 보고 충격을 받습니다. 그 호민관이 자신도 순교자가 되어서 죽습니다. 순교자들이 죽으면서 그들의 삶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확실하게 증거하였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하나님을 놓치지 말 것)

 

14,15절을 보십시오. “너희의 구속자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위하여 내가 바벨론에 사람을 보내어 모든 갈대아 사람에게 자기들의 연락하던 배를 타고 도망하여 내려가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이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의 왕이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로하십니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위로합니다. 바벨론 포로를 눈 앞에 두고 위로하십니다. 그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는 위대한 역사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말하고 구원을 말합니다.

우리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뜻이 좌우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선하든 악하든 하나님은 초월적으로 일하십니다. 우리의 잘못이 있는데 하나님은 우리의 실수를 통하여 더 큰 일을 이루십니다. 우리가 초월적인 역사를 보고 우리의 죄를 정당화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잘못하여 매를 맞기도 합니다. 그를 통하여 우리는 성숙합니다. 우리가 성숙했으니까 과거의 죄를 지은 것이 잘한 것은 아닙니다.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팔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죄에 해당한 대로 목매어 죽었습니다. 그런데 가룟유다가 이렇게 함으로 우리는 구원을 받습니다. 우리가 구원받는 역사를 이루었다고 가룟유다가 공로자는 아닙니다. 가룟유다에 매여서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보면서 우리의 죄를 정당화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구속자이시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바벨론에서 구원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바사왕 고레스를 통해서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구원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우리는 과거의 불의에 매여서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잊어버려도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기억해야합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천지의 창조주이십니다. 그리고 세계역사를 친히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늘 보좌에 앉으신 만왕의 왕이 되십니다. 세계역사를 당신의 뜻대로 움직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고레스를 보내서 이스라엘을 바벨론에서 구원하십니다. 바벨론은 수로에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바벨론 남부의 갈대아 사람들은 배를 타고 도망갑니다.

하나님께서는 과거에 그들에게 이루신 역사를 증거합니다. 이스라엘의 죄로 인하여 바벨론은 쳐들어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그들의 배를 타고 도망갑니다. 그들은 그들대로 자신의 일을 합니다. 하나님은 이를 통하여 크고 거룩한 역사를 이루십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함께 하며 하나님과 같은 마음을 가져야합니다. 하나님이 마음 아파하면 우리도 마음 아파해야합니다.

 

(이전에 애굽에서 구원하신 하나님)

 

16,17절을 보십시오. "바다 가운데 길을 큰 물 가운데 첩경을 내고 병거와 말과 군대의 용사를 이끌어 내어서 그들로 일시에 엎드러져 일지 못하고 소멸하기를 꺼져가는 등불 같게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출애굽시킬 때 홍해 바다를 건너게 하신 사건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바로에게 열 가지 재앙을 내리시고 이스라엘을 출애굽시켰습니다. 바로는 최신 기병을 이끌고 추적해 왔습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의 군대와 홍해 바다 물 가운데서 독안에 든 쥐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홍해를 가르셨습니다. 이스라엘이 바다를 육지같이 건너게 해주셨습니다. 이는 놀라운 일입니다. 이스라엘은 이런 놀라운 일을 체험했습니다. 그들은 홍해를 가르신 하나님을 생각할 때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체험한 과거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셨습니다. 이는 홍해를 건넌 사건과 족히 비교할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먹여주시고 입혀주시고 함께 해주셨습니다. 저는 결혼 전에 자살을 하고자 했고 평생을 실업자로 살 것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교회의 목사의 위치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을 생각할 때 하나님의 능력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제 새로운 일을 하시는 하나님)

 

18,19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시랑과 및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들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나의 택한 자로 마시게 할 것임이라

 

우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아야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위대한 일을 보았으면 과거를 기억하지 말아야합니다. 하나님이 위대한 역사를 이루어갈 때는 우리의 아픔의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감사하고 찬양할 수 있어야합니다.

우리가 잘못으로 상처를 입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빨리 잊어버러야 합니다. 골프칠 때 잘되기도 하고 안 될 때도 있습니다. 슬럼프에 빠질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상받은 것 기술 있는 것을 다 잊는다고 합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있는 것을 다 지워버리고 원점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에게 잘 되고 안 되고 있었지만 원점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중국은 어떤 죄로 공산화되었는지 잊어버려야합니다. 지금 하나님이 공산권에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아야합니다. 우리는 앞으로 하나님이 하실 일을 기억해야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미래에 이루어질 놀라운 일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바벨론에서 포로된 그들에게 길을 내고 그들을 이끌어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더 나아가 이 말씀 속에는 예수님을 통한 영원한 구원이 들어 있는 말씀입니다. 출애굽보다 더 크고 놀라운 일을 행하십니다. 예수님이 재림시에 완전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출애굽보다 더 놀라운 역사를 이루십니다.

 

(광야에 길을 내신다)

 

첫째, 하나님은 광야에 길을 내십니다. 광야는 돌과 바위가 있고 뱀과 전갈이 있는 곳입니다. 사람들이 도저히 갈 수 없는 곳입니다. 하나님은 이곳에 길을 내어주십니다. 길을 내어 주셔서 사람들이 마음 놓고 다니게 하십니다. 광야에 길을 내사 이스라엘 백성을 바베론에서 돌아오게 하십니다.

신약에서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천국가는 길을 내어주실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아담의 불순종 후에 천국 가는 길은 광야처럼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광야처럼 가시덤불이 나고 두로 도는 불칼이 천국 가는 길을 막고 있습니다. 죄의 뱀 사망의 전갈이 가로 막고 우리를 하나님께로 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죄의 뱀과 사망의 전갈을 제거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로 가는 크고 넓은 고속도로와 같은 길을 내어 놓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은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길이 되십니다. 예수님이 길이 되신다는 것은 예수님이 실제 삶 속에서도 우리에게 삶의 지혜와 방향이 되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삶을 인도하는 네비게이션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에 소원을 두고 행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말씀했습니다. "너희 안에 소원을 두고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느니라" 또한 예수님은 우리에게 해야 할 말도 친히 가르쳐 주십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 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그 시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 성령께서는 우리를 인도하시는 길이 되십니다. 우리에게 할 말을 주시고 우리가 무엇을 행할지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함을 받기만하면 우리의 길은 환하게 열리게 됩니다. 우리에게 길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사막에 강을 내신다)

 

둘째, 하나님은 사막에 강을 내 주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신광야를 지날 때에 바위에서 샘물이 나게 하셔서 이스라엘 자손과 짐승들이 먹게 하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사막에 강이 흐르게 하십니다. 사막은 물이 없습니다. 물이 없으니 식물이 자라지 못하고 식물이 없으니 동물들이 자라지 못하고 사람도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막에 강을 내게 하십니다. 이스라엘이 돌아오는 예루살렘은 광야와 같았습니다. 하나님은 그곳에 성령의 강물이 흐르게 하십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성전을 건축하고 성벽을 건축하게 하십니다. 그들이 많은 성경책을 기록하게 하십니다.

이는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실 성령을 가르쳐 주시는 말씀이십니다. 초막절 명절 끝날 신약 시대에는 성령을 주실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서서 외쳐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737,38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리라" 이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는 사건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수의 강이 흐르게 하십니다. 이 세상은 사막과 같습니다. 이곳에는 진정한 만족과 기쁨을 주는 물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생명을 주는 물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갈중에 이리 저지 비틀거리며 다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막 같은 이 세상에 성령의 강물이 흐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오순절 다락방에 120명의 성도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셨습니다. 그들에게 성령의 강물이 흐르자 예루살렘에 모였던 세계만민들이 다 복음을 영접했습니다. 성령의 강물은 사마리아로 안디옥으로 소아시아 지방으로 그리고 로마로 유럽으로 미국으로 한국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저는 여의도 순복음교회를 보며 성령의 강물이 얼마나 강력하게 흐르는가 보게 됩니다. 성령의 강물이 흐를 때 광야 같던 여의도에 수십만의 인파가 모여들고 세계 각국에서 그곳에 모여들고 있습니다.

우리 UBF도 성령의 강물이 흐르고 있는 곳입니다. 성령의 강물은 광주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 강물이 대전과 부산과 대구와 전주 대전으로 흐르고 서울과 미국 독일 러시아 중국 그리고 세계 87개국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천안 센타도 이런 성령의 강물의 한 줄기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기억하고 기도하고 기대하며 성령을 기다려야 합니다. 이 말씀은 최종적으로 하늘 나라에 가서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이 만드시는 하나님 나라에는 생명수의 강이 흐르고 생명나무 실과가 주렁주렁 맺혀 있습니다.

 

(여호와를 존경해야 한다)

 

20.21절을 보십시오.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이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이런 새 일을 행하셔서 하나님을 찬송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찬송으로 찬송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높임 받기를 원하십니다. 들짐승 승냥이 타조도 구원하여 그들도 하나님을 존경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우리를 구원하시고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영원히 찬송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부인하는 것은 죄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부인하는 것은 더 큰 죄입니다. 탕자가 집을 나간 것도 잘못했지만 집에 와서 잔치를 멍청하게 먹습니다. 그러나 그 멍청한 것이 믿음입니다. 탕자는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 없습니다. 아버지가 기뻐하니까 아버지의 기쁨을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하나님의 기뻐하는 마음을 수용하고 기뻐해야합니다. 그 사람이 은혜의 사람입니다. 우리는 모든 부끄러움을 씻고 하나님의 찬송을 부르는 사람으로 살아야합니다.

 

ubf(말씀사랑교회) 2023년 신년 말씀

이사야 43장 강해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말씀 이사야 431-이사야 4328

요절 이사야 43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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