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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이사야 41장 강해 두려워하지 말라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8-09-23 00:00:00
조회수 : 7,686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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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41장 강해 두려워하지 말라

말씀 이사야 411-이사야 4129

요절 이사야 4110절 두려워 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뭉크의 절규라는 그림이 엄청난 인기를 끄는 이유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보편적인 경험을 묘사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이 그림에는 일상생활의 긴장과 스트레스가 담겨있다는 것입니다. 이 그림은 에드바르트 뭉크(1863-1944)1892년에 앓았던 끔찍한 공황발작이라는 매우 개인적인 경험을 그린 것입니다. 뭉크는 자신이 오슬로 교외에서 산책하고 있었을 때 공황발작이 일어났습니다. 그는 어느날 저녁 친구 두 명과 함께 길을 따라 걷고 있었습니다. 그는 피곤하고 아픈 느낌이 들었습니다. 해가 지고 있었고 구름은 피처럼 붉은색으로 변했습니다. 그는 자연을 뚫고 나오는 절규를 느꼈습니다.

실제로 그 그림은 그 절규를 듣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진짜 피 같은 구름이 있는 이 그림을 그렸습니다. 색채들이 비명을 질러댔습니다. 뭉크는 충격파처럼 인물의 얼굴을 원초적 두려움의 모습으로 변형시키는 일련의 요동치는 선을 통해 절규를 묘사하였습니다. 그는 또한 그의 뒤에 걸어오는 두 명의 인물을 아무렇지도 않게 그림으로써 결국 이 두려움은 외부세계에서 온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마음에서 기인했음을 암시하였습니다.

우리가 뭉크와 같이 공항장애는 아니라도 가끔 두려움에 떨 때가 있습니다. 이스라엘도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벨론 사람들의 채찍을 두려워하고 놀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거대한 제국 바벨론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크게 보는 자는 바벨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더 이상 바벨론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집 앞에 작은 산인 성불사에만 올라가도 우리집은 작게 보입니다. 높으신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이 세상의 문제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사야 41장은 40장에 이어서 이스라엘을 위로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재판 자리에 나가자)

 

1절을 보십시오. “섬들아 내 앞에 잠잠하라 민족들아 힘을 새롭게 하라 가까이 나아오라 그리고 말하라 우리가 서로 재판 자리에 가까이 나아가자

 

우리는 위로를 받으면 외적인 환경이 다 이루진 것을 생각합니다. 여건이 좋아지면 위로받은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조건이 좋아지면 또 다른 근심이 찾아옵니다. 안정된 심령이 먼저 이루어지고 사회적이고 물리적인 것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평안한 가운데서도 사람들은 슬퍼지고 쓸쓸해집니다. 자살률이 높은 나라는 스위스 네들란드 스웨덴입니다.

사람의 심령의 안정은 외적인 환경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위로慰勞는 영적인 문제고 마음의 문제입니다. 자신에게로 시선을 돌려야합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영적인 관계로 돌려야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재판장이십니다. 하나님은 섬들과 민족들 곧 세계만민을 불러 재판하십니다. 그들에게 잠잠히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보라 하십니다. 하나님은 잠잠하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할 때 두려워합니다. 뒤에는 애굽군대가 있고 앞에는 홍해가 있어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오라고 하였으면 하나님이 책임져주십니다. 하나님을 믿고 잠잠해야합니다.

그들을 불러서 한번 우리 주위에 일어난 일을 따져 보자고 합니다. 그들에게 힘을 내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와서 말해보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재판 자리에 가까이 나아와 서로 따져보자고 합니다. 과연 진정한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따져 보자고 합니다. 당시에 천하를 정복하고 호령하던 바벨론이 진정한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창조주요 구원자가 참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두려워하지 말고 잠잠해야합니다.

우리가 조용해야 여호와가 하나님 됨을 알 수 있습니다. 조용해야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우리는 잠잠한 후에 새롭게 해야 합니다. 마음을 예수님 안에서 새롭게 해야 합니다. 새로운 세상에 맞는 마음을 가져야합니다. 새로운 생명력을 찾아야합니다. 지금까지 의지하던 것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힘으로 얻어야합니다. 힘을 얻고 가까이 나아오라고 하십니다. 예수님도 내게 오라고 하십니다. 기도는 멀리서 해도 되지만 응답은 가까이서 이루어집니다.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들어야합니다. 효도는 부모에게 가까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의논하다 보면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역사의 주관자 하나님)

 

2-4절을 보십시오. “누가 동방에서 사람을 일깨워서 공의로 그(고레스)를 불러 자기 발 앞에 이르게 하였느냐 열국을 그의 앞에 넘겨주며 그가 왕들을 다스리게 하되 그들이 그의 칼에 티끌 같게, 그의 활에 불리는 초개 같게 하매 그가 그들을 쫓아가서 그의 발로 가 보지 못한 길을 안전히 지났나니 이 일을 누가 행하였느냐 누가 이루었느냐 누가 처음부터 만대를 불러내었느냐 나 여호와라 처음에도 나요 나중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라

 

하나님은 동방에서 사람을 일께워 발 앞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동방에서 불렀습니다. 아브라함은 동방의 왕입니다. 그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믿음의 예를 세웠습니다. 그가 믿음의 조상입니다.

어떤 사람은 동방에서 온 사람을 고레스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열방에게 동방에서 고레스를 일깨워서 공의가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당신의 발 앞에 두게 하신 분이 누구인가 대답해보라고 합니다. 그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고레스는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는 왕이십니다.

고레스는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열국을 고레스 앞에 넘겨두며 왕들을 다스리게 하신 분은 누구십니까? 바벨론을 멸망시킨 분이 누구냐는 것입니다. 그분도 하나님이십니다. 바벨론과 열국의 왕들을 고레스의 칼과 활에 티끌 같게 하시고 지푸라기 같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고레스가 열왕을 쫓아가서 이스라엘은 그의 발로 지금까지 가보지 못한 길을 안전히 지났습니다. 하나님이 폐르시아왕 고레스를 도우사 바벨론을 멸망시켰습니다.

이 일을 행하시고 이루신 분은 누구십니까? 하나님은 반복하여 누가 이루었느냐고 묻습니다.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태초부터 만대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처음에도 있고 나중에도 있을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마지막 날에 역사를 심판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역사의 처음과 중간과 끝을 주관하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노무현 정부를 세운 분도 하나님이시고 박근혜를 세운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취업 결혼 어린 아이의 탄생 죽음을 주관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을 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고레스를 대적하는 자들의 두려움)

 

5-7절을 보십시오. “섬들이 보고 두려워하며 땅 끝이 무서워 떨며 함께 모여 와서 각기 이웃을 도우며 그 형제에게 이르기를 너는 힘을 내라 하고 목공은 금장색을 격려하며 망치로 고르게 하는 자는 메질꾼을 격려하며 이르되 땜질이 잘 된다 하니 그가 못을 단단히 박아 우상을 흔들리지 아니하게 하는도다

 

바벨론 왕과 땅 끝에 있는 섬들이 고레스를 보고 두려워하며 떨며 각기 이웃을 돕고 형제에게 파이팅! 하며 힘을 내어 폐르시아왕 고레스를 대적하자고 합니다. 그들은 우상을 의지하여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목공과 망치를 고르게 하는 자는 우상을 만드는 금장색과 메질꾼들을 격려하여 땜질이 잘되었다! 칭찬하며 못을 단단히 박아 우상이 흔들리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서로 연합하여 우상을 만들어 고레스를 대적하나 이들은 아무 쓸데없는 일입니다. 고레스를 인도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상은 사람이 만든 물건에 불과합니다. 천안의 안서동에 있는 좌불상과 같습니다. 우상을 의지하는 열방은 하나님을 대적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종 이스라엘)

 

8,9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하나님은 고레스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바벨론에서 부르십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종이요 하나님이 택한 자입니다. 하나님의 벗, 아브라함의 후손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미리 아시고 미리 정하시고 부르시고 의롭다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땅끝과 모퉁이에서 이스라엘을 붙들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종으로 택하셨습니다. 그들을 특별히 사랑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바벨론 포로생활하면 버림받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싫어버리지 않으셨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낳고 사랑하여 버리지 않듯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그 하나님께서 다시 그들을 바벨론에서 이끌어내십니다. 하나님이 택한 이스라엘을 반드시 영화롭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부르신 우리를 영화롭게 하시는 것은 이미 예정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왜 그들을 버렸다고 생각합니까? 그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며 하나님이 버렸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하여 훈련하신 것입니다. 그들이 훈련이 없었다면 버린 것이지 훈련하신 것은 사랑하신다는 표입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주신 것이 버리지 않았다는 표시입니다. 하나님이 나오미의 남편을 데려가고 두 아들을 데려가신 것은 버린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셔서 훈련하시는 것입니다.

시험에 떨어진 것은 버린 것이 아니라 함께 하시는 증거입니다. 사도 요한은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쫓는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절대적인 증거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 자신이 피조물을 위해서 죽으신 것입니다. 자신의 아들을 죽기까지 내어주신 것입니다. 우리를 택하여 예수님을 믿게 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믿으면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고난을 주신 것이 답이지만 그것이 마음으로 닿는 데는 시간이 걸립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을 영접하면 우리 마음에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 속에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참으로 도와주리라)

 

10절을 보십시오. “두려워 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스라엘은 지금 바벨론에서 바벨론 왕을 두려워하고 놀라고 있습니다. 그들이 바벨론을 두려워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바벨론은 왕 앞에서 왕자를 죽였습니다. 왕의 눈을 빼고 포로로 끌고 갔습니다. 이스라엘의 청년들이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성전은 훼파되었습니다. 성벽은 무너졌습니다. 이스라엘의 쓸 만한 자들은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그러나 바벨론은 하나님의 몽둥이입니다. 이스라엘은 몽둥이를 드신 하나님은 보지 못하고 몽둥이만 보고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바벨론을 두려워하지도 말고 그들에 대해서 놀라지도 말아야합니다.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으로 훈련하는 것입니다. 지구를 움직이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고 도와주십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그러니 그들은 두려워하지도 말고 놀라지도 말아야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굳세게 하시고 참으로 도와주십니다. 바벨론 포로로 보낸 것도 하나님이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이스라엘을 붙들어주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권능으로 그들을 붙잡아 주십니다. 하나님은 두려워말라고 세 번이나 반복하여 말씀하십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사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고 구원역사를 이루십니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길)

 

사람들은 때로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힘이 빠집니다. 너무 힘이 없어서 기도만 하든지 누워있습니다. 사람들은 두려움을 없애고자 해도 두려움이 없어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나는 구제불능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차라리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에게 두려움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두려움을 극복해야합니다. 두려움을 그냥 두면 두려워하는 것이 나에게 임합니다. 사단은 우리에게 실패를 주기 전에 먼저 두려움을 심습니다. 욥은 나의 두려워하는 것이 내게 임하였다고 말하였습니다.

성경 말씀을 보면 두려움은 모든 사람에게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을 검색하면 71번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두려움에 시달리는 것을 아시고 반복하여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두려움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으로 넉넉히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두려움은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믿지 못하는데서 오는 것입니다. 우상숭배에서 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두려움이 밀려올 때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는 것 자체가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받으시고 두려워하는 것이 일어나지 않게 하십니다.

가나안 땅을 정탐한 열 두령은 가나안 사람들이 키가 큰 것과 철병거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받고 다 죽었습니다. 그들이 두려워한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두려움을 극복하고자 하지 않은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기도해야합니다.

야이로는 딸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두려워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사랑하시고 도와주실 것이니 두려워말라고 하십니다. 야이로가 두려움과 싸우면서 예수님의 사랑에 대한 믿음을 가졌을 때 주님은 죽은 딸을 살리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마음에 두려움이 생기면 우리는 두려움을 물리치기 위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일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는 일을 해야 합니다.

 

(바벨론은 아무 것도 아니다)

 

11-13절을 보십시오. “보라 네게 노하던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너와 다투는 자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이 될 것이며 멸망할 것이라 네가 찾아도 너와 싸우던 자들을 만나지 못할 것이요 너를 치는 자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허무한 것 같이 되리니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

 

하나님을 믿는 자의 세계관이 나옵니다. 믿음의 사람이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크게 보이면 세상은 작게 됩니다. 하나님은 새로운 일을 선포하십니다. 이스라엘에 노하고 다투던 바벨론이 수치와 욕을 당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이 될 것이며 멸망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치던 자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허무한 것 같이 되어 이스라엘이 찾아도 그들을 만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대적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이 될 것이라고 두 번이나 반복하여 말씀하십니다. 뒤에 말씀까지 참고하면 네 번이나 반복하여 바벨론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무한대로 크십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십니다. 우리가 관측 가능한 우주까지는 137억 광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일 광년은 빛이 일 년 간 가는 거리입니다. 추정하기를 우주의 크기는 일천 억 광년 정도라고 합니다. 우리가 타는 자동차 최고 속도 200킬로로 달려서 철이가 은하철도 999를 타고 가도 안드로메다까지는 약 이십조년이 걸립니다. 하나님은 이런 우주를 만드시고 우주보다 더 크신 분이십니다. 그 앞에서 바벨론이나 앗수르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무한대의 개념 앞에서는 아무리 큰 정수도 영으로 취급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크게 보아야합니다. 그러면 우리 자신은 작아지고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됩니다. 이스라엘의 대적 바벨론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오른 손을 붙들고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도우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대적이 크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작게 보기 때문입니다. 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식어졌기 때문입니다.

열 두령은 하나님을 작게 보았기 때문에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러나 갈렙과 여호수아는 하나님을 크게 보고 두려움을 극복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크게 보고 두려움을 극복하기를 기도합니다.

 

(버러지 같은 자를 새타작기로)

 

14-16절을 보십시오.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니라 보라 내가 너로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기로 삼으리니 네가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를 만들 것이며 작은 산들을 겨 같이 만들 것이라 네가 그들을 까부른즉 바람이 그들을 날리겠고 회오리바람이 그들을 흩어 버릴 것이로되 너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겠고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로 말미암아 자랑하리라

 

이스라엘이 두려움을 극복하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강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버러지 같이 연약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옛날 성경에는 지렁이같다고 합니다. 구더기로 번역한대도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바벨론에서 흙을 파는 지렁이 같이 똥속에사는 구더기같이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두려워하지 말아야합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하여 도우십니다. 이스라엘의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죄의 대가를 아들의 십자가로 치르셨습니다. 하나님은 버러지 같은 이스라엘을 새 타작기로 삼으십니다. 이스라엘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이스라엘은 산 같은 바벨론을 쳐서 부스러기 같이 만들고 겨같이 만들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까부르니 회오리 바람이 그들을 날리고 흩어버릴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승리를 주신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고 자랑할 것입니다. 마음껏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 속에 있는 모든 것들로 하나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마른 땅을 샘근원으로)

 

17,18절을 보십시오. “가련하고 가난한 자가 물을 구하되 물이 없어서 갈증으로 그들의 혀가 마를 때에 나 여호와가 그들에게 응답하겠고 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헐벗은 산에 강을 내며 골짜기 가운데에 샘이 나게 하며 광야가 못이 되게 하며 마른 땅이 샘 근원이 되게 할 것이며

 

이스라엘은 포로 생활로 가련하고 갈증이 났습니다. 가련하고 가난한 자가 물을 구하되 물이 없어서 갈증으로 그들의 혀가 마를 때가 있었습니다. 주위에는 헐벗은 산과 골짜기와 광야와 마른 땅만 있었습니다. 그때에 여호와가 그들에게 응답하고 그들을 버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출애굽할 때 이스라엘을 어떻게 도왔나 기억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헐벗은 산에 강을 내며 골짜기 가운데 샘을 내셨습니다. 광야가 못이 되게 하시고 마른 땅에 샘 근원이 터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이스라엘을 다시 도우십니다. 가련하고 가난한 자들에게 마실 물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물은 성령의 물입니다. 샘근원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 마음에 사랑이 강물처럼 흐르게 하십니다. 평화가 강물처럼 흐르게 하십니다. 두려워하는 것은 사단의 영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두려워하는 영이 아니요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입니다.

 

(광야에 나무들이 자라남)

 

19,20절을 보십시오. “내가 광야에는 백향목과 싯딤 나무와 화석류와 들감람나무를 심고 사막에는 잣나무와 소나무와 황양목을 함께 두리니 무리가 보고 여호와의 손이 지으신 바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가 이것을 창조하신 바인 줄 알며 함께 헤아리며 깨달으리라

 

사막에 생수의 강이 흐르게 하시니 많은 생명들이 살아납니다. 하나님이 광야에 백향목과 싯딤 나무(아카시아)와 화석류와 돌감람나무를 심습니다. 사막에는 잣나무와 소나무와 황양목(느티나무)을 함께 두십니다. 무리들은 이를 보고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가 이것을 지으시고 창조하신 것을 알고 헤아리고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우리 안에 성령의 강물이 흐르고 사랑의 강물이 흐르고 평화의 강물이 흐르면 하나님이 친히 생명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생명이 살아나는 일을 이루십니다.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학교와 직장에 생명이 자라나게 하십니다.

 

(우상은 아무 것도 아니다)

 

21-24절을 보십시오.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 우상들은 소송하라 야곱의 왕이 말하노니 너희는 확실한 증거를 보이라 장차 당할 일을 우리에게 진술하라 또 이전 일이 어떠한 것도 알게 하라 우리가 마음에 두고 그 결말을 알아보리라 혹 앞으로 올 일을 듣게 하며 뒤에 올 일을 알게 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신들인 줄 우리가 알리라 또 복을 내리든지 재난을 내리든지 하라 우리가 함께 보고 놀라리라 보라 너희는 아무것도 아니며 너희 일은 허망하며 너희를 택한 자는 가증하니라

 

하나님은 우상을 섬기는 자를 심판하고 비웃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죄 가운데 가장 큰 죄가 우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을 믿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근심 걱정이 큰 죄입니다. 두려워하다보면 생각지 않던 일을 합니다. 그것이 우상숭배입니다 사람을 의지하고 편법을 취하게 됩니다. 자기 자신을 의지합니다. 말을 키울 때 당근과 채찍으로 합니다. 아이를 자꾸 때리기만 하면 정말 잘못 됩니다. 자꾸 때리면 못된 길로 갑니다. 마음이 평안하면 하나님이 능력을 줍니다. 두려워하니까 애굽에 가고자 하고 우상을 만듭니다. 우상도 거짓되고 우상을 섬기는 자도 거짓 됩니다.

하나님은 바벨론이 믿는 우상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강조하여 말씀하십니다. 크신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상들에게 나와 소송하라고 합니다. 우상은 자신이 신이라는 확실한 증거를 보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 우상이 하는 말을 마음에 두고 그 결말을 알아보겠다고 합니다. 우상은 앞으로 올 일을 듣게 하며 과거에 있었던 일을 알게 하라고 합니다. 보고 알라고 합니다. 생각해보라고 합니다. 깨달아보라고 합니다. 모든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합니다. 그러면 우상들이 참신이라는 것을 알 것이라고 합니다.

우상이 참신이라면 복을 내리든지 재앙을 내려 보라고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우상이 한 일을 함께 보고 놀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상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습니다.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며 그들이 하는 일은 허망하며 그들을 택한 자는 가증합니다. 우상을 믿는 바벨론은 가증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상을 섬기는 바벨론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존재라고 반복하여 말씀하십니다. 바벨론은 큰 나라입니다. 그러나 그 나라는 풀같고 그 영광은 풀의 꽃과 같습니다. 일시적입니다. 우리의 목숨을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입니다 .

 

(예언을 성취하시는 하나님)

 

25-26절을 보십시오. “내가 한 사람을 일으켜 북방에서 오게 하며 내 이름을 부르는 자를 해 돋는 곳에서 오게 하였나니 그가 이르러 고관들을 석회 같이, 토기장이가 진흙을 밟음 같이 하리니 누가 처음부터 이 일을 알게 하여 우리가 알았느냐 누가 이전부터 알게 하여 우리가 옳다고 말하게 하였느냐 알게 하는 자도 없고 들려 주는 자도 없고 너희 말을 듣는 자도 없도다

 

우리 하나님은 우상과 다릅니다. 고레스를 북방에서 일으키셔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이스라엘을 해돋는 동편에서 오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고레스를 통하여 바벨론의 고관들을 석회같이 토기장이가 진흙을 밟음같이 하실 것입니다.

고레스를 불러서 바벨론을 밟을 것이라고 처음부터 알고 예언하신 분이 누구입니까? 바벨론 왕 느브갓게살이 두렵냐 두려워할 것이 없다고 합니다. 그 뒤에는 하나님이 있다고 하십니다. 그때 그들은 자유를 얻게 됩니다. 그것을 이루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사야와 예레미야의 메시지를 듣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지않고 대항합니다. 그들은 신앙 없이 어려운 사건에 부딪히니 타락하게 됩니다. 그러나 어려울 때 하나님께 돌아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훈련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감사는 두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웃으면서 감사하는 사람이 있고 울면서 감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신랑이 행복해서 우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을 알면서 생각하고 깨달으면 감사합니다. 영적인 감사는 외로울 때 고통당할 때 감사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떠나서 많은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러나 그때 하나님께 돌아오며 감사합니다. 고난 중에 감사합니다. 여호와만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위해서 역사는 존재하고 사건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 맞다고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게 하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우상은 이런 것을 알게 하지도 들려주지도 않았고 사람들의 말을 들어주지도 못합니다.

 

(우상은 공허하다)

 

27-29절을 보십시오. “내가 비로소 시온에게 너희는 이제 그들을 보라 하였노라 내가 기쁜 소식을 전할 자를 예루살렘에 주리라 내가 본즉 한 사람도 없으며 내가 물어도 그들 가운데에 한 말도 대답할 조언자가 없도다 보라 그들은 다 헛되며 그들의 행사는 허무하며 그들이 부어 만든 우상들은 바람이요 공허한 것뿐이니라

 

하나님은 이제 예루살렘에 기쁜 소식을 전할 자를 보내시며 바벨론에서 해방을 전하십니다. 하나님은 고레스를 보내서 이스라엘을 해방시키는 기쁜 소식을 전하십니다. 하나님은 바벨론이 섬기는 우상들을 보라고 하셨습니다. 우상들은 하나님이 물어보아도 한 말도 대답할 조언자가 없습니다. 그들은 다 헛되며 그들의 행사는 허무합니다 그들이 부어 만든 우상들은 바람이요 안개요 구름이요 공허한 것 뿐입니다. 우상을 믿는 바벨론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바벨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반복하여 말씀하십니다. 고레스를 통해서 기쁜 소식을 전하신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십니다. 이 세상에 구원자는 예수님 외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에서 해방시켜주십니다.

 

(역사의 주관자 하나님)

 

이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나요? 우리는 역사를 주관하시는 크신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지극히 크고 두려우신 분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무한대로 크신 분이라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무한한 사랑의 하나님이심을 믿어야합니다. 하나님은 무한대의 능력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고난 중에도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고 나와 함께 해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 우상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두려워하는 것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됩니다 우상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바벨론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바벨론이 섬기는 우상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사랑의 하나님을 믿음으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강하고 담대하게 캠퍼스 제자양성을 섬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이사야 41장 강해 두려워하지 말라

말씀 이사야 411-이사야 4129

요절 이사야 4110절 두려워 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사야 41장 강해 끝입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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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이사야] 이사야 40장 강해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 오요한 2008-09-23
42 [이사야] 이사야 39장 강해 히스기야의 영적 교만 오요한 2008-09-23
41 [이사야] 이사야 38장 강해 재앙을 예고하는 이유는 피하라는 것이다 오요한 2008-09-23
40 [이사야] 이사야 37장 강해 18만 5천명을 물리친 히스기야의 기도 오요한 2008-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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