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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창세기 41장 강해 총리가 된 요셉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8-01-12 00:00:00
조회수 : 5,217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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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1장 강해 총리가 된 요셉
말씀 창세기 41장 1-창세기 41장 57
요절 창세기 41장 41 “바로가 또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너로 애굽 온 땅을 총리하게 하노라 하고”

우리는 지난 주 죄인들의 목자 요셉을 배웠습니다. 요셉이 하나님의 훈련을 믿음으로 감당하자 하루 아침에 죄인에서 당시 세계 최강대국 총리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요셉이 총리가 된 그 자체에만 관심을 갖기 쉽습니다. 그러나 사실 요셉이 총리가 되어 출세했다는 그것보다는 요셉은 총리가 되어서도 변함없이 애굽과 주변국가를 섬기고 구원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총리가 되든 아니면 총장이 되든 아니면 경비원이 되든 중요한 것은 우리를 통하여 캠퍼스 지성인을 살리고 우리의 이웃을 살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삶의 뿌리를 내리고 변함없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바로의 꿈)

1-7절을 보십시오. “만 이 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꾼즉 자기가 나일 강 가에 서 있는데 보니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가 강 가에서 올라와 갈밭에서 뜯어먹고 그 뒤에 또 흉하고 파리한 다른 일곱 암소가 나일 강 가에서 올라와 그 소와 함께 나일 강 가에 서 있더니 그 흉하고 파리한 소가 그 아름답고 살진 일곱 소를 먹은지라 바로가 곧 깨었다가 잠이 들어 꿈을 꾸니 한 줄기에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고 그 후에 또 가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나오더니 그 가는 일곱 이삭이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을 삼킨지라 바로가 깬즉 꿈이라.”

술맡은 관원장이 감옥에서 나온 지 만 이년이 지난 후였습니다. 바로가 꿈을 꾸었습니다. 바로는 나일강 가에 서 있었습니다. 바로는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가 강 가에서 올라와 갈밭에서 풀을 뜯어 먹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뒤에 또 흉하고 파리한 일곱 암소가 나일 강가에서 올라왔습니다. 이 암소들은 풀을 먹는 것이 아니라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를 잡아먹었습니다.
바로가 깨었다가 다시 잠을 들었는데 두 번째 꿈을 꾸었습니다. 한 줄기에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왔습니다. 그 후에 또 한 줄기에 가늘고 마른 일곱 이삭이 나왔습니다. 가는 일곱 이삭이 살아있는 생물이 되어 입을 벌려 마치 소와 같이 처음에 나온 충실한 일곱 이삭을 잡아먹었습니다. 바로가 잠을 깨니 일장춘몽이었습니다.

(번민하는 바로)

8절을 보십시오. “아침에 그의 마음이 번민하여 사람을 보내어 애굽의 점술가와 현인들을 모두 불러 그들에게 그의 꿈을 말하였으나 그것을 바로에게 해석하는 자가 없었더라.” 바로의 꿈은 간단히 정리하면 파리한 소와 마른 이삭이 살진 소와 충실한 이삭을 잡아먹는 악몽이었습니다. 바로는 꿈의 분위기가 좋지 않았습니다. 그는 악몽으로 인해 번민하였습니다. 바로는 애굽의 점술가와 현인들을 모두 불러서 꿈을 말하고 해석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바로의 꿈을 해석하지 못했습니다. 애굽에 있는 최고의 현자들도 바로의 꿈을 해석할 수 없었습니다.
바로의 꿈은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인간적인 지혜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습니다. 인간적인 지혜가 한계에 부딪힐 때 하나님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요셉을 소개하는 술맡은 관원장)

9-13절을 보십시오. “술 맡은 관원장이 바로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오늘 내 죄를 기억하나이다. 바로께서 종들에게 노하사 나와 떡 굽는 관원장을 친위대장의 집에 가두셨을 때에 나와 그가 하룻밤에 꿈을 꾼즉 각기 뜻이 있는 꿈이라. 그 곳에 친위대장의 종 된 히브리 청년이 우리와 함께 있기로 우리가 그에게 말하매 그가 우리의 꿈을 풀되 그 꿈대로 각 사람에게 해석하더니 그 해석한 대로 되어 나는 복직되고 그는 매달렸나이다.”

그때 술 맡은 관원장도 고민을 하다가 무릎을 탁! 치며 요셉을 기억하였습니다. 요셉이 꿈을 해석해 준 후에 꿈대로 자신이 석방되고 복직된 것을 기억하였습니다. 떡 맡은 관원장은 요셉이 꿈을 해석해 준대로 죽은 것을 기억하였습니다. 그는 요셉의 은혜를 잊고 있다가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 요셉을 기억하였습니다. 사람의 본성이 이처럼 이기적입니다. 자신이 필요할 때 다른 사람을 기억합니다. 그는 이제야 은혜를 갚지 않은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습니다. 요셉이 억울하게 갇힌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바로에게 의롭고 꿈 해석을 잘하는 요셉을 추천하였습니다.

(바로 앞에 선 요셉)

14절을 보십시오. “이에 바로가 사람을 보내어 요셉을 부르매 그들이 급히 그를 옥에서 내 놓은지라. 요셉이 곧 수염을 깎고 그의 옷을 갈아 입고 바로에게 들어가니”

요셉은 드디어 감옥에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때가 되자 정확하게 요셉을 감옥에서 부르셨습니다. 요셉이 지금 나왔기 때문에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실수가 없고 정확하고 완전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때에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요셉은 바로왕의 부름을 받은 후 수염을 깎고 죄수옷을 벗고 왕이 준 새 옷을 정갈하게 갈아입고 바로 앞에 섰습니다.

(바로에게 하나님을 증거하는 요셉)

15,16절을 보십시오.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한 꿈을 꾸었으나 그것을 해석하는 자가 없더니 들은즉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 하더라.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

바로은 요셉에게 “내가 한 꿈을 꾸었는데 해석하는 자가 없구나! 그런데 너는 꿈을 들으면 꿈을 푸는 신통력이 있다며!” 라고 칭찬하였습니다. 이때 요셉은 마음이 풀어져 자기를 자랑할 수 있습니다. “네, 제가 꿈 하나 만큼은 좀 풀지요. 하,하,하!” 그러나 요셉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폐하의 꿈을 풀어주실 것입니다.” 요셉은 자신이 꿈을 해석하면서도 꿈을 해석하시는 분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라고 증거하였습니다.
요셉은 이렇게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요셉은 진실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아 하신 일을 하나님이 하셨다고 증거하는 것이 진실입니다. 그는 꿈 해석의 은사를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어떤 믿음의 사람들 중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자신을 자랑하다가 교만해져 교주가 되거나 이단에 빠집니다. 자신을 자랑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도둑질의 죄입니다. 우리는 사람의 칭찬을 받을 때 더욱 고개를 숙여 하나님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진실함과 겸손함이 있어야합니다.
요셉은 하나님을 믿는 자로서 자긍심이 있었습니다. 출소한지 1년이 된 것도 아니고 어제까지 현행범 죄수로 있었던 죄수가 당시 최강국 왕인 바로 앞에서 서면 두려워 떨며 자신의 할 말도 못하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바로는 태양의 아들이라는 뜻으로 신과 같이 높임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의 때부터 모세의 때까지 애굽 왕은 항상 바로입니다. 이런 바로 앞에서 한낱 죄수였던 자가 또 다른 하나님을 증거 하는 것은 바로를 무시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해석은 커녕 당장 목아지가 날아갈 수 도 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로서 당당히 바로 앞에서 하나님을 증거하였습니다. 요셉이 어떻게 이런 당당함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요셉이 바로보다 크신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뿌리를 내린 요셉)

저는 창세기에 요셉을 대할 때마다 은혜를 받으면서도 왠지 거리감이 느껴집니다. 왜냐하면 그의 인격이 너무나 완벽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믿음의 수준이 너무나 높기 때문에 아예 요셉과 같이 되는 것을 포기해 버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요셉이 그처럼 아름답고 훌륭한 삶을 살 수 있었던 그것은 바로 그와 함께 하셨던 하나님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인생의 뿌리가 하나님과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요셉이라는 한 인생의 아름다운 드라마에 너무 눈을 고정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 눈 여겨 봐야 할 점은 그의 뿌리가 맞닿아 있는 하나님입니다.
창세기 37장부터 50장까지는 요셉의 스토리인데 요셉은 모두 22번에 걸쳐서 ‘하나님’이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라는 말은 8번을 합니다. 그는 말끝마다 ‘하나님’이었습니다. 요셉의 인생은 요셉만의 인생이 아니었습니다. 요셉의 인생은 야곱의 축복대로 애굽까지 뻗어나간 무성한 나무와 같습니다. 눈에 보이는 무성한 가지가 있는 요셉의 인생 이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샘물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하나님이 뒤에서 계속해서 요셉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고 계셨던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지금 내 인생의 외적인 모습이 어떠한가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내 인생의 뿌리가 과연 어디에 맞닿아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성공을 꿈꾸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 삶의 뿌리가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과 맞닿아 있다면 그 인생에는 언젠가는 문제가 생깁니다. 설사 순간적으로 성공했다 할지라도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이 지금은 보잘 것이 없을지라도 내 인생의 뿌리가 샘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과 맞닿아 있다면 반드시 때가 되면 하나님이 무성하게 하십니다.
요셉이 믿는 하나님은 바로보다 크신 하나님이었습니다. 요셉이 믿는 하나님은 바로도 만드신 분이십니다. 바로의 권세를 주시고 바로의 권세를 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흉년과 풍년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크신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바로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높은 권세자 앞에 서면 두려워 떱니다. 약자들 앞에서는 자신의 권세를 부립니다. 그러나 높으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권세자 앞에서는 당당할 수 있고 약자들을 섬기며 겸손할 수 있습니다. 요셉은 죄인들을 낮아져서 섬겼지만 바로 앞에서는 당당하게 하나님을 증거하였습니다.

(하나님이 필요한 바로)

17-24절을 보십시오.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꿈에 나일 강 가에 서서 보니 살찌고 아름다운 일곱 암소가 나일 강 가에 올라와 갈밭에서 뜯어먹고 그 뒤에 또 약하고 심히 흉하고 파리한 일곱 암소가 올라오니 그같이 흉한 것들은 애굽 땅에서 내가 아직 보지 못한 것이라 그 파리하고 흉한 소가 처음의 일곱 살진 소를 먹었으며 먹었으나 먹은 듯 하지 아니하고 여전히 흉하더라 내가 곧 깨었다가 다시 꿈에 보니 한 줄기에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고 그 후에 또 가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나더니 그 가는 이삭이 좋은 일곱 이삭을 삼키더라 내가 그 꿈을 점술가에게 말하였으나 그것을 내게 풀이해 주는 자가 없느니라”

바로는 요셉에게 자신이 꾼 꿈을 자세히 이야기합니다. 그 꿈의 내용은 지금까지 말한 꿈과 같은 내용입니다. 창세기 저자는 그것을 반복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반복하여 기록하므로 꿈의 진실성을 보여줍니다. 개꿈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꿈임을 보여줍니다. 그는 이 꿈을 꾸었으나 아무도 꿈을 해석해 주는 자가 없어서 번민하게 되었음을 말합니다. 아무리 왕이라도 하나님이 없을 때 인생의 한 두 가지 번민을 가지고 있습니다. 왕도 스스로 자신의 번민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보좌관 누구도 왕을 도와줄 수 없었습니다. 왕이라도 인간의 지혜에 한계가 있습니다. 왕이라도 죄가 있고 죄를 지으며 언젠가는 죽어야 합니다. 이것이 거지나 왕이나 공통된 문제입니다. 구세대나 신세대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인간 모두에게 하나님이 필요하고 복음이 필요합니다.

(바로의 꿈을 해석하는 요셉)

25-31절을 보십시오. “요셉이 바로에게 아뢰되 바로의 꿈은 하나님이 그가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심이니이다. 일곱 좋은 암소는 일곱 해요 일곱 좋은 이삭도 일곱 해니 그 꿈은 하나라. 그 후에 올라온 파리하고 흉한 일곱 소는 칠 년이요 동풍에 말라 속이 빈 일곱 이삭도 일곱 해 흉년이니 내가 바로에게 이르기를 하나님이 그가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신다 함이 이것이라. 온 애굽 땅에 일곱 해 큰 풍년이 있겠고 후에 일곱 해 흉년이 들므로 애굽 땅에 있던 풍년을 다 잊어버리게 되고 이 땅이 그 기근으로 망하리니 후에 든 그 흉년이 너무 심하므로 이전 풍년을 이 땅에서 기억하지 못하게 되리이다.”

요셉은 그 꿈이 하나님이 바로에게 하실 일을 보이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꿈을 해석하여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에게 바로 꿈을 해석하는 은사를 주셨습니다. 일곱 좋은 암소와 일곱 좋은 이삭은 일곱 해입니다. 살진 일곱 암소와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온 것은 칠년 풍년이 들 것을 의미합니다. 그 후에 일곱 마른 암소와 일곱 마른 이삭이 나온 것은 칠년 흉년이 들 것입니다. 마른 암소와 이삭이 살진 암소와 이삭을 잡아먹은 것은 흉년에 의해서 풍년을 잊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이 땅은 흉년으로 망하게 될 것입니다. 결국 바로의 꿈은 칠년 풍년이 든 후에 칠년 흉년이 와서 고통하게 된다는 꿈입니다. 일곱 암소의 꿈과 일곱 이삭의 꿈은 표현만 다르지 내용은 같은 내용입니다.

(바로에게 꿈을 주시고 행하시는 하나님)

32절을 보십시오. “바로께서 꿈을 두 번 겹쳐 꾸신 것은 하나님이 이 일을 정하셨음이라. 하나님이 속히 행하시리니”

바로가 두 번 꿈을 꾼 것은 하나님이 이 일을 정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속히 행하실 것입니다. 요셉은 꿈을 해석하며 ‘하나님’을 네 번이나 증거하였습니다. 요셉이 증거한 하나님은 풍년과 흉년을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자연과 인간을 섭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요셉이 체험한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요셉이 이제까지 노예 생활과 죄수 생활의 고난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습니까? 요셉이 어떻게 아무런 희망도 없는 감옥에서 절망의 때를 극복할 수 있었을까요? 우리와 다른 초인적인 능력이 있었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오늘 말씀을 볼 때 그가 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믿음은 우리에게 실제적인 힘을 줍니다. 고난을 극복하고 유혹을 극복하고 오랜 인내를 가능하게 합니다. 이 모든 것이 바로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요셉은 꿈을 해석해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해결방안까지 제시하였습니다.

(흉년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요셉)

33-36절을 보십시오. “이제 바로께서는 명철하고 지혜 있는 사람을 택하여 애굽 땅을 다스리게 하시고 바로께서는 또 이같이 행하사 나라 안에 감독관들을 두어 그 일곱 해 풍년에 애굽 땅의 오분의 일을 거두되 그들로 장차 올 풍년의 모든 곡물을 거두고 그 곡물을 바로의 손에 돌려 양식을 위하여 각 성읍에 쌓아 두게 하소서 이와 같이 그 곡물을 이 땅에 저장하여 애굽 땅에 임할 일곱 해 흉년에 대비하시면 땅이 이 흉년으로 말미암아 망하지 아니하리이다”

요셉의 해결 방안은 명철하고 지혜로운 감독관을 총리로 삼아서 애굽을 다스리라고 합니다. 명철하고 지혜있는 사람은 성령충만한 사람입니다. 성령충만한 사람을 세워야합니다. 감독관을 세워 흉년을 대비하여 풍년에 때에 오분의 일의 세금을 거두어 창고에 저축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흉년이 오면 그 저축한 양식을 풀어서 애굽이 망하지 않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바로가 해결 방안까지 원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해결방안까지 알려주신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요셉이 왜 꿈 해석만하지 않고 해결방안까지 제시하여 약간의 오버를 했습니다. 요셉은 흉년으로 고통할 백성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요셉의 마음 속에는 목자의 심정이 있었습니다. 주인의식이 있었습니다. 요셉은 술맡은 자가 번민할 때 그것을 해결해 주고자 하였습니다. 바로가 번민할 때도 해결해주고자 하였습니다. 더 나아가 가뭄으로 몇 십만 명이 죽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어찌하든지 이들을 살리고자하는 목자의 심정이 있었습니다.
요셉이 위대한 점은 물론 하나님을 통하여 꿈을 해석한 점에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더욱 위대한 것은 목자의 심정을 가진 것입니다. 요셉의 위대성은 어찌하든지 다른 사람의 문제를 나의 문제로 알고 해결해주고자 하는 마음에 있습니다. 요셉이 이렇게 심정을 갖고 해결 방안까지 제시해 주었기 때문에 바로는 요셉을 총리로 임명할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목자의 심정을 귀하고 보시고 쓰십니다. 이 시대 캠퍼스의 목자인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우선은 성경 말씀으로 그들의 인생을 해석해주어야합니다. 다음으로 바로 캠퍼스 학생들의 문제를 내 문제로 보고 어찌하든지 해결해 주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그것을 해결해주기 위해서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에게 복음의 능력을 주십니다. 성령이 함께 하셔서 표적과 기사와 이적을 베풀어 주십니다. 우리에게 이런 목자의 심정을 주셔서 우리를 이 시대 캠퍼스의 목자로 귀하게 사용하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성령을 충만히 받은 요셉)

37-39절을 보십시오.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가 이 일을 좋게 여긴지라. 바로가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 하고 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요셉의 꿈 해석과 방향을 듣고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가 좋게 여겼습니다. 바로는 요셉을 총리로 삼고자 하였습니다. 그는 요셉을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으로 인정하였습니다. 바로는 요셉이 총리로 세우라고 한 지혜롭고 명철한 자가 바로 요셉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우리가 성령에 감동을 받으면 지혜와 명철을 얻습니다. 여호와의 영은 지혜와 총명의 영, 명철과 지혜의 영,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십니다. 요셉은 날마다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하면서 하나님의 영이 충만하였습니다. 그는 성령에 충만하였기 때문에 꿈을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꿈의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었습니다. 이방인인 요셉이 총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요셉이 성령이 충만했고 하나님의 지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이런 지혜는 성령의 감동으로 된 것입니다.
성령님은 험한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큰 보배이십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거듭나는 순간 우리 안에 내주하여 생명을 주십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게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임재하시는 성령님은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고 지혜를 주십니다. 예언과 방언하게 하고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는 능력을 주십니다. 요셉이 총리로 쓰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성령 충만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어떻게 이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까?
요셉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성령 충만함을 주십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꿈을 꾸고, 성령님은 꿈을 꾸는 자와 함께 하십니다. 요셉은 지도자가 되는 꿈을 꾸었습니다. 우리가 세계 캠퍼스를 복음으로 정복하고자 하는 큰 꿈을 가져야 합니다. 온 세계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꿈을 꾸어야합니다 우리가 5천 선교사의 꿈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또한 성령님은 순결한 자와 함께 하십니다. 성령님은 순결하고 거룩한 자와 함께 하십니다. 요셉이 순결하게 살았기 때문에도 성령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음란하고 더러운 생활을 하면 악령이 들어갑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죄를 멀리 할 때 성령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또한 요셉이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았기 때문에 성령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요셉이 아버지를 떠나고 사람들에게 버림 받을 때 그는 하나님께 나갔습니다. 하나님을 어머니처럼 간절히 사모하며 나갔습니다. 그의 인생의 주인은 하나님이시었습니다. 우리는 성령 충만함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셔야합니다. 예수님을 나의 그리스도로 믿어야합니다. 하나님은 중심에 하나님을 모신 자에게 성령을 충만히 부어주십니다.

(요셉을 총리로 임명한 바로)

40-43절을 보십시오. “너는 내 집을 다스리라. 내 백성이 다 네 명령에 복종하리니 내가 너보다 높은 것은 내 왕좌뿐이니라. 바로가 또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애굽 온 땅의 총리가 되게 하노라. 하고 자기의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우고 그에게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목에 걸고 자기에게 있는 버금 수레에 그를 태우매 무리가 그의 앞에서 소리 지르기를 엎드리라. 하더라. 바로가 그에게 애굽 전국을 총리로 다스리게 하였더라.”

바로는 이런 요셉을 총리로 세워서 애굽 전국을 다스리게 하였습니다. 요셉의 손에는 왕의 인장반지가 끼워졌습니다. 그에게는 죄수의 의복을 벗기고 총리의 세마포 옷을 입혔습니다. 목에는 금사슬이 걸었습니다. 그에게 제국의 서열 2위 세단마차를 지급하였습니다. 바로의 버금 수레에 요셉을 태우고 엎드리라 소리를 치자 모두가 요셉에게 엎드려 복종을 하였습니다.

(결혼한 요셉)

44-45a절을 보십시오.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나는 바로라 애굽 온 땅에서 네 허락이 없이는 수족을 놀릴 자가 없으리라 하고 그가 요셉의 이름을 사브낫바네아라 하고 또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을 그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니라.”

삼십까지 장가를 가지 못한 요셉에게 아름다운 제사장의 딸 이스낫을 주어 아내로 삼게 하였습니다. 제사장의 딸이므로 그녀는 이방신을 섬기는 여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이방여인에 의해서 신앙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아내에게도 하나님을 전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녀에게 태어나는 자녀들이 모두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는 요셉에게 절대반지를 주어 요셉의 허락 없이는 수족을 놀릴 자가 없을 정도로 절대 왕권을 주었습니다. 이름을 사브낫바네 곧 셰게의 구주로 바꾸어주셨습니다.

(부지런한 요셉 총리)

45b,46절을 보십시오. “요셉이 나가 애굽 온 땅을 순찰하니라. 요셉이 애굽 왕 바로 앞에 설 때에 삼십 세라 그가 바로 앞을 떠나 애굽 온 땅을 순찰하니”

요셉은 온 땅을 순찰하며 부지런히 다스렸습니다. 그는 게으르지 않고 충성스럽게 애굽을 다스렸습니다. 탁상행정을 하지 않고 애굽전역을 다니며 실상을 살피면서 통치하였습니다. 지도자는 부지런히 다스려야합니다.

(인생을 해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요셉은 꿈 해석 하나 잘해서 하루 아침에 죄인에서 총리가 되었습니다. 환경이 인생을 좌우하는 것이 아닙니다. 해석이 그 인생을 좌우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가치관이 그 인생을 바꾸어 놓습니다. 요셉이 형통치 않은 인생을 형통하게 살 수 있었던 것은 그 인생에 대한 해석의 태도에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현실을 중요시합니다. 상황과 조건을 중요시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매입니다. 현재 자신의 위치와 지위를 절대시합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해석의 자세입니다. 내 인생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서 인생을 사는 철학이 달라집니다. 인생관이 달라지고 가치관이 달라지고 세계관이 달라집니다. 우리 민족의 현실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서 국가관이 달라지고 미래의 비젼이 달라집니다. 현재 좀 부족해도 자녀들을, 동역자들을, 양들을, 학생들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해석하는가에 따라 그들을 돕는 자세가 달라집니다. 현재만 보면 대게 너무나 부정적이고 비관적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해석은 누구에게 있습니까? 바로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삶의 뿌리를 하나님께 내려야합니다.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하나님을 마음의 중심에 두고 하나님을 사랑해야합니다. 아멘!

(풍년의 때에 유비무환)

47-49절을 보십시오. "일곱 해 풍년에 토지 소출이 심히 많은지라 요셉이 애굽 땅에 있는 그 칠 년 곡물을 거두어 각 성에 저장하되 각 성읍 주위의 밭의 곡물을 그 성읍 중에 쌓아 두매 쌓아 둔 곡식이 바다 모래 같이 심히 많아 세기를 그쳤으니 그 수가 한이 없음이었더라"

요셉은 꿈 해석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꿈을 해석하고 방향을 준대로 행하여 유비무환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말씀에 기초하여 인생을 해석하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그 말씀대로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는 모래 같이 많은 곡식을 거두어 쌓아두었습니다. 요셉이 꿈을 해석한 대로 일곱해 풍년에 토지 소출이 심히 많았습니다. 요셉은 칠년 풍년이 드는 동안에 오분의 일을 거두어 창고에 저장하였습니다. 곡식을 얼마나 많이 저장을 하였든지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저장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고난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50-51절을 보십시오. “흉년이 들기 전에 요셉에게 두 아들이 나되 곧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이 그에게서 낳은지라. 요셉이 그의 장남의 이름을 므낫세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내게 내 모든 고난과 내 아버지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함이요.”

흉년이 들기 전에 요셉은 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첫째의 이름은 므낫세인데 하나님이 모든 고난을 잊어버리게 하였다는 뜻입니다. 어머니는 아기가 태어나면 해산의 고통을 잊습니다. 부활의 영광을 보면 십자가의 고통을 잊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에게 부활의 영광을 주셔서 노예살이, 죄수로서의 고통을 잊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영광스럽게 하사 십자가의 고통을 잊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번성하게 하셨다)

52절을 보십시오. “차남의 이름을 에브라임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나를 내가 수고한 땅에서 번성하게 하셨다 함이었더라.”

둘째의 이름은 에브라임인데 하나님이 나를 수고한 땅에서 번성하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초라한 죄인 요셉을 번성하게 하셨습니다.
요셉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주권 편에서 해석하였습니다. 요셉의 인생의 주어는 하나님이었습니다. 요셉의 아들 이름은 모두 다 하나님이 주어입니다. 요셉은 자기 인생이든, 자기 아들의 인생이든, 나중에 보면 자기 형들과 가족들의 인생이든, 옆에 있는 감옥 동기의 인생이든, 바로 왕의 고민까지도 다 사랑의 하나님 편에서 바라보고 하나님 편에서 해석해 주었습니다. 그의 인생은 하나님께 뿌리를 내렸습니다. 그랬을 때에 그의 삶의 자세는 항상 밝고 긍정적이었습니다. 그는 결코 인생을 비관하거나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떤 상황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선한 뜻이 있음을 믿고 열심히 최선을 다해 충성스럽게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요셉을 형통케 하시고 귀히 쓰셨습니다.

(애굽을 구원한 요셉)

53-57절을 보십시오. “애굽 땅에 일곱 해 풍년이 그치고 요셉의 말과 같이 일곱 해 흉년이 들기 시작하매 각국에는 기근이 있으나 애굽 온 땅에는 먹을 것이 있더니 애굽 온 땅이 굶주리매 백성이 바로에게 부르짖어 양식을 구하는지라 바로가 애굽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요셉에게 가서 그가 너희에게 이르는 대로 하라 하니라. 온 지면에 기근이 있으매 요셉이 모든 창고를 열고 애굽 백성에게 팔새 애굽 땅에 기근이 심하며 각국 백성도 양식을 사려고 애굽으로 들어와 요셉에게 이르렀으니 기근이 온 세상에 심함이었더라.”

애굽에 칠년의 풍년이 지나고 애굽에 기근이 시작되었습니다. 전세계적인 기근이 들었습니다. 애굽 온 땅이 굶주리지 시작하였습니다. 이때 요셉이 곡식을 저장한 것이 빛을 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온 땅에 기근이 있자 백성들은 바로에게 나와서 양식을 달라고 아우성쳤습니다. 바로는 ?C주린 백성들을 요셉에게 보내었습니다. 요셉은 평상시 준비한 대로 곡식을 꺼내어 그들을 살렸습니다. 요셉은 애굽과 세계의 백성을 살리는 큰 일을 하였습니다.
요셉은 창고에 곡식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곡식을 퍼서 주지 않았습니다. 정당하게 대가를 지불하도록 하였습니다. 책임을 다 하도록 한 것입니다. 이로서 요셉은 정부 재정도 탄탄하게 하고 백성들도 일한 만큼 잘 살도록 배려하였습니다.
요셉은 총리로서 아주 효율적인 경제정책을 펼쳤습니다. 요셉이 없었다면 애굽은 풍요의 때에 흥청망청 대다가 흉년의 때에 서로 양식 때문에 부족 간에 전쟁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재상 요셉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만민이 생명을 보존하게 된 것입니다.
요셉은 자기 가족, 자기 민족만 먹여 살리고 이방민족에게 무관심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애굽은 요셉에게 많은 상처와 아픔을 준 나라입니다. 청소년 시기에 그를 노예로 부려 먹은 나라입니다. 청년의 때에 그를 억울하게 감옥에 집어넣은 나라입니다. 요셉이 만약에 인간적인 사람이었다면 흉년의 때에 망해가는 애굽을 보며 속으로 쾌재를 부를 수도 있었습니다. 요셉은 자신의 사적인 감정의 담을 뛰어 넘었습니다. 민족적 정서의 담도 뛰어 넘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민족을 다 풍요롭게 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요셉이 곡식을 저장한 곳으로 모여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애굽뿐 아니라 애굽의 주위에 있는 나라들도 곡식이 있는 애굽으로 모여 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왜 애굽으로 모여들었습니까? 그들은 먹을 것이 없는데 애굽에는 먹을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람들이 배가 고프면 먹을 것이 있는 곳으로 모여든다는 단순한 진리를 배우게 됩니다.

(영의 양식 준비)

우리는 요셉을 통하여 예지력과 준비하는 능력을 배웁니다. 성경은 앞으로도 큰 기근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있을 기근은 먹을 것이 없어서 생기는 기근이 아닙니다. 아모스서 8장 11-13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쓰러지리라” 우리나라도 하나님의 은혜로 경제적 번영을 이루고 60,70년대 이전과는 비할 수 없을 만큼 훨씬 잘 먹고 잘 삽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리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그 말씀을 몰라 각자의 인생문제로 영적인 기갈에 시달립니다. 이들에게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필요합니다. 또 앞으로는 영적인 기근이 옵니다. 이때는 잘 먹고 잘 사는 젊은 남녀가 다 피곤합니다. 아름다운 처녀들도 피곤해합니다.
이들이 피곤한 이유는 말씀을 듣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말씀을 사모하고 말씀을 찾아서 찾아다닙니다. 이들이 말씀을 찾지 못하면 이들은 다 피곤해합니다. 그러나 말씀을 찾아서 말씀을 먹으면 다 살아납니다. 허진영 자매나 미국의 류요셉 목자님이 삼년이나 서울에서 천안으로 내려온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딱 한 가지입니다. 그것은 바로 말씀을 듣고 예배를 사모하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말씀이 갈급한 때가 오게 됩니다. 말씀의 흉년이 오게 될 것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말씀이 없는 흉년의 때가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의 흉년을 어떻게 대비해야합니까? 우리는 바로 말씀을 연구하여 강해서와 말씀 문제 풀이 노트를 정리해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지금까지 성경 66권 강해서를 준비하였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말씀을 준비하여 선포할 때 세계각국에서 말씀을 받기 위해서 천안 땅으로 사람들이 모여들게 될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떡으로만 살 수 없습니다. 육신적인 쾌락으로만 살 수 없습니다. 이들에게 말씀이 필요합니다. 이들이 말씀을 듣기 위해서 천안에 몰려 올 날을 소망합니다. 그때는 우리 목자들이 성경 한권의 전문적인 성경선생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역사의 주권자 하나님)

요셉의 인생의 키워드는 한마디로 그와 함께 하신 하나님이었습니다. 인간세상의 불행이 대체로 어디서 옵니까? 인간이 하나님의 위치에 올라가서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고 심판하고 제거하고 좌지우지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크게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람이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창50:19) 사람이 아무리 악한 마음을 가지고 술수와 음모를 꾸며도 하나님이 허용하시지 않으면 안 되더라는 것입니다. 형들도, 보디발도, 보디발의 아내도 요셉을 미워해서 없애버리고자 했지만 하나님이 허용하시지 않았기 때문에 다 실패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당신의 주권과 뜻을 가지고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고 계신 분이십니다. 또 하나님은 우리각자에 대한 선한 섭리를 가지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을 인도하고 계십니다. 이 하나님의 주권과 뜻은 누구도 막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거대한 섭리의 물줄기는 누구도 바꿀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악을 선으로 바꾸사 당신의 섭리가 성취되게 하십니다.
창세기 41장 강해 총리가 된 요셉
말씀 : 창세기 41장 1-창세기 41장 57
요절 : 창세기 41장 41 바로가 또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애굽 온 땅의 총리가 되게 하노라. 하고
창세기 41장 강해 끝입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52 [창세기] 창세기 50장 강해 요셉의 영광 오요한 2008-01-22
51 [창세기] 창세기 49장 강해 분량대로 축복한 이스라엘 오요한 2008-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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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창세기] 창세기 43장 강해 맡김으로 얻는 행복 오요한 2008-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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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창세기] 창세기 41장 강해 총리가 된 요셉 오요한 2008-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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