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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창세기 39장 강해 요셉과 보디발의 아내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8-01-12 00:00:00
조회수 : 4,349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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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9장 강해 요셉과 보디발 아내
말씀 창세기 39장 1-창세기 39장 23
요절 창세기 39장 9절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노스케롤라이나의 류용희 선교사님이 이름을 개명해 달라고 전화가 왔습니다. 저는 그때 창세기 요셉의 부분을 읽고 있었습니다. 요셉의 삶에 너무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요셉은 평신도로서 세계만민을 구원하는 목자로 쓰임 받았습니다. 그는 풍년의 때에 양식을 예비하여 기근을 극복하였습니다. 그의 모습은 마치 세계 만민을 구원하신 예수님의 모습과 같습니다. 저는 류용희 선교사님에게 요셉이라고 이름을 짓자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름을 요셉이라고 개명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요셉의 죄수 생활과 감옥 생활이 나옵니다. 이런 요셉의 삶도 예수님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이 시간 요셉을 통하여 예수님을 배우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애굽의 노예가 된 요셉)

1절을 보십시오.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요셉을 사니라”

요셉이 애굽의 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팔려가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형들의 안부를 묻기 위해서 도단으로 갔습니다. 형들은 요셉을 보자 꿈꾸는 자가 온다고 하였습니다. 형들은 요셉의 꿈이 이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이스마엘 사람에게 은 이십을 받고 요셉을 팔았습니다. 요셉은 애굽의 노예시장에서 짐승처럼 팔리게 되었습니다. 이스마엘 사람은 은 이십에 샀기 때문에 이윤을 붙여서 가장 비싸게 가격을 부르는 사람에게 요셉을 팔았을 것입니다.
요셉은 하루 아침에 부잣집 귀공자에서 애굽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바로 며칠 전까지만 해도 요셉은 행복했습니다. 아버지 야곱의 특별한 사랑을 받으며 채색 옷을 입고 지냈습니다. 아버지가 믿는 하나님을 믿으며 아름다운 꿈을 꾸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국땅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노예는 당시에 짐승취급을 받았습니다. 노예는 자유도 인격도 없습니다. 꿈도 꿀 수 없습니다. 옷도 신발도 없습니다. 이국땅이라 말도 통하지 않습니다. 애굽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 국가입니다. 이 모든 어려움이 형들이 요셉을 팔아서 일어난 것입니다.
요셉은 형들을 생각할 때 분노가 일어났을 것입니다. 아버지가 미치도록 보고 싶었을 것입니다. 요셉이 자신의 첫아들 이름을 므낫세라고 지었는데 그 뜻이 하나님이 내 모든 고난과 아버지의 온 집 일을 잊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이를 볼 때 이 때 요셉의 괴로움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습니다. 노예인 요셉에게 깊은 절망이 찾아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요셉의 꿈을 이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팔았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꿈을 이루는 단초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바로왕 측근에 있는 보디발을 만나도록 섭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에게 꿈을 이루기 위한 훈련하십니다. 야곱은 요셉과 함께 할 수 없었지만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기 시작했습니다.

(요셉과 함께 하신 하나님)

2,3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형들은 꿈꾸는 요셉을 버렸지만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 하셨습니다. 아버지 야곱이나 어머니 라헬은 애굽에 있는 요셉과 함께 할 수 없었으나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요셉과 함께 하셨을까요? 창세기 저자는 이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뒤에 보면 요셉은 하나님을 경외하여 범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경외하는 요셉에게 하나님의 영을 주어 함께 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요셉에게 꿈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경외하는 자에게 꿈을 주시고 성령으로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은 꿈을 꾸는 자를 훈련하십니다. 꿈꾸는 자에게 고난을 주십니다.
베드로전서에 2장4절에 보면 고난의 때에 하나님은 하나님께로 나가는 자와 함께 하심을 말씀하십니다. 초대성도들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세상에서 버림 받았습니다. 성도들은 그 때 버림 받으신 에수님을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이 사람들에게 버림 받으셨으나 하나님께 택함을 받으신 예수님께 나갔습니다. 그들은 버림 받아서도 하나님을 경외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왕같은 제사장 삼으셨습니다. 그들을 역사 창조의 주역으로 삼으셨습니다. 이를 볼 때 요셉도 형들에게 버림 받았을 때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께 나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셉은 형들에 대한 미움과 하나님에 대한 불신에 시달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하나님께 나갔습니다. 자신에게 두신 하나님의 섭리를 믿었습니다. 고난 후에 하나님이 자신을 쓰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형들에 대한 미움을 극복하였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극복하였습니다. 애굽 노예의 슬픔을 극복하였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을 사랑했고 하나님을 경외하였습니다.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말씀대로 살고자 투쟁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요셉에게 성령을 충만히 부어주시고 요셉과 함께 해주셨습니다.

(우리가 고난 받을 때)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사람들에게 버림 받을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가족들에게 버림받고, 친구들에게 버림 받고, 직장에서 미움 받을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질병으로 고통하고 시험에 떨어지고 진퇴양난의 고난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다 무너져 내릴 때가 있습니다. 기막힌 일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인생의 소망이 보이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때 사람들을 미워하고 사람들과 싸우기 쉽습니다. 아니면 자포자기하고 주저앉기 쉽습니다.

우리는 이때 우리보다 먼저 버림받으신 예수님께 나가야합니다. 건축자들에게 버림받았지만 모퉁이돌이 되신 예수님께 나가야합니다. 우리는 버림 받았어도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더욱 사랑해야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주시고 우리와 함께 하여 주십니다. 우리의 슬픔을 극복하게 도우실 뿐 아니라 우리를 이 시대의 목자로 귀하게 사용하여 주십니다.
종로의 안마리아 선교사님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 때문에 아버지로부터 많이 맞았습니다. 목자님께 위로를 받고자 하였지만 목자님도 위로해 주지 않고 문전박대하셨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해주시는 것을 체험했다고 간증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안마리아 선교사님에게 십자가의 예수님을 환상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요셉과 함께 하신 하나님)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셔서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요셉을 노예에서 자유하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의 형편을 조금도 바꾸어 주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형통하게 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형통했다는 말은 다른 성경에는 번역이 조금씩 다르게 나옵니다. 현대어 성경에는 행운이 따랐다고 나오고, 표준새번역에는 하는 일마다 잘 되었다고 나오고, 현대인의 성경에는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고 나옵니다. 영어 성경에도 번영이나 성공으로 나옵니다. 여기서 공통적으로 요셉이 맡은 일을 성공적으로 잘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신다는 것은 어떤 악조건에서도 자신의 맡은 일을 잘 감당하도록 도우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셉을 노예에서 해방시키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셔서 요셉과 함께 일하심이 보였습니다. 이것은 보디발도 인정할 정도로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 이식 야곱과 함께 하신 하나님)

성경에는 하나님이 함께 하신 일이 많이 나옵니다. 창세기에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함께 하십니다.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함께 하사 백세에 이삭을 낳았을 때도 그랄왕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이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함께 하신다고 말하였습니다. 아비멜렉은 이삭도 기근이 들었을 때 백배의 축복을 받는 것을 보고 하나님이 이삭과 함께 하시는 분명히 보았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야곱과 함께 하셨을 때 야곱은 외삼촌 라반과 불리한 계약에도 불구하고 거부가 되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함께 하신 하나님이 이제 요셉과 함께 하셨습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님)

신약에는 예수님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자와 함께 하십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이 제자들과 영원토록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권능의 예수님이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이 함께 하시면 무엇보다 우리 마음에 평안과 기쁨이 생깁니다.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이 함께 하셔서 병을 치료되고 귀신을 쫓아내는 표적이 일어납니다. 예수님이 함께 하시면 이성을 초월하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불가능한 일이 가능하게 됩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나와 함께 하지 않는 것으로 슬퍼합니다. 부모님이 함께 하지 않으시는 것을 슬퍼하고 친구들이 함께 하지 않는 것을 슬퍼합니다. 사람들에게 미움 받고 무시받고 멸시받는 것으로 슬퍼합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이런 것으로 슬퍼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진정 슬퍼할 것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나와 함께 할지라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지 않으신다면 그것을 슬퍼해야 합니다. 우리는 비록 사람들에게 미움 받고 버림받아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면 그것으로 기뻐할 수 있어야합니다. 하나님께 버림 받은 사울은 얼마나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였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한 다윗은 얼마나 아름다운 인생을 살았습니까?

(요셉을 신뢰한 주인 보디발)

4-6a절을 보십시오. “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주인이 그의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탁하고 자기가 먹는 음식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보디발은 요셉에게 은혜를 베풀어서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았습니다. 보디발의 집에 사무를 히브리 종인 요셉에게 맡겼습니다. 보디발은 요셉을 전적으로 신뢰하였습니다. 요셉은 노예를 하면서 경영 수업을 받았습니다. 보디발 집에서는 가정 총무로, 감옥에서는 죄수의 총무로, 애굽에서는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이 보디발 가정의 일을 처리하게 한 때부터 요셉을 위하여 보디발의 집에 복을 내리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그 손이 닿는 것마다 복을 주십니다. 보디발의 집의 일들이 형통하고 보디발의 밭에 농사도 풍년이 들었습니다.
보디발은 자신이 먹는 음식 외에는 간섭하지 않고 모든 것을 요셉에게 맡겨서 자율적으로 처리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죄악된 보디발이나 그 처를 보면 그 집에 복을 주실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사는 요셉을 보고 복을 주셨습니다. 믿음의 사람 한 사람이 있으면 그로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복주십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나로 인하여 나의 가정이 복을 받습니다. 나의 직장이 복을 받습니다. 나의 학교가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을 복덩어리가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실 수 있도록 부활하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예수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을 가야합니다. 하나님의 십계명에 순종해야합니다.

(보디발 처의 유혹)

6b,7절을 보십시오. “요셉은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더라 그 후에 그의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요셉은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습니다. 요셉은 17-20살 쯤 된 꽃미남이었습니다. 배용준 뺨치는 미남이었습니다. 요셉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기 때문에 내면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기쁨과 밝음이 있었습니다.
이런 요셉에게 큰 시험이 왔습니다. 보디발 아내가 요셉을 유혹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시자 사탄이 시험하여 요셉을 넘어뜨리고자 하였습니다. 요셉이 감당하기 어려운 시험입니다. 당시 애굽은 성적으로 문란한 분위기였습니다. 그의 형제들도 성윤리가 무너졌습니다. 그의 큰형인 르우벤은 서모와 잠을 자는 죄를 지었습니다. 넷째형 유다는 창녀촌에 들어가서 잠을 잤습니다. 디나도 겁탈 당하였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요셉도 정욕의 죄를 범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이 현실이 어려우면 더욱 방탕하고 정욕적이 되기 쉽습니다. 더구나 요셉은 지금 한창인 스무 살 나이입니다. 요셉은 젊은 피가 끓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어떻게 했습니까?

(유혹을 물리친 요셉)

8,9절을 보십시오.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아내에게 이르되 내 주인이 집안의 모든 소유를 간섭하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탁하였으니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요셉은 보디발 아내의 유혹을 분명히 물리쳤습니다. 여인이 지속적으로 날마다 동침하기를 청하였으나 듣지 아니하였습니다. 동침하지 않을뿐더러 함께 있지도 않았습니다. 음란의 죄는 불과 같습니다. 기름을 갖고 불에 가면 불에 붙습니다. 그러므로 죄를 지을 수 있는 환경을 근원적으로 없애야합니다. 요셉이 이렇게 보디발 아내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었을까요?

(보디발의 은혜를 기억함)

요셉은 주인 보디발의 은혜를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보디발은 요셉에게 은혜를 베풀어 노예인 요셉에게 모든 것을 관리하는 청지기로 삼았습니다. 오직 금한 것은 보디발의 아내였습니다. 이런 보디발의 아내를 범하면 보디발이 베푼 은혜를 저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알 뿐 아니라 사람에게 받은 은혜도 아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함)

요셉이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이기 때문에 요셉의 아내를 범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간음하지 말라고 십계명에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신명기에는 혼전 순결을 지키지 않는 자도 돌로 쳐서 죽이라고 하였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과 한 생명으로 묶여 있었습니다. 요셉과 하나님은 하나였습니다. 요셉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높여드렸습니다. 요셉이 하나님께 죄를 지으면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려면 죄와 타협치 말고 절대적으로 순결을 지켜야합니다.
과테말라 선교사로 갔던 안요셉 선교사님에게 밤에 한 여자가 들이닥쳤습니다. 아내를 떠나 홀로 사는 요셉선교사에게 웃옷을 벗고 가슴을 보이며 함께 자자고 유혹하였습니다. 그러나 안 선교사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그것을 물리쳤습니다. 예전에 자매 인턴 목자를 스텝목자 집에 거하게 하였습니다. 어떤 목자가 자매 인턴 목자와 관계를 맺고 목자직을 떠났습니다. 지금은 그런 환경을 아예 없앴습니다.

(환경을 피한 요셉)

11,12절을 보십시오. “그러할 때에 요셉이 그의 일을 하러 그 집에 들어갔더니 그 집 사람들은 하나도 거기에 없었더라 그 여인이 그의 옷을 잡고 이르되 나와 동침하자 그러나 요셉이 자기의 옷을 그 여인의 손에 버려두고 밖으로 나가매”

그렇게 요셉이 유혹을 물리쳤지만 유혹은 쉽게 끝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한번은 요셉이 일을 하러 집에 들어갔습니다. 그 집 사람들이 하나도 그곳에 있지 않았습니다. 보디발의 아내는 요셉의 옷을 잡고 말했습니다. “나와 동침하자”고 유혹하였습니다. 말로 하는 유혹에서 이제는 행동으로 하는 유혹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자기의 옷을 그 여인의 손에 버려두고 밖으로 도망갔습니다. 요셉은 적극적으로 도망가는 전법을 사용하였습니다. 이성의 유혹에는 환경을 피하고 그런 환경에 놓였을 때는 도망가는 것이 최고입니다.

(성령님을 근심시키는 죄)

요즘도 정욕의 죄가 만연한 시대입니다. 다 죄짓는데 한번 죄짓는 것이 어쩌랴 싶습니다. 그러나 죄를 지으면 성령이 소멸되고 생명을 빼앗깁니다. 한 번 짓는 정욕의 죄는 꿀을 바른 양날가진 칼과 같습니다. 잠시의 쾌락이 있지만 나중에는 칼이 혀를 자르고 목을 베어갑니다. 죄를 범하면 속이 쑥과 같이 씁니다. 어떤 사람은 죄를 짓고 회개하면 되지 말하고 죄를 짓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은 성령님을 모르는 죄악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성령님이 마음에 상처를 받습니다. 그 하나님의 마음을 풀어드리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우리가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었다고 합시다. 내가 잘못했어. 앞으로 잘할게. 한다고 해서 금세 풀립니까?
조용기 목사님은 여의도 순복음 교회를 지을 때 너무 힘이 들어서 자녀에게 매를 댔다고 합니다. 아내에게도 험한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아내가 자녀를 데리고 친정집으로 갔습니다. 아내에게 아무리 빌어도 아내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곁에 앉아서 밤새 눈물로 회개기도를 하고나서야 마음이 조금 풀렸다고합니다. 그렇게 사람의 마음을 푸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성령님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그 마음을 풀어 드리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의 죄 가운데 가장 큰 죄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성령님을 모독하는 죄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체험하고 나서 다시 정욕의 죄에 빠지면 이는 성령을 모독하는 죄입니다. 정욕의 죄는 우리 마음 속에 계신 성령님을 모독하는 죄입니다. 다른 모든 죄는 몸밖에 짓는 것이나 정욕의 죄는 몸안에 죄를 지어 생명을 잉태하게 하는 죄입니다. 예수님은 성령님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함을 받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성령님을 존중히 여기고 높여드리기 전에는 영원히 용서받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저는 이를 깊이 체험하였습니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죄사함의 은혜를 맛보았습니다. 그때는 내 인생에 최고의 때였습니다. 주님의 성령이 나와 함께 하셔서 말씀을 읽으면 은혜가 되고 찬송을 불러도 감동이 되었습니다. 인턴 목자로 학생들을 메시지 훈련을 시켰는데 모두가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들이 변화되었습니다. 성령님이 나와 가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고 얼마 후에 정욕의 죄를 지었습니다. 성령님은 나로 인하여 근심하셨습니다. 전에 같이 말씀을 보고 기도를 해도 성령님을 나에게 강력으로 일하지 않으셨습니다. 나의 마음에 평안과 기쁨은 있지만 주님이 쓰실 수 없었습니다. 저는 오랜 시간이 지나서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그것은 성령님께서 나의 죄로 마음에 상처를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다시 철저히 회개하고 순종하였을 때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시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지은 자를 회개하면 용서하시지만 철저히 훈련하십니다. 다윗이 죄를 지었을 때 두 손 두 발 다 들도록 훈련하셨습니다. 우리가 이런 훈련을 안다면 함부로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성폭행범으로 누명을 쓴 요셉)

13-19절을 보십시오. “그 여인이 요셉이 그의 옷을 자기 손에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감을 보고 그 여인의 집 사람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보라 주인이 히브리 사람을 우리에게 데려다가 우리를 희롱하게 하는도다 그가 나와 동침하고자 내게로 들어오므로 내가 크게 소리 질렀더니 그가 나의 소리 질러 부름을 듣고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갔느니라 하고 그의 옷을 곁에 두고 자기 주인이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려 이 말로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데려온 히브리 종이 나를 희롱하려고 내게로 들어왔으므로 내가 소리 질러 불렀더니 그가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밖으로 도망하여 나갔나이다 그의 주인이 자기 아내가 자기에게 이르기를 당신의 종이 내게 이같이 행하였다 하는 말을 듣고 심히 노한지라”

보디발 여사는 요셉이 자신의 요구를 뿌리치고 나가자 엉청나게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여자는 요셉에게 자신을 겁탈하려고 들어왔는데 자신이 소리를 크게 질렀더니 옷을 버려두고 도망갔다고 거짓말을 하고 누명을 씌웠습니다. 그는 요셉의 옷을 증거물로 제시하였습니다. 여자가 자존심이 상하면 무섭습니다. 보디발의 처는 남편 보디발이 오자 적반하장으로 요셉에게 성폭행범으로 누명을 씌웠습니다. 보디발은 아내의 말을 듣고 심히 노하였습니다. 내가 은혜를 베풀었는데 너는 이럴 수 있느냐고 책망하였습니다.

(감옥에 갇힌 요셉)

20절을 보십시오.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보디발은 요셉을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요셉이 하나님을 경외하자 사람들이 그를 버렸습니다. 이것이 세상입니다. 세상은 악하므로 경건하게 사는 자를 핍박합니다. 그러나 이것도 또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감옥에서는 보디발 처의 유혹을 받지 않습니다.
보디발이 요셉을 죽이지 않고 감옥에 가둔 것도 은혜입니다. 보디발은 처의 행실을 의심했던 것 같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버림받고 노예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보디발과 그 아내에게 버림 받고 죄수가 되었습니다. 겁탈했다는 누명을 쓰면 인격의 모독을 받아 참기 어렵습니다. 자살해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세상은 이렇게 믿음으로 사는 우리를 괴롭힙니다. 요셉의 죄가 무엇입니까? 요셉은 꿈을 꾸고 순결하게 산 것밖에는 죄가 없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이렇게 순수하게 꿈을 꾸며 사는 사람들을 괴롭힙니다. 세상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을 고통스럽게 합니다.

(꿈을 향하여 다가가는 요셉)

그러나 우리가 아무 죄없이 고난 받을 때 우리는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람들은 꿈을 이루지 못하게 하고자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꿈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애굽에 노예로 팔려온 것은 가나안의 좁은 세계에서 애굽의 넓은 세계로 나온 것입니다. 요셉이 감옥에 갇히는 것은 바로의 술맡은 관원장과 만남을 예비하는 것입니다. 죄인들을 섬기는 훈련을 통해서 섬기는 리더십을 배우는 때입니다. 정치범들을 통하여 정치학 수업을 듣는 때입니다. 요셉은 누명 쓰는 훈련을 통하여 다른 형들에게 누명을 씌워 훈련시키는 것을 배웠습니다. 하나님 편에서 보면 이 모든 것은 꿈을 이루기 위해서 한 발짝씩 다가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것이 점점 어렵게 되는 상황에서 하나님을 신뢰해야합니다. 우리의 꿈을 이루시는 정확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좋으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어 드려야합니다. 좋으신 하나님은 감옥에 있는 요셉을 어떻게 도우셨습니까?

(감옥에서 요셉과 함께 하신 하나님)

21-23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하나님은 감옥에서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결한 요셉과 함께 하셨습니다. 요셉과 함께 하셔서 감옥에서 나가도록 도우신 것이 아닙니다. 요셉이 성공적으로 일을 처리하게 도우셨습니다. 간수장의 사랑을 받게 하여 감옥의 총무가 되었습니다. 간수장은 요셉을 신뢰하여 옥중 죄수의 사무를 요셉에게 다 맡겼습니다.
하나님이 감옥에서도 왜 요셉과 함께 하셨을까요? 감옥에서도 요셉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결하게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감옥에서 보디발 아내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나갔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요셉과 함께 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의 그림자 요셉)

우리는 요셉의 생애를 보면서 누구와 많이 닮은 사람이 생각나지 않습니까? 네 맞습니다.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제자인 유다에게 은 삼십에 팔렸습니다. 자신이 죄인이 아닌데 죄인 취급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반역자가 아닌데 반역자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신 후에 그리스도가 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요셉을 예수님의 예표라고 합니다.요셉은 예수님보다는 조금 싸게 은 이십에 팔렸습니다. 요셉은 예수님처럼 억울하게 누명을 썼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억울하게 누명을 쓴 것입니다. 요셉의 현재 상황도 예수님과 유사합니다. 요셉은 형들의 죄로 인하여 노예가 되었습니다. 요셉은 보디발 아내의 죄로 인하여 죄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나중에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지도자 훈련을 받은 요셉)

그러면 요셉에게 이렇게 노예가 되고 누명을 쓰고 죄수 생활하는 것이 왜 필요했을까요? 이는 지도자의 필수 요소입니다. 지도자는 양들의 죄를 감당하는 자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왜 그렇게 무릎을 꿇고 경배를 드립니까? 그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감당하시고 우리의 죄값을 대신 치르셨기 때문입니다. 혹시 억울한 일 당하는 일이 있습니까? 애매하게 고난을 받을 때가 있습니까? 아무 잘못도 없이 명예가 상할 때가 있습니까? 그때가 지도자가 될 수 있는 때입니다. 우리나라의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대통령 모두 죄수 훈련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국회위원 가운데 민주화 운동하다가 갇힌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연약함과 죄를 감당해줄 때 나중에는 그들이 자신의 죄를 발견하고 회개합니다. 죄를 감당해준 사랑에 감동을 받습니다. 그들이 변화되어 예수님을 믿습니다. 우리는 가까운 사람들의 연약함을 대신 하여 내가 고난을 받아야합니다. 다른 사람의 죄에 대해서 내가 책임을 져야합니다. 무엇보다 나와 아무 상관 없는 신입생들에게 전도하며 이유없이 고난을 받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며 아무 이유없이 십자가를 져야합니다. 그때 그들이 예수님을 믿고 변화될 것을 믿습니다. 아멘!
창세기 39장 강해 요셉과 보디발 아내
말씀 창세기 39장 1-창세기 39장 23
요절 창세기 39장 9절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창세기 39장 강해 끝입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42 [창세기] 창세기 40장 강해 죄인들의 목자 요셉 오요한 2008-01-12
41 [창세기] 창세기 39장 강해 요셉과 보디발의 아내 오요한 2008-01-12
40 [창세기] 창세기 38장 강해 유다와 다말 오요한 2008-01-11
39 [창세기] 창세기 37장 강해 꿈꾸는 요셉 오요한 2007-11-15
38 [창세기] 창세기 35장,36장 강해 전능한 하나님 오요한 2007-02-04
37 [창세기] 창세기 34장 강해 벧엘로 올라가라 오요한 2007-01-28
36 [창세기] 창세기 33장 강해 야곱과 에서의 화해 오요한 2007-01-21
35 [창세기] 창세기 32장 강해 2부 네이름이 무엇이냐 오요한 2006-12-17
34 [창세기] 창세기 32장 강해 1부 두렵고 답답할 때 오요한 2006-11-25
33 [창세기] 창세기 31장 강해 2부 증거의 돌무더기 오요한 2006-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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