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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창세기 32장 강해 1부 두렵고 답답할 때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6-11-25 00:00:00
조회수 : 4,294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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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2장 강해 일부 두렵고 답답할 때

말씀 창세기 321-창세기 3220

요절 창세기 3211절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 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하옴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냄이니이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이런 증상을 가진 분이 있습니까? 숨이 가빠옵니다. 질식할 것 같습니다.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심장이 빨리 뜁니다. 가슴에 통증이 있고 불쾌감이 있습니다. 소름이 돋고 손발이 떨립니다. 숨막히는 듯한 느낌이 있습니다. 식은 땀이 납니다. 어지러움, 비틀거림이 있고, 기절할 것 같습니다. 화끈거리기도 하고 추운 느낌도 있습니다. 구역질이 나고 복통이 있습니다. 현실에서 동떨어진 느낌이 듭니다. 마비된 것 같은 느낌이 있고 두렵습니다. 미칠 것 같고 자제력을 잃을 것 같은 두려움이 있습니다. 이 증상 중에 네 가지 이상이 지속적으로 나타나면 공황장애입니다. 우리 가운데 네 가지 이상은 아니어도 한두 가지는 가끔 경험해 보았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야곱이 이와 같은 증상을 겪습니다. 야곱은 지금 처갓집을 떠나서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과거 형 에서가 장자권을 빼앗긴 것에 앙심을 품고 야곱을 죽이고자 옵니다. 야곱은 심히 두렵고 답답함 가운데 기도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찾아오는 두려움과 답답함을 해결하기를 기도합니다.

 

(야곱을 안심시키신 하나님)

 

1,2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그 길을 진행하더니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난지라 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

 

야곱은 라반의 추격을 따돌리고 가나안 땅을 향하여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앞에는 라반보다 더 무서운 적 에서가 야곱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앞에는 에서가 400명의 군대를 거느리고 오고 있었습니다. 야곱은 이런 사실도 모르고 가나안 땅을 향하여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에서의 군대가 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2개 대대의 군대를 보내어 야곱을 보호하시고 계셨습니다. 야곱이 그 땅 이름을 마하나님이라고 붙였는데 이는 두 진영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보호해 주신다는 약속대로 지금까지 야곱을 신실하게 보호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야곱과 함께 하셨습니다. 이제는 야곱이 볼 수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셔서 야곱을 안심시켜 주십니다.

현재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은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 계시며 우리를 보호하여 주시고 계십니다. 성령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이십니다. 성령 하나님은 우리의 경호실장이 되어 우리의 머리카락 하나까지 세어주십니다. 우리가 이를 알 때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할 수 있습니다.

 

(에서를 정탐하는 야곱)

 

3-5을 보십시오. “3야곱이 세일 땅 에돔 들에 있는 형 에서에게로 자기보다 앞서 사자들을 보내며 4.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내 주 에서에게 이같이 말하라 주의 종 야곱이 이같이 말하기를 내가 라반과 함께 거류하며 지금까지 머물러 있었사오며 5. 내게 소와 나귀와 양 떼와 노비가 있으므로 사람을 보내어 내 주께 알리고 내 주께 은혜 받기를 원하나이다 하라 하였더니

 

야곱은 세일 땅 에돔 들에 있는 형 에서에게로 사자들을 자기보다 앞서 보냈습니다. 그리고 에서에게 자신이 부자가 되었고 에서에게 은혜 받기를 원한다는 말을 전하라고 일러주었습니다. 야곱은 쌍둥이 형 에서를 두 번이나 주님이라고 말합니다. 동생인 자신은 종으로 몸을 낮추었습니다. 자신이 소와 양떼와 노비를 데리고 에서와 함께 살기를 바란다고 하였습니다. 자신이 에서에게 도움을 주지 폐를 끼치지 않을 것을 암시합니다. 그러면서 은근히 에서의 미운 감정이 사라졌나 동정을 살피고자 하였습니다. 야곱은 20년 전에 에서가 자신을 죽이고자 한 것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이십 년이 지났으니 에서가 그 일을 잊어버렸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심히 두렵고 답답한 야곱)

 

6,7a절을 보십시오. “6. 사자들이 야곱에게 돌아와 이르되 우리가 주인의 형 에서에게 이른즉 그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주인을 만나려고 오더이다 7.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사자들이 야곱에게 돌아와 에서가 사백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야곱을 만나러 온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사자가 전한 말을 듣고 야곱은 심히 두렵고 답답했습니다. 사백 명은 대대급의 병력입니다. 대대에는 군사 작전 정보 장교를 두고 독자적인 작전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야곱은 이 말을 듣는 순간에 과거 에서가 자신을 죽이고자 살기 어린 눈으로 노려보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에서는 뛰어난 사냥꾼입니다. 그는 자신의 비참한 미래가 상상 되었습니다. 자신이 이십 년 동안 모은 약대를 에서가 약탈합니다. 자신의 아내와 자녀들은 포로로 잡아서 종으로 삼습니다. 마지막 자신은 에서의 활에 의해서 죽음을 당합니다. 이런 모습이 상상되자 야곱은 심히 두렵고 답답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야곱은 방금 이개 대대나 되는 하나님의 군대가 자신을 보호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하나님의 군대는 에서의 군대를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군대를 보고도 야곱은 왜 이렇게 두려워했을까요?

 

(내면의 콤플렉스)

 

첫째, 과거의 아픈 상처 때문입니다. 야곱은 에서에게 죽음을 당할 뻔한 아픈 과거가 있습니다. 야곱이 형 에서의 축복을 가로채자 에서가 야곱을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이 아픈 과거가 에서를 보자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우리는 아픈 상처가 있으면 평상시는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라보고 놀란 가슴 숱뚜껑 보고 놀란다고 유사한 상황을 보면 다시 놀라게 됩니다. 우리는 다 잊어버리고 있는 것 같은 데 사실 우리의 몸과 뇌는 잠재의식 속에 기억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어둠 속에서 남자에게 목을 졸린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이전까지는 밤에도 용감하게 잘 다녔습니다. 그러나 그 사건 후부터 어두워지면 밖을 잘 나가지 못합니다. 한번 물에 빠져 죽을 뻔한 사람은 수영을 평생 못합니다. 한번 낙지를 먹고 식중독에 걸리거나 알러지가 일어난 사람은 낙지를 먹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런 두려움 속에서 벗어나려면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 있는 상처를 끄집어내어 죄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과거에 상처가 있습니다. 어떤 분은 아버지에게 매를 맞고 자라서 어른을 부정적으로 봅니다. 어떤 사람은 어렸을 때 부모없이 홀로 자라서 버림 받을 것이라는 상처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모욕을 또는 이성으로부터 받은 모욕을 오래 간직하고 있는 분이 있습니다. 신체적인 열등감으로 사람들의 놀림을 받고 상처가 된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것이 우리에게 두려움과 답답함의 원인이 됩니다.

민족적인 상처도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강대국 콤플렉스가 있습니다. 특히 일본에 대한 콤플렉스가 강합니다. 우리가 일제 삼십륙 년 강점 된 경험과 임진왜란 때 일본의 침략을 받은 상처를 안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본에 대해서 과민반응을 보입니다.

또한 집단적인 계층적인 콤플렉스도 있습니다. 여성들은 남성들에 대해서 오랫동안 당해와서 상처가 있습니다. 하층민들은 상층민들에 대한 상처가 있습니다. 그들은 잘사는 사람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에 대한 반발심이 있습니다. 막내 콤플랙스도 있습니다. 둘째는 형과 비교를 당해서 그것이 상처가 되어 스스로 열등감을 느끼거나 아니면 부모의 사랑만 받으려고 어리광을 피우고 자립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피터팬 콤플랙스는 몸은 어른이 되었는데 정신은 어린 아이로 있고자 하는 것입니다. 어른이 되면서 책임을 다 하지 못한다고 책망을 받으면서 상처가 형성되고 영원한 어린 아이로 머물고자 하는 데서 생기는 것입니다. 또한 인류적인 상처가 있습니다.

인간은 아담이 받은 뱀에 대한 상처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뱀에 대한 혐오감을 느낍니다. 남자는 여자 때문에 낙원에서 쫓겨났고, 아들은 아버지 때문에 저주를 받았다는 콤플렉스가 있습니다. 남자가 여자에게 가지는 콤플렉스는 이브컴플렉스입니다. 부부 싸움의 원인이 여기에도 있습니다. 그리고 아들이 아버지에게 가지는 콤플렉스는 오디푸스 콤플렉스입니다. 이는 부자간의 갈등의 원인입니다.

우리는 개인적이든 민족적이든 아니면 인류적이든 이런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우리의 상처를 드러내고 치료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슬픔을 담당하셨고 예수님이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를 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야 두려움과 답답함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말씀과 현실의 괴리감)

 

둘째는 말씀과 현실에서 오는 괴리감입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에서는 야곱을 지켜주신다고 합니다. 야곱은 이 말씀대로라면 에서가 몇 명의 식구들과 마중 올 것이라고 기대하였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사백 명의 군사가 오고 있었습니다. 야곱은 이를 보면서 하나님이 자신을 보호하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신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말씀에 불신이 들면 두려움에 시달립니다.

우리는 은혜 받았던 만큼 충격도 커집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나를 복의 근원으로 삼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를 번성하고 왕성하고 강성하게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과 비교해 보면 내가 더 부족할 때가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다 집을 장만하고 풍요롭게 사는 것 같은데 나는 빚 독촉에 시달립니다. 말씀은 믿는 자가 꼬리가 되지 않고 머리가 된다고 했는데 세상 사람들과의 경쟁에서 실패합니다. 나의 성적이 세상 사람들보다 더 안 나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그리스도인이 세상 사람들에게도 인정을 받는다고 하였는데 세상 사람들에게 책망을 받고 수치를 당하게도 됩니다. 그러면 두려움이 밀려옵니다.

 

(과대망상증)

 

셋째, 야곱은 과대망상에 시달립니다. 지금 알고 있는 사실은 에서가 4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가 야곱을 보호해 주러오는지 아니면 치러 오는지 모릅니다. 아니면 다만 자신의 권력을 과시해서 기선을 제압하려고 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야곱은 이 사실에 근거하여 온갖 부정적인 상상을 하는 것입니다. 자신은 다 망하는 상상을 합니다.

이렇게 터무니없는 부정적인 상상에 시달리는 것을 과대망상이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을 누군가가 죽이려고 한다는 망상에 빠지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누군가가 자신을 스토커하고 있다는 망상에 빠지기도 합니다. 부부는 서로 간에 바람 피운다는 망상에 빠지기도 합니다.

 

(소유를 두 떼로 나눈 야곱)

 

7b,8절을 보십시오.“자기와 함께 한 동행자와 양과 소와 낙타를 두 떼로 나누고 8. 이르되 에서가 와서 한 떼를 치면 남은 한 떼는 피하리라 하고

 

두렵고 답답한 야곱은 자신과 함께한 종들과 양과 소와 약대를 두떼로 나누었습니다. 에서가 와서 한 떼를 치면 한 떼를 살리고자하였습니다. 그는 두려움 속에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우리는 위기 상황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 있는 것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배가 아프면 손을 따기도 하고 병원도 가보아야 합니다. 주위 사람들의 도움을 구할 수 있으면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배에 물이 차면 얼마가 되든지 그 물을 퍼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스스로 돕는 자를 도우십니다.

 

(약속의 말씀을 잡고 기도하는 야곱)

 

9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또 가로되 나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

 

이제 야곱은 기도합니다. 야곱의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두렵고 답답할 때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배웁니다. 두렵고 답답할 때 하는 모습이 매우 다양합니다. 잠을 자는 사람도 있습니다. 겜을 하거나 술을 먹어서 현실을 잊는 사람도 있습니다. 현실을 도피하여 어디론가 멀리 떠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극단적이면 자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십자가를 앞두고 심히 두렵고 답답했습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이 피가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두렵고 답답할 때 기도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때 잠을 잤습니다. 그러다 실패하였습니다. 우리는 기도로 두려움을 극복해야 합니다. 시편 4211절에 보면 우리는 낙망하고 불안할 때 하나님을 바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기도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두려움을 극복해야합니다.

야곱은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있음을 상기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하셔서 돌아가는 것입니다. 요나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두렵고 답답함을 만날 때 혹시 내가 죄를 짓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아야합니다. 그리고 죄가 있으면 회개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죄가 없으면 자신이 하는 일에 당당해야 합니다.

우리는 두렵고 답답할 때 약속의 말씀에 기초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을 지키십니다. 우리는 약속의 말씀을 잡을 때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네가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바울이 로마로 갈 때에 광풍을 만나기도 하고 뱀에게 물리기도하고 유대인의 공격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래도 바울이 담대할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기초한 기도)

 

10절을 보십시오.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리를 조금 이라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베푸신 은혜를 기억했습니다. 그는 지팡이 하나만 가지고 얍복 강을 건넜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두떼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대가족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야곱과 함께 하셔서 축복하셨습니다. 그리고 에서의 손에서도 보호해 주셨습니다. 여러 짐승의 손에서도 보호해 주셨습니다. 과거에 그를 지키시고 인도하신 하나님이 미래에도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 나에게 베푸신 구원의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나를 어디에서 어떻게 구원하셨는지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인도하셨는지 기억해야 합니다. 이렇게 은혜를 기억할 때 우리는 두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진실 된 기도)

 

11절을 보십시오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 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하옴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냄이니이다

 

야곱은 자신의 처지를 진실하게 고백했습니다. “내 형 에서가 나를 칠까 두렵습니다. 형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 주십시오.” 우리는 기도할 때 미사여구를 쓰기 쉽습니다. 그러나 가장 좋은 기도는 진실한 기도입니다. 그는 야곱이 자신을 칠까봐 두렵다고 진실하게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사 앞에서 할 수 있으면 이 잔을 옮겨달라고 진실하게 고백했습니다. 제자들은 광풍을 만났을 때 주여 어찌하여 우리를 돌아보지 아니하나이까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한 선교사는 절박한 상황에서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이제 저도 어쩔 수 없습니다. 저를 구워 드시든지 삶아 드시든지 마음대로 하십시오.” 하나님은 그의 이런 기도를 그를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주님, 돈이 없습니다. 주님, 버스가 안 옵니다. 주님, 배가 아픕니다. 주님, 제가 사람들이 싫습니다. 제가 죽고 싶습니다.” 이렇게 진실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다시 언약의 말씀을 잡고하는 기도)

 

12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정녕 네게 은혜를 베풀어 네 씨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야곱은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잡고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그 씨로 셀 수 없는 모래와 같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은 야곱의 행동에 상관없이 하나님이 야곱에게 하신 언약입니다. 야곱은 그 언약에 기초하여 야곱을 구원하여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천지는 무너져도 약속의 말씀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울 때 약속의 말씀을 잡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삽장십륙절 예수님을 결코 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는다는 말씀을 잡아도 좋습니다. 여호수아 17절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하라는 말씀을 잡아도 좋습니다. 이사야 4110절 두려워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말씀을 잡아도 좋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잡고 담대히 기도해야 합니다.

 

(엄청난 선물 공세)

 

13-15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거기서 경야하고 그 소유 중에서 형 에서를 위하여 예물을 택하니 암염소가 이백이요 수염소가 이십이요 암양이 이백이요 수양이 이십이요 젖나는 약대 삼십과 그 새끼요 암소가 사십이요 황소가 열이요 암나귀가 이십이요 그 새끼나귀가 열이라

 

야곱은 에서에게 550마리의 예물을 보냈습니다. 현시가로 따져도 약 삼 억원 정도 되는 큰 액수의 선물입니다. 화해를 위해서는 희생이 필요합니다.

 

(선물을 보내는 지혜)

 

“16. 그것을 각각 떼로 나누어 종들의 손에 맡기고 그의 종에게 이르되 나보다 앞서 건너가서 각 떼로 거리를 두게 하라 하고 17. 그가 또 앞선 자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내 형 에서가 너를 만나 묻기를 네가 누구의 사람이며 어디로 가느냐 네 앞의 것은 누구의 것이냐 하거든 18. 대답하기를 주의 종 야곱의 것이요 자기 주 에서에게로 보내는 예물이오며 야곱도 우리 뒤에 있나이다 하라 하고 19. 그 둘째와 셋째와 각 떼를 따라가는 자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도 에서를 만나거든 곧 이같이 그에게 말하고

 

야곱은 선물도 지혜롭게 보냈습니다. 야곱은 선물을 각각 세 때로 나누었습니다. 야곱은 자신보다 앞서 선물을 보내었습니다. 그리고 예서가 만나 그 선물이 누구의 것이냐 물으면 주의 종 야곱의 것이요. 주 예서에게 보내는 예물이라고 하였습니다. 에서는 처음 예물을 일 억원 어치 받았을 때 그놈 돈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군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또 일억원어치 예물을 받았을 때 그래 잘못을 뉘우치려고 하는군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 번째 또 오자 아 이놈이 그래도 기특하군 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예물을 보낸 이유가 무엇입니까?

 

(선물로 감정을 푸는 야곱)

 

20절을 보십시오. “또 너희는 말하기를 주의 종 야곱이 우리 뒤에 있다 하라 하니 이는 야곱의 생각에 내가 내 앞에 보내는 예물로 형의 감정을 푼 후에 대면하면 형이 혹시 나를 받으리라 함이었더라

 

야곱은 예물로 형의 감정을 풀고자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이 야곱이 에서에게 주는 뇌물이라고 비판합니다. 그러나 뇌물이란 떳떳하지 않은 것이요 대가를 바라고 거래를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담기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야곱의 마음과 죄에 대한 뉘우침이 담긴 선물입니다. 이를 통하여 형의 감정을 풀고자 하였습니다.

잠언 2114절은 말씀하십니다. “은밀한 선물은 노를 쉬게 하고 품의 뇌물은 맹렬한 분을 그치게 하느니라야곱은 선물로 에서의 노를 그치게 하고자 하였습니다. 야곱의 선물은 형식적인 선물이 아닙니다. 삼억 원이 넘는 선물로 마음이 담긴 선물입니다. 우리는 죄를 지으면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만 회개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도 회개해야 하지만 사람에게도 보상을 해야 합니다. 야곱은 형을 속이고 축복을 가로챈 죄에 대해서 형에 대해서 보상을 해야 합니다.

우리도 다른 사람을 차로 치게 했다면 그를 치료해 주어야 합니다. 돈을 훔쳤다면 갚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불의의 재물로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얻어야 합니다. 목동 선서나 목자 선서 졸업식 때 우리는 적극 선물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사람과 불화하면 두렵고 답답합니다. 우리는 그에게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진심이 담긴 선물을 보내야 합니다. 그래서 관계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럴 때 마음에 평안이 옵니다.

 

(뭉크의 절규에서 얻는 지혜)

 

야곱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다 하고도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였습니다. 그것은 그가 자신의 생명을 주님께 맡기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과 씨름을 하면서 자신의 생명을 주님께 맡겨야합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뭉크의 절규라는 그림을 보신 분이 있을 것입니다. 귀를 막고 있는 사람이 일그러진 얼굴로 비명을 지르고 있습니다. 그가 이런 절규를 그린 데는 배경이 있습니다. 어머니와 누나가 어렸을 때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는 정신병자였습니다. 본인도 폐병과 정신병에 시달렸습니다. 그는 평생을 그런 고통 가운데 시달리고 그것이 절규라는 작품으로 나온 것입니다. 그는 심한 두려움과 답답함에 시달렸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자신의 삶을 다 하나님께 맡겼다면 이런 절규에서 벗어났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예수님을 온전히 믿고 맡김으로 두려움과 불안에서 벗어나서 평안과 자유를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창세기 32장 강해 일부

말씀 창세기 321-창세기 3220 두렵고 답답할 때

요절 창세기 3211절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 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하옴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냄이니이다

창세기 32장 강해 일부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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