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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창세기 34장 강해 벧엘로 올라가라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7-01-28 00:00:00
조회수 : 4,074

문제지풀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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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4장 강해 벧엘로 올라가라

말씀 창세기 341- 창세기 3431

요절 창세기 351절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우리 가운데 사탄이 언제 일합니까? 우리는 언제 죄를 짓습니까? 우리는 죄를 짓지 않고자 노력을 하지만 죄를 짓는 경우가 있습니다. 원치 않게 이 일 저 일이 터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바로 우리가 영적인 안일에 빠져 있을 때입니다. 영적으로 교만해져 있을 때입니다. 영적인 안일은 사탄의 배양소입니다. 이런 때 사탄이 우리 가운데 일합니다. 축구에서 공격은 최대의 방어란 말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적극적으로 신앙생활을 할 때 우리는 죄를 짓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야곱의 가정에 여러 가지 문제가 마구 터집니다. 신앙의 위기를 맞게 됩니다. 야곱은 이런 여러 가지 문제에 부딪히면서도 왜 그런 문제가 생겼는지 모릅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친히 나타나셔서 서원을 갚지 않은 그의 문제를 지적해 주십니다. 그 여러 사건은 하나님이 강권적인 사랑으로 서원을 갚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알아듣지 못하자 야곱에게 직접 나타나서 벧엘로 올라가서 서원을 갚으라고 한마디 말씀하십니다. 야곱이 서원을 갚자 모든 문제는 깨끗하게 해결됩니다.

 

(안주하는 야곱)

 

야곱은 서원을 갚고자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많은 문제가 생겼습니다. 호사다마라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려면 어려움도 많습니다. 먼저 외삼촌 라반의 추격을 받았습니다. 형 에서가 3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죽이고자 찾아옵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어려움에서 야곱을 보호하고 지켜 주셨습니다. 야곱은 과거 하나님이 지켜 주시면 벧엘에 올라가서 예배를 드리겠다고 서원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이제 야곱은 벧엘에 올라가서 서원을 갚아야 합니다. 하지만 야곱은 벧엘로 올라가서 서원을 갚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그냥 세겜에 머물렀습니다. 그곳에서 밭사고 집 짓고 안주하고자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여러 사건을 통해서 야곱이 서원을 갚도록 하십니다.

 

(강간 사건의 책임)

 

1,2절을 보십시오. “레아가 야곱에게 낳은 딸 디나가 그 땅 여자를 보러 나갔더니 히위 족속 중 하몰의 아들 그 땅 추장 세겜이 그를 보고 끌어들여 강간하여 욕되게 하고

 

이때 야곱의 외동딸 디나는 17살이었습니다. 디나는 7살에 숙곳에 왔습니다. 숙곳에서 2년 머무르고 세겜에서 8년을 머물렀습니다. 꽃다운 17살의 나이가 되었습니다. 디나는 그 땅 여자를 보러 나갔습니다. 성경학자들에 의하면 디나는 세겜의 축제가 있었는데 축제 때 여자들과 사귀러 나갔다고 합니다. 아마 세겜 여자들처럼 야시시한 옷을 입고 나갔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히위 족속 하몰의 아들 그 땅 추장 세겜이 디나를 보고 끌어 들여 성폭행을 하였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우리는 이런 문제가 일어나면 여자에게 책임을 묻습니다. 그러나 일차적인 책임은 남자에게 있는 것입니다. 약자가 어디를 가다가 강도를 만났습니다. 강도에게 폭행을 당했습니다. 이때 일차적인 책임은 강도에게 있는 것이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성폭행은 성폭행을 한 사람에게 있는 것이지 당한 사람에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남자가 성욕을 이기지 못하여 성폭행을 한 것입니다. 성폭행은 여자에게 큰 상처를 주는 무서운 죄악입니다. 한 번의 성폭행으로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치게 됩니다. 톨스토이의 부활에 보면 네흘류도프 공작은 카츄샤를 성적으로 타락시킵니다. 이 사건을 통하여 카츄샤는 전 인생이 타락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은 자매들을 성적인 욕망을 충족하는 대상으로 대하기보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인격적으로 대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이런 경우 전적으로 남자의 책임으로 보기도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자매가 빨간 미니스커트를 입고 새벽 한 두시에 다닌다면 형제들을 유혹하는 것입니다. 자매들이 몸을 접촉하며 섹시한 춤을 추는 것도 성적인 충동을 유발합니다. 요즘 나이트클럽에서 유행하는 부비부비 춤은 죄악으로 가는 전단계입니다. 아니면 불필요한 신체적인 접촉을 하는 경우도 그렇습니다. 형제들은 이런 것에 본래 약하게 만들어졌으므로 자매들은 이런 신체적인 접촉을 피해야 합니다. 디나도 이런 면에서 책임을 조금은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디나는 축제 때 성적인 자극을 주는 옷을 입든지 행동을 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형제들이 정숙한 여인이나 거룩한 모습을 보고 성적인 충동에 사로잡히지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디나 사건의 더 근본적인 책임은 야곱에게 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도 서원을 갚지 않았습니다. 그는 벧엘로 가기보다 세겜에 머물렀습니다. 벧엘로 갔으면 이런 문제는 없었을 것입니다. 세겜은 북부 이스라엘의 중심입니다. 이곳은 북이스라엘이 사마리아로 수도를 옮기기 전의 수도였습니다. 이곳은 그리심 산과 에발 산의 중간으로 신약에 나오는 수가 땅입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을 만난 곳입니다. 이곳은 문화가 발달했습니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웠습니다. 자녀 교육시키기에 좋은 곳입니다. 반면에 벧엘은 아브라함이 거하였던 조금은 삭막한 곳이었습니다. 야곱은 이런 환경 조건 때문에 벧엘로 가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자녀들을 풍요로운 환경에서 교육시키기 위해서 현실에 안주하고 서원을 갚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영적 안일에 빠졌습니다. 죄는 이렇게 영적으로 안일한 곳에 발생합니다. 다윗이 사울왕에게 쫓겨 다닐 때는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통일 이스라엘 왕국을 이루었을 때 그는 늦잠을 잤습니다. 그리고 옥상을 거닐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목욕하는 밧세바를 보고 음욕에 사로 잡혀 간음죄를 짓습니다. 그 후 다윗은 밧세바의 남편을 살해했습니다. 그러자 다윗의 자녀들 간에 강간 사건이 일어나고 살인사건이 일어납니다. 나중에는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합니다. 이런 모든 원인이 영적인 안일에서 시작됩니다. 여기서 볼 때 영적인 안일이 얼마나 무서운지 일 수 있습니다.

 

(고난 받는 바울)

 

이런 면에서 보면 바울은 참으로 존경할 만한 인물입니다. 그는 충분히 무엇을 이루었다고 생각할 만한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는 순교당하는 직전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복음을 전하고자 몸부림쳤습니다. 그는 사단의 유혹에 넘어갈 틈이 없었습니다.

이삭도 축복의 때에 우물 파는 고난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이와같이 영적인 투쟁을 해야 합니다 저는 이년 전의 치욕을 잊을 수 없습니다. 이년을 이곳에서 성경공부한 민-아자매가 이-회가 교주인 신-지 이단에서 한 달 성경공부하고 그곳에 빠졌습니다. 그 후에 두 자매가 그 신-지 자매를 따라서 이곳을 떠났습니다. 저는 이것을 생각하면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성경 말씀의 중심인 이곳을 떠나서 다른 곳에서 성경을 공부하고 이단에 빠진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 밀려 왔습니다.

저는 이 문제로 분노를 했지만 이 문제를 내 책임으로 생각지 않았습니다. 그 자매의 문제요. 이단에 있는 악독한 무리들이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내 책임이 있다면 내가 시간 강사에서 전임강사로 학원에서 일을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본문 말씀을 공부하면서 이것이 나의 죄악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나는 월부팀 성불팀 은혜팀들의 성장을 보면서 복음의 능력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별로 수고한 것이 없는데도 하나님은 우리 모임을 크게 축복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다른 모임을 보니 열심히 하는데도 복음역사가 미미한 것 같았습니다. 이때 나는 전국 학생 목자 수양회의 특강 강사로, 대전 제자교회에서 초청 강사로 쓰임 받았습니다. 이는 나를 교만하고 안일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그해 여름방학 때는 특강 말씀을 나가지도 않고 그냥 학과 공부에만 전념하도록 하였습니다. 이런 때 한 자매가 이단에 빠져서 성경을 공부한 것입니다. 제가 이 시간 나의 영적인 안일에 빠졌던 교만을 깊이 회개합니다. 제가 다시는 이런 죄악에 빠지지 않기를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육적인 사랑은 거짓됨)

 

3,4 절을 보십시오. “그 마음이 깊이 야곱의 딸 디나에게 연련하며 그 소녀를 사랑하여 그의 마음을 말로 위로하고 그 아비 하몰에게 청하여 가로되 이 소녀를 내 아내로 얻게 하여주소서 하였더라

 

세겜은 그 마음이 깊이 디나를 사랑하였습니다. 그는 디나의 마음을 위로하였습니다. 그는 디나를 자기 집에 머물게 하고 아버지 하몰에게 청하여 디나를 아내로 삼고자 하였습니다. 범죄를 하고나서 책임을 지고자 하는 것은 그래도 잘한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진실하게 디나를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가 결혼 전에 성폭행을 한 것은 진실한 사랑이 아닙니다. 진실한 사랑은 오래 참는 사랑입니다. 결혼 때까지 참지 못하고 성행위를 하는 것은 진실한 사랑이 아닙니다. 상대방의 의사를 무시하고 강제로 성행위를 하는 것도 진실한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는 것입니다.

요즘 세겜 족장과 같은 사랑이 많습니다. 결혼할 사람은 성적인 행위를 해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이런 잘못된 사랑 때문에 많은 사람이 헤어지고 이혼합니다. 탈렌트 이찬 이민영이 결혼 이십 일만에 파경으로 닫고 있습니다. 이찬은 이민영을 사랑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찬은 이민영을 폭행을 해서 유산을 시켰습니다. 이것은 진실한 사랑이 아닙니다.

 

(그냥 지나가기를 원하는 야곱)

 

5-7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그 딸 디나를 그가 더럽혔다 함을 들었으나 자기 아들들이 들에서 목축하므로 그들의 돌아오기까지 잠잠하였고 세겜의 아비 하몰은 야곱에게 말하러 왔으며 야곱의 아들들은 들에서 이를 듣고 돌아와서 사람이 근심하고 심히 노하였으니 이는 세겜이 야곱의 딸을 강간하여 이스라엘에게 부끄러운 일 곧 행치 못할 일을 행하였음이더라

 

여기는 디나의 강간 사건에 대한 야곱과 아들들의 반응이 나옵니다. 야곱은 이 사건을 듣고 잠잠했습니다. 야곱은 이 문제가 확대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이 문제로 인하여 자신이 세겜에 사는데 장애를 받지 않고자 하였습니다. 그는 아직도 이 문제가 생긴 근본 원인을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왜 이 문제를 일으켰는지 몰랐습니다. 이 문제를 통하여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는 벧엘로 가고자 결단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영적으로 분별력을 상실했습니다.

반면에 아들들은 이 일에 대해서 근심하고 심히 분노하였습니다. 아들들은 젊고 순수했습니다. 동생이 강간을 당했을 때 동생의 장래를 생각하고 근심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또한 죄에 대해서 심히 분노하는 것도 당연한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인간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편에서 바라보고 심판을 하나님께 맡기고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합니다. 믿음으로 죄와 싸워야합니다.

 

(결혼하기를 원하는 하몰)

 

8-12절을 보십시오. “하몰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 아들 세겜이 마음으로 너희 딸을 연련하여 하니 원컨대 그를 세겜에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라. 너희가 우리와 통혼하여 너희 딸을 우리에게 주며 우리 딸을 너희가 취하고 너희가 우리와 함께 거하되 땅이 너희 앞에 있으니 여기 머물러 매매하며 여기서 기업을 얻으라. 하고 세겜도 디나의 아비와 남형들에게 이르되 나로 너희에게 은혜를 입게 하라. 너희가 내게 청구하는 것은 내가 수응하리니 이 소녀만 내게 주어 아내가 되게 하라. 아무리 큰 빙물과 예물을 청구할지라도 너희가 내게 말한대로 수응하리라.”

 

세겜과 그 아버지 하몰은 적극적으로 야곱에게 찾아와 디나와 결혼을 청하고 있습니다. 그는 세겜과 디나의 결혼으로 그치지 말고 세겜 부족과 야곱 부족이 함께 혼인하자고 하였습니다. 결혼만 허락해 준다면 땅을 주어서 농사하게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함께 매매하며 상업적인 교류를 하자고 하였습니다. 그는 어떤 예물을 청구하더라도 예물을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세겜은 사랑에 눈이 멀어 있습니다. 그들은 야곱의 족속에 큰 호의를 베푸는 것처럼 보입니다. 야곱의 입장에서는 큰 은혜를 받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보면 이들과 결혼하면 큰 위기입니다. 이스라엘이 혼혈족이 되고 혼합종교가 되는 상황입니다. 이스라엘은 거룩한 민족으로 순수성을 상실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정체성을 상실합니다. 하나님의 구속 역사에 쓰임 받을 수 없습니다. 야곱은 세겜에 머물지 않고 벧엘로 올라가야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라서 일어섰을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야곱은 또 묵묵부답입니다. 야곱은 그냥 세겜의 제안을 수용하고자 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또 다른 문제를 일으켜 야곱에게 말씀하십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야곱과 생각이 달랐습니다.

 

(거짓말하는 야곱의 아들들)

 

13-16절을 보십시오. “야곱의 아들들이 세겜과 그 아비 하몰에게 속여 대답하였으니 이는 세겜이 그 누이 디나를 더럽혔음이라. 야곱의 아들들이 그들에게 말하되 우리는 그리하지 못하겠노라. 할례 받지 아니한 사람에게 우리 누이를 줄 수 없노니 이는 우리의 수욕이 됨이니라. 그런즉 이같이 하면 너희에게 허락하리라. 만일 너희 중 남자가 다 할례를 받고 우리 같이 되면 우리 딸을 너희에게 주며 너희 딸을 우리가 취하며 너희가 함께 거하여 한 민족이 되려니와 너희가 만일 우리를 듣지 아니하고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우리는 곧 우리 딸을 데리고 가리라.”

 

야곱의 아들들은 세겜과 그 아비에게 거짓말로 말하였습니다. 그들이 할례를 하기만 하면 디나를 주고 그들과 결혼을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할례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언약을 마음 속에 새기기 위해서 하신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할례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할례 받은 백성으로서 긍지와 자부심이 대단했습니다. 이방인도 하나님을 영접하면 할례를 하면 이스라엘 민족으로 영접하였습니다. 그들은 이런 거룩한 할례를 이용하여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팔아서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마치 지금 예수 믿고 세례 받으라고 한 후에 예수 믿는 사람이 세례하려고, 물에 들어가자 사람을 죽이고자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죽이고 노략까지 하고자 하였습니다.

이는 십자군 전쟁을 연상케 합니다. 십자가군 전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전쟁이라는 명분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을 살육하고 약탈하였습니다. 그들은 성폭행하고 심지어 사람의 고기까지도 먹었다고 합니다. 교황은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서 자기 유익을 추구한 것입니다. 교회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서로 싸우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거룩한 명분은 있지만 실제는 거룩함이 전혀 없습니다. 이들은 마치 겉모습만 하나님의 사람이지 사실은 악마들입니다. 우리는 이런 죄악을 범치 않도록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된 세겜 사람들)

 

18-20절을 보십시오. "그들의 말을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이 좋게 여기므로 이 소년이 그 일 행하기를 지체하지 아니하였으니 그가 야곱의 딸을 사랑함이며 그는 그의 아버지 집에서 가장 존귀하였더라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이 그들의 성읍 문에 이르러 그들의 성읍 사람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이 사람들은 우리와 친목하고 이 땅은 넓어 그들을 용납할 만하니 그들이 여기서 거주하며 매매하게 하고 우리가 그들의 딸들을 아내로 데려오고 우리 딸들도 그들에게 주자 그러나 우리 중의 모든 남자가 그들이 할례를 받음 같이 할례를 받아야 그 사람들이 우리와 함께 거주하여 한 민족 되기를 허락할 것이라 그러면 그들의 가축과 재산과 그들의 모든 짐승이 우리의 소유가 되지 않겠느냐 다만 그들의 말대로 하자 그러면 그들이 우리와 함께 거주하리라 성문으로 출입하는 모든 자가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의 말을 듣고 성문으로 출입하는 그 모든 남자가 할례를 받으니라"

 

추장 하몰과 그 아들 세겜은 세겜 사람들에게 할례를 하자고 설득합니다. 세겜은 디나를 사랑하였고 세겜은 세겜 족속 가운데 존귀한 자였습니다. 그는 야곱 아들들의 요구대로 세겜 사람들에게 할례를 하고자 설득하였습니다. 세겜은 세겜 족속들이 할례를 하는 것이 그들에게 유익하다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의 후손과 결혼하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재산이 모두 세겜의 족속의 것이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세겜 사람들은 세겜의 말을 좋게 여겨서 모두 할례를 하였습니다. 그들이 할례를 했다는 것은 겉으로나마 그들이 하나님을 믿기로 결단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이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서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복수는 악순환을 만든다)

 

25-29절을 보십시오. “제 삼일에 미쳐 그들이 고통할 때에 야곱의 두 아들 디나의 오라비 시므온과 레위가 각기 칼을 가지고 가서 부지중에 성을 엄습하여 그 모든 남자를 죽이고 칼로 하몰과 그 아들 세겜을 죽이고 디나를 세겜의 집에서 데려 오고 야곱의 여러 아들이 그 시체 있는 성으로 가서 노략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그 누이를 더럽힌 연고라 그들이 양과 소와 나귀와 그 성에 있는 것과 들에 있는 것과 그 모든 재물을 빼앗으며 그 자녀와 아내들을 사로잡고 집 속의 물건을 다 노략한지라

 

세겜 사람들이 모두 할례를 하고 고통하고 있을 때에 야곱의 두 아들 시므온과 레위는 그들의 약점을 이용하여 세겜의 모든 남자를 죽였습니다. 자녀와 아내들을 포로로 잡아왔습니다. 다른 아들들은 가서 많은 재물을 노략하였습니다. 이들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의 모습이 아닙니다. 더구나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고 믿겠다는 자를 죽일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혈기로 제 정신을 잃었습니다. 그들은 아무 죄 없는 그 성 사람들을 하몰과 세겜과 함께 죽게 하였습니다. 재산까지 노략질하는 악한 본성을 드러냈습니다.

비록 상대방이 잘못했다고 하더라도 그 복수는 하나님의 백성이 해야 할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원수 갚는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수를 갚으라고 할 때만 갚아야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악을 악으로 갚다보면 우리는 더 악한 사람으로 전락합니다. 악이 악을 낳는 악순환이 일어납니다. 야곱의 아들들이 이렇게 복수하면 세겜 사람들이 다시 복수를 할 것입니다. 그러면 더 큰 희생을 또 치러야 합니다. 또한 그들은 불신자를 전도하여 교회로 오게 하고 죽이는 또 다른 죄를 범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라웠습니다. 야곱은 임종시에 이들의 죄악을 기억하고 시므온과 레위를 저주하였습니다.

미국은 9.11테러를 당하였습니다. 미국은 이에 대한 복수로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하고 이라크를 공격하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수많은 양민들이 죽음을 당하고 죄 없는 미군들이 죽음을 당하였습니다. 이는 또 하나의 죄악입니다.

 

(두려움에 빠진 야곱)

 

30,31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시므온과 레위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게 화를 끼쳐 나로 이 땅 사람 곧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에게 냄새를 내게 하였도다. 나는 수가 적은즉 그들이 모여 나를 치고 나를 죽이리니 그리하면 나와 내 집이 멸망하리라. 그들이 가로되 그가 우리 누이를 창녀같이 대우함이 가하니이까?”

 

야곱은 이 일 후에 세겜 사람들이 우리를 공격하면 나와 내 집이 망하겠다고 한 불평을 합니다. 그는 지독히 자기중심적인 자였습니다. 그는 이 한 말씀에서 라는 말을 일곱 번이나 사용합니다. 그는 이 일이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어떻게 욕되게 했는지는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슬퍼하시는지는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딸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하지 않습니다. 오직 자기 하나뿐입니다. 그는 자기라는 말만 반복합니다. 우리는 이런 야곱이 참으로 밉습니다.

그러나 그런 야곱의 모습에 대해서 돌을 던지지 못합니다. 그런 야곱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문제가 터지면 이것으로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생각하기보다 오직 나에게 유익이 무엇이고 손해가 무엇인지를 따집니다. 야곱은 아들들에게 너희들 때문에 망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마지막에 나의 집이라고 하여 나의 집을 강조합니다. 야곱은 얍복강에서 환도뼈가 부러졌지만 아직도 자기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야곱은 세겜 사람들을 통하여 하나님 중심의 사람으로 변화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믿음의 조상이 되려면 이런 이기적인 모습을 벗어나 하나님 중심의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하나님보다 더 아들을 사랑하는 것으로 인한 고통)

 

31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이르되 그가 우리 누이를 창녀같이 대우함이 옳으니이까?”

 

야곱의 말에 대해서 야곱의 아들들은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누이를 창녀에게 대하는 것이 가하냐고 따집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정당한 복수처럼 생각했습니다. 야곱은 아들들을 위해서 벧엘로 이사를 가지 않았는데 오히려 아들들을 통하여 큰 아픔을 당합니다. 우리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 때문에 반드시 고통을 받는 날이 옵니다. 이제 가정의 질서도 다 깨어져 버렸습니다. 그러면서도 야곱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벧엘로 올라가라고 하신 하나님)

 

그러자 하나님이 친히 나타나셔서 방향을 주셨습니다. 창세기 35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지금 야곱은 숙곳에서 집을 짓고 양우리를 짓고 안주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간음과 살인과 약탈 사건에 대해서 하나도 언급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야곱에게 벧엘로 올라가서 단을 쌓으라고 하셨습니다. 이 문제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순종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드린 서원을 기억하고 갚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가 많은 문제에서 벗어나는 길은 문제의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문제 속에 있는 하나님의 뜻을 찾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자기 중심을 회개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이사무엘 선교사님은 한국에서 수제자라고 하는 분들이 불신에 빠져서 유비에프를 나가자 크게 낙심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일을 통하여 한국에 터 박고 있으면서 세계선교 명령에 순종하지 않은 것을 회개하시고 미국에 선교사로 나가셨습니다. 그때 한국 역사도 거의 세 배 가까이 성장하였고 미국도 크게 하나님의 역사가 있고 세계선교도 힘 있게 이루어졌습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도전해야함)

 

사도행전에 보면 스데반이 순교당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많은 신자들이 핍박을 받아 고향을 떠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런 위기의 순간에 그들은 세계선교하라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순종하였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통하여 놀라운 이적을 베풀어주시고 세계선교를 이루어 주셨습니다.

사도바울은 에베소서 510절에 보면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우리가 끊임없이 주님의 뜻을 찾고 시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살아 있는 신앙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합니다. 그때 죄가 우리를 시험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난 한 해 이런 시도를 하도록 하셨습니다. 우리는 작년에 미국 la어학연수를 시도하였고 여름 수양회에서 영화를 찍는 것을 시도하였습니다. 하진 목자님은 믿음으로 어학에 도전하여 미국으로 나아갔습니다. 홍성훈 양순 선교사는 믿음으로 순종하여 중국에 갔고 소망 목자님은 믿음으로 인턴 목자가 되었습니다. 봄에는 써바이벌 게임을 하는 엠티를 갔고 겨울에는 스키에 도전을 하였습니다. 다른 지구와 믿음의 결혼에 도전하였습니다. 오은혜는 새로운 학교에 도전을 하였습니다. 사모들은 학교 도시락 싸가기에 도전을 하였습니다. 아무도 없는 것 같은 때에 방학 말씀공부에 도전하였고 잘 아는 팀을 남게 하셨습니다. 캠퍼스 일대일에 도전을 하였습니다. 엊그제는 봉사활동을 오순절 요회 중심으로 다녀왔습니다. 아산의 서 목자님은 이런 학생회 도전하는 역사에 좋은 본을 보여 주었습니다. 한 제임스 선교사님은 비엔나 개척에 도전하여 그라츠에서 비엔나로 이사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도전을 기쁘게 받으십니다. 2007년도 여름 어학연수 그리고 미국의 개척역사에 도전하기를 기도합니다.

 

(말씀으로 돌아가라)

 

또한 벧엘로 올라가라는 말씀은 말씀으로 돌아가라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에게 돌아가고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으로 돌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십자가의 복음, 은혜의 복음으로 돌아가야합니다. 이사무엘 선교사님은 유언으로 성경으로 돌아가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이 오늘 나에게 주시는 방향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적극 순종해야 합니다. 그때 우리 가운데 모든 문제는 순적히 해결될 것입니다. 아멘!

창세기 34장 강해 벧엘로 올라가라

말씀 창세기 341- 창세기 3431

요절 창세기 351절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창세기 34장 강해 끝입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42 [창세기] 창세기 40장 강해 죄인들의 목자 요셉 오요한 2008-01-12
41 [창세기] 창세기 39장 강해 요셉과 보디발의 아내 오요한 2008-01-12
40 [창세기] 창세기 38장 강해 유다와 다말 오요한 2008-01-11
39 [창세기] 창세기 37장 강해 꿈꾸는 요셉 오요한 2007-11-15
38 [창세기] 창세기 35장,36장 강해 전능한 하나님 오요한 2007-02-04
37 [창세기] 창세기 34장 강해 벧엘로 올라가라 오요한 2007-01-28
36 [창세기] 창세기 33장 강해 야곱과 에서의 화해 오요한 2007-01-21
35 [창세기] 창세기 32장 강해 2부 네이름이 무엇이냐 오요한 2006-12-17
34 [창세기] 창세기 32장 강해 1부 두렵고 답답할 때 오요한 2006-11-25
33 [창세기] 창세기 31장 강해 2부 증거의 돌무더기 오요한 2006-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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