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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창세기 37장 강해 꿈꾸는 요셉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7-11-15 00:00:00
조회수 : 4,149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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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7장 강해 꿈꾸는 요셉
말씀 창세기 37장 1-창세기 37장 36
요절 창세기 37장 19절 서로 이르되 꿈 꾸는 자가 오는도다

오늘 말씀에 6번 반복되어 나오는 단어가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예, 꿈이라는 단어입니다. 요셉은 꿈꾸는 사람이었습니다. 건국대 총장을 지낸 류태영 박사의 책 중에서 ‘꿈과 믿음이 미래를 결정한다’는 책이 있습니다. 류박사는 이 책에서 꿈이란 엄마가 어린 아기를 잉태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기를 잉태하고 열 달의 때가 되면 아기가 태어나듯이 우리가 꿈을 꾸며 믿음으로 살 때 하나님의 때가 되면 꿈을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저는 꿈하면 2002년 월드컵이 생각납니다. 우리나라는 한번도 16강에 올라본 가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해 부활절 기독교 연합예배에서 하나님은 김장환 목사님을 통하여 4강의 꿈을 꾸게 하셨습니다. 그분은 한국이 4강에 진입하도록 기도하자고 방향을 잡았고 이를 위해서 열렬히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꿈대로 우리나라가 4강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그때 나온 말이 ‘꿈☆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꿈은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뿐 아니라 우리의 생명을 좌우하는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 머무른 야곱)

1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가나안 땅 곧 그의 아버지가 거류하던 땅에 거주하였으니”

야곱은 가나안 땅에 온 지 11년이고 나이는 108세였습니다. 야곱은 아버지 이삭이 거주하는 땅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습니다. 야곱이 가나안 땅에 사는 것이 당연한 것 같으나 야곱의 일생을 아는 사람이 본다면 그렇게 당연하지 않습니다. 그가 가나안땅에 살았다는 것은 감격적인 말입니다. 야곱은 본래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습니다. 그런데 형 에서가 죽이고자 하여 메소포타미아 지방으로 피난을 갔습니다. 그곳에서 결혼하고 자녀 낳고 20년이 지나자 눌러 앉으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다시 가나안 땅 벧엘로 돌아가라고 하셨습니다. 야곱이 가나안 땅에 돌아오고자 하였을 때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무엇보다 장인 라반이 반대하여 아내와 자식들을 보내지 않고자 하였습니다. 또한 가나안에는 에서가 400명의 군대를 거느리고 야곱을 죽이고자 나아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 야곱을 보호해 주셨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도 숙곳에서 2년 세겜에서 8년을 머물며 가나안 땅으로 오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야곱에게 딸 디나의 강간 사건을 통하여 가나안 땅에 오게 하였습니다. 드디어 야곱은 벧엘에서 서원을 갚고 가나안 땅에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올곧으나 내면성이 없는 요셉)

2절을 보십시오. “야곱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요셉이 십칠 세의 소년으로서 그의 형들과 함께 양을 칠 때에 그의 아버지의 아내들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과 더불어 함께 있었더니 그가 그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하더라”

요셉이 형들에게 미움을 받게 되는 첫 번째 이유가 나옵니다. 요셉은 네 명의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요셉의 아버지 야곱은 네 명의 아내를 얻었습니다. 요셉은 야곱의 네 명의 아내 중에서 둘째 아내인 라헬이 나은 첫째 아들이었습니다. 전체 아들로 따지면 열한 번째 아들이었습니다. 요셉의 어머니 라헬은 요셉의 동생 베냐민을 낳다가 죽음을 당했습니다. 요셉은 세 명의 배다른 어머니와 10명의 배다른 형들 밑에서 자랐습니다. 요셉의 가정은 도표를 그려서 설명해야 이해될 정도로 복잡합니다.
야곱의 아내 중에는 레아와 라헬의 시종인 빌하와 실바가 있습니다. 빌하의 아들로 단과 납달리가 있습니다. 실바의 아들로는 갓과 아셀이 있습니다. 레아의 아들에는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잇사갈 스불론이 있습니다. 레아의 아들들은 요셉을 소외시킨 것 같습니다. 그들은 요셉과 놀지않고 실바와 빌하의 아들과 놀았습니다.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은 종들의 아들이어서 그런지 행실이 좋지 못했습니다. 아버지의 양들을 몰래 팔아먹기도 하고 양들을 돌본다고 가서 겜만 하며 놀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요셉은 이들의 과실을 아버지에게 일러바쳤습니다. 요셉은 진실하고 올곧은 소년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과실을 덮어줄 줄 아는 내면성은 없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형들의 시기를 받았습니다.

(야곱의 사랑을 듬뿍 받은 요셉)

3,4절을 보십시오.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므로 그를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 그의 형들이 아버지가 형들보다 그를 더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

형들이 요셉을 시기하는 또 다른 이유가 나옵니다. 야곱은 노년에 요셉을 얻었기 때문에 다른 아들들보다 요셉을 더 사랑하였습니다. 노년에 얻은 아들이요 막내라 더 사랑이 가는 것 같습니다. 저도 오 형제중 막내로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사랑을 많이 받으며 자랐습니다. 더구나 요셉은 야곱이 사랑하는 아내 라헬의 소생이므로 더욱 사랑하였습니다. 야곱은 친 어머니가 없는 요셉을 동정하여 더 사랑했는지도 모릅니다. 야곱은 사랑을 속으로만 하지 않았습니다. 구체적으로 채색 옷을 해 입혀서 사랑을 표현하였습니다. 그 옷은 무지개 빛 찬란한 옷이었습니다. 당시는 염색술이 발달하지 않아서 이런 채색 옷은 귀한 사람만 입는 옷입니다. 채색옷은 상속자를 상징하는 옷입니다. 요셉의 옷은 여러 형제들 가운데 유독 눈에 띄었습니다. 야곱은 사랑의 표시로 요셉에게는 일도 시키지 않았습니다. 여튼 요셉이 아버지의 사랑을 풍성히 받으며 그의 내면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높은 자긍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야곱의 경외하는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영접하였습니다.
형들은 요셉이 아버지로부터 특별히 더욱 사랑을 받는 것을 보고 시기심이 생겼습니다. 형들은 요셉에게 대하는 말 한마디라도 부드럽지 못했습니다. 가시돋힌 말을 하였습니다. 아예 상대를 하지 않아 왕따를 시켰습니다. 이런 시기심은 어머니 레아에게서 시작된 것입니다. 레아는 믿음으로 시기심을 극복하였지만 아들들은 시기심을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꿈을 꾼 요셉)

5-8절을 보십시오.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말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그의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의 꿈과 그의 말로 말미암아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여기에는 요셉이 시기를 받은 세번째 이유가 나옵니다. 요셉이 두 가지 꿈을 꾸었습니다. 요셉은 꿈을 꾸고 형들에게 말을 하여 더욱 미움을 당하였습니다. 첫번째 꿈은 이렇습니다. 요셉이 밭에서 형들과 곡식단을 묶을 때였습니다. 요셉의 단이 일어서자 형들이 단이 요셉의 단을 둘러싸고 절하였습니다. 요셉이 왕이 되고 지도자가 되는 꿈이었습니다. 요셉은 지도자가 되지만 형들은 부하가 되는 꿈이므로 형들은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형들은 이 꿈으로 더욱 요셉을 미워하였습니다.

(거듭하여 지도자 꿈을 꾸는 요셉)

9-11절을 보십시오.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그가 그의 꿈을 아버지와 형들에게 말하매 아버지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네가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그의 형들은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

요셉은 꿈을 꾼 후에 다시 꿈을 꾸었습니다. 두 번째 꿈에는 요셉 주위에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둘러서서 요셉을 향하여 절하였습니다. 해는 아버지고 달은 어머니고 열한 별은 형과 동생 베나민이었습니다. 요셉은 형들과 아버지의 지도자가 되는 꿈을 꾸었습니다. 요셉은 두 번에 걸쳐 꿈을 꿀 정도로 꿈이 아주 분명하였습니다. 형들은 요셉의 꿈 이야기를 듣고 형들은 요셉을 더욱 시기하였습니다. 형들은 매우 자기중심적입니다. 그들이 적어도 가문 중심만 되어도 그들은 오히려 요셉의 꿈을 기뻐할 수 있습니다. 가족 가운데 지도자가 나오는 것을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요셉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을 사랑한다면 요셉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요, 요셉의 영광이 나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버지 야곱은 자녀들과 달랐습니다.

(요셉의 꿈을 간직한 야곱)

아버지 야곱은 자신이 절하는 꿈이므로 자신을 무시한다고 요셉을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이 꿈을 마음에 두었습니다. 야곱은 자신도 어려서 꿈을 통해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야곱은 고향을 떠나 메소포다미아 지방으로 갈 때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 사다리가 하늘까지 닿고 그 곳에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하는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야곱은 꿈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복의 근원 삼으시고 가나안 땅을 주시며 많은 영적 자녀를 주신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 모든 약속을 이루기까지 하나님이 보호해 주신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야곱은 꿈에서 만난 하나님께 서원 기도를 하였고 그의 삶은 꿈이 성취되는 삶이었습니다. 야곱은 자신에게 꿈을 주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요셉이 말한 꿈을 마음에 간직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꿈)

요셉의 일생도 한마디로 말하면 꿈을 꾸고 꿈이 이루어지는 삶입니다. 요셉의 꿈은 인간적인 야망에서 오는 개꿈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미래에 이루어질 예언적인 꿈이었습니다. 요셉이 꿈을 꾸었다고 말하기보다는 하나님이 요셉에게 꿈을 주셨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습니다. 두 번의 꿈을 주신 것은 그 꿈을 반드시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뒤에 보면 바로는 요셉에게 성령 충만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요셉은 아버지 야곱의 믿음을 배웠습니다. 성령 충만하였습니다. 성령 충만하자 꿈을 꾸었습니다.
요엘서에 보면 말세에 성령을 모든 육체에게 부어주리니 어린이는 예언을 하고 젊은이는 환상을 보고 늙은이는 꿈을 꾸고 남종과 여종은 예언을 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마음 속에 거하시는 성령님은 우리에게 소원을 두고 일하십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꿈을 주십니다. 미래에 대해서 강한 영적 소원을 주십니다.
또한 하나님 자신이 꿈꾸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에덴동산부터 하나님 나라의 꿈을 꾸셨습니다. 인간이 죄를 지은 후에도 하나님은 이 꿈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마침내는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그 꿈을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미래에 꿈을 꾸시고 사랑하는 자들에게 꿈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아브라함을 통하여 큰 민족을 이루고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을 것이라는 꿈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꿈을 아브라함의 무의식 가운데라도 새기기 위해서 하늘의 뭇별을 보여주셨습니다. 이름도 열국의 아비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하루에 적어도 열 번 이상은 아브라함을 열국의 아비로 불렀을 것입니다. 그러면 적어도 아브라함은 하루에 열 번 이상은 사람들이 말하는 꿈을 들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양피에 할례를 하게 하여서 꿈을 살에 새겨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주시는 이런 꿈을 꾸었고 하나님은 꿈대로 이루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대한 꿈을 꾸게 하셨습니다. 이 꿈을 노예살이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심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대해서 꿈을 꾸었을 때 하나님은 그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해주셨습니다.

(십자가를 보면서 꾸는 꿈)

여러분은 미래에 대해서 생각하시면 어떤 꿈이 떠오릅니까? 아름다운 미래의 모습이 떠오릅니까? 아니면 어둡고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릅니까? 여러분이 잠을 자면 악몽에 시달립니까? 아니면 꿈속에서 아름다운이 이미지로 가득차 있습니다. 꿈속에서 향기가 납니까? 아니면 악취가 납니까? 꿈 속에서 아름다운 음악이 들립니까? 아니면 소음이 들립니까? 아마 많은 사람이 악몽에 시달리는 줄로 압니다. 이런 사람은 절망적인 사람입니다. 이들의 미래는 꿈대로 어둡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악몽을 없애고 밝고 아름다운 꿈을 꿀 수 있을까요? 우리가 십자가를 바라보아야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저주를 청산하셨습니다. 죄의 값을 다 갚으셨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볼 때 우리는 어두운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부활하시고 승리하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아름다운 꿈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밝고 영롱하고 아름다운 꿈을 꿀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꿈을 꿀 수 있습니다. 사랑과 공평이 강물처럼 흐르는 하나님 나라의 꿈을 꾸어야합니다. 세계만민을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꿈을 꾸어야합니다.

(꿈꾸는 자 요셉)

뒤에 형들은 요셉이 오는 것을 보고 꿈꾸는 자가 온다고 말합니다. 이를 볼 때 요셉을 별명은 꿈꾸는 자였습니다. 우리는 꿈을 반복해서 꾸어야 합니다. 우리는 시시때때로 꿈을 주위 사람들에게 이야기해야 합니다. 꿈은 적극적으로 선전해야 합니다. 이곳저곳에 꿈을 써놓아야 합니다. 우리가 순대 개척을 꿈꾸면 순대국밥을 먹었습니다. 순대개척의 꿈을 꾸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꿈 꾸는 것을 적극적으로 행해야 합니다. 우리가 러시아 개척을 기도할 때 많은 사람이 러시아 댄싱을 추었습니다. 러시아 말로 인사를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 꿈을 이루어주셨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꿈을 꾸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누구에게 꿈을 주실까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고 꿈을 주십니다. 요셉은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었습니다. 요셉은 어머니를 여의고 하나님을 어머니처럼 사랑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자신을 사랑하는 자에게 꿈을 주십니다. 우리도 이처럼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꿀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이사무엘 선교사님과 그리고 배사라 선교사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꿈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나이아가라 수양회의 꿈을 주시고 모스크바 수양회의 꿈을 주시고 그 꿈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배사라 선교사님을 통하여 십만 선교사의 꿈을 주셨습니다. 우리 천안 유비에프는 오천 명 선교사 파송과 백개지부 개척과 성경 66권 강해서를 쓰고자 꿈꾸었고 성경 66권 강해서 꿈을 이루었습니다. 이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 칼라링도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하는 천안 ubf로 바꾸었습니다. 계단에도 하나님 나라의 꿈을 붙여놓았습니다. 우리는 십만 선교사 파송과 성경 66권 강해서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가득히 임하는 꿈을 꾸어야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꿈을 달라고 기도합시다. 꿈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미리 걱정하지 말고 꿈을 꿉시다. 구체적으로 이미지를 가지고 꿈을 꿉시다. 그 꿈을 위해서 열렬하게 기도합시다. 더 나아가 우리는 2041년까지의 오천 선교사를 파송하는 꿈을 꿉시다. 하나님이 우리의 꿈을 이루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충성스러운 요셉)

12-14절을 보십시오. “그의 형들이 세겜에 가서 아버지의 양 떼를 칠 때에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 형들이 세겜에서 양을 치지 아니하느냐 너를 그들에게로 보내리라 요셉이 아버지에게 대답하되 내가 그리하겠나이다 이스라엘이 그에게 이르되 가서 네 형들과 양 떼가 다 잘 있는지를 보고 돌아와 내게 말하라 하고 그를 헤브론 골짜기에서 보내니 그가 세겜으로 가니라”

요셉이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형들을 만나러 갑니다. 형들이 세겜에서 양을 치고 있을 때에 요셉은 집에 있었습니다. 야곱은 요셉을 더욱 사랑하여 일도 시키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집에 있는 요셉을 형들에게 보내서 형들의 안부를 물어오도록 하였습니다. 세겜까지는 70킬로입니다. 먼 거리지만 요셉은 예! 하고 순종을 하였습니다. 요셉은 예스 맨이었습니다.

(끝까지 충성하는 요셉)

15-17절을 보십시오. “어떤 사람이 그를 만난즉 그가 들에서 방황하는지라 그 사람이 그에게 물어 이르되 네가 무엇을 찾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내 형들을 찾으오니 청하건대 그들이 양치는 곳을 내게 가르쳐 주소서 그 사람이 이르되 그들이 여기서 떠났느니라 내가 그들의 말을 들으니 도단으로 가자 하더라 하니라 요셉이 그의 형들의 뒤를 따라 가서 도단에서 그들을 만나니라”

요셉이 순종하여 세겜에 갔을 때 형들은 그곳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대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형들을 걱정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았기 때문에 아버지의 마음에 동참하여 어떻게 해서든지 형들을 찾고자 방황하였습니다. 요셉은 충성스러운 사람이었습니다.
요셉이 방황하자 어떤 사람이 요셉에게 형들은 도단으로 갔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세겜에서 도단까지는 또 30킬로미터입니다. 천안에서 청주 톨게이트까지 거리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충성스럽게 도단까지 형을 찾아갔습니다. 요셉은 아버지 야곱을 신뢰하고 아버지 마음을 알고 아버지에게 마음으로 순종을 하였습니다. 심부름을 시켜 보면 사람의 충성심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작은 일에 충성하는 요셉을 나중에 큰일인 이집트 총리로 쓰십니다.

(꿈을 훼방하는 자들)

18-20절을 보십시오. “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서로 이르되 꿈 꾸는 자가 오는도다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

요셉의 형들은 요셉이 채색 옷을 입은 것을 보니 화가 났습니다. 요셉을 보니 요셉의 꿈이 생각났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꿈을 이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요셉을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사단은 꿈을 이루어지지 않게 방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방해를 통하여 꿈을 이루십니다.
요셉에게 꿈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요셉의 꿈이 이루어지지 못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도전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시기심에 사로 잡혔습니다. 형들은 악한 자들입니다. 요셉이 꿈을 꾸었다면 그들도 배워서 자신들에게 주시는 꿈을 꾸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꿈을 달라고 기도해야합니다. 요셉의 꿈에 기초하여 자신도 새롭게 꿈을 가져야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꿈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 무엇에 쓰실 것인가 꿈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부르심의 소망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교회의 반석으로 꿈을 주셨고, 바울은 이방인 전도의 꿈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실 때 선한 일을 위하여 부르셨습니다. 우리는 누구든지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발견하고 우리도 꿈꾸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꿈을 시기해서는 안 됩니다.

(구덩이에 들어간 요셉)

21-24절을 보십시오. “르우벤이 듣고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려 하여 이르되 우리가 그의 생명은 해치지 말자 르우벤이 또 그들에게 이르되 피를 흘리지 말라 그를 광야 그 구덩이에 던지고 손을 그에게 대지 말라 하니 이는 그가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출하여 그의 아버지에게로 돌려보내려 함이었더라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매 그의 형들이 요셉의 옷 곧 그가 입은 채색옷을 벗기고 그를 잡아 구덩이에 던지니 그 구덩이는 빈 것이라 그 속에 물이 없었더라"

맏형인 르우벤은 책임감에서 요셉을 죽이고자하지 않았습니다. 잠시 물없는 구덩이에 넣어서 혼내켜 주고 구원하고자 하였습니다. 르우벤은 요셉을 잃었을 때 고통하실 아버지의 마음을 생각하였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르우벤의 말을 듣고 요셉의 채색옷을 벗기고 구덩이에 던졌습니다. 그들은 아버지가 채색 옷을 입히는 것에 대해서 화가 났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울면서 애원했습니다. 형들은 요셉의 애원을 외면하고 요셉을 구덩이에 던졌습니다. 요셉은 구덩이 속에서 추위와 배고픔에 떨었습니다.

(요셉을 판 형들)

25-28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앉아 음식을 먹다가 눈을 들어 본즉 한 무리의 이스마엘 사람들이 길르앗에서 오는데 그 낙타들에 향품과 유향과 몰약을 싣고 애굽으로 내려가는지라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덮어둔들 무엇이 유익할까 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고 그에게 우리 손을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혈육이니라 하매 그의 형제들이 청종하였더라 그 때에 미디안 사람 상인들이 지나가고 있는지라 형들이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올리고 은 이십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매 그 상인들이 요셉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

르우벤이 잠시 다른 곳에 간 사이에 그곳에 이스마엘 사람들이 향품과 유향과 몰약을 싣고 이집트로 가고 있었습니다. 유다는 이 순간에 자신의 이익을 생각했습니다. 그는 차라리 죽이느니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아서 이익을 얻고자 하였습니다. 형제들은 유다의 말을 들었습니다. 유다는 리더의 위치에 있었습니다. 형들은 요셉을 구덩이에서 꺼내어 은 이십에 팔았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제발 살려달라고 애걸하였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호소하였습니다. 그러나 시기심에 사로잡힌 형들은 요셉을 아랑곳하지 않고 팔아버렸습니다. 그들은 인신매매자가 되었습니다. 신명기에는 인신매매한 자는 죽이라고 나옵니다. 그들은 요셉을 팔고는 평생 죄의식에 시달립니다.

(아버지에게 거짓말하는 아들들)

29-32절을 보십시오. “르우벤이 돌아와 구덩이에 이르러 본즉 거기 요셉이 없는지라 옷을 찢고 아우들에게로 되돌아와서 이르되 아이가 없도다 나는 어디로 갈까 그들이 요셉의 옷을 가져다가 숫염소를 죽여 그 옷을 피에 적시고 그의 채색옷을 보내어 그의 아버지에게로 가지고 가서 이르기를 우리가 이것을 발견하였으니 아버지 아들의 옷인가 보소서 하매”

르우벤이 돌아와보니 요셉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르우벤은 옷을 찢고 아이가 없는 것을 슬퍼하였습니다. 르우벤은 맏형으로서 책임감이 있었습니다. 형들은 요셉의 옷을 취하여 숫염소를 죽여 피를 묻혔습니다. 사자나 이리 늑대와 같은 악한 짐승이 잡아 먹었다고 거짓말하였습니다. 그들은 아버지의 아픈 마음을 공감할 줄 몰랐습니다. 야곱은 염소로 아버지 이삭을 속였는데 이제는 아들들에게 염소로 속임을 당하였습니다.

(위로할 수 없는 야곱의 슬픔)

33-35절을 보십시오. “아버지가 그것을 알아보고 이르되 내 아들의 옷이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 먹었도다 요셉이 분명히 찢겼도다 하고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그의 아들을 위하여 애통하니 그의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그가 그 위로를 받지 아니하여 이르되 내가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 아들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의 아버지가 그를 위하여 울었더라”

야곱은 이 소식을 듣고 옷을 찢으며 굵은 베로 허리를 동이며 슬퍼하였습니다. 야곱은 사랑하는 아내 라헬을 잃고 슬퍼하였는데 이제 사랑하는 요셉을 잃고 슬픔에 빠졌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의지하고 소망을 두는 것은 다시 상처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모든 자녀가 야곱을 위로하였지만 위로가 되지 못하였습니다. 차라리 죽어서 야곱은 요셉에게로 가고자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요셉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게 하셨습니다. 하나님만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노예가 된 요셉)

36절을 보십시오. “그 미디안 사람들은 그를 애굽에서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보디발에게 팔았더라.”

미디안 사람들은 요셉을 노예시장에서 팔았습니다. 요셉은 애굽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팔리게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서 요셉의 꿈은 개꿈으로 끝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간 것을 꿈을 이루기 위한 시작으로 바꾸어주셨습니다. 악을 선으로 바꾸어주셨습니다. 꿈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집을 떠나야 합니다. 더 넓은 세계로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요셉에게 꿈을 이루시기 위해서 더 넓은 세계로 인도하였습니다. 꿈을 이루는데 필요한 사람으로 키우셨습니다. 광야에서 철저히 훈련시키기 시작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를 배웁니다.

(야곱의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

우리는 야곱의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의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은 요셉을 사랑하여 채색옷을 입히고 맛있는 것 먹이고 일을 시키지 않았습니다. 이런 사랑은 요셉이 시기를 받게 하고 나약하게 만들었습니다. 시기심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항상 잘해주는 것은 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요셉을 사랑하여 노예가 되게 하셨습니다. 노예가 되어 약자를 이해하고 섬기는 자로 훈련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고난을 주십니다. 고난을 통하여 순수한 믿음을 심으십니다.

(꿈을 이루는데 필수적인 고난)

우리가 꿈을 이루는 데는 고난이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꿈에서 멀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는 꿈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요셉은 고난이 꿈으로 가는 꼬투리로 생각했습니다. 꿈이 클수록 고난은 큽니다. 군대에서 특수부대일수록 고난이 큰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이스라엘 왕으로 꿈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사랑하여 다윗에게 꿈을 이루기 위한 고난을 주셨습니다. 사울에게 쫓기는 훈련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사랑하여 이스라엘의 출애굽에 대한 꿈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꿈을 이루어 주시기 위해서 모세에게 40년 광야 훈련을 시키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꿈을 꾸시고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꿈을 주시고 고난도 주십니다. 우리가 꿈을 꾼다면 고난을 받을 각오를 해야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꿈이 있다면 새벽기도하는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말씀의 종으로 꿈이 있다면 일용할 양식을 쓰고 기도하는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고자 하는 꿈이 있다면 순종하는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꿈을 이루어 주실 줄을 믿습니다. 말씀을 사랑하는 고난을 받아야합니다.

(고난의 떡을 먹고 자라는 꿈)

결론적으로 요셉은 꿈이 있었기 때문에 고난이 왔습니다. 꿈은 고난의 떡을 먹고 자랍니다. 꿈이 있었기 때문에 현실의 고난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꿈이 있었기 때문에 유혹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꿈이 없는 자는 죽은 자입니다. 꿈이 우리의 미래를 인도하는 나침반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성령이 주시는 원대한 꿈을 꿀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온 세계에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는 꿈을 꿀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창세기 37장 강해 꿈꾸는 요셉
말씀 창세기 37장 1-창세기 37장 36
요절 창세기 37장 19절 서로 이르되 꿈 꾸는 자가 오는도다
창세기 37장 강해 끝입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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