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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창세기 29장 강해 야곱의 사랑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6-10-15 00:00:00
조회수 : 4,293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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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9장 강해 야곱의 사랑

말씀 창세기 291-창세기 2935

요절 창세기 2918 야곱이 라헬을 더 사랑하므로 대답하되 내가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에게 칠 년을 섬기리이다

 

우리의 인생은 나그네 길입니다. 나그네 와 같은 인생 살기 힘드시죠? 그럴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염려와 불안 가운데 지내고 있습니다. 자신의 건강 문제, 직장 문제, 가정 문제, 취업 문제, 그리고 여기에 요즘 북핵 문제에 중간고사까지 겹쳐서 살기 힘이 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삶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비결이 있습니다.

야곱은 처가살이요. 나그네의 삶이요. 양치는 생활 칠년을 수일같이 지냅니다. 그가 라헬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면 우리 시간은 너무나 달콤하게 잘 갑니다. 우리가 주님에 대한 사랑을 회복하고 이 세상의 나그네 같은 삶을 수일같이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란에 도착함)

 

1-3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길을 떠나 동방 사람의 땅에 이르러 본즉 들에 우물이 있고 그 곁에 양 세 떼가 누워 있으니 이는 목자들이 그 우물에서 양 떼에게 물을 먹임이라 큰 돌로 우물 아귀를 덮었다가 모든 떼가 모이면 그들이 우물 아귀에서 돌을 옮기고 그 양 떼에게 물을 먹이고는 우물 아귀 그 자리에 다시 그 돌을 덮더라

 

야곱은 가나안 땅에서 무려 800킬로미터를 걸어서 하란에 도착하게 됩니다. 아마 십여 일은 족히 걸렸을 것입니다. 그곳에는 우물이 있고 양 세 떼가 누워 있었습니다. 이 우물은 공동으로 사용하는 우물이었습니다. 평상시에는 우물 아구를 큰 돌로 덮었다가 모든 양들이 모이면 돌을 옮기고 양들에게 물을 함께 먹였습니다. 양들이 물을 다 먹으면 다시 덮개로 우물을 덮어서 우물에 먼지나 오물이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외삼촌의 소식을 들음)

 

4-6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 형제여 어디서 왔느냐 그들이 이르되 하란에서 왔노라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홀의 손자 라반을 아느냐 그들이 이르되 아노라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그가 평안하냐 이르되 평안하니라 그의 딸 라헬이 지금 양을 몰고 오느니라

 

야곱은 우물 곁에 있는 목자들이 외삼촌이 사는 하란에서 온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을 통해 외삼촌 라반이 평안히 잘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외사촌인 라헬이 오고 있다는 것도 압니다. 이를 알고 난 야곱은 하란의 목자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합니다.

 

(야곱의 노동관)

 

7-9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이르되 해가 아직 높은즉 가축 모일 때가 아니니 양에게 물을 먹이고 가서 풀을 뜯게 하라 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그리하지 못하겠노라 떼가 다 모이고 목자들이 우물 아귀에서 돌을 옮겨야 우리가 양에게 물을 먹이느니라 야곱이 그들과 말하는 동안에 라헬이 그의 아버지의 양과 함께 오니 그가 그의 양들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더라

 

야곱은 아직 해가 지려면 멀었으니 물을 먹이고 가서 다시 양을 뜯기라고 합니다. 사실 야곱은 이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처지가 아닙니다. 오지랖이 넓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야곱이 이들에게 이런 제안을 한 것을 보면 야곱의 노동관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해가 떴을 때는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의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야곱은 스스로 열심히 일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열심히 일하도록 도왔습니다. 해가 떠 있는 동안은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입니다.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에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특히 젊었을 때에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일을 하여야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목자들은 모든 양들이 다 집단으로 모여야 물을 먹일 수 있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모두가 다 함께 물을 먹여야하는데 약속이 안 되어 우리만 물을 먹이고 풀을 뜯길 수 없다고 합니다. 야곱이 하란의 목자들과 대화하고 있는 동안에 라헬이 그 아비의 양들과 함께 왔습니다. 이때 야곱은 무엇을 하였습니까?

 

(사랑보다 일을 앞세운 야곱)

 

10,11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그 외삼촌 라반의 딸 라헬과 그 외삼촌의 양을 보고 나아가서 우물 아구에서 돌을 옮기고 외삼촌 라반의 양떼에게 물을 먹이고 그가 라헬에게 입 맞추고 소리내어 울며

 

야곱은 지금 결혼에 대한 사명을 가지고 왔습니다. 아버지는 라반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취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보니 라반의 딸인 라헬이 오고 있습니다. 야곱은 라헬을 보자 첫눈에 반했습니다. 라헬은 화장도 하지 않았습니다. 약간 어두운 까페에서 만나는 것도 아닙니다. 라헬은 일을 하고 오는 건강한 모습입니다. 성경에서는 이렇게 일하는 여성이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은 더욱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그런 감격을 곧바로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먼저 야곱은 라헬이 몰고 온 양들에게 물을 먹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야곱은 라헬과 사랑의 입맞춤을 하였습니다. 야곱은 감정보다는 의무에 충실한 사람입니다. 그는 사랑의 감정을 참고 있었습니다. 그는 일을 마치고 나서 무사히 친족을 만난 것에 감격하여 소리내어 울었습니다. 야곱이 많은 고생 끝에 드디어 라헬과 감격적인 상봉을 하였습니다.

 

(참을성 있는 사랑)

 

저는 이 말씀을 읽다가 이 부분에서 약간의 충격을 받고 놀랐습니다. 야곱은 일반적인 사람들이 하는 모습과 너무나 달랐습니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먼저 인사하고 포옹하고 그리고 양에게 물을 먹일 것입니다. 하지만 야곱은 사랑의 감정을 참고 일을 한 후에 감정을 표현합니다. 그는 정을 억제하고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입니다.

야곱이 행한 이 한 가지 행동은 야곱의 참을성 있는 성격을 보여 줍니다. 이 후에 야곱은 라헬을 얻기 위해서 칠년 동안을 참고 기다립니다. 야곱은 감정적이지 않고 속이 깊습니다. 야곱의 이런 속 깊은 모습은 요셉에게도 나타납니다. 요셉은 십여 년만에 헤어졌던 형들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형들에게 자신이 요셉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두 번이나 울면서도 형들이 변화되기까지 감정을 인내합니다. 요셉은 속이 깊습니다. 사랑은 오래참는 것입니다.

 

(마시멜로 이야기)

 

요즘 베스트셀러인 마시멜로 이야기가 있습니다. 마시멜로는 말랑말랑하고 달콤한 사탕입니다. 4살 된 어린 아이에게 마시멜로를 금방 먹으면 하나를 주고 15분 후에 먹으면 두 개를 주겠다고 시험을 했습니다 그런데 10여년이 흐른 후에 1000명의 실험한 학생들의 600명 정도를 다시 만나서 검사해 보니 15분을 참았다 먹은 어린이가 금방 먹은 어린이에 비해서 어휘력도 뛰어나고 인간관계도 원만하며 학습능력도 뛰어났습니다. 더 큰 이익을 위해서 당장의 이익을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미래의 소망을 위해서 현재 인내할 수 있는 사람이 성공합니다.

 

(사랑은 오래 참는 것)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사랑을 감정적인 것으로 생각합니다. 요즘은 만나서 좋아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모텔로 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은 감정적인 것이 아니라 오래 참는 것입니다. 결혼할 때까지 오래 참고 순결을 지키는 것이 사랑입니다.

다윗의 아들 중에 압논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다말을 사랑하여 몹시 앓았습니다. 몸은 점점 바싹 말라갔습니다. 그는 드디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납니다. 그는 만나는 순간 사랑이 불타올라서 강제적으로 육체적인 관계를 맺습니다. 그러나 육체적인 관계를 맺고 난 후에 사랑은 싸늘히 식어버립니다. 사랑하던 다말을 미워합니다. 사랑하는 것보다 더 미워합니다. 압논의 사랑은 요즘 젊은이들의 사랑과 유사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냄비 사랑이 많습니다. 쉽게 뜨거워지고 쉽게 식어버립니다.

그러나 야곱의 사랑은 7년이나 참고 기다리는 뚝배기 사랑입니다. 우리도 냄비 연애가 보편화된 시대에 우리의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기다리는 뚝배기 사랑을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라반과의 만남)

 

12-13절을 보십시오. “그에게 자기가 그의 아버지의 생질이요 리브가의 아들 됨을 말하였더니 라헬이 달려가서 그 아버지에게 알리매 라반이 그의 생질 야곱의 소식을 듣고 달려와서 그를 영접하여 안고 입맞추며 자기 집으로 인도하여 들이니 야곱이 자기의 모든 일을 라반에게 말하매

 

야곱이 외삼촌 라반을 만나는 모습이 나옵니다. 야곱은 라헬에게 자신을 소개합니다. 자신이 라반이 생질이요. 리브가의 아들이라고 소개합니다. 라헬은 라반에게 뛰어가서 야곱의 소식을 전합니다. 라반은 생질 소식을 듣고 뛰어나와서 야곱과 입맞추어 환영합니다. 그는 야곱을 자신의 집으로 이끌어 들입니다. 야곱은 부모님 소식과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말합니다. 특별히 자신이 장가를 가고자 하는 사명을 갖고 왔다고 말합니다.

 

(일하는 것이 행복)

 

14,,15절을 보십시오. “라반이 이르되 너는 참으로 내 혈육이로다 하였더라 야곱이 한 달을 그와 함께 거주하더니 라반이 야곱에게 이르되 네가 비록 내 생질이나 어찌 그저 내 일을 하겠느냐 네 품삯을 어떻게 할지 내게 말하라

 

야곱의 말을 들은 라반은 야곱이 참으로 생질인 것을 인정하고 영접하였습니다. 야곱은 한 달을 라반과 함께 거하며 성실한 성격대로 열심히 일을 하여 주었습니다. 사실 야곱은 손님으로 외삼촌 집에 갔기 때문에 일을 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손님으로 간 조카니 좀 여행을 하고 놀아도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실한 야곱은 외삼촌이 시키지 않아도 열심히 일을 하였습니다. 그는 보수를 받지 않고 일을 열심히 합니다. 그는 일하는 것 자체가 행복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열심히 사명을 감당하는 자를 쓰십니다. 라반이 야곱을 보니 야곱이 쓸만했습니다. 그는 야곱에게 일을 하면 보수를 줄 테니 조건을 말하라고 합니다.

 

(야곱의 라엘을 향한 연애)

 

16-18절을 보십시오. “라반이 두 딸이 있으니 형의 이름은 레아요 아우의 이름은 라헬이라 레아는 안력이 부족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 야곱이 라헬을 연애하므로 대답하되 내가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에게 칠년을 봉사하리이다

 

라반에게는 두 딸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레아고 둘째는 라헬이었습니다. 언니는 시력이 안 좋았습니다. 그 당시는 안경도 없을 때이므로 민첩하게 활동도 못하고 멀리 있는 것을 보려면 얼굴을 찡그리고 보았을 것입니다. 몸매도 그리 예쁘지 않았습니다. 아마 살도 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라헬은 이목구비가 또렷하고 조화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몸매도 에스 라인으로 환상적이었습니다. 롱다리에 키도 컸습니다. 야곱은 그 내면이나 믿음을 보기보다는 외모를 보았습니다. 야곱은 예쁜 라헬을 연애하였습니다. 여기에는 다분히 욕심이 가미되어 있습니다. 이런 욕심으로 야곱은 많은 훈련을 받습니다.

 

(대가를 치르는 사랑)

 

야곱은 외삼촌에게 라헬을 위해서 칠년을 봉사하며 일하겠다고 합니다. 그는 아버지가 보낸 사명에 충실하였습니다. 아버지 이삭은 믿음의 가정을 하라고 하란 땅에 보냈습니다. 야곱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적어도 칠년을 봉사하고자 하였습니다. 당시에 관습적으로 보면 데릴사위로 가서 삼년 정도 봉사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야곱은 칠년이나 봉사하고자 하였습니다. 칠년을 봉사하면 적어도 지금 돈으로 이억 원 정도되는 돈입니다.

아프리카에서는 결혼할 때 부자가 소 백마리를 준다고 합니다. 가난한 사람은 소 한 마리를 준다고 합니다. 더 가난한 사람은 송아지를 준다고 합니다. 야곱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칠년 정도는 봉사하고 희생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도 자신이 자발적으로 말한 것입니다. 그는 충분한 대가를 지불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얻고자 하였습니다. 이것이 사랑의 크기입니다.

요즘 부부싸움이나 이혼의 원인 중에 아내가 혼수품을 조금해온 것도 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사랑을 한다고 하면서 봉사하고 희생하기보다 섬김을 받으려고만 합니다. 그러나 이는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봉사하고 대가를 치르는 것입니다. 내가 상대방을 위해서 더 많은 사랑을 할수록 더 많은 대가를 지불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이런 대가를 치를 각오를 해야 합니다. 우리가 야곱과 같이 봉사하는 자세로 산다면 가정은 행복할 것입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사랑)

 

19,20절을 보십시오. “라반이 이르되 그를 네게 주는 것이 타인에게 주는 것보다 나으니 나와 함께 있으라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으나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 같이 여겼더라

 

야곱은 라반과 라헬을 위해서 칠년을 봉사할 것을 계약하고 야곱은 칠년 동안 야곱을 위해서 일을 합니다. 야곱은 어떤 자세로 일을 하였습니까? 야곱의 사랑에서 우리는 사랑의 힘을 봅니다. 객관적인 시간은 분명히 칠년입니다. 그러나 야곱이 느낀 시간은 70일도 아니고 수일입니다.

우리가 누구를 사랑하면 이렇게 시간이 잘 갑니다. 마치 신선놀음과 같습니다. 신선은 동굴에서 삼일을 지냈는데 나와보니 삼십년이라고 합니다. 현재 야곱의 처지가 이렇게 행복한 처지가 아닙니다. 야곱은 나그네입니다. 그리고 매일 반복되는 양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양을 치는 일은 그렇게 즐거운 일이 아닙니다. 지루하고 권태롭고 피곤한 일입니다. 더구나 남의 양을 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양을 치는 일이 그렇게 행복했던 것을 그가 라헬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칠년 일하면 라헬을 얻을 수 있다는 소망에 즐거웠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삶)

 

이 말씀이 오늘 요절 말씀입니다. 물론 우리가 이 말씀을 요절로 잡은 것은 야곱처럼 연애를 하자는 의미로 잡은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자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자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야곱의 삶과 유사합니다. 이 세상의 삶은 나그네 삶입니다. 우리는 먹고 살기 위해서 야곱처럼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고달픈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 우리가 어떻게 행복한 삶을 사느냐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예배가 기다려지고 말씀공부가 기다려집니다.

 

(천년이 하루 같은 하나님 사랑)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이 세상은 끝이 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의 재림이 왜 이렇게 느리냐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재림이 느린 것은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베드로후서에 보면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서 천년을 하루같이 참고 기다리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천년을 하루같이 여기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회개하기를 기다리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듯이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사도요한은 하나님의 사랑을 충분히 받고 사랑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학생들은 공부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모님들은 가사를 돌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형제들은 직장 일들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양을 쳐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모든 삶이 행복해 집니다. 사랑을 하면 얼굴에 웃음꽃이 핍니다. 입모양이 항상 u 자 모양으로 벌어집니다. 그 얼굴이 행복한 얼굴로 변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어떤 상황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입 모양이 솥뚜껑 모양입니다. 심술궂은 얼굴입니다.

 

(사랑하는 일을 하는 사람)

 

많은 사람들이 이 시대에 사람은 많은 데 쓸만한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장 쓸만한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순서만 있을 뿐 분리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이 한 가지를 가장 큰 계명으로 주셨습니다. 우리는 특별히 사랑하는 사람을 키워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을 키워야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모든 것의 근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일도 열심히 합니다. 기쁨으로 일을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 옆에 있으면 옆 사람도 함께 행복해집니다. 결혼할 상대를 선택할 때도 외모를 보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인가를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사랑을 하려면 먼저 사랑을 받아야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으면 우리도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사랑하는 일을 해야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야곱의 결혼식)

 

21,22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내 기한이 찼으니 내 아내를 내게 주소서 내가 그에게 들어가겠나이다 라반이 그 곳 사람을 다 모아 잔치하고

 

야곱은 칠년이 끝나고 나서 라반에게 말을 합니다 내 기한이 찼으니 내 아내를 내게 주소서 내가 그에게 들어가겠나이다라반이 그곳 사람들을 다 모아서 혼인 잔치를 하였습니다. 혼인잔치에는 술도 나왔을 것입니다. 야곱은 거나하게 술을 먹고 신부방에 들어갔습니다. 신랑은 신부를 밤에 처음 만납니다. 이 밤은 칠년을 참아온 극적인 순간입니다.

 

(레아를 라헬로 속인 라반)

 

23-25절을 보십시오. “저녁에 그의 딸 레아를 야곱에게로 데려가매 야곱이 그에게로 들어가니라 라반이 또 그의 여종 실바를 그의 딸 레아에게 시녀로 주었더라 야곱이 아침에 보니 레아라 라반에게 이르되 외삼촌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행하셨나이까 내가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을 섬기지 아니하였나이까 외삼촌이 나를 속이심은 어찌됨이니이까

 

야곱은 라헬과 첫날밤을 잔 줄 알고 이튿날 보니 라헬이 아니고 레아였습니다. 야곱은 일어나자마자 라반에게 가서 항의합니다. “외삼촌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행하셨나이까 내가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께 봉사하지 아니하였나이까 외삼촌이 나를 속이심은 어찜이니이까이름하여 신부바꿔치기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어떻게 영화 속에서나 나올 만한 일이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는 말입니까? 우리는 그 밤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야곱은 거나하게 취하였습니다. 야곱은 이 순간만큼은 감정적이 되었습니다. 호롱불이 은은하게 비칩니다. 신부는 면사포로 얼굴을 가리웠습니다. 이런 것을 이용하여 신부 바꿔치기를 한 것입니다.

 

(라반의 속임수)

 

26-27절을 보십시오. “라반이 이르되 언니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우리 지방에서 하지 아니하는 바이라 이를 위하여 칠 일을 채우라 우리가 그도 네게 주리니 네가 또 나를 칠 년 동안 섬길지니라

 

이 일에 일차적인 책임은 라반이 야곱을 속였기 때문입니다. 라반은 이 지방에서는 형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이 풍습이 아니기 때문에 레아을 먼저 주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는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처음에 그것을 이야기 했어야 합니다.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가 풍습을 이유로 다른 사람을 주는 것은 계약 위반입니다. 라반은 야곱의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해서 야곱을 속였습니다.

 

(레아의 짝사랑)

 

다음으로는 레아가 야곱을 짝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아버지 명령이라도 레아가 야곱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레아는 야곱의 방에 들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설령 들어간다 해도 자신이 라헬이 아니고 레아라고 한 마디만 했다면 모든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레아가 아무 말도 없이 참은 것은 레아가 야곱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레아는 야곱이 온 날부터 야곱을 짝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야곱은 자신에는 관심이 없고 동생 라헬에만 관심을 가질지라도 마음 속으로 흠모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얘야 네가 동생 대신 들어가라말씀하시나 좋아라하고 들어간 것입니다. 그리고 들어가서도 자신은 라헬인 체 아무 말도 없이 있었습니다. 레아는 감쪽같이 야곱을 속였습니다. 그밤만 지나가면 야곱은 나의 남편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치 야곱이 에서의 탈을 쓰고 야곱에게 간 것과 같습니다.

 

(사랑에 눈이 먼 야곱)

 

그러나 궁극적인 책임은 야곱에게 있습니다. 속이는 사람도 문제지만 속는 사람도 문제입니다. 속는 이유는 대부분 욕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물질에 사기를 당하는 사람은 물질에 욕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여자에게 속은 것은 여자에 대해서 욕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라헬의 외모에 반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욕심에 눈이 멀었습니다. 그가 칠년을 수일같이 일한 것을 보면 그는 완전히 사랑에 눈이 멀었습니다. 사랑에 분별력을 상실했습니다. 그는 술을 몇 잔 먹고 너무나 첫날 밤을 기다렸기 때문에 한 마디 대화도 없이 잠만 잤습니다.

 

(하나님의 훈련)

 

28-30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그대로 하여 그 칠 일을 채우매 라반이 딸 라헬도 그에게 아내로 주고 라반이 또 그의 여종 빌하를 그의 딸 라헬에게 주어 시녀가 되게 하매 야곱이 또한 라헬에게로 들어갔고 그가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하여 다시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더라

 

하여튼 야곱은 라반과 레아에게 속아서 레아와 결혼하였습니다. 이제 야곱은 칠일을 채우고 라헬을 얻습니다. 그 후에 후불제로 칠년을 더 봉사하였습니다. 야곱이 라반에게 속았을 때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레아로 만족하고 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속아서 기브온 족속과 약속하고 그 약속을 지켰습니다. 하나님은 속아서 한 약속도 지키기를 원하셨습니다. 야곱은 라반에게 속아서 레아와 결혼했지만 여기에는 하나님의 섭리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속이는 야곱의 내면을 아시고 라반을 통하여 야곱을 속이시고 야곱을 훈련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철이 철을 연단하듯이 간사한 사람은 간사한 사람을 통해서 교만한 사람은 교만한 사람을 통해서 이기적인 사람은 이기적인 사람을 통해서 훈련하십니다.

 

(야곱에 합당한 레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야곱에게 합당한 레아를 주신 것입니다. 레아는 믿음의 여인이었습니다. 자신이 당하는 모든 괴롬으로 사람과 싸우지 않습니다. 모두 하나님께 가지고 나가서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레아의 후손 가운데 유다가 태어나게 하시고 그를 통하여 다윗이 태어나며 구원역사를 이루십니다. 레아의 아들 레위를 통해서 모세와 아론이 나게 하시고 그들을 통하여 제사장과 성전을 섬기는 레위인이 태어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자매의 외모에 눈이 먼 야곱을 위해서 라헬 대신에 내면성 있는 레아를 주신 것입니다.

 

(라헬을 더 얻고자)

 

하지만 야곱은 레아 하나로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칠일을 더 일하면 라헬도 줄 터이니 라헬을 위해서 칠년을 더 일하라고 하는 라반의 말을 따라서 일을 하고 라헬을 얻습니다. 물론 당시에 축첩제도가 용인되는 시대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첩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처음 아담과 두 여자를 만들지 않으시고 한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또한 첩을 얻은 집은 거의 모든 집이 편할 날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야곱이 라헬을 다시 아내로 얻은 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야곱은 결혼을 너무나 외모에 집착하여 사랑하여 잘못을 범한 것입니다. 라헬은 장미꽃 같은 여자입니다. 그녀는 얼굴은 예쁘지만 시기와 강짜가 심합니다. 드라빔이라는 우상도 숭배합니다. 남편에게 아기를 낳게 해달라고 대듭니다. 야곱도 노년에는 레아의 사랑을 알고 자신은 레아 곁에 묻어달라고 말합니다.

 

(레아를 사랑하신 하나님)

 

3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레아에게 총이 없음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무자하였더라

 

하나님께서는 레아가 야곱의 사랑을 받지 못함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레아를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레아의 태를 여시고 아들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는 사람을 더 사랑하십니다. 세상적으로 못생겨서 버림 받은 사람들을 더 사랑하십니다. 건축자들의 버린 돌을 취하여 모퉁이의 머릿돌로 삼으십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것이 기이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외모가 못생겼다고 문제에 빠지지 말아야합니다. 얼굴이 예쁘다고 교만해지지도 말아야합니다.

 

(외모보다 믿음이 중요함)

 

예수님도 외모가 마른 땅에서 나는 나뭇가지 같았습니다. 예수님은 흠모할 아름다운 것도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싫어버렸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버렸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예수님을 택하여 그리스도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외모가 조금 못생겼다고 머리가 조금 안 좋다고 돈이 조금 없다고 실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에서 버림 받은 우리를 택하여 귀히 쓰십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레아)

 

32절을 보십시오. “레아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르우벤이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하였더라

 

레아는 아들을 낳고 해산 소감을 발표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권고하셨으니 이제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여기서 우리는 레아의 내면의 고통을 알 수 있습니다. 레아는 야곱에게 언제나 찬밥신세였습니다. 사랑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녀의 내면이 썩고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러나 레아는 이런 문제로 동생과 싸우지 않았습니다. 레아는 형의 권위를 이용하여 아니면 첫째 부인이라는 것을 이용하여 사라가 하갈을 학대하듯이 라헬을 학대할 수도 있었습니다. 아니면 야곱과 싸울 수도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집을 나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레아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괴로움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가서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레아의 기도를 들으시고 르우벤을 주셨습니다. 르우벤을 보라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주신 아들 야곱을 자랑스러워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레아)

 

33절을 보십시오. “그가 다시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가 사랑 받지 못함을 들으셨으므로 내게 이 아들도 주셨도다 하고 그의 이름을 시므온이라 하였으며

 

레아는 두 번째 아들을 낳고 여호와께서 나의 총이 없음을 들으셨으므로 내게 이도 주셨도다라고 말했습니다. 레아는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자신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남편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지만 하나님은 자신을 사랑하시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행복했습니다. 시므온의 뜻은 들으심이라는 뜻입니다. 이를 볼 때 레아는 하나님께 자신의 억울한 문제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기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하나님과 연합)

 

34절을 보십시오. “그가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내가 그에게 세 아들을 낳았으니 내 남편이 지금부터 나와 연합하리로다 하고 그의 이름을 레위라 하였으며.”

 

레아는 셋째를 낳고 연합이라는 의미로 레위라고 하였습니다. 연합이란 결혼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이브의 결혼 주례를 하면서 남자가 부모를 떠나서 여자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를 보면 아직도 야곱은 라헬을 자신의 아내로 인정하지 않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레아의 입장에서는 철처히 소외당하는 삶입니다. 그러나 그는 절망치 않고 하나님께 나가서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도 레아를 위로해 주셨습니다. 그는 남편과 연합하지 못하였지만 하나님과 연합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찬송)

 

35절을 보십시오. “그가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고 이로 말미암아 그가 그의 이름을 유다라 하였고 그의 출산이 멈추었더라

 

하나님께서는 이제 네 번째 아들을 주셨습니다. 이는 완전한 승리입니다. 축구로 말하면 40 완승을 거둔 것입니다. 레아는 넷째를 낳고 이제는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제는 승리를 완전히 굳혔다는 말입니다. 레아는 버림 받은 자신을 사랑하는 하나님을 마음껏 찬송했습니다. 그는 아들을 얻는 것보다 더 중요한 하나님을 소유했습니다. 그때 그녀의 마음은 기쁨과 행복이 가득했습니다.

 

(성숙한 사랑)

 

우리는 정말 레아를 통해서 성숙한 사랑을 배웁니다. 사람들의 냉대와 푸대접을 받으면서 어떻게 살 수 있습니까? 어떻게 가출이나 자살을 하지 않고 살 수 있습니까? 이는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통해서 위로를 얻을 때만이 가능합니다. 우리는 험한 이 세상을 살면서 많은 고통을 맛봅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많은 갈등이 있고 고통이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무시받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문제를 들고 하나님께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통하여 위로를 얻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가운데 8,90년의 삶을 수일처럼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2006.10,15

창세기 29장 강해 야곱의 사랑

말씀 창세기 291-창세기 2935

요절 창세기 2918 야곱이 라헬을 더 사랑하므로 대답하되 내가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에게 칠 년을 섬기리이다

창세기 29장 강해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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