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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창세기 24장 강해 1부 아브라함의 결혼관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5-08-23 00:00:00
조회수 : 4,686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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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4장 강해 아브라함의 결혼관

말씀 창세기 241-창세기 249

요절 창세기 244절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사람들의 주된 관심이 결혼인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결혼하는 것이 옳은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결혼하고 대부분의 교인들이 어떻게 결혼하느냐하는 것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바른 결혼이 어떤 것인지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성경은 바른 결혼을 가르쳐주십니다.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해도 바른 성서적인 결혼관을 확립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른 결혼관이 있어야 바르게 결혼할 수 있고 바르게 결혼해야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모범적인 가정 교회를 이룰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바른 결혼관을 갖고 결혼하여 행복하게 산 사람도 나오고 그렇지 않아서 불행하게 산 사람도 나옵니다. 우리 주위에도 바른 결혼관으로 행복하게 사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하여 불행하게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는 믿음의 가정인 아브라함이 처음으로 이삭을 결혼시키는 사건이 나옵니다. 아브라함은 이 결혼을 추진하는 종을 불러서 자신이 생각하는 결혼관을 말합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듯이 이 결혼은 모델이 되는 결혼입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하여 바른 결혼관을 확립하고 아름다운 가정 교회를 이룰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마지막에 복을 주시는 하나님)

 

1절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나이 많아 늙었고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

 

우리는 모두가 젊습니다. 우리의 노년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성경에는 우리의 젊은 시절보다 노년을 더 중시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믿음으로 출발했다가 노년에 하나님을 배신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비극적입니다. 사울이나 가룟유다나 롯이나 솔로몬과 같은 사람들은 노년이 비극적인 사람입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죄악되었지만 나중에는 믿음으로 산 사람들도 있습니다. 룻이나 라합이나 사도 바울이나 야곱의 아들 유다와 같은 사람들이 대표적인 사람들입니다. 아브라함의 훌륭한 점은 처음도 믿음으로 생활했고 중간도 믿음으로 살고 마지막도 믿음으로 마쳤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보다 현재가 중요하고 현재보다 미래가 더 중요합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살자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노년에 범사에 복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무슨 일을 하든지 함께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100세에도 아기를 갖을 정도로 건강했습니다. 물질적으로 복을 받아서 나귀와 우양과 소가 많았습니다. 무엇보다 그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계셨기 때문에 영생을 얻었고 하나님 나라를 소유했습니다.

우리에게 영혼이 잘되는 것은 금메달을 따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가난하고 병이 들고 에프학점이 나와도 영생을 얻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영생을 얻으면 대체로 부유하고 건강하게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의 목적이 복 받기 위해서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복을 주지 않으셔도 하나님을 믿습니다. 욥과 같이 자녀와 재산과 건강을 잃어도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으면 범사에 복을 주시는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는 복 주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물질적으로 고통하는 분이 있습니다. 질병으로 고통하는 분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분들에게 복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한 가정은 경제 파산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는 감사한 일입니다. 왜냐면 이를 통해서 그 아내도 예수님께로 다시 돌아왔고 가장도 예수님을 영접했기 때문입니다. 가장 가난한 가정에서 교회의 커튼을 해서 주님께 드렸습니다. 이를 과부의 두 렙돈과 같이 귀히 사용하여 주실 줄을 믿습니다.

 

(가나안 족속과 결혼시키지 말라)

 

2-3절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자기 집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에게 이르되 청컨대 네 손을 내 환도뼈 밑에 넣으라. 내가 너로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게 하노니 너는 나의 거하는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아브라함은 늙었고 사라는 죽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큰 민족을 이루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씨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얻는다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삭에게 복을 계승시켜야합니다. 이삭 혼자서 복을 계승할 수 없습니다. 그도 믿음으로 결혼하여 자녀를 낳아야 복을 계승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복을 계승시기키 위해서 이삭의 결혼을 추진하고자 합니다. 이스마엘은 벌써 결혼하여 여러 자녀를 낳았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40살이 되었지만 하나님께 결혼을 맡기고 믿음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런 이삭을 결혼시키기 위해서 종을 불렀습니다. 그에게 먼저 가나안 족속의 딸들 중에서 이식의 아내를 택하지 말라고 합니다. 가나안 사람들은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방백으로 인정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방백으로 인정받고 있었기 때문에 좋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습니다. 주위 사람들 가운데 아브라함과 사돈을 맺고자 하는 집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가문이 좋고 부유하고 잘 생긴 혼처도 많았을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능력 있는 사람도 많고 예쁜 아가씨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가나안 족속에서는 이삭의 아내를 택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께 이것을 맹세시킵니다. 허벅지에 손을 넣고 맹세를 시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아주 중요한 일을 맹세시킬 때 이렇게 합니다. 야곱도 허벅지에 손을 넣고 자신을 애굽에 장사하지 말고 가나안 땅에 장사하도록 맹세를 시켰습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족속과 결혼을 시키지 않고자 하는 이유는 이들이 하나님을 경외치 않는 민족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민족과 결혼하면 어떻게 됩니까? 신명기 73,4절에서는 말씀하십니다. “또 그들과 혼인하지 말지니 네 딸을 그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 딸로 네 며느리를 삼지 말 것은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로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 실 것임이니라,” 사람들은 불신자와 결혼을 여러 면에서 합리화합니다. 그 사람과 결혼하면 한 사람 전도하는 것이 아닌가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분명히 불신자와 결혼을 금하고 있습니다. 불신자와 신자는 하나될 수 없기 때문에 불신자와 결혼할 수 없습니다.

고린도후서 6“14.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15.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결혼은 단지 그냥 공동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함께 멍에를 메고 밭을 가는 것입니다. 부부가 한 몸이 되어 자녀를 생산하고 교육하는 것입니다. 신자는 빛의 자녀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반면에 불신자는 어둠의 자녀요 사단의 자녀입니다. 어떻게 빛과 어둠이 하나가 될 수 있습니까? 우리는 불신자를 전도하면 되지 않는가 말합니다. 그러나 전도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그 사람에게 넘어가서 하나님을 떠날 수도 있습니다. 설령 전도한다 해도 그 한 사람을 전도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없습니다.

성경에는 불신자와 결혼하여 인생을 망친 많은 예가 있습니다. 노아시대에 사람들이 왜 심판을 받았습니까? 하나님의 아들들이 자기들이 좋아하는 사람의 딸들과 결혼했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하여 마음에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육신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지혜의 왕이었습니다. 잠언을 쓰고 전도서를 쓴 사람입니다. 그는 누구보다 불신자와의 결혼이 하나님을 슬프시게 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방여자와 결혼하였습니다. 그는 이방 여인과 결혼해도 자신은 죄에 빠지지 않는다고 자신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는 노년에 모압 압몬의 아내들이 섬기는 신을 섬겼습니다. 그의 죄로 인하여 자기 하나뿐 아니라 이스라엘 대대로 고통을 당하게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남북이 분단되었습니다. 우리는 솔로몬을 통하여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가 배웁니다. 남자가 여자 앞에서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가 배웁니다. 아무리 지혜의 왕 솔로몬이라도 여자의 유혹을 이길 수 없습니다.

삼손은 힘이 장사입니다. 그는 손으로 사자를 찢어서 죽일 정도로 괴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도 들릴라라는 이방여인을 연애했습니다. 그도 이방여자에게 넘어가지 않는다는 자신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세 번 정도는 들릴라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약점을 얘기해 달라는 들릴라의 유혹을 잘 물리칩니다. 그는 불신자에게 빠지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네 번째 유혹에 넘어가서 자신의 힘의 비밀을 말해 주었습니다. 그는 머리를 잘리고 눈이 뽑히고 맷돌을 돌리고 사람들 앞에서 재주를 부리다 죽었습니다.

불신자와 결혼하면 자녀들은 불신자 어머니나 아버지의 영향을 받습니다. 믿음의 교육을 하기 어렵습니다. 믿음의 역사가 자녀로 계승되지 못하고 당대에서 끊어지게 됩니다. 자녀들이 가치관의 혼란을 겪게 됩니다. 불신자들과 결혼하고자 하는 자는 교만한 자입니다.

 

(반드시 신자와 결혼해야 함)

 

4절을 보십시오.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아브라함은 이삭의 아내를 하나님을 경외하는 아브라함의 족속에게 가서 아내를 택하라고 합니다. 그 길은 400킬로나 되는 먼 길입니다. 위험한 길입니다. 아브라함은 그래도 그곳에서 이삭의 아내를 택하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아무리 어려운 길이라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과 결혼하라고 합니다. 결혼은 다만 육체적으로 잠만 자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과 사명과 인격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자녀를 낳아 믿음으로 양육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자녀를 통해서 땅의 모든 족속에게 복을 나누어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신자와 결혼해야 합니다. 어느 때는 믿음의 형제들이 많은 데 믿음의 자매들의 수가 부족할 때가 있습니다. 또 어떤 때는 믿음의 자매들은 많은 데 형제들의 수가 부족할 때가 있습니다. 이러면 어쩔 수 없는가 하는 생각으로 불신자와 결혼을 당연히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의 사람과 결혼하고자 하면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들을 더 많이 만들어서도 믿음의 결혼을 하게 하십니다.

제가 대전에 있을 때 그 교회에는 자매는 많았는데 형제들은 없었습니다. 자매들은 노처녀가 되어도 믿음을 지켰습니다. 하나님은 때가 되자 믿음이 훌륭한 형제들을 많이 보내주시고 믿음의 결혼을 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친히 우리의 결혼을 책임지시고 믿음의 사람들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아멘! 때로는 믿음의 사람이 없어서 독신으로 늙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불신자와 결혼하는 것보다는 독신으로 사는 것이 더 행복합니다. 아니면 믿음의 결혼을 하기 위해서도 열심히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결혼을 위하여 사명의 땅을 떠나서는 안됨)

 

5-8절을 보십시오. "종이 가로되 여자가 나를 좇아 이 땅으로 오고자 아니하거든 내가 주인의 아들을 주인의 나오신 땅으로 인도하여 돌아가리이까? 아브라함이 그에게 이르되 삼가 내 아들을 그리로 데리고 돌아가지 말라.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버지의 집과 내 본토에서 떠나게 하시고 내게 말씀하시며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가 그 사자를 네 앞서 보내실지라.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지니라. 만일 여자가 너를 좇아 오고자 아니하면 나의 이 맹세가 너와 상관이 없나니 오직 내 아들을 데리고 그리로 가지 말지니라.“

 

이삭의 결혼을 추진하는 종에게 한 가지 걱정이 생겼습니다. 만약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여자가 종을 좇아서 가나안 땅으로 오고자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것입니다. 이삭이 사명의 땅을 떠나서 결혼해도 좋으냐고 질문하였습니다. 그 여자를 따라서 여자가 있는 곳으로 이삭을 데리고 가도 좋으냐고 물었습니다.

여기에 아브라함은 분명히 두 번 반복하여 말합니다. 사명의 땅을 떠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는 결혼과 사명 중에서 사명을 결혼보다 앞세우는 것입니다. 결혼은 사명 안에서 해야지 사명을 떠나면서까지 결혼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본래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시고 결혼을 창설하실 때도 사명을 위해서 결혼을 만드셨습니다. 남자가 하나님이 주신 사명 즉 동물들의 이름을 짓고 있었는데 돕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여자를 돕는 베필로 만드시고 이끌어 오셔서 처음의 결혼 주례를 서셨습니다. 결혼이 아무리 중요해도 사명보다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결혼은 scond best라는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우리 ubf는 교회 안에서 대부분 결혼합니다. 다른 교회의 사람들과도 결혼하는 사람이 약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ubf 안에서 결혼에 대해서 문제를 얘기합니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서 좀더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합니다.

전에 제가 알던 선생은 사회주의에 의식화되어서 데모를 하는 사람이었는데 그 사람도 데모하는 사람과 결혼했습니다. 아내가 남편이 하는 사회주의 운동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함께 살기 어려울 것입니다. 설령 교회 목사나 장로나 집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부가 같은 교회에 섬겨야지 서로 다른 교회에서 사역을 해서 되겠습니까? 교회 목사님은 한 교회에서 섬기고 사모님은 다른 교회에서 섬긴다면 어떻게 교회를 목회하겠습니까? 목회자가 아니고 집사나 장로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장로나 집사도 가정교회를 이루어야합니다. 부부가 서로 다른 교회에 다녀서 하나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런 모습이 아름답습니까? 내가 ubf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섬기는데 나의 아내 모니카 사모는 ccc에서 섬긴다면 제가 양들을 초청할 수 있겠습니까? 여름수양회를 진행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사명을 앞세우고 사명을 중심으로 결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ubf 안에서 결혼하느냐고 하는 사람은 사명이 없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제자양성과 세계선교의 사명이 없다면 신자라면 누구랑 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냥 주일날 예배나 드리는 선데이 크리스찬이라면 누구랑 결혼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복음을 전하고 양을 치는 목자 목동들입니다. 우리가 사명이 있는데 사명을 버리고 결혼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결혼하기 전에 먼저 사명을 영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ubf를 대학생 선교와 제자양성 세계선교를 위해서 부르셨습니다. 세계캠퍼스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서 부르셨습니다. 우리는 목동 목자로 부르셔서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역사에 우리를 지금까지 쓰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교회에 남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사명을 영접해야 합니다. 사명 안에서 믿음의 결혼해야 합니다. 우리가 다른 교회에 있는 분이라도 우리와 사명을 함께 할 수 있는 분이라면 함께 결혼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 안에서 하나 되고 사명 안에서도 하나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함께 사명을 감당할 배우자가 없다면 어떻게 합니까? 이 질문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의 아내를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실 것을 확신하였습니다.

 

(약속에 기초하여 배우자를 인도하실 것을 믿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 땅을 그와 후손에게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삭에게 이 땅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삭과 그 후손에게 이 땅을 주신다고 하셨다면 하나님께서 친히 배우자를 이 땅으로 인도하시고 이곳에서 자녀를 낳도록 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약속의 말씀을 기초로 이삭의 결혼에 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서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십니다. 결혼이나 먹는 것이나 모두가 사명을 감당하는데 필요하면 공급하여 주실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여호와이레의 신앙 체험이 있었습니다. 여호와이레의 신앙은 부활신앙입니다. 그가 죽음을 각오하고 이삭을 하나님께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는 숫양을 예비하여 주셨습니다. 창세기 저자는 이삭을 번제로 드릴 때 이삭의 아내 리브가가 있음을 기록함으로 리브가를 이삭을 위하여 예비하신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번에도 이 땅을 떠나서는 결혼을 하지 않는다는 각오를 하면 하나님께서 친히 동역자를 허락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결혼을 하는데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사랑을 믿어야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나에게 가장 알맞은 사람을 예비하시고 인도하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나와 평생 사명을 감당할 동역자를 인도하실 것을 믿어야합니다.

 

(믿음의 가정이 중요함)

 

9잘을 보십시오. "이 이에 주인 아브라함의 환도뼈 아래 손을 넣고 이 일에 대하여 그에게 맹세하였더라.“

 

아브라함의 종은 아브라함이 시키는 대로 아브라함의 결혼을 믿음으로 영접했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앞에서 믿음의 결혼관을 영접하였습니다. 우리 결혼하지 않은 분들은 믿음으로 믿음의 결혼관을 영접해야 합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믿음의 결혼시킬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결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믿음으로 결혼생활을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모범적인 믿음의 가정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믿음의 가정을 이룰 수 있을까요? 가정의 주인은 남편이 아닙니다. 남편은 관리자입니다. 남자를 움직이는 여자가 가정의 주인도 아닙니다. 가정의 주인은 가정을 이루신 하나님이십니다. 아내는 관리자인 남편을 동역하는 사람입니다. 가정의 주인이 하나님이 될 때 가정에 하나님 나라가 이뤄지고 행복이 이뤄집니다. 결혼은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한 곳을 바라며 나가는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신 한 가지 사명을 바라보며 나아가야 합니다. 가정을 가정교회로 만들어야 합니다. 한 사명을 서로 감당할 때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둘이 하나님을 더욱 사랑할 때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한분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성령 하나님을 따를 때 우리는 하나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서로을 한 몸처럼 사랑해야합니다. 부부는 서로 갈등을 하지 말고 죄와 싸우는 영적인 투쟁을 해야 합니다.

에베소서에 보면 남편은 아내를 예수님이 교회를 사랑하듯 하라고 하였습니다. 아내는 남편을 주께 하듯이 하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남편을 예수님에 비유하고 아내를 교회에 비유하였습니다. 남편은 아내에게서 교회를 보아야합니다. 예수님이 교회를 어떻게 사랑하셨는지를 생각해야합니다. 예수님이 교회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셨듯이 그렇게 온전히 아내의 죄와 허물을 책임지고 사랑해야합니다. 아내는 남편에게서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님을 보아야합니다. 교회가 예수님께 복종하듯이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해야합니다. 남편이 연약하지만 남편에게서 연약한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렇게 부부 관계를 통하여 교회를 세우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모실 때 가장은 하나 될 수 있습니다.

부부 관계를 만파식적에 비유한 시인이 있습니다. 죽어서 해룡(海龍)이 된 문무왕과 천신(天神)이 된 김유신이 합심하여 용을 시켜 동해의 한 섬에 대나무를 보냈다고 합니다. 이 대나무는 낮이면 갈라져 둘이 되고, 밤이면 합하여 하나가 되었습니다. 왕은 이 기이한 소식을 듣고 현장에 거동하였습니다. 이 때 나타난 용에게 왕이 대나무의 이치를 물으니, 용은 비유하건대 한 손으로는 어느 소리도 낼 수 없지만 두 손이 마주치면 능히 소리가 나는지라, 이 대도 역시 합한 후에야 소리가 나는 것이요라고 예언하고 사라졌습니다. 왕이 곧 이 대나무를 베어서 피리를 만들어 부니, 나라의 모든 걱정 ·근심이 해결되었다 합니다. 이 피리를 만파식적이라고 합니다.

부부는 만파식적과 같이 합하여 하나가 되어 아름다운 소리를 냅니다. 근심과 걱정을 없게 합니다. 대나무 두 쪽이 합쳐질 때 그 둘 사이에는 빈 공간이 있습니다. 둘은 서로 간에 거리를 어느 정도 두어야합니다. 그 안에는 하나님이 계셔야 합니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배려해야합니다. 남자는 여자와 다른 점이 있습니다. 여자는 남자와 다른 점이 있습니다. 남자는 화성 사람이라면 여성은 금성 사람입니다. 이를 알고 인정하고 서로를 배려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서로 간에 같은 생각을 공감해야합니다.

 

(결론-나의 결혼)

 

저는 요한 복음 삼장 십육절을 영접하고 믿음으로 결혼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아름다운 사명의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우리 집에도 갈등이 있었습니다. 이 갈등을 무지나 미숙함 때문이었습니다. 나의 죄때문이었습니다. 갈등이 있을 때는 모든 것이 상대방의 책임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받고 내가 예수님을 바라보니 모든 것이 나의 문제처럼 보였습니다. 내가 회개하니 상대방은 변화되든 변화되지 않든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혼 생활하면서 너무나 많이 상대방에게서 문제를 찾습니다. 그러다가 소중한 시간을 허비합니다. 많은 사람이 성격이 달라서 이혼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격이 달라서 이혼하는 것이 아니라 교만해서 이혼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갈등이 있을 때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아야합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면 내 죄악이 보입니다. 그리고 죄사함을 받으면 성령이 임하고 성령님께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도록 도우십니다. 내 의로 내가 복을 받고 내 불의로 내가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아내나 남편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나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세계에서 가장 브랜드 가치 있는 가정교회를 이룰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창세기 24장 강해 일부 아브라함의 결혼관

말씀 창세기 241-창세기 249

요절 창세기 244절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창세기 24장 강해 일부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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