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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창세기 28장 강해 야곱의 고향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6-10-08 00:00:00
조회수 : 4,629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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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8장 강해 야곱의 고향

말씀 창세기 281-창세기 2822

요절 창세기 2821절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우리는 누구나 고향을 그리워합니다. 에스키모인들은 고향하면 설원의 모닥불을 생각합니다. 중국은 소나무와 대나무가 있고 매화꽃이 핀 곳을 생각합니다. 미국은 호수와 언덕 위에 있는 집을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미루나무와 초가집을 생각합니다. 훌륭하게 된 ceo를 조사해 보았더니 이들은 어렸을 동안에 좋은 고향의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향하면 시궁창의 물과 어머니 아버지가 싸우고 아버지가 술주정하는 것만 떠오르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는 그런 것의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도 고향하면 떠오르는 것이 있습니다. 앞에는 시냇물이 있고 그곳에서 여름 밤이면 횃불을 밝히고 미꾸라지를 잡았습니다. 앞산 무덤 위에서 아이들과 놀이를 하며 뛰어놀았습니다. 내가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은 그곳에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와 아버지 형제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고향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추석에 고향을 찾는 이유도 부모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물리적인 고향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신앙의 고향입니다. 육신의 부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적인 부모입니다. 우리에게 나의 영적인 부모가 있고 그리워할 대상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것입니다. 우리가 연휴가 끝난 후에 이렇게 예배드리는 것도 이 교회가 우리의 영적인 고향이기 때문입니다. 이곳은 내가 처음 예수님을 만난 곳이고 내가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이 있는 곳입니다. 나의 하나님이 계신 곳입니다. 우리가 돌아가야 할 진정한 고향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고향을 가진 사람은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야곱은 고향을 떠난날 진정한 고향인 하나님 나라를 그리워합니다. 이 시간 오늘 말씀을 통하여 야곱의 고향에 대해서 배우고자 합니다.

 

(야곱의 믿음의 결혼 방향)

 

1,2절을 보십시오. “이삭이 야곱을 불러 그에게 축복하고 또 부탁하여 가로되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취하지 말고 일어나 밧단아람으로 가서 너의 외조부 브두엘 집에 이르러 거기서 너의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취하라

 

이삭은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리브가와 믿음의 결혼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큰 아들 에서는 두 명의 가나안 사람과 결혼하였습니다. 이삭은 야곱만큼은 믿음의 가정을 이루기 원했습니다. 이삭은 야곱에게 믿음의 결혼을 부탁하고 있습니다. 당시에 야곱의 나이는 학자들에 의하면 77세였다고 합니다. 야곱은 77세 노총각으로 있으면서 인간적으로 결혼하지 않고 믿음으로 결혼하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는 형에서의 영향을 받지 않고 믿음의 가정을 이루고자 하였습니다. 이렇게 기다리는 사람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당장 짝이 보이지 않는다고 세상 여자나 남자를 따라 가는 사람은 믿음의 조상이 될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삭의 축복 기도)

 

3,4절을 보십시오. “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어 너로 생육하고 번성케하사 너로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시고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을 네게 주시되 너와 너와 함께 네 자손에게 주사 너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 곧 너의 우거하는 땅을 유업으로 받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이삭은 야곱을 다시 한번 축복합니다. 전에는 속아서 축복하였지만 이제는 야곱이라는 것을 알면서 축복합니다. 마음으로 야곱을 축복합니다, 하나님이 야곱을 복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야곱에게 자녀와 땅을 복주시도록 기도합니다. 야곱의 태에서 생육하고 번성하기를 원하십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민족이 태어나기를 원합니다. 이삭이 야곱에게 물려준 축복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자신에게 물려 주신 복입니다. 야곱이 여러 민족의 조상이 되기를 원합니다. 아브라함의 복을 야곱과 그 후손들에게 주셔서 복의 근원이 되기를 원합니다. 아브라함에개 주신 가나안 땅을 유업으로 받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야곱과 함께 하시도록 축복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믿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이삭에게 주었고, 이삭은 아버지와 자신이 믿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야곱에게 물려주었습니다. 이삭은 야곱에게 재산을 유산으로 물려주지 않았습니다. 재산은 하나님의 역사를 계승하지 않는 에서에게 물려주었습니다. 재산을 물려 주는 것이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재산을 물려 주면 자립심을 해치기 쉽습니다. 노력없이 얻은 재산은 돈의 소중함을 모르게 합니다. 이삭은 야곱에게 재산보다 자신이 믿는 하나님을 물려주었습니다. 자신의 믿음을 물려주었습니다. 이처럼 조상으로부터 자신이 믿는 하나님을 물려받는 것이 진정한 복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현재 하나님이 복이라는 것을 잘 알지 못합니다. 그의 관심은 하나님께 있기보다 명예에 있었고 아내에 있었고 자식에게 있었고 물질에 었습니다. 그래서 힘들고 어려운 인생을 삽니다. 고생을 많이 합니다. 나중에 아들 요셉이 살아았는데, 죽은 줄 알고 여러 해를 슬퍼합니다. 야곱은 자신 스스로도 험한 인생을 살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노년이 되어서 비로소 하나님이 진정한 복임을 깨닫고 하나님을 소유하고 진정한 행복을 맛봅니다. 자신이 스스로 복 받은 자임을 알고 자신의 복을 바로와 자식들에게 나누어 줍니다.

하여튼 야곱이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아버지가 믿는 하나님을 물려 받은 것은 큰 축복입니다. 이 믿음을 물려 받았기 때문에 그는 복의 근원이 될 수 있었고 믿음의 삼대 조상이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훌륭한 믿음의 선배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믿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저는 유비에프에서 신앙 생활하는 것과 한국에서 태어난 것을 크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우리 유비에프 믿음의 선배들은 훌륭한 믿음의 유산을 물려주었습니다. 순수한 평신도를 통한 복음 역사, 일대일을 통한 제자 양성, 성경을 사랑하는 마음, 믿음의 가정을 이루는 유산, 세계선교에 대한 열정, 말씀을 배우기만 하지않고 말씀대로 순종하는 자세, 십자가를 지는 자세, 주는 자세등 너무나 아름다운 믿음의 유산을 물려주었습니다. 무엇보다 성경 속에 살아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을 우리에게 물려주었습니다. 저는 유비에프처럼 인격적으로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이 없었다면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한국에 믿음의 선배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조용기 목사님은 십자가의 은혜와 성령님을 가르쳐주신 분이십니다. 곽선희 목사님은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와 성경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석을 가르쳐 주신 분입니다. 옥한음 목사님은 제자양성의 유산을 남기셨습니다. 가정교회의 예를 물려주신 최영기목사님도 있습니다. 김동호목사님은 바른 신앙의 가치를 물려주었습니다. 그 외에도 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있습니다. 이런 믿음의 선배들 밑에서 자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우리는 이런 훌륭한 믿음의 유산을 잘 보존하여 후배들에게 물려주어야 합니다.

 

(라반의 집에 도착한 야곱)

 

5절을 보십시오. “이에 이삭이 야곱을 보내매 그가 밧단아람으로 가서 라반에게 이르렀으니 라반은 아람 사람 브두엘의 아들이요 야곱과 에서의 어머니 리브가의 오라비더라

 

결국 야곱은 이삭의 방향대로 밧단아람까지 800킬로미터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이삭은 외삼촌 라반에게 이르렀습니다. 브드엘은 아브라함의 형제 나홀의 아들이고 라반은 브드엘의 아들이요 리브가의 오빠입니다. 브드엘은 야곱의 외할아버지요. 라반은 야곱의 외삼촌입니다. 야곱은 믿음의 결혼을 위하여 믿음의 가정인 라반의 집에 이르렀습니다.

 

(이스마엘 딸을 취한 에서)

 

6-9절에 보십시오. “에서가 본즉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고 그를 밧단아람으로 보내어 거기서 아내를 맞이하게 하였고 또 그에게 축복하고 명하기를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라 하였고 또 야곱이 부모의 명을 따라 밧단아람으로 갔으며 에서가 또 본즉 가나안 사람의 딸들이 그의 아버지 이삭을 기쁘게 하지 못하는지라 이에 에서가 이스마엘에게 가서 그 본처들 외에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딸이요 느바욧의 누이인 마할랏을 아내로 맞이하였더라

 

에서가 이스마엘의 딸 마할랏을 아내로 취한 이유가 나옵니다. 에서는 이삭이 야곱을 축복하고 야곱에게 믿음의 결혼을 부탁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가나안 땅의 사람들에서는 아내를 맞이하지 말라는 부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순종하여 밧단아름으로 가는 야곱을 보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가나안 아내가 아버지 이삭을 기쁘게 하지 못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에서는 이를 보고 그래도 믿음이 있는 이스마엘의 딸 마할랏을 아내로 세 번째 아내로 취하였습니다. 그는 믿음의 모양은 있었으나 내용은 없었습니다. 에서는 믿음의 결혼에 대한 분명한 소신이 없었습니다. 상황에 따라서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결혼을 하였습니다. 부모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결혼을 하였습니다. 이런 가치관으로 그의 믿음은 당대에서 끝이 납니다. 하나님의 구속 역사와는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는 믿음의 결혼에 대한 분명한 가치관을 가져야합니다. 신앙의 철학이 있어야합니다. 가치관이 우리의 인생을 좌우하는 것입니다.

 

(돌베개를 베고 자는 야곱)

 

10,11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한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곳의 한 돌을 취하여 베개하고 거기 누워 자더니

 

야곱은 자신을 죽이고자하는 에서를 피해서 하란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는 인생의 큰 위기 가운데 있습니다. 그는 오랫 동안 살던 고향 집을 떠나서 루스 들판에서 베개가 없어 돌베개를 베고 자고 있습니다. 루스에 돌이 많고 돌이 딱딱했다고 합니다. 장준하씨는 이곳에서 은혜받고 돌베개라는 책을 냈습니다. 돌베개는 고난의 삶을 말합니다. 돌베개라는 책에 보면 청년 시절에 일본군 학도병이 되어 중국에 끌려갔다가 탈출합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거쳐 광복과 함께 우리나라에 돌아오기까지를 담은 기록입니다. 야곱은 삼일 길을 걸어왔습니다. 앞으로 700킬로는 더 가야 합니다. 주위에는 짐승들의 우는 소리가 들립니다. 언제 도둑이나 강도가 들이 닥칠지 모릅니다. 맹수나 뱀이 나올지 모릅니다. 고향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캄캄한 밤이 오면 멀리 있는 별이 보이는 법입니다. 마찬가지로 절망적인 상황에서 하나님이 보이고 하나님 나라가 보입니다. 우리는 위기의 순간에 눈을 들어 하늘을 보아야합니다.

 

(하늘나라로 가는 사닥다리)

 

12절을 보십시오.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하고

 

사람들은 아무도 야곱과 함께 하지 못하였습니다. 이삭과 리브가도 함께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야곱과 함께 하였습니다. 야곱은 꿈에 사닥다리를 보았습니다. 이 사닥다리는 하늘까지 닿아 있었습니다. 하늘나라까지 닿아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습니다.

이 사다리는 인간이 놓은 사다리가 아닙니다. 인간은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하나님나라까지 가는 사다리를 놓을 수는 없습니다. 인간은 죄와 죽음을 건너서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친히 하늘로 가는 사다리를 놓으셨습니다. 이 사다리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우리가 지붕을 올라가고자 할 때나 높은 나무를 올라가고자할 때 사다리가 매우 고마운 존재입니다. 사다리가 없으면 갈 수 없습니다. 우리가 고향에 갈 때 길이 막히면 갈 수 없습니다. 먼곳은 차가 없어도 고향에 갈 수 없습니다. 길이 없는 북한에 갈 수 없습니다.

이처럼 천국에 도저히 갈 수 없는 데 예수님이 사다리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로 가는 우리의 길이요. 차가 되어주십니다. 사다리에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과 인간이 소통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우리는 사다리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다리를 통해서 우리에게 복을 주십니다. 사다리는 한 간 한 간 올라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고속도로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한 발짝씩 한 발짝씩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걸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망하는 야곱에게 하나님 나라를 꿈꾸게 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야곱의 진정한 고향이라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야곱은 꿈을 통하여 자신이 고향을 떠나온 나그네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

 

13-15절을 보십시오.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야곱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이십니다. 이제 하나님은 야곱의 하나님이 되시기 위해서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야곱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기를 원하십니다. 야곱을 찾아오신 하나님은 먼저 찾아오시는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찾아오셔서 이삭이 야곱을 축복해준 것과 동일한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이삭이 야곱을 축복한 것을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여 주십니다. 이삭이 야곱을 축복하였듯이 야곱이 누워 있는 땅을 야곱과 자손에게 주신다고 하십니다. 자손을 땅의 티끌같이 동서남북에 편만하게 하여주신다고 하십니다. 더 나아가서 야곱을 복의 근원 삼으셔서 야곱을 통하여 땅의 모든 족속에게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야곱 한 사람만 복주시고자 찾아온 것이 아닙니다. 야곱을 통하여 땅의 모든 족속에게 복주시고자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보너스 축복으로 야곱에게 주신 약속을 이루기까지 야곱을 떠나지 않고 어디로 가든지 함께 하시며 지켜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꿈)

 

야곱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하나님 나라의 꿈을 꾸었습니다. 그를 통하여 메시야가 태어나고 그를 통해서 땅의 모든 족속에게 복을 주는 원대한 꿈을 꾸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꿈을 꾸어야합니다. 야곱이 이런 꿈을 꾼 대로 야곱의 미래는 결정되었습니다. 우리는 야곱의 꿈을 통해서 두 가지를 배웁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꿈을 꿀 수 있습니다. 야곱의 꿈은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당시는 성경책이 없었기 때문에 꿈을 통해서 계시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성경책을 통하여 계시하여 주십니다. 성령님을 통하여 계시하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꿈을 꾸려면 성경을 공부해야 합니다. 성경 말씀을 통하여 성령님이 충만히 우리 마음 속에 임해야 합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꿈으로 가득 차있습니다. 말세에 하나님은 성령을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청년은 환상을 보고, 어린이는 예언을 하고, 늙은이 꿈을 꿉니다. 성령을 받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 나라의 꿈을 꿉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꾸어야 합니다. 꿈은 미래의 나침판입니다. 하나님은 꿈대로 우리의 미래를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큰 민족을 이루는 꿈을 주셨고 꿈대로 인도하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에게 지도자가 되는 꿈을 주셨고 애굽의 총리로 세워주셨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 건설의 꿈을 꾸어야합니다. 성령 안에서 행복을 누리는 꿈을 꾸어야합니다. 가장과 교회에 십자가를 짐으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나타나는 꿈을 꾸어야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받은 복을 세계에 나누어주는 세계선교의 꿈을 꾸어야 합니다. 한국 교회에서 100만 선교사 파송의 꿈을 꾸어야 합니다. 천안ubf에서 오천 명 선교사 파송의 꿈을 꾸어야 합니다. 나의 미래의 아름다운 모습을 구체적으로 꾸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꿈꾸어야 합니다.

꿈은 구체적입니다. 또렷한 영상이 보이고 소리가 구체적으로 들립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구체적인 꿈을 꾸어야합니다. 어학연수의 꿈을 꾸어야 합니다. 취업하는 꿈을 꾸어야 합니다. 믿음의 가정을 이루는 꿈을 꾸어야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 나라의 꿈을 꾸어야 합니다. 그 꿈대로 우리를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꿈은 믿음의 표현입니다. 심리학적으로 꿈은 무의식의 표출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꿈을 통하여 깊은 내면의 세계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성개는 서까래를 베고 누웠는 꿈을 꾸었다고 합니다. 그는 내면 깊숙이서 왕을 꿈꾸었다는 말입니다. 야곱이 꿈을 꾼 것은 그것을 마음 깊은 곳 잠재의식 속에서 원했다는 말입니다. 야곱은 어떻게 이런 꿈을 꾸게 되었을까요? 야곱이 꿈을 꾼 내용은 아버지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한 내용과 같습니다. 야곱은 이삭이 자신에게 축복한 내용을 깊이 생각했습니다. 그 꿈을 묵상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꿈에 그의 내면에 깊이 있는 것을 꿈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우리가 좋은 꿈을 꾸기 위해서는 좋은 꿈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잠재의식 속에서도 생각해야 합니다. 생각이 중요합니다. 믿음은 깊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의 싸움은 생각에서 시작됩니다. 잠재의식의 세계에서 생각이 필요합니다. 사단은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합니다. 우리가 보고 듣는 것을 근거로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합니다. 이렇게 부정적인 생각을 하다보면 부정적인 꿈을 꿉니다. 꿈에 악마가 나타나고 망하는 꿈, 쫓기는 꿈, 저주 받는 꿈, 죽는 꿈을 꿉니다. 그리고 그런 두려움과 불안이 임하며 우리의 미래에 그것이 임하게 됩니다.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생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좋은 생각을 하려면 말씀에 기초한 생각을 해야 합니다. 성령님의 주시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꿈꾸어야 합니다. 우리의 저주를 청산하시고 복의 근원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생각해야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좋은 꿈을 꿀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미래는 좋게 결정될 것입니다.

저는 전에 월부팀에 온힘을 쓰며 이들을 도왔습니다. 그런데 월부팀 가운데 한 사람이 모임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깊은 절망에 빠졌습니다. 하나님은 이 날 나에게 꿈을 주셨습니다. 어느 바닷가에서 수양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분위기는 너무 밝은 분위기였습니다. 북두칠성이 바다에서 하늘로 솟아 있었습니다. 북두칠성을 하늘과 바다를 이어 주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꿈을 꾸면서 우리 모임에 하나님이 임재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천안 유비에프 역사를 축복하시고 조용하면서도 하나님 나라로 가는 많은 생명을 구원한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가정과 교회를 하나님 나라로 만드는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옆집 아주머니는 우리 교회에 하늘로 솟아있는 불기둥을 보았다고 얄려주었습니다. 우리 교회에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것을 불신자를 통하여 알게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 안에서 좋은 꿈을 꿀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과연 여기 계신다)

 

16,17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잠이 깨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에 두려워하여 가로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야곱은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이 하나님이 계신 곳임을 알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자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이니 그곳은 광야가 아니라 하나님의 집입니다. 그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곳이 사다리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에 올라 갈 수 있는 문입니다.

우리는 어느 곳에 있든지 그곳에 하나님이 임재해 계시다는 것을 알면 경외심이 생깁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곳이 하나님의 집이 되고 하나님의 문이 됩니다. 하나님 나라가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야곱이 하나님을 만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체험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체험해야 합니다. 부부가 살면서 부부를 인격적으로 체험합니다. 사람들과도 서로 만나서 서로를 체험합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을 체험해야 변화됩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면 광야같은 세상도 하나님 나라로 바뀝니다. 사막과 같은 곳도 하나님의 집으로 바뀝니다. 꿈을 꾼 후 야곱은 서원 기도하였습니다. 벧엘은 그의 첫신앙을 출발합니다. 우리의 첫신앙을 출발한 곳이 바로 고향입니다. 벧엘에 야곱의 영적인 고향이 됩니다. 그의 진정한 고향이 하나님 나라임을 깨달은 곳입니다.

 

(하나님의 집)

 

18-19절을 보십시오.“야곱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베개하였던 돌을 가져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본 이름은 루스더라

 

야곱이 루스에서 아침 일찍 일어났습니다. 그는 베개하였던 돌을 가져 기둥을 세웠습니다 그곳에 기름을 붓고 벧엘 곧 하나님의 집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집은 예배당이라는 말입니다. 천당이요 천국이라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위하여 단을 쌓습니다. 이삭은 그 단에 번제로 올라갑니다. 이삭도 제단을 쌓습니다. 야곱은 돌을 세우고 기름을 붓고 그곳에서 예배를 드립니다. 하나님의 집이 나중에 성막으로 성전으로 발전합니다. 지금의 교회가 됩니다. 하나님 나라의 모형이 됩니다.

 

(야곱이 서원함)

 

21-22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서원하여 가로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야곱은 예배드리고 하나님께 서원 기도를 드렸습니다. 우리는 야곱의 서원 기도에서 몇 가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서원 기도는 나에게 임한 말씀에 기초하여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잡고 할 때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이 주신 여러 말씀 중에서 자신이 은혜 받은 한 말씀을 붙잡고 서원하였습니다. 서원 기도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하는 것입니다. 야곱은 다시 고향에 돌아갈 소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인간적으로 절망적인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서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안 들어주셔도 당연한 것을 가지고 서원하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말하면 밑져야 본전인 것을 서원합니다. 인간적으로 그 문제는 해결 불가능합니다. 그것이 해결되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경우에 서원합니다. 야곱은 구체적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배를 드리고 십일조를 드릴 것을 서원드렸습니다.

이것이 교회의 삼대 의무입니다. 교회의 의무는 첫째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요. 둘째 주일 예배를 드리는 것이요. 셋째 십일조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야곱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서원 기도를 통하여 아브라함의 하나님 그리고 이삭의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조상들의 하나님, 선배들의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후손과 후배들에게 나의 하나님을 계승하여 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서원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경북 영덕의 구계 교회이 김상태 집사님이 있습니다. 그 교회는 비바람이 들어오는 곳입니다. 교회는 20여년 동안 수리하려고 해도 돈이 없었습니다. 그는 나에게 축복하시면 그 돈으로 예배당을 수리하겠다고 서원 기도을 하였습니다. 목사님께 물고기를 많이 잡아서 예배당을 수리하게 해달라고 기도 요청을 하고 고기를 잡으러 갔습니다. 그가 그물을 내리자 방어떼가 몰려 왔습니다. 다른 배들도 있었는데 다른 베에는 고기가 가지 않고 김상태 집사님의 그물에만 모여 들었습니다. 끌어 올린 것만 2370마리로 물고기를 잡어서 4억을 벌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을 가리켜서 현대판 베드로의 기적이라고 합니다. 그는 그 돈으로 예배당을 수리했습니다. 다시 나갔더니 길이가 오미터나 되는 밍크 고래가 잡혔습니다. 그물이 고래를 잡는 그물이 아니라 찢어질 수 있는 데 고래가 얌전하게 끌려 왔습니다. 그것을 팔아서 오천만원을 벌었습니다. 그는 예배당을 다시 지었습니다. 하나님은 서원기도를 들으시고 일하십니다. 우리 가운데 어떤 분은 월급을 못받아서 전세금을 못받아서 어떤 사람은 학점이 낮아서 서원기도한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모든 기도를 들으시고 이들을 위로하시고 축복하셨습니다. 10.5

창세기 28장 강해 야곱의 고향

말씀 창세기 281-창세기 2822

요절 창세기 2821절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창세기 28장 강해 끝입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32 [창세기] 창세기 31장 강해 1부 자유를 꿈꾸며 오요한 2006-11-05
31 [창세기] 창세기 30장 강해 2부 깨끗한 부자 오요한 2006-10-29
30 [창세기] 창세기 30장 강해 1부 열두 조상을 세우신 하나님 오요한 2006-10-22
29 [창세기] 창세기 29장 강해 야곱의 사랑 오요한 2006-10-15
28 [창세기] 창세기 28장 강해 야곱의 고향 오요한 2006-10-08
27 [창세기] 창세기 27장 강해 이삭의 축복을 받은 야곱 오요한 2006-07-02
26 [창세기] 창세기 26장 강해 복받은 이삭 오요한 2006-06-26
25 [창세기] 창세기 25장 강해 야곱과 에서 오요한 2006-06-18
24 [창세기] 창세기 24장 강해 2부 아브라함의 종의 충성심 오요한 2005-08-28
23 [창세기] 창세기 24장 강해 1부 아브라함의 결혼관 오요한 2005-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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