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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창세기 12장 강해 2부 아브람의 초기 신앙 생활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5-05-15 00:00:00
조회수 : 3,158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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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2장 강해 이부 아브라함의 초기 신앙 생활

말씀 창세기 12 5-창세기 1220

요절 창세기 127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오늘 말씀에는 오월의 초록 나뭇잎처럼 생명력 있게 살았던 아브람의 초기 신앙생활이 나오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거듭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배우고자 합니다.

 

(마침내 신앙)

 

5절을 보십시오. "아브람이 그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 갔더라."

 

bc 2091년 아브람이 75세 때에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람은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종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갔습니다. 아브람이 있던 메소포타미아와 하란 지방은 비옥한 초생달 지역으로 기름진 곳입니다. 아브람은 이런 곳을 떠나서 황량한 가나안 땅으로 가야 했습니다. 그들이 이주하는 길은 힘들고 어려운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하란에서 가난안 땅을 가는 데 480킬로미터라고 합니다. 이렇게 순종하는 길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면 순종을 배워야 합니다. 순종을 하되 아브람이 마침내 가나안 땅에 간 것처럼 끝까지 순종해야 합니다.

 

(끝까지 순종하신 예수님)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빌립보서 28절입니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십자가의 길은 가나안 땅에 가는 길처럼 어려웠습니다. 예수님은 순종하시기 전에 땀이 핏방울이 되기까지 기도하셨습니다. 순종하여 채찍에 맞으시고 가시면류관을 쓰셨습니다. 양손과 발목에는 대못이 박히셨습니다. 예수님은 많은 피를 흘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내려오실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에 내려 왔다면 예수님은 부활하실 수 없고 그리스도가 되실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온전히 죽으셨기 때문에 부활하셔서 우리의 그리스도가 되셨습니다.

 

(믿고 감사하는 아브람)

 

6,7절을 보십시오. "아브람이 그 땅을 통과하여 세겜 땅 모레 상수리 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하였더라.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그곳에 단을 쌓고,“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갔을 때 그곳에는 가나안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 땅은 황량한 광야 땅이었습니다. 아브람은 발붙일 만큼도 자신의 땅이 없었습니다. 아무도 아브람을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경계의 눈초리로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은 아무 것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큰 민족을 주신다고 하셨지만 사래는 아직 임신도 되지 않았습니다. 이름을 창대하게 해주신다고 하셨지만 가나안 사람 아무도 아브람을 알아주지 않았습니다. 아브람을 복의 근원 삼으신다고 하셨지만 아무도 아브람을 통해서 복을 받지 않았습니다. 아브람의 현실은 삭막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였습니다. 말씀의 생명력이 임하자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는 땅을 주신다는 말씀을 믿고 단을 쌓았습니다. 하나님께 감사의 단을 쌓았습니다. 그는 아무 것도 없었지만 말씀이 너무 너무 좋았습니다.

우리 가운데 말씀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을지라도 넘치게 감사합니다. 마음에 그냥 기쁨이 생겨서 싱글벙글거립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에게는 실없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믿음이란 이렇게 말씀을 잡고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하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진 아브람)

 

8,9절을 보십시오. "거기서 벧엘 동편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는 벧엘이요, 동은 아이라. 그가 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점점 남방으로 옮겨 갔더라.“

 

여기에는 아브람의 초기 신앙 생활의 특징이 잘 나옵니다. 아브람은 장막 생활을 하였습니다. 장막은 텐트입니다. 장막을 친 것은 바벨탑을 쌓은 것보다 위대한 일입니다.

아브람은 부자였습니다. 창세기 14장에 보면 318명의 사병이 나옵니다. 그러나 그는 70평 아파트에서 살지 않았습니다. 텐트를 치고 생활했습니다. 그는 자신만 장막 생활을 한 것이 아니라 이삭과 야곱도 장막생활을 시켰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 이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9,10절입니다.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 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 그들은 하나님이 지으시고 경영하시는 터가 있는 성 곧 하나님 나라를 소망했습니다. 아브람은 이 세상에서 삶이 나그네와 같고 소풍 나온 것과 같은 삶임을 알았습니다.

우리의 삶은 타국의 삶이요. 타향의 삶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의 삶이 길어야 팔구십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고향은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아브람은 이를 알고 이 땅에 집착을 두지 않았습니다. 이 땅에서 자유로운 생활을 하였습니다.

신앙은 자유한 것입니다. 우리도 이와 같이 하나님이 부르시면 언제든지 갈 준비를 하며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이 세상에서 나그네처럼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어느 정도 체험하지만 마지막은 예수님의 재림시에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그 날을 기다리며 깨어 있어야합니다. 천상병 시인은 귀천이라는 시에서 이 세상의 삶을 소풍이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교제하는 아브람)

 

아브람은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 여호와여!"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교제한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깊이 사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여러 가지 축복을 주십니다. 로마서 1012-13절입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주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는 자들에게 주님은 부요하게 해주십니다. 풍성하게 일을 하십니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는 자들을 구원하여 주십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를 죄와 죽음과 심판에서 구원하여 주십니다. 주의 이름으로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워 주시고 중풍병자를 치료하여 주십니다. 주님의 이름은 능력의 이름이요. 자비의 이름입니다.

 

(기근을 은총으로 주신 하나님)

 

10절을 보십시오. "그 땅에 기근이 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우거하려 하여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아브람은 처음 신앙의 출발은 좋았습니다. 하지만 그도 초기에 실패를 반복하며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가나안 땅에 가뭄이 찾아오고 기근이 찾아왔습니다. 가나안 땅은 강우량이 많지 않습니다. 200-1200미리 정도입니다. 아브라함의 때나 이삭의 때나 야곱의 때 기근이 있었습니다. 기근이 들은 것은 이른 비가 내리지 않은 것입니다.

사람들은 약속의 땅에는 풍년만 드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약속의 땅에도 기근이 찾아옵니다. 많은 가축과 종들과 가족을 거느리고 있는 아브람은 애가 탔습니다. 기근이 불신자에게만 찾아왔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가뭄은 신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찾아옵니다.

기근은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기근이 찾아 왔을 때 아브람은 믿음으로 약속의 땅 가나안에 머물렀어야 했습니다. 주님께 기도로 어떻게 기근을 극복해야하는지 여쭈어 보아야 했습니다. 그는 기근을 통하여 풍성하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아브람의 아들 이삭은 기근 중에라도 순종하여 가나안 땅 그랄에 머물렀습니다. 그때 그는 백배의 결실을 맺었습니다. 그는 기근을 통하여 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아브라함에게 기근은 하나님을 만날 수 이는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의 시간입니다.

우리도 이 풍성하신 하나님을 믿고 고난의 때에 약속의 땅에 남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 가정은 빈손으로 천안 땅에 왔습니다. 우리에게도 기근이 닥쳐왔습니다. 먹고 살 것이 없었고 아들 요한이 우유 값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니카 사모를 당시 8급 공무원으로 취업하게 도우셨습니다. 전혀 알지도 못하는 천안군 모자보건계장이 소고기를 사가지고 천안시 보건 소장을 찾아가서 취업을 시켜 주셨습니다. 저도 학원에 직장을 얻게 하시고 지금까지 풍성하게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다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음으로 순종하여 살아야합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물질 문제도 친히 책임져 주십니다.

 

(사라의 아름다움 비밀)

 

11-13절을 보십시오.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를 때에 그 아내 사래더러 말하되 나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고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원컨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대로 인하여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인하여 보존하겠노라. 하니라.“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심히 아름다웠습니다. 당시 75세였는데 127세까지 산 것을 볼 때 현재 나이로는 사십 살 정도 정도 되었을 것입니다. 아줌마인데도 사래는 천사처럼 아름다웠습니다. 사래는 화장을 했거나 성형수술하지 않았습니다. 금은보석으로 장식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전서 33-5절은 말씀하십니다.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에 값진 것이니라.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사래는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였습니다. 안정한 심령은 성령을 의미합니다. 사래는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녀는 순종함으로 자신을 단장하였습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오빠로 부르라고 해도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그렇게 마음에 하나님을 두고 순종하는 사람들은 아름답습니다.

 

(잔꾀로 문제를 만든 아브람)

 

아브람은 사래의 아름다움으로 근심이 생겼습니다. 이는 사래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하는 걱정이 아니었습니다. 사래 때문에 자신이 죽을 것 같은 두려움에 사로 잡혔습니다. 그래서 그는 잔꾀로 사래에게 말합니다. "여보 오늘부터 나를 오빠로 부르시지요. 그래야 내가 죽지 않을 것이요. 당신은 잡혀 가든 내 알 바 아니요." 아브람은 자기중심적이고 무책임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아브람을 남편으로 둔 사래가 불쌍해 보입니다. 아브람은 자신의 아내는 바로에게 빼앗겨서 후궁이 되든지 아무 상관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자기 자신 하나만 사는데 관심을 가졌습니다.

 

(바로의 후궁이 된 사라)

 

14-16절을 보십시오. "아브람이 애굽에 이르렀을 때에 애굽 사람들이 그 여인의 심히 아리따움을 보았고 바로의 대신들도 그를 보고 바로 앞에 칭찬하므로 그 여인을 바로의 궁으로 취하여 들인지라. 이에 바로가 그를 인하여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 수 나귀와 약대를 얻었더라.“

 

사라는 아브람의 말에 순종하여 아브람을 오빠라고 불렀습니다. 애굽사람들은 사래의 심히 아리따움을 보았습니다. ", 놀라 자빨질만한 미인이 왔어!" 바로의 대신들도 사래의 아름다움을 칭찬했습니다. 바로의 궁에까지 사래의 아름다운 소문이 퍼져 나갔습니다. "대왕 마마 전지현, 김태희 뺨치는 미인이 왔습니다." 바로는 즉시 사래를 후궁으로 취하여 들였습니다. 바로는 사래를 취하여 드리는 대신 오빠인 아브람에게 많은 양과 소와 노비와 나귀와 약대를 주었습니다.

아브람은 자신의 목숨을 구했습니다. 돈도 벌었습니다. 그러나 아내를 빼앗겼습니다. 그는 아내를 팔아서 자신의 목숨을 구하고 부자가 되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이런 아브람이 우리 믿음의 조상이라는 말을 듣고 나서 많은 실망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실 이런 부분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는 것입니다. 성경은 사람들의 모든 약점을 사실적으로 기록해 줍니다. 아브람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위대한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요 믿음 때문입니다. 아브람이 위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위대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실수가 우리에게 주는 위로)

 

우리가 아브람을 볼 때 많은 위로를 받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도 아브람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아내보다 자신을 챙기기 힘쓰고 아내보다 돈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우리는 이런 자신을 보고 자신은 목자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절망합니다. 그러나 아브람도 위대한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믿음만 있다면 아브람과 같이 위대한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행위가 아닙니다. 머리가 좋은 것도 아닙니다. 얼굴이 예쁜 것도 아닙니다. 키가 큰 것도 아닙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우리가 믿음만 있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변화시키고 크게 쓰실 것입니다. 우리는 아브람을 보고 소망을 갖습니다.

 

(놀라신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이런 아브람을 지켜 보고 계셨습니다. 아브람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습니다. 사래가 바로의 후궁이 되었습니다. 사래가 바로의 후궁이 되면 사래에게서 메시야를 보내고자하는 하나님의 계획이 무산됩니다. 아브람을 부르시고 구속역사를 이루고자 하였는데 이 계획이 무산됩니다. 하나님께서 깜짝 놀라셨을 것입니다.

 

(바로에게 내린 재앙)

 

17-20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연고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 바로가 아브람을 불러서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이렇게 대접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그를 네 아내라고 내게 고하지 아니하였느냐? 네가 어찌 그를 누이라 하여 나로 그를 취하여 아내를 삼게 하였느냐? 네 아내가 여기 있으니 이제 데려가라. 하고 바로가 사람들에게 그의 일을 명하매 그들이 그 아내와 그 모든 소유를 보내었더라.“

 

하나님은 바로의 집에 큰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큰 재앙이 무엇인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확실하게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손을 보신 것은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큰 화재가 나게 하든지 아니면 자녀가 크게 아프게 하든지 아니면 지진이 나는 등의 방법으로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래를 후궁으로 드린 것에 대한 징계를 분명히 드러내셨습니다.

바로도 이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바로는 큰 재앙을 겪은 후에 아브람을 불러서 왜 아브람에게 사래를 아내라고 말하지 않았느냐고 책망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래를 돌려보내고 재물도 돌려보냈습니다.

아브람은 일시에 아내도 되찾고 많은 물질도 얻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개입하여 얽힌 문제를 시원하게 해결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이 잘못했는데 아브람에게 재앙을 내리신 것이 아니라 바로에게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재앙을 내리셨을까요?

 

(허물을 감당하신 하나님)

 

하나님은 아브람의 허물과 연약함을 감당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십니다. 사랑이 많으십니다. 율법적으로 우리의 허물을 보고 책망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연약함과 허물을 오래 참고 감당해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율법적인 하나님이 아니라 긍휼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허물과 연약함을 감당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이사야는 이 예수님을 이렇게 증거합니다.

이사야 534,5절을 말씀하십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허물과 연약함을 감당하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인해서 건강하게 기쁘게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우리는 죄사함을 받고 평안 가운데 살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도우신 하나님은 온전한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복의 근원 아브람)

 

하나님은 아브람을 복의 근원으로 삼아주십니다. 아브람을 축복하는 자에게 복을 내리고 아브람을 저주하는 자에게 저주하십니다. 바로는 모르고 했지만 아브람의 아내를 빼앗아가는 죄를 지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죄를 지은 바로에게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하나님은 전적으로 아브람 편이 되어주셨습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 그리스도를 모시고 살면 하나님은 우리 편이 되어 주십니다. 로마서 831절입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어 주심으로 아무도 우리를 헤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십니다. 나를 통하여 가정과 학교와 직장에 복을 주십니다. 우리가 아브람의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믿고 살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창세기 12장 강해 이부 아브라함의 초기 신앙 생활

말씀 창세기 12 5-창세기 1220

요절 창세기 127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창세기 12장 강해 이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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