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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창세기 2장 강해 에덴 동산을 만드신 하나님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5-03-15 00:00:00
조회수 : 5,031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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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장 강해 에덴 동산을 만드신 하나님

창세기 24-창세기 225

요절 창세기 2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

 

얼마 전에 동남아에 쓰나미 해일이 닥쳐 많은 생명이 죽고 피해가 컸습니다. 이 일이 일어난 몰디브나 태국의 푸켓 등은 지상낙원으로 불리던 곳이었습니다. 바다 속이 훤히 보이고 에머럴드 빛 바닷물과 넓게 펼쳐진 해변은 부족함이 없는 관광객들의 휴식처였습니다. 이곳에 쓰나미가 옴으로 지상에 낙원은 없음이 증명되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낙원을 상실한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항상 낙원을 꿈꾸며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대개 기대했던 만큼 행복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그 행복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유럽이나 미국 같은 나라들은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완벽한 복지국가를 만들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인류의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상적인 국가, 낙원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낙원은 결코 사람의 노력이나 힘으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창세기 말씀은 모든 사람들이 그토록 갈망하는 아름다운 낙원이 에덴동산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하여 이 에덴의 낙원을 회복하기 원하십니다. 이 시간 말씀을 통해 우리 모두가 하나님이 주신 낙원을 올바로 알고 낙원을 누리고 낙원에 들어가기를 기도합니다.

 

(완전한 사랑의 여호와)

 

4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때에 천지의 창조된 대략이 이러하니라."

 

창세기 1장에 이어 2장은 창조 제 6일째를 인간 창조 중심으로 다시 부록처럼 기록한 말씀입니다. 여기에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얼마나 심히 기쁜 대상으로 여기시고 그의 행복에 관심을 가지고 그의 사랑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셔서 에덴동산을 창설하셨습니다.

1장의 하나님은 히브리어로 보통명사인 엘로힘으로 전능자란 뜻이 있습니다. 엘로힘은 우주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말합니다. 이와 달리 2장의 하나님은 이름 앞에 여호와가 덧붙여졌습니다. 여호와는 구약에 6800번 나옵니다. 여호와는 히브리어 고유명사로서 야훼 혹은 여호와인데 나는 나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이름을 붙일 수 없는 분, 스스로 있는 분, 완전하신 분이십니다.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 영원히 계시는 분,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여호와는 인간을 인격적으로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창조하신 인간들과 교제하시는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이십니다. 스스로 중보자가 되셔서 죄악된 인간을 구원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기 전 땅의 상태는 어떠했습니까?

 

(사람 없는 황량한 땅)

 

5, 6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경작할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천지를 창조하기 전에 상태는 공허하고 혼돈하고 깊은 어둠이 있었습니다. 사람을 창조하시기 전에 땅의 상태는 쓸쓸했습니다. 하나님은 다섯째 날까지 모든 식물들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을 경작할 사람이 창조되지 않았기 때문에 들과 밭은 황량할 뿐이었습니다. 사람이 없으므로 비도 초목도 채소도 없었습니다.

인간의 문화가 없었습니다. 자연은 청지기인 인간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는 공장을 짓고 각종 설비를 만들었으나 경영하고 일하는 사람이 없어 생산품이 나오지 않을 때 공장의 모습과 같습니다.

 

(연약한 흙으로 된 인간)

 

7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생기란 생명의 기운을 말하는 것으로 근본적으로 성령을 말합니다. 생령이란 살아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흙으로 사람을 지으신 후에 성령을 주셔서 살아 있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창세기 1장에는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의 내면성을 말했는데 창세기 2장은 사람을 만드는 과정을 말합니다. 이 말씀은 인간에 대한 중요한 본질을 가르쳐 줍니다.

사람의 육신은 흙으로 지어졌습니다. 사람은 질그릇처럼 연약하고 허물과 실수가 많습니다. 교통사고만 나도,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려도, 물 속에서 10분만 있어도, 5분 만 숨을 쉬지 않아도 죽게 됩니다. 인간의 육체는 육신을 유지하고 만족하기 위해는 적절한 수면과 음식과 물이 필요하고 운동이 필요합니다. 사람은 질그릇과 같이 연약합니다.(고후4:7) 깨어지기 쉽습니다. 면역력만 약해져도 각종 질병에 걸립니다. 다른 사람들의 말에 쉽게 상처를 받습니다. 노화되고 언젠가는 죽어서 흙으로 가야합니다. 사람들은 이런 흙으로 된 육신에 낙심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흙으로 지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도자기처럼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잘 아십니다.

하나님은 왜 인간을 흙으로 지으셨을까요?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보배되신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육신의 연약함을 통하여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비가 자식을 생각하듯이 우리의 연약한 체질을 아시고 긍휼히 여겨주십니다. 인간은 흙덩어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깊이 인정해야합니다. 그래야 인간은 겸손하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을 얻는 인간)

 

인간은 여호와의 성령이 들어오시므로 살아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여호와의 성령이 함께 하지 않았을 때 인간은 흙으로 만들어진 동물에 불과합니다. 우리 육신이 흙에서 왔다면 우리 영혼은 하나님에게서 왔습니다. 육신은 흙에서 왔기 때문에 흙에 있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에게서 왔기 때문에 하나님으로 만족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떡을 먹어야합니다. 성령의 물을 마셔야합니다.

다윗 왕은 왕의 권세와 지위를 가지고 육신의 즐거움을 부족함 없이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는 음악가였고 시인이고 장군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범죄 하였을 때 그가 비록 왕이었지만 뼈가 쇠하는 고통을 맛보았습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회복되지 않았을 때 그는 행복하지 않았고 고통하였습니다. 회개하고 사죄의 은혜를 덧입어 하나님과 관계성이 회복되었을 때 그는 기쁨과 행복감을 맛 볼 수 있었습니다. 다윗은 여호와여, 나의 영혼을 기쁘게 해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시편 86)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성이 회복될 때 진정 만족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과 동행할 때 인생은 최고로 기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행복의 동산 에덴)

 

8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여 에덴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마치 부모님이 자녀에게 집을 선물로 주시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에게 진정한 행복을 주시기 위해 에덴동산을 창설하셨습니다. 에덴은 기쁨, 낙원이란 뜻입니다. 에덴은 행복의 동산입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이 주신 에덴동산에서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에덴이 어떤 점에서 에덴인지 몇가지 점에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풍요로운 에덴)

 

9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에덴에는 가난문제, 물질문제가 없는 풍요로운 곳입니다. 먹고사는 문제로 염려할 필요가 없는 곳입니다. 영양가가 높고 향기 그윽한 각종 과일들이 시절을 좇아 풍성히 맺는 나무들이 있습니다. 먹기 좋아 천국에서 먹는다는 천도복숭아, 새콤달콤한 사과, 거봉 포도, , , 오렌지, 메론, 망고, 매실과 파인애플, 바나나 같은 형형색색의 과일이 사시사철 흐드러지게 주렁주렁 열렸습니다. 사계절 추수가 가능한 벼, , 보리와 배추, 시금치, , 같은 채소가 지천에 널려 있어 냉장고가 필요 없습니다.

자고로 물질문제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수고합니까? 카드 빛과 연체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돈이 없으면 사람의 인격도 자유도 없습니다. 인간이 추구한 이상적인 나라는 대부분 빈곤과 주림이 없는 물질적인 풍요의 나라였습니다. 에덴동산은 이런 경제적 풍요가 이뤄진 나라입니다. 그곳은 의식주의 걱정이 없었습니다 옷을 입지 않아도 춥지 않고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집이 없으나 누울 수 있는 모든 곳이 그들의 집이었습니다.

 

(영생이 있는 에덴)

 

에덴동산의 중앙에는 생명나무가 있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생로병사의 고통에 시달립니다. 사람들들은 사고로, 암과 같은 질병으로, 노화로 죽어 갑니다. 병원에 가 보면 아픈 사람들의 소망은 오로지 건강을 회복하는 것 한 가지입니다. 다른 것이 필요 없다고 말합니다. 건강하지 못하면 돈이 있어도 권세가 있어도 불행합니다.

에덴동산의 생명나무 열매를 따먹으면 항상 건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다치거나, 아플 때 생명나무 실과를 먹으면 바로 회복되었습니다. 이곳에는 병도 없고, 노화도 없고, 치매도 없고, 죽음도 없습니다. 아픔도 없고 슬픔도 없고 두려움도 없습니다. 생명력이 충만한 낙원입니다.

 

(아름다운 에덴)

 

에덴은 아름다운 예술의 세계입니다. 사람은 먹고사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합니다. 사람이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면 그 다음에 추구하는 것이 예술성입니다. 에덴동산은 정신적 만족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먹기에 좋을 뿐 아니라 보기에도 아름다운 나무가 나게 하셨습니다. 에덴은 보기만 해도 즐겁고 신나는 곳입니다. 봄을 알리는 개나리, 목련, 벚꽃들도 그 자태를 뽐내고 있었습니다. 울긋불긋한 아름다운 꽃나무들과 꽃향기가 그윽한 수많은 아름드리로 우거진 나무가 풍부했습니다. 그곳에는 금은 보석이 돌처럼 즐비하였습니다.

 

(목마름이 없는 에덴)

 

10-14절을 보십시오.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 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강이 에덴에서 발원하여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습니다. 그 첫째 강의 이름은 비손입니다. 이 강은 특별히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흘렀습니다. 그곳에는 제련과정이 필요 없는 순도 100%의 정금과 베델리엄과 호마노라는 보석도 있었습니다. 다이아몬드로 된 정교한 기암괴석이 빛에 반사되어 찬란하고 영롱한 빛을 반사하고 있었습니다. 금강산은 저리 가라입니다. 강 주위에는 각종 아름답고 진기한 보석들로 가득 차게 했습니다. 그 땅에서는 금, 은 보석이 널려 있어 금을 흙 모으듯 했습니다. 보석의 종류도 많아 진주, 사파이어, 에메랄드, 루비, 비취, 오팔, 벽옥, 자수정, 물방울 다이아 등이 발에 채였습니다. 새하늘과 새땅에도 보석이 있습니다.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인데, 구스 지역으로 흘렀습니다. 구스는 이디오피아를 말하는데, 이 강은 이집트에서 시작된 나일강으로 추정합니다.

셋째 강은 힛데겔인데, 이는 티그리스를 말하고, 앗수르 동편으로 흐릅니다.

넷째 강은 유브라데 즉 유프라테스를 말합니다. 사람은 물이 있어야 살 수 있습니다.

물이 있는 곳에 문명이 발달합니다. 사람에게는 먹는 것보다 물이 더 중요합니다. 물을 먹지 않으면 삼사일 이내에 죽습니다. 에덴에는 목마름이 없습니다. 갈증이 없습니다. 물이 흐르는 곳에 고기가 있고 식물이 자라고 동물이 자랍니다. 하나님 나라에는 생명수의 강이 흐릅니다. 성령의 강물이 흐릅니다. 우리는 성령의 물을 마음껏 마시고 항상 생명력이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사명이 있는 에덴)

 

15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하나님은 인간을 에덴동산에 두사 에덴동산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였습니다. 여기서 다스리고 지키는 것은 일하고 돌본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도록 인간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사람에게 일이 없으면 일없는 사람이 됩니다. 실업자나 백수가 결코 행복하지 않습니다. 저도 실업자로 지낼 때에 막노동을 한 적이 있습니다. 새벽 5시부터 일찍 용역회사에 나가 일을 기다리다 일자리가 있어 나가면 행복하지만 비나 오거나 허당치는 날은 슬픈 표정을 하고 돌아와야만 합니다. 왠지 우울해집니다. 일하는 것이 행복입니다. 특별히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할 할 때 만족과 기쁨이 있습니다. 에덴동산에는 행복을 주는 하나님의 사명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에덴).

 

16, 17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에덴동산에 있는 나무들에 관해서 두 가지 명령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나는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를 자유롭게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생명 나무를 포함해 마음대로 먹게 하셨습니다.

다른 하나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인간은 악은 지식적으로 알지만 체험적으로 알지는 못했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판단 기준은 하나님의 고유영역에 두셨습니다. 인간에게 자유의 제한을 두었습니다.

그러면 에덴동산에 사는 인간에게 선악과를 주신 데는 어떤 뜻이 있습니까? 선악과를 먹지말라는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이 인간을 다스리기 원하셨습니다.

에덴은 하나님이 다스리는 곳입니다. 우리는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사람입니다. 교만해질 수 있는 가능성도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이 될 수 있습니다. 아담은 선악과를 볼 때마다 자유의 제한을 주시고 더 높은 곳에 계시는 하나님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인간 위에서 통치하시는 왕되신 하나님을 인식하고 그분을 섬길 수 있습니다.

에덴은 하나님이 왕이 된 사회였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왕이 되어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피조물인 인간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을 때 진정 행복합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피조물의 다스림을 받을 때 불행합니다. 구속받고 자유가 없고 만족이 없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이신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을 때 자유와 평화와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오늘날 하나님은 성령님이 왕으로 우리 안에서 오셔서 의와 평강과 희락의 나라를 이루십니다. 우리는 성령님 안에서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구체적으로 개입하여 통치주권을 행사하십니다. 귀신을 쫓아내고 질병을 치료하십니다. 예수님이 왕으로 재림하실 때에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만드십니다. 우리를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몸으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자유가 있는 에덴)

 

에덴은 하나님이 다스리지만 인간에게는 자유가 있는 곳입니다. 선악과를 따먹거나, 먹지 않을 수 있는 선택의 자유가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은 선악과를 손이 닫지 않는 절벽에 두지 않으시고 중앙에 두셨습니다. 그곳을 천사를 시켜 지키게 하지 않았습니다.

타락의 가능성과 위험을 아셨지만 인간을 로보트로 만들지 않으시고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인격과 자유의지를 존중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이 자유의지는 인간의 인격의 가장 기본이 되는 것입니다.

공산주의가 무너진 것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빼앗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주셔서 그 자유의지에서 우러나오는 인격적인 순종, 자발적인 섬김을 원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자유를 얻고자 목숨을 내놓고 싸웠습니다. 자유가 없는 곳에는 진정한 행복이 없습니다.

군대에서는 먹을 것 입을 것을 공짜로 줍니다. 아침에 일찍 운동까지 시켜줍니다. 그러나 누구도 군대 안에 행복이 있다고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군대에 가는 순간 군대에서 나올 날을 기다립니다. 군대는 자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전에 여자들도 참다운 자유가 없었습니다. 여자들은 남자의 종속물로 취급을 받았습니다. 여성들이 지금과 같은 자유를 얻는데도 많은 피의 희생이 있었습니다.

이런 정치적인 자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신앙의 자유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마음껏 섬길 수 있는 신앙의 자유를 얻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을 수 있는 자유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 자유로 하나님을 섬길 때 진정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에덴)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과 이브에게 참 행복을 주시기 위해서 에덴동산을 주시고 거룩한 하나님의 계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라고 하셔서 이 계명이 절대적임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아담이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고 저주를 받아 에덴의 행복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 드려야할 주일예배의 시간을 따먹고 십일조의 물질을 따먹습니다. 십계명을 어기고 따먹습니다.

하나님을 나의 삶에서 자신이 주인이 됨으로 불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우리들에게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인지를 잘 가르쳐 줍니다.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에게로 돌아와서 하나님을 주인으로 경외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행복합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성을 맺고 하나님과 질서를 지키고 경외해야 행복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야 행복합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가정)

 

결혼과 가정은 우리의 기본적인 생활에서나 사회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합니다. 모든 역사는 가정에서 시작됩니다. 많은 사람들의 소감을 들어 보면 인생 문제들은 대부분 가정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몇 년 된 일이지만 부녀자들을 납치하고 살인 공장을 차려 살인했던 지존파가 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적이 있습니다. 다행히 하나님의 은혜와 한 목사님의 전도로 이들이 변화 받아 예수님을 영접하고 장기를 기증하고 죽었는데 이 분들은 파괴된 가정에서 성장한 분들입니다. 가정들이 안정되고 행복을 누릴 때 그 사회 전체가 건강하고 안정됩니다.

물론 사람들은 누구나 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결혼생활이 행복하지 못하고 불행을 느끼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인류의 조상 아담에게 가정을 이루어 주심으로써, 가정의 의미가 무엇이며 어떤 결혼관을 가져야 하는가에 대해서 분명한 방향을 제시해 줍니다. 어떤 가정이 행복한 가정입니까?

 

(돕는 베필로 지어진 여자)

 

18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후에 심히 기뻐하셨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보시기에 좋지 못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아담이 독처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돕는 배필을 지어 주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사도 바울처럼 특별한 은혜로 결혼을 하지 않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도시 노처녀나 농촌 총각도 결혼하는 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가정을 만들어야합니다. 결혼하지 않은 남자는 총각입니다. 총각은 전체를 합해도 각이지고 부족하다는 말입니다. 남자는 자기의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깨닫고 겸손한 마음으로 여자의 도움을 잘 받아야 합니다. 여자는 자기가 도와야 할 점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돕는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여기서 돕는 배필이란 가장 돕기에 적당한 자라는 뜻입니다. 남편의 죄에 대해서 책망하고 맞설 수 있는 자라는 뜻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이 얼마나 부족하고 혼자서 살 수 없는 존재인지 잘 아십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잘 도울 수 있는 합당한 배필을 지어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여자는 자신이 주인공이 아니라 돕은 자라고 자존심이 상해해서는 안 됩니다. 더 지혜로와야 도울 수 있습니다. 세계를 지배하는 자는 남자이지만 남자를 지배하는 자는 여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남자가 여자의 도움을 받는 것을 자존심 상하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남자는 자신이 완벽한 사람인 것처럼 허세를 부리고 권위를 부려서는 안 됩니다. 겸손히 도움을 받아야 행복한 가정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명 중심의 가정)

 

19, 20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아담은 에덴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의 이름을 짓는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너는 목이 기니 기린, 너는 돼지 같이 생겼으니 돼지라고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남자는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충성스럽게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담에게 사명을 돕는 베필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명을 돕도록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가정의 존재 목적은 하나님이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이 사명의 땅을 떠나면서까지 결혼하는 것을 반대하였습니다. 사명을 버린다면 결혼하지 않기를 바랬습니다. 우리는 사명을 중심으로 하는 가정을 만들어야 합니다. 가정 교회를 만들어야합니다. 가정을 오픈하고 하나님의 양들을 섬겨야합니다. 자녀들을 하나님을 믿는 자녀로 양육해야합니다.

 

(질서가 있는 가정)

 

2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신 후에 갈빗대 하나를 취하시고 살로 대신 채우셨습니다. 아마 하나님께서 신령한 능력으로 아담에게 전신마취를 하셔서 갈빗대 하나를 뽑으신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갈빗대 하나를 취하여 여자를 만들었습니다. 남자는 갈빗대 하나만큼 부족한 점이 있다는 것을 나타내 줍니다. 그 부족한 갈빗대가 합쳐질 때 완전한 인격체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의 갈빗대를 취하여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머리뼈나 발 뼈로 만들지 않고 갈비뼈로 여자를 만드신 뜻은 서로 인격적으로 동등한 질서를 주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여자의 갈비뼈로 남자를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남자의 갈비뼈로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 사이에 가정의 질서를 세우셨습니다. 아내는 주 안에서 남편을 존경하고 남편에게 복종해야합니다. 남편을 주님처럼 생각하고 복종하여 남편의 권위를 세워주어야 하고, 남편은 아내를 예수님이 교회를 사랑하듯이 사랑해야합니다. 남편을 머리로 생각하고 복종하고 남편은 아내를 자신의 몸처럼 사랑해야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권위 아래서 사랑하고 가정의 질서를 지켜야 행복합니다.

 

(하나님이 짝 지워 주시는 가정)

 

22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하나님은 아담에게서 취하신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셔서 아내로 삼도록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결혼을 앞두고 많이 고민하는 것은 과연 내게 가장 합당한 배필이 어떤 사람인가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내가 이 사람 저 사람을 찾아서 쳐다보면서 나의 배우자는 누굴까 생각해봅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도 정확하게 알 수 없는 불완전한 인간이 다른 사람을 정확하게 아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대개 사람들은 외모나 직업과 같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들이 자기가 원하는 사람과 결혼한 후에 후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진실과 조성모씨는 자신들의 선택에 의해서 결혼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오 년이 못되어 이혼하였습니다. 최진실씨와 조성모씨는 자살하였습니다. 그들은 남편이나 아내가 처음에 생각했던 것과 같지 않거나 기대에 미치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가장 합당한 이브를 이끌어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잘 아십니다. 우리가 자신을 사랑하고 아는 것보다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더 사랑하시고 더 정확하게 아십니다.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또 장차 무슨 일을 해야 할 사람인지, 또 그 일을 하기 위해서 어떤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지 잘 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장 적당한 돕는 배필을 인도해 주십니다.

결혼은 하나님이 짝지워주시는 것입니다. 미혼자들은 결혼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사람과 결혼해야 합니다. 우리는 바른 결혼의 가치관을 갖고 기도하므로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사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신자와 사명 중심의 결혼을 하는 것이 가장 행복합니다. 성경 말씀이 제시해 준 결혼의 진리에 입각해서 믿음으로 가장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가정이 이혼을 하고 깨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한국은 두 가정이 결혼하면 한 가정이 이혼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사명에 기초해서 가정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육신의 감정과 정욕에 기초한 결혼하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아름답고 축복된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짝지워 주시는 사람과 사명을 중심으로 믿음의 결혼을 해야 합니다. 결혼은 하나님께서 한 몸으로 짝 지워 주신 것이기 때문에 사람이 결코 나눌 수 없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가정)

 

23절을 보십시오.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여자를 맞이하는 아담의 소감이 어떠합니까? 아담은 여자를 본 순간 feel이 꼬쳤습니다. "이는 내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아담은 재빨리 그의 사명인 이름 짓는 은사를 발휘해 아내를 여자라 이름까지 지었습니다.

이 말씀은 자기 몸의 일부분인 여자를 맞이하는 아담의 사랑 고백입니다. 아담은 아내를 나의 살 중에 살이요, 뼈중의 뼈로 영접하였습니다. 자신의 몸의 일부로 영접하였습니다. 자신의 몸처럼 아내를 사랑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남편은 아내를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해야합니다. 아내를 미워하는 것은 자신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야곱은 라헬을 사랑하여 칠년을 수일같이 지냈습니다. 아내는 사랑하는 남편을 존경해야합니다.

 

(부모에게 독립하는 가정)

 

24절을 보십시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이제 창세기 저자는 결론적으로 가정의 의미를 말합니다.

첫째, 남자가 부모를 떠나야 합니다. 남자가 부모를 떠난다는 것은 영적으로, 육적으로 자립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자립하는 것을 말합니다. 부모는 자식을 떠나보내어 자녀에게 자유를 주어야 합니다. 자식은 부모를 떠나서 먼저 부부를 생각해야 합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 중심에서 부부 중심으로 중심을 바꾸어야합니다. 경제적으로 인격적으로 자립해야합니다. 부모는 자녀를 더 이상 간섭하지 말고 하나님 안에서 믿어주어야 합니다. 물론 자녀는 부모에게 묻고 배워야 하지만 근본적으로 독립해야 합니다.

 

(연합하는 가정)

 

둘째, 연합하는 가정입니다. 연합이란 육체적 연합만이 아니라 인격의 결합, 영적인 결합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연합하기 위해서는 마음과 뜻이 같아야 합니다. 또 믿음도 같고, 무엇보다 사명이 같아야 합니다. 이렇게 연합할 때 둘이 하나가 됩니다. 두 몸이 한 몸이 됩니다. 남편이 머리라면 아내는 몸입니다.

성경에서는 불신자와의 결혼을 엄히 금하고 있습니다. 에스라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방인과 결혼하자 그 아내와 자녀를 다 내어쫓으라고 하였습니다. 불신자와 결혼하여 타락한 예는 많습니다. 노아시대가 그렇고 솔로몬과 삼손이 그렇습니다.

남자가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된다는 것은 둘이 합하여 하나의 인격체가 된다는 것입니다. 결혼한 분들은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 영적인 자녀와 육적인 자녀를 낳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힘써 감당해야 합니다.

둘이 연합하여 한 몸이 된 상태가 어떠합니까? 연합이란 서로의 개성을 가진 채 함께 하는 것입니다. 서로의 인격을 말살하고 결합하여 새로운 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존중하고 합쳐야 하나의 완전한 인격체가 될 수 있습니다.

 

(한 몸이 되는 가정)

 

셋째, 가정은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일 플러스 일은 이가 아니라 일입니다. 둘은 서로 인격을 존중하나 하나가 되어야하는 것이 있습니다. 한 하나님, 한 예수님, 한 성령님이 하나가 되듯이 부부는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경제문제나 자녀문제, 가사문제는 서로 하나가 되어서 해야 합니다. 부부는 같은 방을 쓰고 같이 잠자리를 해야 합니다. 부부는 서로를 존중하며 성관계를 해야 합니다. 이혼은 원래 한 몸이 나누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만큼 큰 고통과 상처를 남기게 됩니다.

 

(신뢰가 있는 가정)

 

25절을 보십시오.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

 

부끄러움이 없는 것은 두 사람 사이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완전히 하나가 된 상태입니다. 서로 깊이 사랑하고 신뢰하는 가정입니다. 부부가 결혼하여 가정 안에서 성생활을 해야 합니다. 성이 가정의 담을 넘어가게 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원래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가정이요, 우리가 이루어야 할 행복한 가정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는 남편과 아내가 서로 인격적으로 연합하지 못하고 불신과 불화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서로 거리낌이 있고 서로 감추는 것이 있어 믿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서로를 견디지 못하고 갈라서기도 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이혼을 너무 쉽게 생각합니다. 부모의 이혼으로 많은 자녀들이 문제아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습니까?

모두가 하나님 앞에 나와서 하나님께서 원래 창조하신 가정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저도 본문 말씀을 공부하며 하나님께서 저에게 가장 합당한 돕는 배필을 주신 것을 감사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가정이 되고자 기도하게 됩니다. 이제 남은 세월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이루어주신 뜻을 생각하면서 열매 맺는 가정이 되기를 원합니다. 아멘!

 

창세기 2장 강해 에덴 동산을 만드신 하나님

요절 24-창세기 225

요절 창세기 28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

 

창세기 2장 강해 끝입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12 [창세기] 창세기 13장 강해 아브람의 가치관 오요한 2005-05-22
11 [창세기] 창세기 12장 강해 2부 아브람의 초기 신앙 생활 오요한 2005-05-15
10 [창세기] 창세기 12장 강해 1부 아브람의 꿈 오요한 2005-05-08
9 [창세기] 창세기 9장-11장 강해 무지개 언약 오요한 2005-05-01
8 [창세기] 창세기 8장 강해 노아를 기억하신 하나님 오요한 2005-04-24
7 [창세기] 창세기 7장 강해 홍수 침례 오요한 2005-04-18
6 [창세기] 창세기 6장 강해 구원의 방주 예수님 오요한 2005-04-16
5 [창세기] 창세기 4장 강해,, ,5장 강해 가인과 아벨 오요한 2005-04-07
4 [창세기] 창세기 3장 강해 3원시복음 오요한 2005-04-01
3 [창세기] 창세기 2장 강해 에덴 동산을 만드신 하나님 오요한 2005-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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